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와 <개콘> 그리고 일인자 패러독스

 

우리네 예능 프로그램 중 대표격을 꼽으라면 아마도 <무한도전(이하 무도)>과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지목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재미의 차원이나 시청률을 두고 말하는 게 아니다. 우리네 전체 예능에 끼친 영향력이나 꽤 오랜 세월을 지켜낸 저력(<무도>는 8년, <개콘>은 무려 14년이다) 그리고 지금 현재 위치까지를 모두 두고 봤을 때 이 두 예능은 확실히 우리 예능의 대표선수들임이 분명하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물론 여전히 이 두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약간 다른 징후들도 포착된다. 그것은 과거에는 좀체 없었던 비판적인 시선들이 등장했고, 식상해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보인다는 점이다. 실제로 시청률도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제작진들이나 출연진들 또한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무도>의 하와이 특집은 그 시작에서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길을 탈락시키는 것으로 충격적인 반전을 만들었다. 또 2편에서는 박명수와 길, 유재석, 노홍철이 글라이더를 타고 활강을 하면서 돈을 세는 강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특히 고소공포증을 호소했던 유재석은 글라이더에서 내리자 다리가 풀려 주저앉기도 했다. 하지만 <무도>의 이런 미션들은 과거만큼의 흥미와 팽팽한 긴장감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

 

하와이 특집에 이어 시작한 술래잡기 특집도 긴장감이 떨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이제 <무도>의 추격전 미션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홍철은 늘 반전의 키를 쥔 배신자 역할을 자임할 것이고, 박명수는 고군분투하다 짜증을 폭발시킬 것이고, 그 와중에서도 유재석은 누구보다 열심히 뛰면서 미션을 수행해나갈 것이다. 물론 조금씩 다른 상황들이 생겨나지만 그다지 큰 변화는 잘 보이지 않는다. 패턴이 조금씩 읽힌다고나 할까.

 

이런 사정은 <개콘>도 마찬가지다. 서수민 PD가 자리한 이후 <개콘>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거의 1년 넘게 전체 예능 시청률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았고, 출연 개그맨들은 심지어 광고계에서도 블루칩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개콘>은 새로운 코너들을 꽤 선보였지만 과거만큼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지지 않고 있다. 이미 뜬 코너와 개그맨들에 대한 피로도도 높아졌다.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개그맨들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지면서 <개콘>의 핵심적인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적당한 시기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기리나 김대성, 이문재, 이희경 같은 친구들이 새 코너들을 통해 중심으로 들어오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그 존재감이 확실히 생기지는 못했다. 새 코너에 대한 화제도 그다지 높지 않고 시청률도 많이 추락했다.

 

<무도>나 <개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축적된 필자 같은 고정 팬들의 여전한 성원 덕분이 아닐까. 그것조차 경쟁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현재가 불안하다는 것은 프로그램으로서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하긴 이렇게 오랜 세월을 정상에 머무르면서 계속 새로울 수 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것일 게다. 그 기적의 길을 <무도> 같은 프로그램은 분명 걸어왔다.

 

<무도>나 <개콘>의 위기는 외부적인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꽤 오랜 세월동안 줄곧 일인자로 서왔던 것에서 비롯되는 힘겨움이다. 밑에 있을 때는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제일 꼭대기에 오르면 할 수 있는 게 지키는 것이나 내려오는 길밖에 없게 된다. 이른바 일인자 패러독스다. <개콘>의 서수민 PD는 그 일인자의 고충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때로는 2등이었으면 할 때가 있다”고.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는 개그맨이나 예능인의 위치는 분명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큰 폭발력을 내는 것이 사실이다. <무도>의 힘은 확실히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위치에 있을 때 더 폭발적이었다. <개콘>도 개그맨들이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어려울 때 더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무도>의 출연자들은 모두 지금 현재 예능계의 최정상의 위치에 서게 되었고, <개콘>의 개그맨들도 이제는 생계 걱정하지 않고 개그만을 해도 먹고 살만큼 위상이 높아졌다.

 

뿐만 아니라 정상의 위치를 오래도록 유지하면서 그만큼 주목도도 높아진 만큼 소비도 빨라진 면이 있다. 이제 과거랑 똑같은 강도의 웃음을 주어도 그 힘이 약하게 느껴진다. <무도>처럼 아예 형식의 무한도전을 해온 프로그램도 꽤 오래 지속되면서 패턴이 읽히는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떤 예능이든 패턴이 생기고 일찌감치 이야기가 노출되기 시작하면 요즘처럼 반전과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대중들에게는 흥미를 끌기가 그만큼 어려워진다.

 

<무도>든 <개콘>이든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겨운 지 아는 입장에서 이들이 처한 일인자 패러독스는 진정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쩌랴. 일인자라는 위치가 갖는 무게감이 만들어내는 일인 것을. 의외로 이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만큼 대중들의 기대치가 조금 낮아지게 되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승의 기회도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기적적인 노력으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것이든 힘겨워도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그나마 가능한 일이다.

 

물론 팬의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워도 기다려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싶다. 하지만 보통의 시청자들에게는 이 시간이 달리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착한 유재석만 있나, 나쁜 유재석도 있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의 변화가 심상찮다. 그간 늘 착한 이미지로만 각인되어 왔던 유재석이 ‘잔소리꾼’이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조금씩 끄집어내고 있는 것. 하와이로 가기 위해 모인 멤버들에게 유재석은 지난 회에 이어서 “형제 4호 발령”을 알렸다. 여기서 ‘형제 4호’란 <무한도전>이 어떤 위기의식을 갖고 심기일전을 하기 위해 유재석이 보내곤 했던 문자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유재석은 오프닝에서도 정준하의 새로 한 머리를 꼬투리삼아 그 헤어스타일을 ‘버르장머리’라고 불러 면박을 주었고, 박명수가 딸 민서가 해준 매니큐어를 자랑하며 벌써 “키가 1미터 10 나온다”고 하자 “계속 크겠죠. 2미터 되겠네요.” 해서 그를 자극시키기도 했다.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에서는 ‘무한상사’를 즉석에서 재연하면서 유국장이 된 유재석은 “재미없으면 하와이에서 못 돌아올 줄 알아”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또 “다들 힘든 상황에서 하고 있는 거 알고 계시죠?”라고 묻는 유재석에게 너무 부담주고 그러지 말라는 멤버들의 원성이 자자하자 유재석은 “여러분이 바캉스로 가든 촬영으로 가든 휴가를 가든 재미만 있게 해오라니까.”하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무한상사’에서의 상황극 캐릭터가 ‘스트레th' 특집에서 다시 끄집어내진 후 ‘하와이’ 특집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미에 대한 강박이 강해진 유재석은 이제 그 재미를 위해서는 ‘착한 캐릭터’마저 훌훌 벗어던질 기세다.

 

유재석의 이런 변화는 <런닝맨>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김수로의 이름표를 송지효가 떼어버리는 놀라운 결과로 혼자 월요 커플을 상대해야 하는 유재석은 그간의 모습과는 달리 안간힘을 쓰며 개리의 이름표를 먼저 떼기도 했다. 결국 송지효의 간지럼 공격에 무너지긴 했지만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던 것. 부표 위에서 벌어진 수중고싸움에서도 유재석은 공격하는 김종국과 하하 송지효를 모두 밀어내는 반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게임에 좀 더 집중하는 느낌이랄까.

 

유재석이 물론 자신의 캐릭터를 완전히 바꾸려는 건 아닐 것이다(이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껏 ‘착한 유재석’만 있었다면 이제는 ‘나쁜 유재석’ 같은 새로운 면모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유재석 스스로 느끼는 위기감과 연관되어 있다. 오래도록 유재석의 착한 캐릭터를 끌어와 착한 토크쇼로 안방을 지켜왔던 <놀러와>가 폐지되었고, <무한도전>의 시청률도 과거만 못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

 

물론 이건 일시적인 결과일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예능 프로그램의 성패는 몇몇 팬덤에 의해 유지되던 과거와는 달라진 양상이다. 이것은 팬덤이 사라졌다기보다는 늘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면서 새로운 팬층을 끌어들이지 못한 탓이 크다. 오래도록 착한 캐릭터로 고착화되다보면 의도치 않게 프로그램의 색깔 또한 고정시켜버릴 수도 있다. 워낙 유재석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보니 그가 나오는 토크쇼는 모두 착한 토크쇼가 되고, 그가 나오는 버라이어티쇼는 게스트를 배려하는 미션과 도전이 된다. <놀러와>, <해피투게더> 같은 토크쇼가 그렇고,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이 그렇다.

 

늘 1인자다운 모습, 늘 배려의 아이콘다운 착한 이미지는 물론 유재석이 버릴 수 없는(버려서도 안 되는) 그만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그렇게 고정된 이미지는 본인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유재석 하면 떠오르는 그 인상은 그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유재석은 여기서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좀 더 다채로운 캐릭터로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려는 듯하다.

 

최근 서병기 대중문화 전문기자는 <해피투게더3> 촬영장을 찾은 자리에서 유재석의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시청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면 방송에서 착한 유재석뿐 아니라 나쁜 유재석도 보여줄 수 있다”고. 유재석의 변화는 그 목적이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하와이로 떠나는 공항에서 유국장으로 분한 유재석이 “재미만 있게 해오라니까”라고 잔소리를 하는 모습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다짐일 게다. 그 도전이 시청자들을 위한 것일 때 그 캐릭터가 무엇이든 유재석의 변신은 무죄다. 유재석의 새로운 무한도전이 시작됐다.

유재석의 스트레스, 우리를 웃게 하는 힘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 나온 유재석은 자신의 장점을 ‘열심히 한다’, ‘잘 웃는다’로 표현했고, 단점을 ‘다소 우유부단하다’, ‘다른 사람이 잔소리로 느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고민거리를 묻는 질문에 “크게는 없었는데요. 이번 주 녹화 이거 재밌었나.. 다음 주에는 이런 걸 한다는데 이건 어떨까...”라고 답했다.

 

'무한도전'(사진출처:MBC)

이 장점과 단점 심지어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재석의 스트레스가 모두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가를 잘 말해준다. 그의 장단점은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과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모두 그가 고민거리로 말한 방송에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는 방송을 통해 열심히 하고 잘 웃으며 때론 우유부단함(캐릭터로 나오는)을 볼 수 있었고 종종 그가 멤버들에게 잔소리를 해 잔소리꾼이라는 핀잔을 듣는 것에 익숙하다.

 

이 장단점과 고민거리 토로에는 유재석이 가진 시청자에게 어떻게든 웃음과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증을 읽어낼 수 있다. 그가 ‘잔소리꾼’이 된 것은 그가 말하듯이 ‘잘하자고’ 하다 보니 생긴 습관이다. 자신에 대해 그만큼 엄격한 그이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그만큼을 요구하는 셈이다.

 

그의 스트레스 지수를 진단한 정신과 전문의는 심지어 문진표 “체크란에 동그라미 어느 하나가 경계를 넘는 걸 보지 못했다”며 그만큼 조심스럽고 신중한 그의 성격을 설명했다. 비판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거라 말했고, 그가 파란 풍선을 선택한 것을 통해 “본인 스스로는 사교성이 풍부하지만 알게 모르게 내면에 외로움과 고독이 내재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여기에 정형돈이 “맞아 친구 없잖아”하고 맞장구를 치자 하하가 “하지마. 하지마. 나 그랬다가 6개월 욕먹었잖아. 있어, 있어. 대한민국.”이라고 장난스럽게 던지는 말이 짠하게 느껴진다.

 

유재석이 보이는 극도의 조심스러움과 우유부단함은 어쩌면 자신으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주변 사람들의 피해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또 그의 유일한 친구가 ‘대한민국’이라는 하하의 농담 속에는 그가 가진 부담감과 책임감이 들어 있었다. 그의 말대로 방송 때문에 해외에 나간 적은 있지만 신혼여행을 빼놓고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여행 같은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는 그가 아닌가. 일주일 내내 <무한도전>, <런닝맨>, <해피투게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놀러와>까지 소화해내던 그에게 개인 시간이나 여유 같은 건 사치가 아니었을까.

 

<무한도전> '스트레th' 특집에서 그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는 것’을 선택한 유재석과 멤버들의 모습은 그래서 뭉클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이 재미있었다고 말할 때 자신들의 스트레스가 비로소 사라진다는 것. 이 지독한 시청자 강박증이야말로 유재석의 가장 큰 스트레스이면서 그가 최고의 MC로 지목받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스타킹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한껏 무너뜨리는 <무한도전>의 유재석이나 잔뜩 바보 분장을 한 채 바보 연기를 하는 <런닝맨>의 유재석은 어쩌면 스트레스를 스트레스로 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런닝맨>의 조효진 PD는, 유재석은 말 그대로 ‘유느님’이라 불리는 게 맞을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고 했다. 너무 잘 통하고 선수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제작자로서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유재석의 시청자 강박증의 강도를 미루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유재석의 완벽함을 ‘방송 바깥에서 더 철저한’ 모습에서 찾으며 “자기는 그렇게 살라면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이나 <런닝맨>을 통해 우리의 웃음이 빵빵 터질 수 있는 것이 유재석의 남다른 시청자(를 웃겨야 한다는) 강박증 스트레스 덕분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일까. 지난 주 뜬금없이 불거진 유재석 태도 논란은 너무 악의적이라는 느낌마저 들게 만든다. 하지만 그래도 의사의 말대로 “전반적으로 경직”된 유재석이 “조금만 본인에게 느슨하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본인에게 관대해야 남들한테 관대할 수 있다는 정준하의 말도 맞지만, 그것은 또한 무엇보다 좀 더 오래도록 도전하고 달리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

<런닝맨> 캐릭터의 힘, 예능 장동건 이광수

 

마카오에 이어 베트남을 찾은 <런닝맨>이 발견한 것은 이광수가 그 곳에서는 ‘예능 장동건’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는 곳마다 “이광수!”를 외쳐대는 팬들 속에서 멤버들은 얼떨떨한 표정이 역력했다. 흥미로운 건 이 반응에 대해 제작진들 역시 어째서 이광수가 이렇게 인기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물론 그런 식의 자막이 재미있어서 그렇게 붙인 것일 게다. 하지만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이광수는 어떻게 아시아의 기린이 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런닝맨>의 캐릭터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런닝맨'(사진출처:SBS)

<런닝맨>만큼 캐릭터의 힘이 돋보이는 예능이 있을까. 이 힘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과 후를 나눠서 그 출연자들이 갖게 된 이미지나 존재감을 비교해보는 것만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런닝맨>을 통해 개리는 이른바 ‘갖고 싶은 남자’가 됐고, 송지효는 예능 에이스로 거듭났으며 지석진은 게임의 시작을 알리는(?) 게임에 약한 임팔라 캐릭터가 됐고, 이미 예능의 프로들인 하하나 김종국은 더욱 공고하게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캐릭터가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기린 이광수다. 그가 <런닝맨>을 통해 차츰 차츰 구축해온 기린 캐릭터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관계에 따라 그 반응이 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즉 김종국 같은 능력자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지만 송지효 같은 여성 멤버에게는 툭탁대며 싸움을 걸고, 지석진처럼 약한 캐릭터와는 ‘필촉 크로스’ 같은 동맹을 맺는다는 점이 그렇다. 중요한 것은 이 관계 속에서도 이광수는 머물러 있기 보다는 늘 새로운 반전을 노린다는 점이다.

 

<런닝맨> 같은 게임 예능에서 반전 요소만큼 주목을 끄는 건 없다. 이것은 게임에서 어떤 흐름이 생겨났을 때 그대로 흘러가는 것에 제동을 걸고, 새로운 스토리로의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김종국은 이광수 캐릭터의 변화를 가장 자연스럽게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처음 이광수 캐릭터는 ‘모함광수’처럼 조금은 소심한 모습을 띄었지만 본격적으로 스파이 미션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진화한다.

 

즉 이광수가 김종국 밑에서 그의 충복처럼 행동하지만 그를 이기려는 욕구를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런닝맨>은 흥미로운 관계의 변화를 보여줬던 셈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능력자 캐릭터인 김종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세우는 데도 일조한 것이 사실이다. 힘과 대단한 촉으로 밀어붙이는 김종국은 바로 그런 캐릭터 때문에 자칫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이광수는 배신을 통해 그런 능력자에게 때론 굴욕을 안긴다는 점에서 김종국에게도 어떤 당하는 캐릭터의 면모를 심어줌으로써 친근감을 만들어주는 존재가 된다.

 

이광수의 장점은 그 외모 자체가 주는 과장된 면모를 하나의 캐릭터로 연기해낼 줄 안다는 점이다. 다른 멤버들이 게임 중에서도 때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반면, 이광수는 거의 대부분 캐릭터에 빙의된 모습으로 게임에 들어와 있는 모습이다. 바로 이 점은 그의 캐릭터가 그만큼 공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물론 <런닝맨>이 가진 캐릭터의 힘은 결국은 유재석이라는 발군의 MC가 자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유재석은 일찌감치 이광수에게 모함광수의 캐릭터 씨앗을 심어주기도 했고, 그 씨앗이 차츰 자라 배신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광수가 아시아의 기린이라는 어마어마한 캐릭터로 주목받을 수 있게 해준 것은 그의 노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유재석이 이끄는 <런닝맨>이라는 캐릭터 세상 덕분이기도 하다. 초반에는 그저 서브 역할에 머물렀던 캐릭터에서 이제는 아시아에서 열광하는 캐릭터가 된 이광수. <런닝맨>의 캐릭터쇼가 얼마나 큰 효과를 발휘하는가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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