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방송 지원하는 예능의 고육지책

올림픽 시즌에 예능 프로그램도 예외일 수는 없었나. 예능 삼국지를 방불케 하던 주말 밤 예능 프로그램들의 경쟁은 시들해졌고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도 높아졌다. 올림픽 방송에 밀려 결방되기도 하고, 방송이 된다해도 올림픽 특집으로 본래의 특성이 사라져버리니 열렬한 지지층들의 반발을 사게 된 것이다.

‘무한도전’은 올림픽 특집으로 무한도전식의 ‘이색올림픽’을 보여주었다. 종목은 지압판 멀리뛰기, 상대방의 상의를 벗기는 유도경기, 100m 복불복 달리기, 땅 짚고 헤엄치기, 역기 들어 엉덩이에 낀 젓가락 부러뜨리기 같은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몸 개그가 프로그램의 컨셉트였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긴장감 넘치는 올림픽 경기가 치러지고 있는 상황에 우스꽝스런 이색올림픽의 면면이 유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상황은 ‘1박2일’도 마찬가지. 지난주에 있어 2회 연속으로 1박은 하지 않고 운동에 열중한 ‘1박2일’은 심지어 ‘초심을 잃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지난주 여자 대표팀과의 축구경기는 슛돌이 성인버전이라는 얘길 들었으며, 이번 주 배드민턴, 양궁, 탁구 경기가 나가자 ‘무한도전’을 보는 것 같다며 “여행은 언제 가냐”는 비판을 받았다. 한편 같은 시간대인 SBS의 ‘패밀리가 떴다(일요일)’와 ‘스타킹(토요일)’은 올림픽 특집방송을 하지 않고 본래 하던 식으로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올림픽 시즌에 이들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의 성적표를 보면 ‘일요일이 좋다’가 21.6%(AGB 닐슨)로 수위를 차지한데 비해 ‘해피선데이’는 17.6%를 차지했고, ‘스타킹’이 13.8%를 차지한 반면 ‘무한도전’은 13.6%를 기록했다. 시청률도 떨어지고 프로그램 이미지도 떨어뜨리는 예능의 올림픽 특집은 단순하게 비교해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 게다가 이러한 올림픽 특집을 위해 특별 게스트를 모시는 일도 그대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보다 쉽지 않다. 그렇다면 모든 게 불리하고 힘든 상황에서 왜 예능 프로그램은 올림픽 특집을 하는 것일까.

이유는 올림픽 방송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지난 주 ‘1박2일’은 여자축구대표와의 축구경기를 하면서 이어지는 ‘한국 대 이탈리아’의 축구경기를 KBS와 함께 하자는 식의 멘트를 집어넣었다. 이어진 방송 3사의 축구경기 중계 경쟁에서 KBS는 15.8%로 수위를 차지했다. 한편 ‘무한도전’멤버들이 해설자로 나선 MBC‘여자 핸드볼 한국 대 헝가리전’은 17.1%로 시청률에서 압승을 차지했다. 올림픽 방송을 지원하기 위해서 대표 예능 프로그램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올림픽 특집을 해야하는 상황인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올림픽 특집은 방송사의 올림픽 방송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능 프로그램은 억울할 뿐일까. 해석에 따라 상황은 거꾸로 역전되기도 한다. ‘무한도전’의 이색올림픽이 비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의 핸드볼 중계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색올림픽이 ‘무한도전’의 올림픽 방송을 위한 일방적인 지원사격이었다면, 핸드볼 중계는 올림픽 방송과 ‘무한도전’ 양자가 비교적 적절히 시너지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지금 올림픽 시즌을 맞이해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쩔 수 없이 올림픽 특집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이것을 가지고 초심 운운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그들도 방송국이 명운을 걸고 하는 올림픽 방송에서 열외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좀 남다른 대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국가적인 스포츠 행사가 벌어지면 통상적으로 나오는 거의 똑같은 포맷의 특집 구성은 분명 비판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들은 어떻게 방송3사 모두의 대표MC가 됐을까

현재 예능 프로그램의 대표MC를 말하라면 누구나 유재석과 강호동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이미 방송3사의 대표적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다. 강호동이 MBC ‘무릎팍 도사’, KBS ‘1박2일’, SBS ‘스타킹’의 메인MC라면, 유재석은 MBC ‘무한도전’, KBS ‘해피투게더’ 그리고 SBS ‘패밀리가 떴다’의 메인MC로 둘 다 방송3사 예능의 그랜드 슬럼을 달성한 셈이다. 이들의 이런 놀라운 성공비결을 알고싶다면 먼저 이 방송3사의 예능 프로그램 별로 이들의 캐릭터 설정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

뚝심의 강호동, 까칠하게, 친형처럼, 머슴처럼
강호동이 가진 기본 캐릭터는 거의 대개가 씨름선수 시절에서부터 가져온 것들로 그것은 힘과 순발력이다. 때론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힘의 승부사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대단히 섬세한 순발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무릎팍 도사’가 극대화시킨 부분은 ‘까칠함’이다. 이 도발적인 토크쇼에서 강호동은 특유의 힘있는 말을 구사하면서 섬세하게 상대방의 허점(?)을 노리는 캐릭터로 자신을 설정한다.

반면 ‘1박2일’에서 극대화된 것은 ‘친형 같은’ 이미지다. 여기서는 순발력보다는 힘이 더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활용된다. 때론 무모하리 만치 바보스럽게 고집을 피우지만 그로 인해 저 스스로 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직하게 동생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편 ‘스타킹’에서는 노련하지만 ‘머슴처럼’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이미지를 구사한다. 프로그램 특성상 출연한 일반인들의 재미요소를 순발력 있게 잡아내면서, 그 재미요소에 대해 힘있는 리액션을 보여주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에서의 강호동의 입지를 공고히 하게 만든다.

균형감각의 유재석, 1인자, 2인자, 3인자
탁월한 순발력의 소유자이자 프로그램 전체를 조율하는 특별한 균형감각을 지닌 유재석은 바로 그 빠른 상황판단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특징을 잘 살리는 MC다. ‘무한도전’에서 그가 구축한 이미지는 1인자다. 물론 여기서 이 1인자는 흔히 생각하는 수직적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1인자가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보여준 탁월한 점은 수평적 카리스마를 구사하면서 1인자 같지 않은 1인자의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해피투게더’에서의 유재석은 2인자 이미지가 더 강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출연진들의 재미요소를 잡아내고 극대화시키는 버팀목 역할에 더 치중한다. ‘해피투게더’가 한때 고전하다 최근 다시 정상의 궤도에 오른 것은 바로 이 유재석의 버팀목 역할로 주변인물들, 예를 들면 박미선이나 신봉선 같은 고정 출연자나 게스트들의 캐릭터가 살아났기 때문이다. 반면 새로 시작한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은 3인자의 이미지를 자처한다. 늘 지고 깨지는 역할을 자청하는 이유는 대개의 리얼 버라이어티쇼의 초반부가 그러하듯이 그 힘든 과정 속에서 캐릭터가 더 잘 구축된다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라고 해도 방송3사의 그것도 대표 예능 프로그램을 동시다발적으로 해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중 가장 어려운 점은 아마도 이미지 관리일 것이다. 같은 이미지를 반복해서 활용한다면 그만큼 빠르게 캐릭터가 소진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니 이 도전에 맞서 이들이 구사하는 것은 프로그램 성격에 맞는 캐릭터의 변신이다. 이제 우후죽순 많아지는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서 연기자의 연기변신처럼 예능인의 캐릭터변신(혹은 설정 변신)은 필수적인 것이 될 지도 모른다.

아마추어들에 대한 찬사, ‘스타킹’

강호동이 진행하는 ‘스타킹’에는 연예인과 일반인의 자리가 바뀌어져 있다. 일반인들은 무대 위에 오르고, 연예인들은 객석에 앉아, 때론 개그맨 뺨치는 일반인들의 개그에 자지러지게 웃고, 때론 그 놀라운 실력에 깜짝 놀라며, 때론 찡한 사연에 감동을 받는다. 거기 앉아있는 노사연, 하하, 조형기, 송은이, 김종서, 혹은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슈퍼주니어 같은 연예인들은 자신들의 노래나 개그를 선보이기 위해 거기 앉아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이 거기 앉은 이유는 단 하나. 이 연예인 뺨치는 일반인들의 재능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기 위함이다.

프로들을 놀라게 하는 아마추어의 자리, ‘스타킹’
실제로 출연자들의 면면을 보면 UCC 스타라는 말에 걸맞게 끼가 보통이 아니다. 2007년 스타킹 왕중왕이 된 40대 동방신기는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비보잉 실력을 보여준다. 그들은 20대 아이돌 스타들의 입을 쩍쩍 벌어지게 만든다(실제로 스타킹의 카메라는 이런 장면들을 곧잘 인서트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놀라운 노래실력으로 필리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펨핀코는 가수 박정현과 함께 그 어렵다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여유있게 듀엣으로 불러낸다.

물론 연예인에 필적하는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건 아니다. 아마추어 특유의 풋풋함과 재기발랄함만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박수 받을만하다. 딱딱한 경찰제복을 입고 거기에 걸맞지 않는 앙징맞은 텔미춤을 춰 UCC스타가 된 ‘경찰텔미’나 언발란스한 노래와 밸리댄스를 선보여 장안의 화제가 된 ‘밸리 원장’ 같은 이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상 속에서 그것을 뒤집는 발상으로 주목을 끌었다. 지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는 그들만의 아마추어리즘은 스타킹만의 가치이면서 동시에 그네들의 가치가 조명되는 UCC 시대의 진정한 스타가 가질 덕목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목할 인물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타킹’의 MC로 지금의 ‘스타킹’을 만든 강호동이다. 계속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부진으로 SBS는 한 때 시청률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스타킹’마저 폐지하려 한 적이 있다. 반대여론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강호동의 저력이랄까. 초반 시청률을 내지 못했던 ‘스타킹’은 10%를 넘어서 현재 12%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도대체 강호동의 무엇이 ‘스타킹’을 이렇게 끌어올 수 있는 저력이 되었을까.

씨름판의 강호동과 MC 강호동, 그리고 스타킹 강호동
‘스타킹’은 일반인들의 장기자랑만큼 연예인들의 반응(리액션)이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강호동의 프로그램 장악력은 이미 잘 알려진 바. 그는 일반인들 앞에서는 특유의 거구를 이용한 커다란 리액션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끄집어냈고, 연예인들과의 미묘한 경쟁구도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몸을 아끼지 않는 그의 MC스타일은 보는 이들에게 그 열정을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이 나왔을 때 키 높이를 맞추기 위해 서슴없이 무릎을 꿇고 앉거나 필요하면 아예 무대 위에 누워 버리는 행동은 저 씨름판에서부터 몸에 밴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강호동이라는 인물 자체가 개그맨의 길로 들어오기 전에는 한 명의 일반인이었다. 물론 씨름판에서는 이만기 선수가 아끼는 차세대 스타가 분명했지만, 개그맨으로서는 아마추어가 분명했다.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눈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듣고는 이경규가 개그계의 입문을 독려했다는 사실은 그 역시 한 때는 스타킹의 출연자 같은 입장이었다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개그맨을 웃기는 몸 개그와 입담이 무대 위에 올려지고 그것이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일으키면서 지금의 자리에까지 온 사람이 바로 강호동이다.

그래서 그는 아마추어리즘과 프로의식이 결합된 그만의 독특한 MC스타일을 보여준다. 그에게 붙여진 ‘유일하게 사투리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MC’라는 표현은 MC로서 큰 부담이었을 사투리 자체마저 강호동이 캐릭터로 끌어안아 버렸다는 걸 말해준다. 또한 유재석과 종종 비교되면서 ‘1대1에 강한 토크의 힘’을 보여주는 그의 MC스타일 역시 개그맨 이전 씨름선수였을 때의 강호동에서 이어져 온 것이 아닐까. 특유의 뚝심과 1대1 대결에 강한 면모, 상대방의 빈틈을 파고드는 순발력은 씨름선수로서도 MC로서도 지금의 강호동을 만든 결과라 할 수 있다.

아마추어들의 리얼리티 세상, ‘스타킹’
강호동의 이러한 MC스타일이 ‘스타킹’이 추구하는 코드와 부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강호동의 성공스토리 자체가 그렇듯이, 생활과 일상 혹은 직업 속에서 자신만이 가진 강점으로, 때론 부족함조차도 장점으로 승화시켜 저마다의 장기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스타킹’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족함이 솔직함으로 전이되는 무대는 스타킹의 출연자들은 물론이고 강호동에게도 자신들만의 진솔한 재미를 만들어내기에 충분한 장이 된다.

때론 프로들의 짜여진 듯한 노래나 장기는 식상한 것이 되기도 한다. 요즘처럼 리얼리티 쇼가 대세가 된 세상에서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럴 때, 가식 없이 드러나는 아마추어리즘의 리얼리티는 그 미숙함이나 어색함이 오히려 미덕이 된다. 또한 아마추어에 대한 찬사는 그 자체로 작금의 달라진 스타관을 반영한다. 스타들은 이제 저 위에 떠있는 별이 아니라, 우리 바로 옆에 있는 별이며 때론 우리에게 잘 한다고 박수를 쳐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론 평범한 우리들조차 인터넷이라는 별천지 세상을 매개로 별이 되기도 한다. 일반인들의 아마추어리즘이 연예인들에게 박수 받는 곳, ‘스타킹’은 이처럼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프로들의 찬사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은 강호동이라는 스타킹을 통해 반짝반짝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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