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의 화신>, 안쓰럽고 매력적인 질투하는 조정석

 

정원이는 나 보다 더 자상하고, 나보다 더 돈도 많고, 무엇보다 건강한 놈이다. 정원의 마음을 의심하지 마라.” 이화신(조정석)은 과연 사랑보다 우정을 택한 걸까? 그는 그가 사랑하게 된 여자 표나리(공효진)에게 친구인 고정원(고경표)를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하며 심지어 그에게 바래다준다. 고정원의 모친이 그가 금수정(박환희) 아나운서와 사귄다는 소문을 공공연히 내버리자 실망한 표나리를 위해 고정원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라는 걸 대신 얘기해준 것.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로맨틱 코미디에서 남자주인공은 주로 질투를 하기 보다는 받는 인물이 대부분이다. 남자주인공들은 재력은 물론이고 외모, 스펙까지 빠지지 않는 인물이거나, 그런 것들이 빠져도 또다른 매력을 갖고 있어 적어도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이든 남자주인공은 그래서 다른 남자의 질투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질투의 화신>은 제목이 아예 내세우고 있는 것처럼 질투하는 인물화신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표나리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또 친구인 고정원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도 못한다. 그가 표나리에게 애정 표현을 하는 거라야 고작 주변을 빙빙 돌며 툴툴대면서 걱정을 해주거나 남모르게 질투의 감정을 드러낼 때다.

 

잘못된 만남이라는 노래 가사 구절처럼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인 이화신은 그래서 갈등하지만 그는 고정원의 사랑이 거짓일 거라고 오해해 힘겨워하는 표나리에게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걸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의 마음을 전한다. 거기에는 질투의 감정을 뛰어넘어 표나리를 위하는 사랑이 담겨있고 동시에 친구인 고정원에 대한 우정 또한 담겨져 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고정원과 표나리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키스를 할 때 먼발치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이화신의 마음은 복잡해진다. 질투와 상처의 아픔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이화신이라는 인물이 그녀를 사랑하는 방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투의 화신>이 흥미로운 건 바로 이 특별한 캐릭터 덕분이다. 질투하면서도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 사랑을 드러내는 캐릭터.

 

무엇보다 이 질투하는 인물, 이화신이라는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건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적지 않다. 사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보정 브래지어를 하는 것으로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들면서도 본인은 굉장히 진지하고 나아가 절실하게까지 느껴지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거 <건축학 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코믹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통해 미친 존재감으로 등극했고, <더 킹 투 하츠>에서는 그와는 상반되는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한 그는 마치 이 두 캐릭터를 조합해 진지하면서도 인간미 있고 그러면서 웃음을 자아내는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한 듯하다. <오 나의 귀신님>을 통해 슬쩍 내보인 그 캐릭터는 이제 <질투의 화신>에서 제대로 매력을 뽑아내고 있다.

 

우습지만 짠하고, 안쓰럽지만 매력적인 인물. <질투의 화신>은 바로 이런 비범한 캐릭터의 매력에 기반해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을 열어가고 있다. 물론 이런 캐릭터가 이토록 공감 받을 수 있게 된 건 주인공보다는 주변인이 될 가능성이 훨씬 많아진 현실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제대로 흡수해 200%의 매력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도리를 찾아서>, 미래를 걱정하는 분들을 위한 위로

 

저는 단기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는 도리입니다.” 애니메이션 <도리를 찾아서>는 너무나 작고 깜찍하게 생긴 물고기 도리의 이런 말로 시작한다. 도리는 바로 직전 자신이 한 이야기조차 깜박 깜박 잊어버린다. 그래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한다. 그런 도리를 부모들은 참을성 있게 대하며 한 편으로는 용기를 준다. 밖에서 놀다가 집을 찾아오는 일이 쉬울 리 없지만, 도리의 부모는 조개껍질을 표식으로 그걸 따라 오다보면 집으로 올 수 있다고 도리에게 알려준다.

 

사진출처:영화<도리를 찾아서>

너무나 작은 존재인 도리가 살고 있는 바다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넓다. 그러니 커다란 스크린에 작은 도리가 부모를 잃어버린 채 홀로 어둠 속에 있는 장면은 고스란히 그 막막함을 관객들에게 전해준다. 게다가 도리는 단기기억상실증이 아닌가. 도무지 혼자 살아갈 수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도리는 말린을 만나 그의 자식인 니모를 함께 찾으면서 친해진다.

 

이 정도 되면 <도리를 찾아서>라는 애니메이션이 어떤 스토리를 갖고 있는가가 대충은 이해될 것이다. 부모를 잃어버린 도리가 이번에는 말린과 니모와 함께 부모를 찾아가는 과정. 그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다. 하지만 이런 소소함으로 기대감을 놓았다면 <도리를 찾아서>는 의외의 즐거움과 감동은 물론이고 어떤 삶에 대한 깨달음까지를 얻는 작품의 성과에 놀라게 될 것이다.

 

여정에서 도리가 만나게 되는 위장술의 대가 문어 행크와 멀리까지 소리를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린 시절의 친구 고래상어 데스티니, 그리고 음파 탐지 능력으로 멀리 있는 도리의 위치를 파악해내는 벨루가 고래 베일리 같은 동물친구들은 이 애니메이션이 다채로운 재미를 줄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 행크가 위장술을 이용해 미션을 수행하는 캐릭터로서의 긴장감과 웃음을 준다면, 짝패로 도리를 돕는 데스티니와 베일리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이 작품의 따뜻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먼 여정을 통해 도리가 부모를 찾아내는 그 과정은 대단히 감동적인 장면으로 연출된다. 하지만 이런 다소 의도된 감동보다 이 애니메이션이 좋은 건 도리라는 캐릭터에 담겨진 우리네 삶의 비의다. 단기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는 도리는 그것을 장애로 여기지만 긴 여정을 통해 도리가 발견한 건 그것이 다름 아닌 그를 계속 살아가게 해준 동력이었다는 점이다. 부모가 해줬던 말 계속 헤엄쳐라는 말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 때문에 고민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하나씩 눈앞에 있는 것들을 해나가다 보면 결국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사실 우리를 힘겹게 하는 건 막연하게 다가오는 정해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스펙을 쌓는 건 바로 그 두려운 미래 때문이 아닌가. 그래서 도리의 단기기억상실증은 이러한 우리네 현실 속에서 바라보면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멀리 예측하려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않으며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 그래서 정해진 운명이나 미래 따위는 없으며 자신이 해나가는 것들과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변수들(이를 테면 친구들 같은)이 더 흥미진진한 미래가 된다는 것을 도리의 이야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그렇게 가족을 찾아 나선 도리는 부모를 찾지만 또한 여정을 통해 또 다른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니모와 말린이 그렇고 행크와 데스티니, 베일리가 그의 새로운 가족들이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지만 애초에 그가 예상한 것보다 더 큰 것들이 도리에게는 미래로 주어진다. <도리를 찾아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막막함 앞에 서서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를 보내고 있다. 이것은 이 애니메이션이 우리네 관객들을 취향 저격한 이유다. 걱정하기 보다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를

<미녀 공심이> 재미의 8할은 남궁민과 민아의 캐릭터

 

사실 SBS 주말극 <미녀 공심이>는 뻔한 내용이다. 이 드라마는 최근 그토록 많이 등장했던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적인 틀을 갖고 있다. 외모도 스펙도 별로라고 생각하는 공심(민아)이라는 캐릭터가 사실은 미녀라고 불릴 만큼 예쁘다는 것이고, 그래서 재벌3세인 준수(온주완)도 또 멋진 인권변호사인 단태(남궁민)도 그녀의 매력에 빠진다는 것.

 

'미녀 공심이(사진출처:SBS)'

공심과 대척점에 있는 여자 캐릭터 공미(서효림) 같은 캐릭터가 있어 여우 짓을 하는 것 역시 전형적이다. 준수가 재벌3세라는 사실을 알고 공미는 공심에게 관심을 보이는 그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공심이 받아야할 호의를 슬쩍 가로채는 모습을 보인다. 자매지만 변호사가 되어 로펌에 들어간 공미는 외모도 스펙도 공심과는 비교된다. 하지만 어째 하는 짓은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이 비교되는 캐릭터들이 서로 엮이는 로맨틱 코미디는 <그녀는 예뻤다> 이후, 최근 <또 오해영>에서도 반복되는 틀이다. 여기에 <미녀 공심이>는 두 가지 익숙하지만 이른바 먹히는 드라마 코드를 집어넣었다. 하나는 출생의 비밀이고 다른 하나는 서민들을 돕는 인권 변호사의 법정 드라마다. 하지만 이런 코드들도 이미 어느 정도는 그 이야기 윤곽이 드러난 상태다. 단태가 바로 남회장(정혜선)이 애타게 찾고 있는 잃어버린 손주라는 것. 또 이 인권변호사 단태는 타인을 돕는 일을 일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라는 것.

 

이야기 틀이나 구성이 특별할 게 없는 <미녀 공심이>지만 그것을 의외로 강하게 만드는 건 캐릭터다. 제목이 보여주고 있듯 이 드라마는 이 땅의 무수한 공심이들을 위한 헌사다. 평범해 보이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눈에 드러나는 스펙은 없어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우연하게 준수를 만나게 되어 덜컥 비서가 된 공심은 이 일이 너무 낯설지만 마음만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그녀에게서는 일에서 어떤 사심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공심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녀가 전혀 예쁜 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좋으면 좋다, 아프면 아프다,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는 캐릭터다. 준수 같은 멋진 남자 앞에서 호감을 드러내고, 사실 그녀가 귀여워 짓궂게 구는 단테에게 투덜대지만 쓰러진 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할 만큼 마음 한 구석에는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그에 대한 호감이 숨겨져 있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던 걸걸한 목소리에 늘 억울함을 항변하는 듯한 말투는 어느새 그녀의 속내를 드러내주는 진심과 귀여움이 뒤섞인 묘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런 공심에게 공심씨는 아무 것도 꾸미지 않은 것이 제일 예뻐요라고 말해주는 단태라는 캐릭터가 그 어떤 백마 탄 왕자님보다 멋지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단태는 이 땅의 많은 공심이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그런 남자주인공이다. 늘 편의점에서 한 끼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가난한 인권변호사지만 누가 진짜 예쁜가 그 진가를 알아볼 줄 아는 인물. 그래서 그녀를 위해 그녀가 몰라주더라도 뭐든 해주려는 그런 캐릭터.

 

결국 이야기 구조가 뻔해 보이는 <미녀 공심이>를 흥미진진하게 만든 건 공심과 단테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공심을 연기하는 민아는 새로운 발견이다. 캐릭터가 좋은 탓도 있지만 민아는 그 연기 경험이 없어도 순수한 매력으로 공심이를 200% 연기해내고 있다. 그녀를 든든하게 받아주는 남궁민이야 본래 연기 베테랑이니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이 드라마 재미의 8할은 이 두 인물이 해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 마이 비너스>, 역변한 신민아에게 없는 한 가지

 

KBS의 새 월화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는 여러모로 최근 화제를 뿌리고 종영한 MBC <그녀는 예뻤다>를 떠올리게 하는 드라마다.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이 주근깨가 잔뜩 생긴 얼굴로 역변했다면 <오 마이 비너스>의 여주인공 강주은(신민아) 역시 살이 잔뜩 쪄 같은 인물이 맞나 싶을 정로 역변한 몸을 보여준다. 그러니 로맨틱 코미디를 기본 장르로 깔고 있는 두 드라마가 갖고 있는 기본 설정은 같다. 외모가 아닌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

 


'오 마이 비너스(사진출처:KBS)'

<오 마이 비너스>라는 제목 속에서도 이 드라마의 이야기가 저 <그녀는 예뻤다>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즉 비너스는 미의 상징인데 이 드라마의 기획의도에 친절히 쓰여져 있는 것처럼 ‘21세기 비너스아프고 마르고 고통 받고있다. ‘비너스의 완성은 예뻐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역변한 얼굴이나 몸매로 대변되는 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 고유한 내적인 아름다움이 진정한 미라는 것이다. 여기서 비너스예쁘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에게는 아름다운 그녀라는 뜻.

 

그래서 첫 회에 이 역변한 강주은은 오래도록 사귀어온 남자친구 임우식(정겨운)으로부터 이별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강주은은 그가 새로운 여자 오수진(유인영)을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오수진의 과거는 현재의 강주은처럼 슈퍼 뚱땡이였었다는 사실이다. 외모에 끌리는 세태와 내면을 알아보는 사람의 이야기는 그래서 전형적인 4인 멜로의 틀로 들어왔다.

 

하지만 <그녀는 예뻤다>를 닮아있다고 해도 <오 마이 비너스>에는 없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여주인공이 주는 서민적 공감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외모만의 역변이 아니라 가정이 몰락하면서 그녀의 스펙 없는 처지 역시 역변한 여주인공을 내세웠다면, <오 마이 비너스>의 여주인공은 변호사다. 사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는 인물은 아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 한 가지의 다른 점은 드라마의 큰 차이로 만들어진다. <그녀는 예뻤다>가 예상 외의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멜로 이외에 스펙 없는 청춘의 성장기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 마이 비너스>는 그런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물론 첫 회에 모든 걸 속단하긴 어렵다. 하지만 만일 이런 현실적인 공감대가 강주은이라는 캐릭터에 부여되지 않는다면 그저 그런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남는 건 한 가지다. 소지섭과 신민아라는 배우들이 하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호기심이 그것이다. 확실히 이 캐스팅 부분은 이 드라마에 상당한 유인을 만들어내는 힘이 아닐 수 없다. 광고를 통해서 두 사람의 괜찮은 느낌을 접했던 시청자들이라면 이들이 나와 보여주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궁금해질 수 있다.

 

그렇지만 어차피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고 그 아름다움을 알아봐주는 사랑을 통해 힐링을 전하고자 하는 게 이 드라마의 목적이라면 좀 더 지금의 청춘들이나 서민들이 교감할 수 있는 부분들을 만들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부분들이 들어가게 된다면 차가워진 날씨에 우리를 훈훈하게 해줄 꽤 괜찮은 로맨틱 코미디가 나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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