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의 디바>로 우영우를 잇는 응원을 선사한 박은빈

무인도의 디바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늦깎이 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을 연기하게 되면서 유튜브에 올린 ‘바이올린 연습일지’에서 박은빈은 전공생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를 연기해내야 하는 고충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말한 바 있다. 몇 개월 동안의 짧은 기간 동안 쉬지 않고 바이올린 연습을 해 놀라울 정도의 연주를 보여준 그 영상에서 툭 튀어나온 이 말은 배우 박은빈의 명대사가 되었다. 그건 매번 도전적인 연기에 임하는 박은빈의 마음가짐을 그대로 대변하는 말이나 다름 없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에서도 박은빈은 극중 가수로 성장해나가는 서목하를 연기하며 등장하는 노래들을 직접 모두 불렀다. 그 노래들(모두 11곡)은 OST에 담겨져 음반으로 출시됐는데(1월5일 발매), 이를 위해 박은빈은 6개월 간 3시간씩 43번의 레슨을 받았다고 한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역할에 맞게 기타도 배우고, 노래 발성 연습도 했다. 또 녹음실에서 적게는 4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녹음을 하며 음반 작업을 했다고 한다. 배우지만 거의 가수 데뷔 같은 도전적인 노력을 했던 거였다. 아마도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박은빈은 역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

 

그런데 이 말에는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청춘들에 대한 공감과 응원이 담겨있다. 즉 너무나 버거운 현실이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청춘들에게 그 힘겨움에 대한 공감을 전하면서도, 동시에 포기하지 않으면 해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5살 때 아동복 모델로 시작해 연기를 하게 된 후 지금껏 쉬지 않고 그 길을 걸어온 박은빈이 그 실제 사례가 되는 셈이다. 그녀는 매번 도전 아닌 연기가 없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역할을 하나하나 해내면서 결국 백상예술대상 대상에 빛나는 최고의 위치까지 오르게 되지 않았던가. 

 

<청춘시대>에서는 차분하고 단단한 자신의 모습과는 완전히 상반된 음주가무, 음담패설에 능수능란한 역할에 도전했고, <스토브리그>에서는 속이 뻥 뚫리는 걸크러시를 보여주는 주도적인 프로야구 프런트 오피스 유일의 여성 운영팀장 역할을 소화했다. 그러더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이 두 캐릭터와는 또 완전히 다른 청순하고 내셩적이며 수줍음 많은 늦깎이 대학생 역할로 변신했다. 하지만 그건 끝이 아니고 이제 활짝 피어난 박은빈의 시작이었다. <연모>에서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남자배우가 연기할 수밖에 없는 사극의 왕 역할을 연기했는데, 그건 액션부터 정치, 로맨스까지 넘나들어야 하는 난관을 넘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박은빈은 이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라는 또 다른 산을 넘는다.

 

그런데 이들 작품 속 캐릭터들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바로 위로와 응원이다. <청춘시대>에서 어디로 튀어도 청춘은 아름답다고 캐릭터 자체로 말해준 송지원이 그렇고, <스토브리그>에서 위태로운 야구단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백승수(남궁민) 단장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이세영이 그러했으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평범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청춘들을 지지한다고 온몸으로 말해주는 듯한 채송아가 그랬다. 또 박은빈은 <연모>에서 여성이라는 정체를 숨긴 채 피 튀기는 궁중 생존기를 겪는 이휘를 통해 차별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대여성들을 응원했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장애를 갖고 있지만 변호사로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우영우를 통해 편견 없는 세상을 지지했다.

 

그래서였을까. <무인도의 디바>의 서목하는 극중 캐릭터이면서 동시에 ‘위로와 응원의 아이콘’으로서 박은빈 자체로 보이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한 때는 디바로 불렸지만 지금은 한물 간 기성가수가 되어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윤란주(김효진)에게 서목하가 던지는 무한 응원이 그렇다. “시상에 언니 팬이 딱 하나 남았다고 하믄, 언니, 응? 그것은 서목하고요. 언니 팬이 없다고 하믄 그것은 이 서목하가 세상에 없어져 붓다 치면 돼요, 언니. 언니, 지는요 언니. 언니를 위한 것은 뭣이든 해요, 언니. 어 풍선 그깠거 불라믄 천 개, 만 개도 불어요, 언니. 일도 아니어요, 언니. 그니까요 언니 응? 힘내 불어요잉.” 그 말은 마치 저마다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서민들에 대한 응원처럼 들렸다. 박은빈은 그렇게 서목하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었다. 

 

실로 박은빈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2020 SBS 연기대상 최우수상을 받았을 때 자신이 연기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극중 송아가 ‘음악을 하기로 선택했으니까 음악이 우리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대사는 했는데요. 저도 배우가 되기를 선택했으니까 제가 선택한 작품이 그리고 제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에 위안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연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백상 예술 대상 대상을 받았을 때도 그의 수상소감에는 세상의 많은 다양하고 다른 존재들에 대한 응원의 목소리가 실렸다.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있고 아름답습니다. 라는 대사였는데요. 영우를 통해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나는 알아도 남들은 모르는, 또 남들은 알지만 나는 알지 못하는 그런 이상하고 별난 구석들을 영우가 가치있고 아름답게 생각하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도전적이고 경쟁적인 세상이다. 최후의 1인이 모든 걸 독식하는 현실 속에서 무수히 많은 소외되는 이들이 생겨난다. 그래서 누군가의 응원이 절실해진다. 당신은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고, 힘겹지만 결국은 해낼 거라는 응원. 박은빈은 자신 또한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국은 해냈던 여러 역할들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를 응원한다. 그만큼 진정성이 담겨 있기에 그 역할의 대사들은 더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그녀는 이것이 배우로서 해야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건 마치 <무인도의 디바>에서 변함없는 응원을 받았던 윤란주가 서목하에게 갖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나 아닌 누군가를 온전히 응원하는 건 정말 어려워. 아무 대가 없이 질투 없이 남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건 더 어렵고. 그게 목하 니가 대단한 이유야.” 우리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박은빈처럼. (글:국방일보, 사진:tvN)

최근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스토브리그

“백씨가 한 둘이에요? 백종원. 백지영. 백윤식... 백승수.” SBS 금토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법무법인 백을 찾은 천지훈(남궁민)이 그 법인명이 하필 ‘백’이라는 걸 들어 백마리(김지은) 변호사가 그 곳과 관련이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백마리는 백씨가 한 둘이냐며 그렇게 대꾸한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등장한 ‘백승수’라는 이름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스토브리그>의 주인공 백승수 단장(남궁민)을 말하는 것. 남궁민이 연기한 인물이지만 그는 모르는 척 능청을 부리며 말한다. “아 백승수가 있었구나? <스토브리그> 봤어요? 아 그거 되게 재밌었는데 왜 시즌2 안 나오나 몰라.”

 

아마도 <스토브리그>를 봤던 팬이라면, 그래서 그 드라마 때문에 남궁민과 박은빈의 팬이 됐던 분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슬쩍 유머를 넣어 던지는 이 대사에 반색했을 게다. 최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드디어 배우로서의 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박은빈에, <오늘의 웹툰>으로 주춤했던 SBS 금토드라마를 등판과 함께 반등시켜버린 <천원짜리 변호사>의 남궁민이 함께 했던 드라마. 이쯤 되면 시즌2를 안하는 게 이상해져버린 <스토브리그2>가 아닌가. 

 

공교롭게도 박은빈과 남궁민 모두 최근작 배역이 변호사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게다가 그 변호사가 어딘가 ‘이상한 변호사’라는 것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약자인 서민들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인물들이라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진짜 공통점은 이 두 배우가 그려가고 있는 연기 스펙트럼의 무한 확장이다. 

 

남궁민은 <김과장>의 김과장 같은 코믹한 캐릭터는 물론이고, <닥터 프리즈너>의 나이제, <낮과 밤>의 도정우, <검은 태양>의 한지혁 같은 누아르에 가까운 무게감이 느껴지는 캐릭터, <스토브리그> 같은 이지적인 캐릭터까지 그 연기의 영역을 한껏 넓혀온 배우다. 마찬가지로 박은빈도 최근 <청춘시대>의 송지원 같은 보이시한 청춘은 물론이고, <스토브리그>의 이세영 같은 당찬 오피스우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 같은 내성적이고 감성적인 청춘, <연모>의 이휘 같은 사극 속 남장여자를 거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자폐스펙트럼 연기까지 소화했다. 이러니 이들의 연기 성장은 K드라마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스토브리그> 시즌2는 시즌1이 워낙 다양한 소재들을 다뤄 쉽지는 않다고 여겨진다. 이신화 작가의 입봉작이지만 이 작가는 이 작품을 꽤 오래도록 준비했던 걸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야구 마니아인지라 깊숙이 그 세계를 취재하고 이야기가 될 만한 것들을 시즌1에 충분히 채워넣은 것. 그러니 시즌2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만큼 부담감도 커지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팬들도 그렇고 작가 스스로도 시즌2의 가능성을 얘기한 바 있어 <스토브리그2>는 여전히 기대할만한 여지가 남아있다. 사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배우들이다. 대부분 시즌2가 어려워지는 건 시즌1의 배우들이 스케줄이나 출연료 문제로 계속 시즌2로 작품을 이어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남궁민이 <천원짜리 변호사>의 천지훈의 목소리를 빌어 <스토브리그2>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한 부분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적어도 주인공 역할의 남궁민은 이 작품에 호의적인 마음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박은빈도 마찬가지다. 최근 연예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박은빈은 물론 “아직 불확실한 게 많다”고 전제하면서도 <스토브리그2>를 기다린다는 마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그리고 이것이 거기 출연했던 배우들 대부분의 염원이라고도 밝혔다. 일단 적어도 시즌2 제작에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배우들의 의향은 어느 정도 확인된 셈이다. 

 

최근 들어 시즌제가 점점 시청자들에게도 익숙해져가고, 그래서 시즌2의 성공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으로 박은빈이 미국비평가협회가 선정한 라이징스타상을 받는 등 K콘텐츠의 성공이 글로벌로 바로 이어지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니 이러한 시기에 박은빈과 남궁민이 다시 한 자리에 설 수 있는 <스토브리그2>의 시도는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 되지 않을까. 최근 이 두 사람이 연기한 이상한 변호사들 때문에 기대감이 급상승한 <스토브리그2>. 이쯤 되면 안하는 게 이제 이상한 상황이 됐다. (사진:SBS)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극악한 법정 속, 선한 변호사 박은빈의 존재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모두 진술에 앞서 양해 말씀 드립니다.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가지고 있어 여, 여러분이 보시기에 어,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어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을 사랑하고 피고인을 존중하는 마음만은 여느 변호사와 다르지 않습니다. 변호인으로서 피고인을 도와 음..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NA 채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처음으로 법정에 선 변호사 우영우(박은빈)는 어색하고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의지를 밝힌다. 자폐 장애를 가진 변호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제목처럼 이 특별한 인물이 주인공이자 그 자체로 메시지인 드라마다. 자신을 소개할 때,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며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을 이야기하고, 공적인 장소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고래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는 이상한 변호사. 

 

과연 이런 장애를 갖고도 법정에서 누군가를 위해 변호를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바로 그런 것이 우리의 편견이라는 걸 기분 좋게 깨주는 그런 인물이다. 당연히 이 인물이 법정에서 혹은 만만찮은 로펌 생활에서 마주하는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시청자들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게 된다. 

 

‘이상하다’는 표현은 ‘특별하다’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정상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들어있다. 보통과 다르다는 것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그래서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을 우영우 또한 잘 안다. 그래서 첫 사건으로 맡은 노부부 폭행사건에서 언변이 좋지 못한 우영우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상사의 말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피고인의 사정이 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핵심 아닌가요? 사정이 딱해 보이기로는 장애만 한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고요.”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변호를 해가는 과정들을 보면 다른 변호사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그의 남다른 시선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화가 나 다리미를 들어 남편의 머리를 내리친 할머니가 ‘살인 미수’ 혐의로 몰리게 된 사건. 모두가 다리미의 그 우악스러운 이미지에 경도되어 할아버지의 뇌출혈이 다리미에 맞아서라고만 생각할 때 우영우는 그 원인이 다리미가 아닌 남편의 지병 때문이었다는 진실을 들여다본다.

 

우영우의 첫 번째 사건으로 다룬 다리미 폭행 에피소드는 겉으로 드러난 어떤 이미지와 편견에 사로잡혀 제대로 진실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현실을 에둘러 담아낸다. 그리고 그건 다름 아닌 우영우라는 이상한 변호사가 이 드라마를 통해 그 존재 자체로 전하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우영우는 자폐를 갖고 있어 엉뚱하게 보이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른바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역시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편견’이라는 ‘장애’를 갖고 있다고 드라마가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으로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우영우의 이런 캐릭터와 메시지를 잘 드러낸다. 신부의 드레스가 벗겨지는 바람에 파혼의 위기에 처한 신부의 아버지가 예식장을 상대로 거액의 위자료 소송을 하려 하고, 이를 맡게 된 우영우가 위자료로는 도무지 받아낼 수 없는 거액 대신 결혼을 전제로 물려주기로 한 땅을 받지 못하게 된 손해 배상금으로 청구하는 대목이 그렇다. 물론 우영우는 의뢰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도 간파하지만, 이런 식으로 통상적인 관점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함으로써 변호에 있어 우위를 가져간다. 

 

이처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영우라는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편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변호사가 오히려 편견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는 이들을 꼬집는 드라마다. 우영우라는 ‘선한’ 인물이 주인공이자 메시지가 되고 있어서인지, 이 법정드라마는 최근 쏟아져 나오는 극악한 사건들과 악마 같은 인물들이 피 튀기며 대적하곤 하는 여타의 법정물들과 사뭇 다른 매력을 드러낸다. 그건 선한 의지가 주는 기분 좋은 감동이다. 

 

최근의 법정드라마는 변호인들마저 승소를 위해 ‘악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 비정함을 드러낸다. 그만큼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악을 이기기 위해서는 악만큼 치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서 얻는 정의와 공적으로 포장된 사적 복수가 우리에게 남기는 여운은 어딘지 찜찜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우리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찜찜함을 날려주는 ‘선한 의지’의 변호사라는 캐릭터를 세워서다. 물론 자폐라는 장애를 갖고 있어 오히려 편견 뒤에 숨겨진 진실을 본다는 이 인물의 설정은 여전한 현실의 조악함을 드러내는 것이지만, 그래서 더더욱 이 인물에 빠져든다. 

 

박은빈은 한 마디로 연기에 물이 올랐다. <청춘시대> 송지원이라는 인물을 통해 보이시한 매력을 드러냈던 그는 <스토브리그> 이세영의 씩씩함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의 순수함과 수줍음을 오가더니 <연모>의 이휘로 사극은 물론이고 남장여자라는 어려운 역할을 소화해내더니 이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자폐장애 변호사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기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박은빈은 이 작품 속 우영우를 닮았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그런 반전의 면면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사진:ENA채널)

시청자 홀리는 ‘연모’, 말 안 되는 데 박은빈, 로운에 빠져든다

연모

KBS 월화드라마 <연모>는 이상한 드라마다. 말이 안 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또 이 남장여자 콘셉트의 드라마가 어떤 꼬인 관계를 보여줄 걸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빠져든다. 정지운(로운)이 달밤에 이휘를 찾아와 자신의 진심을 고백하는 장면은, 사실상 정지운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인 이휘(박은빈)에게 일종의 커밍아웃을 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신하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충심인 줄 알았으나 연심이었습니다. 연모합니다. 저하. 사내이신 저하를 이 나라의 주군이신 저하를 제가 연모합니다.” 물론 이 대사는 <커피 프린스 1호점>에서 최한결(공유)이 남장여자 고은찬(윤은혜)에게 했던 그 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 너 좋아해. 네가 남자건 외계인이건 이제 상관 안해. 정리하는 거 힘들어서 못해먹겠으니까. 가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당황스럽게도 자신이 동성을 좋아한다는 그 사실을 애써 부인했지만 도저히 그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내놓는 이들의 커밍아웃에는, 그만큼 그들 앞에 놓여진 어떠한 난관들도 좋아하는 마음을 이길 수 없다는 그 진심이 묻어남으로써 보는 이들은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의 그 마음을 읽는다. 얼마나 깊이 자신을 연모하는 지를. 그래서 눈빛이 흔들린다. 세자로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지만 그 조차 뛰어넘어 마음을 전하는 이의 그 절실함이 너무나 깊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모>는 <커피 프린스 1호점> 같은 현대가 아닌 조선시대이고, 정지운이 커밍아웃 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왕세자다. 그러니 커밍아웃이 야기할 난관은 더욱 커진다. <연모>의 고백이 훨씬 더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러한 조선시대에 세자에게 그런 말을 건네거나, 그로 인해 진짜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되거나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휘 또한 정지운에 대한 연심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이들이 하는 선택들은 이 멜로를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이휘는 정지운(로운)을 찾아와 즐거운 하루를 보낸 후, 비를 피한 자리에서 이휘는 자신이 하고픈 삶과 살아가야만 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처럼 웃고 울며 살고 싶지만, 자신은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는 운명이라고. 그러면서 정지운에게 지금의 사서직에서 다른 직으로 옮기라고 권한다. 자신은 세자빈 간택을 받아 들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그 말을 전하고 비를 맞으며 돌아오는 길 빗물과 눈물이 범벅이 되어 있는 이휘에게 이현(남윤수)이 다가와 우선을 씌워준다. 그는 이휘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숨기며 옆에서 연심을 숨긴 채 바라만 보던 인물이다. 그는 이휘에게 “힘든 일이 있었나”보라고 말하며 자신도 오늘이 그런 날이라 말한다. 엇갈린 관계지만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생각해보면 <연모>의 이런 장면들이나 상황, 대사들은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세자에게 신하가 임금으로서가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서 연모한다 말하고, 세자 역시 그런 신하와 즐거운 하루를 추억으로 남긴 채 헤어지며 눈물을 흘린다. 술기운을 빌어 신하가 세자에게 볼 뽀뽀를 하고, 세자는 술에 취해 잠든 신하에게 입맞춤을 한다... 이런 게 어찌 가능한 이야기겠나.

 

하지만 이런 불가능도 가능한 일처럼 만들어내고 심지어 그들의 감정에 몰입해 똑같이 울컥하는 마음까지 먹게 만든다는 건, 스토리가 가진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믿게 만드는 그 지점에서 더 강력한 판타지가 생겨나기도 하는 법이다. <연모>는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을 홀리는 드라마다. 유려하게 꾸며진 이야기의 매력과 무엇보다 박은빈과 로운의 매력이 더해져 어느새 시청자들을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에 빠뜨리니 말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저런 게 말이 돼 하면서도 자꾸만 채널을 고정해 놓고 빨려 들어간다. 이들의 애틋하고 절절한 멜로 속으로.(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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