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신원호, 유호진PD까지, 그들의 성공 비결

 

최근 예능계에 단연 돋보이는 제작라인은 이른바 <해피선데이> 라인이다. tvN의 이명한 CP는 그 뿌리나 마찬가지다. 초창기 KBS <12>의 야생을 살려놓고 나영석 PD에게 바톤을 이어준 후, 신원호 PD를 통해 <남자의 자격>을 런칭시켰다. 이들은 지금 현재 모두 CJ로 이적해 이른바 이명한 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이적 후 첫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로 적시타를 치더니 배낭여행 연작 프로젝트인 <꽃보다 누나>는 첫 회에 10% 시청률을 넘기며 훌쩍 펜스를 넘기는 홈런을 날렸다. 신원호 PD 역시 첫 작품인 <응답하라 1997>을 성공적으로 끝내더니 후속작인 <응답하라 1994>도 우려와 달리 1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며 화제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가 하면 <12> 초창기에 몰래카메라로 만들어진 식당에서 폭주하는 강호동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도 했던 유호진 PD 또한 최근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새로 <12> 시즌3의 메가폰을 잡자마자 시청률이 반등하면서 옛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어서 이런 승승장구가 가능해질까.

 

가장 첫 번째 이유로 지목되는 건 이들 뒤에 서 있는 이우정 작가라는 존재다. 사실 이들 프로그램의 전면에 거의 PD가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시선이 거기에만 집중되지만 실제로 프로그램을 움직이는 이는 이우정 작가라고도 볼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2>, <남자의 자격>,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모두 이우정 작가가 뒤에서 든든하게 작가로서 지켜냄으로써 가능했던 콘텐츠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콘텐츠의 성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역시 작가의 영역이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이다. 상품으로 치면 기획과 스토리에 해당하는 것.

 

하지만 여기서 한 차원 더 들어가 보면 이우정 작가를 비롯한 이른바 이명한 사단이 가진 콘텐츠에 대한 특별한 접근방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이들이 모두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인물의 심리. 여행지나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인물이 느끼는 감정 상태의 미묘한 변화를 이들을 섬세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것은 대본을 써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 현장에서 발견하는 눈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나영석 PD의 일련의 예능 프로그램들이 주는 특별함은 그래서 발견이다. 그것은 인물의 발견일 수도 있고 여행지의 발견일 수도 있으며 때로는 여행 그 자체의 발견일 수도 있다. <꽃보다 할배><꽃보다 누나>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견은 할배누나로 지칭되는 인물군들의 재발견이다. <꽃보다 할배>가 어르신들의 새로운 면을 배낭여행을 통해 재발견했다면 <꽃보다 누나>는 남자들이 잘 몰랐던 여성들의 새로운 면을 재발견하고 있다. 재발견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자세다. 특히 후반작업에 강점을 보이는 나영석 PD는 오히려 현장의 돌발적인 상황들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는 열린 자세로 현장에 들어가 거기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반면 신원호 PD는 드라마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물의 심리를 영상 안에 그 정서적인 느낌까지 묻어나게 연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를 들어 <응답하라 1994>에서 정우와 바로가 비오는 날 가겟집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그렇다. 이 장면에서 정우는 발을 쭉 뻗어 떨어지는 빗물에 적시며 술을 마시는데 이런 감각적인 연출은 보는 이들에게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정서를 전달한다. 똑같은 대사라고 해도 전화기 앞에 머뭇거리는 손이나, 감기로 아픈 병상에서 느끼는 그 특별한 정서 같은 것들이 묻어나면 전혀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 마련이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감각적인 느낌들을 잡아내기 때문에 그의 연출로 포착되는 인물들은 훨씬 더 몰입이 가능해진다.

 

<12> 시즌3 혹한기 입영 캠프에서 선보인 유호진 PD의 이른바 야생 5덕 테스트복불복은 PDMC들 간의 팽팽한 대결의식이 바탕에 깔려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구덩이 하나를 파놓고도 50여 분의 방송분량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결국 인물들의 외부에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그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에 천착하는 제작방식이 이들의 예능을 특별하게 해주는 이유가 된다는 점이다.

 

이명한 PD는 그간 웃음을 주는 것만을 오로지 목적으로 했던 예능 프로그램에 이른바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PD이기도 하다. 그는 웃음만이 아니라 눈물, 감동, 놀라움 등등 다양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을 꿈꾸었다. 그러다 보니 그의 예능은 다큐와도 맞닿게 되었고, 현재는 드라마적인 극적 요소도 갖추면서 이 장르 간 벽을 해체시키고 있다. <해피선데이> 제작 라인들의 승승장구는 그저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본 서사를 바탕으로 장르적 차이가 붕괴되고 있는 현재 콘텐츠의 변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른바 이명한 사단의 승승장구는 우리네 일반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타인을 섬세하게 바라보고 거기서 특별함을 발견해내는 능력은 어쩌면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정해진 룰에만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 놓여진 벽을 해체하는 실험적인 도전정신 또한 융복합의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섣불리 규정짓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세상을 발견하겠다는 그 자세는 창의적인 정신의 기본전제가 될 것이다. 2014년은 <꽃보다 누나>가 여성들을 재발견한 것처럼 당신이 재발견되는 꽃보다 당신의 해가 되기를. 훗날 응답하라 2014’로 기억 될 멋진 한 해가 되기를.

<1> 유호진 PD가 말하는 <응답> 신원호 PD

 

예능 PD가 어떻게 이런 드라마를 연출했을까. <응답하라 1994> 신원호 PD에는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 어딘지 드라마 PD보다 예능 PD를 평가절하하거나, 혹은 이 두 분야가 전혀 달라서 연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모험이자 도전이라는 것.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응답하라 1994>의 이우정 작가나 <주군의 태양>의 홍자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박혜련 작가 같은 예능작가 출신들이 드라마작가로 전업해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는 것처럼, 예능을 연출하다가 드라마 PD로 이름을 날린 경우도 적지 않다. 현재 <기황후>를 연출하고 있는 한희 PD도 예능 연출 출신이고, <파스타>, <골든타임> 등으로 스타PD 반열에 오른 권석장 PD 역시 <일밤> 조연출 출신으로 <테마극장> 연출로 잔뼈가 굵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원호 PD 역시 <여걸식스>, <남자의 자격>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냈지만 본래 본인은 영화 연출에 뜻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이런 남다른 신 PD의 성향은 고스란히 <응답하라> 시리즈의 연출에도 묻어나고 있다.

 

<응답하라 1994>가 특별한 느낌으로 전달되는 이유는 그저 정보 전달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감성이나 정서를 묶어내는 신 PD만의 연출력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응답하라 1994>에서 쓰레기(정우)와 빙그레(바로)가 비오는 날 가게 앞 평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 그렇다. 정보적으로는 그냥 술을 마시는 장면이면 족하겠지만, 이 장면에서 정우는 평상에 앉아 맨발을 쭉 뻗어 빗물에 내놓은 채 소주를 마신다. 이런 디테일한 연출에는 당시 상황이 주는 특유의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들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12>의 새 매거폰을 잡은 유호진 PD는 신원호 PD가 가진 정서적인 연출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신원호 PDCJ로 이적하기 전 마지막으로 <남자의 자격>을 연출할 때 유호진 PD는 인사차 편집을 하고 있는 신 PD를 찾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남자의 자격> 아이템은 아저씨들이 호주 사막을 여행하는 것이었는데, 그냥 원샷으로 편집해도 되는 자동차가 달려가는 장면을 굳이 중간에 끊어서 나뭇가지 흔들리는 장면 같은 것을 인서트로 넣더란다. 왜 그렇게 하냐고 묻자 신 PD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 더 아련한 느낌 같은 게 묻어나잖아.”

 

사실 연출이라고 하는 분야를 그저 그 장면이 갖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신원호 PD의 경우 연출이란 다만 이야기가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정서나 심리상태까지를 담아내는 것이란 얘기다. 이것은 어쩌면 <응답하라 1994>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정서가 바로 이 연출에서 비롯하는 것이라는 걸 말해주는 대목일 것이다. 똑같은 장면도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잡아내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유호진 PD<12>에 있어서도 그저 스토리나 상황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니라, PD가 연출을 통해 보여주는 그런 정서를 잡아내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얘기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12>이 시즌2를 통해 추락하게 됐던 것이 바로 이 특유의 정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여행가고 복불복 게임을 하고 벌칙을 수행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진 데는 똑같은 그림 안에서도 그 속에 담겨진 인물들의 심리나 정서적인 느낌 같은 것이 잘 연출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확실히 요즘은 예능과 드라마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시대다. 예능은 언제부턴가 스토리텔링을 하기 시작했고, 드라마는 스토리텔링 속에서 예능에서 두드러지던 캐릭터에 대한 집중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것 같아도 이 두 장르가 하나로 맞닿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스토리텔링이라는 영역이다. 스토리(이야기)는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에 텔링(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이 담기지 않으면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다. 신원호 PD가 추구하는, 또 유호진 PD가 배우고 싶은 그 정서까지 담아내는 연출은 어쩌면 앞으로 예능이든 드라마든 그 성패를 가늠하는 필요조건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지 권력의 시대, 문제는 없나

 

최근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적과의 동침>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지금껏 보지 못한 새로운 풍경들이 등장한다. 드잡이에 날치기 통과 같은 볼썽사나운 장면들을 통해 늘 봐왔듯이,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댈 것 같은 여야 정치인들이 함께 모여앉아 게임을 하고 토크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단박에 이해가 될 수밖에 없다. 늘 적과 아군으로만 나누어진 모습을 보였던 여야 정치인들이 함께 한 바탕 놀아보는 프로그램인 것.

 

'적과의 동침(사진출처:JTBC)'

이것은 과거 같으면 도저히 보기 힘든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방송을 통해 서민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는 것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당시의 프로그램들은 뉴스나 교양, 다큐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본격적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들어와 있는 것. 도대체 무엇이 이런 파격적인 변화를 만든 것일까. 가장 큰 것은 지금 현재가 이미지가 갖는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이른바 ‘이미지 권력의 시대’라는 점이다. 좋은 이미지를 가지면 뭐든 얻을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이미지가 하나의 권력이 된다는 것은 거꾸로 연예인이 정치인만큼의 힘을 발휘하는 이른바 폴리테이너나 소셜테이터가 급증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한 때 연예인들은 이른바 딴따라라고 비하되곤 했지만 지금은 청소년들이 되고 싶은 꿈 1순위가 될 정도로 그 위상이 커졌다. 그것은 이미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이미지의 힘은 이제 SNS 상에서 한 줄을 적는 것으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지가 권력이 되는 과정에는 많은 부작용이 생겨난다. 이미지는 실체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즉 이미지가 좋다고 해서 그 내용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을 접하는 대중들로서는 내용까지 좋은 것으로 오인되고는 한다. 즉 정치인이 예능을 잘한다고 해서 정치를 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보여진 서민적인 이미지는 그 정치인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의 힘이 실체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2007년 대선 과정에 등장했던 광고를 통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보 광고를 떠올려 보라. 욕쟁이 할머니의 국밥집이 등장했지만 사실 그 욕쟁이 할머니는 연기자로 밝혀졌다. 즉 일련의 광고이미지는 하나의 연기의 소산이었던 셈이다. 물론 광고가 전하는 메시지는 진심이었다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이 그 광고가 보여준 것처럼 친서민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연예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물론 방송을 통해 좋은 이미지로 많은 수익을 내면서도 실제로 좋은 일을 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연예인들 역시 적지 않다. 흔히 많이 접하게 되는 무수한 논란과 사건사고들을 생각해보라. 이것이 엄청나게 큰 파장과 논란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이미지로 봐왔던 모습과 전혀 다른 어떤 실체를 거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미지는 굉장한 힘을 주지만 그것이 모두 실체는 아니라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를 통해 어떤 힘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유재석 같은 모범적인 연예인은 단적인 사례다. 그는 어떤 점에서는 좋은 이미지 때문에 더 사회에 책임감 있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노력하는 상승효과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은 하나의 권력이라는 점에서 그것이 어떻게 얻어지고 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이미지 권력은 실제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더 유리하다. 이를테면 한때 ‘땡전뉴스’라고 불리던 뉴스보도들은 권력을 이미지화하면서 다시 그 권력을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사용된 이미지 권력이다.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도 뉴스가 뉴스 같지 않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행태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얻어진 권력이 과연 서민들을 위한 정치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정치인들(이거나 혹은 정치인이었던 이들)의 예능 출연 러시는 그래서 그 취지인 ‘그들도 우리와 같다’는 식의 공감을 주기도 하지만, 이미지 권력의 시대라는 점을 두고 보면 씁쓸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이제 공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적인 이미지까지 하나의 힘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니까. 문제는 이 사적이고 공적인 이미지가 실체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을 때 대중들이 갖게 되는 허탈감과 실망감이다. 그러니 예능 좀 한다고, 또 예능감이 있다고 그것이 실체라 쉬 마음 주지 말자. 그것이 실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더 큰 상처만 줄 테니.

김태원, 이젠 말보다 음악에 집중해야할 때

 

최근 부활의 김태원은 예능중단을 선언했다. 그간 <남자의 자격>에서 국민할매로, <위대한 탄생>에서는 국민멘토로까지 불렸던 그였다. 그는 <나 혼자 산다> 같은 관찰예능에서도 발군의 예능감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가끔 참여한 토크쇼들에서도 그는 큰 웃음을 주는 한 마디 한 마디와 함께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촌철살인의 말들로 단연 돋보이는 게스트였다. 토크쇼, 리얼 버라이어티쇼, 오디션 프로그램, 관찰예능까지. 실로 김태원은 최근 몇 년 동안 예능이 발견해낸 대단한 가능성 중의 하나가 분명했다.

 

'위대한 탄생(사진출처:MBC)'

그런데 그가 돌연 예능중단을 선언했다. 이유는 당연하지만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서란다. 새로운 앨범 작업에 오롯이 몰두하겠다는 것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 하차했을 때 딸 서현 양이 같이 생활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지만, 사실 그에게는 음악적인 이유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예능은 그에게 현실적인 것들을 제공해주었지만 그는 결국 아티스트다. 음악이 아닌 예능으로 이름을 떨치고 돈을 버는 것이 성에 찰 리가 없다.

 

물론 아티스트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본분인 아티스트로서의 활동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다. 최근까지의 그의 행보를 보면 그러나 부활의 김태원보다는 예능인 김태원으로서의 존재감이 거의 압도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가 예능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냈던 노래들은 특유의 록 발라드가 갖고 있는 감성적인 멜로디가 여전히 돋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너무 비슷비슷한 멜로디의 동어반복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항간에는 이제 몇 소절의 멜로디만 들으면 그 곡이 김태원의 곡이라는 걸 알아챌 정도라는 얘기도 나온다. 자신만의 풍이 있다는 것은 물론 나쁜 것은 아니지만, 김태원의 최신 곡들을 부활의 초창기 앨범들과 비교해보면 그 날카로운 면들이 많이 무뎌진 느낌을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노래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여전히 괜찮지만 과거 우리가 부활에서 기타치며 노래까지 하던 김태원의 아우라와 기대감에는 못 미친다는 얘기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태원이 아닌가.

 

여러모로 예능을 하며 음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게다. 그나마 김태원을 버티게 해준 건 <남자의 자격>을 하며 앞에서 이끌어주었던 이경규라는 존재 덕분이었지만 프로그램이 종영하면서 이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무엇보다 예능 이미지로 자꾸만 굳어지면서 흐려지는 록커로서의 이미지는 부담이었을 게다. 국민 할매라는 친근한 캐릭터는 물론 좋지만 기타를 들기조차 힘들 것 같은 그 이미지는 음악에는 결코 좋을 수 없다.

 

최근 김태원은 모 라디오 방송에 나와 과거 “부활에서 보컬을 마음대로 교체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또 이 방송에서는 뒷담화를 하던 이승철에게 변진섭이 일침을 가해 머쓱해했다는 이야기도 내놨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나름 쿨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얘기한 것이다. 과거 김태원이 <놀러와>나 <라디오스타> 같은 프로그램에 나와 이러한 과거 회고담을 꺼냈을 때만 해도 대중들은 대부분 그 이야기에 공감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사뭇 달라졌다. 공감도 있지만 비난에 가까운 악플도 적지 않게 보인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그것은 김태원이 그간 많은 예능 프로그램을 출연하면서 너무 많은 말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예능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무에 잘못됐냐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김태원이라는 아티스트의 색깔을 없애는 쪽으로 작용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중들에게 김태원은 어느 순간 음악은 잘 들리지 않고 말만 무성해진 그런 존재로 이미지화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이라도 예능 중단을 선언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면 이제 말이 아니라 음악에 매진할 일이다. 지금은 대선배들이 여전히 건재함을 알리며 젊은 세대들까지 음악으로 소통하는 시대다. 조용필의 ‘바운스’가 그렇고, 여전히 매력적인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어필하고 있는 신승훈의 신보가 그렇다. 부활이 진정으로 부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예능이 아닌 음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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