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왕후'에 쏟아진 논란, 패러디나 풍자가 선을 넘을 때

 

"주색으로 유명한 왕의 실체가...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지라시네. 괜히 쫄았어." tvN 토일드라마 <철인왕후>에서 조선시대로 타임리프되어 왕후인 김소용(신혜선)의 몸으로 들어간 장봉환(최진혁)은 그렇게 말한다. 애써 철종(김정현)과의 첫날밤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도리어 그가 피곤하다며 혼자 잠자리에 들자 안도하며 툭 내뱉는 말이다. 

 

이 말의 의미는 자신이 조선왕조실록의 역사를 통해 알고 있던 철종의 모습과 그의 앞에 마주한 철종이 다르다는 걸 드러내는 말이다. 역사는 철종이 세도정치 속에서 주색에 빠진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기록과 다른 철종의 행동에 장봉환이라는 바람둥이의 목소리로 그런 대사가 담긴 것. 

 

그런 의미라고는 하지만, 이런 과격한 표현은 분명 문제의 소지를 낳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첫 회에 등장했던 "여기가 무슨 조선시대야?"라고 김소용이 왕에게 묻고 왕이 "조선시대요"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수위의 표현이다. 그건 비하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재에도 시대착오적 상황을 말할 때 "무슨 조선시대야?"라고 하는 그 비판적 뉘앙스를 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구체적인 문화유산을 가져와 '지라시' 운운하는 건 제아무리 패러디나 풍자라고 해도 선을 넘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는 김소용이 술자리 게임에서 어깨춤을 추며 던진 "언제까지 종묘제례악을 추게 할 거야" 같은 대사에서도 똑같이 생겨나는 문제다. 굳이 구체적인 '종묘제례악'을 가져와 웃음을 만들려 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철인왕후>는 조선시대로 상정되는 엄숙한 권위들을 뒤틀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가 힘을 발휘하는 드라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모두를 웃게 만들려면 표현에 있어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극중 실존인물인 신정왕후의 후손인 풍양 조씨가 <철인왕후>가 그려낸 신정왕후의 희화화에 대해 강력대응 하겠다 나선 건 이처럼 파격적인 이야기를 다루면서 드라마 속 인물을 굳이 실존인물의 이름 그대로 담아낸 데서 발생한 일이다. 

 

만일 철종이나 신정왕후 그리고 풍양 조씨, 안동 김씨 같은 실제 역사 속 인물군을 끌어오지 않고 아예 조선시대라는 시공간만 가져와 가상의 인물들로 이야기를 풀어냈다면 어땠을까. 이런 논란을 애초에 발생하지도 않았을 게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조선왕조실록'이나 '종묘제례악' 같은 구체적인 문화유산을 소재로 끌어와 희화화할 정도로 과격한 길을 선택했다. 이런 표현이 논란이 될 거라는 걸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사건 등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드라마는 이렇게 사전고지를 함으로써 여기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창작자의 허구라는 걸 분명히 한다. 하지만 그 허구 속에도 구체적인 실제 역사 속 인물이나 유산들이 그 이름 그대로 지칭되고 있는 건 이런 고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또한 이렇게 철종 같은 역사 속 실제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옴으로써 발생하는 논란은 단지 표현의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결국 드라마는 역사에서 다뤄진 철종과는 너무나 다른 철종의 모습을 그려낼 가능성이 높아졌다. 겉으로는 주색에 빠진 듯하고 별 강단도 없어 보이는 인물처럼 꾸미고 있지만 밤이 되면 궁을 빠져나가 마치 협객처럼 무언가를 도모하고 있는 인물이다. 허구라는 걸 밝혔지만 철종의 이름을 가진 인물이 역사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지는 건 과연 괜찮은 걸까. 

 

만일 실제 역사와는 다른 완전한 허구의 세계로 그려졌다면 <철인왕후>는 충분히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전할 수 있는 작품일 수 있다. 하지만 거기 등장하는 구체적인 인물과 유산을 담은 표현들은 허구라고 해도 웃기 힘든 지점들을 발생시킨다. 다소 파격적이지만 괜찮은 시도일 수 있었던 <철인왕후>. 너무 과격하고 과감했던 '표현의 문제'가 그 발목을 잡고 있다.(사진:tvN)

‘나랏말싸미’, 세종대왕 폄훼 아니라고 하지만

 

영화적으로만 보면 <나랏말싸미>는 꽤 잘 만든 영화다. 그것은 이 영화가 지금까지 세종대왕을 다루는 많은 콘텐츠들이 깊게 들어가 보지 않았던 한글의 창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다루고 있어서다. 무에서 유를 창출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제목에 담긴 것처럼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의 서문처럼, 우리는 우리말을 하고 있는데 글자는 한자를 쓰는 당대 언어생활의 어려움은 세종대왕이 그 말을 소리 나는 대로 글자로 만들려한 중요한 이유다.

 

소리글자를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발성을 해가며 그 소리가 입안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내기 위해 손가락을 집어넣고 소리를 내는 과정들을 반복하고, 그 일관된 규칙을 찾아내며 나아가 점과 선만으로 다양한 글자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그 한글의 창제 과정 속에는 그래서 자연스레 세종대왕의 뜻과 마음이 얹어진다. 그 뜻은 모든 정보들을 민초들도 공유하게 하여 특정권력자들이 정보를 독점해 나라가 망하는 걸 막겠다는 것이고, 그 마음은 좀 더 민초들이 편리하게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애민정신’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이 주도적으로 이 한글 창제를 하는 과정을 온전히 담았다면 박수 받아 마땅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나랏말싸미>는 박수는커녕 역사왜곡 논란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것은 출처도 불분명한 신미 스님의 한글창제설을 덜컥 영화의 중심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신미는 세종대왕이 홀로 고민해온 연구들을 보고는 한 마디로 ‘헛짓’을 했다고 일갈하고, 소리문자를 만들기 위해 본인이 능숙한 산스크리트어를 참조하며 한글을 만들어나간다.

 

신미가 한글 창제의 중심부에 서게 되자 자연스럽게 세종대왕은 뒤편으로 물러난다. 물론 이를 지시하고 그 과정들을 검수하는 건 세종대왕의 역할이 되지만, 실제로 우리의 소리를 정리하고 점과 선으로 이어 만든 글자를 만들며, 심지어 그 한글을 쓰는 법을 정리한 것도 모두 신미의 몫이 된다.

 

물론 <나랏말싸미>가 이처럼 다소 도발적인 시도, 즉 신미가 한글 창제의 중심에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왕과 대등한 스님이라는 그 구도가 지금의 대중들에게 어떤 카타르시스를 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게다. 과거 <광해> 같은 영화가 광해라는 왕과 광대를 병치시키면서 만들어냈던 카타르시스와 유사한 어떤 것.

 

하지만 신미가 세종대왕을 ‘주상’이라 부르고, “왕 노릇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에서 지금의 대중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보다는 어떤 불쾌함을 느끼는 면이 더 컸다. 역사는 세종대왕이 주도적으로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우리의 문화유산인 한글을 창제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어디서 갑자기 스님 한 명이 나타나 그걸 자신이 했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세종대왕에게 면박을 주는 대목이 어딘가 잘못됐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역사왜곡 논란이 점점 커지자 <나랏말싸미> 조철현 감독은 신미를 세운 일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의도가 아니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가졌을 내면의 갈등과 고민을 ‘외면화’하기 위해 영화적 인물을 만들어냈을 뿐이라는 것. 그리고 신미가 실존인물이며 여러 문헌에 기록이 나와 있어 충분히 ‘역사 공백을 개연성 있는 영화적 서사’로 만들만한 근거가 있는 인물이라고도 했다. 세종대왕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영화 <나랏말싸미>는 시작부분에 ‘다양한 훈민정음 창제설 중 하나일 뿐이며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고 자막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한 인터뷰에서 “나로서는 넣고 싶지 않은 자막일 수 있다”며 “어째 됐든 그 누구든 역사적인 평가 앞에서 겸허해야 된다는 판단에서 넣게 됐다”고 한 말이 그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세종대왕이 주도적으로 만든 한글을 신미가 주도해서 했다고 하는 영화의 이야기는, 창작물로서의 상상력의 허용을 어느 정도 감안한다 하더라도 대중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외국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특히 일본 같은 나라에서 이 영화의 신미 한글창제설을 보게 된다면 또 엉뚱한 말들을 늘어놓지 않을까 우려된다. 역사왜곡을 의도하려 한 건 아닐 수 있어도 <나랏말싸미>는 지금의 대중들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이 이 영화가 끝내 무너지게 된 진짜 이유다.(사진:영화'나랏말싸미')

‘미스터 션샤인’의 멜로는 어떻게 대의와 어우러졌나

역사왜곡 논란으로 시끄럽지만 역시 김은숙 작가의 멜로는 절묘한데가 있다. tvN 주말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총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멜로가 그렇다. 유진초이(이병헌)와 고애신(김태리)의 첫 만남은 일본과 야합하는 미국인을 저격하는 현장에서다. 그들은 복면을 한 채 같은 표적을 향해 총을 겨눴고, 저격이 끝난 후 도주하다 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그건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살피려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면서, 동시에 이 두 사람이 첫 만남을 갖게 되는 순간이다.

그 사건을 조사하게 된 유진은 애신을 불러 면담을 하게 되고, 이미 서로의 정체를 들킨 그들은 손바닥으로 서로의 하관을 가린 채 그 눈빛을 교환한다. 그건 애신이 동지인 줄 알았던 유진이 미국인이라는 그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이면서 좀 더 가까이 서로의 눈빛을 나누는 순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다시 ‘사라진 총기’가 인연이 되어 만나게 된다. 미군이 총기를 찾기 위해 애신의 몸수색을 하려 할 때 유진이 등장하게 된 것. 그건 애신과 유진이 미국과 조선이라는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런데 유진은 애신에게 번번이 사건을 수사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사건을 덮으려 한다는 걸 귀띔한다. 저격사건은 본인이 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 여겨지지만, 총기가 사라진 사건을 덮으려는 유진의 행동은 다소 의아한 선택이다. 애신의 스승인 장포수(최무성)가 총기를 훔쳐갔다는 심증을 가진 유진은 총포 연습을 하는 애신을 찾아와 곧 이곳에 미군들이 들이닥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내 스승의 뒤를 캐는 거요? 아님 내 뒤를 캐는 건가?” 애신의 도발적인 질문에 유진은 드디어 속내를 드러낸다. 애초 조선에 들어올 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했다는 그가 “호기심”이 생겼다는 것. “조선이 변한 것인지 내가 본 저 여인이 이상한 것인지. 잡아넣지 않는 걸로 방관했고 총을 찾지 않는 걸로 편들었소, 지금 그걸 수습중이고.” 이 절묘한 대사는 그간 그가 미국인 저격 사건을 수사하고 또 사라진 총기를 수사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애신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됐다는 걸 드러낸다. 처음엔 호기심이었지만 ‘방관’했고 ‘수습’하고 있다는 건 그의 마음이 애신에게 기울어지고 있다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대목이었다. 

애신은 저격 사건이 있던 날 밤거리에서 유진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똑같이 유진에게 말한다. “어느 쪽으로 가시오. 그쪽으로 걸을까 하여.” 그 말은 서로가 가는 방향이 같을 것이라는 ‘동지적 발언’이면서 동시에 두 사람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함께 숲길을 걸으며 유진이 애신에게 문득 묻는다. “그건 왜 하는 거요? 조선을 구하는 거.” 그러자 애신은 대의를 이야기한다. “꼴은 이래도 오백년을 이어져온 나라요. 그 오백년 동안 호란 왜란 많이도 겪었소.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지켜내지 않았겠소. 그런 조선이 평화롭게 찢어 발겨지고 있소. 처음엔 청이, 다음엔 아라사가, 지금은 일본이, 이제 미국 군대까지 들어왔소. 나라꼴이 이런데 누군가는 싸워야하지 않겠소?”

그런데 그런 대의보다 유진은 애신이 더 궁금하다. “그게 왜 당신이요?”라고 묻는 것. 그러자 애신은 “왜 나면 안되는 거요?”라고 되묻고 “혹시 나를 걱정하는 거면”이라 덧붙인다. 조선을 구한다는 대의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그걸 앞장서서 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유진은 “내 걱정을 하는 거요”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건 자신의 마음이 애신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는 걸 걱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미국인으로서 돌아온 자신과 조선인인 애신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 자신을 걱정하는 것인가. 대의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총을 겨누거나 총을 사이에 두고 있어도 동시에 설렘이 느껴지는 구한말 격변기를 배경으로한 김은숙 작가의 색다른 멜로구도가 절묘하게 다가온다.(사진:tvN)

볼게 없는 수목극에서 드러난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 문제들

볼게 없다. 제 아무리 퐁당퐁당 연휴라고는 하지만 현 지상파의 수목드라마들에 대한 관심은 바닥이다. 시청률부터가 그렇다.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 <추리의 여왕>은 조금씩 추락하며 9%에 머물렀고, 같은 날 종영한 SBS <사임당, 빛의 일기>와 MBC <자체발광 오피스>는 각각 8.2% 그리고 7%로 고만고만한 수치로 끝을 맺었다. 사실 이 정도 수치면 순위를 말하기가 무색해진다. 두 자릿수 시청률도 못 내고 있고, 화제성도 뚝 떨어졌으니.

'사임당, 빛의 일기(사진출처:SBS)'

시청자들은 제발 tvN이나 OCN 같은 채널의 드라마들에서 배우라고 말한다.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현재의 수목극에서 누구 할 것 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그나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추리의 여왕>은 물론 일상 소재의 추리극이라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건은 등장하지 않고 너무 서설이 긴데다 인물들의 장황한 신변잡기들만 늘어놓고 있어 심지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 의도가 흐려질 정도다. 

9회는 팬티 도둑이 강도로 돌변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마지막 장면이 갑자기 튀어나오기 전까지는 사실 설옥(최강희)과 완승(권상우)의 이야기는 굳이 드라마에서 다뤄져야할까 싶을 정도로 소소한 것들이었다. 물론 그런 일상의 이야기와 거기서 드러나는 아줌마 셜록, 설옥의 면면들이 초반만 해도 재미를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설명은 어느 정도가 아닐까. 이제 10회를 넘어선 상황이면 본격적으로 사건전개를 해나가며 시청자들의 몰입을 높여야 하는 게 정상이다. 이 작품은 16부작으로 이제 겨우 6부를 남기고 있을 뿐이 아닌가. 시청자들이 OCN의 <터널> 같은 밀도 있는 작품과 이 드라마를 비교하는 이유다.

종영한 <사임당, 빛의 일기>는 역시 기획 단계부터 현재와 과거를 엮는 그 구성이 만들어낸 한계점을 마지막까지 지우기 힘들었다. 결국 현재 이야기를 상당부분 덜어내고 과거의 사임당 이야기를 중심으로 재편집하면서 후반에는 내보낼 분량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애초 30부작에서 28부작으로 축소했지만 28회의 분량을 보면 전반부는 사실상 과거 영상들을 짜깁기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결말도 갑작스럽게 개과천선한 갤러리선의 관장(김미경)이 기자회견으로 진실을 밝히면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점도 너무 허술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사임당, 빛의 일기>는 결국 이영애의 복귀작이었지만 실패작으로 남았다. 200억이 넘는 투자가 된 작품이고, 100% 사전 제작되었지만 완성도도 담보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도대체 사임당이라는 인물을 왜 주인공으로 세웠는가가 무색한 이야기 전개는, 역사왜곡의 차원을 차치하고라도 문제를 남겼다. 결국 양류지소라는 고려지를 만드는 과정이 드라마의 반 이상을 차지했지만 그것이 사임당이라는 실존인물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고, 애초 워킹맘으로서 혁신적인 여성상을 그리겠다던 포부는 현모양처의 보수적 이미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같은 날 종영한 <자체발광 오피스> 역시 지상파 드라마에서 항상 문제로 제기되던 용두사미로 끝을 맺었다. 이 드라마가 애초의 흐름에서 갑자기 방향을 틀고 그저그런 드라마로 전락하게 된 시발점은 서현(김동욱)이라는 회장 아들의 갑작스런 흑화에서부터였다. 서현이 본부장으로 하우라인에 들어와 인사권을 쥐고 ‘농단’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뻔해졌다. 서현으로 인해 고질적인 회사의 라인문화가 전면에 등장하고, 이러한 악역을 통해 은호원(고아성)과 서우진(하석진) 캐릭터를 세우려 한 것.

결국 은호원과 서우진은 이러한 핍박에 맞서 싸우는 인물로 서게 되고 또 두 사람은 멜로관계로 얽히는 연인이 되었지만 서현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갑자기 변화한 것에 대해서 드라마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억지로 악을 세워 선을 구축하려는 드라마의 방식은 너무 단선적이라 그다지 감흥을 주기가 쉽지 않았다. 애초 여성판 <미생>이라던 이 드라마는 그래서 오히려 <미생>을 통해 배우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수목극은 사실 지상파 드라마의 자존심이나 다를 바 없다. 다른 시간대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가 가장 트렌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의 수목극들을 보면 지상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들만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이러니 케이블 드라마로부터 배우라는 이야기가 나올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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