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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 대한 편견을 깨는 착한 드라마, '별을 따다줘'

“별을 따다준다”는 말은 언뜻 듣기엔 유치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이 말을 늘 상투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별을 따다줘’라는 드라마가 이 말을 다시 시청자들에게 건네는 방식은 자못 도전적이다. 우리가 상투로 생각하던 그 말에 대한 작가의 동심 같은 순수한 진정성이 절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별을 따다줘”라는 말을 유치하게 여기는 이제는 어른이 되어버린 시청자들에게, 그 말이 본래는 감동적인 것이라는 걸 알게 해주는 드라마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부모가 모두 하늘의 별이 되어버리고 갑자기 혹처럼 달리게 된 다섯 명의 동생들을 데리고 살아내야 하는 진빨강(최정원)은 절망적이다. 자기 하나도 건사하지 못할 정도로 철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가장의 책무가 내려진 것. 집도 절도 없는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길거리를 떠돌다, 원강하(김지훈)의 집의 가정부로 아이들을 숨긴 채 들어온다. 회사에서는 꼴찌 보험설계사, 가정부로서도 빵점인 그녀는 아이들과의 생존을 위해 할 짓 안할 짓 다하지만 나아지는 건 없어 보인다.

아직 아기인 막내를 짐처럼 등에 업고, 벤치에 앉아 절망에 빠져있는 그녀. 그 때 마치 하늘의 별이 된 부모가 건네는 말에 대한 대답처럼 막내의 옹알이가 들려온다. “별을 따다줘.” 그것은 어쩌면 그녀의 마음이 만들어낸 환청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그 옹알이를 듣는 순간, 진빨강은 절망을 뚫고 올라오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된다. 어찌 현실에서 별을 따다 줄 수 있겠냐마는 그 말은 진빨강의 마음 속에 있던 짐을 희망으로 바꿔버린다. 부양해야할 짐으로만 생각해왔던 아이들은 이제 그녀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래 저 별 다 따다 줄께!”하고 진빨강은 소리친다.

‘별을 따다줘’는 짐처럼 거치적거리게 생각되던 가족이라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힘의 원천임을 말해주는 드라마다. 남겨진 다섯 명의 아이들은 그렇게 먼저 진빨강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그녀를 바꾸어놓는다. 남자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친구의 등이나 쳐먹던(?) 그녀는 달라진다. 살아가야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타인(혹은 타인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을 생각하며 물기 없이 살아가던 그녀의 삶에는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이들이 바꿔놓는 존재가 진빨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이들은 그 스스로 주변에 벽을 치고 살아가는 원강하의 영역으로 자꾸만 침범해 들어온다. 원강하의 집은 피도 눈물도 없는 그의 마음을 똑같이 그려낸다. 그는 가정부로 들어온 진빨강에게 늘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야 하고, 음식도 입맛에 정확히 맞춰야 하며, 자신이 있는 이층방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심지어 “투명인간처럼 일하라”고 말한다. 그러니 그 집의 말끔함은 원강하의 무미건조한 삶을 그대로 담아 보여준다.

그의 집으로 숨어들어온 아이들은 그러니까 그의 마음 속으로 숨어들어온 존재들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어느 날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몽유병 증세가 있는 아이 진파랑(천보근)이 자신의 침대에 들어와 자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 속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그러면서 그 마음은 조금씩 열린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 속으로 불쑥 들어온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주는 원강하는 그 침범이 싫지만은 않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된다.

이 드라마는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들을 보면 누구나 갖게 마련인 ‘측은지심’을 말한다. 소파에서 떨어지려 하는 아이를 보며 어떻게 지나칠 수 있으랴. 쓰러지려는 막내를 껴안아 올리고 우는 아이를 본능적으로 달래기 시작하는 원강하처럼, 드라마는 이 힘겨운 삶에 처한 진빨강을 향해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같은 집에 살아가는 원강하의 동생 원준하(신동욱)와 조카 우태규(이켠)는 그녀와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형을 설득하려 한다. 회사의 팀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에게 기회를 주려한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그녀가 짐이라 생각했던 아이들이 거꾸로 그녀에게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아이들을 위해 “별을 따다주겠다”는 그 마음이 그녀를 변화시킨 것. 이것은 사회가 흔히 보여주는 약자에 대한 편견을 뒤집는다. 약자라 하면 늘 돌봐 주어야 할 존재로서만 여기지만, 사실 그들이 있어 우리가 살아간다는 생각을 우리는 하지 않는다. ‘별을 따다줘’는 이 이야기를 웃음의 코드로 유쾌하게 우리에게 전하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과 ‘가문의 영광’을 쓴 정지우 작가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한다. 정지우 작가의 작품들은 주로 유쾌한 멜로를 다루지만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정, 어쩌면 인간애에 더 가깝게 그려진다. 그 안에는 부족한 듯 보이는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작가는 그들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 변화 가능성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정지우 작가의 작품을 훈훈하게 만드는 이유다. ‘별을 따다줘’는 그 훈훈함이 무미건조해져버린 우리네 마음까지 녹여주는 착한 드라마다.

Posted by 더키앙

당신이 만난 건 완벽한 이웃? 완벽한 사랑?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이다. 거기에는 백수찬(김승우), 정윤희(배두나), 유준석(박시후), 고혜미(민지혜)가 엮어 가는 전형적인 사각 멜로 라인이 주축을 이룬다. 유준석이란 재벌2세와 정윤희란 별 볼 일 없는 비서의 러브라인이 그렇고 욕망과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들의 사랑을 훼방하는 고혜미란 캐릭터가 그렇다. 드라마 속에는 심지어 멜로에서 익숙한 불륜 코드와 출생의 비밀도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이 전형적인 틀을 갖고 있는 멜로 드라마가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같은 재료를 갖고서도 버무리기에 따라서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음식처럼, 정지우 작가의 손맛이 색다른 멜로의 맛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소재로만 보이는 겉과 달리 이 멜로 드라마는 그저 멜로에 그치지 않고 좀더 휴먼드라마에 가깝게 확장되어 나간다.

멜로드라마를 통해 그 한계 넘어서기
사각 멜로 라인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 매몰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백수찬이란 캐릭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전형적인 멜로 라인 속에서 백수찬은 우정이라는 색다른 이름의 멜로를 구축해낸다. 그가 사랑을 쿨하게 우정으로 덮어두자 멜로 라인의 경쟁구도는 사라진다. 백수찬이 진정으로 정윤희를 친구로서 아끼는 모습은 유준석마저 감동시킨다. 유준석은 “나 형이라고 부를 뻔했어요. 그런 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말한다.

재벌2세인 유준석과 비서인 정윤희의 사랑이 전형적인 구석을 갖고 있지만 이 또한 드라마는 ‘세컨드 제안’이라는 파격적인 선택으로 벗어난다. 이 제안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돌발적인 것이 아니다. 살해당한 연수연(장혜숙)이 유회장의 세컨드였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세컨드 제안’은 세컨드에 의해 밀려날 뻔했던 본처의 아들, 유준석이 또다시 세컨드를 제안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 구성 초기부터 이미 설정되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불륜 코드는 전면에 자극적으로 드러나기 보다 단지 이런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다. 따라서 여타의 멜로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인 전개양상에서 벗어난다. 고니(신동우)가 사실은 유회장과 세컨드였던 연수연의 아들이었다는 출생의 비밀 역시 여타의 드라마와는 다른 전개이다. 출생의 비밀을 통해 고니가 무언가를 얻게되는(하다 못해 부나 지위라도) 상황은 고사하고 고니 당사자는 그 비밀조차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멜로에 미스테리가 필요했던 이유
이렇게 멜로 드라마의 익숙한 소재들을 활용하면서도 이 드라마가 그 식상함의 늪에 빠지지 않은 것은 같은 소재라도 사용의 목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소재들을 통해 모래알 같은 인간관계를 되묻는다. 드라마가 다채로운 이웃들의 사이드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동시에 미스테리라는 새로운 요소를 집어넣은 건 그 때문이다.

드라마는 인간관계의 끝장으로 살인이라는 극단적 상황을 드러내놓고, 그 사건을 조사하는 형사들을 통해 관계들의 이면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즉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비밀들을 끄집어내면서 ‘당신은 진정으로 그 사람들을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니 미스테리를 집어넣을 때부터 이 멜로 드라마로 포장된 드라마는 긴장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당신이 알고 있던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거나 다른 반응을 보일 때,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은 그 배반에 놀라면서 드라마가 얘기하려는 관조적 시각을 얻게 된다. 문제는 멜로라인이 너무 공고하게 됐을 때이다. 유준석이 눈물을 쏟으면서 정윤희에게 세컨드 제안을 할 때 시청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멜로와 현실 사이에서 시청자들이 멜로에 더 강하게 끌렸기 때문이다.

당신은 완벽한 이웃을 만났나
유준석과 정윤희의 멜로라인이 좋았다면 그것으로 만족할만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부분만을 본다면 이 드라마는 반쪽밖에 보지 못한다. 작가가 종방연에서 밝혔듯이 가장 중요한 캐릭터인 백수찬이 바로 ‘완벽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유준석과 정윤희의 멜로라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백수찬이란 인물이 보여주는 ‘사람냄새’이다. 초반부에는 제비로 시작했지만 제비가 가진 장점(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만 취한 백수찬은 후반부로 오면서 이웃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이해하는 완벽한 이웃으로 돌변한다. 이웃들의 숨겨진 진면목까지 끌어안는 그는 겉모습만 보고 속을 이해 못하는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비교된다.

그것은 정윤희라는 여자를 만나면서 얻게된 결과이다. 백수찬은 한 여자를 얻느냐 마느냐의 사랑을 쿨하게 포기하면서 좀더 인간적인 선택을 한다. 여자에게는 친구가 되고 옆집 사람들에게는 이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백수찬 같은 선택은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그걸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하는 순간, 이 드라마는 멜로를 넘어서게 된다. 마지막회에서 각 캐릭터들이 보여준 소유가 아닌 존재로서의 사랑(백수찬은 물론이고 유준석까지)은 그 공감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할 것이다.

당신은 이 드라마를 통해 완벽한 이웃을 만났는가. 이 드라마는‘완벽한 남자 혹은 여자를 만나는 법’이 아니라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다. 사랑이 아닌 이웃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남녀 간의 사랑을 넘어 좀더 넓은 인간의 사랑을 담는다. 즉 멜로와 현실을 동시에 잡아냈다는 뜻이다. 이 멜로드라마가 사회극의 냄새를 풍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멜로의 실험이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성패를 떠나 그 시도 자체가 의미 있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Posted by 더키앙

장르, 사회극, 사극 속에서 계속되는 멜로의 실험들

미드(미국드라마), 일드(일본드라마)로 대변되는 외국드라마 전성시대에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드라마의 문법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엄청난 물량이 투입된 제작비에 완벽한 사전제작으로 꽉 짜여진 완성도 높은 외국드라마들을 보다가 무언가 어수룩한 우리 드라마를 보면 단박에 그 열등감에 휩싸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지금까지 우리 드라마들이 쌓아온 공력은 적지 않다. 그것을 모두 무시한 채 그저 미드, 일드는 정답이고 우리 드라마는 오답이라는 편견은 어딘지 부적절해 보인다.

모든 멜로가 죄인은 아니다
특히 멜로에 강점을 가진 우리 드라마들이 어느 순간부터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게 된’ 것은 미드, 일드가 준 영향임에 틀림없다. 한 마디로 쿨해 보이는 그네들의 드라마를 보면서 왜 우리는 매번 똑같은 삼각 사각 구도에 신데렐라 이야기, 그리고 눈물이나 짜는 그런 드라마밖에 없는가 하는 비판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우리의 멜로드라마를 다 싸잡아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다. ‘멜로드라마 = 식상한 것’이라는 등식으로 괜찮은 멜로드라마들 역시 시청률의 무덤에 던져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90일 사랑할 시간’같은 실험적인 멜로드라마의 시청률 실패이다. 소재만으로 보면 불륜에 불치 코드가 뒤섞여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이 두 가지를 엮어서 전혀 다른 형태의 멜로드라마를 직조해냈다. 하지만 당시 멜로드라마라고 표방하기만 하면 하나같이 철퇴를 맞는 분위기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역시나 참담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멜로라는 말은 쑥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위에서 표현한대로 드라마들은 멜로드라마를 표방하지 않았을 뿐, 멜로를 완전 버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판으로 식상한 틀을 벗어버린 멜로는 다양한 외투를 입고 새로운 진화의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장르 속으로 들어온 멜로
미드, 일드의 영향으로 등장한 우리네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장르를 구사하면서도 여전히 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본격 수사물을 표방했던 ‘히트’는 범인을 좇는 이야기만큼 시청자들을 설레게 한 것이 차수경(고현정)과 김재윤(하정우)의 닭살 멜로였다. 차수경에게 ‘바보팅이’라고 말하는 김재윤의 모습에서 저 미드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캐릭터나, 일드의 쿨한 캐릭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 식 로맨틱 코미디류의 멜로드라마에서 익숙한 귀여운 남자가 있었을 뿐이다.

‘외과의사 봉달희’는 의사라는 전문직의 장르 드라마를 구사하면서 그 중심에 봉달희(이요원)와 버럭범수 안중근(이범수)의 멜로드라마를 접목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네들의 톡톡 튀는 사랑법이 병원이란 공간에서 인간으로서의 의사들 이야기와 맞물리면서 독특한 아우라를 형성했다. 한편 ‘에어시티’의 실패는 공항이라는 공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장르의 실패로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멜로드라마를 적극 활용하지 못한 데서도 패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장르드라마라는 무게에 짓눌려 어정쩡하게 구사한 한도경(최지우)과 김지성(이정재)의 멜로라인은 드라마를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최근 종영한 본격 느와르 ‘개와 늑대의 시간’ 역시 멜로를 상당부분 뺐다고 해도 여전히 그 중심에 멜로드라마가 섞여 있다. 이 느와르만의 특징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인간관계들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다룬다는데 있다. 따라서 이수현(이준기)과 강민기(정경호) 그리고 서지우(남상미)의 삼각구도는 심리적으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다. 다만 그 양상이 사랑타령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총을 든 느와르의 양태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사회극을 표방한 멜로
한편 SBS가 계속해서 사회극을 표방한 드라마를 내놓는데는 역시 이 멜로에 대한 대중들의 무조건적인 혐오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그 사회극 속에는 여전히 멜로드라마가 존재한다. ‘쩐의 전쟁’은 사채업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안에 기본적으로 금나라(박신양) - 서주희(박진희)의 멜로드라마를 엮었고, 여기에 공식적으로 이차연(김정화)이란 인물을 끼워 넣어 삼각라인을 만들었다. 드라마는 한창 사회적인 이슈들을 잡아나가다가 마지막회에 이르러 주인공들의 결혼식으로 흘러가는 멜로드라마의 양상을 보였다.

‘내 남자의 여자’는 과거 전형적인 틀을 가진 식상한 멜로드라마를 철저히 부수는 멜로드라마이다. 이 드라마는 멜로드라마들이 가진 전형성을 마치 탐구라도 하듯이 현미경을 들고 조명해나간다. 식상한 멜로드라마들이 어찌어찌 우여곡절을 겪다가 결혼에 골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면, 이 드라마는 결혼에서 시작해서 결국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그 중심에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사랑과 질투, 분노, 기쁨 같은 것들이 환타지가 아닌 현실적인 결론으로 끌고 가기에 ‘내 남자의 여자’는 사회극과 멜로드라마가 그 정점에서 만난 드라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방영되고 있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멜로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사회를 들여다보는 실험적인 작품이다.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 멜로드라마가 가질 수 있는 인물들을 배치해놓은 다음, 그 화학반응을 통해 인간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식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이웃이라고 하는 사람은 사실 당신이 아는 그 한도 내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드라마는 말한다. 그 기본 틀은 정윤희(배두나)를 사이에 둔 백수찬(김승우)과 유준석(박시후), 그리고 유준석을 따라다니는 고혜미(민지혜)가 이루는 사각관계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이들 사각관계 내부에서 벌어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닌, 그 틀 바깥에 존재하는 많은 이웃들(조연들)의 화학관계를 통해 그 멜로를 이어가는 차이를 보인다. 즉 멜로는 나타난 현상이지 목적은 인간관계 자체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우리 식의 멜로드라마, 외면 말아야
이러한 멜로드라마의 실험과 진화는 최근 불고 있는 사극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극의 메인 테마가 되고 있는 것이다. ‘왕과 나’는 내시인 나, 김처선(오만석)이 왕(고주원)이 사모해온 여인 윤소화(구혜선)를 운명적으로 사랑하는 이야기다. 새롭게 시작한 ‘이산’에서도 정조 이산(이서진)과 성송연(한지민)의 애틋한 멜로드라마가 그려진다. 현대물에서는 외면한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를 사극이라는 형식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늘 식상하다는 편견 속에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멜로드라마는 늘 우리가 보는 드라마 속에 존재해왔다. 다만 새로운 외투를 입고 나타났을 뿐이다. 멜로드라마는 그렇게 비하되거나 구닥다리로 손가락질 받을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네 드라마들의 성패를 가름하는 진짜 숨은 주역인지도 모른다. 상대적으로 타 분야보다 더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는 멜로드라마를 외국 드라마와 단순히 비교하면서 그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일이다. 멜로는 죽지 않았다. 다만 끊임없이 다양한 틀 속에서 실험을 해왔을 뿐이다.

Posted by 더키앙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

금요일 저녁, 도무지 금요드라마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드라마가 있었다. 정지우 작가를 주목하게 된 작품, ‘내 사랑 못난이’다. 이 드라마는 성인극과 가족극을 오가던 금요드라마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로 승부해 놀랄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런 그녀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이후 완벽한 이웃)’을 들고 우리 옆을 찾아왔다.

‘완벽한 이웃’은 여러모로 ‘내 사랑 못난이’의 연장선상에서 읽혀진다. 멜로 라인이 강하게 어필하면서도 그 속에 점점이 박혀있는 보석 같은 우정이나 정 같은 사람관계들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 사랑 못난이’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번 작품을 통해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늘 따뜻한 느낌을 주는 이웃 같은 드라마를 선보이고 있는 완벽한 이웃 같은 작가, 정지우씨를 만났다.

‘완벽한 이웃’은 멜로로 시작하지 않았다
- 지난 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부분이 의외였다는 반응에 상당히 신경을 쓰시는 것 같다. 드라마는 때론 의외의 방향으로 변수가 생길 수 있는 것인데.
▲ 본래 동주(박상민)와 차연(김지영)의 멜로 라인은 의도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호태(김유석)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시청자 분들이 호감을 갖고 봐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동주와 차연 쪽에 더 무게중심이 가게 됐다. 그래서 결말부분에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갖게 된 거 같다.

- 호태란 캐릭터는 어쩌면 정지우 작가가 갖는 독특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보통 멜로 드라마를 보면 남녀의 연애관계로 많이 흐르는데 호태라는 인물은 의리나 우정 측면이 강한 캐릭터로 차연과 관계를 갖는다. 이 부분이 시청자분들에게는 좀 낯설게 다가가지 않았나 생각한다. 이것과 연관지어 ‘완벽한 이웃’에서는 이웃을 들고 온 것이 특이하다. 멜로 드라마라면 역시 낯선 소재인데.
▲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멜로 드라마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지금 사람들은 혈육이 아니면 이웃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지금 앞에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캐보자 하는 마음에서 이 드라마를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부분에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지는 않은 것 같다.

- 아니 사실 초반부에 거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 이유는 ‘내 사랑 못난이’에서 못한 이야기를 이어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초반부에 휴먼드라마로 시작했지만 차츰 멜로 라인이 생기면서 유준석(박시후)과 정윤희(배두나)가 엮어 가는 멜로드라마로 가고 있다. 초기 하고싶은 얘기가 이웃에 관한 것이었다면 사실 멜로 라인은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않았나.
▲ 유준석과 백수찬(김승우)이란 캐릭터를 부딪치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유준석을 통해서는 지금까지 여타의 드라마에서 있었던 돈 있는 남자의 이미지를 깨보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모든 멜로는 로망이고 동화다. 이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는 현실을 가미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했던 것이 ‘세컨드 제안’이었다. 돈 있는 남자들이 너무나 쉽게 아무 것도 아닌 캐릭터를 선택하는 것은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세컨드 제안을 하는 재벌2세의 모습은 어떨까로 인물을 처음부터 잡았다. 그것이 욕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 캐릭터들에게도 분명히 어떤 변명거리는 있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았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분이나 빈부가 맞닿는 멜로 관계에 더 열광하는 것 같다.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신동주와 진차연, ‘완벽한 이웃’의 유준석과 정윤희 같은 관계가 더 각광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멜로 라인보다는 인간적인 정을 느끼게 하는 백수찬은 괜찮은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호태 비슷한 느낌으로 빠지고 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가 달라지면서 너무 멜로, 연애가 강조되면 트렌디 드라마다 하면서 욕을 먹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다른 성격의 캐릭터들은 어떤 균형감각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 그런 점도 있다. 백수찬과 호태란 인물은 앞으로 쓸 다른 드라마에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우정이라는 이름이지만 그것이 사랑 관계에서는 더 소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어느 땐가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줄지 모른다는 짝사랑으로 늘 제시할 것이고, 또 유준석이나 신동주 같은 상처받은 있는 자들의 이야기도 늘 가져가게 될 것이다.

멜로에는 비관적, 우정에는 낙관적?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를 보면 멜로에 있어서는 비관적인 시선, 우정에 있어서는 낙관적인 시선이 읽혀진다. 정윤희와 백수찬의 우정이 밝은 반면, 정윤희와 유준석의 애정은 어둡다. 이것은 ‘내 사랑 못난이’에서의 진차연과 호태, 신동주의 관계와도 유사한데 이런 시선은 작가가 갖고 있는 세계관이 반영된 것인가.
▲ 그렇다. 호태라는 인물은 모자라지만 타인을 위해서는 다 던진다. 백수찬이란 인물은 조금 틀리다. 제비로 살다가 어느 순간 변해 가는 데 그것이 여자 캐릭터에 의해서다. 호태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늘 따뜻함을 주는 캐릭터로 별거 아니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늘 기억에 남는 인물이다. 그래서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를 버리지 못한 것이다. 어차피 다른 누구와 결혼해도 평생 가슴에 기억을 묻고 다녀야 하는 인물이다. 그러니 함께 가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에서는 못난 이와 잘난 이의 대결구도가 많이 보이는데 애착을 양쪽에 모두 두고 있어서 그런지 그 화학반응이 따뜻하다. 많은 걸 갖고 있지만 또한 부족한 면을 가진 인간이란 측면을 건드리기 때문인 것 같다. 또한 준석 아버지나 ‘내 사랑 못난이’의 조옥자 여사가 가진 캐릭터, 그리고 꼭 등장하는 부성애 혹은 모성애. 이런 걸 보면 이건 멜로 드라마의 구조로 보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멜로에 대한 요구가 큰 이유는 무얼까.
▲ 아무래도 갖고 싶고, 성공하고 싶고, 출세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무시할 수는 없는 거 같다. 이번에도 유준석 캐릭터를 제시하면서 물론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 이야기를 하려 의도했지만, 시청자분들이 그 멜로 부분에 많이 쏠린다는 건, 자신들이 가진 욕망을 대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저런 부분은 백수찬보다는 훨씬 낫잖아, 그리고 현실적으로 더 좋은 길인데 뭐 어때’하는 욕망. 그 부분이 크게 작용을 하는 것 같다.

- 만약에 멜로가 아닌 사람다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아예 애초부터 멜로 라인을 빼고 가는 건 어땠을 것 같나.
▲ 기본적으로 멜로가 좋다. 본질적으로는 멜로가 하고 싶은데 거기에 인간적인 냄새가 들어있는 멜로를 하고 싶다.

- 이 드라마에는 멜로와 함께 미스테리도 섞여 있는데 거기서 얻어지는 드라마의 이득이 있나.
▲ 별로 없다. 다만 관계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그랬다. 연수연이란 캐릭터가 살인사건과 연관지어 등장하는데, 이것은 부부 관계에서 삐걱거렸을 때 존중하지 않는 관계가 얼마나 큰 불행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이야기를 가져가기 위한 설정이었다. 엉성한 미스테리지만 포기가 안되더라.

- 엉성하다 하지만 드라마 상에서는 이게 기능을 했다. 초반부에 흩어지는 캐릭터를 모아주는 역할도 하고 긴장도가 떨어지는 소소한 얘기에서 극을 긴장하게 해주는 맛도 있었다.
▲ 그건 의도했지만 사실 의도대로 잘 먹히지는 않는 것 같다.(웃음)

사람냄새 나는 드라마, 그 이유
- 완벽한 이웃이라고 제목을 붙였는데 본인은 완벽한 이웃이 뭐라 생각하나
▲ 제비의 전적을 갖고 있는 백수찬이 이런 얘길 한다. “전에 만난 여자는 지금 현재 여자 앞에서는 동네 수퍼 아줌마보다도 못한 존재다.” 이것이 완벽한 이웃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네 앞에 지금 앉아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지금 백수찬을 비롯해 다른 가정들의 인물들도 다 그런 측면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 그들을 보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돌아보지 않는다. 즉 현재 맞대고 있는 주변사람들에게 충실한 사람을 완벽한 이웃이라 생각한다.

- 정지우 작가의 드라마는 사람냄새 난다는 얘기가 있다. 어떤 느낌이 그런 이야기를 나오게 하는 걸까.
▲ 모든 작가들의 작품은 사람냄새가 있다.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열정이 있기 때문에 작업에 뛰어든다. 나보다 앞서 많은 작가 분들이 그런 얘길 해왔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 같은 분들을 존경한다. 그런 얘기가 공감이 되고 용기가 있다 생각한다. 제 입장은 그런 연장선에 있지만 어떤 면을 확 부각시키는데 있어 능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차라리 용기가 더 있다면 백수찬이란 인물을 갖고 더 드라마를 끌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소녀취향이다 보니까 유준석 캐릭터에 나도 매력을 더 느끼고, 멜로 대사에 있어 감성적인 부분들을 많이 만들게 된다. 이런 복합적인 부분들이 얽혀서 사람냄새 난다는 얘길 하는 것이지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본다.

- 영화로 치면 ‘스모크’ 같은 느낌을 가도 괜찮을 거 같다 생각한다. 멜로가 아니어도 정감을 주는 여러 관계들, 예를 들면 남자와 남자 간의 의리나, 부모 자식 같은 관계, 아니면 지나가는 어떤 인물에 대한 정 같은 걸 보여줘도 좋지 않을까. 그런 작품은 혹시 생각하고 있는 건 없는지.
▲ 그런 작품은 늘 생각한다. 다음 작품에는 백수찬이나 호태 같은 캐릭터가 다른 모습으로 어떻게 더 사람들에게 정을 느끼게 해줄까 늘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남의 돈 갖고 예술하고 싶지는 않다. 소설을 써봤고 데뷔도 해봤는데, 소설은 써서 출판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때는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를 쓰면서는 이건 남의 돈이고 자본이 돌아가는 시장이기 때문에 내 얘기만 지루하게 늘어놓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이 늘 강하다.

- 소설과 드라마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소설은 전적으로 작가의 작품으로 자기의 세계관을 다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부분에서는 주책스러울 정도로 수다를 떨 수 있는 분야인 것 같은데, 드라마는 공동작업이라는 걸 많이 느낀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반향을 일으키는 게 있고, 내가 쓴 느낌과 다르게 연기자가 해석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낀다.

백수찬의 이야기를 좀더 들려주고 싶다
- 게시판에 본인도 결말이 궁금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지난번 ‘내 사랑 못난이’의 결말 때문에 그걸 염두에 둔 것 같은데, 사실 드라마는 어디로 튈지 모를 공처럼 갈 순 없는 게 아닐까. 요즘 사전 제작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최소한 사전 대본이라도.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장단점이 둘 다 있다. 사전 제작 좋다. 하지만 작가 역시도 그게 공동작업이다 보니 내 대본이 감독이나 연기자에게 어떻게 소화될지 모른다. 다 써놓고 한다는 것은 완성도라는 측면에서 역시 장점도 있지만 그런 단점도 있는 거 같다. 어떤 면에서 사전 제작은 스스로 미리 만들어놓은 대본의 족쇄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때론 본 방송을 보면서 그런 감을 잡을 때가 많다. 이번 경우에는 한 3, 4회를 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을 정했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인물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백수찬이란 인물이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그를 보호할까, 또 백수찬이 하는 이야기를 흘려 듣게 하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백수찬이 시선을 받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같은 것이다. 이런 걸 고민하다 어느 정도는 방향성을 정하게 됐다.

- 백수찬을 주목시키려면 강한 유준석 캐릭터를 좀 약화시킬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 나도 여자다 보니까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면서 쓰게 된다. 따라서 유준석이란 캐릭터는 백수찬과 비교해서 보다 남성적이고 매력 있다는 걸 인정한다. 굳이 유준석의 캐릭터를 약하게 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한다. 유준석은 겉으로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부족한 캐릭터다. 그래서 약간의 성장 드라마의 요소를 가져가자 생각했다. 즉 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가는가 하는 걸 가족 속에서 찾아보려고 했다. 윤희라는 가족 속에 들어왔을 때 갖는 어떤 편안함 같은 것을 통해서 유준석은 변화해나갈 것이다.

- 정미희와 양덕길의 관계가 궁금하다. 이런 일반적이지 않은 관계가 이 드라마의 장점이다. 환타지의 요소가 있는데 캐릭터를 봤을 때도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존재했으면 싶은 그런 사람들인 거 같다.
▲ 이 드라마에는 현실적인 인물이 거의 없다. 다 극대화되어 있고 어떤 부분들만 포장이 되어 있는 캐릭터들이다. 양덕길은 현실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캐릭터다. 아무리 농촌총각이라 해도 그토록 순박하고 헌신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미희도 마찬가지다. 세 번 이혼하고도 제비한테 목매는 이상한 캐릭터다. 그게 강점이 될 수도 있는 거 같다.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
- 앞으로 쓰고 싶은 드라마는?
▲ 나는 여러 장르, 사극 같은 것도 하고 싶고 진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나이 들어서는 특집극만을 전문으로 쓰는 그런 작가로 남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너무 많이 써봤다. 아직은 나이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조금 더 실험적인 걸 하고 싶다. 일일 드라마는 아마도 제일 잘 만든 장르일 것이다. 특히 저녁시간대에 가족드라마 성격을 가진 일일드라마는 평범한 사람들 보통사람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부분이 내 성격적으로 맞을 수는 있지만 빨리 눌러 앉고 싶진 않다.

- 작가로서 제일 어려운 점은.
▲ 조율이다. 특히 이번 드라마를 쓰면서 능력의 한계에 자괴감을 많이 느꼈다.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그게 전부 드러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드라마에는 의처증, 애처가, 아내에 관심 없는 남자 같이 많은 남자들이 나오는데 한 신이라도 나올 때 그걸 다 얘기해야 한다. 멜로를 그리면서도 이들을 같이 가져가는 것에 항상 힘들고 한계를 느낀다.

- 시청자와의 조율은 어떤가.
▲ 시청자는 제일 무섭다. 조금 얘기했음에도 크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내가 드라마를 통해 이렇게 얘기했지만 너무 여기만 보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계속 가져갈 건지.
▲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소아마비를 가진 약자이기에 그렇다. 사범대를 나왔지만 교육공무원이 될 수 없다라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이건 참 불합리하다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는 그래도 교육의 기회를 많이 받았고 사회에 진입할 수 있는 여러 통로를 가질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것들이 차단되어있는 분들이 많다.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약자라는 삶을 살아오다 보니까 그런 쪽으로 당연히 시각이 가게 된다.

- 그런 부분이 분노보다는 사랑으로 많이 승화되어 나오는 거 같다.
▲ 분노한 시기도 있다. 어렸을 때는 좌절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복이 많았던 것 같다. 그 사람들과 만나면서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날 공정하게 대우해주고 인정해주는 것들이 받아들여질 때 고맙고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너무나 감사한 것이 사회적인 약자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황금시간대에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분노로 터뜨리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가.

인터뷰를 통해 느낀 정지우 작가는 본인이 써온 드라마들, 즉 ‘내 사랑 못난이’, ‘완벽한 이웃’을 고스란히 닮은 작가였다. 그렇게 세련된 느낌은 들지 않지만 그 질박함이 보면 볼수록 자꾸만 보고싶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처럼, 작가 역시 굳이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짙은 삶의 냄새가 묻어나는 그런 인물이었다. 아직 ‘완벽한 이웃’의 결말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적어도 우리는 그 끝에서 완벽한 이웃 같은 따뜻한 드라마 한 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늘. 따뜻한 시선을 가진 작가가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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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에 끌리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한 때 SBS 금요드라마를 보면서 ‘어 이거 금요일 맞아?’하고 의아함을 느끼게 만든 드라마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정지우 작가의 ‘내 사랑 못난이’다. 이 시간대의 드라마들은 대부분 성인극을 들고 나와 보기에 민망한 불륜과 치정을 드러냈던 반면, 이 드라마는 보는 이의 측은지심을 자극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서 ‘내 사랑 못난이’의 진차연(김지영)이나 호태(김유석), 신동주(박상민), 정승혜(왕빛나)의 면면이 떠오르는 건, 정지우 작가가 일관적으로 갖고 있는 인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같기 때문일 것이다.

백수찬(김승우)의 부성애는 진차연의 모성애를 떠올리게 하고, 백수찬과 친구 먹은 정윤희(배두나)는 측은지심 가득한 호태를 닮았다. 겉으로는 얼음이지만 착하고 따뜻한 내면을 가진 유준석(박시후)은 저 신동주를 떠올리게 하고, 묘한 삼각관계 속에서 때론 냉정하지만 결국은 착한 내면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되는 고혜미(민지혜)는 정승혜란 캐릭터의 연장선으로 보여진다. 또한 ‘내 사랑 못난이’가 금요드라마의 틀을 벗어날 수 있었던 주인공 주변인물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고스란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의 도처에서 반짝거리는 이웃들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내 사랑 못난이’와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랑 못난이’가 아무래도 금요드라마라는 틀 안에서 세련됨보다는 직접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설정들이 많았던데 비해,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물기와 기름기를 쪽 뺀 듯한 느낌이다. 사랑과 배신 같은 ‘내 사랑 못난이’의 기본 설정 구도가 가진 질척거림은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에 와서는 이웃 간의 사랑과 의리 우정 같은 코드로 엮이면서 발랄해진다.

“진가년 그년에게서는 사람냄새가 나”라는 조옥자(여운계) 여사의 말을 통해서 이 세상 못난이들의 잘난 이들과의 한판 승부가 바로 그 사람냄새에서 결판날 것을 암시한 정지우 작가는, 이야기를 이웃으로 가져와 진짜 ‘사람냄새 나는 이야기’를 하려 작정한 듯 하다. 제비라는 것이 들통났어도, 또 허울좋은 개살구로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어도 행복마을 사람들은 백수찬과 그 집에 더부살이하는 양덕길 부자를 걱정한다. 특히 도저히 농촌총각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정미희(김성령)는 바로 그 측은지심으로 인해 점점 양덕길에게 끌리는 중이다. 그것은 역시 언발란스 하기만 한 정윤희가 얼음처럼 차갑기만 한 유준석 실장을 특유의 독특함(?)으로 녹이는 것과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저 ‘내 사랑 못난이’에서 호태가 그저 주변 인물이 아니었듯이, 이들 중심인물 주변에 포진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이다. 아끼라는 말이나 할 줄 알았지 따뜻한 말 한 마디 못해줬던 아내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자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김대식(김동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아내를 구속하는 위대한(박광수), 집에서는 잘난 마누라와 자식 땜에 회사에서는 직장 상사들에게 굽신거리느라 기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변희섭(이원재)이란 캐릭터들이 그들이다. 특히 “나는 남자들의 삶이란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 자식에게 제 살점 하나씩 떼 주면서 그렇게 사는 거지.”라 말하는 변희섭이란 캐릭터는 물이 오른 듯한 이원재의 어눌한 연기에 덧붙여져 보는 이들을 짠하게 만든다.

이 드라마의 미덕은 이처럼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드는 반짝반짝 빛나는 못난이 캐릭터들에 있다. 이 캐릭터들을 갖고 드라마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이 ‘인간다움’에 서로 끌리는 이야기를 엮어간다. 그것은 백수찬이란 전직 제비와 정윤희의 우정관계, 정윤희라는 개념상실 비서와 얼음장같은 유준석 실장의 사랑관계, 농촌 총각으로 결혼 한 번 해보지 못한 양덕길과 무려 세 번의 이혼을 한 정미희의 애정관계에서만 멈추지 않는다. 좀더 시각을 넓게 해서 보면 좀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행복마을 사람들의 이웃으로 엮인 공존 자체가 어떤 희망 같은 것을 기대하게 만든다. 정지우 작가가 말하려는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그러니까 빈부나, 출신, 계층, 지역, 남녀 같은 것을 넘어서는, 인간이라면 갖게 되는 가장 기본적인 것, 바로 ‘사람을 사람냄새 나게 만드는 그 무엇’에 있는 게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가정법의 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이웃사촌’이란 말이 남의 나라 얘기처럼 들리게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완벽한 이웃을 꿈꾸는 것은 어쩌면 퍽이나 쓸쓸한 일이 될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섬에서 외롭게 고립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그런 면에서 SBS 수목드라마 ‘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은 도시 생활에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환타지다.

유사부부, 유사연인, 유사이웃
그들이 이웃사촌으로 지내고 있는 곳에는 교수지만 본색은 제비인 백수찬(김승우)이 살고 있고, 촌사람이라 살림해줄 처자 하나 얻지 못했지만 정작 살림은 제 차지인 양 이웃주부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양덕길(손현주)이 제비교수와 유사부부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에 사는 정윤희(배두나)는 대기업 회장 아들 유준석(박시후)의 비서라지만 비서로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수시로 넘나들고, 그 누구도 못 들어오게 철통같은 방어 벽을 쳐놓은 유준석 실장은 이 대책 없는 비서의 침범에 유사연인 관계를 형성한다.

이웃들은 모두 제각각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에 걸맞게 서로 유사가족 관계를 형성하고, 심지어 이방인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형사 강역개(김뢰하)마저 유사이웃 관계로 끌어들일 정도다.

현실에선 좀체 보기 힘든 흐뭇한 그들
재미있는 것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우리가 현실사회에서 직업이나 출신 등을 통해 선입견으로 판단했던 그런 유형의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백수찬은 분명 유부녀를 꼬드기는 제비지만, 악랄하고 비열한 현실의 제비가 아니다. 오히려 오갈 데 없는 양덕길을 받아주고, 연애에 젬병인 이웃들을 돕는 착한(?) 제비이기도 하다.

정윤희는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자격미달의 비서이며, 유준석은 현실이라면 자질 운운하며 자격미달의 비서를 자를 것이 분명한 그런 실장이 아니다. 도회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양덕길 역시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그런 촌사람이 아니며, 심지어 정윤희를 비서로 발탁한 회장조차 우리가 현실에서 생각하는 권위적인 모습의 회장이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완벽한 이웃’들은 현실이라면 문을 꼭꼭 닫아걸고 무관심한 그런 이웃이 아니다. 그들은 전임강사가 된 백수찬이나 만년 과장으로 묵힐 줄 알았던 변희섭(이원재)이 부장이 됐을 때 자기 일처럼 축하해주는 이웃들이다.

즉 이 드라마에는 제비 같지 않은 제비, 촌사람 같지 않은 촌사람, 비서 같지 않은 비서, 실장 같지 않은 실장, 형사 같지 않은 형사, 회장 같지 않은 회장,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이 엮어내는 (현실의 각박한) 이웃 같지 않은 이웃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이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무차별로 엮어가는, 그다지 극적인 사건 전개도 두드러지지 않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내내 흐뭇해지는 것은.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의 드라마
그것은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구사하는 화법이 직설법이 아닌 가정법에서 기인하기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는 현실을 직접 묘사하기 보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넓혀 시청자들을 꿈꾸게 한다. 비록 제비지만 저처럼 여자의 마음을 쏙쏙 알아채는 남자가 있다면, 촌사람이지만 저렇게 정이 가고 재주 많은 사람이 있다면,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비서 같진 않지만 사람을 사람으로 진심으로 돌보는 비서가 있다면, 그리고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모여 가족 같은 이웃으로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이 드라마는 그런 곳에서 나도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가정법의 드라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가정법이란 사실 현실에선 가정일 뿐이지만, 마음 속에서는 늘 꿈꾸는 것이기에 가능한 거라는 걸. 늘 굳은 얼굴로 좀체 웃을 줄 모르는 현대인의 외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준석이, 도무지 넘어올 수 없게 그어놓은 선을 대책 없이 넘어오는 정윤희의 엉뚱함에 ‘특이해’라고 읊조리며 미소지을 때 시청자도 같이 미소짓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러니 살면서 알게 모르게 아무도 들어올 수 없게 두터운 벽을 만들며 살게된 시청자분들이라면 마음이 흐뭇해지는 드라마다. 잠깐동안의 드라마 속에서라도 완벽한 이웃을 만나고 싶다면, 그렇다면 말이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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