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장보리>, 막장인 듯 막장 아닌 막장 같은 정체

 

MBC <왔다 장보리>는 주말드라마의 판세를 뒤집은 드라마다. KBS 주말드라마가 늘 전체 시청률 1위를 기록해왔었지만 <왔다 장보리>는 그걸 단숨에 뛰어넘어 최근 들어 마의 시청률이 되고 있는 30%대를 훌쩍 넘겼다.

 

'왔다 장보리(사진출처:MBC)'

역시 막장드라마의 힘이 세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내의 유혹>으로 일일 막장, 막장 마니아 시대를 연 김순옥 작가의 작품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항간에는 이 드라마를 그저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김순옥 작가는 현실에선 더 기가 막힐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에 되려 선악 구분이 분명한 드라마의 권선징악 결말을 통해 시청자들은 통쾌감을 느낀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은 마치 막장드라마의 변명처럼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맞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현실은 더 막장이다. 그런데 현실의 막장과 드라마의 막장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적어도 드라마의 막장에서는 선이 이기고 악이 응징당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의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로 <왔다 장보리>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는 권선징악이다. 장보리(오연서)라는 절대 선의 인물과 그 인물을 둘러싼 화기애애한 가족적인 분위기가 있다면 연민정(이유리)으로 대변되는 절대 악, 나아가 뜻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감정마저 제 맘대로 조종하는 소시오패스와 그녀를 둘러싼 범죄적인 분위기가 있다. 드라마는 이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면서 패악적인 연민정에게서 분통을 터뜨리게 만들고, 착하디착한 장보리가 그래도 잘 살아나가는 모습에서 위안을 갖게 만든다.

 

막장 그 이상의 막장을 보여주는 현실은 그래서 <왔다 장보리>라는 비현실적이고 극도로 자극적이며 그래서 막장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개연성 없는 드라마를 자꾸만 보게 만든다. 만일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본 시청자가 아니고 그래 도대체 어떤 드라마인지 한번 보자고 마음먹고 본 시청자라면 처음 이 황당무계한 전개의 드라마 앞에서 경악했을 지도 모른다. 장보리와 연민정의 극단적인 대립구도 안에 깊게 들어와 있다면 그 간절한 권선징악의 욕구 때문에 이들의 행동들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부모가 심지어 자식을 버리고 이용하며 거짓말을 일삼고 그것이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들은 아무리 정상참작을 하더라도 병적이다.

 

막장드라마의 전형적인 코드로 등장하는 누가 누구의 엄마이고 자식이냐출생의 비밀코드는 이제 그 사실이 드러나는 신파에 머무르지 않고 그 사실을 폭로함으로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연민정은 장보리의 출생의 비밀을 갖고 협박을 일삼지만, 연민정 자신도 자신의 숨겨진 딸(장보리가 키우는)에 대한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이 얽히고설킨 출생의 비밀공격은 드라마를 극단적인 신파와 치고받는 싸움구경으로 만들어낸다.

 

김순옥 작가의 특징은 <왔다 장보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시작부터 거두절미하고 숨 가쁘게 전개되는 이야기의 속도감은 <아내의 유혹>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흘러온 김순옥 작가표 전매특허다. 또한 드라마는 끝없는 인물들 간의 싸움을 보여준다. 그것은 그저 심리적 갈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동네 드잡이 싸움을 보는 듯한 장면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은 시청자라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이 장면을 보게 되면 잠시 멈춰 설 수밖에 없다. ‘도대체 뭔 일이 벌어진 거야하고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것.

 

그 정신없는 김순옥표 드라마의 롤러코스터에 동승하는 것이 꺼려지기는 하지만 일단 올라타기만 하면 이 드라마는 기막히게 달콤하고 답답증을 일으키다가도 통쾌함을 선사하기도 하는 드라마게임의 쾌감을 선사한다. 그것이 비현실적이고, 또 개연성도 없는 세계지만 빠른 속도감이 그런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키고 대신 권선징악의 세계의 쾌감만을 추구하게 만들어버린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보여줬던 것처럼 괴물의 탄생은 누군가 흘려보낸 폐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만들어낸다.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건 그래서 그 현실의 시스템이다. 김순옥 작가가 만들어낸 <왔다 장보리>는 바로 그 괴물을 닮았다. 어느 날 갑자기 현실로 뛰쳐나와 평온한 강변의 한 때를 보내는 사람들을 향해 달려들며 그 공포를 통해 당신이 사는 세계는 그리 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불온하게 보여준다.

 

<왔다 장보리>라는 막장드라마를 막장으로 보지 않게 만드는 힘은 그래서 김순옥 작가 스스로 얘기한 것처럼 이 드라마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무시하지 않게 만드는 더 막장 같은 현실에서 나온다. 더 이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보리 같은 인물의 성공담이나, 소시오패스처럼 살아가는 연민정 같은 인물의 패배는 <왔다 장보리>라는 괴물을 탄생시킨 근원적인 힘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수면 아래서 점점 커져가는 병을 숨기고 있다. 마치 출생의 비밀처럼 언제 튀어나와 평온한 삶을 난도질할지 알 수 없는(어쩌면 그런 난도질을 기대하게까지 만드는) 그런 공포와 기대를 갖게 하는 병. <왔다 장보리>를 보다보면 그 숨겨진 병증이 눈앞에 드디어 정체를 드러내고 있는 듯한 공포감과 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초한지'의 힘, 김서형에게서 나온다

'샐러리맨 초한지'(사진출처:SBS)

우리에게 김서형은 '아내의 유혹'의 신애리로 기억된다. 물론 '자이언트'에서 깊은 모성애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보여주었던 유경옥 여사 역할을 했지만,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민소희-"를 외치던 그 강렬한 모습을 떨쳐버릴 순 없었다. '샐러리맨 초한지'에서 진시황(이덕화)회장의 비서 모가비 역할로 돌아온 김서형은 그러나 초반에 그다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차츰 악녀 본색을 드러내더니 지금은 어느덧 이 드라마의 중심부에 서있다.

현재 모가비라는 캐릭터가 하고 있는 역할을 찬찬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건의 동력이 여기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시황 회장의 인슐린을 바꿔치기 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유서를 조작해 천하그룹의 모든 걸 손에 쥔 모가비는 모든 걸 잃은 채 쫓겨난 진시황 회장의 손녀 백여치(정려원)라는 캐릭터를 복수의 화신으로 바꾸었다. 현실을 모르고 철없게만 굴던 백여치가 할아버지의 죽음이 모가비 때문이라는 걸 알면서도 폐인인 척 속내를 숨기며 복수를 꿈꾸는 인물로 변신하는 그 과정은 이 드라마에 힘을 부여했다. 그리고 이것은 전적으로 모가비라는 악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항우(정겨운)와 손잡고 유방(이범수)이 이끄는 팽성실업을 무너뜨리려는 것도 모가비다. 자신이 진시황 회장을 죽게 한 사실에 대해 유방이 낌새를 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가비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팽성실업을 먹어치우려 한다. 하지만 모가비에게 주어진 악역은 단지 이 복수극의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모든 걸 다 쟁취한 모가비는 특유의 미인계로로 남자들을 쥐락펴락한다. 그녀를 오래 전부터 챙겨온 범증(이기영)을 밀어내고 장량(김일우)에게 접근하는가 하면 젊은 항우에게 유혹의 손길을 던져 그 속내를 알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모가비의 이 미인계는 권력 구도의 변화를 예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드라마 속의 멜로를 강화시키기도 한다. 항우에게 접근하는 모가비를 본 우희(홍수현)가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즉 모가비라는 악녀 캐릭터는 지금 이 드라마의 거의 모든 관계들을 헤집고 들어가 그 안에 좀 더 강력한 힘을 부여하는 중이다.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초반 이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였다면 이제는 모가비라는 절대 악이 세워짐으로써 모든 인물들이 목표를 갖게 되는 형국이다. 이것은 드라마 초반에 어딘지 지나치게 가벼운 듯한(물론 여전히 경쾌한 코미디를 유지하지만) 이 드라마에 진중한 무게감을 덧붙여주는 효과를 가져왔다.

김서형의 악녀 연기는 때론 유혹적이고 때론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딘지 밉지 않은 구석이 있다. 그것은 악녀로서 군림하는 것만큼 확실히 무너지는 모습 역시 잘 표현해내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거만하고 위세 등등한 악녀의 모습을 보이다가도 혼자 남으면 자신의 과오가 드러날까 봐 초조해하는 보통여자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인물. 그래서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면이 묻어나는 악녀가 바로 김서형 표 악녀의 진면목이다.

'샐러리맨 초한지'는 물론 원전이 그러하듯이 유방과 항우의 대결을 중심에 두고 있지만 이 두 인물은 선명한 선악구도로 나뉘기 어려운 캐릭터들이다. 드라마 구조상 항우가 악역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는 사업적인 부분에서 악역이면서도 사적인 차원으로 내려오면 한 여자(우희)를 사랑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다뤄지고 있다. 따라서 유방과 항우의 대결이 좀 더 강력한 극성을 만들지 못하고 미션 대결로 끝나곤 하는 과정은 조금 밋밋하게 여겨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샐러리면 초한지'에는 숨겨둔 비밀병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모가비다. 모가비라는 절대 악녀를 세움으로써 이 드라마는 좀 더 선명한 대결구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가비라는 숨겨둔 악녀가 가능한 것은, 때론 부드럽고 때론 유혹적이며 무너질 땐 심지어 코믹하게까지 느껴지는 독특한 악녀를 연기해온 김서형이란 배우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김서형이 없었다면? '샐러리맨 초한지'는 코믹함과 팽팽함 그 두 차원을 모두 끌어안지는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를 역할극으로 만드는 감정이 얹어지지 않는 속도감

시놉시스를 드라마로 만들었나. '천사의 유혹'을 보다보면 그 머리가 핑핑 돌아갈 정도의 속도감에 심지어 이런 생각마저 떠오르게 만든다. 이제 3회 분량을 방영했을 뿐이지만 그 스토리는 보통 드라마들이 흔히 20회 정도의 분량에도 담기 어려운 점입가경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혹자는 그래서 단 "첫 회를 보고도 16회를 다본 느낌"이라고 말할 정도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복수를 하기 위해 원수인 신우섭(한진희)의 아들인 신현우(한상진)와 결혼을 한 주아란은 정부인 남주승(김태현)과 불륜의 관계를 남편인 신현우에게 들키게 되고, 바로 그 날 신현우를 태우고 가던 주아란은 말다툼 끝에 차 사고를 당하게 된다. 주아란은 신현우가 혼자 운전하다 사고를 낸 것처럼 위장하지만, 병원으로 옮겨진 신현우가 깨어나려 하자 그를 없애버릴 마음까지 갖게 된다. 결국 뇌사 상태에 빠진 신현우는 한 달 후 주아란의 계략에 의해 별장으로 옮겨져 방치되게 되는데, 거기서 신현우가 도와주었던 고아원에서 간호사가 된 윤재희(홍수현)를 만나게 된다. 결국 윤재희가 신현우를 사랑하게 되고 그를 살려 복수를 한다는 이야기.

'천사의 유혹'은 이렇게 대충의 스토리를 적어보아도 절대로 3회 분량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바로 이 '천사의 유혹'이 전작인 '아내의 유혹' 같은 빠른 스피디한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과연 좋기만 할까. 흔히들 '속도감 있는' 드라마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그것은 그간 그저 그런 구도를 가지고 질질 끄는 드라마들이 식상해진 결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속도감은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천사의 유혹'이 보여주는 속도감은 '아내의 유혹'에서도 그랬지만 스토리의 억지스러움을 가리는 장치처럼 사용된다. 신우섭의 사업장에서 어이없게도 사고로 죽음을 당하는 주아란의 아버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이지만, 그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서 복수를 꿈꾸고, 그 화살이 신우섭의 아들인 신현우에게 돌려진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필 정부와의 밀회가 들통 나는 그 날 사고가 나는 것이나, 이제 별장으로 옮겨져 뇌사상태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게 된 신현우가 마침 그가 도와주었던 윤재희를 만나게 되는 상황도 지나친 우연의 남발이다.

이것은 멜로드라마적인 감정 과잉의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는 설정이다. 즉 논리적으로는 그 인과관계를 이해하기가 어렵지만, 감정적으로 끌어가는 멜로드라마 속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되는 스토리 구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멜로드라마가 이러한 허용이 가능한 것은 충분히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설득력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천사의 유혹'은 그 속도감으로 인해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속도감 있는 '천사의 유혹'의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빠른 전개는 시청자로 하여금 인물들에게 쉬 감정이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드라마가 마치 인형 같은 캐릭터들의 역할극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 드라마가 보이는 경향은 과도한 사건에 대한 집착이다.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과 국면의 전환이 없으면 드라마는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하게 된다. 감정이입이 주는 감정적 힘이 부재한 이 상황을 자극적인 사건의 연속으로 넘어서려는 경향이다.

'천사의 유혹'이 처한 또 하나의 난제는 이것이 '아내의 유혹' 같은 일일드라마가 아니라 월화드라마라는 점이다. 일일드라마에 대한 기대치와 월화드라마 같은 미니시리즈에 대한 기대치는 확연히 다르다. 미니시리즈는 적어도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얼개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또한 일일드라마는 매일 방영된다는 이점이 있어 그 속도감이 갖는 긴박한 스토리 전개에 대한 반복적인 몰입감을 줄 수 있지만, 월화드라마에 집중된 형태는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드라마의 속도감이란 물론 필요한 것이지만, 과도할 필요는 없다.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속도감을 요구하는 것은 느슨한 전개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속도를 과도하게 부여하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감정이 얹어지지 않는 과도한 속도 위의 드라마에서 인물은 살아나기가 어렵다. '천사의 유혹'이 가지는 지나칠 정도의 속도감의 유혹은 따라서 그만큼의 한계도 갖게 되는 셈이다.

'천사의 유혹'을 보는 기대와 우려

'천사의 유혹'은 아예 '아내의 유혹2'를 표방하고 있는 드라마다. 워낙 막장드라마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아내의 유혹' 때문인지 '천사의 유혹'을 선뜻 막장드라마라고 판단하기는 쉽다. 하지만 언뜻 막장드라마라고 치부하면서도 한번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마력 같은 힘을 부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김순옥표 드라마라는 요리에는 도대체 어떤 레시피가 들어있길래 타 드라마가 흉내낼 수 없는 이런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김순옥표 드라마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복수극과 가족극이 교차한다는 점이다. '아내의 유혹'에 이어서 '천사의 유혹'에서도 결혼은 복수의 도구로 활용된다. 즉 우여곡절 끝의 사랑의 결실로서 결혼이 존재하는 멜로드라마나 가족드라마의 틀을 복수극을 가져와 뒤집어 놓는 것. 이렇게 되면 멜로드라마나 가족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결과물들이 생겨난다.

이 과정에서 마치 지상과제인 것처럼 떠받들어지는 여타의 드라마에서의 결혼은 부정된다. 즉 결혼은 가족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가족을 파괴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좀체 가능하지 않은 금기의 욕망을 판타지로 그려낼 수 있게 해준다.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받는 여성들이 그 결혼 그리고 가족이라는 금기를 파괴하는 판타지는 그것이 복수극의 장르와 결합될 때 가능해진다.

이 과정은 물론 막장드라마가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즉 복수의 근거를 제대로 제시해내지 못한다면 그저 판타지의 자극적인 쾌감을 위해 가족을 파괴시키는 드라마로만 그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내의 유혹'이 막장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복수극의 근간이 되는 근거들을 촘촘하게 세워두지 못했고, 그 복수의 과정 또한 인과관계에 있어 허술한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쩌면 일일드라마라는 특징 속에서 어쩔 수 없는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김순옥표 드라마의 특징은 한 마디로 쉴 새 없이 질주하는 속도감에 있다. 이 속도감은 빠른 전개에서도 나오지만, 이야기 갖는 욕망의 질주에서 먼저 비롯된다. 즉 성공과 실패가 끊임없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감정적인 속도감이 생겨나는 것이다. 복수극이 가속도를 붙이면 마치 게임처럼 굴러가게 되는데, 이것은 보는 이들을 더욱 몰입시키는 힘을 발휘한다. 여기에 논리적인 전개까지 갖춘다면 그 몰입도는 더욱 강해진다. 하지만 '아내의 유혹'은 그런 논리적인 접근보다는 마치 멜로드라마가 갖는 감정적인 접근을 함으로써 얼개가 느슨한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 김순옥표 드라마가 갖는 또 하나의 힘은 주인공들이 저마다 숨기고 있는 '비밀의 코드'를 마치 비장의 카드처럼 사용한다는 점이다. 비밀은 미리 시청자들에게 드러나기도 하고, 아예 숨겨지기도 하는데, 드러나게 되면 그것이 후에 벌어질 엄청난 파장을 기대하게 만들고, 숨겨진 것은 훗날 새로운 국면의 전환으로서 제시된다. 출생의 비밀이 드라마의 성공코드로 인식되는 것만큼, 인물의 숨겨진 과거의 비밀 역시 마찬가지의 위력을 발휘한다. 이 비밀코드는 본래 복수극의 단골소재이기도 하다. 과거의 비밀을 숨긴 채 은밀히 진행되는 복수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눈은 그 비밀이 폭로되는 순간을 좇게 마련이다.

'천사의 유혹'은 '아내의 유혹'이 가진 그 김순옥표 복수극의 묘미를 그대로 다 갖고 있는 드라마다. 여전히 막장의 경계에 불안하게 서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 수위를 지킨다면 꽤 흥미로운 드라마로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기대하게 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내의 유혹'처럼 일일드라마가 아니라 월화드라마라는 점이다. 일일드라마가 갖는 시간적인 한계 상황 속에서 빠른 전개의 독특한 복수극을 논리적인 결함없이 그려나가기는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워진 이 드라마의 상황 속에서 막장을 넘어서는 독특한 드라마를 기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까. 흥미로운 만큼 우려와 기대가 많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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