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무섭지 않으세요? 그랬더니 그 형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나도 무서워. 검은 연기 때문에 발끝도 안 보일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그래서 내가 ‘그럴 땐 무슨 생각 드세요, 형?’ 그랬더니 딱 하나. 내가 여기서 지면 저 사람은 죽는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소방관’에서 진섭(곽도원)이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소방관이라는 직업의 숭고함을 드러낸다.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목숨을 거는 그들이다. ‘소방관’은 이들의 숭고한 삶을 담아낸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는 2001년 홍제동 다가구주택에서 벌어졌던 방화사건을 소재로 가져왔다. 아들이 미처 나오지 못했다는 주인의 말 한 마디에 몸 사리지 않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갑자기 무너진 건물은 7명의 소방관을 삼켜버렸다. 불법주차 차량들 때문에 중장비가 투입되지 못한 현장에서 255명의 대원들이 맨손으로 콘크리트를 뜯어내면서 구조를 시도했지만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왔다. 이 사건이 더더욱 안타까웠던 건 나오지 못했다는 아들이 실은 불을 낸 장본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워낙 잘 알려진 실화지만, 이 영화는 강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던 화재와 그 현장에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삶 깊숙이 들어감으로써 그것이 그저 임무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걸 실감하게 해준다.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 안게 하시고 공포에 떨고 있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 목숨을 잃으면 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가족을 돌보아 주소서.’ 자신을 위한 내용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가 더 절절해지는 계절이다.(글:동아일보, 사진: 영화 '소방관')
'이 드라마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으나 일부 상황, 인물, 이름, 사업체, 사건, 지역에는 극적효과를 위해 허구를 가미했습니다.' SBS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은 그런 고지로 시작한다. 보통 '실제와는 상관이 없다'고 고지하는 내용과는 정반대다. 이런 고지를 하게 된 건 이 작품이 재심 전문변호사 박준영 변호사와 이를 기사화해 유명해진 박상규 기자의 실제 사건과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다. 이들이 쓴 '지연된 정의'에 등장하는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이미 영화나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뤄졌던 실제 사건들이고, 이 사건들의 재심과정은 <날아라 개천용>의 주된 스토리다.
실제 현실에서 재심으로 승소하는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날아라 개천용>의 특별한 이야기는 판타지와 현실이 공존하는 이 지점에서 폭발력이 생겨난다. "저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하고 속 시원하게 펼쳐지는 드라마 내용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도 그것이 현실과는 다르다고 질문을 던질 때, 이 드라마는 말한다. 그것이 실제 벌어졌던 일이라고.
그런데 이렇게 잘 나가던 <날아라 개천용>에 박상규 기자의 드라마 속 인물인 박삼수 역할을 연기한 배성우의 음주운전 적발사실이 알려지면서 암운이 드리워졌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의 진정성이 가장 강력한 힘이었던 <날아라 개천용>은 더 이상 배성우를 박삼수 역할로 세울 수 없게 됐다. 박삼수는 현실적인 인물이지만 정의를 위해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 아닌가. 그러니 시청자들로서는 음주운전 사실이 밝혀진 배성우가 연기하는 박삼수에 몰입하기가 어렵게 됐다.
결국 배성우는 하차하고 대신 다른 배우가 그 역할을 이어받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뒤늦게 그 역할을 맡아봐야 그 배우가 얻을 건 별로 없는 그런 상황. 배성우의 입장을 챙길 수 있는 건 소속사뿐이 없었다. 애초 같은 소속사 배우였던 이정재가 거론되었지만 대신 소속사 대표인 정우성이 대신 그 역할을 떠안았다. 그리고 몇 주 간의 휴방을 거쳐 드디어 1월 1일 방영을 재개했다.
정우성은 17회부터 등장한다고 한다. 그래서 약 2주간은 배성우가 나오는 <날아라 개천용>을 계속 봐야 한다. 최대한 배성우가 맡은 박삼수 기자의 분량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이 드라마에서 박태용 변호사(권상우)와 함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역할을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박태용 변호사가 맡은 재심사건이 가까스로 증거를 찾아내 승소의 실마리를 잡게 되고 그걸 기사화했던 박삼수 기자의 '기사 펀딩'에 5억이 넘는 기부금이 모이면서, 그 돈의 쓰임새를 파고든 장윤석(정웅인) 검사와, 박태용 변호사를 아예 당으로 끌어들이려는 강철우(김응수) 시장으로 새로운 갈등국면이 생겨났다.
결국 펀딩 받은 돈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박태용 변호사의 선언은 그래도 현실적인 생계를 챙기려던 박삼수 기자와 갈등을 일으키고, 여기에 정치권에서 박태용을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은 이들이 애초 꿈꾸던 초심을 흔들어 놓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 박삼수 기자의 역할을 줄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배성우가 연기하는 박삼수 기자의 존재감이 커질수록 이제 17회부터 이를 이어받을 정우성의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지점은 배성우에서 정우성으로 배우가 바뀌게 되는 사태를 겪고 있는 <날아라 개천용>의 힘이 빠지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1월 1일 방송된 13회 시청률은 5.7% 휴지기 전인 12월 12일 방송된 12회 시청률 5%보다 상승 곡선을 그렸다. 음주 사건 이후 떨어진 시청률이 배성우가 계속 출연하고 있음에도 오름세로 전환된 것. 어째서 이런 특이한 흐름이 생기고 있는 걸까.
그건 그나마 이 작품이 허구가 아니라 실화에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부적절한 사유로 인해 배성우가 하차하고 정우성이 그 역할을 이어받게 됐지만, 그래도 그 배우들이 연기하는 박삼수라는 인물은 가상이 아닌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 진정성을 그나마 붙잡아주고 있다. 즉 실화의 실제 인물을 저들이 재연하고 있다는 이 작품의 특이한 관전 포인트는, 배우 교체라는 사태 속에서도 그나마 작품을 계속 몰입하게 만들어주는 힘을 부여하고 있다.(사진:SBS)
"내가 이 새끼들 싹 다 엎어버려." "아유 진짜 이것들 진짜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이거 진짜. 니들 나한테 다 죽었어." SBS 새 금토드라마 <날아라 개천용>은 이렇게 각각 외치는 박삼수(배성우) 기자와 박태용(권상우) 변호사의 일갈로 시작한다. 이들은 무엇에 이리도 분노하는 걸까.
사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시청자라도 <날아라 개천용>의 실제 모델이 된 인물들이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라는 사실이라는 걸 안다면 저들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쉽게 감을 잡을 게다. 박준영 변호사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재심을 소재로 다뤘던 영화 <재심>의 실제 인물로서 알려진 유명한 재심 전문 변호사가 아닌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해 화제가 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박상규 기자는 바로 그 박준영 변호사의 재심 사건들을 보도함으로써 무고한 피해자들의 무죄와 재심을 이끌어낸 기자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을 보도했고 최근에는 양진호 위디스크 회장의 갑질 영상을 최초 보도,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의 비밀 안락사 폭로, 양승태 사법부 재판거래 피해자 보도 등을 한 기자다.
그러니 이들의 실제 이야기를 드라마로 담은 <날아라 개천용>의 인물들의 분노가 지목하는 건 분명하다. 그건 '진실'과 '정의'가 권력이나 위력에 의해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다. 이들이 쓴 책 <지연된 정의>에는 "주먹으로 치고 몽둥이로 때리는 고문보다 잔혹하고 교묘한 게" 바로 "많이 배워서 똑똑한 놈들이 저지르는 '조서 조작'"이라는 글귀가 들어 있다. 이른바 '배운 놈들'이 더 "교묘하게 피의자가 허위자백하게 만들고 조서 조작"을 해서 나중에 검증하기도 어렵게 만든다는 것.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이야기를 드라마화하면서 그 제목에 '개천용' 같은 문구가 달린 건 이들이 스펙사회에서 그 위치에 서 있는 인물이라는 걸 드러내기 위함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고졸 출신으로 사법고시 패스해 변호사가 된 드라마 속 인물 박태용이나, 이름도 잘 모르겠는 수천대학교를 나와 현장에서 구르며 발로 뛰어 특종을 잡는 것으로 인터넷매체의 베테랑기자가 된 박삼수나 스펙사회에서는 '배운 놈' 측에 들지 않는 개천용이기 때문이다.
그 어려운 재심에 성공해 이제 의뢰인들이 줄을 서고 돈방석에 앉을 줄 알았던 박태용이 오히려 재심 같은 힘들지만 돈은 안 되는 사건들만 밀려오고 그래서 결국 수입이 없어 직원들까지 다 떠나가 심지어 재심사건의 의뢰인이었던 노숙자에게 돈을 빌리는 상황은 '배운 놈들'만이 적당히 해먹고 살아가는 현실을 말해준다. 약자들을 위해 변호하는 변호사들은 그래서 점점 가난해지고, 강자들을 위해 변호하는 이들만 더 떵떵 거리며 사는 현실.
이것은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며 살아가는 기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사, 의사, 변호사, 기자 등 배운 놈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는 스펙사회 속에서 박삼수 같은 기자는 특종을 내도 장윤석(정웅인) 검사에게 모욕을 당하는 처지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쓰면 소소한 기사가 되지만 그가 쓰면 특종이 되는 이유를 그는 발로 뛰며 현장에 직접 가는 데서 찾는 박삼수는 자신이 "타고 났다"며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온 삶이 어려운 이들의 이야기를 남다르게 듣게 만들었다 말한다.
실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박상규 기자가 대본을 쓴 <날아라 개천용>은 그래서 무엇보다 생생한 사건들이 강점인 드라마다. 궁금해지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이들 실제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과연 이 드라마가 어떤 방식으로 담아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진실과 정의에 대한 갈증이 남다른 지금의 대중들에게 다소 돈키호테 같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권력과 도전하는 이들의 행보는 얼마나 큰 속 시원한 사이다를 안겨줄까.
사실 최근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기자나 변호사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캐릭터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기자는 대부분 주인공을 괴롭히는 '기레기'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물론 실제 현실이 그런 점도 적지 않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본분을 지켜가며 소신대로 살아가는 기자나 변호사들도 존재한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싶었던 기자와 변호사에 대한 갈증을 풀어줄 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거짓에 분노할 줄 아는 진짜 기자와 변호사에 대한 갈증을.(사진:SBS)
최근 “이거 실화냐?”라는 표현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사실인데도 믿기지 않는 상황을 일컬을 때 하는 말. 영화 <박열>은 아마도 이 표현이 잘 어울리는 작품이 아닐까. 관객들이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걸 감독 또한 알고 있었다는 듯이 이 영화는 “모든 게 실화”라는 자막 고지와 함께 시작한다.
사진출처:영화<박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로 시작하는 ‘개새끼’라는 박열의 시에 단박에 반해버린 가네코 후미코는 그에게 동거를 제안하고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드라마틱한 사랑과 삶은 도무지 실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그는 시에서 드러내듯 스스로를 ‘개새끼’라고 치부하지만,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시대의 반항아.
간토대지진이 민중들의 소요사태를 일으킬 것을 걱정한 일본 수뇌들은 조선인들을 희생양으로 내세워 계엄령을 선포한다. 이른바 자경단이라는 이름으로 조직된 일본인들이 죽창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조선인들을 살해하고, 그 와중에 박열(이제훈)은 대역죄라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인물은 자신을 사형시킬 수도 있는 일본의 재판부 앞에서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고 해야 할 말들을 연설처럼 쏟아내는 역전된 상황을 만들어낸다.
“어차피 사형당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가 일본의 재판부를 쥐락펴락하는 상황들은 저런 일이 실제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통렬하다. 그리고 평생의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와 옥중에서 또 재판정에서 보이는 애정행각들은 애틋하고 뭉클하면서도 저들을 욕보이는 것 같은 통쾌함을 선사한다.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할 이야기를 하고 또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하고 있다는 느낌이 주는 통쾌함.
<박열>은 우리가 막연히 일제강점기라고 생각하면 핍박받고 당하는 우리의 모습들만을 떠올려왔던 것이 하나의 선입견이라는 걸 말해주는 영화다. 우리에게도 박열 같은 청년이 있었다. 총칼이 위협을 해도 심지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할 말을 했던 청년. 비열한 일본 제국주의 앞에 수천 명의 조선인들이 죽어나갔다는 걸 재판정에서 오히려 성토했던 청년.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가네코 후미코 같은 일본 청년도 있었다. 그녀는 일본인이었지만 잘못된 일제에 항거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진정한 사랑과 소신을 위해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재판정에서 최종 사형 판결이 내려지기 전 그녀는 마지막 진술에 그 마음을 담았다. “나는 박열을 알고 있다. 박열을 사랑하고 있다.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과실과 모든 결점을 넘어 나는 그를 사랑한다.... 재판관에게도 말한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박열과 함께 죽는다면 나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한다. 설령 재판관들이 우리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해도 나는 당신을 결코 혼자 죽게 하지는 않겠다.”
<박열>은 일제강점기의 스무 살이 갓 넘은 한 청년의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가 지금에도 전해주는 의미는 실로 크다고 여겨진다. 잘못된 세상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 했던 이 실존인물의 삶은 팍팍한 현실이 힘겨운 지금의 청춘들에게도 충분한 위로와 격려가 되지 않을까. 적어도 우리에게도 이런 통쾌한 역사가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건 실제 역사가 기록하고 있는 100% 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