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효성의 역사의식 부재, 무지가 폭력이 되는 이유

 

“저희는 개성을 존중하는 팀이거든요. 민주화시키지 않아요.” 시크릿의 전효성이 SBS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 출연해 무심코 던진 이 말은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만들고 있다. 아마도 80년대 민주화를 일궈낸 세대들에게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조차 생소할 것이다. 개성을 얘기하다가 갑자기 ‘민주화’라니. 그것도 이 말 속에서 ‘민주화’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가.

 

전효성(사진출처:예스)

그도 그럴 것이 ‘민주화’라는 단어는 대표적인 극우사이트인 ‘일간베스트’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선동되어 획일화됐다’는 의미란다. 왜 ‘민주화’라는 단어를 이런 식의 부정적 의미로 쓰는 걸까. 거기에는 이 극우사이트가 보여주는 ‘민주화’에 대한 다른 해석이 깔려 있다. 그들은 흔히들 많이 사용되는 ‘민주화’라는 표현을 비꼬고 있다. 그들에게 ‘민주화’란 특정 목적을 위해 행해지는 집단행동(심지어 폭력)을 풍자하는 단어다. 그럴 듯한 보수적 논리지만 이런 식의 해석은 결국 민주화 운동 자체를 폄훼하는 시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시크릿 측에서는 “효성이 ‘민주화’의 뜻을 모르고 쓴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전효성 역시 트위터를 통해 거듭 사과의 뜻을 전했다. ‘오늘 '최화정의 파워타임'에서의 저의 발언과 관련해서 올바르지 못한 표현을 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정확한 뜻을 알지 못하고 적절하지 못한 단어를 사용한 점 반성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황당한 것은 전효성 스스로가 반성과 사과의 글을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일간베스트’에는 ‘전효성을 지키자’며 시크릿 음반 구매를 유도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이들도 있고 이것이 ‘마녀사냥’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즉 ‘일간베스트’에서는 이렇게 벌어지는 논란 자체를 그들이 쓰는 의미로 특정세력이 ‘민주화’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똑같은 ‘민주화’라는 단어가 이렇게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되게 되었을까. 이런 식의 해석은 ‘민주화’가 들어간 수많은 역사적 행위들을 폄훼시킬 수밖에 없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87년 민주화 운동이 그렇고, 그 민주화 운동으로 희생된 수많은 젊은이들과 시민들도 그렇다. 또 정반대로 광주 시민들을 군화발로 짓밟은 이들의 폭력은 전혀 다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벌써부터 전효성의 발언으로 커진 여론에 대해 ‘광주의 피해의식’ 운운하는 댓글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때마침 <무한도전>이 아이돌들을 모아 놓고 ‘역사특강’을 하면서 우리네 역사교육의 문제를 꼬집은 것은 이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면 선견지명이었다고 여겨진다. 5월18일 방송 예정인 ‘역사특강’ 2편은 그래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크릿 출연분량을 편집해달라는 네티즌들의 요구는 정당하지만 그것이 어찌 전효성만의 문제일까. 이번 논란은 젊은이들의 역사의식을 부재하게 만들어버린 우리네 역사교육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전효성은 ‘몰랐다’고 하지만 그 무지가 타인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민주화 과정에서 상처 입은 분들에게는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보상이고 예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적 이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역사 자체를 전면 부정하거나 곡해할 수 있는 언어의 다른 사용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마치 서로 다른 두 나라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다. 언어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가. 정치 싸움의 편 가르기가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무한도전>이 제기한 제대로 된 역사의식과 역사 교육은 그래서 더더욱 필요한 일이다.

신사(神社)가 젠틀맨? <무도>가 알려준 우리 역사의 현실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어쩌다 우리는 역사를 예능으로 배우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일까. <무한도전>이 ‘역사 특강’을 통해 준 감동은 역사적인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특히 수통 폭탄과 함께 자결을 위해 도시락 폭탄까지 준비한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나,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옥사한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 또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 마리아 여사가 ‘당당하게 죽으라’며 보낸 편지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빛바랜 사진으로 남아있는 유관순 열사의 퉁퉁 부은 얼굴이 일본 순사에게 양 뺨을 스무 차례 이상 맞아 그렇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결하려는 이와, 또 죽음을 앞두고 있는 자식에게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하라’고 편지를 보낸 어머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들이 있어 지금의 우리가 있는 셈이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너무 쉽게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이 퀴즈 형식을 내세워 역사에 무지한 현실을 드러내곤 했었다. <1박2일>이나 <남자의 자격>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는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역사 퀴즈가 예능의 아이템에 머물렀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무식함을 보며 한바탕 웃었을 뿐, 그 뒤에 남는 씁쓸함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다. 그것이 자칫 예능을 무겁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도전> ‘역사 특강’은 그런 선입견과 한계를 훌쩍 넘어섰다. 본격적으로 역사를 다루면서도 웃음과 의미를 모두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 특강’ 전에 아이돌들을 대상으로 치러한 ‘헐 장학퀴즈’는 그 스튜디오 구성 자체가 <스타골든벨>을 가져온 것처럼 전형적인 예능식 퀴즈로 진행되었다. 말도 안 되는 답을 적는 것으로 무식을 드러내며 웃음을 주는 방식. 하지만 이 웃음은 우리가 너무나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심각해졌고 ‘역사 특강’이라는 새로운 도전으로 멤버들을 이끌었다. 멤버들이 스스로도 배우고 아이돌들에게도 역사를 알리고자 특강을 준비하는 과정은 <무한도전> 특유의 깨알 같은 웃음을 놓치지 않았지만 또한 진지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바로 <무한도전>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우리 역사를 배우자’고 나서는 작금의 현실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지금 우리네 국사 교육은 고등학교 전 과정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되어 있다. 국사 과목이 점수 받기 힘들다는 인식은 많은 청소년들이 이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이다. 고등학교에서 국사를 선택하지 않으면 3년 내내 우리네 역사에 대한 지식은 잊혀져버리고 마는 셈이다. 역사왜곡과 독도분쟁 등 우경화되어가는 일본과 동북공정이 나오고 있는 중국 사이에서 역사의식마저 희미해진다면 우리네 미래는 얼마나 불투명할 것인가.

 

그래서 <무한도전>이 역사를 다루면서 웃음기를 지우고 자못 진지해지는 그 지점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진다. 젊은 세대들이 역사를 너무 모른다고 탓하기 전에 역사 교육을 사실상 포기한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유재석이 담담히 읽어가는 조 마리아 여사의 편지에 눈물 글썽이는 아이돌들을 보라. 그들 역시 우리네 역사의 아픔에 가슴 아파 하지 않는가. 역사교육에 대한 경종을 다름 아닌 예능 프로그램이 하고 있다는 것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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