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자신감 돋보인 자연스럽고 경쾌해진 음악

 

또 다시 BTS다. 신곡 ‘버터(Butter)’가 발표된 후, 제목처럼 이 곡은 전 세계인들의 마음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각종 기록들을 이미 갈아치우고 있는 ‘버터’는 이제 BTS가 굳이 ‘월드스타’ 같은 수식어를 쓰지 않아도 전 세계인에 스며든 팝스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

방탄소년단

BTS 신곡 ‘버터’가 만들어내고 있는 글로벌 신드롬

방탄소년단의 신곡 ‘버터(Butter)’가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인들을 녹이고 있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는 발표된 지 겨우 나흘 만에 2억 뷰를 넘어섰고, 방탄소년단의 곡이 나오면 늘 잇따라 등장하는 리액션 영상들도 쏟아졌다.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감탄하고 엄지를 치켜 올리는 등 외국인들의 리액션 영상은 이제 일상적인 풍경처럼 되어 있다. 특히 노래마다 들어가 있는 시그니처 춤동작을 따라하거나, 다양한 장르로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커버 영상은 갈수록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이번에도 신곡 ‘버터’를 포크, R&B 등등 다양한 버전으로 커버하는 노래들이 벌써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방탄소년단의 이런 놀라운 인기는 굉장히 이례적인 현상처럼 여겨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놀랍지 않은 ‘당연한 반응’으로 다가온다. 마치 미국의 아리아나 그란데나 저스틴 비버,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우리가 ‘팝스타’라 부르는 그런 아티스트들의 행보와 다를 바가 없다. 앨범을 내면 나오는 팬덤의 반응이 당연한 팝스타. 이를 입증하는 건 이 신곡이 지난 24일 개최된 ‘2021 빌보드 뮤직어워드’에서 최초로 공개됐다는 사실이다. 흔히 가수들의 신곡 발표가 쇼케이스가 음악방송에서 선보이는 걸 떠올려보면, 방탄소년단의 이런 행보는 그들의 곡이 누구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날 빌보드 시상식에서 방탄소년단은 톱 듀오 클럽, 톱송 세일즈 아티스트, 톱 셀링 송, 톱 소셜 아티스트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이 수상기록에서 주목해야 할 건 톱송 세일즈 아티스트와 톱 셀링 송 부문에서의 수상이다. 이건 지난 발표곡이었던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거둔 성과로, 통산 세 차례나 ‘빌보드 핫100’ 차트 1위에 올랐고, 종전 한국가수 최장기록이었던 31주 연속 진입의 ‘강남스타일’을 넘어선 32주 연속 차트인이라는 대기록의 결과다. 또한 이 곡은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서도 통산 18번째 정상을 차지, 해당 차트가 생긴 이래 사상 최다 1위 기록을 세웠다. ‘버터’는 이러한 기록을 세운 ‘다이너마이트’보다 11시간 빨리 뮤직비디오 조회 수 2억 뷰를 돌파함으로써 더욱 거세진 글로벌 신드롬을 예고하고 있다.

 

‘다이너마이트’ 이후 달라진 행보, ‘버터’의 여유로움

아마도 ‘다이너마이트’가 만들어낸 성과들에 의한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버터’는 훨씬 ‘팝스타’ 같은 여유로움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경쾌함이 묻어나는 곡이다. 사실 ‘다이너마이트’는 방탄소년단의 첫 영어가사 곡으로 보다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물론 우리말 가사로도 외국인 팬들이 따라 부를 정도의 팬덤이 구축된 상황이었지만, 여기에 영어가사 곡은 보다 쉽게 전 세계 팝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준 것. 그리고 그 결과는 방탄소년단이 일부 SNS 팬덤이나 마니아들에 소비되는 아티스트가 아니라, 말 그대로 글로벌 팝스타로서의 강력한 팬덤을 소유한 아티스트라는 걸 입증해줬다. 

 

이런 변화는 ‘다이너마이트’에 이어 ‘버터’로까지 이어지는 방탄소년단 음악의 변화에서도 느껴진다. 이들 곡들은 그간 ‘피, 땀, 눈물’이나 ‘아이돌’ 같은 곡들에 담긴 다소 묵직한 ‘존재에 대한 고민’이나 ‘나다움’에 대한 강조 같은 메시지들을 굳이 강조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이 경쾌한 곡들은 방탄소년단이라는 청춘들이 마땅히 보일만한 자신감과 젊음을 경쾌한 음악에 담아 전하고 있다. 누구나 들으면 좋아할만한 보편적이면서도 훨씬 대중적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더 이상 음악에 메시지를 담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그 경쾌함 자체에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나타난 결과다.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청춘’의 대변자로서 그들이 처한 현실들을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곡으로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이 저변을 보다 보편적인 팬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음악의 경쾌함은 사실 ‘다이너마이트’ 때도 강조된 것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모두가 힘겨워하는 시기에 ‘힘을 내자’는 의미가 담긴 데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해외의 팬들 반응을 보면 여전히 방탄소년단이 자신들을 “구해줬다”는 표현들이 나온다. 힘겨운 현실(청춘의 현실이든, 코로나 시국이든)에서 방탄소년단의 노래는 ‘어깨를 토닥이며’ 나약해지지 말라고 전하는 듯하고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쾌함에는 앞서도 말했듯이 이제는 누구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팝스타가 된 방탄소년단의 달라진 위상이 한 몫을 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편안해진 노래에서는 한결 어깨에 힘을 빼고도 자신들이 전하고픈 메시지를 노래와 춤을 통해 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BTS며들다, 버터처럼

‘버터’는 나오자마자 멜론, 지니, 플로, 벅스 등 국내 음원차트는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호주 등 101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 1위에 올랐다. 영국 트렌드 차트 1위로 올라섰고,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플랫폼 역사상 일일 최다 글로벌 스트리밍수를 갈아치웠다. 일본 오리콘 차트 주간 스트리밍 랭킹과 주간 디지털 싱글 랭킹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특히 발매 후 3일 동안 재생수 1천660만7천136회를 기록한 ‘주간 스트리밍 수’는 오리콘 사상 최다였다. 미국 뉴욕타임스스퀘어의 광고판에는 아마존뮤직이 청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한 광고로 ‘버터’의 홍보영상이 세워졌다. 미국의 대중적인 호응과 직결되어 있는 라디오도 ‘버터’는 빠른 속도로 녹아들어가고 있다. 빌보드 ‘팝 에어플레이(POP AIRPLAY)’ 최신 차트에서 26위를 기록한 것. 일주일도 아닌 단 사흘 만에 세운 이 기록은 지난해 ‘다이너마이트’가 이 차트에서 처음 기록한 30위보다 높은 기록이다. 

 

최근 들어 ‘윤며들다(윤여정에 스며들다)’ 같은 ‘스며들다’를 활용한 신조어들이 인기의 척도로서 등장하고 있다. 이제는 K콘텐츠가 글로벌하게 스며들고 있는 상황에 ‘버터’는 전 세계인들에게 ‘BTS며드는’ 경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확산되어온 방탄소년단은 단 몇 년 사이 버터처럼 전 세계인에게 녹아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받아들이는 팝스타로서 자리하게 됐다. ‘다이너마이트’에 이은 ‘버터’는 그들의 달라진 위상을 잘 보여주는 곡이다.(글:시사저널, 사진:하이브)

남희석이 지적한 건 김구라일까, '라디오스타'일까

 

최근 방송인 남희석은 SNS를 통해 MBC 예능 <라디오스타>의 김구라가 하는 방송의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김구라의 방송태도가 게스트에 대한 '배려 없는 행동'이라고 했고 출연자들이 김구라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구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라디오스타> 제작진이 나서서 "김구라는 무례한 MC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남희석의 공개 비판은 이례적인 일이다. 연예계에서 동료에 대해 어떤 불만이나 불편한 지점을 느낀다면 사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흔하고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희석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비판하게 된 건 그것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종업계 후배들과도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공개비판 이후 남희석은 이 SNS의 글이 갑자기 쓴 게 아니라 "몇 년을 지켜보고 고민하고 남긴 글"이라며 "콩트 코미디하다가 떠서 <라디오스타> 나갔는데 개망신 당하고 밤에 자존감 무너져 나 찾아온 후배들 봐서라도 그러면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약자들 챙기시길"이라 덧붙였다.

 

그저 해프닝처럼 보이고, 워낙 연예매체에서 동네 싸움 구경하듯 자극적인 면만을 부각시켜 보도한데다, 남희석의 과거 흑역사 들추기까지 이어지면서 애초 비판의 초점은 상당부분 흐려졌다. 마치 그러는 자신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는 입장이 되냐는 식의 인신공격으로 흘러갔지만 남희석의 지적은 김구라로서도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먼저 이건 <라디오스타>의 문제인지 아니면 김구라의 문제인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물론 <라디오스타>는 애초부터 김구라가 거의 상징적인 존재였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인터넷방송으로 독설을 날리던 그가 '독설의 시대'를 맞아 지상파로 들어와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그 흐름은 <라디오스타>의 흥망성쇠와 거의 닮았다.

 

애초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 살짝 발을 얹는 정도로 시작한 <라디오스타>였다. 10분 남짓의 방송시간 때문에 할 이야기도 별로 못하고 끝나기 일쑤였던 <라디오스타>는 바로 그 마이너정서 때문에 오히려 많은 것들이 허용되었고, 대중적인 지지도 오를 수 있었다. 약자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어서 보다 과감한 토크들이 가능했고, 시청자들도 그걸 허용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매체환경도 대중들의 정서도 상당부분 바뀌었고, <라디오스타>나 그 프로그램의 상징적 존재인 김구라의 위상도 바뀌었다. <라디오스타>는 이제 온전히 한 프로그램으로 자리했고 그것도 여기 출연하면 무명의 게스트가 단박에 스타로 등극하기도 하는 힘을 발휘했다. 김구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상파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출연했고 <라디오스타>에서 그가 언급하고 심지어 독설을 퍼부은 연예인은 오히려 주가가 올라가는 기현상까지 만들었다. 그만큼 <라디오스타>도 김구라도 더 이상 약자가 아닌 권력자의 위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비판이나 독설이 순기능을 가지는 건 그 대상을 권력을 향해 쏟아낼 때다. 정반대로 비판과 독설을 하는 이가 권력의 위치에 서게 되면 그건 정반대로 약자를 핍박하는 방식으로 비춰지게 된다. 이 관점으로 들여다보면 남희석이 쓴 "약자들 챙기시길"이란 말의 뉘앙스가 새롭게 들린다.

 

김구라는 자신의 캐릭터인 독설과 비판을 여전히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시대가 바뀌면서 위상도 바뀌고 그래서 대중들의 정서도 달라진 <라디오스타>에 여전히 어울리는지는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에서 하는 <구라철>이나 한때 시사예능의 전면에 서 있었던 <썰전> 그리고 아쉽게 종영했지만 <막나가쇼> 같은 프로그램에서의 김구라는 여전히 핫하고 시원시원한 면이 있다. 그건 이제는 힘이 실린 그의 독설이나 비판이 합당한 대상을 만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라디오스타>는 어떨까. 낮은 위치도 아니고 한껏 기득권을 갖게 된 이 프로그램에서 이제 갓 신인으로 등장한 이들을 게스트로 초대해 놓고 홀대하는 김구라의 모습이 과연 시원함을 줄 수 있을까. 오래 방송이 지속되어오는 동안 시대가 바뀌었고 위상이 바뀌었다. 김구라와 <라디오스타>가 과거처럼 찰떡궁합이 되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다.(사진:MBC)

<썰전>의 독한 혀와 정치인과의 거리두기

 

원래 표방하는 바가 독한 혀들의 전쟁이라면서요? 그런데 그 독한 혀라는 것이 나쁜 뜻에서의 독한 혀가 아니라 서로 토론을 통해서 실체적인 어떤 것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론으로서의 독한 혀겠죠. 그렇게 계속 유지해나갔으면 좋겠어요. 다만 부탁드릴 것은 녹화를 월요일에 한다면서요? 그걸 하루나 이틀 정도 늦추면 제작진들이 굉장히 힘들다면서요? 도저히 못하나요? 대개 노력하다 보면 되거든요.”

 

'썰전(사진출처:JTBC)'

손석희 앵커는 200회를 맞은 JTBC <썰전>에 대해 한 마디를 요구하는 제작진에게 그렇게 바람을 전했다. 이 날 방송은 200회답게 수많은 정치인들의 축하 영상이 잇따랐다. 현재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는 문재인은 물론이고 정세균 국회의장, 유승민 의원, 노회찬 의원, 김성태 의원, 표창원 의원, 장제원 의원 등등이 그들이다. 그런데 역시 이 축하 영상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 프로그램에서 유독 많은 얼굴을 보였던 손석희 앵커였다. 그가 던진 몇 마디 말 속에 그간 <썰전>이 해온 적지 않은 공적들과 또 앞으로 나가야할 길까지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썰전>이 처음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말 그대로 독한 혀의 의미는 시사 토크를 하되 좀 더 센 이야기, 즉 자극적인 면을 강조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이철희 소장은 좀 더 진지한 정치 토론의 자세를 유지하려 했지만, 강용석 변호사는 주로 정치인들의 뒷얘기, 가십쪽에 치중하는 면이 많았다. 물론 그것이 정치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나 선입견을 깨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손석희 앵커가 말하는 독한 혀의 진짜 의미는 아니었을 수 있다.

 

진정한 의미의 독한 혀가 시작된 건 그래서 이철희, 강용석이 하차하고 새롭게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진용을 짜게 되면서다. 이때부터 <썰전>은 좀 더 본격적인 시사 정치 문제들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썰기 시작했다. 물론 예능적인 재미의 틀들이 편집을 통해 가미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흥미로웠던 건 우리가 그간 썰어내지 않으면 잘 몰랐던 그 시사 정치 문제들의 실체를 그들의 독한 혀를 통해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손석희 앵커가 말한 진정한 의미의 독한 혀가 만들어낸 변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뉴스룸>도 이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그저 팩트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팩트에 담겨진 다양한 의미들을 상식적인 추론에 의해 짚어보고 있는 것처럼, <썰전>은 그 특유의 예능적 방식을 통해 팩트에 담긴 실체를 추적한다. 저들만의 용어처럼 여겨지던 정치 언어들을 유시민과 전원책은 우리들의 언어로 풀어준다.

 

결국 <썰전>을 통해 시청자들이 얻은 가장 큰 것은 그간 너무 복잡해보이고 때로는 저들만의 언어로 되어 있어 소외감을 주는 시사나 정치 이야기를 이제는 누구나 회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들어줬다는 점이다. 정치는 실제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국민들의 참여로서 이뤄진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썰전>의 영향은 실로 지대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0회를 맞아 축하영상을 보내온 많은 정치인들에게서 볼 수 있듯이 <썰전>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져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썰전> 출연은 굉장한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썰전>의 이런 위상을 계속 유지해가기 위해서는 저 손석희 앵커가 말했던 본질에 충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체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론으로서 독한 혀를 표방하고, 또한 정치인들과도 일정 부분의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그것이다.

 

흥미롭게도 썰전에 출연하실 의향은 없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손석희 앵커는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과 견제를 다하는 일. 손석희 앵커가 던진 몇 마디 말 속에는 <썰전>이 나갈 방향성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송혜교, CF보다는 개념을 선택하다

 

새삼스럽게 연예인의 영향력이 느껴진다. 서경덕 교수가 개념 배우라 칭송한 송혜교 이야기다. 사실 연예인에게 CF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어떤 경우에는 CF를 몇 개 하는가가 그 연예인의 위상을 말해주기도 한다. 드라마 한 편이 잘 되면 주인공들에게 줄줄이 따라붙는 광고들을 우리는 너무나 당연한 듯 받아 들여왔지 않은가.

 


'태양의 후예(사진출처:KBS)'

하지만 송혜교 이야기에서 CF 개수와 위상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사실 광고를 하는 것보다 때로는 광고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그 배우의 개념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는 것. 일본의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제안한 거액의 CF 모델 제의를 단칼에 거절한 송혜교에게서는 그녀의 남다른 위상이 엿보인다.

 

송혜교의 개념 행보는 또한 CF라는 것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가를 에둘러 말해준 것이기도 하다. 연예인이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CF는 그 자체로 대중들을 현혹시킬 수도 있다. 만일 미쓰비시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배우의 얼굴 뒤로 전범기업의 이미지는 숨겨졌을 것이다.

 

그러니 한 번 떴다고 이런 저런 광고에서 섭외 1순위로 오르는 걸 그저 무작정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광고를 하더라도 그 광고가 과장된 것은 없는지 또 나아가 사회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닌지 우선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그 자리에 있는 연예인들이 지켜야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이기도 하다.

 

만일 그 최소한의 도리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 이제 대중들도 그저 넘어가지 않는다. 작년 9월 일본의 대부업체 광고 출연 계약을 해서 엄청난 비판을 받고 결국은 출연을 취소했던 고소영의 사례나, 2014년 김수현과 함께 백두산을 중국 명칭인 창바이(長白)으로 표기한 중국의 생수 광고에 출연해 비난받은 사례를 생각해보라. 대중들은 연예인들이 그런 개념 없는 선택을 하는 것에 기대한 만큼의 실망감을 느끼게 된다.

 

정반대로 송혜교 같은 개념 행보는 그 자체로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물론 미쓰비시가 대표적인 전범기업이라는 건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미쓰비시가 강제노역한 중국인들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했고, 미국과 영국 전쟁포로들에게는 사과를 했지만 우리에게는 보상은커녕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번 송혜교의 이야기를 통해 더 널리 알려지게 됐다.

 

송혜교는 과거에도 아파트 광고 재계약을 포기함으로써 개념을 드러냈던 바 있다. 아파트의 가격 거품을 만드는 것이 아파트 광고에 연예인들이 얼굴을 내미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광고 출연을 자제해달라는 경제실천시민연합의 편지를 받고 그녀는 광고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광고의 개수는 그 연예인의 위상과 무관하다. 오히려 개념 있게 할 수 있는 광고가 해서는 안되는 광고를 선택하는 모습. 그것이 그 연예인의 위상을 더 말해준다. CF보다는 개념을 선택한 송혜교에게 대중들이 박수를 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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