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세상 사람들이 정말 무서워요. 어쩌면 그렇게 나쁜 말들을 만들어가지고..." '휴먼다큐 사랑'에서 고 최진실씨의 어머니 정옥숙씨는 그렇게 말하며 진저리를 쳤다. 그 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사채업자로 몰려버린 자신의 딸에게 끊임없이 쏟아지던 비수 같은 '나쁜 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는 "연예인도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뒤에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결국 하지 않아야 할 선택을 한 딸과 그로인해 충격을 받고 결국 그 딸을 따라간 아들(고 최진영) 앞에 망연자실한 엄마는 너무 많이 흘려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눈물을 여전히 흘리고 있었다.

'나는 가수다'의 첫 무대에 오른 옥주현. 그 첫 무대가 방영되기 전부터 그녀는 끝없는 자질논란을 일으켰다. 그녀는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에, 과거 몇몇 행적들이 일으킨 비호감 이미지가 덧붙여졌다. 끝없이 쏟아지는 비난의 글들이 이어지면서 어디선가 전혀 근거 없는 루머까지 생겨났다. 그녀가 '나는 가수다'의 다른 가수들과 심한 마찰이 있었다는 것. 그러자 진위도 가려지지 않은 루머에 악플이 또 달라붙었다. 결국 무대에 오른 옥주현은 '천일 동안'을 불렀다. 그 노래는 마치 '천일 동안' 힘겨웠던 자신을 토로하는 것만 같았다. 결국 눈물을 쏟아낸 그녀는 그 날 투표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 감동의 무대로 모든 논란이 덮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제작진이 옥주현을 띄워주기 위해 의도적인 편집을 했고, 의도적인 룰을 만들었다는 억측이 이어졌다. 그녀는 말 그대로 비호감 연예인이었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에서 구애정(공효진)은 과거 국보소녀라는 아이돌 걸 그룹 출신이지만 지금은 인기 없는 비호감 연예인이 되어 있다.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롤러코스터에서 자장면 먹기 같은 이미지 관리와는 전혀 동떨어진 미션들을 수행하는 그녀는, 뭘 하든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 비호감 덩어리다. 신발 경매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독고진(차승원)과 윤필주(윤계상) 사이에 경쟁이 붙어 엄청난 고가로 신발이 낙찰되자, 대중들은 갑자기 그녀가 자신을 띄우려고 스스로 경매가를 높였다는 루머를 퍼뜨린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언론의 집중화살을 맞고 최고의 비호감 연예인으로 몰린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구애정을 신발을 산 독고진이 나타나 구해주니 말이다. 하지만 현실이라면 어땠을까. 구애정이라는 이름에 가까이는 옥주현이 겹쳐지고, 멀게는 최진실이 그려지는 건 왜일까. 최진실의 어머니가 말했듯 연예인은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다. 한 때 사랑을 한껏 받으며 연예인이 되었던 그들은 어쩌다 사랑받지 못하는 비호감의 굴레에 빠졌을까.

과거의 비호감 연예인이라면 주로 드라마의 악역을 뜻했다. 그 때만 해도 드라마 속 캐릭터와 연기자는 동일인물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악역은 잘만 소화해내면 주연 못지않은 인기를 끌 수 있는 역할이 되었다. 대중들은 이처럼 캐릭터와 연기자를 분리해냈다. 그만큼 영상 콘텐츠의 실제 이면을 들여다보고 그 실체를 알게 된 결과다. 그래서 작금의 비호감 연예인은 연예인들의 공식적인 활동, 즉 드라마라든지, CF라든지, 영화, 공연 등을 통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비공식적이고 사적인 행적들(이라고 추정되는 이미지들)에서 비롯된다. 즉 이제는 사적인 행적들이 감춰지지 않는 시대다. 어디서든 연예인들은 대중들에 의해 포착될 수 있고, 진짜 대중들이 마음만 먹으면 그 신상이 털릴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털린 신상에 대해 뭐라 항변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러니 최진실의 어머니가 말했듯, 그저 방구석에 칩거한 채 끼니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가끔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한숨을 쉬는 시간들을 혼자 버텨내야 한다. 이 상황이 되면 과거 한 때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연예인이었다는 사실은 거꾸로 비수가 되어 날아든다. 그저 사랑받지 못하고 살아온 자가 가질 실연의 고통보다 더 큰 것은, 그 이상의 사랑을 받던 자의 실연이다.

이처럼 대중들에게 연예인은 그저 호불호(好不好)의 대상일 뿐이다. 어느 날 그렇게 연예인은 대중들에 의해 발견되고 일방적으로 사랑을 받다가 어느 일순간 그 사랑이 급격히 식어버리고 때로는 미움으로 돌변한 모습에 큰 상처를 받는 존재다. 물론 일부 팬덤은 연인 관계 이상으로 스타를 추종하기도 하지만, 그들 역시 자신들의 삶은 따로 있다. 이것은 마치 상품과 같은 것이다. 좋아서 사가는 것이지만, 그것이 싫어져 버려진다고 해도 그다지 항변하기는 어려운 존재. 스타란 연예시장 속에서 보면 비정하게도 '상품화되어 전시되어 있는 인간'인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최진실의 어머니가 말한 것처럼 "연예인도 역시 사람"이라는데 있다. 대중들은 호불호로 좋고 나쁘다고 쉽게 표현하지만, 그걸 당하는 연예인들에게는 자신의 존재가 통째로 지워지는 충격적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호불호와 루머의 관계이다. 전혀 실제 사실과 상관없는 루머에 의해 비호감이 된 연예인은 아무리 그 루머를 바로 잡으려 해도 또 다른 루머에 휘말리기 쉽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의 옥주현 출연이 문제가 되자, 여기에 대한 해명 발언을 하면서 제작진이 꺼낸 얘기는 "제 2의 타블로"를 원치 않는다는 거였다. 학력위조 루머에 휘말려 다양한 증거자료를 내밀었지만, 그 증거자료들 역시 조작된 것이라는 또 다른 루머가 끝없이 만들어졌던 타블로. 그래서 결국은 자신이 나왔던 대학교에 직접 찾아가 확인하는 해프닝까지 벌여야 했던 타블로. 그렇게 모든 증거들이 명명백백하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 놓인 그. 이것이 비호감의 잔인한 굴레다. 사랑받지 못하는 비호감 연예인은 그래서 어쩌면 비난받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이다.

'최고의 사랑'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이 왜 굳이 '최고의 사랑'이며, 그 비운의 비호감 연예인인 여주인공의 이름이 왜 '구애정'이며, 상대 남자 주인공이 왜 '독고진'인지 이런 시각에 바라보면 흥미롭다. 즉 '최고의 사랑'이라고 하지만, 이 연예계에 몸담고 있는 구애정이나 독고진은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 대중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일방적인 사랑을 받거나 미움을 받아왔던 존재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갑자기 겪게 되는 가슴 떨림조차 사랑이 맞는 지 의심스러워한다. 그래서 비호감 연예인인 구애정은 '애정을 구하는'이라는 의미로 들리고, 최고의 스타인 독고진은 '진짜 고독한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힌다. 그게 어느 쪽이든 사랑이 쉽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최고의 사랑'이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도 들린다. 최고 스타들의 사랑이지만, 마치 초심자들의 그것처럼 익숙지 않은.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대중들의 호불호에 자신들은 생과 사가 오가는 위치에 서게 된 작금의 연예인들의 상황을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최고의 사랑'을 받거나, 혹은 어느 순간 비호감이 되어버리는.

연예인들의 자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

고 최진실씨가 간 그 길을 동생 최진영씨도 따라갔다. 우발적인 자살이라고 하지만 그 자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이 어찌 그저 갑작스레 다가온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한 방울로 물이 넘치기 전까지 이미 마음이라는 사발에는 계속 해서 물이 차오르고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겉으로는 가까스로 웃고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바라봤던 그 마음 속에는 한없이 쏟아지는 우울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흔히들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우울증은 사실은 감기처럼 경미한 수준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다가오지만 심지어 목숨마저 앗아가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측근의 이야기로는 고 최진영씨가 제대로 된 우울증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우울증'이나, '정신과' 같은 단어는 사실 일반인도 꺼리게 되는 것들이다. 하물며 대중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는 연예인들은 오죽할까.

연예인들은 특히 우울증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다. 먼저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생활이 엄밀히 구분되지 않고 혼재되는 상황이 그렇다. 사적인 공간은 개인에게 어떤 쉼터로서의 역할을 해주는데,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이것 역시 늘 외부에 드러내질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게다가 작금의 매체 환경은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조차 보호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쉽게 겪는다. 늘 평탄한 삶을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과는 달리, 연예인들은 인기에 휘둘리는 삶을 살아간다. 극단적인 포커스를 받아온 이들은 그 카메라 세례가 사라지고 나면 마음 한 가운데 텅 빈 공허를 지독하게 경험할 수밖에 없다. 고 최진영씨가 공백기에 일이 없어 힘들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털어 놓은 것은 그 박탈감의 강도를 잘 말해준다. 또한 이런 공백기 이후에 새롭게 연예활동을 들어갔을 때 역시 그 스트레스는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공백기의 힘겨움을 겪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연예인들의 노동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정신적인 노동에 더 가깝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대중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킨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정체성의 혼란과 스트레스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정신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연예인들을 위한 '정신건강 프로그램'은 마치 우리가 예방주사를 맞듯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것은 연예인들의 모습이 사회적인 롤 모델이 되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정신과'라는 특정 진료과에 대한 대중들의 잘못된 인식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감기에 걸리면 내과에 가고 상처가 나면 외과에 가면서 마음이 아프면 왜 정신과에 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것은 오래된 정신과 의사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정신과'라는 이름 자체를 다른 것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을 연예인들의 자발적인 '정신건강 참여 프로그램'으로 바꿔나갈 수 있지 않을까. 연예인들도 마음이 아프면 당당히 찾아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다면, 그것은 거꾸로 일반인들의 정신과 문턱까지 낮출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연예인은 현 변화해가는 사회 속에서 도드라진 존재들로서, 일반인들의 삶을 좀더 극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들이란 점에서, 그들의 자살은 단지 거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사회적 변화 속에서 일반인들도 똑같이 겪어야할 상황으로 다가올 것이고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일반인들 역시 사생활과 공적 생활의 경계는 점점 무너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연예인들의 자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 누가 김제동과 김구라를 호명했나

연예인의 프로그램 하차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장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개편의 목적이기도 한 프로그램의 쇄신을 위해 출연자를 교체했으리라는 것이다. 김제동이 '스타골든벨'에서 하차하게 된 것에 대해 방송사측에서 내세우는 명분은 이 정상적인 이유이지만 실상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스타골든벨'은 10% 이하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그다지 좋은 성적표는 아니다. 이 프로그램이 이 정도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형식이 이제는 조금 낡은 과거의 것으로 여겨진다는데 있다. 즉 프로그램의 쇄신이 필요했다면 형식 자체를 고쳤어야 옳다. 김제동을 지석진으로 교체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쇄신되지는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절차상의 문제도 석연치 않다. 사전에 충분히 이야기하고 미리 알려줬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단 며칠 전에 통보하는 식은 절차상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혹자들은 이것이 실제로 방송가에 공공연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잘못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적어도 절차라도 정상적이었다면 구태여 이런 잡음 따위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여러 가지 석연찮은 교체의 이유 때문에 김제동의 하차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김제동이 가진 대중적인 인지도에 정치적인 목적이라는 시선이 부가되자 이 상황은 정치권의 공방으로 이어졌다. 연예인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슈로 옮아간 것이다.

사실 연예인이 어떤 정치적인 발언을 하던 간에 그것은 한 국민의 소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정치 속에서 연예인이란 일종의 얼굴마담처럼 정치권이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아무런 정치적 의도가 없고 그저 인간적인 마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늘 정치권에서 아전인수되는 경향이 짙다.

연예인과 정치권이 연루되는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연예인이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져 희생양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것은 바로 정치권이 연예인을 보는 시각을 잘 말해준다. 따라서 연예인의 정치참여는 대부분의 유경험자들이 말하듯이 그다지 좋은 기억은 아니다. 연예인이 자기의 일을 접어두고 아예 정치인이 되겠다고 나서기 전에는 말이다.

김제동의 '스타골든벨' 하차와 손석희의 '100분 토론' 하차를 두고 야권에서 들고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국정감사에서 여권이 내민 카드는 이른바 '막장, 막말 방송'에 대한 비판이다. 막장드라마와 막말 예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극으로 치닫는 현 방송 문화에 있어서 어찌 보면 이러한 지적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안에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이것 역시 연예인을 앞세운 정치 공방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진성호 의원이 구체적으로 김구라를 지칭하며 퇴출하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좁은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다. '막장, 막말 방송'의 문제는 그 방송을 내보내는 방송사와 제작하는 제작자가 가져야 될 윤리적인 문제이지, 김구라라는 한 연예인이 책임지고 퇴출되어야 할 그런 사적인 문제가 아니다.

역시 이 사안에서도 연예인들은 어떤 본보기나 얼굴마담으로 내세워진 느낌이 있다. 김제동의 경우를 보든, 김구라의 경우를 보든 어떤 정치적인 사안으로 비화되는 과정에서 당사자들은 심한 소외를 겪는 양상을 보여준다. 연예인이 정치에 참여해 피해를 보았다거나, 정치가 잘못된 방송을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특정 연예인을 거론하고 나서는 상황을 보면서 그 사안이 옳던 그르던 어딘지 잘못되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비판을 하는 이들이 정치인들이라는 점은 그 비판에 대해 공감할 수 없게 만든다. 막말과 막장이라고 하면 우리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들은 과연 모르고 있다는 얘기인가. 적어도 연예인들은 즐거움이라도 주는 고마운 존재들이 아닌가. 연예인들이 정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또 여권이나 야권이나 어느 한 쪽이 옳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연예인의 이름이 정치적 목적으로 여기저기서 호명되는 것이 불편할 따름이다.

연예인들의 영역파괴, 더 이상 성역은 없다

KBS '생방송 뮤직뱅크'의 한 풍경. '인디언 보이'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부르는 MC몽과 화려한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몇몇 아이돌들 사이로 이색적인 얼굴이 보인다. 본래부터 가수를 꿈꾸다가 개그맨이 되었고, 그 관성 때문이었는지 유난히 '고음불가'나 '야야야 브라더스' 같은 음악 개그를 선보였던 개그맨. '1박2일'의 앞잡이, 이수근이다. 그는 새로 낸 싱글앨범 '해피송'의 타이틀곡 해피송을 불렀다. 잠시 후, 가요프로그램에서는 보기 어려운 또 한 명의 얼굴이 무대에 올랐다. '주몽', '이산'에서 특유의 굵직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견미리. 그녀는 1집 '행복한 여자'를 내고 가수 데뷔를 했다. 음악 프로그램 속에 들어온 개그맨과 연기자. 그 풍경은 이색적이지만 이미 더 이상 이상한 풍경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쇼에서 개그맨과 가수, 그리고 연기자들이 공존하는 모습을 봐왔다. 거기에서는 개그맨 이수근과 함께 MC몽이 형 동생 해가며 1박2일간 포복절도의 여행을 떠난다. 그러니 '생방송 뮤직뱅크'에서의 MC몽과 이수근이 같은 프로그램에 서는 모습이 우리에게 익숙할 수밖에. 그런데 '1박2일'에서 이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인물 중에는 '찬란한 유산'에서 한효주와 가슴 떨리는 멜로를 보여주었던 이승기도 있다. 가수이면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하면서 동시에 드라마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승기는 작금의 연예인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영역 파괴(?)를 상징처럼 보여주는 인물이다.

드라마를 보면 이제 가수들의 주연급 캐스팅은 일반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아가씨를 부탁해'의 윤은혜, '태양을 삼켜라'의 성유리, '혼'의 이진은 아예 가수활동에서 연기활동으로 선회했고, '드림'의 손담비, '혼'의 티아라 지연, 또 앞으로 방영될 '맨땅의 헤딩'의 유노윤호는 가수이면서 연기에 도전하는 인물들이다. 한편 개그맨들의 드라마 출연도 예외적인 일은 아니다. '선덕여왕'에서 뛰어난 감초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류담, '스타일'에서 에디터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개그맨 한승훈이 대표적이다.

이렇게 연예인들이 자기 영역을 넘어서 타 분야까지 넘나드는 퓨전 경향은, 연예인 당사자들과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연예인 입장에서 보면 과거 이미지는 겹치지 않아야 하는 어떤 것으로 여겨졌었지만 신비주의가 지나간 리얼리티 세상에서 이런 사고방식은 수정되었다. 연예인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 즉 다양한 얼굴들이 존재하는 것이고, 연기든 노래든 개그든 그것은 하나의 퍼포먼스일 뿐이라는 것을 대중들은 인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박예진이 정극에서 멜로 연기를 하면서, 동시에 ‘패밀리가 떴다’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고 또 솔직한 모습이 되었다. 하나가 아닌 복합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호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한편 제작진들은 영역 바깥의 인물들이 갖고 있는 인지도와, 새로운 영역 속에 들어왔을 때의 신선함을 주목했다. 개그맨이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은 당연한 어떤 것으로 치부되는 반면, 가수나 배우가 버라이어티쇼를 하는 것은 새로운 호기심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영역 속에서 그 영역에 익숙해진 이들은 리얼이 대세인 현재의 쇼 속에서 자칫 인위적인 모습을 연출할 가능성이 높다. 차라리 그 분야의 프로보다는 타 영역에서의 프로(따라서 그 분야에서는 아마추어가 되는)가 오히려 각광받는 상황은 연예인들의 영역 파괴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다.

이러한 영역파괴의 경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나가는 특정 연예인에 대한 집중도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은, 이제 새롭게 진입하려는 신진 연예인들에게는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한다. 한 분야에서 성공하면 타 분야까지도 영역이 넓어지지만, 이것은 결국 몇몇 연예인들이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장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드라마에서 젊은 배우들의 입지는 점점 좁혀지고 있는데, 그것의 한 원인은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리얼 버라이어티쇼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의 입지가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편 ‘무한도전’의 ‘강변북로 가요제’ 앨범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가수로서의 성공이 음악적인 성취보다 이러한 이벤트적인 요소에 좌지우지된다는 허탈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영역파괴의 경향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다. 따라서 이 변화를 거부한다는 것은 아예 연예 생태계에서 살기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앞으로 연예인은 말 그대로의 ‘탤런트(talent : 재능을 가진 사람을 뜻함)’의 의미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달라진 생태계는 벌써부터 거기에 맞는 탤런트들을 포진시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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