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부는 80년대 복고 트렌드, 그 이유

'써니'(사진출처:토일렛픽쳐스(주))

'과속스캔들'로 830만 관객을 기록했던 강형철 감독이 이번에는 '써니'로 일을 낼 모양이다. 벌써 2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써니'는 중년의 나이에 우연히 만나게 된 친구를 통해 여고시절 7공주로 지냈던 추억을 찾아가는 영화. 특히 80년대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가득 채워져 있다. 교복 자율화로 어딘지 촌스러워 보이는 옷차림에서부터 음악다방에서 차 마시며 음악 듣던 그런 풍경들, 또 '젊음의 행진', '영11' 같은 그 때를 떠올릴 수 있는 TV프로그램들은 물론이고, 그 때 최고의 스타였던 소피마르소를 떠올리게 하는 요소들이 관객들을 80년대의 추억으로 안내한다. 그 무엇보다 압권은 음악. Joy의 'Touch by touch'나 이 영화 제목이기도 한 보니엠의 ‘Sunny',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영화 '라붐'의 주제가였던 리차드 샌더슨의 'Reality' 등이 OST로 등장해 당대의 추억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4월에 개봉했던 '위험한 상견례' 역시 80년대를 배경으로 다뤄 흥행에 성공한 영화. '위험한 상견례'는 사실 모두가 그렇게 흥행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막상 개봉하고 나니 4월 비수기 영화가에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 모은 최고의 영화가 되었다. 거기에는 역시 80년대 배경의 복고 코드가 자리한다. 경상도 출신 여자가 전라도 출신 남자와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지만, 지역감정은 물론이고, 프로야구 열풍, 롯데와 해태의 대결구도 등등 80년대 추억 코드들이 관객들을 사로잡으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복고 분위기는 영화가만이 아니라 TV를 통해서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옛 노래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도 그 대표적인 복고의 흐름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조용필의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가 '나는 가수다'의 박정현과 '위대한 탄생'의 정희주에 의해 불려지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고, 변진섭의 '너에게로 또다시', 윤복희의 '여러분', 이선희의 '나 항상 그대를' 같은 노래들이 재발견되었다. 이른바 '과거 음악의 재발견'은 요즘 예능의 한 트렌드가 되었다. 한편 이제 곧 방영될 '불후의 명곡' 시즌2는 이런 옛 가수들의 노래를 현재의 아이돌들이 경연식으로 부른다고 한다. 또 최근에는 개그맨 유세윤과 뮤지가 듀오로 부른 '이태원 프리덤'이 주목받고 있는데, 그 음악적인 코드 역시 80년대 디스코 풍을 그대로 담고 있다.

KBS에서 방영을 준비중인 중년판 '1박2일', '낭만을 부탁해'역시 복고 트렌드다. 이 7080 버라이어티에는 가수 전영록, 김정민, 배우 최수종, 개그맨 허경환, 정주리, KBS 가애란 아나운서 등 6명으로 구성된 '낭만원정대'가 출연하는데, 매주 특별한 주제로 1박2일 여행을 떠나는 과정을 담는다고 한다. 7080세대의 추억과 낭만이 서린 장소를 방문해 당시 유행하던 음악, 게임 등을 소개하고, 그 시절의 '로망'도 재연한다는 것.

그렇다면 도대체 왜 7080을 겨냥한 복고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현재 새로운 문화 구매층으로 등장하고 있는 중년세대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들이 향수할 수 있는 시대가 바로 80년대라는 것. 사실 이 중년세대들은 IMF를 겪으면서 어떤 문화 소비에 있어서는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들어 자신들만의 문화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직장인 밴드 열풍이라든가, 인디문화부터 팬덤에까지 젊은 층의 문화에 동참하려는 모습들, 각종 아웃도어 활동을 통해 여가문화를 만들어가려는 움직임들이 그런 사례들. 이렇게 문화적인 욕구가 생겨나고 있는 중년세대들이 있기 때문에 대중문화 콘텐츠들도 이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복고 트렌드라고 해서 7080세대들만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복고 콘텐츠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지금의 관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똑같은 노래라고 해도 지금의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는 과정을 거치면 그 향유하는 세대도 폭넓어지게 되기 마련. 즉 중년 세대들은 그 노래를 통해 과거 추억을 떠올리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 자체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즉 이러한 복고 콘텐츠의 또 다른 특징은 세대 통합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부터 나이든 세대까지 나란히 앉아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추억은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추억이 진짜 기억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억이란 지금 현재 시점에서 되돌아본 과거이고, 그렇게 재구성된 과거를 말한다. 즉 추억은 고통스러운 현실조차도 아름다운 기억으로 바꿔놓는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추억 코드가 대중들을 사로잡는 이유다.


'써니', 당신의 추억만큼 재밌는 건 없다

'써니'(사진출처:토일렛픽쳐스(주))

익숙한 80년대 풍경. 매캐한 최루탄 냄새와 일렬로 도열해 있는 전경들. 그리고 그들과 대치해 있는 학생들. 일촉즉발의 상황. 그리고 급기야 뒤엉켜버리는 전경들과 학생들, 시민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순간 배경음악으로 흐르는 Joy의 'Touch by touch'. 80년대를 살았던 사람치고 이 잿빛 기억의 시대를 순식간에 발랄한 추억으로 만들어놓은 이 장면에서 빵 터지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써니'가 위치한 유쾌한 지점은 바로 이 장면 속에 압축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유쾌하고, 어떻게 보면 도발적인 '써니'의 이 기묘한 조합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광주 민주화 운동을 초반에 겪은 80년대는 시대적으로만 보면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에게는 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참담하기까지 한. 그러나 이것은 사진처럼 찍혀진 현실이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기억을 통과해 덧붙여지고 각색된 추억의 그림이 아니다. 기억이란 우리가 겪었던 그 힘겨운 삶과 고통스런 시간들마저 달콤한 추억으로 바꾸어놓는 기묘한 생물이 아닌가. 피가 튀고 심지어 사람이 죽어나가는 살벌한 데모의 현장마저 Joy의 'Touch by touch'가 흐르는 고고장의 한 풍경처럼 발랄해질 수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써니'가 관객들을 흐뭇하게 만드는 것은 다소 왜곡되어 있지만 그것이 허용되는 추억의 시간대를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현재 중년이 된 나미(유호정)가 여고시절 써니파 7공주의 리더였던 춘화(진희경)를 병원에서 만나면서 시작한다. 말기암인 춘화는 죽기 전에 써니파 7공주들이 보고 싶다 말하고 나미는 그녀들을 찾아 추억의 여행을 떠난다. 특별할 것 없는 뻔하디 뻔한 '영화는 사랑을 싣고'류의 스토리인 셈이다. 하지만 '써니'는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당대를 살아왔다면 겪었을 만한 공감대 가는 이야기들을 줄줄이 풀어놓는다. "설마 불치병은 아니겠지?"하는 물음에 "얼마 못산대."하는 드라마의 클리쉐 앞에 병실이 온통 뒤집어지는 풍경은 위안 없던 시절 드라마에 푹 빠져 살던 서민들의 씁쓸하지만 우스꽝스런 삶을 공감가게 포착하고, 패싸움에서 기가 눌리자 뒤돌아서며 괜스레 "젊음의 행진 보러 안가냐?"하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당대의 코드들이 우리의 추억을 자극한다.

특히 80년대라면 꼭 있었을 법한 캐릭터들은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다. 늘 고등학교라면 존재하던 18대1의 신화로서 진덕여고 의리짱 춘화(강소라)가 있고, 외모에 집착하는 쌍꺼풀에 목숨 건 못난이 장미(김민영), 욕으로 싸우는 욕쟁이 진희(박진주), 문학소녀 금옥(남보라), 미스코리아를 꿈꾸는 복희(김보미) 그리고 누구나 꿈꾸었을 하이틴 잡지 표지모델 수지(민효린)가 있다. 영화는 이 어디선가 누구나 한번쯤 봤음직한 캐릭터들에, 당대의 코드들인 나이키, 교복자율화, '젊음의 행진'이나 '영11' 같은 TV 프로그램, 당대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소피 마르소 등등 추억의 그림들을 덧붙여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이처럼 굳이 새로운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코드들만으로 관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추억을 끄집어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써니'는 타자의 이야기에서 이제 관객들 자신의 이야기로 전화된다. 물론 추억이라는 필터를 낀 청춘의 달콤 상큼한 이야기로.

무엇보다 '써니'에 깔리는 음악은 이 영화가 전해주는 추억 불러내기 효과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Joy의 'Touch by touch'는 물론이고, 나미의 '빙글빙글'이나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보니엠의 ‘Sunny'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 또 소피 마르소가 주연했던 영화 '라붐'의 주제가로 리차드 샌더슨의 'Reality'가 이 영화를 오마주해 흘러나오는 장면은 '써니'라는 추억 열차를 타는 마법의 열쇠 역할을 한다. 음악만큼 즉각적으로 추억과 접점을 만들어주는 장르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악은 또 얼마나 이성을 무장해제시키며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가.

입소문을 타고 점점 흥행을 향해 달려가는 '써니'의 성공은 추억이 어떻게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콘텐츠로 자리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굳이 어떤 특정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보다는 그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아이디어를 던져주는 것만으로 추억은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추억을 다루는 콘텐츠는 물론 과거라는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게 만들어져 나오는 완제품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것으로 재조립되는 조립품의 특징을 갖는다. 저마다의 기억을 환기시켜 추억으로 조립되는 콘텐츠일수록 저변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써니'는 이 저변을 넓히기 위해 심지어 '7공주'가 가질 수 있는 여성들만의 공감대라는 틀마저 깨버린다. 여성의 시선이 아니라 남녀를 떠난 인간이라는 보편적 시선을 담아놓은 것. 그래서 '써니'는 출연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이지만 남성들도 공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된다. 그 누구의 것이든, 또 아무리 힘겹다고 하더라도, 추억 속에서 찬란하지 않은 청춘이 있으랴. 눈물이 나면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되는 것은 그 추억이 갖는 힘겨움과 찬란함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써니'는 그 햇빛 가득한 나날의 한 자락을 환기시키는 유쾌한 영화다.

'청춘불패', 제2의 써니가 필요하다

"나도 여기 싸고 싶다." 넓게 펼쳐진 정원에서 빅토리아가 서툰 한국말로 말하자, "싸고 싶다가 아니고 살고 싶다!", 하고 써니가 고쳐준다. 사실 고쳐준 것이 아니라 빅토리아의 서툰 말투를 가지고 말장난을 한 것. 그러자 빅토리아가 다시 고쳐 말하는데, 이번에는 써니가 이 말을 '쌀국수'로 몰아간다. "쌀국수도 아니고..." 우연히 지나치면서 나왔을 이 짧은 대화는 그러나 써니가 가진 특유의 예능 순발력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써니가 '청춘불패'에서는 딱 그 주인공이었다. 써니와 유리가 '청춘불패'에서 빠지고 나서 이 프로그램은 분명 구심점이 흔들렸다. 거의 대부분을 김신영이 이끌어나가고 있지만(물론 이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그녀를 받쳐줄만한 아이돌이 눈에 띄지 않았다. 사실 '청춘불패'는 뭐니뭐니해도 걸그룹 아이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김신영이 아무리 진행을 해나간다고 해도 그녀에게 전적으로 기대서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써니의 빈자리가 느껴질 수밖에 없다.

써니가 특별게스트로 참여한 일본특집 편에서 김신영의 진행은 써니의 닭살 애교로 살아났다. 버스 안에서 김신영은 써니에게 '일본식 애교 3종세트'를 요청했고, 써니는 특유의 주부애(주먹을 부르는 애교)를 선보였다. 그러자 김신영은 거기에 맞춰 “오랜만에 주먹을 부른다”며 “토쏠리노 노오데쓰(토하시면 안됩니다), 비닐봉다리 후루룩데쓰요(토는 비닐봉지에 하세요)"라고 개그를 던졌다. 개그맨인 김신영과 아이돌인 써니의 조화가 빛나는 장면이었다.

게스트로 참여했기 때문에 써니는 그다지 전면에 나서지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써니가 거기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청춘불패'는 어떤 활기가 느껴졌다. 특히 써니와 또 다른 콤비를 이루던 효민은 잠자는 써니를 두고 이른바 병풍 개그를 환기시켰다. 늘 써니의 병풍을 자처했던 효민이 이번에는 카메라 앞에 서서 써니가 뒤에 있다고 말하며 그 상황을 뒤집어버린 것. 이것은 효민이 가진 병풍이라는 캐릭터에 써니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다지 튀는 행동을 하지는 않았던 써니지만, '청춘불패'에서 그녀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일 잘하는 여자는 처음 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그렇다고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역할 또한 톡톡히 해냈다. 중요한 건 자신 혼자 개인기를 통해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멤버들과의 관계(콤비)를 통해 '청춘불패' 전체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써니가 특별 게스트로 참여한 '청춘불패' 일본 특집편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존재감이라는 것이 무엇을 통해 빛나는 지를 잘 말해준 사례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써니와 유리가 빠지고 빅토리아와 주연, 김소리가 새롭게 합류하여 과도기에 처해있는 '청춘불패'가 고민해야할 숙제로 남아있다. 써니의 빈 자리를 채워주고 전체 팀원들의 캐릭터를 살려낼 차세대 아이돌 분위기메이커는 누가 될 것인가. '청춘불패' 본연의 자세인 시골에서의 일에도 열심이면서, 또 예능으로서의 웃음 또한 놓치지 않는 제2의 써니가 필요한 시점이다.

'청춘불패'에 찾아온 봄, 유치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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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남면 유치리. '청춘불패' 아이돌촌은 지극히 평범하다. 무심코 가다보면 지나치기 쉬운 그런 동네. 그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청춘불패' 촬영하는 날이다. 아이돌촌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멀찌감치 서서 그 신기한 일(?)을 구경하는 점잖은 시골 아저씨들은 때 아닌 북적임이 그다지 싫지 않다는 얼굴이다.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것들(?)이 몸빼 바지에 장화 신고 농사일이라고 서툰 짓을 하는 게 마냥 예쁘다는 표정이다.

아이돌촌 주변으로는 출연진과 촬영팀과 스텝들로 정신이 없다.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게 바닥에 이리저리 뻗어나간 전선줄들이 촬영을 실감케 한다. 집 바깥에서 뭔가를 심으려는 듯 곰태우와 효민은 푯말을 들고 노촌장과 뭐라 한참 신나는 대화를 나누고, 트랙터로 밭을 순식간에 갈아버린 구하라는 멋지게 거기에서 뛰어내린다. 몸빼를 입어도 아이돌은 아이돌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어쩜 저리도 빛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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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샤는 성인돌 답게 농익은 몸 개그를 선보이고, 써니는 주부애(주먹을 부르는 애교)를, 선화는 특유의 백지 순수 캐릭터를 돋보인다. 청순한 듯 섹시한 자태로 서 있는 유리와 노란 머릿결을 휘날리며 막내 티를 내는 현아는 또 어떻고. 선글라스를 낀 효민은 장난스럽게 써니 뒤에 서서 '병풍 개그'를 한다. 김신영이 쉴 새 없이 포복절도의 입담을 과시하면 훤칠한 키의 곰태우(김태우)는 느물느물하게 개그를 잘도 받아친다. 노촌장(노주현)은 연세에 걸맞게 점잔을 빼다가도 소녀들의 "'수상한 삼형제'에서 하는 애교 좀 보여주세요."하는 요청에 나이도 잊고 주부애를 선보인다.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 말 한 마디에 연출팀을 비롯해 모든 스텝들이 까르르 웃으면 아이돌촌은 그 평소의 무게를 잊은 듯 허공으로 잠깐 들어 올려졌다가 내려진다. 도대체 저들 속의 어떤 에너지가 시골동네에 오래도록 무겁게 내려졌던 침묵을 순식간에 날려버린 걸까. 그것은 아마도 청춘의 힘일 것이다. 그 날도 소 푸름이 훈련시키랴, 밭 갈랴, 아이돌촌 찾는 분들을 위해 특별히 만든 이정표 세우랴, 결코 쉽지 않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 가녀린 손이 곡괭이와 삽을 들어도 힘겨운 내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피곤한 얼굴로 쉬고 있다가도 촬영 들어가면 펄펄 나는 그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청춘불패'가 낳은 유치리의 명사, 로드리와 전 이장님은 촬영 현장을 이리저리 다니며 아이돌들의 서툰 농사일을 도와준다. 그네들의 G7과의 서슴없는 모습이 이제 유치리라는 동네와 아이돌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는 실감을 갖게 만든다. 사람 손이 많이 탔는지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왕유치(아이돌촌의 개)는 물론이고, 축사에 말없이 순하디 순한 눈을 껌벅이는 푸름이(아이돌촌의 소), 그리고 닭장에 자리한 청춘이와 불패까지. 그들 하나하나의 존재는 이 농촌과 도시를 이어주는 존재들 마냥 반갑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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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청춘불패'의 아이돌들이 이곳을 찾았던 스산한 늦가을에는 그저 덩그마니 낡은 집 한 채가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6개월, 유치리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경인년 새해 늘푸름 홍천한우가 청춘불패 대박을 기원합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붙은 길을 따라 아이돌촌 우측으로 넓은 밭에는 그네들이 심은 작물들이 자라고 있고, 처음에는 없던 화장실이며 축사며 울타리가 지어진 가옥은 벽면 가득 채워진 구준엽이 그려준 그래피티가 아이돌촌의 랜드마크가 되어있다. 어디 변화가 아이돌촌의 일만이랴. 곰태우가 먹었다고 해서 아예 곰태우 짬뽕으로 유명해진 부흥반점과 G7이 찾았던 수정닭갈비와 학생사 역시 이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주말이면 이제 유치리는 일부러 외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스산한 늦가을에 들어와 낯설지만 예쁜 만남을 가졌던 아이돌과 유치리는, 몹시도 추웠던 겨울을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보내고, 드디어 따뜻한 봄을 맞이하고 있다. 유치리 아이돌촌에는 6개월 간의 일들이 맥 플라이의 'all about you'에 맞춰 흐르던 멈춰버린 사진 속의 추억처럼 떠다니고 있었다. 어찌 이 봄이 그저 겨울이 지나서 찾아온 것일까. 그 날 유치리에는 청춘의 봄이 완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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