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구정화의 미모에서 연기자의 얼굴을 보여준 김태희

김태희가 이렇게 예뻤던 적이 있을까. 겉모습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달라진 연기 때문이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순종의 숨겨진 증손녀인 그녀는 말 그대로 공주다. 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기억이 지워져버린 채, 알바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공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돈이라면 뭐든 할 것 같은 뻔뻔함과 능글능글함으로 무장한 이설이라는 캐릭터에게서 '예쁜 척'은 발견할 수 없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망가지는 김태희가 그 어느 때보다 예쁜 인상을 남기는 것은.

드라마를 할 때마다 불거져 나온 김태희의 연기력 논란은 늘 한결 같은 공주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그녀의 연기 속에서는 극중 캐릭터가 아니라 그녀 자신의 모습이 더 보였다. 그래서 겉모습은 공주처럼 예쁘지만 잘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연기에 시청자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김태희가 달라진 건, 아마도 전작이었던 '아이리스'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이리스'에서 그녀는 비로소 얼굴과 몸을 쓰기 시작했다. 사랑스런 모습에서부터 분노하는 얼굴까지 표정이 다양해졌고, 액션 연기에도 아낌없이 몸을 던졌다.

그 연장선에서 '마이 프린세스'는 이제는 좀 더 연기가 편해진 김태희로 돌아왔다. 그녀는 극중 이설이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동화된 모습이다. 늘 CF 속에서 방금 나온 것 같던 그녀가 김치를 포기채로 들고 죽죽 찢어 먹고, 입에 소스를 묻혀가며 스테이크를 통째로 뜯어 먹으며, 화장실에 가고 싶어 몸을 배배 꼬는 모습을 연기한다. 그런데 그것이 전혀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언뜻 진짜 김태희의 모습이 그 속에서 느껴진다.

표정 연기는 더 감정이 깊어졌다. 있는 대로 감정을 표정에 싣기 때문에 언뜻 눈가와 미간의 주름이 잡히고 그 여신 같은 얼굴이 한껏 벌려진 입과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사정없이 무너지지만, 바로 그런 과감한 표정 때문에 감정전달은 훨씬 좋아졌다.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펑펑 울어대는 얼굴에서는 그 진정성이 느껴진다.

도대체 무엇이 그녀의 연기를 이토록 바꿔놓은 것일까. 먼저 지목되어야 할 것은 그녀의 나이다. 그녀는 이제 서른을 넘겼다. 여전히 매력적인 미모지만 서른이라는 나이는 과거처럼 외모 하나로 버텨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아니다. 스타에서 배우로의 전환은 절실했을 것이다. '아이리스'부터 달라졌던 모습은 이런 자세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이 나이라는 무게는 거꾸로 그녀를 편안하게 했다고 보여진다. 서른은 숨기기보다는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더 편안해진 나이가 아닌가.

하지만 그저 나이를 먹었다고 연기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이 프린세스'에서 그녀가 이설이라는 캐릭터에 완벽히 빙의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철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권석장 PD는 그 누구보다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그려내는 감독이다. 초반 심지어 푼수 같은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줌으로써 공주로의 인생 역전 과정은 더 코믹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질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김태희는 마구 망가진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더 예쁘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갖게 되었다. 그저 외모로서 안구정화를 시켜주는 얼굴이 아니라 연기자의 얼굴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연기자가 망가질수록 더 아름다운 이유는 그 때문이다.

김정은, 만인의 연인에서 전설로 돌아오다

"더 이상 속이고 살기 싫어. 그럴 자신 없어." "난 노래하고 기타 칠 때가 제일 즐거워." "나 이제 다시 사내놈 뒤에 숨어사는 비겁한 짓거리는 안할라구. 나 그냥 전설희로 살려구."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에서 김정은이 전설희라는 캐릭터로 분해 하는 일련의 대사들을 듣다보면 그것이 연기자로서 자신의 속내를 토로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그녀가 지금 '나는 전설이다'라는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는 다양한 모습은 지금껏 숨겨진 그녀의 진면목처럼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물론 파티에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일 때 그녀는 우아하다. 하지만 그 화려함이 그녀의 진짜 얼굴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오히려 그 자리를 벗어나 노래방에서 맘껏 소리 질러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들고 무대 위에 올라 전에는 몰랐던 카리스마를 뿜어낼 때 더 진짜 같은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우아함과 털털함 사이에서 도도함과 반항기어린 모습 사이에서 그녀는 어느 쪽으로 흘러도 편안해지는 연기자의 얼굴을 얻었다.

김정은이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은 '파리의 연인'에서 태영이라는 역할로 우리의 '만인의 연인'이 되면서부터이다. 물론 그 때 태영이라는 캐릭터도 전설희 못지 않게 괄괄하고 명랑했지만 우리의 기억에 남은 김정은의 이미지는 발랄하기 이를 데 없는 연인이었다. 그 후로 그녀는 우리에게 무슨 역할을 해도 계속해서 연인으로 자리해왔다. 김은숙 작가의 '연인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으로서 '연인'이라는 작품은 그녀가 가진 연인이라는 이미지를 끝까지 소비시키는 작품으로 남았다.

물론 '김정은의 초콜릿'은 그녀가 가진 연인의 이미지를 계속 이어간 방송 프로그램이지만 그녀는 다른 한편으로는 이 이미지를 넘어서 좀더 확장된 연기자로서의 변신을 꿈꾸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에서 혜경이라는 역할로 그녀가 보여준 강인한 면모는 그 가능성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그 후 '종합병원2'에서 환자의 입장을 더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영화 '식객-종합병원2'에서 성찬과 대결구도를 갖는 세계적인 요리사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 작품들이 그녀의 변신을 담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나는 전설이다'는 그 연기자로서의 변신이 담겨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정은에게는 중요한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김정은은 상류층의 우아함에서부터 록 밴드의 털털함까지를 보여주고 있고, 이혼을 해주지 않으려는 남편 지욱(김승수)과 법정 대결을 벌이면서 동시에 마돈나 밴드의 리더로서 멤버들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연기하고 있다. 현실의 갑갑함은 법정 대결이라는 극단적인 공간 속에서 그려지고, 그 갑갑함을 털어내는 무대라는 공간이 병치됨으로써 이 양극단의 세계는 작품 하나로 오롯이 담겨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양극단을 오가게 해주는 인물은 다름 아닌 김정은이다.

김정은은 이제 '만인의 연인'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연기자로 우리에게 돌아오려 한다. '나는 전설이다'는 그 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쾌활한 얼굴 속에서 언뜻 우울함이 엿보이고, 그 우울함 속에 그것을 깨쳐버리는 강인함이, 또 그 강인함 옆에 자리한 부드러운 이미지가 그녀의 연기자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감지하게 만든다. 어쩌면 이 작품은 훗날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전설'로 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성장하는 동이, 한효주의 성장은 어디까지?

사극, '동이'에서 동이(한효주)는 억울하게도 전혀 준비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로 감찰궁녀들의 통과의례인 시제를 보게 된다. 결과는 당연히 불통(낙방). 하지만 이 정당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찜찜한 기분을 갖는 것은 동이가 궁녀가 되는 것을 반대했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결국 동이는 재시험을 통해 시제를 통과하게 된다. 이 공명정대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누구나 갖게 되는 선한 마음과, 그 마음이 고난을 겪지만 결국에는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것이 단순하지만 '동이'의 강력한 매력이다.

동이라는 인물의 이름을 딴 제목을 달고 있듯이, 이 드라마는 그 중심에 동이를 세운다. 그러니 사극의 대부분 인물들의 행동은 사실상 동이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극 중 동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잘 모르지만, 시청자들은 주변 인물들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앞으로 동이가 겪을 일들을 대충 짐작한다. 따라서 동이에게 다가오는 위기상황은 동이 자신보다도 시청자들에게 더 클 수밖에 없다. 이제 막 수렁에 빠지는 줄 모르고 발을 내딛는 당사자보다, 그걸 이미 알고 바라봐야 하는 시청자의 입장이 더 다급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수렁을 깊게 파놓으면 파놓을수록 동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동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매력이다. 어린 시절, 가족을 잃고 그 폐가가 된 집에 혼자 살아남아 "나도 데려가 줘"라고 얘기하던 그 어린 동이가 그 어둠 속에 그대로 갇혀 성인이 되었다면 아마도 그 매력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사극 '동이'는 어린 시절의 동이가 지나치게 어둡게 그려져 초반 매력을 상실했던 반면, 성인이 된 동이의 씩씩함에서 다시 매력을 되찾았다.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풍산이가 되어 나타난 동이는 밝고 맑고 씩씩하며 무엇보다 정의롭다. 천비인 자신의 처지를 운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장악원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로 열심히 살아간다. 게다가 '본래는 서당개였냐'는 풍을 들을 정도로 똑똑하고, 굳은 신념을 위해서는 한 밤 중에 검안실에 누워있는 시체를 들춰볼 정도로 담대한 면도 있다. 성인이 된 동이는 물론 가끔 눈물을 삼키는 모습을 보이지만, 아마도 어린 시절 평생 흘릴 눈물을 다 흘린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앙다문다.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안 우는 캔디 캐릭터라고 하겠지만, 이 조선시대의 캔디는 꽤 쓸모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오작인이었던 아버지의 어깨 너머로 배운 사건의 해결능력이다. 그러니 사극 '동이'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이 조선시대판 수사반장을 방불케 하는 추리극적인 요소들이 될 것이다. 동이는 궁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지금까지의 사극과는 달리 좀 더 과학적(물론 현대와는 다른 무원록에 근거한 것이겠지만)인 방식으로 접근하게 해주는 인물이다.

이 동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극 속에서 수많은 이들에게 지지와 도움을 받는다. 장악원에서 마치 어린 누이처럼 그녀를 키워준 주식(이희도)과 영달(이광수), 그리고 적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도움을 줄 인물인 서용기(정진영), 심지어는 장차 대립각을 세울 두 인물인 장희빈(이소연)과 인현왕후(박하선)는 물론이고, 숙종(지진희)은 그녀의 강력한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 있다. 그러니 이 외부의 집중적인 도움을 받는 동이라는 캐릭터는 시련 속에서도 안전하게 상황을 빠져나올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이 캐릭터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주변인들의 도움을 받아야 되는 수동적인 존재로 오인될 가능성도 높다.

이것은 캐릭터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동이를 연기하는 연기자에게 처한 딜레마다. 어느 정도 성장하기 전에는 스스로 완전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녀는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작금의 동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한효주가 물론 인상녀라는 지칭에 걸맞게 보는 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면서도, 어딘지 정체된 인상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현재 단계에서 동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수동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자신을 한껏 낮추는 데서 오는 유머감각이 될 수도 있다. 도움 주는 자가 왕인 줄도 모르고 벌이는 동이의 대책 없는 순진함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든다. 즉 도움 주는 이들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것은 아마도 아이 같은 순진무구함일 것이다.

하지만 동이의 캐릭터는 지금부터다. 동이는 계속해서 시련을 겪으며 성장해나갈 것이고,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주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만날 것이다. 그렇다면 아마도 동이는 대단히 능동적인 캐릭터로 스스로의 문제를 개척해나가는 매력을 가질 것이지만, 어쩌면 그 때 우리는 저 수동적이지만 외롭지 않았던 좌충우돌 풍산이 동이를 그리워할 지도 모른다. 보는 이를 기분 좋게 해주는 동이의 씩씩함을 연기하는 한효주는, 연기자로서 어디까지 자신을 성장해나갈까. 동이가 캐릭터의 성장을 통해 점점 커져가는 매력을 발산할 때가 되면, 우리는 어쩌면 한효주라는 연기자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시티홀', 연기자의 새로운 가능성을 끌어내다

준비된 연기자가 좋은 캐릭터를 만난다는 것은 '시티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시티홀'은 정치 풍자가 담겨진 코미디에 멜로가 섞여 있는 드라마다. 따라서 정치적인 면을 보일 때는 가벼운 듯 하면서도 진지함을 유지해야 하고, 본격적인 멜로에 들어가면 행복감과 절망감을 오가는 웃음과 눈물 연기를 해내야 한다. 연기자로서 '시티홀'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드라마는 아니다.

하지만 차승원이나 김선아처럼 준비된 연기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오히려 밋밋한 캐릭터보다는 이처럼 복합적인 면을 소화해내야 하는 연기가 그들에게는 도전이면서도 또한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시티홀'은 그들에게 바로 그 무대를 마련해주었고,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복합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캐릭터라는 옷을 입고 마음껏 춤을 추었다. 그 결과 이 드라마를 통해 차승원은 재발견되었고, 김선아는 삼순이의 옷을 벗어버리고 신미래라는 새로운 옷을 입음으로써 건재함을 과시했다.

차승원이 연기해낸 '시티홀'의 조국이라는 캐릭터는 겉으로만 봐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판타지남의 계보를 잇는 것처럼 보인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에서 '내조의 여왕'의 태봉씨(윤상현)를 잇는 인물로 조국을 거론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국이 이들의 계보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준표나 태봉씨는 드라마 속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전지전능한 캐릭터지만, 조국은 그렇지 않다. 그의 앞에는 늘 난관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는 사랑하는 여인 신미래를 보호하면서 그 난관을 넘어서야 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조국이 이들 판타지남들보다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의 계보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조국은 탁월한 정치적 능력을 갖고 있고, 신미래라는 여성을 만남으로 해서 그 힘을 낮은 자들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즉 조국이라는 캐릭터는 그저 멜로의 판타지뿐만 아니라 서민들을 꿈꾸게 하는 판타지까지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그 특유의 카리스마를 갖게 된다. 게다가 그 카리스마는 코믹함을 가미하면서 강마에가 가졌던 괴팍하면서도 친근한 인상을 덧붙인다.

차승원은 사실 코미디와 정극 양쪽을 오간 경력의 소유자다. 코믹의 웃음은 그의 장기이고, 정극의 우수와 슬픔은 그의 특기다. 그런 면에서 '시티홀'의 조국은 이 양면을 모두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차승원은 지금껏 상대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던 카리스마를 조국을 통해 얻었다. 정치 소재가 갖는 강인한 리더십의 면모를 조국을 통해 갖게 된 것이다.

한편 김선아가 연기한 신미래는 처음 삼순이 캐릭터에서 시작했다. 10급공무원으로서 밴댕이 아가씨 대회가 나가고 거기서 조국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김선아의 연기는 여전히 삼순이에 머물러 있었다. 캐릭터가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미래가 자신도 모르게 정치적 행보를 하게 되고 시장 선거에 나가게 되면서부터 김선아는 조금씩 삼순이의 아우라를 벗어던질 수 있었다.

신미래는 돈키호테적인 신념을 가진 순수 정치초심자로서의 강인한 모습과 함께, 사랑 앞에서는 가녀린 한 여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 게다가 신미래 역시 조국처럼 코믹을 바탕에 깔고 있는 캐릭터. 그러니 이 인물의 스펙트럼은 저 삼순이가 갖는 단순함에 비할 바 없이 넓다 할 수 있다. 김선아는 신미래라는 캐릭터를 통해 굳이 삼순이를 넘어설 필요가 없게 되었다. 신미래를 통해 삼순이의 캐릭터를 가지면서도 다양한 폭의 새로운 면모들을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시티홀'이 재발견한 연기자는 차승원과 김선아에 머물지 않는다. '온에어'에서 엔터테인먼트 대표로 등장해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이형철은 이 드라마를 통해 유하고 귀여운 면모를 갖게 됐으며, 지적인 이미지의 추상미는 이 드라마를 통해 귀여운 악녀의 면모를 갖게 되었다. 이밖에도 주목할 만한 연기자는 강인한 정치인의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최일화, 신미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정부미를 연기한 정수영, 그리고 국장삼총사들인 류성현, 신정근, 임대일이 될 것이다. 특히 지국장으로 분했던 신정근은 코믹 연기 속에서도 독특한 개성적인 힘을 갖고 있는 연기자로 주목된다.

좋은 드라마는 좋은 연기자들을 발견해낸다. 그만큼 캐릭터가 좋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시티홀'은 좋은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코믹을 바탕에 깔고 정치와 멜로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드라마를 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시티홀'은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마음껏 준비된 연기를 보여준 연기자들에게도, 또 그 연기가 뿜어내는 행복과 슬픔을 공감한 시청자들에게도 '시티홀'은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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