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힘 받은 ‘아스달 연대기’, 시즌제로 이어가야 하는 이유

 

tvN 드라마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 탄력이 붙었다. 이제 제대로 이야기가 쭉쭉 펼쳐지는 느낌이다. 이렇게 된 건 노예로 끌려갔던 은섬(송중기)이 그 곳에서 탈출해 아스달로 돌아오는 여정 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무혈 왕국을 꿈꾸던 타곤(장동건)이 아사론(이도경)의 계략에 의해 자신이 이그트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결국 피와 공포로 왕좌에 오르게 되며, 대제관에 오른 탄야(김지원)가 와한족을 구하기 위해 아스달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힘을 가지려하게 되면서다.

 

저마다의 목적과 욕망이 확실해진 인물들이 그 욕망을 막아서려는 세력들과 대결을 벌이고 그 문제들을 뛰어넘고 부딪치는 과정들이 한 회에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회당 80분이 넘는 분량이지만 그 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다. 특히 은섬이 ‘은혜를 갚는’ 모모족을 도움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얻고, 이제 아고족의 최대 시험인 ‘폭포의 심판’에서 천 년에 단 한 번 살아 돌아온 ‘이나이 신기’의 재림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과정은 흥미진진했다.

 

타곤의 계략에 의해 아고족이 서로 다른 씨족을 잡아 아스달에 노예로 파는 상황을 만들었지만 은섬은 이 상황을 간단히 뒤집을 수 있는 묘안을 제시했다. 아스달에 팔려간 다른 씨족의 노예를 구해주면 이 끝없는 노예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말을 아고족 묘씨족이 쉽게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결국 그들도 이것이 신의 뜻이라고 외친 은섬을 믿을 수 있는 근거가 필요했던 것. 그래서 폭포의 심판에 은섬을 던지지만, 마침 모모족의 샤바라(카라타 에리카)가 물속에서 그를 구해낸다.

 

이야기 전개에 있어 팽팽한 긴장감과 반전이 오가면서도 이 거대한 이야기가 결국 왕국을 만들려는 타곤의 욕망과, 그 왕국을 해체해 각 부족들이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게 하려는 은섬의 욕망이 부딪치는 구도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이야기들이 촘촘해졌고, 그 촘촘한 이야기들이 그려내려는 거대한 그림이 조금씩 그려져 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쉽게 느껴지는 건 이처럼 이제 겨우 탄력이 붙은 <아스달 연대기>가 이제 파트3의 2회만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단 2회 만에 지금 이렇게 펼쳐져 있는 <아스달 연대기>의 많은 이야기들이 제대로 정리될 수 있을 지가 걱정되는 상황이다. 인물 하나만으로도 꽤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게 된 <아스달 연대기>가 아닌가. 예를 들어 본격적인 이야기 자체가 아직 진행되지도 않은 채은(고보결)과 괴력의 눈별(안혜원)의 이야기만으로도 한 회로 부족할 지경이다.

 

만일 이대로 파트3로 끝을 맺으려 한다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열린 결말’이거나 ‘용두사미’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애초 ‘연대기’라는 제목을 달았을 때 기획했던 것처럼 파트를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 꽤 많은 제작비가 세트를 만들어내는데 들어갔을 법한 드라마다. 그렇게 만든 세트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도 또 이렇게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좀 더 촘촘하게 끌고 가 완결성 있는 작품으로 남기 위해서도 시즌은 계속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사진:tvN)

본격 대결 들어간 ‘아스달 연대기3’, 결과적으로 휴지기는 득

 

결과적으로 보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2를 끝내고 파트3로 이어지는 두 달 여간의 휴지기가 득이 됐다고 보인다. 워낙 큰 기대를 갖고 시작했지만 파트2까지 방영된 <아스달 연대기>는 적지 않은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까지 다뤄본 적이 없는 선사라는 시대의 낯설음, 그 낯설음을 채우기 위해 여러 콘텐츠들을 참조하다보니 생긴 의상이나 배경, 설정 등의 유사함, 무엇보다 새로운 세계를 창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만들어낸 과한 설명들이 그 이유들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파트2까지 진행되며 그 세계의 구조를 어느 정도 인지시킨 <아스달 연대기>는 파트3로 와서는 상황 설명이 아닌 본격적인 대결구도에 들어감으로써 훨씬 몰입감이 높아졌다. 신성한 방울을 찾아냄으로써 대제관의 자리에 오른 탄야(김지원)는 노예가 된 와한족을 구하고 돌담불로 끌려간 은섬(송중기)까지 구해내려 하고, 탄야로부터 아라문 해슬라의 재림으로 지목받아 아스달 연맹 최강자로 우뚝 선 타곤(장동건)은 태알하(김옥빈)와 함께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려 한다.

 

한편 돌담불에서 탈출에 성공한 은섬은 죽은 사트닉(조병규)의 유언에 따라 주비놀에 갔다가 모모족의 샤바라인 카리카(카라타 에리카)와 아들을 구함으로써 은혜를 갚는 모모족이 그를 따르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은섬은 와한족을 구해내고 아스달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부하들을 거느려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이처럼 <아스달 연대기> 파트3는 저마다의 인물들이 가진 욕망이 뚜렷하게 드러나며 욕망과 욕망이 부딪치며 생겨나는 대결구도가 선명해졌다. 피를 보지 않고 아스달을 장악하려던 타곤의 야망은 아사론(이도경)의 계략으로 그가 이그트라는 게 밝혀지면서 수포로 돌아가고 그는 결국 “모조리 죽여주겠다”며 폭주하기 시작했고, 은섬은 아스달로 돌아오는 여정에서 조금씩 자신의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모모족을 얻은 데 이어, 아고족의 지역으로 들어가게 된 은섬의 행보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왕국을 세우고 왕이 되려는 타곤과 그 왕국을 무너뜨리려는 은섬의 대결은 국가의 탄생과 자연 그대로의 삶 사이의 대결구도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어째서 어떤 종족은 국가가 되고 어떤 종족은 그래도 종족으로 남았는가에 대한 질문이 그 대결구도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훨씬 편안해진 건 이런 문화인류학적인 무게감과 또 단군신화 같은 우리네 선사에 대한 강박 같은 것들을 한 꺼풀 내려놓고 있어서다. 그런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대신 그 안에서 인물들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마치 판타지 게임 같은 대결 구도를 선명히 그려내고 있다.

 

사실 주제의식은 그 게임 같은 흥미진진한 대결구도를 그려나가면서 저절로 붙게 마련이다. 그러니 <아스달 연대기> 파트3가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드라마 자체의 재미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시청자들이 이 세계 깊숙이 들어올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보면 잠시 가졌던 휴지기는 <아스달 연대기>에는 어떤 국면 전환을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된 것으로 보인다.(사진:tvN)

 

‘아스달 연대기’ 파트1, 장동건과 맞서는 천부인의 정체

 

tvN 토일드라마 <아스달 연대기>가 6회로 파트1 ‘예언의 아이들’을 마무리했다. <아스달 연대기>는 총 18부작으로, 파트1 ‘예언의 아이들’, 파트2 ‘뒤집히는 하늘, 일어나는 땅’, 파트3 ‘아스, 그 모든 전설의 서곡’ 이렇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 파트1,2는 연이어 방영되고, 파트3는 9월에 방영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파트1을 끝낸 <아스달 연대기>의 성취는 어떨까. 만족스럽다고 얘기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것은 어떤 프레임으로 이 드라마를 바라보느냐에 따른 극과 극의 반응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7%(닐슨 코리아) 정도에 머물러 있는 시청률은 이런 상황을 잘 말해준다. 즉 최근 여건을 감안할 때 어떤 드라마가 6회에 7% 시청률이라면 실패했다 말하긴 어렵지만, <아스달 연대기>처럼 애초 기대감이 컸던 드라마로서 7%는 또 아쉬운 수치라고도 얘기할 수 있다. 반응도 마찬가지다. 시작 전부터 한껏 높았던 기대감은 시작과 동시에 양극단으로 나뉘었다.

 

<왕좌의 게임>과의 비교로 인해 지나친 ‘베끼기’가 아니냐는 얘기들이 쏟아졌고 실제로 의상과 미술은 그런 비판이 근거 없다 말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물론 <아스달 연대기>는 ‘나라의 탄생’을 문명 발달사의 문화인류학적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과는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다만 그 이야기가 드라마로서는 너무 낯설고, 특히 그 판타지적 상상력의 세계가 갖는 ‘탈국적성’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스달 연대기>가 아무런 성취나 재미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집중해서 이 세계에 몰입해 보기 시작하면 그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와한족을 구출해내기 위해 은섬(송중기)이 아스달에 들어가, 타곤(장동건)과 대결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그 밀고 당기는 구도가 충분히 흥미롭다.

 

예를 들어 타곤이 아버지인 산웅(김의성)을 죽이고 대신 그 자리에 있던 은섬에게 뒤집어씌운 후 아스달을 장악하려는 이야기나, 그 결투 과정에서 타곤이 이크트(사람과 뇌안탈의 혼혈)라는 걸 알게 된 은섬이 이를 이용해 와한족을 구해내려 머리를 쓰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요소들이다. 결국 아스달족들 앞에서 스스로 ‘신’이라 칭하고 또 그렇게 취급받는 타곤의 정체는, 그의 실체가 이그트라는 걸 쥐고 있는 은섬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들이 그냥 구성된 것이 아니라, 신화와 인류사를 재구성하고 있다는 건 더 흥미로운 부분들이다. 예를 들어 파트1 부제에 담긴 ‘예언의 아이들’은 “세상을 끝장 낼” 천부인을 뜻하는, 칼 은섬과 방울 탄야 그리고 거울을 의미하는 은섬의 쌍둥이 사야라는 게 드러나는데 이것은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이 환인에게 받았다고 하는 3개의 신표를 캐릭터화한 부분이다. 결국 파트1은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정복 전쟁과 권력 투쟁으로 상징되는 타곤이라는 인물과, 이를 견제하고 대결하는 천부인(칼, 방울, 거울로 상징되는 힘, 종교, 부 같은)을 상징하는 은섬, 탄야(김지원) 그리고 사야(송중기)의 대결구도를 담아냈다.

 

중요한 건 이 낯선 세계를 계속 들여다 볼만큼 몰입한 시청자들과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며 낯설게 바라보는 시청자들 사이의 괴리감이다. 파트1에 충분히 몰입해서 그 세계를 조금 익숙하게 받아들인 시청자들이라면 시즌2가 기대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시청자들이라면 그 낯선 세계에 발을 딛기가 더더욱 어려워진다.

 

<아스달 연대기>는 역사를 바탕으로 그려지는 사극과 달리 상상력을 더해 신화와 인류사를 드라마적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사적인 접근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더 중요하고, 그 이야기가 환기시키는 신화와 인류사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들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니 보통의 드라마를 봐왔던 시청자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낯설어도 그 이야기 자체를 즐길까 아니면 너무 낯선 이야기의 진입장벽을 느낄까. 파트2의 결과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사진:tvN)

‘아스달 연대기’가 담으려는 자연과 문명의 대결

 

tvN 주말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 와한족은 어떻게 아스달족과 같은 말을 쓸까. 대흑벽을 넘어와 이아르크 정복을 시작한 아스달족의 대칸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노예로 포획한 와한족이 자신들과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에 놀란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간파하지 못한 채, 다만 말을 쓴다면 더 높은 가격으로 팔릴 수 있을 것이란 사실만 생각한다.

 

그런데 와한족이 아스달족과 같은 말을 쓴다는 사실은 이미 이들이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문명의 전파가 있었다는 걸 의미한다. 대흑벽이 아스달과 이아리크를 자연적으로 격리시켜놓은 상황, 와한족의 씨족할머니인 늑대할머니가 바로 그 문명을 전파한 인물. 그는 언어를 주었지만 다만 아스달족이 걸어간 문명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 했다. ‘씨앗의 지혜를 배우되 기르지 말고, 동물과 이야기를 나누되 길들이지 말라’는 경고가 그것이다. 그건 아스달족이 만들어가는 문명이 가진 파괴적인 폭력성을 말하는 대목이다.

 

대흑벽이 아스달족에 의해 거대한 사다리로 연결되었다는 건 그래서 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아르크에 본격적인 문명의 파괴가 시작됐다는 걸 의미한다. 그 사다리를 보고 한없이 놀라던 은섬(송중기)은 아스달의 저잣거리에서 닭장 가득 닭들이 들어 있는 사실을 보고는 끔찍해한다. 그리고 그 일들이 동물들의 일만이 아니라 그 곳에 잡혀온 전쟁 노예들의 일이라는 사실과, 어른 아이 상관없이 착취된 그들의 노동력에 의해 그 거대한 대흑벽의 사다리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아르크가 자연이라면 아스달은 문명을 의미하고, 그래서 아스달의 노동력을 빼앗기 위한 정복전쟁으로 와한족이 겪는 고통은 문명의 침탈을 의미한다. 그러고 보면 이미 아스달의 계책에 의해 멸종되어 버린 뇌안탈이라는 종족은 이 문명 정복 전쟁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인간과 뇌안탈의 혼혈인 이그트로서의 은섬은 그래서 이 문명과 자연의 양자를 한 몸에 갖고 있는 존재다. 그는 아스달족처럼 말을 타려 하고, 곡식을 심으려 하지만 와한족의 어머니는 그걸 금기시한다. 하지만 그는 파괴적인 문명에 대한 욕망보다는 자유가 주어지는 자연의 삶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반면 아스달의 대칸부대 수장인 타곤(장동건)은 문명과 야망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는 이아리크 정복전쟁의 선봉장이고, 아스달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인물. 하지만 그의 섬뜩한 야망의 크기는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산웅마저 두렵게 만든다. 그래서 산웅은 심지어 타곤을 제거하려하고, 타곤은 그런 사실을 알고 산웅과 대립한다. 문명의 끔찍함은 아스달에서는 이처럼 가족 간에도 서로를 이용하려는 모습으로 보여진다.

 

결국 <아스달 연대기>가 은섬과 타곤이라는 인물의 대립을 통해 보여주려는 건 자연적인 삶을 침탈해 들어오는 문명과의 마찰음이다. 소유 개념이 생긴 저들은 정복전쟁을 통해 자연적 삶을 살아가던 이들을 노예로 삼고, 이들을 노동력으로 확보해 점점 문명을 키워나간다. <아스달 연대기>는 문화인류학이 연구해왔던 어째서 누군가는 국가로 나아갔고 누군가는 소수 종족으로 머물렀는가를 은섬과 타곤의 대결구도를 통해 담아내려 하고 있다.

 

물론 판타지적인 설정들이 등장하고, 역사 이전의 상상으로 채워진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지만, <아스달 연대기>가 지금의 시청자들에게 전하려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 태곳적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일들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문명국들이라고 하는 이들이 실상 그 힘으로 파괴하고 착취하고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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