'빈센조', 마피아 장르 무너뜨린 우리식 소시민 판타지 코미디

 

한국의 상가 건물 하나가 통째로 무너지고, 이탈리아의 거대한 포도밭이 모두 불타버린다. 그 앞에 마피아의 변호사 빈센조(송중기)가 서 있다. tvN 새 토일드라마 <빈센조>는 그런 강렬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온 암살자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총으로 쏴 죽이는 잔인함...

 

마피아 소재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을 법한 장면들이 우리네 드라마 속으로 들어왔다?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게다가 그 역할을 연기하는 송중기는 잘 빠진 수트핏에 조각 같은 얼굴로 빈센조라는 이름의 이국적인 인물과 잘도 어울린다. 하지만 이런 강렬하고, 폼 나는 장면들은 이 빈센조라는 인물이 한국으로 와 겪게 될 '굴욕'과 '망가짐'을 위한 밑그림이다.

 

보스가 죽고, 그 아들과 갈등하게 된 빈센조는 중국의 조직보스가 금가프라자 지하에 숨겨놓은 금괴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그런데 위풍도 당당하게 마피아의 기세로 한국에 들어온 빈센조는 공항절도범에 탈탈 털리는 굴욕을 겪는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이태리 수제 양복점에서 맞춘 양복은 세탁소에서 구제 물품 취급을 받고, 그가 임시로 머물게 된 숙소는 샤워기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더 큰 시련(?)이 놓여있다. 어딘지 만만찮아 보이는 금가프라자 상가 사람들과 계속 부딪쳐야 한다는 사실이고, 그 건물을 용역 깡패들까지 동원해 통째로 먹어 재개발하려는 바벨건설과 맞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결국 빈센조는 금가프라자 지하의 금괴를 위해 이 상가를 지켜내야 하는 상황에 처했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상가사람들의 구원자로 나서게 된다.

 

이미 <김과장>으로 일개 경리과장이 대기업의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을 지켜내고, <열혈사제>로 한 사제가 도시를 장악하려는 거악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는 소시민 영웅 판타지를 기가 막힌 코미디로 그려냈던 전력이 있는 박재범 작가는, <빈센조>에서도 어쩌다 소시민들의 영웅이 되어버린 한 마피아 변호사의 이야기를 코미디 장르로 그려낸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잘 그려내는 박 작가는 <빈센조>에서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는 물론이고, 금가프라자 사람들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살아있는 코믹한 캐릭터로 그려낸다.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수제 양복이라 거들먹대는 빈센조에게 잔뜩 줄어버린 수선된 양복을 내주며 싸구려라 그렇다는 세탁소 사장 탁홍식(최덕문), 이탈리아는 가보지도 않았으면서 거기서 요리를 배워왔던 거짓말을 하는 토토(김형묵), 한때 운동했던 사람이라 덤비지만 말뿐인 전당포 사장 이철욱(양경원), 댄스 교습소 원장 래리강(김설진) 등등.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금가프라자 사람들은 잠깐 등장만으로도 매력적인 캐릭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여기에 금가프라자 사람들 같은 약자들을 위해 일하는 법무법인 지푸라기의 홍유찬(유재명) 변호사와 그와는 정반대로 부자들을 위해 일하는 그의 딸 홍차영(전여빈) 변호사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빈센조와 엮어지며 이들이 함께 바벨건설과 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질 예정이다.

 

흥미로운 건 이 작품의 배우들이 전작의 모습을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새롭게 분장한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카이로스>나 <써치>에서 봤던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최덕문, <열혈사제>의 악당이었다고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의 김형묵, <사랑의 불시착>의 북한 병사를 떠올리기 어려운 양경원, <스위트홈>에서 괴물연기를 선보였던 안무가 김설진까지... 배우들에게서 전작의 이미지가 안보일 정도로 이 작품의 캐릭터들은 선명하고, 그 연출과 분장에서도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무엇보다 <돈꽃>과 <왕이 된 남자>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희원 PD는 이번 <빈센조>에서도 마피아 빈센조가 한국사회에 들어와 무너지고 망가지면서 서민들과 싸워나가는 그 과정을 유려하고 진중한 장면들에서 이를 무너뜨리며 만들어내는 코미디 그리고 따뜻한 휴머니티까지 균형 있게 연출해낸다. 특히 전작들에서도 엿보였던 것처럼 클래식 음악으로 유려함과 코믹함을 넘나드는 장면들을 연출해내는 김희원 PD의 능력은 돋보인다.

 

이탈리아에서 잘 나가던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한국에 들어와 무너지고 망가지며 서민들과 싸워나가는 그 과정들은 빵빵 터지는 코미디와 시원한 액션으로 그려지지만, 그것이 말해주는 게 바로 한국 사회의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삶이라는 점은 이 작품이 정서적으로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요인이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운 시국에 세입자들이 갖는 어려움은 얼마나 큰 공감대를 만드는가. 마피아 장르까지 끌고 와 풀어내는 한국 사회의 현실과 소시민 영웅 판타지. 그 통쾌한 행보에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는 이유다.(사진:tvN)

남궁민의 ‘김과장’이 이영애의 ‘사임당’보다 호평 받는 까닭

이쯤 되면 중국 발 사전제작드라마의 저주라고 해도 될 듯싶다. <태양의 후예> 이후 쏟아져 나온 중국을 겨냥한 100% 사전제작드라마들이 잇따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가운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던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 역시 예상 외로 곤두박질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여기에는 몇 가지 그럴만한 내적, 외적 이유들이 얽혀 있다. 그 내적 이유는 이 드라마가 이미 일찌감치 사전제작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동시방영을 준비하면서 너무 방영시기를 늦추게 됐다는 외적 이유에서 비롯된다. 한한령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예정됐던 작년 말 <사임당>이 방영되었다면 상황은 지금처럼 전개되지만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사임당>이 취하고 있는 현재와 과거가 넘나드는 타임리프 설정은 작년 말만 해도 참신한 코드로 여겨질 수도 있었지만, <푸른 바다의 전설>과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등 연달아 타임리프 판타지를 접한 시청자들로서는 “또?”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현대극과 사극을 오가는 설정이 이제는 그리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게 되었다는 것. 

게다가 <사임당>의 타임리프 판타지 설정은 그 내적 개연성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즉 판타지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고 역사적 인물인 사임당과 현재의 워킹맘 서지윤(이영애)이 중첩 되어야 하는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이유가 그리 강렬하게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물론 <사임당>이 하려는 이야기가 ‘여성’, 그것도 워킹맘에 대한 것이라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강산도’가 화두처럼 던져지는 건 산에 오르는 것조차 금지되던 시대에 열심히 산을 오르며 그 산세를 화폭에 담으려 노력하는 사임당의 면면을 통해서 당대의 성적 차별의 벽을 넘어 예술의 세계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워킹맘 사임당을 그려내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현재의 서지윤이라는 인물과 중첩됨으로써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반복되는 차별의 역사를 드러내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중대하고 거창한 의도들이 가진 무게감은 오히려 <사임당>을 너무 짓누르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3회의 이야기는 그래서 사임당이 말하는 “왜 여인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이리도 많답니까?”라는 그 질문 하나를 던지는 것 이외에 드라마적인 극적 요소들이나 재미요소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오랜만에 드라마 출연을 하고 있는 이영애지만 이 드라마 3회 동안 그만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는가가 의문시되는 건 드라마의 스토리와 캐릭터가 그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사임당>이 이처럼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기대감이 적었던 KBS 수목드라마 <김과장>은 한 마디로 펄펄 날고 있다. <사임당>의 소문에 밀려 1,2회를 7%대에서 시작한 <김과장>은 3회에서 12.8%(닐슨 코리아)의 시청률을 내며 추락한 <사임당>의 시청률 13%의 목전까지 다가섰다. <사임당>이 대작으로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것과 달리, <김과장>은 말 그대로 입소문에 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 향후 판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사임당>이 타임리프 같은 판타지에 여성, 예술 같은 의도의 무게감에 짓눌리고 있을 때, <김과장>은 제목이 담고 있는 것처럼 소시민적인 인물 김과장(남궁민)의 유쾌한 풍자 블랙코미디를 그려냈다. 경리과장으로 한탕 해먹기 위해 대기업에 들어오게 된 김과장이 어쩌다 보니 부조리와 비리에 물든 회사와 한바탕 싸우게 되는 소시민 영웅이 되는 이야기다. 가벼워 보이고 실제로도 과장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코미디지만 그렇게 웃고 나면 의외로 묵직한 메시지 같은 것들이 남는 드라마. 

애초에 그 누가 <사임당>과 <김과장>이 대결구도를 그려낼 것인가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시청자들은 어째 <사임당>으로 지난 2004년 <대장금>이 종영된 후 1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이영애보다 <김과장>으로 제대로 망가지는 서민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남궁민에 더 열광하는 듯하다. 역시 드라마는 작품의 내적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방영되는 시기의 현실적 상황들과 어떻게 어우러지느냐도 중요하다는 걸 상황이 역전된 <사임당>과 <김과장>은 보여주고 있다.

거대담론보다 소시민적 삶에 공감한 대중들

 

월화극의 대결구도는 이제 12소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애초 예상은 그 1강이 SBS <대박>이었다. 사극인데다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MBC <몬스터> 역시 만만찮은 힘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황후>, <자이언트> 같은 대작을 성공시켰던 장영철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1강은 가장 약할 것으로 여겨졌던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에게로 돌아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전을 만든 것일까.

 


'동네변호사 조들호(사진출처:KBS)'

먼저 <대박>은 예상과 달리 <육룡이 나르샤>의 후광이 아니라 오히려 비교점을 만들면서 힘이 빠졌다. 무언가 강렬한 극적 상황들이 계속 해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 사건과 사건이 맥락없이 연결되어 힘이 모이지 않는 상황이다. <육룡이 나르샤>가 무려 여섯 명의 주인공을 세워두고 여러 사건들을 겹치게 하면서도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힘으로 묶을 수 있었던 것은 조선 개국이라는 분명한 목표의식을 제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박>의 대길(장근석)이나 연잉군(여진구)이 그토록 이인좌(전광렬)와 대결하는 그 과정들이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가 애매모호하다. 물론 대길은 복수하려는 것이고 연잉군은 날개를 펼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것이지만 그런 사적인 욕망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그들에 몰입하고 그들의 사적 욕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시청자들이 갖기 위해서는 그들의 목표가 지금의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만큼 공적이어야 한다. 이런 목표제시가 제대로 공감대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대박>은 그저 도박과 복수극의 자극적인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몬스터> 역시 마찬가지다. 50부작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를 강기탄(강지환)이라는 인물의 복수극으로 끌고 간다는 것은 소소한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그다지 마음이 얹어지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기탄이 싸우고 있는 도도그룹이라는 세력이 보통의 시청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가가 이 드라마에는 빠져 있다. 그래서 강기탄의 복수극은 마치 현실이 아닌 게임처럼 여겨진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연수과정의 이야기는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드라마가 아닌 만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몬스터>의 최대 약점은 이 안에 배치된 많은 이야기들과 캐릭터들이 너무나 스테레오타입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시력을 잃어 오히려 청력이 좋아진 이국철(이기광)이었을 때만 해도 그 주인공은 참신한 면이 있었지만 강기탄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그마저 사라졌다. 도도그룹의 연수 최종 미션이었던 실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강기탄이 증인인 오승덕을 법정으로 데려와 상황을 반전시키는 이야기는 너무 깊이 없이 다뤄져 마치 하나의 가상극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의 전개가 들어와도 시청자들이 몰입하기가 어려워진다.

 

반면 <동네변호사 조들호>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거대담론의 거창함을 피하고 동네변호사라는 소시민적 삶으로 내려옴으로써 오히려 공감대를 넓혔다. 물론 이 드라마도 법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실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사건들이 전하는 메시지들이 아버지의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라든가 악덕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게 된 세입자들의 입장 혹은 아버지로서의 조들호의 이야기 같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대중들은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은 거대담론보다는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소시민적인 삶의 이야기에 더 공감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시작일 뿐일 것이다. <대박>24부작이고 <몬스터>는 무려 50부작이다. 그러니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만일 <대박>이나 <몬스터>가 이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다면 자잘한 이야기 전개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개콘> 횃불 투게더, 소시민적 분노에 대한 일침

 

<개그콘서트>횃불 투게더는 꽤 논쟁적인 개그 코너가 아닐 수 없다. 눅눅한 치킨을 참을 수 없다며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르고 투쟁에 나서는 청년들. 치킨무를 공짜로 줄 수 없다는 주인아주머니에게 치킨에 빨간 양념을 찍어 마치 횃불을 들 듯 들고 일어나 치킨무를 달라!”고 왜치는 청년들.

 


'개그콘서트(사진출처:KIBS)'

투쟁이라는 풍경이 환기시키는 건 삶의 터전을 잃은 서민들의 절절함이다.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우리는 이 풍경을 꽤 오랫동안 봐왔다. 만일 그 투쟁에 나서는 서민들의 절절함을 피부로 그대로 느끼는 분들이라면 이러한 투쟁 자체가 어찌 보면 약간 희화화되어 있는 횃불 투게더가 자못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개그라는 한 장르를 너무 폄하하거나 혹은 투쟁이라는 현실적 사안의 무게감에 짓눌려 도무지 여유를 가질 수 없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개그는 어떤 소재든 가져올 수 있다. 중요한 건 횃불 투게더가 과연 그 절절한 투쟁의 현장을 희화화시킨 것인가 아니면 그 이면에 담겨진 무언가를 풍자한 것인가 하는 점일 게다.

 

횃불 투게더는 그래서 논쟁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는 의외로 중요한 풍자적인 면면들이 발견된다. 즉 이렇게 횃불이 개그의 소재로까지 올라온다는 건 그것이 얼마나 비일비재한 상황인가를 잘 말해주기도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너무나 쉽게 이 투쟁의 풍경들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일상적인 풍경의 하나처럼 지나치게 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너무 많은 것은 오히려 그 본질을 가린다. 즉 횃불의 일상화는 그 사안들의 중대함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것은 횃불을 드는 사람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이런 일들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늘 묻혀짐으로써 결코 바뀌지 않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포기 같은 것이 공기처럼 자리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공고한 시스템은 횃불의 일상화를 그런 식으로 포장해버린다.

 

건수만 나오면 횃불을 드는 횃불 투게더는 이 일상화의 풍경 속에 묻혀버린 우리네 소시민적 투쟁의 씁쓸함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분노의 정체가 저 거대한 시스템의 부조리에서 비롯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목도해온 우리네 서민들의 투쟁의 방향이 너무나 소소하고 사소한 일로 틀어져 있다는 이 코너의 메시지다.

 

세상에는 바싹한 치킨을 원하는 일보다, 치킨무를 더 많이 공짜로 얻어먹는 일보다 더 중대한 사안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중대한 사안들에는 결코 횃불을 들지 않는다. 그러니 이 엄한 일에 과도한 리액션을 취하는 횃불 투게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결코 폭소가 되지 못한다. 거기에는 웃픈 현실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왜 사소한 것에만 분노하게 된 것일까. 왜 그리고 저들은 저렇게 술집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걸까. 왜 저들을 힘겹게 만든 현실과 마주하지 않고, 음식점 아주머니 같은 똑같이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이들끼리 대결하고 있는 걸까. ‘횃불 투게더는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참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코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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