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16년차 여배우의 성장통

 

송혜교가 <혜교의 시간>이라는 책을 냈다. 화보집에 가깝지만 그 안에는 그간 밝히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와 소회 같은 것들이 마치 일기처럼 담담하게 담겨져 있다. ‘원래 잠이 많은 여자’라거나 곧바로 밥벌이를 시작해서 사춘기를 겪지 않았고 그래서 장래희망도 별로 없던 아이였다는 이야기, 대중들이 기억하는 이미지와 달리 자신은 귀엽지 않다거나 토종입맛이고 요리 몇 개쯤은 할 줄 알며, 음식 먹는 걸 즐기지만 여배우로서 다이어트 때문에 고민이라는 그런 자잘한 이야기들...

 

'혜교의 시간'(사진출처:낭만북스)

물론 연기자로서의 욕심을 드러내는 이야기들도 있다. 타고난 노련함이 없는 탓에 노력을 더 해야 하는 스타일이라거나, 타고난 연기자는 아니지만 감정을 흡수하는 재능은 있다며 자신을 다독이기도 한다. 또 그런 감정 표현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겪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통해 축적되리라는 연기자로서의 자세를 드러내기도 하고, 무엇보다 ‘연기 잘 한다’는 칭찬이 너무나 듣고 싶다는 연기자로서의 바람과 욕심을 말하기도 한다.

 

중학교 3학년에서 고등학생이 되는 시기에 시작한 연예계 생활이니 평탄한 삶을 살아오진 못했을 게다.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는 얘기나, 일찍 사회생활을 한 탓에 속에 할머니가 들어있다는 얘기를 듣지만 사실 그 안에는 ‘중학교 3학년에 멈춰버린 소녀도 한 명 살고 있다’는 진술은 그래서인지 쓸쓸함마저 묻어난다. 눈물 연기가 웃는 연기보다 더 쉽고, 오랜 촬영으로 바깥에서 생활하면서 방을 그리워하는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정조는 바로 이 ‘쓸쓸함’이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쓸쓸하게 만든 걸까.

 

송혜교는 스타에서 연기자로 넘어가는 과정에 서 있다. 물론 이 도전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녀의 진술처럼 <그들이 사는 세상>의 주준영이 그 시작이었다. 그녀는 ‘곰 세 마리’를 부르며 귀엽게 춤을 추는 그런 고정된 이미지를 털어내고 워킹우먼으로서의 강인하고 날카로운 모습을 주준영을 통해 보여주었다. 영화 <오늘>에서는 용서가 가진 이중성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여주인공 다혜를 깊은 울림으로 연기해냈다. 그리고 그녀는 현재 왕가위 감독과 벌써 3년 간이나 영화를 찍고 있다.

 

여배우에게 있어서 스타에서 배우로 넘어가는 과정은 크나 큰 성장통일 수밖에 없다. 송혜교를 힘겹게 하는 것은 그 나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겪기 마련인 연애와 이별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는 점일 게다. 그것도 상대가 국내의 대표적인 남자배우들이었으니 파장은 클 수밖에. 여기에는 대중들의 묘한 질투심과 애착이 뒤섞여 있다. 게다가 연애에 있어서 남자배우를 보는 시선과 여자배우를 보는 시선은 너무나 성차별적이다. 사랑하고 헤어졌는데 도대체 그녀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혜교의 시간> 속에 담겨진 몇 줄의 글들을 읽으면서 쓸쓸함을 느끼게 되는 건 아마도 송혜교라는 배우가 현재 겪고 있는 시간에서 너무 많은 상처를 보게 되기 때문일 게다. 그녀는 그저 연기를 하고 싶은 것뿐이다. 그래서 그 연기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사춘기를 저당 잡히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이유니까. 물론 지금의 이 아픈 성장통들은 어쩌면 그녀의 배우라는 알맹이를 더 견고하게 해주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때때로 상처가 너무 과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차분히 한 여배우의 성장과정을 바라봐줄 수는 없는 걸까.

안구정화의 미모에서 연기자의 얼굴을 보여준 김태희

김태희가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을까. 겉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달라진 연기 때문이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순종의 숨겨진 증손녀인 그녀는 말 그대로 공주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기억이 지워져버린 채,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공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돈이라면 뭐든 할 것 같은 뻔뻔함과 능글능글함으로 무장한 이설이라는 캐릭터에게서 '예쁜 척'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망가지는 김태희가 그 어느 때보다 예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드라마를 할 때마다 불거져 나온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늘 한결 같은 공주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그녀의 연기 속에서는 극중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모습이 더 보였다. 그래서 겉모습은 공주처럼 예쁘지만 잘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연기에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김태희가 달라진 건, 아마도 전작이었던 '아이리스'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리스'에서 그녀는 비로소 얼굴과 몸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스런 모습에서부터 분노하는 얼굴까지 표정이 다양해졌고, 액션 연기에도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그 연장선에서 '마이 프린세스'는 이제는 좀 더 연기가 편해진 김태희로 돌아왔다. 그녀는 극중 이설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이다. 늘 CF 속에서 방금 나온 것 같던 그녀가 김치를 포기채로 들고 죽죽 찢어 먹고, 입에 소스를 묻혀가며 스테이크를 통째로 뜯어 먹으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언뜻 진짜 김태희의 모습이 그 속에서 느껴진다.

표정 연기는 더 감정이 깊어졌다. 있는 대로 감정을 표정에 싣기 때문에 언뜻 눈가와 미간의 주름이 잡히고 그 여신 같은 얼굴이 한껏 벌려진 입과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사정없이 무너지지만, 바로 그런 과감한 표정 때문에 감정전달은 훨씬 좋아졌다.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펑펑 울어대는 얼굴에서는 그 진정성이 느껴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연기를 이토록 바꿔놓은 것일까.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그녀의 나이다. 그녀는 이제 서른을 넘겼다. 여전히 매력적인 미모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는 과거처럼 외모 하나로 버텨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다. 스타에서 배우로의 전환은 절실했을 것이다. '아이리스'부터 달라졌던 모습은 이런 자세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이 나이라는 무게는 거꾸로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고 보여진다. 서른은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편안해진 나이가 아닌가.

하지만 그저 나이를 먹었다고 연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그녀가 이설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철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권석장 PD는 그 누구보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감독이다. 초반 심지어 푼수 같은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줌으로써 공주로의 인생 역전 과정은 더 코믹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김태희는 마구 망가진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갖게 되었다. 그저 외모로서 안구정화를 시켜주는 얼굴이 아니라 연기자의 얼굴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기자가 망가질수록 더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슈퍼스타K'가 배출해야할 슈퍼스타는 어떤 가수일까

장재인이 기타 하나 달랑 들고 나와서 "바닥이 더 편해요"하며 털썩 주저앉아 또박또박 가사를 음미하듯 노래할 때, 아주 오랜만에 가슴 한 켠을 가득 채우는 어떤 설렘을 느낀 것은 거기에서 '음악'을 보았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사운드와 현란한 댄스, 그리고 음악 자체는 물론이고 비주얼조차 점점 찍어낸 듯 비슷비슷해진 작금의 가요계에서 그 노래를 들으며 어떤 정서적 감흥을 느끼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마도 음악이라기보다는 프로듀서에 의해 잘 포장된 하나의 음악상품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일 것이다.

심사위원으로 경쟁자들을 심사하던 윤종신이 한 후보자에게 "당신은 좋은 프로듀서를 만나야 될 것"이라는 지적은 작금의 현실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목소리나 가창력 자체가 가진 거칠지만 독특한 개성은 작금의 가요계에서는 프로듀싱 되는 과정에서 연마되기 마련이다. 좀 더 폭넓은 대중을 상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렬한 개성 자체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어필이다. 원석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연마되어 상품화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슈퍼스타K'는 이승철이 매번 입에 달고 말하는 것처럼, "프로가 될 사람을 뽑는 자리"다. 따라서 아마추어들의 실력 없는 치기는 모두 '불합격'을 받기 마련이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130만 명이 넘는 경쟁을 뚫고 11명에 안착한 생존자들(?)은 이미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이들이다. 포크를 하는 장재인이나 김지수는 바로 그 포크라는 장르가 갖는 어쿠스틱한 매력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성을 드러내고, 존박의 재즈적인 느낌마저 주는 R&B 스타일이나 허각의 감성적인 발라드 역시 그들만이 가진 개성적인 보컬에 의해 평이해 보이는 음악조차 돋보이게 만들어낸다.

중요한 것은 이미 실력도 갖추었고, 인지도도 갖춘 이들이 실제로 가요계에 슈퍼스타로 자리하는 문제일 것이다. 작년 '슈퍼스타K'가 배출한 가수들은 슈퍼스타K가 된 서인국, 박세미, 길학미 등이다. 어느 정도 인지도는 갖고 있지만 이들이 말 그대로 슈퍼스타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작년 '슈퍼스타K'는 올해처럼 많은 스타성 있는 후보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결과가 크다. 만일 이런 상황이 올해도 반복된다면 이것은 '슈퍼스타K'라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흠집을 낼 것이다. 아무리 '슈퍼스타K'가 되도 실제로 슈퍼스타가 배출되지 않는다면 그 오디션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슈퍼스타K'에 의해 실력을 검증받고 인기도 얻은 이들이 진정한 슈퍼스타로 서는 과정에는 반드시 상품화의 과정을 거치게 마련이다. 이른바 되는 음악과 되는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프로듀서들이 이 개성 넘치는 신인들을 어떻게 상품화시키느냐는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개성은 무시될 수도 있고, 어울리지 않는 옷을 억지로 껴입을 수도 있다. 개성 있고 실력 있는 가수들이 프로듀싱 과정에서 색깔을 잃어버리는 건 천편일률적인 가요시장의 흐름과 거기에 편승하려는 제작자들의 잘못된 마인드 때문이다.

아직 '슈퍼스타K'를 뽑는 오디션이 끝나기도 전에 거기 참가한 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에 대한 섣부른 걱정이 앞서는 것은, 오디션 과정에서 어떤 설렘까지도 던져주었던 날 것의 개성 넘치는 후보자들의 노래와 스타일이 훗날 프로듀싱 과정에서 똑같은 상품으로 찍혀 나오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제발 장재인이 지금처럼 털털하게 바닥에 앉아 기타 하나 들고 노래하는 모습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기 때문이며, 김지수가 특유의 소울 가득한 목소리로 포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이들이 댄스가수들 속에 들어가 춤을 추고 전자음 가득한 음악을 부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나라 가요시장에서 버텨내려면 가장 상품화가 잘 되는 댄스음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일 시장이 진정 이렇다면 그것은 시스템이 잘못된 것이다. 어쿠스틱한 노래 하나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고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슈퍼스타K'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네 가요시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아이돌 그룹이 거의 장악해버린 가요 순위 프로그램들은 몇 분 안 되는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자신들을 어필하기 위해 댄스와 자극적인 음악을 선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슈퍼스타K' 같은 무대는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엮일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 더 다양한 음악 스타일이 대중들에게 어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필요하다면 무대를 바꿔야지, 무대에 맞춰 가수들을 바꾸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원석을 세공할 때, 비죽비죽 삐져나온 부분은 잘려져 버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은 보석에 대한 비유일 뿐, 한 사람의 가능성을 똑같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사각형을 둥그런 원으로 만드는 방법은 각을 잘라내는 방법도 있지만, 사각형 바깥으로 두툼한 원을 덧붙이는 방법도 있다. 날 것의 강렬한 개성을 버리기보다는 좀 더 감싸서 두드러지게 어필하는 방식은 어쩌면 지금 막 가요계로 발을 딛고 있는 이들 11명의 후보자들에게 필요한 일일 것이다. '슈퍼스타K'가 오디션 과정에서 보여주었던 진정한 음악인들의 다듬어지지 않았어도 그대로 느껴지던 그 묵직한 진정성의 감동을 오래도록 느끼고 싶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상품성과는 별개로 '슈퍼스타K'는 이 시대에 진정한 슈퍼스타를 뽑는 대회로서 자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계, 위험지대에서 가능성의 지대로

이승기가 처음 '1박2일'에 출연했을 때, 그는 이미지를 관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한겨울 얼음장 같은 물로 머리를 감고, 야생의 생활(?) 속에서도 피부관리를 하는 그의 모습은 가수로서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한 안간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라면 아이돌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신비의 베일에 가려 있어야할 아이돌 가수가 맨 얼굴에 눈곱이 낀 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라니!

하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어 있었다. 이승기가 들어왔을 때, 이미 한때(?) 아이돌가수였던 은지원은 은초딩으로 캐릭터를 잡고 있었다. 이승기는 그렇게 예능에 적응해나갔고, 2년여가 지난 지금 드라마에서도 주목받으면서 가수, 예능, 드라마까지 이른바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지 이승기 개인의 성공에 그치는 것일까. 이승기의 성공 과정은 현재 달라진 스타들의 롤모델을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까.

달라진 롤모델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한 스타가 과거라면 도무지 용납되지 않을 상반된 이미지들을 다양하게 갖는 것이 오히려 득이 된다는 점이다. 한 편에서는 정극에 출연하면서 시청자들을 울리는 이승기는, 다른 한 편에서는 버라이어티쇼에 등장해 소녀 같은 가발을 쓰고 정각이 될 때마다 거리에서 시각을 외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웃긴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 걸까.

신비주의의 시대가 가고 친숙한 이미지가 대세가 된 현재, 다채로운 이미지는 그 자체가 진정성이 된다. 한 사람에게서 한 가지 이미지만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가식이 된다. 하지만 여러 이미지를 보여줄 때, 그것은 오히려 그 사람의 속에 있는 다양한 모습들은 리얼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된다. '1박2일'에서 멜로의 중심에 선 이승기를 벌칙수행을 통해 예능의 중심으로 세우는 것은 오히려 이승기에게는 득이 되는 일이다. 과거 상반된 이미지의 겹치기가 용납되지 않던 시대와 달라졌다는 것을 이승기를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승기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잘 하는 것'이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승기가 '찬란한 유산'에서 선우환 역을 잘 소화해내고 있는 것은 물론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배우로서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초반부에 이승기는 여러 모로 어색한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뒤집은 것은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차츰 나아지는 연기를 보면서 이승기는 성장하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은 '1박2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승기는 예능과 어울리지 않는 이미지로 초반부 이물질 같은 느낌을 주었지만 차츰 형들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세워나갔다. 특별한 개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드러나는 대로 보여주는 것이 이승기의 좋은 이미지를 만들었다. 허당이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 '열심히'와 '어색한'의 사이에 서 있는 캐릭터다.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란 걸 이승기는 예능에서는 물론이고 드라마에서도 보여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승기를 통해 달라진 현재의 스타들의 롤모델을 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팬층이 특정 세대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승기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팬층이 넓다. '1박2일'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누나들 사이에서의 이승기'였지만, '1박2일' 출연 후에는 '형들 사이에서의 이승기'가 되었고, '찬란한 유산'에 출연하고는 '부모들 사이의 이승기'까지 되었다. 그는 거의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팬층을 갖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이승기가 본성처럼 갖고 있는 고급스런 이미지 위에 다양한 이미지들(허당으로서의 이미지나, 까칠한 이미지 같은)을 겹치는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승기가 현재 스타들의 아이콘이 된 데는 이처럼 경계의 지대에 잘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계는 분야의 경계이기도 하고, 이미지의 경계이기도 하며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이기도 하다. 과거라면 위험지대가 되었을 경계가 가능성으로 바뀌었다는 것, 그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스타가 바로 이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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