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의 무엇이 이연희의 연기를 깨웠나

 

와이키키-” 하며 억지로 미소 짓는 연습을 하던 엘리베이터걸 오지영이라는 인물은 어쩌면 그녀를 연기하는 이연희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을까.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엘리베이터 한 구석에서 CCTV를 피해 삶은 계란을 통째로 입안에 우겨넣는 오지영의 억지로 짜낸 듯한 미소는 그래서 노동자의 슬픈 데드마스크를 떠올리게 했다.

 

'미스코리아(사진출처:MBC)'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은 그래서 예쁘다기보다는 슬프다. 예쁜 마네킹처럼 웃는 백화점 엘리베이터걸들은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는 박부장(장원영) 같은 파렴치한 밑에서 퇴직을 강요당하고, 심지어 퇴직금까지 갈취 당한다. 97IMF 시절 사라져버린 엘리베이터걸이라는 직업은 그래서 마치 노동이 기계로 대치되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돈 없고 백 없고 학벌 없는 오지영이, 가진 자산이라고는 달랑 몸뚱어리 하나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래서 그 몸을 상품화하는 것뿐이다. 엘리베이터걸에서 미스코리아로 그 목표가 수정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지영의 서글픈 상황이 바뀐 것은 아니다. 미스코리아를 대거 발굴해낸 퀸 미용실 원장 마애리(이미숙)를 오지영은 엄마 같은 존재로 따르지만(그녀에게는 엄마가 없다) 마애리는 또 다른 박부장이다. 관리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성의 상품화는 훨씬 세련되어진다.

 

미스코리아가 되기 위해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하고, 힙을 업시키기 위해 고통을 참으며 다리부터 엉덩이까지 병으로 눌러대며, 틈만 나면 물구나무서기를 당하는 몸은 그래서 여전히 슬프다.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당한 채 훈육되어지는 몸. 그리고 심지어 성형이라는 이름으로 조각되고 만들어지는 몸.

 

오지영이 가슴 성형을 위해 수술대에 올랐을 때 그녀의 이름을 애타게 불러주는 김형준(이선균)의 목소리는 그래서 하나의 구원이 된다. 마치 미스코리아 공장 같은 마애리의 퀸 미용실을 벗어나 소박하지만 꿈이 있는 김형준의 비비화장품을 찾아온 오지영은 비로소 처음으로 스스로의 선택을 한 셈이다. 미스코리아가 되겠다는 꿈은 똑같지만 김형준과 오지영의 그저 직업적인 관계가 아닌 사적 관계는 모든 걸 바꾸어 놓는다.

 

지지고 볶는 비비화장품의 사장과 직원들의 모습이 마애리 퀸 미용실의 풍경과 달리 하나의 공동체 같은 인상을 주는 건 그 때문이다. 거기서 직원들은 김형준을 사장이라 부르기보다는 형 혹은 오빠라고 부른다. 김형준이 오지영을 미스코리아가 되게 하려는 것은 물론 비비화장품을 살리기 위한 욕망 때문이지만, 거기에는 오지영이 그토록 쓰레기통에 구겨 버렸지만 그걸 다시 가슴에 주워 담는 김형준의 순수한 사심도 들어있다.

 

그래서 오지영이 김형준 앞에서 와이키키-”, “하와이-”를 하며 미소를 짓는 모습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그것은 오지영의 김형준에 대한 마음을 거꾸로 직업적인 연습을 통해 감추려는 것이니까. 여기서 비비화장품과 미스코리아라는 목표는 오지영과 김형준의 사심을 숨기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비로소 오지영은 누군가의 시선에 예속된 몸이 아니라 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당당해진 몸으로 서게 된다.

 

오지영이라는 성장 캐릭터가 이연희라는 연기자에게 주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를 것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의 시선에 포획된 존재가 아닌 저 스스로의 선택으로 선다는 것은 연기자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니 말이다. 연기자에게 예쁘다는 표현은 이중적이다. 그저 외모가 예쁘다는 건 연기자에게는 치명적인 비판일 수 있다. 그것은 배역으로서 주목되기보다는 연기자 자신으로서 주목되기 때문이다. 연기력 논란은 바로 이 지점, 배역과 연기자가 따로 노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미스코리아>에서 이연희의 연기가 자연스러워진 것은 그 배역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그녀에게 맞춤의 역할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저 예쁜 데드마스크의 얼굴이 차츰 진짜 예쁜 살아있는 인물로 변해가는 모습을 우리는 <미스코리아>의 오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또 이연희라는 연기자를 통해서 보고 있다. 오지영이라는 캐릭터가 예쁜 것은 단지 외모 때문이 아니라 점점 당당해지는 그녀의 변신과 성장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연희에게도 그대로 전파된다. 그녀는 연기자가 진짜 예뻐 보일 때가 외모가 아닌 배역에 몰입할 때라는 걸 오지영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배워가고 있다. 예뻐 보이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쁜.

진흙탕 싸움과 노출경쟁에 가려진 영화제

 

영화제로 부산이 들썩들썩하는 건 알겠는데 정작 어떤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지, 어떤 행사가 어떤 의미로 치러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에서 하는 국제영화제이기 때문에 부산까지 가지 못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인터넷이나 신문 혹은 방송에 잠깐씩 나오는 기사들이 영화제에 대한 정보의 대부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부산국제영화제’를 쳐보라. 거기에 정작 영화에 대한 정보들이 얼마나 있는지.

 

사진출처:YTN

제일 많은 것은 역시 레드카펫의 여배우 노출 경쟁을 말 그대로 경쟁하듯 올린 사진들이다. 매회 그러하듯이 이번에는 등을 훤히 드러내다 못해 엉덩이골까지 드러낸 의상을 입고 레드카펫에 올라온 강한나와 가슴을 거의 드러내다시피 한 드레스를 입은 한수아가 주역이 될 모양이다. 여기 저기 연관검색어로 떠 있고 모음 사진에 동영상 서비스는 기본이다.

 

어딜 가나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키는 클라라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단연 기사의 상당 부분을 채우는 인물이다. 하지만 클라라가 무슨 영화에 출연하는지 알 수 없고, 이것은 강한나나 한수아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수아는 올해 <연애의 기술>이라는 영화가 개봉예정중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레드카펫 노출을 통해 얻어진 홍보일 것이다. 영화 홍보하겠다는 데야 무에 잘못된 것이 있겠냐마는 막무가내 노출로 정작 영화제의 영화와 연기자에 대한 시선을 빼앗는 건 민폐가 아닐까 싶다.

 

아이돌들이 연기자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영화제에 의도치 않은 폐를 끼치는 상황도 발생했다. 부산 해운대구 중동 비프 빌리지 야외무대에서 국외의 유명인사들을 초대해 열렸던 행사에서는 몇몇 아이돌 연기자들이 빠져나가면서 관객들까지 뭉텅 빠져나가 남은 해외 스타들에게는 민망한 행사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나친 팬덤의 문제일 수 있지만 이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할 수는 없었을까. 이를테면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이돌 연기자들이 함께 하는 배려를 보였다면 어땠을까.

 

이러니 행사에 참여했던 배우들 중 일부는 화를 낼 법도 하다. 정작 주인공이 되어야 할 18년이라는 영화제의 역사를 만들어온 영화인들과 영화들이 저 뒤로 묻혀 버리고 대신 일부 아이돌들이나 레드카펫 노출 연예인들 이야기만 무성하게 쏟아져 나오게 되었으니 말이다. 여현수와 이켠이 SNS상에 토로한 씁쓸하고 답답한 심경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게다. 영화제 행사가 연예인들의 홍보 수단이 되거나 팬 미팅 현장이 되어서야 될 말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소식보다 더 뜨거웠던 이슈는 강동원측과 남동철 프로그래머 사이에 벌어진 진흙탕 싸움이다. “레드카펫에 서지 않으려면 센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 진위와 상관없이 자극적이다. 마치 영화제 측에서 갑질을 한 뉘앙스를 보이기 때문이다.

 

남동철 프로그래머는 여기에 맞서 기자회견을 열었고 “강동원측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맞불을 놓았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잡음이 터지면서 영화제의 이야기는 저 뒤로 훌쩍 물러나 버렸다. 누가 잘못했든 쌍방이 미꾸라지 역할을 한 건 사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흙탕 속에 영화제는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18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이미 명실공히 아시아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영화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던가.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판이 제대로 영화인들의 축제가 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영화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들은 점점 사라지고 화제와 이슈만 난무하고 있는 듯한 영화제 풍경은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씁쓸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물론 선정적으로 화제만을 좇는 언론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영화제측이 좀 더 세심한 준비와 배려를 했다면 이처럼 논란과 가십성으로만 흐르는 영화제가 되지는 않았을 게다. 매체를 통해 들어오는 부산국제영화제 이야기에 왜 영화 얘기를 찾는 건 이리도 어려운 걸까. 이것은 이제 역사와 전통을 하나씩 만들어가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유승호는 왜 연예인 특혜를 거부했을까

 

이 친구가 정말 <집으로>에서 그 전형적인 도시 아이 역할을 연기하던 그 꼬마가 맞단 말인가. 어느새 훌쩍 자라 군 입대를 한 유승호에게서는 단지 아역스타의 아우라에 기댄 연예인이 아니라 제대로 성장한 개념 사회인의 모습이 느껴진다. 어쩌면 이렇게 젊은 청년에게서 이토록 당당한 모습이 주는 흐뭇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을까.

 

사진출처:유승호 팬카페

연예인에게 있어서 병역 문제가 특히 대중정서에 민감한 이유는 특혜 시비 때문이다. 군대가 무엇인가. 사회에서 제아무리 날고 기는 배경과 학벌(심지어 나이까지)을 가졌다고 해도 들어오는 순간 군복과 계급 아래 모든 게 새로운 체계 속으로 들어가야 맞는 조직이다. 하지만 실상이 그런가. 아마도 돈 없고 줄 없는 서민들에게는 그렇겠지만, 특권층들에게는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갖은 병역 비리와 기피가 불거져 나오고 그것이 대중들의 정서에 불을 붙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은 이 몇몇 특권층이 저지르는 병역 비리에 대한 반감이, 어쩌면 연예인이라는 도드라진 존재들에게 집중적으로 폭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군 입대를 거부하고 미국 국적을 가짐으로써 영원히 국내에 발을 못 붙이게 된 유승준의 사례는 그 분노의 감정이 얼마나 큰가를 잘 보여준다. 최근 비로 인해 불거진 연예사병에 대한 논란 역시 바로 이러한 정서에서 비롯된다.

 

물론 연예사병의 실상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과 상관없이 대중들에게는 연예사병이라는 존재 자체가 특혜처럼 비춰지는 경향이 있다. 아니 입대하는 과정이 무슨 거대한 이벤트나 되는 것처럼 방송되는 것 자체가 대중들에게는 그다지 좋은 풍경으로 여겨질 수 없다. 심지어 단 몇 주면 끝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도 팬클럽을 모아놓고 떠들썩하게 이벤트를 벌이지 않았던가.

 

이들은 그런 떠들썩한 이벤트가 다른 입대 장병들에게 줄 상대적 박탈감을 생각해봤을까. 아마도 이런 상황 때문일 게다. 유승호의 너무나 ‘조용한 입대’가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저 팬 카페에 올린 유승호의 20초 남짓 입대영상에는 그저 군대 다녀오겠다는 담담한 몇 마디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 <집으로>의 그 귀엽기만 했던 꼬마는 어느새 이렇게 훌쩍 자란 청년이 되었다. 드라마 <보고싶다>를 통해 과거 아역의 이미지를 훌훌 털어버리고 성인 연기자로서의 아우라를 한껏 드러냈던 그가 아닌가. 어찌 보면 이제 한껏 날개를 펼 시점에서 군 입대를, 그것도 연예사병이 아닌 일반병으로, 그것도 자청해서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유승호의 남다른 개념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사실 연예인에게는 대학 진학 또한 특혜가 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으로서는 연예인의 인지도를 대학 인지도로 끌어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연예인 특례입학이 하나의 관행처럼 되었던 것. 하지만 유승호는 연예인 특례입학을 거부하고 그 이유로 대학에 들어간다고 해도 학업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거라는 것과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들었다.

 

연예사병과 특례입학 같은 연예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특혜에 대한 거부는 거꾸로 유승호의 연기자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즉 최고의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서 군 입대를 결정할 만큼 언제 돌아와도 다시 연기로서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고, 학력이 아니라 오로지 연기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군대 생활 역시 이 땅에 살아가는 연기자로서는 대중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 아닌가.

 

누릴 수도 있었을 일련의 연예인 특혜를 거부한 유승호는 그래서 온전히 대중들을 위한 연기자 인생에 대한 출사표를 던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당장 눈앞의 인기나 편안함이 아니라 대중들을 대변하고 대중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앞으로 길게 이어질 연기자로서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 그래서 조용한 유승호의 군 입대는 마치 그의 연기자 선언 같은 인상마저 준다. 이제 겨우 입대했지만 벌써부터 기대된다. 다시 돌아와 한층 성숙해진 연기를 보여줄 유승호가.

여진구, 김소현, 박유천, 유승호 그리고 윤은혜까지

 

좋은 작품은 좋은 캐릭터를 만들고, 좋은 캐릭터는 좋은 연기자를 발견한다. <보고싶다>는 딱 그런 작품이다. 주역으로서의 아역(여진구, 김소현)에서부터 성인역(박유천, 유승호, 윤은혜)까지, 그리고 조역이지만 든든한 기둥을 세워주는 중견(송옥숙, 한진희, 전광렬, 김미경)까지 <보고싶다>는 말 그대로 연기 보는 맛이 나는 작품이다.

 

'보고싶다'(사진출처:MBC)

<해를 품은 달>을 통해 시청자들을 품은 여진구는 <보고싶다>에 와서 더 단단해진 연기의 무게감을 보여주었다. 누가 그를 보고 아역이라고 하겠는가. 김소현과 함께 보여준 풋풋한 멜로 연기는 물론 <해를 품은 달>에서부터 정평이 나 있었던 것이지만, 그녀를 홀로 버려두고 도망친 후 죄책감과 그리움이 뒤엉켜 울부짖는 모습은 여진구만의 아우라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지만 아이 같지 않은 감성 연기는 앞으로 그가 하는 작품에 여진구 프리미엄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여진구와 함께 절절한 멜로 연기를 보여준 김소현도 마찬가지다. 아역으로서 성인들의 감성까지 울리는 여자배우로 여진구가 <해를 품은 달>에서 함께 연기한 김유정이 거의 유일하다 여겼다면 이제 김소현도 그 자리 하나를 차지한 셈이다. 하지만 김유정과는 달리 더 갸냘픈 그녀만의 선은 보는 이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이건 김소현이라는 준비된 아역(사실 아역이란 표현이 어설프다)과 함께 여진구라는 든든한 상대역이 서로 시너지를 만든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보통 이런 정도의 아역들의 존재감은 그 바톤을 이어받는 연기자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어버리기 일쑤다. 하지만 여진구와 김소현의 바톤을 이어받은 박유천과 윤은혜는 놀랍게도 그 감성을 더 깊게 만들면서 아무런 이물감조차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무려 14년을 미친놈처럼 잃어버린 그녀를 찾아온 그 절절한 그리움은 박유천이라는 몰입 좋은 배우의 깊은 눈빛으로 되살아났고, 상처를 지우려 과거를 지워버렸지만 다시 나타난 그로 인해 옛사랑 앞에 흔들리는 그녀는 윤은혜의 눈물 연기 속에서 절절해졌다.

 

그 둘 사이에 서 있는 해리이자 강형준(유승호)은 분열된 두 개의 자아를 가진 인물이다. 그에게 과거는 지워야할 상처이면서 동시에 복수해야할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수연(윤은혜)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돌아서면 차가운 복수와 욕망에 시달리는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다. 류승호에게 이런 캐릭터는 이중의 어려움을 만들어낸다. 즉 유승호가 가진 너무 앳된 동안은 진중한 성인역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 위에서 그는 이중성격의 소유자를 연기해야 한다.

 

하지만 바로 이 어려움이 유승호에게서 아역의 딱지를 떼어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다. 이수연을 소유하려는 욕망과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려는 그 욕망은 서서히 어린아이처럼 웃는 유승호의 이면에 놓여진 섬뜩함을 기대하게 만든다. 아마도 앞으로 유승호가 걸어갈 연기세계에서 <보고싶다>는 그에게 대단히 중요했던 전기를 제공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이 젊은 배우들이 마음껏 감정의 폭발을 할 수 있는 든든한 바탕을 만들어주는 중견들을 빼놓을 수 없다. 거칠지만 대단히 인간적인 엄마상을 그려내고 있는 송옥숙은 아마도 이 드라마의 반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 연기자일 것이다. 그가 있어서 맘껏 울 수 있고 어리광부릴 수 있는 박유천과 윤은혜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한진희는 이 드라마의 동력을 만들어내는 악역이고, 전광렬은 이 어른과 아이들의 대결구도 속에서 어른이면서 아이의 마음을 가지려 했던 어찌 보면 드라마의 주제와 맞닿는 캐릭터를 보여준 연기자다. 물론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피해자 어머니 역할의 김미경도 빼놓을 수 없다.

 

<보고싶다>는 바로 이 든든한 중견의 바탕 위에서 젊은 연기자들을 재발견해준 드라마다. 아마도 훗날 제 각각의 연기 영역을 펼쳐나갈 이들은 어쩌면 <보고싶다>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연기 가능성을 최대치로 뽑아내준 이 작품은 그래서 그들의 성장과 함께 훗날 자꾸 더 보고 싶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좋은 연기자는 좋은 작품을 통해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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