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가 아닌 완성도, 시청자들의 달라진 눈높이

 

드라마 시청자들이 달라지고 있다. <추적자>와 <유령> 같은 장르 드라마들의 선전이 그것을 에둘러 말해준다. 물론 시청률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 시청률이 낮아졌다는 점과 그것을 감안했을 때 시청률이 괜찮은 편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화제성 면에서 단연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과거와 달라진 시청자들의 성향을 예감하게 한다.

 

'추적자'(사진출처:SBS)

<추적자>가 시청률 18%에 육박하고 있는 건 물론 이 드라마가 가진 강력한 극성 덕분이다. 현실을 그대로 보는 것만 같은 리얼리티에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쏟아져 나오는 명대사들, 잘 구축된 캐릭터를 제 옷처럼 입고 연기하는 연기자들, 게다가 숨 쉴 틈 없이 속도감 있게 잘 짜여진 연출까지 뭐하나 빼놓을 것 없는 완성도가 바로 그 높은 시청률의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추적자>처럼 본격적인 추격 액션물이 이만한 성과를 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여기에는 <추적자>의 밑바탕에 가족과 서민에 대한 대중정서가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백홍석(손현주)이 국민 아버지가 된 것은 그 때문이다. 즉 <추적자>는 전형적인 추격 액션 장르를 가져왔지만 여기에 한국적인 색채를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그저 쫓고 쫓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우리네 정서를 집어넣었다는 점이 성공 포인트다.

 

하지만 <유령> 같은 작품이 14%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내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알다시피 <유령>에는 우리네 드라마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하는 멜로나 가족이야기가 전무하다. 오로지 수사 장르물에 입각해 그것이 줄 수 있는 재미에 집중되어 있다. 때로는 <유령>은 드라마로서는 너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촘촘히 이야기가 짜여지다 보니 잠시 집중을 하지 않게 되면 다음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TV라는 매체를 생각해보면 이런 드라마가 이렇게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물론 <유령>은 본격 장르물이 갖는 이런 약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보완책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현실에서 쉽게 들어봤던 사이버 범죄들을 소재로 가져왔다는 점이다. ‘타진요 스캔들’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있었고, 민간인 사찰 같은 민감한 소재도 에피소드로 활용되었다. 이런 익숙한 소재들은 낯설 수 있는 드라마가 딴 나라 이야기가 되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준 셈이다. 게다가 수사 장르물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반전 포인트들을 다양하게 가져간 점도 성공의 원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보완책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추적자>나 <유령>을 통해 시청자들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청자들은 이제 장르에 대한 편견 없이 드라마를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에는 의학드라마나 사극 혹은 시대극이라면 무조건 성공하는 것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그것이 통용되지 않는 상황이다. 새롭게 시작한 의학드라마 <골든 타임>이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무신> 같은 사극은 별로 화제가 되지 않지만, <닥터 진> 같은 사극은 연일 화제가 되는 상황이 그렇다. 또 같은 멜로라도 <신사의 품격>이 선전하고 있는 반면, <빅>과 <아이두 아이두>가 부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즉 장르적인 우위를 떠나서 이제는 드라마가 갖는 완성도나 참신성 같은 것이 성패를 가름하고 있다는 얘기다. 화려함은 없어도 팽팽한 대본과 연기가 뒷받침되어 성공한 <추적자>가 그렇고, 다소 복잡하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건의 얼개나 구성이 촘촘하게 잘 엮어져 있는 <유령>의 성공이 그렇다.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시청자들의 드라마를 보는 수준이 높아져 있다는 얘기다. 이제 어디선가 했던 비슷비슷한 설정을 반복하는 드라마들에 시청자들은 식상해한다. 관성적인 시청도 물론 여전히 남아있지만 과거만큼은 아니라는 것은, 한 드라마 시청률의 등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보통 드라마의 첫 회 시청률이 높으면 대체로 성공하는 드라마로 생각됐던 과거와는 달리, 최근에는 드라마가 힘이 빠진다 싶으면 시청률이 곤두박질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반에 시청률이 잘 나왔지만 후반에 이르러 연장을 하면서 시청률이 뚝 떨어졌던 <빛과 그림자>가 단적인 사례다.

 

아마도 미드와 일드를 경험하고 열광했던 시청자들도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 들어 TV의 주 시청층으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높아진 눈높이에 부응하지 못하면 바로 고꾸라지는 게 요즘 드라마의 운명이 되었다. 초반 기획으로만 봐서는 성공 요소가 별로 없다 여겨졌던 <추적자>의 성공이나, 아직은 조금 시기상조로 여겨졌던 본격적인 장르 드라마인 <유령>의 선전은 그래서 달라지고 있는 작금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를 말해주는 징후처럼 보인다.

멜로, 가족 없이도 선전하고 있는 <유령>

<유령>은 기존 우리네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우리 드라마에 반드시 있기 마련인 멜로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같은 사이버 수사팀에 김우현(소지섭)과 유강미(이연희)가 있지만 이들 관계는 멜로라기보다는 서로 돕는 관계에 가깝다. 유강미는 김우현의 비밀(사실은 박기영(최다니엘)이라는)을 알고 그를 적극적으로 돕지만 두 사람 사이에 멜로 같은 화학반응은 없는 편이다.

 

 

'유령'(사진출처:SBS)

이 드라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주요 인물들의 가족 관계가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우현의 아버지나 조현민(엄기준)의 아버지는 물론 이 드라마의 사건에 깊이 관계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우리 드라마의 가족관계와는 다르다. 유강미나 박기영의 가족관계는 다뤄지지 않는다. 따라서 부모들이 등장해 주인공의 감정을 뒤흔들거나 영향을 주는 그런 장면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멜로와 가족관계가 별로 드러나지 않는 <유령>은 그래서 쿨하다. 이것은 사랑과 가족애 사이에서 끈적끈적한 정에 휘둘리는 우리네 전형적인 드라마와는 다르다. 오히려 미드나 일드를 닮았다. 인물들의 관계보다는 사건과 에피소드 중심으로 흘러가고, 감정의 늪에 빠지기보다는 아드레날린을 자극하는 서스펜스와 속도감 있는 스토리 그리고 반전의 힘에 더 의지한다.

 

이런 드라마 스타일은 한때 멜로와 가족 드라마에 식상해한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등장했던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계보라고 볼 수 있다. 늘 삼각 사각 멜로들이나 출생의 비밀이 난무하는 가족드라마들이 양산되면서, 그 새로운 탈출구로서 미드나 일드를 통해 발견한 장르적인 접근을 시도하게 됐던 것. 하지만 이러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들은 차츰 사라지거나, 기존 우리 드라마의 요소들 즉 멜로나 가족관계 등과 섞여지기도 했다. 드라마 주 시청층인 중장년층들에게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유령>은 다분히 도발적이다. 더 엄밀한 전문직 장르 드라마의 계보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멜로도 가족관계도 드러나지 않는데다가 소재적으로도 쉽지 않다. 해커들이 벌이는 사이버 테러의 양상은 그 용어들이 생소할 수밖에 없다. 상세한 설명 자막이 있다고 해도 시청자들이 웬만큼 집중하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어렵다. 그만큼 <유령>은 쉽지 않은 소재를 쉽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놀라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은 편이란 점이다. <각시탈> 같은 누가 봐도 이야기 흐름을 쉽게 알 수 있고 전형적인 우리네 드라마 형태인 멜로와 가족관계의 이야기가 분명한 드라마가 15%(agb닐슨)의 시청률을 내고 있는 와중에, <유령>이 12.2%의 시청률을 낸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도대체 어떤 점이 주효한 것일까.

 

먼저 특유의 속도감을 지목하지 않을 수 없다. <유령>은 보통 우리네 드라마였다면 몇 회 분량이 되었어야 하는 에피소드를 단 한 회에 쏟아 부을 정도로 압축적이다. 그만큼 속도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제 6회를 방영했을 뿐이지만, 박기영이 김우현으로 페이스오프한 상황은 거의 밝혀지고 있다. 또 일찌감치 좀 더 거대한 사건과 연루된 것이 분명한 신효정 살인사건의 범인이 조현민(엄기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은 이 드라마가 스토리나 아이디어면에서 차고 넘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건들이 그저 먼 나라 얘기처럼 여겨졌다면 이 속도감 넘치는 롤러코스터에 선뜻 시청자들이 동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령>은 우리에게 익숙한 연예인 루머라든가, 타진요 사건, 디도스 공격 같은 사이버 범죄를 먼저 소재로 끌어냄으로서 대중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목하고 싶은 건, 이런 사건들의 에피소드로 꾸려지는 드라마들이 가진 맹점인 툭툭 끊어질 수 있는 이야기 흐름을 <유령>은 전체를 꿰뚫는 사건을 통해 잘 봉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예인 자살사건과 디도스 공격에 이은 국가 주요기관 시스템 공격까지 에피소드들이 나눠지지만, 그것은 또한 조현민이라는 김우현이 쫓는 유령(팬텀)으로 다시 모아진다. 각각의 에피소드와 전체 드라마의 흐름을 잘 조화시키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이 김은희라는 작가(그녀는 <싸인>의 작가이기도 하다)가 본격적인 전문직 장르드라마의 틀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사실 <유령>은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매력적이다. 쉽다는 것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드라마라고 하면 그저 그런 것의 반복이라고 스스로 인정하기 때문은 아닐까. 왜 드라마는 새로운 소재를 다루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 안 되는 것일까. <유령>은 그런 점에서 비슷비슷한 우리네 드라마들 속에서 유령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대단히 바람직하고 반가운.

<추적자>에 이어 <유령>까지, 사회극 선전의 이유

 

'네 손이 일 년 전에 지은 죄를 기억해.'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음악이 장중하게 흘러나오면서 모니터 화면에 써지는 글귀, 그리고 살인, 현장 온 벽면을 가득 메운 저주의 글자들... 사이버 범죄를 소재로 다루는 <유령>의 이 장면들은 이 드라마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해준다. <유령>은 사이버 범죄에 대한 복수극이다.

 

 

'유령'(사진출처:SBS)

일상적으로 올리는 댓글 하나, 추측에 의한 근거 없는 소문의 양산, 끝없는 루머로 행해지는 스토킹에 가까운 집단행동들... 사실 사이버 세상에서 매일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많은 일들이 어떤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가에 대해 사람들은 둔감하다. "설마 악플했다고 사람을 죽입니까?" 한영석(권해효) 경사의 이 대사에는 악플이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들어가 있다.

 

'신효정 놀이 동영상'이 말해주듯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놀이가 된다. 이것은 또 거꾸로 누군가의 놀이(댓글 같은)가 누군가에게는 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신효정에게 진실을 요구한다'는 이른바 신진요 카페는 우리가 타블로 사건에서 봤던 '타진요'의 드라마적 재현이다. 제 아무리 사실과 그 증거자료를 내놓아도 그것이 오히려 끊임없는 루머로 재생산되며 피해자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사건.

 

<유령>의 가해자, 팬텀(Phantom)은 이 상황을 거꾸로 되돌려 놓는다. 손가락 몇 번 놀리면 누군가에게 저주를 퍼부을 수 있는 노트북이 거꾸로 그 당사자에게 저주를 쏟아 붓는다. '네 손이 일 년 전에 지은 죄를 기억해', '죽어' 같은 글귀들이 모니터에 떠오르면서 자신의 저주가 똑같이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공포의 경험, 그리고 살인. 살인 현장 벽에 써진 댓글들은 마치 이 죽어가는 가해자(누군가를 죽게 한)이자 피해자(살해당한)의 상황조차 비웃곤 하는 인터넷 상의 댓글들을 닮아 있다.

 

<유령>의 팬텀이 저지르고 있는 빗나간 복수극은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 바꾸기를 드라마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누군가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마는 그런 일들은 사실 우리네 현실에서 이미 여러 번 목도되었다. 하지만 그 사건을 접하면서도 '뭐 그렇다고 목숨을 버려?'하고 또 다른 의구심을 품었다면, <유령>은 그 의구심에 뒤통수를 치는 드라마다. 저들의 사건이자 저들의 불행으로 여겨졌던 것들을 우리들의 사건이자 불행으로 되돌리는 작업.

 

흥미로운 건 본격적인 사회적 코드를 보여주면서 <유령>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 2회 동안 수목극 꼴찌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유령>은 3회만에 <아이두 아이두>를 넘어섰다. 이것은 저 <추적자>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극이 갖는 힘이다. <추적자>가 우리네 정의의 현실을 끄집어냄으로써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면, <유령> 역시 우리 사회가 가진 디지털 세상의 뒤안길을 아프게 들여다봄으로써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회극이 선전하는 건, 아프게도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아이두 아이두>나 <신사의 품격> 같은 달달한 멜로들이 고개 숙이고 있는 건 사회극이 제시하는 현실 앞에 이런 멜로들은 너무나 비현실적인 세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추적자>에 이어 <유령>까지 이어지는 사회극에 대한 깊은 대중들의 관심은 이제 드라마에 있어서도 허황된 이야기보다는 좀 더 사회현실을 함의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요구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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