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보다 아름다운’으로 손석구와 부부가 된 김혜자의 새 얼굴

천국보다 아름다운

“이러고 돈 버는 걸로 너네 부모 내복 사드렸니?” 험상궂은 조폭들이 빚독촉을 하러 온 집에서 해숙(김혜자)은 빚진 아들은 한강에 갔고 자신은 가진 게 없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강짜를 놓는다. 결국 “똥 밟았다”며 조폭들이 포기하고 돌아가자 해숙은 본색을 드러낸다. 조폭들은 해숙이 그 집에 사는 남자의 엄마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해숙 또한 그 남자가 빌려쓴 돈을 받으러 온 일수꾼이다. 그 남자에게 자기가 “사람도 죽인다”며 칼을 뽑아 들자 남자는 가진 돈을 털어 놓는다. 

 

JTBC 토일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의 이 첫 장면은 김혜자라는 배우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얼굴을 갖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저 조폭들이 그러했듯이 ‘엄마의 얼굴’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금세 돈 받으러온 일수꾼의 냉혹한 모습으로 얼굴을 갈아 끼운다. 물론 목소리는 김혜자 특유의 나긋나긋한 톤 그대로지만, 측은했다가 화를 냈다가 자포자기 한 표정에서 험한 표정을 짓는 그 변화 속에서 이 인물이 주는 감정은 계속 바뀐다. 이것이 바로 김혜자라는 배우가 부리는 연기의 마법이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에서 해숙은 실로 여러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인물이다. 험하게 일수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지만, 그것이 사랑하는 남편 고낙준의 병수발 때문이라는 건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빚을 받으러 갔다가 아빠에게 학대받던 영애를 빚대신 데려다 딸처럼 키워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코미디와 판타지도 뒤섞여있다. 해숙의 삶은 힘겹기 그지없고, 그래서 결국 남편도 죽고 자신도 죽게 되는 비극이지만 드라마는 이들이 천국에서 다시 만나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그래서 처절한 삶의 비극은 가볍고 발랄한 희극과 겹쳐지고, 무겁디 무거운 삶의 현실은 더할 나위 없이 가벼운 죽음의 판타지를 오간다. “하루 같이 살면은 하루 더 정이 쌓여서 예쁜 건가? 지금이 우리 마누라 제일 예뻐요.” 죽기 전 남편이 했던 그 말 때문에 80의 나이를 선택한 해숙은, 천국에서 만난 젊은 나이를 선택한 고낙준(손석구) 앞에서 아연실색한다. 80의 몸으로 천국에서 젊은 남편과 함께 살아가게 된 해숙 앞에 갑자기 나타나 남편의 품에 안기는 젊고 예쁜 솜이(한지민)가 등장하면서 나이를 뛰어넘는 삼각관계(?)가 예고된다.

 

이처럼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희비극이 얽혀있고, 그래서 비극이 희극처럼 그려지는 드라마지만 그 웃음의 끝에는 묵직한 비극의 예감을 주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 작품이 다름 아닌 김혜자가 연기하고 2019년작 ‘눈이 부시게’의 제작진인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감독이 뭉친 작품이기 때문이다. ‘눈이 부시게’ 역시 20대의 나이에 시간여행을 하는 혜자(한지민)가 시간을 잘못 돌려 70대 노인이 되며 벌어지는 코믹한 해프닝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이 70대 노인 혜자(김혜자)의 치매 증상이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천국보다 아름다운’은 죽어서 천국에 간 혜자가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생전의 인연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참이다. 결국 죽음 이후의 천국의 삶을 그리지만, 죽음 이전의 삶에 담긴 애환 가득한 이야기가 채워질 것으로 보인다. 즉 천국의 삶은 웃음이 터지는 희극이지만, 거기서 환기되는 현실의 삶은 비극일 가능성이 높다. 

 

삶과 죽음, 희극과 비극, 현실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이 작품은 그래서 김혜자에게도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벌써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 최고의 배우로 살아가는 그녀는 마치 ‘변검’을 하듯이 여러 얼굴들을 순간순간 갈아끼우며 이 다양한 경계를 넘나드는 드라마를 종횡무진한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한 소녀 같은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 나이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자애로운 엄마의 얼굴과 더불어, 때론 정반대로 냉혹하고 살벌한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실로 김혜자가 지금껏 연기해온 여러 작품 속 인물들의 다양한 얼굴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김혜자는 ‘국민엄마’라는 칭호를 얻은 배우였다. 그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바로 1980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22년 간 방영됐던 ‘전원일기’다. 그 작품에서 엄마 역할을 하며 매주 얼굴을 내밀었으니 시청자들에게 김혜자가 국민엄마로 각인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배우에게 고정된 이미지만큼 큰 리스크는 없다. 김혜자는 그걸 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배우이기도 하다. 91년에 방영됐던 ‘사랑이 뭐길래’에서는 가부장적인 남편 때문에 기죽어 살면서도 소심한 복수를 하는 당대의 엄마 역할로 변신했고, ‘엄마가 뿔났다’에서는 가사노동 파업선언(?)을 하는 엄마의 파격을 보여줬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는 광기어린 모습으로 모성애의 끔찍함을 드러내는 연기를 통해 ‘국민엄마’라는 칭호에 갇히지 않는 배우의 공력을 드러냈다. 이 작품으로 김혜자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LA비평가협회상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기억을 잃어가는 노년의 희자 역할이나,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는 엔딩 내레이션으로 유명한 ‘눈이 부시게’의 혜자 역할, 그리고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제주에서 기구한 삶을 살아온 동석 엄마를 소화하며 같은 엄마 역할도 다양한 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김혜자는 손수 증명해 보였다. 그러니 ‘천국보다 아름다운’ 같은 다채로운 얼굴을 요하는 작품 속에서도 별다른 이물감 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연기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간 연기로 쌓아온 이 많은 엄마의 얼굴들이 자유자재로 꺼내지고 있다고나 할까. 

 

사실 연기라고는 하지만 손석구와 부부 연기를 한다는 것이 쉬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석구 앞에서 토라지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소녀 같은 김혜자의 모습은 나이가 주는 편견 또한 깨주기에 충분하다. 나이 들면 여자가 아닌 아내나 엄마로 불리고, 또 남자가 아닌 남편이나 아빠로 불리는 그 역할이 당연하다 여기는 건 얼마나 큰 편견인가. ‘국민엄마’라 불려도 그것이 하나의 고정된 얼굴이 아닌 다채로운 얼굴로 떠올리게 만드는 김혜자를 보다보면, 누군가를 그저 하나의 역할로 고정시켜 바라보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글:국방일보, 사진:JTBC)  

‘유어 아너’로 명배우 재입증한 김명민

유어아너

“나는 화가 안나. 너무 아파서, 너무 슬퍼서 화가 날 겨를이 없어. 어떻게 화를 내는 건지도 기억이 안나.” 지니TV 오리지널 드라마 ‘유어 아너’에서 김강헌(김명민)은 아들이 죽었는데도 왜 화조차 내지 않느냐며 나무라는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다. 이 말은 김강헌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며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해나갈 것인가를 잘 드러낸다. 조직 보스에서 우원그룹의 대표로 우뚝 선 이 인물은 우원시(시의 이름조차 회사 이름에서 따올 정도다)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자다. 손 하나 까닥 하는 것으로 누군가를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인 그런 인물. 그런데 막상 자신의 아들이 죽자 그는 화조차 내지 않는다. 그것은 화를 내는 것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너무나 축소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가진 분노와 고통은 그래서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 말 한 마디에 ‘유어 아너’라는 작품이 가진 극적 긴장감은 최고조로 올라간다.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고통 그 이상을 가진 무소불위의 존재가 앞으로 어떤 복수를 해나갈 것인가가 그 긴장감을 무한대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다. 

 

‘유어 아너’는 이처럼 아들의 살인범을 추적하는 무자비한 권력자 김강헌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이 그 중요한 추진력의 한 축을 차지하는 드라마다. 다른 한 축은 그 살인을 저지른 아들의 아버지인 송판호(손현주)가 쥐었다. 세상의 존경을 받는 정의로운 판사인 송판호는 김강헌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어떻게든 아들을 살리기 위해 넘지 말아야 할 선까지 넘는다.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른다. ‘유어 아너’는 그래서 김강헌과 송판호의 부성애가 격돌하는 대치상황을 그려나간다. 하지만 그 열쇠는 주로 모든 걸 꿰고 있고 심지어 송판호가 꾸미는 일들조차 쉽게 알아차리는 김강헌의 손에 쥐어진다. 

 

김명민은 이번 김강헌 역할을 하기 위해 영화 ‘대부’를 참고했다고 한다.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듯 말하지만 누구나 긴장하며 들어야 할 것 같은 위압감이 느껴지는 ‘대부’의 돈 꼴레오네(말론 브란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대부’를 참고했다고 하지만 ‘유어 아너’의 극적 긴장감이 폭발력을 갖게 만든 건 김명민이 김강헌 역할을 소화하는데 있어서 ‘발산’이 아닌 ‘억압’하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김명민은 이 뭐든 할 수 있는 권력자가 그걸 억누를 때 극적 긴장감이 생긴다는 걸 잘 이해하고 연기를 했다. “그렇겠지. 쉬운 싸움이 아니겠지. 존경을 받던 사람이 나쁜 짓을 해야 하니까 어렵겠지. 근데, 내가 너를 죽이는 일은 쉬운 일이야. 너는 무척 어려운 일을 해야 하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참아야 해.” 김강헌이 송판호에게 으름장을 놓는 이 장면에서 그 역할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을 억눌러야 하는 최고의 권력자. 바로 여기에 김강헌이라는 인물이 ‘유어 아너’에서 소화해냐 하는 역할이 있다는 걸 김명민은 간파했다. 

 

사실 이런 연기 스타일은 기존의 김명민이 해왔던 ‘메소드 연기’와는 조금 다른 면이다. 김명민은 자타가 공인하는 메소드 연기의 대가다. 영화 ‘내 사랑 내곁에’에서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종우 역할을 연기하기 위해 50킬로에 가깝게 살을 급격히 빼고(저혈당 증세가 올 정도였다고 한다), 관련 서적을 수십 권씩 독파했으며, 그 고독을 느끼기 위해 몇 달 간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 중 휠체어에서 쓰러지는 장면 하나를 제대로 하기 위해 몇 차례씩 다시 찍는 비하인드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힘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성웅 이순신의 인간적인 고뇌까지 담아내는 연기를 선보였는데 그것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 소설가 김훈의 ‘칼의 노래’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고, 이순신의 연령에 맞는 목소리 톤을 미리 준비하고 연습을 반복했다고 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에서는 “똥덩어리”라는 명대사가 완벽하게 입에 착 달라붙을 정도로 그 캐릭터에 몰입했으며, ‘하얀거탑’의 장준혁에서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며 거의 신경쇠약 직전에 이르는 이 인물 그 자체가 됐다. 그의 메소드 연기는 이처럼 완벽하게 그 인물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유어 아너’에서 그는 인물 자체가 되어 빠져들기보다는 그 인물이 특정 상황에서 주는 효과를 적절히 맞춰나갔다. 김명민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왜 이런 연기의 변화를 시도했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너무 메소드, 메소드하니 힘들어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멀리하는 것 같다, 요새는 쉽게 쉽게 연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강압적으로 연기하는 게 힘들어 보일 수도 있다는 충고를 들었거든요.” 물론 그렇다고 그의 연기가 메소드에서 벗어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그의 이런 이야기는 너무 역할에 과도하게 빠져들기보다는 적절한 선과 여유가 생겼다고 봐야 할 게다. 이런 여유는 당연히 연기에 있어서 개인적 기량보다 중요한 앙상블에는 오히려 더 좋은 상황을 만들어낸다. ‘유어 아너’에서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 손현주와의 연기 앙상블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진 건 아마도 이런 한 걸음 빠져나온 김명민의 여유에서 가능해진 게 아닐까 싶다. 

 

“제 이름이 아니라 캐릭터만 쭉 올라오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 작품을 했던 사람이 이 작품을 했다는 게 의심 갈 정도로 캐릭터의 차별화가 확실했으면... 사람들이 제 이름을 제대로 모르고 못 알아봐도 제가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뿌듯하죠.” 과거 한 인물 다큐에서 김명민이 했던 연기에 대한 자세에 대한 말은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 다만 김강헌이라는 인물을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아니게 안으로 억누르는 연기로 더 강렬한 존재감을 만든 것처럼, 이제 그는 어떤 연기가 극에 효과를 극대화해주는가를 정확히 간파해 가며 연기를 하는 여유가 생겼다. 자신의 이름이 아닌 역할로 남는 배우가 무엇인가를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이다. 또한 하나의 작품이 잘 되기 위해서는 도드라진 한 인물이 아닌 저마다의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라는 것 또한 그는 보여줬다. 그리고 이건 함께 무언가를 해나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글:국방일보, 사진:ENA)

'며느라기'가 보여주는 비뚤어진 역할 고정관념 문화

 

부부 두 사람만 살면 별 문제가 없을 듯싶다. 하지만 시월드에 한 번 갔다 오면 부부 사이에서는 냉기가 흐른다. 카카오TV <며느라기>가 보여준 제삿날 시댁 풍경은 며느리 민사린(박하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차별적인 모습에 불편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남편과 시아버지 그리고 작은 아버지가 한 편에서 술판을 벌일 때, 시어머니 박기동(문희경)은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민사린과 부엌에서 제사상을 차린다.

 

그런데 남편 무구영(권율)도 아내 민사린이 그렇게 혼자 고생하는 걸 모르거나 당연히 여기는 건 아니다. 다만 시월드의 분위기가 며느리들이 일하는 게 당연한 듯 흘러가고, 그래서 민사린이 희생하는 것으로 그 화목한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감수할 뿐이었다. 그래서 무구영은 민사린에게 그 일을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그 역시 남편과 아들로서 모두 잘 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런데 사린아. 부모님 만나는 날만 그냥 그렇게 있어주면 안될까?" 무구영이 원하는 건 그런 날들만 아내 민사린이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거였다. 민사린 역시 자식으로서 부모에게 잘 하려는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혼돈스럽다. 그 제삿날의 풍경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또 남편의 마음도 이해되는 면이 있어서다.

 

무구영은 자신 역시 장모님에게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었다. 장모님을 찾아가 가게 정리하는 걸 도와주고 노래방에서 오랜만에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민사린은 엄마와 함께 잠자리에서 아빠가 효자라 엄마가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러자 엄마는 "자기 부모한테 잘 하는 사람이 상대방 부모한테도 잘한다"며 "시집가면 여자가 많이 참아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래야지 또 가정의 평화가 오고 또 그게 나중에 다 내 복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민사린의 엄마가 말하듯 자기 부모한테 잘 하는 사람이 상대방 부모한테도 잘할까? 또 시집가면 여자가 참야 되는 게 당연한 일일까. 가정의 평화가 오고 나중에 내 복으로 돌아온다고 해도 그걸 감당하는 게 과연 괜찮은 일일까. <며느라기>에서 민사린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엄마다. 그 역시 며느리로서 겪었던 일들이 아닌가. 하지만 어째서 엄마가 자신이 겪은 일들을 딸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생각해보면 민사린의 시어머니인 박기동도 무씨 집안의 며느리로 감당해온 세월이 있다. 그런데 어째서 며느리에게도 자신이 겪은 일들을 반복하게 하는 걸까. 그가 딸 무미영(최윤라)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며느리에게 하는 그것과는 왜 그렇게 다를까. 무미영 역시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같은 며느리로서 민사린에게 전화한 무미영은 자신의 엄마와 함께 찜질방에 간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며 미안해한다.

 

딸과 시누이, 며느리와 엄마, 시어머니, 장모. 모두 다른 호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잘 들여다보면 한 사람이 모두 가질 수 있는 호칭들이다. 그런데 그 같은 사람이 가는 곳에 따라 관계 속에서 이렇게 다양한 호칭으로 불리는 건 왜일까. 그건 그 호칭에 따른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단단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사람인데 딸로서 하는 역할과 시누이, 며느리, 엄마, 시어머니, 장모의 역할이 왜 이렇게 다를까. 그런 역할에서 벗어나 그냥 한 개인으로서 똑같이 대할 수는 없는 걸까.

 

"그런 날만 그렇게 있어주면 안될까?"라는 무구영의 말은 그래서 언뜻 이해되는 듯싶지만 사실은 그런 상황에서 가부장적 문화들이 부여했던 역할들을 당연히 받아들여 달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 비뚤어진 관계들이 굳어져 버리고 심지어 당연시됐던 건 '그런 날들'만 그렇게 있어준 일들이 반복되면서였으니 말이다.(사진:카카오TV)

‘수미네 반찬’에서 노사연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노사연이 신곡 발매를 하게 되어서 바쁜 일정 때문에 더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tvN 예능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는 노사연의 하차 이유를 그렇게 밝혔다. 진짜 바쁜 일정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사연의 하차는 어느 정도는 예견한 일이었다. 시청자들 중 일부가 그가 <수미네 반찬>에서 하는 역할이 없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었던 터다. 

사실 <수미네 반찬>에서 노사연은 별 다른 역할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김수미가 만드는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고 리액션을 하는 일과, 빠른 김수미의 요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셰프들에게 레시피를 일일이 복기해주는 일 그리고 가끔 김수미와 옛 이야기를 주고받는 역할 정도가 그가 이 프로그램에서 했던 일들이다. 

액면으로 보면 <수미네 반찬>에서 김수미와 셰프들, 여경래, 최현석, 미카엘은 그 역할이 사제관계로 등장부터 확실히 정해져 있지만, 장동민과 노사연은 일종의 감초 역할이었다. 너무 요리 프로그램으로만 흘러가는 걸 막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장동민과 노사연이 웃음을 줄 수 있는 포인트를 맡게 된 것. 

장동민은 역시 개그맨답게 재빨리 자기의 역할을 찾아냈다. 김수미의 다소 ‘불친절한 레시피’를 옆에서 중계방송하듯 풀어내 웃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것이다. 장동민의 멘트 하나하나에 김수미는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동민은 김수미와는 물론이고 셰프들과는 밀고 당기는 캐릭터로 프로그램이 예능으로서의 재미를 유지하게 하는데 톡톡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장동민이 이렇게 자기 역할을 찾아갈수록, 그 옆에 있는 노사연은 점점 하는 일이 없어보이게 되었다. 물론 ‘요리무식자’로서의 자기 캐릭터를 드러내며 웃음을 주는 포인트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그 상황은 어찌 보면 요리 프로그램과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약간의 설정이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무반주 노래 부르기’ 같은 그만의 역할을 시도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건 역시 일회적인 것일 뿐 그만의 캐릭터가 되긴 어려웠다. 

그런데 과연 진짜 노사연이 역할이 없었던 걸까. 그렇지 않다. 어찌 보면 여기 출연한 모든 인물들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그가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건 ‘교관과 훈련병(?)’ 같은 다소 센 느낌의 그 요리교실 속에서 어딘가 푸근한 편안함 같은 걸 그가 보여줬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해도 큰 소리로 허허 웃는 그의 리액션은 김수미가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의 강한 느낌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어찌됐듯 ‘바쁜 일정 때문에’ 노사연은 얼마 진행되지도 않은 <수미네 밥상>에서 하차하게 됐다. 그런데 그건 과연 득일까 독일까. 물론 프로그램을 더 빵빵 터지게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인물이 투입되어 프로그램에 활기를 만들 수는 있을 게다. 하지만 모두가 빵빵 터트리는 그 센 분위기를 한껏 푸근하게 안아주는 그런 역할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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