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 송승환, 가정폭력 당한 딸에게 참고 살라는 아빠

 

아무리 드라마라고 해도 뭐 이런 몰상식하고 천박한 아빠가 다 있나. MBC 수목드라마 <봄밤>에서 이태학(송승환)은 이 드라마 최악의 인물로 그 실체를 드러냈다. 고등학교 교장으로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는 그는 딸들의 행복이나 앞날보다 자신의 위신과 입장을 먼저 밝히는 천박함으로 시청자들마저 창피한 어른의 모습을 보였다.

 

둘째 딸 이정인(한지민)이 4년 간 사귀었던 권기석(김준한)과 헤어지려 하자 딸의 입장은 상관하지도 않고 “결혼하라”고 나서고, 이미 딸이 이별을 통보한 권기석을 만나 “뭐든 팍팍 밀어주겠다”며 결혼을 독려한다. 그 이유는 권기석의 아버지 권영국(김창완)이 자신이 일하는 학교 재단 이사장이기 때문이다. 정년퇴직 후 학교 재단에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권영국의 제안에 이태학은 반색하고 어떻게든 딸과 권기석을 결혼시켜 그 관계를 이어가려 한다.

 

하지만 이미 정인은 마음이 돌아선 지 오래다. 그래서 이태학에게 이미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을 전하지만 “마음은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말로 일축하고, 심지어 자신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돌리라고 딸에게 종용한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딸을 정략결혼시키려는 이 자를 과연 아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더 심각한 건 첫째 딸 이서인(임성언)이 사위 남시훈(이무생)에게 당했던 가정폭력을 알면서도 “참고 살라”고 하는 이태학의 면면이다. 남시훈이 이서인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걸 딸로부터 듣게 된 엄마 신형선(길해연)은 분노에 벌벌 떨며 사위를 찾아가 뺨을 올려붙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빠인 이태학은 무덤덤하고 심지어 차분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뒷일이 걱정되어 일부러 이태학을 찾아와 무릎 꿇으며 그 폭력이 술기운에 한 번 있었던 일일 뿐이라고 변명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굳이 딸 이서인과 남시훈을 함께 앉혀놓고 그런 일에 이혼하면 결혼생활을 유지할 부부가 어디 있냐며 참고 살라고 말한다. 결국 이서인은 아이가 있다며 그런데 그 아이가 폭행에 의해 생긴 아이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이태학은 자신의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건 딸을 생각해서 한 말과 행동들이 아니었다. 그걸 정확히 보게 된 이태학의 아내 신형선은 집으로 돌아와 그를 질타했다. “생판 모르는 남이 서인이 같은 일 당했다는 걸 봐도 부들부들 떨려야 정상이야. 당신이 얼마나 나를 실망시킨 줄 알아? 어쩜 그렇게 야비할 수가 있어. 내 새끼가 맞았는데 가정폭력 피해자가 됐는데도 행여나 누가 알까 무서워서 입 틀어막을 생각이었던 거 내가 모를 줄 아냐? 이혼이 뭐가 창피해. 자식보다 남의 시선이 무서운 천박한 부모가 부끄러운 거지.” 시청자들의 마음을 제대로 대변해주는 속 시원한 일갈이었다.

 

하지만 이태학은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오히려 정인의 결혼을 서두르라고 했다. 그것은 언니인 서인이 이혼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이 정인의 결혼에도 영향을 미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형선은 참지 못하고 “야 이태학. 네가 진짜 인간이냐?”하고 소리쳤다.

 

안판석 감독의 전작이었던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는 속물근성을 드러내는 어른으로 김미연(길해연)이 최고의 악역을 자처했지만, 이번 <봄밤>에서는 그 역할을 이태학이 차지하고 있다. 두 작품 모두 결혼을 두고 이를 반대하는 이들을 악역으로 내세웠지만, 이들이 표징하는 건 속물적이고 천박한 세상과 전혀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다. 심지어 부부강간을 당한 딸에게 “참고 살라”니. 이게 어디 어른, 아니 부모가 할 말인가.(사진:MBC)

‘나 혼자 산다’, 밝은 화사 뒤에는 진짜 어른 아빠가

‘나 혼자 산다’가 아니라 ‘나 함께 산다’를 본 듯한 느낌이다. MBC <나 혼자 산다>가 보여준 전북 남원의 안씨 집성촌을 찾아간 화사(본명 안혜진)와 그를 따뜻하게 맞아준 아빠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그 어느 때보다 훈훈한 풍경을 보여줘서다. 

특히 화사와 아빠는 남다른 부녀지간의 정이 느껴졌다. 살갑게 손을 잡는 건 물론이고, 차안에서 출출하다는 화사에게 떡을 가져왔으니 꿀 찍어먹으라는 아빠에게 “이벤트남이구나?”라고 말할 정도로 친근했다. 아빠 역시 “너 온다고 하니까 아빠가 설렜다”고 말해 남다른 딸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찾아간 집성촌의 입구에서부터 화사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과, 그렇게 찾아간 할머니집에서 반갑게 그를 챙겨주는 할머니와 고모, 당숙 어르신들에게서도 똑같은 따뜻함이 느껴졌다. 특히 할머니에게 살가운 화사는 몸이 힘들다고 하자 애교에 뽀뽀로 할머니를 기운 나게 만들었다.

떡 벌어지게 차려진 한 상은 마치 잔칫집 분위기를 방불케 했다. 할머니, 아빠 그리고 친척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밥상의 반찬들은 아버지가 직접 텃밭에서 키운 식재료들을 일 나가는 엄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다 준비해놓은 것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화사는 엄마의 마음을 느끼며 뭉클해졌다. 딸이 좋아한다며 직접 불을 화로에 피워 구워낸 장어구이에 담긴 아빠의 마음 또한 따뜻했지만.

식사를 마치고 함께 경운기를 타고 밭으로 가는 길과, 그 곳에서 함께 일을 마무리하고 들어오는 길. 아빠와 딸에게서는 각별한 정이 묻어났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스르륵 잠이 들었다가, 출출하다는 화사에게 굳이 다시 장어를 구워다 내주는 아빠. 이런 집에서의 하루는 도시에서의 그 힘든 나날들을 이겨내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지 않을까.

연습생 시절에 옥탑방에서 고생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물을 비추는 아빠의 모습에서 어떻게든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고 싶었던 그 마음이 느껴졌다. “여력이 없어 전세를 못 얻어줬다”는 것. 하지만 스물 네 살의 어린 나이에 성공해 자신들의 빚을 전부 갚아줬다고 말하는 아빠에게서는 딸에 대한 대견함이 묻어났다. 

늘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화사지만,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데는 아빠처럼 자상하고 인자한 따뜻한 가족이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초저녁에 잠 들어서 새벽에 딸 전화를 기다리게 된다”는 아빠. 특히 아빠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가 화사에게 하는 말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너는 운이 좋았잖아. 일찍 성공하고. 좋은 선배가 돼서 너처럼 힘들었던 후배들을 보면 잘 해줘라.” 화사에게 그 누구보다 든든하고 따뜻한 아빠지만, 동시에 다른 힘든 이들도 챙기려는 아빠. 진짜 어른의 마음이 느껴졌다.(사진:MBC)

'예쁜 누나' 손예진·정해인 비밀연애 공개 과정이 담아낸 것들

단 한 회만의 폭풍전개다. JTBC 금토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윤진아(손예진)와 서준희(정해인)의 비밀연애는 윤진아네 집안사람들과 서준희의 누나 서경선(장소연)의 ‘가족 같은’ 관계 때문에 공개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을 부여했다.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지만, 이들은 마치 한 가족 같은 사이다. 그러니 그 사랑 공개가 어찌 쉽겠는가. 

대체로 이런 설정을 갖고 있는 드라마는 그 공개과정을 아주 천천히 보여주기 마련이다. 즉 한 사람씩 그 사실이 공개될 때마다 나오는 갈등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다. 하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물론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서준희의 친구이자 윤진아의 동생인 윤승호(위하준)에게 들키고, 그 다음에는 아빠 윤상기(오만석)에게 들키는 식으로 가장 갈등이 약할 수 있는 부분부터 공개하긴 했다. 하지만 그 후 한 회 만에 아빠에게 윤진아는 이 사실을 털어놓고, 또 친구 서경선에게도 공개한데다, 심지어 최대의 난관으로 보이는 엄마 김미연(길해연)에게까지 그들의 관계를 드러냈다.

이렇게 빠른 비밀연애 공개는 이 드라마가 그런 갈등 상황을 갖고 굳이 옛날드라마들처럼 질깃질깃하게 끌고 가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보인다. 사실 그런 갈등 상황을 질질 끌고 가는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드라마가 지속적인 갈등을 유지하기 위해 취하는 일종의 문법인 셈이다. 

안판석 감독은 그런 드라마적 문법보다는 좀 더 현실적인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듯 보인다. 그래서 한 번 뚜껑이 열리자 봇물 터지듯 비밀이 공개되는 과정을 실감나게 담아낸다. 심지어 회사에서 서준희에 마음을 두고 있던 강세영(정유진)에게도 그저 툭 던지듯 동료 금보라(주민경)의 입을 빌어 그 비밀을 공개해버린다.

이렇게 되자 그 공개과정에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드라마들이 취하는 사랑하는 사이와 이를 반대하는 이들 사이의 갈등이 아니라, 그 갈등 과정 속에서도 보이는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윤진아의 아빠 윤상기와 절친 서경선이다. 

퇴직 후 집을 전전하며 살아가고 있는 아빠는 딸이 서준희와 만난다는 사실을 알고는 홀로 술을 마신다. 물론 약간의 불편함은 분명히 있었을 테지만 아빠는 오히려 그 비밀연애를 숨겨주려 애쓴다. 역시 정 많은 사람이지만 속물근성이 있는 아내 김미연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벌어질 파장이 만만찮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빠는 딸이 그 사실을 자신에게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려준다. 윤진아와 서준희의 비밀연애를 통해 보이는 건 아빠의 딸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이런 점은 윤진아의 절친 서경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동생 서준희의 스케치북에 그려진 윤진아의 그림을 보며 눈치를 챈 서경선은 믿고 싶어 하지 않고 화도 났지만 결국 윤진아에게 마음을 연다. 엄마의 산소를 찾아간 서경선은 동생을 욕하다가 엄마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떠올린다. 그리고 동생이 상처입고 아파하는 건 자신 또한 볼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힘들겠지만 윤진아와 서준희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누나의 동생에 대한 깊은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비밀연애가 공개되는 과정을 보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가진 따뜻한 정서가 어디서 비롯되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회사에 가면 여전히 힘겨운 현실들이 존재하고, 지긋지긋한 스토커가 되어버린 전 남친의 폭력적인 행동들이 위협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 드라마는 순간순간 우리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있어 살만하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양가에 비밀연애가 공개되는 것이 불안했던 건, 가족들끼리 갈등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가족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어색함이나 약간의 불편함은 사랑으로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윤상기 같은 아빠, 서경선 같은 누나라면.(사진:JTBC)

'한끼줍쇼', 이 한 끼에 담겨진 시대의 변화

요즘 대세라고 하는 모델 한현민과 톱모델 장윤주는 역시 착하고 친근했다. 낯선 집을 방문해 그 가족들과 한 끼 밥을 나누는 JTBC 예능 <한끼줍쇼>에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인물들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물론 본래부터 <한끼줍쇼>의 진짜 주인공은 문을 기꺼이 열어주시는 일반인들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더더욱 이들의 모습들이 빛을 발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경규나 강호동 또 그 날의 이야기를 새롭게 해주는 밥동무 게스트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왕십리에서 진행된 <한끼줍쇼>에서 이들에게 문을 열어 준 두 집의 정경도 마찬가지였다. 이경규와 장윤주에게 문을 열어준 집은 인근 동대문에서 의류도매사업을 하는 부부의 집. 새벽 일을 나가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저녁을 준비하려던 중이었단다. 사실 요리는 남편이 더 잘한다는 아내의 말에서 그 집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감지됐다. 동대문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고 결혼하게 됐다는 부부는 그렇게 함께 일을 하고 있었고, 여성의류를 하는 통에 새벽일을 아내가 나가고 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남편이 집안일이며 아이들 육아를 책임지고 있었던 것.

당연한 일처럼 보였지만, 아마도 맞벌이 부부들에게는 이들의 정경이 낯설지 않았을 게다. 과거 남편은 일하러 나가고 아내는 가정을 챙기던 그 틀에서 이제는 변화하고 있는 가정의 모습이 이들의 일상을 통해 고스란히 보여졌다. 여기서 주목됐던 건 이 남편이자 아빠의 가정적인 모습이었다. 아내를 위해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건 물론이고, 아이들에게 성적보다 중요한 게 ‘예의’라고 말하는 아빠.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그 모습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성 평등 사회의 실현이 무수한 백 마디 말보다 그런 실천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걸 드러낸 것이었다.

강호동과 한현민에게 문을 열어준 집의 아빠 역시 남다른 가정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학교 교직원으로 일한다는 이 아빠는 ‘현질’까지 하며 게임을 한다는 아들의 폭로(?)에 당황해 하면서도 허허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기에서 드러나는 건 이 아빠가 아이들과 얼마나 스스럼없는 관계를 살아왔는가 하는 점이다. 아이들과 게임을 통해 소통을 하기도 한다는 이 아빠가 너무나 가정적이라고 아내는 말했다. 그래서 다른 어떤 걸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고.

게다가 이 아빠는 갑작스런 손님에 저녁상을 차리는 아내에게 다가가 “뭐 도와 줄 거 없어?”라고 묻는 모습을 통해 평상시 집안일에 익숙하다는 걸 보여줬다. 실제로 아내는 아빠가 회사에서 돌아와서도 집안일을 많이 도와준다고 말했고,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라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이에 호응이라도 하듯 아내에게 칭찬하는 말은 천 개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남편. 그 훈훈한 가족의 정경이 <한끼줍쇼>의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졌다.

사실 매번 낯선 집의 문을 열고 그 가족과 한 끼 밥을 먹는다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그래서인지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의 달라지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 안에서는 포착된다. 이번 왕십리편에서도 그랬지만 지금껏 봐온 많은 가족들 속에서 특히 달라지고 있는 건 아빠들의 모습이었다. 이미 사회적 삶 자체가 변화하고 있어서 그런 이유도 있지만, 이제 가부장적 삶은 아빠들에게도 바뀌어야할 구태로 여겨지고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 성 평등한 사회는 요원하지만, 그래도 이런 아빠들이 있어 그나마 살만해진다. 그리고 진정한 사회의 변화는 어쩌면 이런 가정의 변화로부터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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