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새 판도, 땀은 웃음보다 진하다

21.0975km. 꼴찌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들어오는 이경규와 이윤석을 보던 김성민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 얼굴을 본 이경규 역시 눈물을 흘렸다. 애초에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 대회 참가 자체가 무리라고 했던 이윤석은 수차례 멈추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결승점을 넘어섰다. "뭐 하나 끝까지 한 게 없다"는 자책감에 "이번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고 이윤석은 말했다. 전편에 마라톤을 준비하며 큰 웃음을 주었던 '남자의 자격-마라톤 도전'편은 후편에 웃음에 대한 강박이 없었다. 그저 진정성이 깃든 값진 땀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쇼는 웃음 그 이상의 힘을 발휘했다.

예능의 새로운 판도로서 땀이 주는 진실된 이야기가 시청자를 매료시키고 있다. '1박2일'은 거문도 등대로 가기 위해 손수 스텝과 출연진들이 무려 8톤에 달하는 무거운 장비를 나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차마고도'를 패러디한 '예능고도'라는 자막이 붙은 그 장면 속에서 출연진들은 '이건 말도 안돼'를 연발하며 진실된 땀을 흘렸다. 이것은 그간 '1박2일'이 개척해온 생고생 버라이어티의 한 사례를 보여주었다. 이 예능 프로그램이 주말 밤을 장악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출연진들의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전하는 진한 진정성에서 비롯된다.

새롭게 김영희 PD 체제로 선보인 '일밤'의 '단비' 역시 땀 냄새 나는 예능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단비'는 아프리카 잠비아까지 무려 25시간을 날아가 현지 주민들을 위해 모래를 파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 코너는 심각한 물 부족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이곳에 우물을 파서 희망을 나눠준다는 컨셉트를 갖고 있다.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출연진들은 고생스런 일정을 소화해내야 한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경기를 갖는 강행군을 해야 했다. 출연진 중 맏형에 해당하는 이하늘은 거의 하루의 일정이 야구로 시작해 야구로 끝날 정도로 야구 연습을 했고, 이것은 다른 출연진들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일까. 부상 투혼까지 발휘하며 경기에 임하는 '천하무적 야구단'은 별다른 예능적인 설정을 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들의 땀 냄새가 시청자들에게까지 물씬 전해진 탓이다.

이것은 아이돌 걸 그룹 버전의 예능으로 자리한 '청춘불패'도 예외는 없다. 무대 위에서는 섹시함과 귀여움의 대명사로 깜찍한 춤과 노래를 선사하던 그들이지만, '청춘불패'에 오면 삽자루 들고 땅을 파거나 엄청난 양의 김장을 담그고, 소똥을 치우는 일을 하기가 다반사다. 그 열심히 일하는 모습 때문일까. 이 프로그램에서는 무대 위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걸 그룹들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모습들이 보여진다. 유치리라는 작은 마을에 화려한 이미지로 포장되어있던 아이돌들이 그 껍질을 하나하나 벗고 동화되고 친화되는 과정은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다.

예능 프로그램의 새 트렌드로 어떤 의도된 몸짓이나 말보다, 진실된 땀이 자리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진정성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리얼이냐 아니냐는 것은 이제 해묵은 식상한 리얼 논쟁에 해당하지만, 그 담겨진 이야기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는 새로운 예능의 트렌드로 자리하고 있다. 땀 냄새 물씬 풍기는 예능이 생고생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은 그 속에 진정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진정성이 통할 때, 우리는 감동이 있는 웃음을 만나게 된다.

'남녀탐구생활', 공감 버라이어티 시대 여나

내 속에 들어갔다 나왔나. 어쩜 저렇게 내 속 같은 얘기만 할까. 케이블채널 tvN의 '재밌는 TV 롤러코스터-남녀탐구생활'의 마음에 짝짝 달라붙는 맛깔스런 내레이션을 듣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같은 상황에 대한 남녀의 서로 다른 내밀한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예능 프로그램이 말 그대로 빵 터진 건 바로 이 공감에 있다.

'남녀탐구생활'이 이 공감을 가져오기 위해 취하고 있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실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이른바 대세가 되어버린 리얼 버라이어티 형식의 정반대 지점에 이 코너가 서 있다는 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리얼에 포인트를 맞춰 대본을 최소화하고 현장에서 포착한 장면과 대사들을 가져와 그것을 편집과 자막을 통해 웃음과 스토리를 강화한다. 하지만 '남녀탐구생활'은 먼저 내레이션을 만들고 거기에 맞춰 영상을 연출하는 철저히 사전 기획된 내용을 담는다. 그래서 결과는? 공감 백배의 영상이다.

이것은 기획되지 않은 날 것의 영상들만이 진정성을 담아내고, 그것이 결국 공감까지 가져올 수 있을 거라고 믿게 만드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세상에 대한 역발상이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의도되지 않은 장면을 통해 리얼한 공감을 주고 자막 등 후반작업을 통해 그 공감이 증폭된다면, '남녀탐구생활'은 먼저 딱 맞는 내레이션이 철저히 기획되어 만들어지는 지점에서 먼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거기에 맞춘 영상은 그 공감을 증폭시킨다. 방향은 반대지만 목적은 같다. 공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된 것은 그것이 리얼해서 재미있기 때문이 아니라 리얼해서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그 웃음이 거짓이 아니고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먹을 것을 놓고 복불복을 해도 그것이 진짜 배고플 때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을 때 하는 것에는 공감의 차이가 생긴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바로 이러한 리얼한 상황들을 엮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는 바로 그 리얼함 때문에 공감을 얻는다. 그러니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리얼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목적은 공감이 된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처럼 공감을 목적으로 하게 된 것은 리얼 버라이어티가 가진 스토리텔링의 특징이기도 하다. 리얼 버라이어티는 일정한 캐릭터를 구성하고, 상황 속에서 리얼한 반응들을 엮어서 하나의 스토리를 구성한다. 이것은 매 회 다른 이야기를 가지면서 또 전체를 관통하는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드라마적인 스토리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점은 그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 정도일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스토리를 가진 예능들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처럼 공감을 추구하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남녀탐구생활'이 이 굳이 리얼을 내세우지 않고도 공감을 가져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것은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에 이 코너의 선택이 리얼을 주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남녀탐구생활'은 남녀의 숨겨진 내밀한 심리라는 누구나 보편타당하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소재를 가져와 대중들과 공감했다는 점이 성공의 핵심 포인트다. 사실 이제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리얼이라는 말조차 식상해진 시점이다. 리얼에 대한 강박은 이제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식으로 오히려 사회적 논란만 야기시키는 아킬레스건으로 전락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은 공감이다. '남녀탐구생활'은 그 가능성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웃기기만 하면 된다고 치부되던 시대는 이제 갔어요. 예능도 이제는 공감이 필요해요." 이제 공감 버라이어티의 시대다.

김C와 김성민, 예능에 리얼을 입히는 그들

확실히 예능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남들은 웃기려고 안달복달 예능을 하려 할 때, 오히려 진지한 얼굴로 다큐해서 호평을 받는 시대니 말이다. 그 새로운 시대의 징후처럼 서 있는 인물이 바로 김C다.

그는 강호동이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가며 "시베리아 야생 수컷 호랑이~"를 연발할 때도, MC몽이 발군의 예능감을 살려 몸 개그를 날릴 때도, 은초딩이 눈을 깜박깜박하며 또 무슨 장난을 쳐서 웃음을 줄까 고민할 때도, 이승기가 안되는 요리 실력으로 요리를 하겠다며 난리 블루스를 출 때도, 이수근이 예능의 빈 공간에 불쑥불쑥 초절정의 개그를 선보일 때도 그저 묵묵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 자리에 서 있다.

아니 무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인상을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는 '1박2일'이라는 야생의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지나치게 진지하게 "사는 건 고행"이라고 온몸으로 말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그 진지함이 예능 속으로 들어오자 놀라운 마력을 발휘한다. 그것은 이 새로운 조류로 만들어진 리얼 예능에 진짜 리얼을 입히는 존재로서 김C가 부각되는 것이다. 그는 지지리도 운 없는 사나이로 한 겨울에는 속옷 차림으로, 한 여름에는 털 잠바로 그 생생한 계절감을 전한다.

재수 없게도 복불복에 져서 홀로 도보로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여정에서도 그는 진지함의 극을 보여주었다. 방송분량은 아예 포기했고, 어두컴컴한 밤길을 묵언수행하듯 걷는 김C는 말 그대로 이 예능 프로그램을 다큐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진짜 다큐일까. 그렇지 않다. 이 예능 속의 다큐는 오히려 웃음을 만들어내는 포인트가 된다. 모두가 웃기려 노력하고 웃음을 터뜨릴 때, 혼자 그 옆에 서 있는 진지한 인물은 그 대비효과를 통해 웃음이 만들어진다. 이 '1박2일'의 이 '예능 속의 다큐'가 준 웃음은 사실상 김C라는 캐릭터가 '1박2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 속에서 주는 웃음과 일맥상통한다.

'1박2일'에 김C가 있다면 '남자의 자격'에는 김성민이 있다. 김C가 주어진 야생의 상황을 버티는 것으로 그 예능에 리얼과 웃음을 선사한다면, 김성민은 여기서 한 발작 더 나가 적극적으로 힘겨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오히려 그 속에서 즐거움을 얻는 모습을 통해 리얼과 웃음을 선사한다. 그의 입에 붙은 말, "나 그거 꼭 해보고 싶었는데"는 다른 멤버들의 한숨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양측의 웃음을 강화한다.

일일 직장 체험에서도 그는 주어진 여행사 직원의 일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고 싶은 것을 더 하려는 자세를 보였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전투기 조종에서도 그는 즐기는 자세로 하늘을 날았으며, 모두 힘겨워 하는 2PM의 UCC 만들기에서도 "한번 더"를 외쳐 주변사람들을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만들었고, 모두 귀찮아하는 가사일에서 조차 마치 주부가 된 것처럼 열심히 임하는 자세를 보였다.

김성민의 이런 예능에 대한 '열혈'의 자세는 리얼과 웃음을 넘어서 어떤 감동마저 주는 이유가 된다. 나이 든 아저씨들의 도전기로 이루어진 '남자의 자격'에서 고개 숙인 아저씨들과는 상반되게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땅의 아저씨들에게 어떤 힘을 부여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능에 리얼을 입히는 그들. 예능이 아니라 다큐를 하는 그들. 김C와 김성민이라는 존재는 이제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이 서 있는 위치를 잘 말해준다. 설정이 아닌 리얼한 웃음은 어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제 예능 프로그램의 베이스가 되고 있고, 김C와 김성민은 바로 그 베이스로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 유재석, 강호동의 존재만큼, 이 시대의 예능을 잘 알려주는 인물로서 이들 만한 존재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예능에서 웃음만큼 중요해진 것이 진정성이 된 시대다.

다큐 속의 명사, 예능 속의 명사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명사와 사랑에 빠졌다? 명사(名士).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란 뜻이다. 여기에는 스타들은 물론이고 예술가들, 스포츠 스타들 같은 이름난 유명인들이 모두 포함된다. 물론 예술가들 같은 유명인들은 다큐멘터리에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최근 들어 다큐멘터리는 그 명사의 대열에 연예인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일어나고 있다. 연예인들의 출연보다는 그간 잘 보이지 않던 스포츠 스타나 예술가들의 출연이 대중들의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MBC 스페셜'은 일찍부터 대중적인 스타들의 일상적인 얼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아왔다. 스타 이영애는 물론이고 여자 역도선수 장미란, 배우 김명민, 프리미어 리거 박지성, 그리고 이번 주에 조명될 박찬호까지 'MBC 스페셜'은 명사 다큐라는 한 형식을 구축해낸 셈이 되었다. 물론 처음 다큐멘터리가 스타를 다루는 것은 낯설었다. 따라서 그런 시도가 단지 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비판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이 명사들을 다루는 다큐멘터리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면면을 소개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보편적인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방영되었던 '김명민은 거기 없었다'는 김명민이라는 한 배우의 조명을 넘어서 배우라는 직업이 갖는 존재의 문제까지도 포착해냈고,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는 제목대로 우리가 몰랐던 인간 박지성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주 방영될 '박찬호는 당신을 잊지 않았다'에서는 우리네 최초의 메이저리거인 박찬호의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그가 슬럼프일 때 그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현재 여전히 마운드에 오르는 박찬호의 모습을 통해, IMF시절에 우리에게 희망이 되어주었고, 여전히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스포츠인의 자화상이 그려진다. 끝없는 슬럼프 끝에 이제 재기에 성공한 박찬호의 끈질긴 노력은 마치 우리의 현재를 말해주듯 공감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이른바 명사다큐의 경향은 'MBC 스페셜'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는 다큐멘터리의 한 경향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주 '히트곡의 비밀코드'를 다룬 'SBS 스페셜'에는 국내의 작곡가들, 중견가수,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해 일련의 히트곡에 존재하는 특별한 요소들을 이야기했다. 아이템 자체도 신선했지만, 무엇보다 유명 스타들이 늘 보여지던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에 조명된다는 점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에 방영되는 '매력 DNA, 그들이 인기 있는 이유'에서도 이어질 전망이다. 매력 DNA라는 명제 하에 히딩크나 인순이 같은 대중적인 스타들이 가진 매력의 요인을 포착해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무릎팍 도사'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보다는 예술가나 스포츠 스타를 게스트로 출연시킴으로써 더 큰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첼리스트 장한나가 출연해 특유의 호탕한 웃음과 유머감각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한 열정과 대중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낸 것은 토크쇼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해주었다. 이밖에도 이종격투기 선수 추성훈, 발레리나 강수진,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소설가 황석영, 이외수 등등 '무릎팍 도사'가 초빙한 명사들은, '무릎팍 도사'가 펼쳐놓은 한바탕 신명나는 토크의 굿판을 통해 우리와 똑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선보였다. 이것은 '1박2일'에서 박찬호와의 하룻밤을 통해 얻어냈던 공감과 궤를 같이하는 것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처럼 연예인이 아닌 명사를 섭외하기 시작한 이유는 연예인에 집중되는 프로그램 자체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흔히 '저들끼리 노는 걸 우리가 왜 봐야 하느냐'는 한탄조의 말들은, 프로그램이 대중들과 나누려고 하는 어떤 공감이 이제는 연예인들만의 이야기로는 한계에 부딪쳤다는 것을 말해주는 단적인 대목이다. 예능 프로그램이 공감을 가져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다양한 이야기를 해줄 때 가능한 일이 되었다. 게다가 이것은 탈신비주의화 되고 있는 연예인들과 마찬가지로, 명사들 역시 어떤 친근함을 통해 대중들과 더 소통하려 하는 욕구가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큐멘터리와 예능 프로그램이 모두 명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두 프로그램의 지향점은 약간 다르다. 다큐멘터리의 명사 출연이 그 엄격한 형식에서 좀 더 대중적인 것을 향해 있다면, 예능 프로그램의 명사 출연은 지나치게 낮아져 있는 형식에 어떤 격을 더하고 게스트의 외연을 넓히기 위함이다. 하나는 내리려 하고 다른 하나는 올리려 한다. 어찌 보면 이것은 현재의 프로그램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어떤 중간지점을 향해 균형을 맞추려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장르만을 들어서 어느 것이 격이 높고 어느 것이 낮다고 인식하는 그런 시대는 이미 지나버렸다. 따라서 그 자신의 위치에서 대중들과 눈높이를 맞추려는 노력은 의미가 있고 가치도 있는 일이다. 물론 본연의 형식이 갖는 본질적인 틀은 깨서는 곤란하겠지만, 대중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한 퓨전은 어쩌면 시대의 요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와 예능 속으로 들어오는 명사들은 그 변화의 징후를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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