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후예>라는 상황극, 우리의 선택은?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배경은 우르크라는 곳이다. 우르크는 지구 어디에도 없는 곳, 가상공간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가상공간이라는 건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역시 하나의 상황극이라는 걸 말해준다. 막연히 국제분쟁지구라고 얘기되는 곳이고 그래서 우리나라 군인이 파견된 곳이다. 동시에 한 병원의 팀이 의료봉사로 파견된 곳이기도 하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이러한 상황극은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 상상을 통해서라도 했을 법한 것들이다. 만일 이런 곳이 있다면 거기서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꿈꾸는가. 아마도 여성이라면 멜로를 꿈꿀 것이다. 하지만 남성이라면 총알이 날아다니고 때로는 지뢰가 터지고 벼랑 끝에 간신히 매달린 차에서 여자를 구하고 지진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창궐한 전염병과 싸우고 나쁜 놈들을 물리치는 블록버스터를 꿈꿀 지도 모른다. 우르크는 이 남성과 여성의 판타지를 모두 그려낼 수 있는 최적의 가상공간이다. 멜로를 꿈꾸지만 블록버스터가 되는 최적지.

 

그런데 이 가상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극에 대해 우리는 많은 현실적인 일들을 떠올린다. 해외파병 문제가 가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을 얘기하고, 심지어 베트남의 한 기자가 이 드라마의 베트남 방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공감한다. 지진과 전염병 같은 재난 상황들이 우르크라는 지역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장면들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겪은 세월호 참사부터 메르스 공포까지를 떠올렸을 지도 모른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심지어 이 드라마는 현실에서 훌쩍 벗어난 우르크라는 공간에서의 가상 스토리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극은 그 상황이 가상이라고 해도 거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한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 질문을 던지는 면이 있다. 결국 모든 상황극들은 그런 점에서는 현실적이다.

 

<태양의 후예>를 이런 상황극과 거기서의 선택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바라보면 왜 우리가 유시진(송중기)이라는 이상화된 인물에 빠져 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는 군인의 이미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이미지와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같은 군인에게서 막연히 피어나는 뉘앙스 때문만은 아니다. 군부독재를 겪어내고 민주화 과정을 통과한 세대라면 군인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일 게다.

 

유시진은 이러한 막연한 군인의 이미지와 정반대에 서 있다. 그는 상명하복의 계급문화 속에 있긴 하지만 강모연(송혜교)이라는 여자 앞에서는 무시무시한 상황 속에서조차 유머를 날릴 줄 아는 여유를 가진 인물이다. 국가의 명령을 받는 군인이지만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특히 사랑하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서는 명령도 어기는 인물이다. 강력한 슈퍼히어로지만 약자들에게는 그토록 부드럽고 유머러스하며 자애롭기까지 한 인물.

 

유시진 신드롬이 벌어지고 있는 건 거꾸로 말하면 우리에게 이런 리더가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재난이 벌어져도 책임지려는 리더는 없고 심지어 다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진상을 끝까지 파헤치는 리더십은 더더욱 없다. 전쟁의 위기 상황들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무고한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이를 타개하려는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선거철만 되면 모두가 국민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말하지만 선거가 끝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국민은 없고 당리당략만이 가득해진다.

 

어떤 면으로 보면 우리나라라는 공간이 참으로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알고 보면 저 드라마 속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상황들은 우리에게도 벌어졌던 일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 때마다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했나. 물론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리더가 있을 리 없고 그런 이상적인 선택들을 하는 경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몇 번에 하나라도 비슷한 선택들이 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이토록 빠져 있는 유시진 신드롬의 이면은 그래서 결코 달달할 수만은 없다

작정하고 센 <태후>의 소재들, 이러니 안 될 수가 있나

 

전쟁과 재난에 이어서 이번엔 전염병이다. 아주 작정하고 센 소재들을 총동원 하겠다 마음먹은 기색이 역력하다. 이러니 시청률이 안 오를 수가 없다.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9회에 30%를 훌쩍 넘겨버리더니 거기에 멈추지 않겠다는 듯 이제 31,6%(닐슨 코리아)로 순항중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멜로는 약하다? 극성이 약한 건 사실이다. 생각해보라. 멜로의 갈등들을 통해 인물들이 겪게되는 결과란 고작 사랑이 이루어지거나 헤어지거나가 아닌가. 물론 그 사랑이 죽음을 담보로하기도 하지만. 사극 같은 장르가 극성이 강한 건, 늘 죽음을 옆에 달고 다녀서다. 알다시피 전쟁, 재난, 전염병 같은 모든 소재가 활용되는 장르가 바로 사극이다.

 

그런데 <태양의 후예>는 현대극이면서도 이 모든 소재들을 다 사용하고 있다. 이게 가능해진 건 우르크라는 가상의 지역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르크가 아닌 어떤 현실 공간이었다면 이처럼 다양한 소재들이 한꺼번에 벌어지는 공간으로 활용하기가 어려웠을 게다. 하지만 우르크는 저 사극이 시간의 거리를 통해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의 공간을 확보하는 것처럼, 막연한 공간의 거리를 만들어 전쟁이든 재난이든 전염병이든 발생시킨다.

 

물론 그 공간에는 유시진(송중기)이나 강모연(송혜교), 서대영(진구), 윤명주(김지원) 같은 현실감을 부여하는 인물들이 들어간다. 그들이 군인 혹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라는 건 <태양의 후예>가 하나의 가상극 같은 뉘앙스를 갖게 만든다. 마치 <헝거게임>처럼 이들은 가상의 공간에서 갖가지 벌어지는 사건들을 마주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물론 그 사건들은 모두 목숨을 담보로 한다는 저에서 게임이지만 살벌하다.

 

멜로드라마는 어디든 지뢰가 깔려 있고 누구든 총을 꺼내 들며 때론 지진이 일어나 건물을 통째로 삼켜버리고 게다가 치명적인 전염병에까지 노출되어 있는 이 살벌한 공간 위에서 피어난다. 강모연이 유시진이라는 위험한 남자에게 우리는 서로 맞지 않는다며 이별을 통보하지만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 건 그녀가 우르크라는 뭐든 가능한 가상공간으로 들어오면서부터다. 그 공간은 위험하지만 그만큼 달콤한 유시진이라는 로맨스의 인물이 있는 곳이다.

 

위험과 로맨스. 상극인 것 같지만 이만큼 잘 어울리는 조합도 없다. <로맨싱 스톤>이나 <크로커다일 던디> 같은 전통적인 로맨스 영화들을 보라. 위험한 정글이나 늪지대에서 모험을 펼치는 위험한 남자 주인공과 도시에서만 살아와 그런 곳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 주인공의 로맨스는 더 달콤하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안전한 도시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상상으로 꿈꾸는 거친 로맨스일 것이다.

 

<태양의 후예>의 우르크는 그래서 모든 위험한 상황들이 다 벌어지는 곳이지만 실제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여성들이 꿈꾸는 로맨스의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그 곳은 마치 현실에서는 유시진이라는 인물을 밀어냈던 강모연이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가상공간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이런 장르적 설정들은 이미 많은 로맨스물에서 무수히 활용되어 왔던 장치들이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가 절묘하게 여겨지는 건 여기에 군인이라는 어찌 보면 우리식의 클리셰들이 가능한 인물들을 집어넣어 우리의 색깔로 채색했다는 점이다. 가상공간에 마치 강모연의 상상에 의해서 창조된 듯한 유시진 같은 이상화된 군인들. 이를 현실과 비교해 리얼리티 운운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로맨스물의 판타지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양의 후예>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늘 현실 공간에만 붙잡혀 그 상상의 한계를 스스로 지우고 있던 드라마를 우르크라는 가상공간을 세우고 그 안을 뭐든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로 채워 넣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하고 또 그 사랑을 누군가 반대하고 그래서 그걸 넘어서기 위해 안타까운 안간힘을 벌이는 식의 현실의 멜로가 식상하게 느껴진 건 로맨스물 특유의 판타지가 거기에서는 더 이상 발견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태양의 후예>는 적어도 그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우르크라는 공간은 그래서 김은숙 작가가 상상으로 구현해낸 멜로의 실험실 같은 느낌마저 준다. 뭐든 가능한 로맨스의 공간. 이러니 안 될 수가 있나

<태후>, 송중기는 군인이 아니라 슈퍼히어로다

 

세상에 이런 군인이 있을까. 명령을 수행하는데 있어 사사로움 따위는 없다. 하지만 소신은 분명하다.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아랍의 무바라크 의장이 쓰러지자 자칫 잘못하면 국제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며 포기하라는 상관의 명령에도 군인 유시진(송중기)은 의사인 강모연(송혜교)에게 그를 살릴 수 있냐고 묻는다. 군인이라면 무조건 명령에 복종해야 하지만, 그는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소신을 따른다. 이것이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 유시진이라는 군인의 면면이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은 이중적이다. 분단국가로 살아오면서 늘 분쟁과 나아가 전쟁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군인은 우리가 마음 한 구석 기댈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보호하는 존재로서의 군인은 그 직업적 특성 자체가 파괴적이고 위협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오랜 군부 정권의 폭력을 경험해온 우리로서는 그 상명하복의 권력 체계가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그것은 심지어 트라우마로 남아있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의 남자주인공이 군인이라는 사실은 그래서 우리에게 당혹감을 준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라는 직업만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실제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부여받고 분쟁지구에서 위험천만한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이 인물이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일상에서 군인이라는 직업에 여성들이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군부 정권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청춘들이라면 모를까(실제로 군인이라는 직업에 대한 젊은 여성들의 선호는 높다고 한다) 그 힘겨운 시절을 겪어낸 세대라면 고개가 갸웃해질 것이다.

 

하지만 심지어 군부 정권 시절과 그것이 가족 내에서도 가부장적 체계를 공고히 하게 했던 시대의 공기를 겪어낸 중년여성들조차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이라는 인물에 푹 빠져든다. 이것은 남성들도 마찬가지다. 조금 손발이 오글거리기는 하지만 마치 스파이물의 주인공처럼 위험지구를 넘나들고, 노인, 아이, 여자 같은 약자들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이 인물에 빙의된다. 무엇보다 여성 앞에서는 끝없이 농담을 던질 정도로 부드럽지만 임무에 들어가면 액션 영화의 히어로처럼 맹활약하는 그 모습이 일상이 시시한 소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판타지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 군인이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에서 하는 일은 적과 싸우는 일이 아니다. 주민들을 보호하고 전쟁의 후유증으로 깔려 있는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한다. 전력공급을 위해 발전소 시설을 건설하는 민간업체의 보호임무도 맡고 있다. 그리고 유시진은 이곳에서 과거에는 동료였지만 지금은 무기거래상이 된 아구스(데이비드 맥기니스)와 대립하게 된다. 또한 이곳에 벌어진 지진 때문에 무너진 건물 속에서 생존자를 구출하는 작전을 수행한다.

 

물론 이렇게 판타지화되어 있는 유시진의 면면에 의해 가려지는 해외 파병 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을 것이다. <태양의 후예>국뽕이라는 해석은 과도한 면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고 있는 해외 파병의 실체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 없다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를 국뽕이라고 쉽게 단정해버리면 남는 문제가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에 푹 빠져 일주일의 피곤을 날리고 있는 그 무수한 시청자들은 그럼 모두가 국뽕에 빠져버린 중독자들인가.

 

만일 <태양의 후예>가 군인 판타지를 앞세워 국가를 홍보하고 있는 이른바 완성도 높게 찍은 배달의 기수같은 드라마라면 과연 시청자들이 지금처럼 반응할 수 있을까. 과연 <태양의 후예>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을 정당화하고 있을까. 해외파병 문제를 덮어 버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까. 아니 의도는 없더라도 실제로 이 드라마 한 편 때문에 해외파병 문제가 덮어지기는 하는 걸까.

 

<태양의 후예>는 일단 군인 판타지를 그리고 있지 않다. 유시진이라는 군인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인물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물론 날라 다니고 한다는 의미의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소신을 끝까지 지키고 그것을 생각만이 아니라 실행하는 인물로서의 슈퍼히어로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지만 붕괴된 건물 속으로 뛰어들고, ‘만약자신이 죽을 것을 대비해 부상자의 상태를 팔목에 꼼꼼히 적어놓는 건 단지 그런 임무를 부여받은 군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유시진은 군인이라는 위치 때문에,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 인물에 가깝다. 국가는 그를 부르지만 그는 자꾸만 자신의 연인의 안부와 안전이 걱정된다.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 한 편을 보고 싶지만 갑자기 부름을 받아 전장으로 뛰어가야 하는 그다. 재난지구에서조차 사사로운 욕심을 채우려는 진영수(조재윤) 같은 인물이 그걸 가로막는 유시진에게 국민의 세금운운하며 몰아 부칠 때, 그는 국가를 위한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국가를 얘기한다.

 

<태양의 후예>가 제아무리 유시진의 판타지에 빠져들게 만들어도, 해외파병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우리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군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을 가지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유시진 판타지가 군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희구하는 이상화된 슈퍼히어로(휴머니즘 같은 가치를 수행하는)이기 때문에 생겨나고 있어서다. 유시진은 그저 군인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상화된 존재다

<태양의 후예> 판타지, 대중의 무엇을 저격했을까

 

하이힐과 스커트. 지진이 발생해 초토화된 재난 지역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옷이다. 그만큼 경황없이 졸지에 벌어진 재난상황을 잘 말해준다. 하지만 그 불편한 옷을 입고 재난 지역의 부상자들을 치료하러 동분서주하는 강모연(송혜교)의 모습은 그래서 더더욱 절절해진다. 하이힐의 굽을 손수 떼어내고 재난 현장을 뛰어다니는 그녀의 발은 온통 상처투성이로 빨갛게 물들고, 그녀에게 치료받은 한 외국인이 갑자기 그녀를 붙잡더니 자신이 신던 신발을 내민다.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KBS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우르크에 발생한 지진으로 재난 지역에서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는 강모연의 이 장면은 휴머니즘의 뭉클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태양의 후예>의 이야기는 거기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다. 지진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안 유시진(송중기)은 휴가를 반납하고 곧바로 우르크로 날아갈 만큼 마음이 급하다. 거기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지만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강모연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르크에 도착한 유시진은 군인답게 재난 지역에서의 임무가 우선이다. “옆에 있어주지 못합니다라고 선을 긋지만 그가 먼저 하는 일은 강모연의 그 신발 끈을 단단히 묶어주는 일이다. “다치지 말라는 그의 한 마디는 그 어떤 사랑고백보다 더 절절하게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아마도 강모연에 몰입하며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 무뚝뚝하게 툭 던지는 유시진의 말 한 마디에, 매순간이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위험하게 느껴지는 그를 밀어내던 강모연의 마음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다. 6회 만에 28.5%(닐슨 코리아)라는 놀라운 시청률을 기록했다. 시청률만이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태양의 후예>를 얘기하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면 <태양의 후예>OST가 흐른다. 송중기와 송혜교는 그 신드롬의 중심에 섰다. 미소년의 얼굴과 유머에 상남자의 몸과 행동을 보여주는 송중기가 여성들의 마음을 심쿵하게 하는 진원지라면 송혜교는 여성들이라면 빙의되고 싶은 이 놀라운 로맨스의 주인공이다.

 

<태양의 후예>의 로맨스는 지금껏 우리가 봐왔던 멜로드라마의 그것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어마무시하다. 갑자기 호출을 받은 유시진이 강모연과 이별하는 곳은 그저 그런 일상적인 공간이나 방식이 아니다. 병원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떠나가는 유시진을 보내는 강모연은 이미 그 비현실적이지만 헤어 나올 수 없는 판타지 로맨스의 운명적인 여주인공이 되리라는 걸 일찌감치 실감했을 게다.

 

우르크라는 가상의 분쟁지구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하고, 총알이 날아다니고 지뢰가 깔려 있지만 동시에 비현실적으로 파란 바다 위를 유시진과 함께 보트를 타고 달리는 강모연의 로맨스. 위험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태양의 후예> 특유의 로맨스 방식이다. 자동차가 벼랑 끝에 매달려 이제 추락하기 일보 직전에 유시진이 나타나 차를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강모연을 구해내는 장면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하지만 그 비현실은 이미 조금씩 빠져들어 이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태양의 후예>의 판타지 속에서 선선히 받아들여진다.

 

<태양의 후예>가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대중들의 마음을 저격한 건 유시진 같은 강력하고도 부드러운 이상화된 존재에 대한 판타지 때문이다. 군인으로서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갈 정도로 거친 삶을 살지만 그것이 대단한 이상이나 이념 때문이 아니라 그저 노인과 아이와 여자는 지켜야한다는 자신의 소신 때문이라고 말하는 존재. 노인과 아이와 여자들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지독한 현실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만한 판타지가 있을까.

 

강모연은 그래서 우리들의 이 판타지를 대리해주는 존재로서 <태양의 후예>의 중심에 선다. 시청자들이 그러한 것처럼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은 그것이 커질수록 강렬한 사랑으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우르크라는 분쟁지구이자 재난지구가 된 공간을 통해 조금씩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유시진이 위험하게 살아가는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포함한 세상 누구도 언제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을 직시하고 부딪치는 사람과 피하려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워낙 강렬한 유시진의 판타지가 있기 때문에 송중기라는 배우에게 집중되는 면이 있지만, 또한 강모연이라는 대중들의 판타지를 대리해주는 존재를 연기하는 송혜교에 대한 칭찬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로맨스의 중심에서 그것을 현실적으로까지 느끼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다. 모든 이들이 빙의되고픈 존재가 되어준다는 것. 이만큼 어렵지만 빛나는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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