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가 된 <순수의 시대>, 왜 시대를 담지 못했나

 

신하균은 왜 이 영화에 출연했을까. 새로 개봉한 영화 <순수의 시대>는 사극이다. 조선 초기 이방원의 왕자의 난을 소재로 다뤘다. 역사적 사실이야 사극을 조금 봤다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이해되는 것일 게다. KBS <용의 눈물>이나 <정도전> 같은 사극이 다뤘던 그 시대.

 

사진출처:영화 <순수의 시대>

하지만 <순수의 시대>는 그 역사적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이방원(장혁)의 왕자의 난에서 오히려 역적으로 몰린 김민재(신하균)가 기녀 가희(강한나)에게 보내는 절절한 순애보를 다루고 있다. 19금 영화이니 당연히 노출수위가 높고 정사신도 많이 나오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그렇게 특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그런 정사신이 이 영화에 꼭 필요한 부분이었는가에 대한 답변을 영화가 충분히 해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전장에서 수없이 죽음을 넘어서고 누군가를 죽게 한 이 강인한 김민재가 한 여인을 위해 죽음을 불사하는 사랑을 보이는 장면은 뭉클한 면이 있지만 영화는 그 이상의 울림을 담아내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이 가희라는 여인의 삶이 좀 더 민초들의 삶으로 확장시켰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만일 그랬다면 그 핍박받는 삶에 대해 지금의 대중들이 현실적인 공감대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그런 그녀를 끝까지 보호해주는 김민재라는 캐릭터 역시 특별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순수의 시대>는 그 이야기 구조 상으로 보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서민들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서로 권력을 잡기 위해 죽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고 그 사이에 낀 서민들은 이들 권력자들의 손에 핍박받다 아무렇게 죽음을 맞이하고 심지어는 역사적 기록에서조차 삭제된다. 이 얼마나 지금의 현실과 조응하는 면이 많은가.

 

하지만 결과적으로 <순수의 시대>는 이런 폭넓은 의미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김민재와 가희의 지극히 사적인 사랑에만 집중함으로써 이야기를 그저 멜로에 머물게 만든다. 물론 모든 사극이 역사를 빌어와 어떤 의미를 찾아낼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적 멜로를 그리기 위해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끌어왔다면, 그 사적 멜로가 공적인 사건들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가는 영화가 얘기해줘야 했던 게 아닐까.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가 나무랄 데가 없다. 신하균은 그 단단하고 신경질적인 근육의 몸만으로도 영화에 비장미와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장혁은 이방원을 허허실실과 잔인함을 겸비한 인물로 해석해낸다. 그저 섹시 스타로만 이미지화되어 있던 강한나는 의외로 영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고, <미생>에서 장백기라는 스펙남을 연기했던 강하늘은 놀라운 악역 변신을 보여준다.

 

이들 각각의 호연은 대단히 인상적이지만, 그것이 영화에 하나로 묶여지지 않아 힘이 생기지 않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순수의 시대>라고 제목을 지었지만 영화는 그 시대적 의미를 잘 담아내지 못했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는 힘은 신하균의 그 몸에서 나온다. 그 몸과 표정 하나가 전해주는 절절함과 긴장감이 없었더라면 영화는 지리멸렬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상처투성이의 몸을 쓰다듬는 가희의 손길에 좀 더 민초의 의식을 담아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연애>가 그저 그런 멜로라고? 실험작이다

 

신하균이 이처럼 달달했던 적이 있었나. 과거 신하균이 했던 작품들 속 인물들을 보면 어딘지 신경쇠약 일보직전의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다.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이미지는 그래서 아마도 하균신이라는 닉네임이 붙을 정도로 강렬했던 <브레인>의 이강훈이라는 캐릭터일 게다. 그런 신하균이 눈웃음을 살살 치고 심지어 애교를 떤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의 김수영 의원을 연기하는 신하균의 모습은 확실히 낯설면서도 신선하다. 물론 초반에는 예전 신하균의 이미지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그는 차츰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연애의 모든 것'(사진출처:SBS)

반면 이민정은 신하균과는 정반대의 이미지 변신이다. 늘 풋풋한 사랑의 아이콘이었던 이민정은 이 드라마 속 노민영 의원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정치인들에게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 붓는 정의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한국당, 민우당, 녹색진보당이 룸싸롱에서 술판을 벌이고 밀실회의를 하는 광경을 보고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에 그녀는 컵을 집어던지며 이렇게 일갈한다. “애국이 국어사전에서 썩어 빠지겠다 이 개자식들아! 이러니까 국민들이 정치가 정치인들이 국민 뜯어먹고 산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사실 이 드라마에서 연기변신을 하고 있는 건 신하균과 이민정만이 아니다. 김수영 의원의 수석보좌관 맹주호 역할을 연기하는 장광이나 김의원의 비서 김상수 역할을 연기하는 진태현도 지금껏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준다. 둘 다 강렬한 악역을 주로 해왔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보다 더 웃길 수 없고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해내고 있다. 신하균과 진태현 또 신하균과 장광의 연기 합은 그래서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멜로만큼 충분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러고 보면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간 우리가 생각해왔던 정치라는 소재가 가진 상투적인 이미지를 뒤집는 작품이기도 하다. 정치만큼 대중들에게 첨예하고 무겁고 심지어 역겹게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실상 그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도 결국 개인으로 돌아오면 우리와 똑같이 사랑에 빠지고 고민하는 사람일 뿐이다. 어떤 국가나 정당을 위한 선택과 소신 같은 공적인 결정은 그래서 누구나 다 똑같을 수밖에 없는 사적인 연애가 생겼을 때 그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김수영 의원과 노민영 의원의 연애가 쉽지 않은 건 그 때문이다.

 

정치와 로맨틱 코미디의 결합은 그래서 대단히 신선한 화학적 실험이다. 정치가 가진 무거움과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가벼움은 과연 공존할 수 있을까. 정치인으로서의 공적 존재가 연애하는 사적 존재와 공존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 꽤 괜찮은 완성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시청률이 낮은 건 그래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정치 이야기를 원하는 시청층과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시청층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물> 같은 드라마의 성공을 빗대 대중들이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게다. 왜냐하면 그것은 본격 정치 이야기라기보다는 아줌마의 정치인 성장담에 더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고, 정치 역학보다는 대중정서에 더 어필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수사반장>이 수사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80% 범죄자가 된 사연을 소개하고는 나머지 20% 그 범죄자의 등을 최불암이 두드려주는 <수사반장>은 인간극장이자 휴먼드라마일뿐이다. 즉 우리네 드라마의 특성상 본격적으로 정치 역학을 소재로 활용해 성공한 드라마는 많지 않다.

 

따라서 본격적인 정치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으면서도 그 위에 멜로라는 사적인 문제를 얹어 놓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그저 그런 멜로가 아니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달달한 로맨스를 전면에 보여주려 하는 것은 그것이 좀 더 대중적이기 때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전부라는 얘기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은 꽤 많은 것들을 뒤집는 실험작이자 문제작이다. 신하균과 이민정의 연기 변신을 통해 그 화학작용이 만들어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적어도 정치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시청률이 좀 낮다 해서 이 작품을 폄하할 수 없는 이유다.


한석규에서 최민식까지, 신들린 연기 전성시대

사진출처:'범죄와의 전쟁'

드라마든 영화든 요즘 이 맛에 본다. 바로 연기의 재발견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 팽팽한 대본과 군더더기 없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었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진 건 연기자들의 '신들린 연기'였다. 송중기는 꽃미남 이미지에 연기자 이미지를 확실히 부각시켰고, 한석규는 한 가지 장면에서도 계속 변화하는 섬세한 감정 연기로 보는 이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브레인'의 신하균은 야비하게 느껴질 정도로 욕망에 충실한 역할을 보여주면서도 한 편으로 그 인물에 공감하게 만들었다. 하균신이라고까지 불린 신하균과 팽팽한 대결양상을 보여준 정진영 역시 인술을 행하는 명의에서부터 그 껍질을 하나 벗겨낸 가식어린 모습까지 드러내줌으로써 연기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한편 '해를 품은 달'에서는 여진구와 김유정이라는 놀라운 아역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이들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섬세한 멜로 연기는 초반부터 이 사극에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미 30%를 넘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게 된 데는 전적으로 이 두 아역이 남겨놓은 강한 여운이 한 몫을 하고 있다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영화에서도 '신들린 연기'들이 주목을 받았다. '부러진 화살'에서 안성기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이 오히려 강한 효과를 남겼고, 판사 역할로 나온 김응수, 이경영, 문성근의 보는 이를 치 떨리게 만드는 연기가 흥행에 한 몫을 차지했다. 아쉽게도 흥행에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지만 '페이스메이커'의 김명민은 역시 메소드 연기의 또 한 차원을 보여주었다. 완전히 페이스메이커에 빙의된 그의 연기는 그 앙상한 몸과 발만으로도 보는 이를 찡하게 만들었다.

'범죄와의 전쟁'은 그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는 부제가 '신들린 연기 전성시대'로 보일 지경이다. 최민식은 이 작품에서 나쁜 놈들 중의 나쁜 놈 역할을 연기하지만, 그 안에 진한 페이소스까지 담아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나쁜 놈의 전형 속에서 가장의 고단함까지 느껴지는 이 작품은 최민식 특유의 광기어린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에 하정우라는 든든한 아우라가 덧붙여지고, 최근 '뿌리 깊은 나무'로 주목받은 조진웅이 빛을 발하니 그 연기력 대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란할 지경이다.

최근 들어 확실히 연기는 재발견되고 있다. 물론 그간 연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논란은 늘 있어왔다. 특히 드라마에서 툭하면 벌어지는 '연기력 논란'은 이제 대중들이 얼마나 연기에 민감해 하는가를 잘 말해준다. 사실 영화계에서 최민식이나 하정우 같은 배우들의 연기력은 늘 인정받아왔다(물론 영화에서도 겉멋든 배우들에 대한 논란은 계속 있어왔다). 반면 드라마에서 연기력이란 영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만큼 엄밀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감히 이 영역에 전혀 준비되지 않은 연기자들이 잘 생긴 얼굴 하나로 투입 되었던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일로 여겨질 정도다. 최근 들어 러시를 이루는 가수들의 연기 영역 진출은 그 상업적인 목적은 알 수 있지만, 연기자로서의 진정성을 느끼기 어렵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한석규나 신하균이 보여준 것처럼 이제 드라마에서의 연기력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감도 한껏 높아져 있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든 영화든 연기라는 영역이 가진 가치가 재발견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 편에서는 신들린 연기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마당에 다른 한 편에서는 끊임없이 연기력 논란이 쏟아지는 것이 현재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다. 그만큼 겉멋이나 외모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를 보고 싶은 대중들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이 정도 되면 연기자들도 각자 작품을 대하면서 '나는 연기자다'라고 스스로 주장할 수 있을 만큼 온 몸을 던져야 하는 상황이다. 연기가 어디 장난인가. 어쨌든 연기의 재발견, 요즘 이 맛에 드라마든 영화든 보게 된다.


드라마 연기의 새 차원 보여준 한석규 신하균

'SBS연기대상'(사진출처:SBS)

만일 한석규와 신하균이 없었다면? '뿌리 깊은 나무'와 '브레인'은 반쪽 자리 드라마가 됐을 것이다. 그만큼 이 두 사람의 연기는 드라마의 차원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한석규는 짧은 순간에도 계속 해서 변화하는 감정의 선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 세종 이도라는 역사책 속의 박제된 인물을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로 되살려냈다. 신하균은 인간의 내면을 꿰뚫는 깊이 있는 연기로 선악의 차원을 뛰어넘는 욕망과 좌절의 이강훈이란 캐릭터를 창출했다.

사실 TV를 통해, 그 중에서도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보기가 어려운 이 두 사람이 2011년 마지막 날, SBS와 KBS에서 각각 연기대상을 받은 것은 드라마계에 상당한 의미를 던져준다. 물론 영화인들이 드라마로 진출하는 것은 그다지 새로운 일은 아니지만, 어쩌면 2011년을 기점으로 이것이 가속화될 가능성을 이 두 사람을 통해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와 영화의 연기는 그 장르적 특성 상 다를 수밖에 없다. 영화는 큰 스크린에 담겨지기 때문에 연기자에게 좀 더 섬세한 감정 연기를 요구한다. 또 완성된 작품을 다 찍은 후에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연기에 있어서도 좀 더 완성도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드라마는 좀 더 일상 속에 들어와 있는 특성 때문에 연기한다는 느낌이 묻어나지 않을 만큼의 자연스러움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또 시간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순발력을 요하는 특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적 구분은 이제 그다지 의미가 없어지게 되었다. 한석규와 신하균이 보여준 연기의 차원은 영화 속에서의 그 극화된 느낌이 있지만 확실히 섬세하고 완성도 높은 것이었다. 죽은 광평대군 앞에서 오열하는 세종을 연기한 한석규는 그 짧은 시간 속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정을 표정에 담아내는 놀라운 연기를 보여주었다. '뿌리 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 작가는 한석규의 이런 섬세한 감정연기에 대한 믿음을 "대본에 여백을 많이 주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작가들은 오히려 한석규가 그 장면의 감정연기를 어떻게 해석해내는가가 매번 궁금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편 신하균이 연기하는 이강훈이라는 캐릭터는 실로 연기자로서는 쉽지 않은 캐릭터다. 과거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이 보여주던 그 폭주하는 욕망을 다시 발견할 수 있으면서도, 어딘지 잔뜩 상처입어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이강훈이라는 인물은 그 뾰족함에도 불구하고 연민을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다. 광기어린 눈빛 속에 가끔씩 드리워지는 텅 빈 공허감이나 한없이 약하게 느껴지는 처연함은 신하균이 아니라면 도무지 담아내기 어려운 연기의 영역이다. '브레인'은 그래서 하균신이라고까지 불리게 된 신하균의 힘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 드라마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석규와 신하균이 나란히 연기대상을 받은 것은 그래서 이제 드라마에서도 연기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징후로 읽힌다. 즉 연기의 차원이 달라지고 있다는 건, 작품의 차원이 달라진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제 드라마는 그저 일상 속에 틀어놓는 그런 장르가 아니라, 영화처럼 좀 더 집중해서 몰입하는 장르가 되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제 드라마에서도 필요한 것은 영화가 갖고 있던 수준의 대본과 연기와 연출의 완성도가 되었다. 그만큼 대중들의 눈높이는 한껏 높아졌다. 한석규와 신하균의 대상 수상이 앞으로의 드라마에 시사하는 바는 이만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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