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아들’의 호불호는 가족드라마 형태에서 나온다

엄마친구아들

정해인과 정소민이 출연한다는 사실은 tvN 토일드라마 ‘엄마친구아들’이 로맨틱 코미디일 거라는 예상을 하게 만든다. 실제로 이 ‘엄마친구아들’은 엄친아, 엄친딸로 오래도록 친구처럼 지내왔던 승효(정해인)와 석류(정소민)가 드디어 조금씩 사랑을 피워나가는 멜로드라마다. 미국까지 가서 누구나 선망하던 글로벌 기업까지 다니던 석류가 약혼도 파혼하고 회사도 그만두고 귀국하면서 드라마는 시작한다. 석류가 원하는 건 자신의 삶이고 행복이다. 부모의 자랑 같은 게 아니고. 멜로와 더불어 진짜 자신의 행복이 무언가를 말하는 사회극적 요소도 거기에는 담겨 있다. 

 

그런데 ‘엄마친구아들’의 이야기는 승효와 석류의 멜로만이 아니다. 이들의 친구인 모음(김지은)과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강단호(윤지온)의 사랑이야기도 더해져 있고, 석류의 엄마 미숙(박지영)과 그 친구들인 쑥자매 혜숙(장영남), 재숙(김금순) 그리고 인숙(한예주)과의 중년의 우정이야기도 들어있고, 미숙과 그의 남편 근식(조한철) 그리고 혜숙과 그의 남편 경종(이승준)의 가족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또 여기에 승효네 건축 사무실 직원들 이야기와 모음의 119구급대 이야기 같은 직장 스토리까지 들어있다. 

 

승효와 석류의 멜로드라마가 주축이긴 하지만, 이것은 차라리 가족드라마에 가깝다. 승효네 가족과 석류네 가족 또 모음네 가족과 단호네 가족(딸 하나지만)의 서사가 다양한 스토리들로 묶여져 있어서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멜로드라마의 틀에서 시선을 빼내, ‘엄마친구아들’이 가진 서사들을 들여다보면 자꾸만 KBS 가족드라마에 그토록 많이 등장해왔던 소재들이 떠오른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 석류의 귀국 원인인 암과 우울증 투병 이야기가 본격 진행되면서 이런 느낌은 더 강해졌다. 

 

뒤늦게 석류가 암에 걸렸었고 그 사실을 숨긴 채 홀로 투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족과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들은 가족드라마들이 종종 활용하는 ‘불치병’ 콘셉트의 드라마 투르기를 보여준다. 너무나 가슴 아파하던 가족과 친구들이 석류를 위해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준비하고 엄마인 미숙이 하는 말은 더더욱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향기가 느껴진다. “우리 가족이야. 좋은 것만 함께 하자고 있는 가족 아니야. 힘든 거 슬픈 거 아픈 것도 함께 하자고 있는 가족이야.” 

 

딸이 있는 단호와 모음이 그려나갈 로맨스나, 혜숙이 불륜이라고 오해해 경종이 성급하게도 이혼하자고 말하는 대목이나, 석류가 암 투병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친구들이 미숙에게 차라리 화를 내라며 우린 그래도 되는 친구라고 하는 장면 같은 에피소드들 역시 ‘엄마친구아들’이 멜로드라마의 틀이 아닌 가족드라마의 틀에 가깝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이런 선택은 최근 지상파, 케이블, 종편이 보다 폭넓은 시청층을 가져가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의도와 맞닿아 있다. 로맨스는 세련된 느낌을 주지만 그것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 그래서 가족드라마의 다양한 서사구조들을 다시 불러온다. 알다시피 가족드라마는 최근 몇 년간 거의 사라져버렸고 남은 건 KBS 주말드라마 정도다. 과거에 비해 힘이 많이 빠졌다고 해도 KBS 주말드라마는 아직도 20% 시청률은 무난히 나온다. 충성도 높은 중장년 시청층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되돌아 생각해보면 지난 봄 큰 화제성과 최고 시청률 24.8%(닐슨 코리아)를 기록했던 ‘눈물의 여왕’도 그 틀은 가족드라마에 가깝다. 물론 현우(김수현)와 해인(김지원)의 세련된 멜로가 중심이지만 그 인물의 가족이 서로 얽히는 데서 만들어진 눈물과 웃음이 압권이었던 드라마가 아닌가. 그리고 JTBC 드라마 역시 ‘닥터 차정숙’에서부터 ‘나쁜 엄마’ 등을 거쳐 최근 방영된 ‘가족X멜로’에 이르기까지 이런 가족드라마의 형태에 로맨스가 어우러지는 방식으로 괜찮은 성과를 냈던 게 사실이다. 그러고보면 가족드라마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달라진 환경에 맞게 변화하고 세련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엄마친구아들’은 그런 점에서 보면 tvN식 가족드라마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런 선택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 tvN이나 JTBC 같은 채널과 가족드라마의 조합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청률은 잘 나오지만 가족드라마 형태는 다소 산만해질 수 있는 게 사실이다. ‘엄마친구아들’을 승효와 석류의 로맨틱 코미디로만 보면 가족드라마의 다양한 양태를 담은 이 드라마가 너무 곁가지를 많이 펼쳐 놓은 느낌이 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친구아들’은 너무 짜여진 극적인 밀도를 기대하기보다는 조금 느슨해도 다양한 관계의 맛이 담긴 종합선물세트 같은 드라마로 보면 더할 나위 없이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드라마다. 하지만 기존의 tvN 드라마들이 그러했듯이 밀도 높은 로맨틱 코미디만을 기대한다면 너무 장황한 변죽이 많은 드라마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결과로 다가오더라도 이런 선택은 OTT가 등장하면서 점점 시청층을 빼앗기고 있는 리니어 미디어들의 안간힘이자 색다른 진화가 아닐 수 없다. (사진:tvN)

‘비밀은 없어’, 연기자들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작품인데 왜

비밀은 없어

“다 갖다버리는 게 낫겠는데요? 고기는 엄청 질기고 양념은 너무 자극적이에요. 아, 어머님이 욕하는 데만 집중을 하시느라 음식은 아들, 며느님께서 모양만 내서 나오시는 거 아닌가요? 이런 게 꼭 있어야 사진이 잘 나오는 건가? SNS에 올릴 비주얼만 남기고 맛은 하나도 안 남았는데. 여기 20년도 더 된 맛집이잖아요. 맛이 너무 많이 변했어요.” 

 

JTBC 수목드라마 ‘비밀은 없어’에서 송기백(고경표)은 대타로 출연한 맛집 탐방 프로그램에서 욕쟁이 콘셉트를 애써 연기하고 있는 가게 주인 할머니에게 그렇게 돌직구를 날린다. 알고보니 송기백은 대학 때 이 가게에 자주 왔었던 모양이었다. 그 가게에서 “갈비찜 소짜 하나 시켜놓고 남자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 와 갖고 공깃밥 비벼서 죽어라 먹고 있으면” 그 할머니가 국물 더 주는 척하면서 고기도 더 얹어주고 그랬다고 말한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어색한 욕쟁이 연기를 내려놓고 표정이 한껏 누그러진다. “아들 같은 학생들이 와서 그러고 있는데 그걸 어, 어떻게 그냥 둬.” 그게 할머니의 진심이다. 하지만 요즘 애들 입맛이 달라졌고, 또 “입으로 안먹고 눈으로 먹는다”는 말에 요리를 자식들이 하게 내준 모양이었다. 송기백의 돌직구와 작가로 참여한 온우주(강한나)의 설득으로 할머니는 직접 자신이 요리를 하겠다며 재촬영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비밀은 없어’가 일관되게 그리고 있는 ‘진심’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을 소재로 드러낸다. 이미 ‘트루맛쇼’ 같은 다큐멘터리가 폭로한 것처럼 한 때 맛집 방송 중에는 거짓 콘셉트를 세워 맛집인 척 포장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비밀은 없어’는 이런 사례 중 하나를 소재로 가져와 그런 포장보다는 진심으로 다가가야 진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온우주가 방송작가이고, 송기백은 프리랜서 아나운서이며 또 김정헌(주종혁)은 ‘국민사위’로 불리는 톱스타인 ‘비밀은 없어’는 당연히 방송가의 이야기들을 에피소드로 가져왔다. 온우주와 송기백 그리고 김정헌의 삼각관계가 만들어진 것 역시 온우주가 기획했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결국 송기백은 자신을 선택하지 않으면 방송을 다 망쳐버리겠다는 민초희(한동희)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온우주는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지만 방송이 끝난 후 송기백과 온우주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을 확인하게 됐다. 

 

이로써 온우주는 방송에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게 됐다. 방송이 나가고 전국민이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될 수 있지만, 만일 온우주와 송기백의 다정한 모습이 누군가에게 드러나게 되면 자칫 거짓방송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결국 ‘비밀은 없어’는 제목처럼 두 사람의 솔직한 마음이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전기 충격을 받고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된 송기백과, 과거 연인이었지만 온우주를 위한다는 이유로 거짓말을 했던 김정헌의 대비 역시 이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결국 진심에 대한 것이라는 걸 감지하게 만든다. 거짓으로 포장하려 하는 건 결국 진실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다가가야 마음이 전해질 수 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다. 

 

아쉽게도 시청률은 1%대에 머물러 있지만, ‘비밀은 없어’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어주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드라마 역시 꾸미지 않고 진심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꺼내서인지 너무나 러블리한 강한나와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 고경표 그리고 삼각관계에 끼어든 캐릭터지만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만드는 연기를 선사하는 주종혁의 진심어린 연기는 이 작품을 계속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사진:JTBC)

‘선재 업고 튀어’, 타입슬립의 기막힌 변주, 본격 입덕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

이 정도면 본격 입덕 드라마라 할만하다.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시청률이 4.4%(닐슨 코리아)를 찍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그간 이 드라마의 팬들은 왜 이렇게 재밌는데 시청률은 오르지 않는가를 못내 아쉬워했다. 마치 팬심을 경험한 이들만이 과몰입하는 마니아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하지만 입소문이 조금씩 퍼지면서 ‘선재 업고 튀어’는 드디어 시청률도 반등하며 마니아 드라마가 아닌 보편적인 공감과 호응을 얻는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그 변곡점은 7회부터다. 류선재(변우석)와 임솔(김혜윤)이 서로의 운명을 바꿔 새로운 현재를 만들어낸 시점이다. 과거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의 장애를 갖게 됐던 임솔은 그것이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저지른 범죄였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끝내 도망치다 차에 치여 물에 빠진 임솔을 구해낸 류선재가 병원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등장했고, 마치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는 걸 알게 된 듯 류선재가 임솔을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해내는 장면이 반복됐다. 

 

똑같은 사건이 다른 결말로 이어지는 두 장면이 반복된 건, 누군가 과거를 바꿨다는 이야기다. 그 두 장면이 반복되는 기점에 류선재가 임솔이 갖고 있던 시계를 손에 쥐고 있는 장면은 그 변화된 사건의 전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애초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가게 해주는 시계는 임솔이 타임슬립을 해 현재 사망한 류선재의 운명을 바꾸려는 장치로 등장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계는 거꾸로 임솔이 사고(사건이지만)를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 류선재가 과거를 바꾸려는 장치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선재 업고 튀어’는 팬심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던 임솔이 최애인 류선재를 구하는 판타지에서 이제 류선재 역시 임솔을 구하는 ‘쌍방 구원 판타지’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그렇게 바꿔진 과거에 의해 달라진 미래를 맞이한 34살의 임솔과 류선재의 현재 이야기가 이어졌다. 임솔은 사고를 당하지 않아 두 다리가 멀쩡한 영화사 직원이 됐고, 류선재 역시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단지 스타가 된 류선재와 임솔 사이의 절절했던 관계는 끊겨 있는 듯 보였지만 임솔은 류선재가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뻐했다. 

 

이로써 모든 위기 국면들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선재 업고 튀어’는 그래도 다가오는 운명 앞에 또다시 위기 상황을 그려냈다. 그건 류선재가 사망했던 당시 상황이 다시금 반복되는 것이었다. 콘서트 당일 일기예보에도 없던 함박눈이 내리고 한강 다리에서 오지 않기를 바랐던 선재가 나타나자 임솔은 반가워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만난 후 돌아간 류선재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어찌 보면 과거를 바꿔 현재의 운명 또한 바꾼다는 설정으로 임솔이 겪을 사건을 해결했지만, 또다시 류선재의 위기가 등장한 상황이다. 타임슬립 설정이 과거에 벌어진 하나의 사건을 되돌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의 판타지로 그려졌다면, ‘선재 업고 튀어’는 그것이 계속 변주되는 방식으로 그려지는 셈이다. 이 이야기 구조 안에서 보면 류선재는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그것 역시 누군가 저지른 사건이 아닐까 싶은 예감을 갖게 만든다. 임솔이 겪은 일들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던 것처럼. 

 

34살로 돌아온 임솔과 류선재의 이야기는 그래서 타임슬립 판타지를 다채롭게 변주함으로써 팬심과 더불어 멜로적 서사를 더 강력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쉽게 예측할 수 있는 판타지의 결말이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고 할까. 입소문을 타고 시청률도 튀어 오르고 있는 ‘선재 업고 튀어’가 심상찮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유다. (사진:tvN)

‘인간실격’, 시청률로 함부로 실격이라 부를 수 없는 드라마

인간실격

“산에요.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음 집에 갔죠.” 한밤중 아무도 없는 기차역에서 철길을 하릴없이 걸으며 마지막으로 타본 기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부정(전도연)이 그 때 “기차를 타고 어딜 갔냐?”고 묻자 강재(류준열)는 그렇게 말한다.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집에 갔다고. 

 

“산에 갔다가 바다에 갔다가...” 라고 강재가 말하곤 잠시 뜸을 들일 때 부정은 살짝 긴장했다. 그 마지막으로 기차를 타본 게 아버지 장례 치르고 화장한 날 엄마와 함께 그 곳에 왔을 때였다는 강재의 말 때문이다. 어딘가 쉽지 않았을 상황이었을 테니 그가 갔다는 산과 바다가 마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런 길처럼 느껴지진 않았을까 걱정해서다. 하지만 그러고는 “집에 갔다”는 강재의 말에 안심한다.  

 

부정이 강재의 말을 들으며 걱정하고 안도하는 건,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에도 죽은 정우(나현우)의 사연이 있는 그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 저수지를 찾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절망적이었을 것이고 죽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을 게다. 그래서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허함과 절망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같은 감정을 가졌지만 그 때 저수지를 찾았던 걸 지금은 후회한다고 했다. 강재가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부정이 똑같은 안도감을 느낀 이유다. 

 

JTBC 토일드라마 <인간실격>이 그린 어느 저수지와 작은 기차역이 있는 마을에서 강재와 부정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천문대에 오르고 어쩌다 한 텐트 안에서 같이 밤을 지새게 되는 에피소드는 이 드라마가 담아내려는 위로의 메시지를 잘 보여준다. 아픈 아들을 위해 호스트 일을 하며 번 돈으로 비싼 병원비를 충당해오다 결국 아들이 저세상으로 떠나고 절망감에 저수지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정우. 정우와 저수지는 그래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을 상실한 듯한 절망을 은유하는 인간과 공간으로 그려진다. 

 

정우의 죽음은 아마도 부정과 정우가 자신의 실존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을 터다. 정신없이 살아내기 위해 살았지만 알 수 없는 ‘허한 마음’. 정우는 ‘역할 대행’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자신의 존재는 지워진 채 살아가고 있었고, 부정은 아란(박지영)의 책을 대필한 후 그와 갈등을 일으키고 결국 출판사에서도 쫓겨났다. 무언가를 위해 열심히 숨을 쉬며 살아가곤 있지만 자신이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존재가 지워져 있다는 걸 알게 되곤 느끼게 되는 허한 마음. 

 

그래서 부정과 강재는 그 정우가 풍덩 뛰어들었던 저수지를 통해 다시 만난다. 우연히 저수지 근처를 지나다 부정은 그 곳에 마음이 이끌렸고,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은 모습에 누군가 신고해 파출소에 가게 됐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자신을 데리고 가줄 보호자 한 명을 찾기 힘든 부정이었다. 그래서 별 기대 없이 강재에게 ‘보호자 역할 대행’을 요청했고, 놀랍게도 그 먼 길을 강재가 달려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 절망의 공간에서 <인간실격>은 부정과 강재를 통해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위로를 건넨다. 아무 것도 아닌 관계처럼 보였고, 마치 돈을 주면 역할을 대행하는 그런 관계처럼 보였던 두 사람은 서로가 겪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서 ‘삶’의 의지를 다시금 끄집어낸다. 과거 아버지를 화장된 날 어머니와 무작정 기차를 타고 가다 우연히 가게 된 그 길을 이야기해준 강재는 부정에게 문득 이렇게 묻는다. “어디 집 말고 가보고 싶은데 있어요?” 모르겠다는 부정의 말에 강재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산에 갔다가 바다 갔다가 그리고 집으로 갈까요?”

 

그 말은 절망하기도 하고 허한 마음을 갖기도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산에도 가고 바다도 가지만 그럼에도 결국 집으로 간다는 위로가 섞인 제안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천문대를 향한다. 강재는 엄마와 함께 오르던 그 길을 부정과 함께 걸으며 그 때 엄마가 천문대에서 하늘 가득 채워진 별을 올려다보며 한참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해준다. 그 때 어린 강재는 왜 엄마가 울었는지 진짜 몰랐을 터다. 하지만 버스에 두고 온 크림빵과 우유가 아까워서 울었다고 둘러댔다는 엄마의 말을 부정에게 해주는 강재는 이제 어렴풋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지 않았을까. 

 

하늘 가득 반짝 반짝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보며, 엄마는 거대한 우주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가녀린 존재인가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을 인간들이 살아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먼지들이 마치 저 우주의 별들처럼 반짝인다. 그것이 너무 작고 소소하고 가녀려서 갖게 되는 아름다운 슬픔. 엄마는 그걸 느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정과 강재도 그 엄마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같은 걸 느끼고 있었을 지도. 

 

도대체 무엇이 저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소중한 존재들인 인간을 이토록 ‘자격 운운’하며 실격 처리하는 것일까. 어째서 돈과 지위와 성공의 기준으로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저수지 밑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것일까. <인간실격>은 그런 무례한 세상을 에둘러 일갈한다. 작디작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위대해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위로’의 말과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안타깝게도 <인간실격>은 시청률이 낮다. 그건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금의 드라마 시청이 지나치게 당장의 사이다 같은 자극적인 지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답답한 현실에 사이다 한 잔 같은 작품들이 의미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간실격>처럼 묵직한 밥 같은 무게감을 가진 작품을 낮은 시청률로 섣불리 ‘실격’이라 부를 순 없을 게다. 최근 들어 이만큼 진지하게 가슴을 건드리는 드라마를 본 적이 없으니. (사진:JTBC)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