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특히 <삼시세끼>가 주는 로망이란

 

하루쯤 아무 것도 안하고 저런 산골에 푹 파묻혀 삼시세끼나 챙겨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영석 PD는 과거 회의를 하다가 문득 떠오른 이런 생각에 <삼시세끼>를 만들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음은 아마도 지금 현재 직장인들에게도 하나의 로망처럼 다가오는 일일 것이다. 일주일 내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아빠들이나 워킹맘들은 그래서 <삼시세끼>를 본다. 거기에는 일조차 즐거움이 되는 시간이 있으니까.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나영석 PD는 이 <삼시세끼>에서 유일하게 업무지시를 내리는 상사다. 그런데 그 업무라는 게 고작 점심으로 다슬기 비빔국수를 해먹으라는 거다. 물론 이 정도의 업무에도 이서진은 툴툴거린다. 때론 쓸 데 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그러기도 하고 때론 자꾸 이상한 걸 시켜?”라고 상사(?)를 질책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서진은 앞장서서 다슬기를 잡으러 개울로 나서고, 의외로 열심히 그 일에 빠져든다. 그건 사실 일이 아니다. 김광규는 흐르는 개울물에 웃통을 벗고 뛰어들어 다슬기를 잡지만 그건 미역 감는 일이나 마찬가지. 시청자들조차 그 장면에서 시원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게 물 속에 몸을 담글 때마다 한 웅큼씩 다슬기가 올라온다. 물놀이가 진짜고 일은 덤이다.

 

직장에서의 일을 떠올려보자. 하기 싫은 일을 정해진 시간 안에 해야 한다. 못하면 퇴근 시간이고 뭐고 늦게까지 남아서라도 업무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일이라는 게 나와는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도통 모르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는 분명 이득이 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왜 이렇게 늦게까지 앉아 일을 하고 있지?

 

하지만 정선의 <삼시세끼> 집에서는 그 일을 서두르는 법이 없다. 오후 네 시가 다 되어 나영석 상사가 지시한 다슬기 비빔국수를 만들어 먹게 되도 그러려니 한다. 게다가 이 일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맛좋은 비빔국수를 허기를 반찬으로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회사의 업무를 떠올리는 직장인들이 <삼시세끼>라는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삼시세끼>라는 일터(?)의 인간관계라는 것은 괜히 택연이 좋은 지성이 그 같은 동생이 갖고 싶다고 말하고, 상사인 나영석 PD가 그럼 택연과 이서진을 1+1;으로 싸가라고 하는 관계다. 직장 내에서 이른바 정치라는 것을 느껴본 직장인들이라면 이들의 이 따뜻하고 즐겁기 이를 데 없는 관계를 보며 어떤 기분을 갖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들이 하는 삼시세끼 밥을 챙겨먹는 일은 그래서 건강하고 즐겁다. 굳이 양봉을 하기 위해 벌통을 갖다 놓으면 우리가 그냥 회사 일도 번 돈으로 꿀을 사먹는 것보다 더 건강하고 즐거운 꿀을 먹을 수 있다. 그 벌통의 꿀은 동네 곳곳에 피어난 꽃들이 제공한 것이니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겠는가.

 

그들이 하는 건 놀이고 우리들이 하는 건 일이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늘상 입에 달고 다니듯 하는 말처럼, 그들이 하는 일이나 우리가 하는 일이나 매한가지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다. 죽어라 일을 하는 우리라고 해서 하루 네 끼를 먹는 건 아니지 않은가. 이 아무 것도 아닌 단순한 진리. 이것은 어쩌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삼시세끼>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저 나영석 PD가 과중한 업무 속에서 떠올렸다가 후에 실제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가끔은 일을 훌훌 벗어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삼시세끼 챙겨먹는 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의외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주는 힘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이 단순한 삶에 이토록 열광한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삶에 어떤 갈증이 분명 있다는 얘기일 것이니.

 

나영석 PD가 밝힌 기획의 원칙, ‘뚝심

 

나영석 PD에게 물었다.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 그게 뭐냐고. 그랬더니 대뜸 돌아온 답변은 뚝심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니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었다.

 

'나영석 PD(사진출처:tvN)'

처음 기획을 할 때는 모든 게 각이 서 있기 마련이잖아요. 흔히 말하듯 엣지가 세워져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 얘기 듣고 또 저 사람 얘기 듣고 이건 된다 이건 안된다 하다보면 그 각이 닳아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나중에는 아주 둥글둥글해서 밋밋한 이야기가 되어버리죠. 그러니 조언을 듣더라도 본래 기획에서 갖고 있던 그 세워진 각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뚝심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러고 보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뚝심의 소산이 아닌가 싶었다. 스스로도 밝혔고, 이 프로그램의 주인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서진도 첫 회에 이 프로그램 망했어!”라고 얘기했으며, 게스트로 찾아온 윤여정씨도 망한 프로그램이라고 얘기했던 게 바로 <삼시세끼> 아닌가. 프로그램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필자에게도 나영석 PD<삼시세끼>를 처음 찍고 와서 이번은 잘 모르겠어요라고 반신반의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애초에 가졌던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하루 정도 도시를 떠나 어딘가 콕 박혀 아무 것도 안하고 밥이나 챙겨먹으며 유유자적하고 싶다, 그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욕망을 끝까지 밀어붙인 끝에 지금의 <삼시세끼>가 가능해졌다. 애초에 망할 거라던 프로그램은 대박을 쳤고, 의외의 그 유유자적하는 어른들의 소꿉놀이는 갈수록 흥미진진해졌다.

 

사실 <삼시세끼>는 기존의 예능에서 흔히 말하는 되는 조건들에서 한참 벗어난 프로그램이다. 적당히 출연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곤혹스런 게임을 하게 하며, 때로는 굶기기도 하고 때로는 굴욕을 감수하게도 하는 식의 이른바 예능의 법칙들은 예능 PD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것들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프로그램은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게 거의 없었다. 시커먼 남자 둘이 산골에 콕 박혀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뭔가를 안하는 걸 보여주는 예능이라니! 그러니 얼마나 뚝심을 건드리는 걱정어린 목소리들이 많았을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되는 조건들의 틀을 빠져나오자 <삼시세끼>는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게 됐다고 한다. 별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 않았지만, <삼시세끼>의 집과 그 주변에 자라는 작물들 또 동물들, 하다못해 갑자기 내리는 비나 불어 닥치는 바람까지도 하나하나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나영석 PD<삼시세끼>의 출연자는 이서진과 옥택연, 김광규와 게스트들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집과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출연자들이죠.”

 

실로 망할 권리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이다. 사실 누가 망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그저 모든 사람들이 이토록 성공만을 외치다보니 안전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최초에 그토록 창대했던 기획이 차츰 둥글둥글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망할 조짐이 아닐까. 나영석 PD의 뚝심이 만들어낸 <삼시세끼>라는 외계 예능의 성공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

 

<삼시세끼> 만재도에 차승원 정선의 박신혜

 

<삼시세끼> 어촌편에 차승원이 있었다면 정선편에는 박신혜가 있었다. 곱창집 딸답게 맛난 곱창, 대창 구이를 맛보게 해주더니, 들깨 미역국, 송사리 튀김, 파전에 이어 박신혜표 초간단 샤브샤브까지 선보였다. 이서진은 연실 넌 왜 못하는 게 없냐고 보조개를 만들었고, 김광규는 못 먹는다는 날계란에 샤브샤브를 맛나게도 먹었다. 옥택연은 시키지도 않은 소주로 만든 모이토를 선보였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게스트인지 호스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끝없이 일을 하는 박신혜는 주변 사람들도 일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선보였다. 다들 멍하게 앉아 있는 그들에게 한숨 한 번 쉬어주고 눈빛 한 번 날리기만 해도 남자들은 알아서 재게 몸을 놀렸다. 괜히 그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만들었던 것. 박신혜의 한 마디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세 남자들을 보며 나영석 PD그녀의 노예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 넓은 밭에 옥수수를 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박신혜의 에너지는 옥택연을 펄펄 날게 만들었다. 이서진의 말대로 박신혜는 옥택연이 지금껏 해온 노동량의 세 배 이상을 일하게 했다. 힘겨워 보이는 이서진과 김광규 팀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달달한 귀농 신혼부부 포스를 내는 그들은 그것이 일처럼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달달한 모습을 보며 이서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녁식사를 끝내고 나서도 집에서 깍두기를 담그는 박신혜와 옥택연의 모습은 훈훈한 정경을 만들었다. 그 달달함 때문에 괜스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김광규는 밖에서 설거지를 하며 이것이 가장 속편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박신혜가 특별했던 것은 손쉽게 맛난 음식들을 척척 만들어주면서도 주변 인물들이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남자 호스트들은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진심으로 무언가를 해주려는 마음이 가득했다. 밤새 따뜻하게 지낼 수 있게 하기 위해 15분 만에 꺼져가는 아궁이의 불을 지피는 세 남자의 모습이라니.

 

이서진이 바게트를 구워내는데 있어서도 그렇게 긴장한 데는 박신혜라는 게스트가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초조하게 마치 산모가 아기를 낳는 걸 기다리듯 화덕 앞에서 빵이 구워지길 기다리는 이서진의 모습은 지금껏 <삼시세끼> 이래 처음 보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생각 외로 잘 구워진 바게트를 더욱 맛나게 만든 장본인도 결국은 박신혜였다. 그녀는 없는 재료를 탈탈 털어 마늘을 다지고 올리브유와 설탕, 소금을 넣어 바게트 위에 얹을 토핑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토핑을 얹어 다시 구워진 마늘 바게트는 비주얼도 맛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요리가 되었다.

 

사실 요리도 요리지만 박신혜가 독보적인 역대급 게스트가 된 것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삼시세끼>의 완전히 다른 느낌들 때문이다. 힘겨운 노동 속에서도 달달한 웃음이 끊이지 않고, 없는 재료를 갖고도 충분히 넉넉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 이것은 어쩌면 <삼시세끼>라는 어른들의 소꿉장난이 도시인들의 로망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박신혜에게 너 고정해라는 이서진의 말이 그저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건 또한 시청자들의 마음일 테니까.

 

무엇이 <삼시세끼>의 박신혜를 특별하게 했을까

 

사람 한 명의 에너지가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나. tvN <삼시세끼>의 게스트 박신혜에게는 어떤 특별함이 있었던 걸까. 시커먼 남정네들만 있는 곳에 찾아온 예쁜 소녀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박신혜를 본 옥택연은 내내 싱글벙글이었고, 그녀 앞에서 멋진 농부의 모습을 보이려 허세를 부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칠렐레팔렐레 바보처럼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걸 본 이서진이 동네 미친 놈 같다고 할 정도로.

 

'삼시세끼(사진출처:tvN)'

그렇게 말하기는 해도 이서진 역시 만면 가득 미소를 지울 수가 없는 얼굴이었다. 그는 특유의 퉁퉁거리는 말투로 광규형 대신 니가 고정해라라고 에둘러 박신혜에 대한 반가운 마음을 전해주었다. 마치 여동생이라도 놀러온 것처럼 그녀가 잘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늦게까지 잘 수 있게 창문에 암막을 쳐주는 모습까지 보였다.

 

도착하자마자 설거지부터 시작하더니 화덕을 만드는 일에서 의외의 재능을 보인 그녀를 보며 이서진과 옥택연은 자기들이 박신혜 집에 일 도와주러 놀러온 사람 같다고 말했다. 그만큼 척척 일 잘 하는 박신혜가 대견스러웠던 것. 이렇게 됐던 것은 박신혜가 가진 특유의 친화력과 싹싹하고 배려심 많은 심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이 프로그램을 그만큼 친숙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박신혜는 <삼시세끼> 프로그램을 거의 꿰고 있었다. 솥에 물을 끓일 때 김이 솟아 나와 그 안의 내용물이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며 이게 이래서 이랬구나하고 얘기하자 나영석 PD도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물을 정도였다. “방송에서 봤다고 하자 옥택연은 방송을 우리보다 더 많이 챙겨보는 거 같아요라고 외치기도 했다.

 

게스트가 방송을 꿰고 있어 마치 자기 집에 있듯이 편안하게 요리도 하고 밭일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주인들인 이서진과 옥택연으로 하여금 그녀가 게스트가 아닌 호스트라는 느낌을 갖게 만든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이 박신혜의 입장과 그녀가 세끼집에서 보여준 모습은 시청자들이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느끼는 그 감정과 다르지 않다. 어느덧 이 프로그램을 계속 봐온 시청자들은 저들이 사는 공간이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그들의 즐거움이 마치 나의 즐거움처럼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삼시세끼>가 별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왜 그토록 시청자들을 열광케 하는가 하는 그 해답이 들어있다. 이 프로그램은 정선의 세끼 집이라는 공간을 저들만의 놀이터로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시청자들이 함께 들여다보고 함께 키워가는 공간으로 그려낸다. 프로그램이 그 세끼 집에서 자라는 풀들과 꽃 야채는 물론이고 아침 산책을 나서는 닭장을 빠져나온 마틸다, 염소 잭슨과 자식들 그리고 밍키를 먼저 챙겨보는 것에서 시작하는 건 그래서다.

 

그들이 어떻게 자라나고 있고, 그들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먼저 살피는 이 시선은 그래서 고스란히 이 집을 찾는 이서진과 옥택연의 시선이면서 시청자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그러니 온전히 시청자의 시선으로만 있던 박신혜가 그 낯선 곳에 처음 들어가서도 마치 호스트처럼 느낄 수 있게 된 것. 시청자를 호스트로 느끼게 해주는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의 특별함. 긍정 에너지를 한껏 가져온 박신혜라는 호스트 같은 게스트는 바로 이 프로그램의 힘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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