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내 인생’, 재벌가의 갑질에 대처하는 아빠들의 각성

언제까지 당하고만 살 것인가. KBS 주말드라마 <황금빛 내 인생>을 보면 숨죽이며 상황들을 받아들이고만 살아오던 아빠들이 있다. 서민 출신이지만 노명희(나영희)와 결혼해 재벌가에 데릴사위로 들어와 살아온 최재성(전노민)과, 한 때는 중소기업을 운영해왔지만 사업이 망하고 건설현장 인부를 전전하며 살아온 서태수(천호진)가 그들이다. 

드라마가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세워놓은 구도 탓이겠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문제를 야기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엄마들이다. 사적인 욕심 때문에 재벌가 딸을 바꿔치기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 인물이 바로 양미정(김혜옥)이고, 최도경(박시후)과 서지안(신혜선)이 가까워지는 것도, 서지수(서은수)가 선우혁(이태환)과 사귀는 것도 자신들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며 갖가지 갑질로 방해하는 인물이 바로 노명희다. 

드라마의 전반부가 주로 양미정이 딸들의 운명을 뒤바꿔놓은 일로 인해 생겨난 파장들을 왜곡다뤘다면 후반부는 노명희가 자신의 자식들이 양미정의 집안과 얽히는 걸 막기 위해 벌이는 범죄에 가까운 갑질들로 인한 파장을 다뤘다. 그 결과는 양갓집 자식들이 모두 집을 떠나 각자의 삶을 찾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구도에서 빠져버렸거나 소외된 인물들이 바로 아빠들이다. 보통의 평범한 가정이라면 엄마의 목소리가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고 하더라도 아빠들이 집안 대소사에 의견을 내기 마련이다. 하지만 <황금빛 내 인생>에서 아빠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기보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아빠들의 이런 수동적이고 자기희생적인 삶이 가정의 중심을 잡아주지 못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구도를 세운 건 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아빠들이 가진 양면적인 문제를 서태수와 최재성을 통해 담아내고, 어떤 면에서는 이들의 각성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드라마가 그려내기 위함인 것처럼 보인다. 그 각성을 먼저 보인 아빠는 서태수다. 그는 가족들만을 생각하며 자기희생적으로 살아온 삶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걸 확인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찾으려 집을 떠난다.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아니라 오로지 서태수라는 개인의 삶을 찾아나가는 것. 

그가 변화했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극적인 장면은 서지안과 최도경이 사귀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집을 찾아와 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노양호(김병기) 회장 앞에서 눈을 부릅뜨고 맞서는 서태수의 모습이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건 인정하지만 딸에 대한 억측은 용납하지 않는다고 맞선다. 노양호에게 일방적으로 뺨을 맞으면서도 그를 노려보는 서태수는 더 이상 이 모든 상황들에 수동적으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그의 각성을 보여준다. 

한편 노명희의 폭주 앞에서 딸 서지수(서은수)마저 삶이 파탄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걸 보게 된 최재성 역시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상황에 마주한다. 분노하는 최재성은 노명희 앞에 나서 그저 눌러놓고만 있던 분노를 터트린다. 과거 서지수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가 외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노명희 때문이 아니었냐고 토로하는 것.

그간 지독할 정도로 당하기만 하는 삶을 살아오고, 자기 목소리를 거의 내지 못하고 있던 아빠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가부장의 귀환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과거 아빠들의 삶(자기 삶이 아닌 가족들을 위한 삶 혹은 금력에 의해 억눌린 삶)이 왜곡시킨 것들을 이제 충분히 알게 된 그들이 자신의 삶이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후,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됐다는 걸 보여준다. 

서태수와 최재성이라는 두 아빠의 각성은 그래서 <황금빛 내 인생>이 다루는 아빠 세대들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빠들도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그럭저럭 버텨내는 삶을 살기 위해 눌러두었던 자신만의 삶을 찾아내고 제 목소리를 낼 때라는 것. 이들 아빠들이 이 꼬일 대로 꼬인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뜻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카타르시스를 주는 건 그래서다.(사진:KBS)

<동상이몽>, 서비스업에 대한 잘못된 편견 깨준 부녀

 

사실 어떤 경우에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무례를 범할 때도 있다. 그것이 무례인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에게는 힘겨운 현실이 될 거라는 것도 모른 채 저지르는 일들. 하지만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그것이 무례를 넘어서 끔찍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SBS <동상이몽>에 출연한 네 가지 일을 가진 아빠와 밤마다 콜 받는 일을 도와주는 딸의 이야기는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자신들까지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동상이몽(사진출처:SBS)'

딸의 불만은 너무나 명백해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빠가 하는 대리운전의 콜센터 직원(?)이 되어야 하는 딸의 버거움. 주말도 쉬지 못하고 밤 12시까지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콜을 받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게다가 표현이 서툰 아빠는 딸들에게 제대로 마음 표현을 못하고 있었고, 힘겨운 노동을 늦은 밤 술 한 잔으로 풀면서 딸을 억지로 깨워 아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영상으로 보여진 아빠의 현실은 너무나 힘겨웠다. 취객들은 나이가 많다고 대뜸 반말을 하고, 나이가 적은 이들도 자신이 돈을 낸다는 이유로 반말을 하기 일쑤였다. 마치 쌓인 스트레스를 풀 듯 대리운전을 하는 아빠에게 욕설을 늘어놓기도 하며, 반말로 똑바로 하라는 아들 뻘 손님 앞에서도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빠는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말하며 일하고 있었다.

 

무례한 사회였다. 정신과 전문의인 양재진의 말대로 못 배운 사람들이었다. 돈을 낸다는 이유로 함부로 막 해도 된다는 건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된 우리네 어두운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 무례하고 못 배운 사람들에게 아빠는 화조차 내지 못하고 노여움 푸시고 이해해 주십쇼. 다음부터는 잘 지킬게요.”라 말하고 있었다. 돈이면 뭐든 다 된다는 생각. 여기에 대해 양재진 전문의는 돈 내고 서비스를 받는 것이지 영혼까지 사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말로 듣던 것과 직접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물론 딸은 아빠의 이런 현실을 말로써 여러 차례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걸 화면을 통해 직접 본 딸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딸은 속상하다고 말했다. 12년 동안 한 번도 쉰 적이 없다는 아빠의 마음은 온통 딸들뿐이었다. 손님도 별로 없는 이발소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 역시 나중에 딸들이 결혼을 해 나가면 손 벌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동상이몽>은 아빠와 딸의 입장을 화면을 통해 직접 보여줌으로써 화해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동상이몽>은 서비스업을 하시는 분들의 입장을 아빠를 통해 충분히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혹여나 했을 작은 말들조차 어쩌면 크나큰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감시켰다.

 

이번 이야기가 <동상이몽>에서 특별하게 다가온 건 바로 이 점이다. 지금껏 <동상이몽>은 가정 내에서의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보여주고 그것을 소통에 이르게 하는 길을 모색해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이야기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이야기로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그들의 이야기이면서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는 지점을 드러내줬다는 것. <동상이몽>의 새로운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

초심 잃은 <아빠를 부탁해>, 무엇이 문제일까

 

SBS <아빠를 부탁해>에서 이경규는 딸 예림이를 데리고 한편의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다. 한 시골의 소 축사로 간 그들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소똥 치우기로 하루를 보낸다. 이경규가 딸을 데리고 축사로 간 명분은 자신이 한 때 목축업에 뜻을 두었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딸에게 노동의 가치를 일깨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명분과 달리 이들이 하루 종일 축사에서 한 것은 소똥 치우는 일을 하는 상황이 주는 웃음 만들기에 가까웠다.

 


'아빠를 부탁해(사진출처:SBS)'

노동 없이 말장난으로 하는 웃음보다야 확실히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한때는 날방의 일인자(?)’라고도 불리던 이경규가 아닌가. 그의 노동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그의 예능에 대한 자세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렇게 몸소 힘겨운 노동을 하는 것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건 그것을 왜 하느냐다. 시골에서 딸과 소똥을 치우는 일이 <아빠를 부탁해>가 지향하고 있는 아빠들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것은 결코 보통의 아빠들이 딸과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누가 봐도 방송의 한 미션이라는 것이 드러날 때 예능의 자연스러움은 깨져버린다. 힘겨운 노동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그다지 효과가 없게 나타나는 건 그래서다.

 

이것은 서천으로 조재현과 딸 혜정이 여행을 떠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의 문제로 드러난다. 즉 아빠와 딸이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야 누구나 공감할만한 일이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여행이 너무 자주 등장했다. 이경규와 예림이 추억여행을 다녀오고 조재현과 혜정이 서천 여행을 떠나고... 이런 식으로 여행은 출연자들에게 돌아가며 로테이션 되는 것 같다.

 

물론 여행이 주는 일상탈출과 그 속에서 아빠와 딸이 조금은 가까워지는 시간들이 의미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패턴은 너무 단조롭다. 서천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그 축제에서 맨손으로 전어를 잡는 건 사실 너무 흔한 장면이다. 그러니 이 단조로움을 벗어나기 위해 평상시 아빠가 자주 쓰는 말을 하게 만드는 미션 설정 같은 조미료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아빠와 딸의 관계가 묻어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설정된 미션과 게임들은 <아빠를 부탁해>의 기획의도 자체를 흐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물론 이경규나 조재현은 초기부터 출연해 꽤 오래도록 딸들과 교감을 해왔기 때문에 이미 어색했던 관계가 상당히 풀어져 있어 이런 미션 같은 조미료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새롭게 투입된 이덕화 부녀와 박세리 부녀는 어떨까. 먼저 이덕화와 딸 지현은 너무 게스트에 의존하는 느낌이 짙다. 둘만 있는 자리가 어색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박지우가 출연해 춤을 가르치고, 이동욱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는 건 아빠와 딸의 관계에 집중시키기보다는 게스트에 시선을 빼앗기게 만든다. 본말이 어긋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나마 박세리와 아빠 박준철이 <아빠를 부탁해>의 가장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별한 일을 한다거나 미션을 수행하는 일이 거의 없다. 그저 일상적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먹고 산행을 하고 집에서 다이어트 비디오를 보며 춤을 추고 운동을 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도 이런 류의 방송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자연스러움일 것이다. 하다못해 관상과 손금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빠를 부탁해>에 걸맞는 재미를 만들어내는 게 이들 부녀다.

 

<아빠를 부탁해>는 나이든 아빠들과 소원했던 딸이 조금씩 그 관계를 회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이 과정에서 주목하는 건 아빠들이다. 늘 굳건히 가족의 중심에서 묵묵히 서 있어 오히려 그 존재를 깜박 잊고 있었던 아빠들을 재발견하는 데서 공감대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너무 비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거나 과한 미션을 부여하면서 그 본질이 흐려지고 있다.

 

이제 그 소원했던 관계가 풀어져 아빠와 딸이 어느 정도 소통하는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면 더 이상 방송으로서는 보여줄 수 있는 게 없기 마련이다. 애초에 소기의 목적이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새로운 인물을 투입하는 편이 낫다. 또 다른 문제나 상황을 갖고 있는 아빠들을 통해 폭넓고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 그것이 <아빠를 부탁해>가 처음 그대로의 좋은 기획의도를 살리면서도 지속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동상이몽>, 아빠는 왜 딸 보호에 집착하게 됐을까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이하 동상이몽)>에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딸의 옷차림에 집착하는 아빠의 이야기가 전해졌다. 핑크색 옷이 남자들을 자극한다며 딸이 입고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막기도 하도, 핫팬츠를 입은 딸에게 심지어 그런 건 쓰레기들이나 입는 것이라고 폭언을 하는 아빠. 통금시간도 8시로 정해놓고 1분만 늦어도 잔소리를 늘어놓는 그는 제아무리 보호 차원이라고 해도 과도하다 싶었다.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사진출처:SBS)'

하지만 <동상이몽>이 늘 그러하듯이 아빠의 입장을 대변하는 화면에서는 그가 왜 그렇게 과도하게 딸의 보호에 집착하게 됐는가가 드러났다. 딸이 핫팬츠 차림으로 찍어 SNS에 올린 사진을 누군가 캡처해 인터넷에 게시해놨는데 거기에 입에 담지 못할 악플과 음란한 댓글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는 것. 그걸 보게 된 딸이 엄청난 충격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아빠가 그토록 딸의 옷차림에 신경 쓰고 통금시간을 정해 잔소리를 늘어놓은 이유는 바로 그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물론 성격적인 면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처럼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아리따운 딸이 노출되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큰 불안으로 자리했던 것.

 

<동상이몽>은 물론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너무 심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짧게 방영된 딸의 사진이 게재된 SNS의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볼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이른바 투명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저변을 타고 우리에게 일상화되어 있는 셀카 문화는 이 투명사회가 작동하는 중요한 방식 중 하나다. 스스로 자신의 사적인 영역을 과시하듯 드러내는 것이 마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 되어버린 사회. 이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전시되는 가치로서 매겨지기 마련이다. 즉 전시되지 않으면 소외감을 느끼는 사회라는 것.

 

하지만 이렇게 부추겨진 전시는 <동상이몽>이 보여주듯 그 자체로 이상하게 소비되거나 심지어 범죄행위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것은 사생활이 공개된 이도 피해자로 만들지만 누구나 그런 사진 아래 버젓이 자극적인 댓글을 달아야 될 것 같은 환경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댓글을 단 이들 또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들어낸다.

 

<동상이몽>의 아빠는 심지어 이런 내막을 모르고 봤을 때는 너무나 집착이 과도해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할 정도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것이 어디 아빠의 잘못인가. 그런 과도한 집착을 하게 만드는 이 사회의 불안함이 그 진짜 원인이 아닐까. 그 모습이 심지어 병적이라면 정상적인 아빠를 그렇게까지 몰고 간 사회 역시 병적이라는 얘기는 아닐까.

 

<동상이몽>은 결국 아빠가 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고, 딸 역시 아빠를 사랑한다는 걸 보여줬다. 그렇다면 이들의 갈등을 만들어낸 건 도대체 뭘까. 우리가 매일 같이 당연한 듯 하고 있는 투명사회의 무수한 강령들, 즉 자신을 과시하듯 전시함으로써 존재가치를 인정받거나 그런 전시된 것에 자극적인 코멘트를 다는 것이 하나의 문화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불안 요소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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