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송혜교, 박보검이 웃을 때마다 가슴이 아린 건

“부모잖아. 엄마고 딸이잖아.”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차수현(송혜교)은 그녀를 찾아와 영부인이 되고 싶다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며 다짜고짜 “쥐죽은 듯 살라”고 말하는 진미옥(남기애)에게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런 차수현에게 진미옥은 차갑게 대꾸한다. “관계가 중요해? 난 가치가 중요해. 쓸모 있는 자식으로 살아.”

이 말은 차수현의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든다. 관계보다 가치. 그건 부모자식 간의 관계로 모든 것이 허용되고 용서되기도 하는 보통의 관계와는 너무나 다른 차수현과 엄마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부모 자식이라도 가치가 없으면 필요 없다는 말이고, ‘쓸모’가 있어야 자식도 자식이라는 말이다. 차수현은 차 안에서 그 말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쉰다. 

좀체 웃지 않고 무표정을 가장하고 있는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사실 애써 눈물을 참고 있는 얼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어두운 얼굴 속에 담긴 속내를 읽어내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김진혁(박보검)이다. 그는 그 얼굴을 보고는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차수현을 위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내세요’라고 적으려던 김진혁은 대신 ‘거봐요. 모델보다 더 예쁠 거라고 했잖아요. 봄입니다.’라고 보낸다. 그 문자 메시지 하나에 차수현은 살짝 미소를 짓는다.

전에 김진혁이 생일선물로 준 립스틱을 왜 바르지 않냐고 물었을 때 차수현은 봄에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자 김진혁은 이렇게 말한다. “릴케라는 시인이요. 쌀쌀한 도시에서도 서로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사람들만이 봄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했거든요.” 그 말을 듣고 차수현이 바르고 나온 립스틱 이야기로 김진혁은 그의 겨울 같은 얼굴에 봄을 피어나게 한다. 

차수현은 관계보다 가치가 중요하다는 엄마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쌀쌀한 겨울 같은 세상에 홀로 던져져 있다. 정치인 아버지 때문에 자신의 삶을 살아온 적이 없고, 팔려가듯 결혼을 했으며 결국 이혼했지만 여전히 아버지의 정치 생명을 쥐고 흔드는 재벌가 시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관계보다 가치가 중요한 엄마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재벌가 시댁에 딸을 다시 팔려고 한다. 

호텔 체인의 대표로서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진 게 하나도 없는 인물이 바로 차수현이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해 살아가는 삶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제 아무리 많이 갖고 있으면 뭐하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조차 할 수 없는 처지라면. 차수현의 얼굴이 항상 무표정하지만, 그 무표정 속에서 마치 울기 직전까지 참고 있는 아이 같은 얼굴을 발견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회사 로비에서 차수현이 만나는 김진혁을 스캔들의 주인공처럼 몰아세우며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김진혁이 나서서 두 사람의 관계를 공개했을 때 차수현의 얼굴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복잡한 모습을 보여준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이지만, 입은 이렇게 나서준 김진혁에 대한 기쁨으로 미소가 피어난다. 그 장면은 엄마와는 달리 가치보다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차수현과 김진혁의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런가. 사람을 가진 것과 태생과 스펙으로 구분해 가치를 매기고, 겉보기에 그 가치가 등가로 매겨지는 사람과의 만남이 아니라면 그것을 부적절한 관계로 매도하기 마련이다. 이제 썸을 타기로 한 차수현과 김진혁은 그런 차가운 겨울의 시선들 속에 서 있다. 관계가 공개적으로 알려진 후 회사에서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뚤어져 있고, 차수현의 전 시어머니인 김화진(차화연)은 이 관계를 저들이 생각하듯 대표의 가치를 등에 업고 이용하려는 젊은 사원의 다른 의도가 있는 행동으로 치부한다. 

차수현은 본래부터 웃을 일이 없는 세상 속에 있었고, 김화진으로부터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대우를 받은 김진혁은 차수현이 살아왔던 그 세상을 실감하게 된다. 두 사람은 결코 웃을 일이 없는 이 냉혹하고 쌀쌀한 겨울의 세상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만의 시선이 마주칠 때는 미소를 띠운다. 어찌 보면 숨 막힐 듯한 현실 속에서 한숨으로 버텨왔던 차수현은 겨우 김진혁 앞에서 잠시라도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들이 웃을 때는 가슴이 아려온다. 

내부순환도로 교각에 붙여진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작품을 보며 그 작품의 모티브가 된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라는 시구를 김진혁은 조용히 읊조린다.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그러자 화답하듯 차수현이 시구의 뒷부분을 이어준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 시는 모든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가치 따위가 아니라 모든 관계들이. 그래서 그 시구 절 앞에서 다시 만나 썸 타기로 한 두 사람은 겨울의 현실 속에서도 아프지만 기쁜 봄날의 미소를 피워낸다. 

봄은 시간이 지난다고 그저 오는 게 아니고 또 기다려서 맞는 게 아니라고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봄이 오면 화사한 색감의 립스틱을 바르겠다던 차수현은 김진혁을 통해 화사한 립스틱을 바르는 일로 봄이 올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의 진정한 관계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스스로 선택한 삶과 거기서 만나게 되는 진정한 관계들. 그 속에서만이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겨울 같은 우리네 삶을 봄으로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니.(사진:tvN)

‘남자친구’ 박보검의 순수직구는 어째서 뭉클하게 다가올까

“오늘부터 1일이에요.” 김진혁(박보검)의 그 한 마디는 순간 차수현(송혜교)을 살짝 놀라게 만든다. 하지만 김진혁은 그 말이 차수현과의 1일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 사온 감자떡 이야기라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다. “감자떡이랑 저랑 1일이라고요.” 쿠바에서 자신이 차수현에게 들려준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자 그것이 차수현이 신청한 곡이라고 직감한 김진혁은 그 밤 골뱅이집 형의 트럭을 빌려 밤새 속초로 달려간다. “고마운데 여기 왜 왔어요”라고 묻는 차수현에게 김진혁은 말한다. 

“음악이 너무 좋아서 잠이 깼어요. 라디오에서 우리 같이 들었던 음악이 나오더라고요. 있잖아요. 대표님 우리는 무슨 사이가 맞을까요? 저도 오는 내내 생각해봤어요. 회사 대표님에게 이렇게 할 일이냐. 나름 책임감 있는 장남으로 자랐고 군대도 갔다 와서 철부지는 아닌데 왜 달려갈까. 우리 사이가 좀 애매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자 차수현은 그 ‘우리’라는 표현이 못내 걸린다. 굉장히 가까운 사이임을 드러내는 단어가 아닌가. 그래서 그 표현을 지적하려 하자 김진혁의 거침없는 한 마디가 흘러나온다. “보고 싶어서 왔어요. 보고 싶어서. 그래서 왔어요.”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에서 김진혁과 차수현이 나누는 대화를 듣다보면 단어 하나하나에 얼마나 이들이 신경 쓰고 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저 툭툭 내뱉는 말이 아니라, 단어 하나에도 저마다의 배려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냥 “여기 왜 왔어요?”하고 묻는 게 아니라 “고마운데 여기 왜 왔어요?”라고 묻는 차수현의 질문은 그 감정의 뉘앙스가 너무나 다르다. “오늘부터 1일이에요”라고 감자떡을 빌어 농담처럼 전하는 말 속에는 착한 사회 초년생 순둥이로만 보였던 김진혁이 의외로 할 말은 다 하고 때론 말 몇 마디로 남다른 문학적 정감을 더해주는 표현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도 있는 당당한 연애술사(?)라는 걸 드러낸다.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매개하듯 나태주 시인의 ‘그리움’이라는 시가 담겨지는 건 두 사람이 이 관계에서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의 섬세함이 문학적인 지점에 닿아있다는 걸 말해준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사람의 진면목은 그 외적인 조건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다. 사실 한 회사의 대표인 차수현이 실상은 이혼을 했어도 여전히 재벌그룹 시댁의 손아귀에서 아무 것도 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인물이라는 걸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찌 알 수 있을까.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 아버지를 둔 탓에 어려서부터 사적인 삶을 거의 살지 못한 차수현은 결혼도 그렇게 정략적으로 하게 됐고 이혼도 했지만 그 아버지를 볼모로 삼는 시댁 때문에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지 못한다. 

이건 쿠바의 어느 거리에서 길거리 곳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던 김진혁이라는 청년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청과물집 아들로 건실하게 살아왔고, 이제 겨우 차수현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 신출내기지만 그는 어딘지 모든 일에 당당하고 때론 대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외적인 조건들을 뛰어넘는 면면이 드러나는 건 다름 아닌 그들이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선택해서 꺼내놓는 말을 통해서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이 말에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건 장미진 비서(곽선영)가 차수현이 걱정되어 김진혁을 찾아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드러난다. ‘장난 같은 호기심’이라는 장비서의 표현에 김진혁은 가만히 생각하다 그에게 달려가 말한다. “장난 같은 호기심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마음에 들여놓는다는 거 아주 잠깐이더라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진혁은 “좋아하게 됐다”는 말을 “보고 싶어서 왔어요”라고 말하고, “사람이 사람을 마음에 들여놓는다”는 표현으로 말한다. 그 조심스럽지만 정제된 말 표현 속에 이 사람이 가진 섬세한 감수성과 남다른 배려가 묻어난다. 

사람의 진면목은 따로 있고 그건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 의해 드러난다는 건 그래서 어쩌면 이 멜로드라마가 하려는 진짜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른바 ‘공적인 삶’이라는 건 그 외적인 것에 맞춰 보여주는 가식들이다. 이 드라마에서 쌍벽을 이루는 악역을 자처한 그 인물들은 바로 차수현의 어머니 진미옥(남기애)과 그의 전남편 정우석(장승조)의 어머니 김화진(차화연)이다. 그들은 겉면으로 드러나는 조건들로 사람을 판단하고 함부로 재단하는 이들이다. 

그들의 가식이 갖고 있는 폭력적인 면면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아직도 차수현을 신경 쓰는 정우석이 다른 여자가 있다며 이혼을 한 것이 어쩌면 차수현을 그 지옥 같은 가식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려는 선택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우석 역시 우리가 흔히 상투적으로 떠올리는 그런 재벌2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을 차수현을 그가 일부러 놓아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이런 가식의 세계로 옭아매는 진미옥이나 김화진 같은 인물에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쾌하게 대결하는 인물이 다름 아닌 김진혁이다. 차수현으로부터 이 호텔사업을 빼앗으려는 야망을 갖고 있는 최진철(박성근) 이사가 일부러 스캔들을 만들고 그걸 해명하라고 종용할 때, 해맑은 얼굴로 자신이 그 스캔들의 주인공임을 드러내며 “저 돈 좀 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살 테니까 저랑 라면 먹으러 가시죠”하고 묻는 대목은 이 대결구도에 균열을 만들어낸다. 공적이고 가식적인 세계에서 수군대던 스캔들은 그렇게 그들의 순수한 관계를 드러내는 순간 무색해진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뭐가 잘못된단 말인가 하고 김진혁은 그 해맑은 얼굴로 묻고 있는 중이다. 

‘그냥 당신 인생을 살아요. 거기서 더 다가오지 말아요.’라고 생각하는 차수현에게 김진혁은 ‘나는 선택했습니다. 당신이 혼자 서 있는 그 세상으로 나서기로 결정했습니다. 나의 이 감정이 뭐냐고 묻지 마세요. 아직은 나도 모릅니다. 지금의 나는 당신을 외롭게 두지 않겠다는 것. 그것입니다.’라고 속으로 다짐한다. 그 순간 공적인 삶이라는 허울로 가식의 세계 속에 홀로 서 있던 차수현에게 진짜 순수한 마음이라는 것이 닿는다. 그건 차수현에게 눈시울이 붉어지지만 미소가 피어나는 일이다. 하지 말라고 해도 하고 싶어지는.(사진:tvN)

냉정하게 바라본 박유천과 이진욱의 문제

 

배우는 일종의 가면을 쓴 존재다. 대중들은 그것이 진면목이길 기대하지만 사실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판타지 속의 캐릭터를 연기해내는 것이 배우들의 역할이다. 물론 가면을 쓴다고 해서 가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기론에서 가면은 남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꺼내놓는 일이다. 그러니 가면에도 배우 자신의 많은 모습 중 하나가 비춰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래야 좋은 배우이기도 하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사진출처:MBC)'

최근 벌어진 박유천과 이진욱의 스캔들은 배우로서 사생활 노출이 어떤 의미인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이 배우들 누구도 자신들의 사생활이 노출되는 건 원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폭행이라는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며 파헤쳐지기 시작한 사생활은 그들의 배우로서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법적으로는 두 사람 다 무고를 당한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그 과정에서 노출된 사생활들은 그간 그들이 쌓아놓은 배우로서의 이미지를 거의 무너뜨렸다.

 

이진욱이 말한 것처럼 무고는 정말 큰 죄.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법적으로 죄가 없는 이진욱이나 박유천에 대한 대중들의 감정은 결코 좋지 않다. 그것은 법적 공방 도중 흘러나온 원나잇이라는 표현이나 화장실같은 단어들이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상식적인 관계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성인이고 미혼이니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성관계를 갖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고루한 일이다. 그리고 이른바 문화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에 대한 완고한 자세를 요구하는 사회가 그리 바람직하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배우라는 직업과 이런 사생활 노출로 인해 생겨난 이미지들이 부딪칠 때다.

 

배우의 사생활 노출은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배우라는 직업에는 그다지 좋을 수가 없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이미지에 선입견을 만들기 때문이다. 배우는 여러 가면을 써야 하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대중들에게는 더 쉽게 몰입감을 제공할 수 있기 마련이다. 이것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

 

결국 무고임이 드러났고 법적으로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일이 문제가 되어 이미지에 직격탄을 입은 박유천과 이진욱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적인 입장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것이 사적인 일이라 하더라도 만일 드러났을 때 그 반향이 배우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는 미리 조심했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어떤 면에서 보면 사생활 문제가 야기하는 윤리적인 문제보다 대중들이 더 불편하게 생각하는 건 배우로서 보였던 이미지와의 괴리일 것이다. 그리고 그 괴리는 향후 이들의 연기에 대중들이 더 이상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억울해할 일이라기보다는 최소한 미안해야 할 일이다.

 

박유천과 이진욱 모두 남겨진 문제는 명백하다. 그것은 배우라는 직업적인 문제를 어떻게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미 죄는 벗어났지만 배우의 가면 뒤에 보이지 말아야할 이미지가 노출되었다. 냉정하게 얘기하면 이제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지금 현재의 이미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거기서부터 다시 배우 이미지를 쌓아나가야 그나마 연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미지의 문제는 이미지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겼다면 그걸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무고가 인정됐다고 해서 떳떳하다거나 당당하다는 식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 건 별반 소용이 없다. 이미지(든 실체든)를 부정하기보다는 받아들이고 거기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굿와이프>의 낯선 인물들, 과연 미드 리메이크 때문일까

 

섹스 스캔들로 인해 남편의 불륜 장면이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그 아내는 어떤 감정을 갖게 될까. 만일 우리네 드라마의 상투적인 전개였다면 그 이후의 장면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남편과의 관계는 끝장을 향해 달려갈 것이고, 만일 내연녀에게 전화라도 온다면 욕지거리 정도는 기본일 게다. 제아무리 좋은 아내라고 해도 이혼을 염두에 두는 건 당연지사일 지도.

 

'굿와이프(사진출처:tvN)'

하지만 tvN <굿와이프>는 다르다. 섹스 스캔들에 휘말린 남편 이태준(유지태)에게 김혜경(전도연)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갖고 있지만 이를 외부에는 전혀 표출하지 않는다. 그 스캔들을 설명하는 공식석상으로 나가는 첫 장면부터 김혜경은 이태준의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을 책임지기 위해 변호사 일을 다시 시작한다. 그러면서도 가끔 남편을 면회 가고 감정은 있지만 그래도 대화를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그녀가 과거 젊었던 시절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 서중원(윤계상)의 키스를 받았을 때,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그를 밀어낸다. 그리고 사무실을 빠져나오다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다시 서중원의 사무실로 올라간다. 그가 자리에 없는 걸 알고 아쉬운 듯 돌아선 그녀는 집으로 오자 갑자기 남편의 품으로 파고든다.

 

그 속내를 대사로 드러낸 부분이 없기 때문에 이 장면은 여러 가지 해석들을 가능하게 한다. 그건 그녀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다가 서중원에 의해 풀린 욕정일 수도 있고, 그런 욕정 때문에 갖게 된 남편에 대한 죄책감일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은 남편에 대한 복수일 수도 있다. 너도 하듯이 나도 불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런 행위로 표현했을 수 있다는 것.

 

그러고 보면 남편 역할인 이태준 검사 역시 그 속내를 잘 알 수 없는 이중적인 태도들을 보인다. 한편으로 보면 아내에게 죄책감을 가진 남편처럼 보이지만 그가 심지어 감방에 있을 때조차 인맥을 돌려 일을 뒤에서 꾸미는 걸 보면 아내를 이용해먹는 권력자처럼도 보인다. 그가 자신의 섹스 스캔들을 일으킨 상대 여자를 납치해 와 협박을 하는 모습에는 이 이중적인 면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건 전형적인 권력자들이 하는 행동이지만 그는 그 자리에서도 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한다고 말할 정도로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처럼도 보인다.

 

사실 김혜경이나 이태준이라는 캐릭터의 이러한 행동들은 우리네 시청자들을 혼돈스럽게 만든다. <굿와이프>라는 제목처럼 김혜경을 좋은 아내캐릭터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그녀가 다른 남자와 불륜의 욕망을 드러내는 장면이 낯설게 다가온다. 그건 우리네 정서에서 좋은 아내라는 이미지로 드라마가 그려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이태준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한 때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아내를 이용하는 듯한 모습은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낯선 느낌을 준다.

 

이건 과연 미드의 리메이크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 간극일까. 아니면 우리네 드라마들이 너무 선악구도로만 나누어 극적 갈등들을 그려낸 데서 생겨난 낯설음일까. 아마도 두 가지가 모두 혼재된 느낌이다. 미드의 리메이크이기 때문에 확실히 <굿와이프>는 그 관계들이 우리와는 조금 달리 쿨한 면면들이 묻어난다. 하지만 이런 간극을 메워주는 건 다름 아닌 연기자들이다. 전도연과 유지태의 연기는 그 간극마저 이해될 만큼 자연스럽게 우리네 대중을 설득시켜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네 드라마들이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남녀 관계, 부부 관계를 그려온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도 만드는 면이 있다. 어찌 남녀 관계 부부 관계가 선악 구도로 무 자르듯 나뉠 수 있을까. 거기에는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금기를 넘보는 욕망 같은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좋고 나쁨은 한 사람이 선택되는 캐릭터가 아니라 한 사람 속에 혼재된 캐릭터라는 점이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굿와이프>는 우리네 드라마들에 상당히 괜찮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창작이란 때론 굳어진 틀을 벗어나고 깨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또 삶의 진면목이란 어떤 틀에 박힌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는 데서 보이기 마련이다. <굿와이프>가 보여주는 새로운 인물들은 그래서 낯설기도 하지만 그것이 본래는 진짜 우리네 얼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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