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 그 아픈 사랑이 묻는 국가의 존재이유

여러 권에 이르는 엄마의 노트는 빼곡한 글씨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노트 안에는 성준이의 하루하루의 기록들이 담겼다. 의사 선생님은 그 노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성준이가 어떤 상태인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 엄마는 그 성준이를 끼고 살았다. 하루 종일 옆에 붙어서 성준이의 상태를 살피고, 성준이와 놀고, 학교를 가서도 교실 문 밖에서 혹여나 아이가 아플까봐 노심초사 들여다봤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MBC <휴먼다큐 사랑> 4부작의 마지막 이야기는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산소통을 끼고 살아야 하는 성준이와 그 가족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지금까지 살아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엄마. 그 엄마가 보여주는 성준이의 어린 시절 모습들은 그것이 왜 기적인가를 알게 해주었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아이가 연습을 통해 말을 하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날 촛불도 끄지 못했던 아이가 드디어 촛불을 끄는 그 순간이 엄마에게는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삶 따위는 모두 지워버린 채 온전히 성준이의 그림자로 살아가는 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엄마. 그 빼곡한 노트에 채워진 글씨들에서 느껴지는 건 엄마의 아들에 대한 부채감이었다. 안전하다는 문구들로 가득 채워져 있던 가습기 살균제. 그래서 믿고 사용했지만 그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 줄이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해 아이를 잃은 다민이 아빠는 “이건 부모가 자식을 서서히 죽인 것”이라고 그 비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납득되지 않는 법원의 판결들 앞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게 나라냐?”는 외침에는 부모 같아야할 나라가 자식 같은 국민을 내버리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담겼다. 

성준이의 안타까운 사연 속에 어른거리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의 이야기에 담겨진 특별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파양에 학대 그리고 추방까지 당한 신성혁의 사연이 그랬고, 세월호 참사로 인해 바다만큼 많은 눈물을 흘리며 3년 간 딸들이 유해로나마 돌아오길 간절히 기도해온 다윤, 은화 엄마들의 사연이 그랬다. 

그들은 마치 그 가슴 아픈 일들이 자신들이 잘못해서 생긴 일인 것처럼 무거운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가난을 벗어나 잘 살라고 입양시켰지만 결과적으론 고통스런 세월을 보낸 신성혁의 부모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고, 그 누구보다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에 다윤, 은화 엄마는 가슴을 쳤다. 그리고 가습기 살균제로 힘겹게 살아가야 하는 성준이를 보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무너져 내렸을까. 

하지만 그 가슴 절절한 사랑을 들여다보면 그 아픔을 보듬어줘야 할 국가의 부재가 느껴졌다. 도대체 이 부모들이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그럼에도 어째서 그 부채감을 부모가 온전히 떠안고 알아가야만 한단 말인가. 국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은 특별한 사랑의 이야기 속에 사적인 차원을 넘어서 공적인 질문들까지 담아내는 기존과는 다른 면들이 주목되었다. 

사랑은 그래서 국가의 존재이유를 물었고, 정의가 무엇인가를 물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고 정의를 묻는 그 질문들이 그저 갑자기 터져 나온 분노만이 아니라 결국은 ‘사랑’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는 걸 말해준다. 인간과 생명에 대한 사랑. 그 상식적인 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 안에서 눈물 속에 그 희생어린 사랑을 멈추지 않고 있는 개인들의 이야기. 우리가 올해 <휴먼다큐 사랑>을 보며 느낀 먹먹함과 아픔과 함께 그 안에 어른거리던 분노의 실체가 아닐까.

파양·학대·추방...‘휴먼다큐 사랑’이 신성혁 통해 전하려한 것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사랑해요.... 저는 언제나 엄마의 아들이에요.” 엄마에게 편지를 쓰는 그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2번의 입양과 파양 그리고 나치 수용소를 연상케 했다는 끔찍한 학대, 그리고 16살의 나이에 노숙자들이 있는 거리에 버려진 유일한 동양인. 쓰레기통에서 주워 먹은 치즈버거가 따뜻했었다고 말하는 아담 크랩서(우리 이름으로 신성혁)는 벌써 42세다. 하지만 그 성장한 아담에게서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저 아이의 그것이었다. MBC <휴먼다큐 사랑>이 전한 첫 번째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아담과 그의 엄마였다.

'휴먼다큐 사랑(사진출처:MBC)'

“아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하고.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어.” 미국에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강제추방당할 위기에 처한 아들과 화상통화로 첫 대면을 하는 엄마는 말도 통하지 않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너무나 가난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삶. 다리가 불편해 운신도 자유롭지 않은 그녀는 결코 고생하라고 보낸 게 아니라고 말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입양이었다는 것이다.

너무 오래 전 헤어진 엄마와 아들. 하지만 그 긴 세월의 간극은 그들 사이에는 없어 보였다.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너무나 곤궁했던 삶에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이었지만, 엄마와 아들은 모두 각자의 삶에서 여전히 생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이역만리에 떨어져 화상으로 만나는 얼굴이지만 그 얼굴에 새겨진 삶의 힘겨움을 읽어내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게다. 헤어져 잘 살기를 바랐지만 차라리 같이 살며 고생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는 후회. 그들의 얼굴에는 그런 것들이 담겨 있었다. 

입양 간 아담에게 미국은 이름그대로의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첫 입양됐던 양부모의 집에서는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체벌을 당하고 어두운 방에 갇혀 있으면 같이 입양왔던 누나가 슬쩍 문을 열어놓고 가곤 했다고 했다. 두려움에 떨 동생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발각되어 누나도 많이 맞았다고 했다. 결국 파양되면서 아담은 누나와 생이별을 하게 됐다. 하지만 두 번째 입양된 집은 더 심각했다. 12명의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성적학대와 폭력은 일상이었고 노예처럼 자신들을 부렸다고 했다. 

양부모는 아이들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양부모는 결국 발각되어 감옥에 갔지만 금세 풀려나 잘 살고 있다고 했다. 반면 그 집에서 살던 아이 중 한 명은 자살했고 두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그래도 재판 때 아담은 양부모의 편을 들어주었다. 유일한 가족을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재판이 끝나자 그들은 아담을 길거리에 버리고 가버렸다. 16살에 아담은 그 동네의 유일한 동양인 노숙자가 되었다. 

양부모가 시민권 신청을 하지 않아서 아담은 시민권조차 없었다. 식당, 건축일, 조경, 자동차 수리, 뭐든 할 수 있는 일들을 했고 그는 꽤 일을 잘했다. 자신이 한국에서 가져왔던 물건을 찾기 위해 입양됐던 집을 무단으로 들어갔다가 무단침입죄로 감옥 생활을 했고, 전과자라는 꼬리표는 늘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불법체류자 신세가 되어 이민국 구치소에 수감된 아담은 점점 피폐되어갔다. 

결국 이역만리의 타국에서 엄마는 아들을 위한 구명운동을 했다. “미국에 계신 대통령님. 제 아들 좀 구해주세요. 미국에 계신 시민 여러분. 우리 아담 크랩서 좀 도와주세요.” 서툰 목소리지만 그 목소리를 통해 엄마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여전히 가난하고 몸도 성치 않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운 엄마. 그렇게라도 엄마는 어떻게든 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구치소에서 피폐해져가는 아들을 위해 엄마는 그 몸을 이끌고 기다시피 부석사 계단을 올라 기도를 했다. 그리고 결국 열린 추방재판. 결과는 추방 결정이었다. 많은 증거들이 채택되지 않았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갖고 판결을 내리는 것 같았다고 했다. 아담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도 울었다. “우리 법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마흔이 넘어 아들이 쫓겨온다는 소식. 그 결정을 들은 엄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영상편지를 보냈다. “돈 많은 사람처럼 할 수는 없지만 마음만으로는 100% 너를 사랑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처음 화상통화를 통해 했던 그 말이면 충분했다. “엄마가 안아줄게.”

2016년 11월17일 아담은 그 37년 간의 타국 생활을 끝내고 고국 땅을 밟았다. 그는 “이게 운명인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 긴 세월, 그가 걸어왔던 건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고국도 낯선 땅이었다. 하지만 그 낯설음은 37년 전 미국이라는 낯선 곳에 그가 도착했을 때 느꼈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은 어째서 이처럼 기구한 삶을 산 아담 크랩서의 이야기를 전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이 엄청난 시련과 고통의 삶을 살아온 그들이기에 가족이라는 것, 그래서 힘겨워도 함께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가난함 때문에 헤어지게 되었지만 37년 후 여전히 가난한 그들은 그래도 함께 하려 하고 있다. 적어도 서로의 힘겨움을 넉넉히 안아줄 수 있는 가슴이 있으니.

짠하거나 웃기거나, <미운 우리 새끼>의 두 얼굴

 

SBS <미운 우리 새끼>MBC <나 혼자 산다>의 노총각 버전 같은 위치에 서 있다. 이제 쉰을 바라보고 있는 김건모나 역시 비슷한 나이대의 박수홍이 혼자 사는 모습은 웃기면서도 짠하다. 점심이 다 돼서야 일어난 김건모가 밤새 마신 술을 해장하느라 엄마가 해놓은 순두부 대신 라면을 끓여먹는 모습이나, 역시 늦게 일어나 하루 종일 TV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박수홍의 모습은 우습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철없는 아이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미운 우리 새끼(사진출처:SBS)'

하지만 그 모습을 스튜디오에서 엄마들이 본다는 사실은 여기에 또 다른 시선을 겹쳐준다. 모두가 웃을 때 엄마들은 정작 웃지 못한다. “저게 뭐하는 짓이고하는 말이 수시로 터져 나오고, “저러면 안되는데라는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그저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묻어나온다. 엄마들은 아들들이 저렇게 궁상맞고 철없게 살아가는 것이 혼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는 기---결혼으로 흘러간다.

 

그렇지만 리얼한 관찰카메라 속에서 아들들은 엄마들의 이런 걱정과는 달리, 결혼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는다. 김건모는 남자 후배 동생들과 노는 것을 가장 좋아하고, 밤이면 모여 둘러 앉아 소주를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낙으로 여긴다. 박수홍은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 대다가 저녁이면 친구들과 클럽에 가기 위해 밤거리를 떠돈다. 그 역시 친구들에게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정색하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들은 안색이 굳어진다. 스튜디오에 있는 엄마들의 입장은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점점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그래도 내 아들만은 결혼을 해 평범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건 아마도 모든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다. 하지만 아들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다. 엄마들의 생각이 너무 고답적일 때마다 신동엽은 나서서 달라진 지금의 세태를 유머로 섞어 이야기 한다.

 

<미운 우리 새끼>는 이런 엄마들의 보수적인 생각과 아들들이 보이는 때론 보수적이면서 때론 엄마와는 다른 생각들을 어떤 가치평가 없이 그대로 늘어놓는다. 이 프로그램에서 가부장적인 색채를 느끼는 건 그래서 당연하다. 엄마들도 그렇지만 아들들도 나이 들었다. 어떤 식으로든 가부장적 체계 안에서 살아오며 체득해온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이 들었어도 이들은 결혼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정도로 과거와는 달라진 결혼관을 드러낸다.

 

<미운 우리 새끼>에서 이들이 혼자 살아가는 모습은 엄마들이 생각하기에는 안쓰럽기 그지없지만 정작 그들은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들이 혼자 살아가는 이유에 대한 두 가지 서로 다른 관점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래서 결혼을 지상과제라고 제시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혼자 사는 삶 역시 오롯이 행복한 삶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엄마들은 여전히 며느리 감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엄마들의 생각일 뿐, 아들들은 결혼 자체를 생각하지 않고 대신 연애는 하고 싶고 아이는 갖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다.

 

여러모로 엄마와 아들이라는 프레임은 그 자체로 가부장적 체계의 한 부분을 연장해 보여주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에서 이 프레임은 과거의 가부장적 체계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고 그 균열을 보인다. 관찰카메라를 보던 엄마들은 아들의 행동을 보고 말을 들으며 저런 면이 있었나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희비극은 서로 겹쳐 있기 마련이다. 짠한 지점에 웃음이 있다. <미운 우리 새끼>는 웃기다가도 짠해지는 지점을 보여준다. 김건모가 한밤 중 태블릿PC의 대화 앱을 켜놓고 하릴없는 기계와의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은 웃기기 이를 데 없지만 그건 또한 혼자 살아가는 중년의 외로움 같은 걸 담아낸다. 엄마의 시선은 여기에 겹쳐지고 그래서 다시 기---결혼의 이야기로 돌아가지만, 이 프로그램은 그런 보수적 시선마저도 웃음의 코드로 만든다.

 

관찰 카메라가 어떤 의도적인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면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미세한 변화들을 감지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미운 우리 새끼>는 지금 결혼과 가족이라는 가부장적 프레임에서 홀로 살아가는 이들로 변화해가는 그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거기에는 그래서 안타까움도 짠함도 있고 답답함도 있으며 웃음도 존재한다. 있는 그대로를 그저 담아내고 반응 그대로를 그대로 보여주는 일. <미운 우리 새끼>가 이런 다층적인 재미를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그들이 혼자인 까닭이 보는 눈에 따라 다르듯이, 그 다른 관점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

<디마프>, 고두심과 김혜자가 보여준 엄마의 진면목

 

완이(고현정)는 잠든 엄마 난희(고두심)의 얼굴을 찬찬히 내려다본다. 그 얼굴은 많이 늙었고 어찌 보면 낯선 느낌이었을 것이다. 눈 떴을 때의 그 짱짱함이나 꼬장꼬장함은 어디 갔는지 사라지고 마치 아기처럼 잠 들어 있는 엄마의 문득 낯설게 다가오는 그 얼굴. 완이는 괜스레 엄마의 얼굴에 바람을 살짝 불어본다. 바람결에 뒤척이는 엄마를 보며 마치 살아있는 걸 확인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아마도 가장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어왔지만 우리가 오래도록 보지 않았던 엄마의 얼굴이 주는 알 수 없는 짠한 느낌. 난희의 얼굴을 바라보는 완이의 마음이 그랬지 않았을까.

 

'디어 마이 프렌즈(사진출처:tvN)'

치매를 앓게 된 희자(김혜자)의 민낯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나이 들어도 늘 소녀 같던 그녀가 아니던가. 그런 그녀가 방금 있었던 일도 기억을 못해내고 화장실을 혼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한다. 하지만 아픈 기억은 어째서 그리도 생생하게 잊히지 않을까. 젊은 시절 잃은 아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밤마다 성당을 잠옷 바람으로 찾아가 회개하는 그녀다. 희자의 잠든 얼굴을 아들 민호(이광수)는 아프게 내려다본다. 그 얼굴 또한 낯설음만큼의 아픔 같은 것이 아들을 통해 전해진다.

 

이 시선은 tvN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가 갖고 있는 어르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잘 보여준다. 지금껏 통상적으로 어떤 이미지로만 막연하게 그려져 온 어르신들의 얼굴. 하지만 이 드라마는 민호와 완이 같은 시선으로 그네들의 또 다른 얼굴들을 들여다본다. 겉으로 퉁퉁대고 때로는 꼰대처럼 굴었던 어르신들이지만, 그 이면에 숨겨왔던 아픔이나 고통 같은 것들이 거기서는 읽혀진다.

 

자식들에게는 낯설게 다가오는 얼굴이지만, 친구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얼굴이다. 아내인 정아(나문희)살 섞고 산 세월이 얼만데라며 아는 척하는 꼰대 어르신 석균(신구)은 이제와 아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아직도 그 진짜 얼굴을 잘 모른다. 그런 석균에게 충남(윤여정)우린 살 대신 마음 섞고 살았어.”라며 대꾸한다.

 

젊었던 시절 아이가 아파 결국 죽게 됐을 때, 유일한 친구였던 정아가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희자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그 원망의 마음을 토로하지만 그 후 희자는 미안한 마음에 정아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한다. 그런 희자에게 정아는 자신 역시 당시 유산된 아기 때문이었다는 걸 밝히면서도 미안하다고 말한다. 희자는 세상이 우리한테 미안해야 해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쓰다듬어 준다.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 오히려 화가 잔뜩 난 희자에게 난희는 자신이 암이라는 사실을 밝히며 오히려 그녀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병자끼리 있으니까 위로가 된다고 너스레를 떤다. 마음을 섞고 산 친구들은 서로의 얼굴을 오래도록 봐왔고 그래서 그들의 어떤 모습도 낯설지가 않다.

 

하지만 그런 난희도 자신의 엄마 오쌍분(김영옥)이 낯설다. 수술을 받기 전 내려간 시골에서 엄마가 챙겨주는 맛난 밥을 먹고는 한 방에서 삼대 모녀가 잠든 밤. 난희는 돌아누운 쌍분을 굳이 다시 되돌려 그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런 난희의 등 뒤에서 완이는 그녀를 꼭 껴안는다. 엄마의 얼굴은 그렇게 누구에게나 낯설다. 오래도록 함께 있었지만 그래서인지 자세히 본 적이 없는 그런 얼굴. 그것이 못내 우리를 마음 아프게 한다.

 

완이는 이 엄마의 낯선 얼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부모가 자식을 더 사랑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아마 그 말은 부모된 사람의 입장에서 한 말일 게다. 우리 자식들의 잘못은 단 하나 당신들을 덜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당신들이 영원히 아니 오래 우리 곁에 있어줄 거라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세상의 엄마들은 그렇게 나이 들었다. 희자처럼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엄마들은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정아가 받아들이듯 그건 혼자 할 수 있었던 것이지 지금은 아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그 날이 온다. 잠든 엄마의 얼굴이 몹시도 낯설게 다가오는 그 시간. <디어 마이 프렌즈>는 그 낯선 엄마들의 얼굴을 오래도록 비춰주었다. 우리들이 그 얼굴을 보며 눈물이 났던 건 아마도 우리 역시 저마다의 엄마들에 대한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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