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2012년, 싸이에게 어떤 일이...

 

싸이는 이미 2001년부터 준비된 가수였다. 당시 발표한 데뷔곡 ‘새’는 압도적인(?) 비주얼에 반전의 쾌감마저 주는 에너지가 넘치는 춤과 끼, 게다가 독특한 안무와 엽기적인 가사까지 싸이만의 보여줄 수 있는 독특한 세계를 벌써부터 펼쳐 보여주었다. 당대 유행하던 ‘엽기 코드’와 맞물려 싸이는 단박에 엽기 가수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 후로 마약사건 및 군복무 문제 등 몇몇 악재가 겹치면서 정상적인 가수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싸이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이미 준비된 자의 기다림이었다. 그는 시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이'(사진출처:YG엔터테인먼트)

그리고 2012년 그 시대가 열렸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발표 후 몇 주만에 미국시장에서 화제가 되는 곡이 되었다. ‘CNN’, ‘LA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 ‘허핑턴포스트’ 같은 매체들이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한 아침방송이 진행자는 방송 도중 ‘강남스타일’의 안무인 말춤을 시연하기도 했다. 로비 윌리암스, 조쉬 그로반, 티페인 같은 유명 뮤지션들이 SNS와 블로그에 잇따라 ‘강남스타일’을 극찬하는 글을 올려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온라인에 쏟아져 나오는 ‘강남스타일’ 패러디 영상들이다. 실제 대중들이 열광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물론 ‘강남스타일’은 해외시장을 겨냥하고 나온 곡이 아니다. 말 그대로 미국에서 갑자기 ‘빵 터져버린’ 사건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그저 우연한 행운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이것은 2001년 데뷔부터 2012년 사이의 흐름을 싸이를 중심으로 재구성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012년의 싸이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그가 가진 독특한 세계(이미 데뷔연도부터 준비된)가 하나하나의 음악적인 환경을 만나면서 드디어 폭발한 것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먼저 2001년도에는 없던 SNS 환경이 그렇다. 만일 당대에 ‘강남스타일’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지금처럼 미국에서 갑자기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거란 얘기다. SNS 환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싸이라는 새로운 K팝 가수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첫 번째는 SNS 환경으로 인해 다양성의 세계가 열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K팝이 해외에서 주목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주류 음악에만 머물지 않게 된 사람들은 무언가 색다른 음악을 찾기 시작했고 거기서 K팝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이었다.

 

싸이 같은 독특한 가수가 대중들로부터 인정받고 사랑받게 된 이유도 어찌 보면 이 다양성의 시각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이 다양성의 세계에서 발견된 K팝이 어느 정도 해외에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싸이라는 새로운 K팝 가수가 눈에 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즉 두 번째로 SNS 환경으로 인해 촉발된 K팝이 2012년의 싸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들어 국내에서 생겨나고 있는 B급 정서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과 공감 역시 2012년의 싸이를 촉발시킨 원인이다. 작금의 개가수(개그맨+가수)들이 만들어낸 B급 정서의 폭발은 뭘 해도 잘 바뀌지 않는 답답한 현실과 관련이 있다. 그 속에서 자기비하를 하거나 자기를 포함시켜 풍자해버리는 이 키치적 정서는 개가수들을 만나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무한도전>의 각종 가요제들이 열어 놓은 물꼬가 B급 정서 가득한 개가수들의 세계로 이어진 것. 본래부터 B급 정서의 본좌였던 싸이에게 이런 변화는 반가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남스타일’이 겨냥했던 것이 바로 이 자신의 장기였던 B급 정서로의 복귀였으며 이것이 엉뚱하게도 미국에서의 반응으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에게 ‘강남스타일’은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 코믹한 키치적 정서에 대한 재미적인 공감, 일렉트로닉 팝이라는 보편적인 트렌드, K팝은 아직은 낯설지만 ‘강남스타일’만이 가진 익숙한 느낌(미국식 B급 유머, 말춤에서 연상되는 카우보이, 퍼포먼서가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가수 같은), 하지만 싸이 특유의 개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에너지+끼) 같은 것이었을 게다.

 

2001년부터 2012년 최근까지 K팝에 일어난 일련의 변화들을 염두에 두고 싸이의 이번 성공을 들여다보면 ‘강남스타일’은 말 그대로 ‘빵 터져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강남스타일’을 들고 나오면서 스스로도 밝혔듯이 이 곡은 ‘초심으로 돌아간’ 노래다. 싸이는 처음부터 준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고쇼>, 싸이가 들려준 ‘쇼 머스트 고 온’

 

“관객분들이 춤을 추시면서 울더라구요.” <고쇼>에 출연한 싸이는 엄지발톱이 빠지는 부상을 입은 채 강행했던 쇼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관객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는 호응해주는 “여러분이 진통제”라고 선언한 싸이는 그렇게 한참을 관객과 하나 되어 쇼를 하면서 진짜 통증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안 아프다”고 외쳤을 때 관객들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벽한 공감의 힘이 만들어내는 기적이다.

 

'고쇼'(사진출처:SBS)

함께 나온 박칼린은 싸이의 에피소드에 더해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지휘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 쓰러졌는데, 누워서도 지휘를 했다는 것. 그리고 잠시 인터미션이 있은 후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벌떡 일어나 지휘를 하더라고 했다. 또 <명성황후>를 맡았을 때 유독 많았던 단원들의 사건사고들을 얘기하면서 “그런데 관객들은 그런 거 하나도 신경 안 쓰거든요”라는 말로 아무리 힘겨운 상황에서도 왜 쇼는 계속되어야 하는가(Show must go on)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싸이는 처음 데뷔하던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 때문에 고민하는 윗분들에게 싸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끼를 보여주려 안간힘을 썼다는 것이다. 그는 그들이 가는 주점에까지 따라가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끼를 노래와 춤으로 보여주었다고 했다. 사실 가수로서는 독특한 외모를 가진 그가 어떻게 그 불리한 조건들을 뒤집었던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고쇼>가 시작할 때 고현정은 이 프로그램에서 주목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만한 부담으로 다가갔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예능 출연이 사실상 처음인데다, 그것도 자신의 이름을 건 쇼라는 중압감이 그녀를 얼마나 짓눌렀겠는가. 고현정은 초반 이 대중들에 의해 집중되는 시선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사실 이건 웬만한 프로 예능인들도 이겨내기 어려운 일이다.

 

리액션은 과장되게 보였고, 때로는 너무 과도하게 쇼를 만들려는 욕구가 앞서기도 했다. 자신을 너무 드러내려 하자 게스트가 잘 안 보이는 결과도 만들었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영 좋지 않았다. “왜 예능을 하겠다고 해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는 한탄이 나올 법 했다. 옆으로 서 있을 때는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나던 그녀가 중심에 서니 모든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사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부담 가는 일이다. 진행의 신이라는 유재석도 선뜻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토크쇼는 기본적으로 초대받는 게스트에 집중시켜야 성공할 수 있는데, 자신이 과도하게 부각된 토크쇼 형식 자체가 이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못해도 비난을 혼자 다 받을 수밖에 없고, 잘 해서 게스트를 부각시킨다고 해도 자신의 공은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현정은 최근 들어 초반보다 확실히 <고쇼>에 적응하고 있다. 먼저 자신에게 주목되는 과도한 시선을 떨쳐낸 것이 주효했다. 윤종신이 거의 전면에서 이끌고 고현정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질문들(때론 직설적으로)을 툭툭 던지는 식이다. 박칼린에게 “저는 뮤지컬 그거 간지러워서 못 보겠다”는 식의 과감한 질문도 그녀 특유의 솔직함이 덧붙여지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게다가 누군가 나이나 과거 외모에 대해 언급하면 스스럼없이 공격을 받아주는 여유까지 보여준다.

 

이렇게 된 것은 고현정이 첫 예능이라는 여러모로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자신의 위치를 찾아낸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싸이와 박칼린이 들려준 ‘쇼 머스트 고 온’의 에피소드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쇼>를 하면서 차츰 성장하고 있는 고현정의 이야기처럼 여겨진 것은 그 때문일 게다. <고쇼>. 이제 이 쇼는 ‘고현정 쇼’라는 부담스러운 외형을 벗고 ‘쇼 머스트 고 온’의 의미를 담은 <고쇼, Go show>로 진화하고 있는 인상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여전히 고현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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