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이랬다면 한국판 ‘종이의 집’의 결과는 달랐을 지도

종이의 집2

사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이하 종이의 집)> 파트1은 성공작이라 말하긴 어려웠다. 일단 기획이 애매해 보였다. 워낙 유명한 원작인지라, 리메이크를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일 수 있었다. 원작에 충실하다면 새로움이 없다 비판받을 것이고, 원작에서 벗어난다면 팬들의 원성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결국 비교의 부담에서 파트1이 선택한 건 원작의 틀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는 거였다. 물론 차별점은 있었다. 통일을 앞둔 한반도라는 설정이 있었고, 공동경제구역에 신권 지폐를 찍는 조폐국이 등장한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사실 이 설정은 이 리메이크의 중요한 차별점이고, 하필이면 이 유명한 원작을 한국에서 리메이크하게 된 납득되는 근거였다. 아쉬웠던 건 파트1이 그 차별점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채 마무리된 거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종이의 집> 파트2는 파트1의 아쉬움이 오해라며 본격적으로 리메이크의 새로움을 채워 넣었다. 돈만을 목적으로 삼던 케이퍼 무비 같은 설정의 서사는, 한반도라는 남북한 정세를 바탕으로 ‘혁명’에 대한 서사와 적절히 버무려졌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건 파트1에서 그저 감정 조절 못하는 탈북자로만 보였던 베를린(박해수)였다. 그가 이 일에 가담하게 된 진짜 이유가 밝혀지고, 그것은 <종이의 집> 서사를 원작과는 완전히 다른 길로 향하게 만들어낸다. 

 

<종이의 집> 파트2는 통일과 경협을 빙자해 돈과 권력을 쥐려는 부패한 정치가과 자본가들이 진짜 적이라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이들이 그저 도둑이 아니라 저들의 착취로부터 민중들을 깨워 세상을 바꾸려는 혁명가라는 또 다른 면면을 부여한다. 조폐국에서 찍어낸 돈을 남북경협이라는 이름으로 빼돌리려는 저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민중들은 촛불을 든 채 하회탈을 쓰고 외친다. “종이의 집은 우리의 것이다!”

 

파트1이 다소 지루하게 원작의 스토리를 한국적 배경 위에 반복하는 정도로 마무리됐다면, 파트2는 이 리메이크가 원작과는 어떻게 다르고 한국식으로 재해석된 그것이 어떤 새로운 묘미를 주는가 하는 점을 제대로 보여준다. 분단 상황에서 서로 대치하던 한반도처럼, 조폐국 내에서 이를 점거한 이들과 그 곳에 납치된 민간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끝까지 배척하려는 이들도 있지만, 점점 그들의 뜻에 동참하는 이들도 등장한다. 

 

이를 가르는 건 돈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되기도 한다. 납치된 이들이 더 이상 통제에 따르지 않게 되자 교수(유지태)가 동조하는 이들에게 30억씩을 주겠다고 한 제안에 따르는 이도 있지만, 덴버(김지훈)를 좋아하게 된 미선(이주빈)은 돈과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따른다. ‘스톡홀름 신드롬’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그 마음들은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 그 해답을 찾게 된다. 

 

조폐국을 털어 큰돈을 벌겠다는 목적으로 모인 이들은 파트2에서는 저마다 각자 갖고 있는 또 다른 이유들을 드러내고, 그것이 공유되면서 단지 돈만이 아닌 공동의 뜻에 동조하기 시작한다. 돈을 매개로 하고 있지만 같은 뜻을 공유함으로써 함께 나가는 길. 그래서 이들의 경계를 넘어 하나된 모습은 저 바깥에서 돈만을 목적으로 결탁한 이들과 대비된다. 다소 낭만적으로 그려진 것이긴 하지만, 원작 스토리를 이처럼 한반도 상황에 맞춰 차별화한 부분은 실로 신박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다시 아쉬워지는 건 파트1이다. 파트2의 전제로서 또 원작 팬들을 위한 배려로서 그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지만, 파트1이 전혀 이 리메이크의 묘미를 담지 못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차라리 파트2처럼 파트1도 한반도 상황에 맞는 재해석을 과감하게 풀어나갔다면 어땠을까. 드라마 속 교수가 그랬듯이 모든 일이 계획한대로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파트1의 실망감에 파트2를 보지 않는다면 이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할 거라는 게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사진:넷플릭스)

모두가 '화양연화', 과거는 현재를 어떻게 구원하나

 

"찾았다. 윤지수."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에서 대학시절 재현(박진영)은 지수(전소니) 앞에 나타나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헤어진 후 중년이 되어 어느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재현(유지태)은 지수(이보영)를 찾아낸다. 그토록 긴 세월동안 아픈 손가락처럼 마음 언저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통증을 남기고 있던 그를.

 

<화양연화>가 그 먼 길을 돌아 재현과 지수를 다시 만나게 한 건, 현재의 그들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제 다시는 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현실에 다시금 꽃을 피워보기 위함이다. 형성그룹 회장의 사위이자 부사장이지만 사냥개처럼 부려지며 살아가는 재현은 노조를 위해 앞장서다 배신자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죽음이 장산 회장(문성근)의 짓이었다는 걸 알고는 복수를 결심한다.

 

또 지수는 치매를 앓고 있는 아버지 윤형구(장광)와 아들 영민(고우림)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그는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장산 회장과 결탁해 부정을 저질렀던 아버지로 인해 사랑했던 재현과 헤어졌고, 이세훈(김영훈)과의 불행한 결혼생활 끝에 이혼했다. 백화점 붕괴사고로 엄마와 동생 지영(채원빈)이 죽고 나서 아버지마저 정신줄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 불행 속에서도 지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은 대학시절 재현을 통해 들여다보게 된 약자들의 삶을 그가 놓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형성그룹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비정규직들을 위해 시위에 나선다. 젊은 시절 갖고 있던 그 순수하고 선하며 정의로운 그 마음이 있어 그는 부당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맞서며 살아낸다. 정작 재현은 너무나 먼 곳으로 떠나 달라져 있었지만.

 

그래서 중년이 되어 재현이 지수를 찾아낸 건 어쩌면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지수를 만나 대학시절의 그 순수하게 피웠던 열정의 꽃을 다시금 들여다 본 그는 현재를 바꾸기 시작한다. 애초에는 복수심과 욕망으로 형성그룹 장산 회장과 맞서려 했지만, 지수를 만난 후 그는 본래 자신이 있었던 약자들을 들여다보고 정의를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비리를 고발해 장회장이 죗값을 받게 하고 주주총회를 통해 장 회장과 아내 장서경(박시연)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자신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전문경영인을 세워 회사를 정상화시킨 것.

 

불행했던 장서경과의 결혼생활을 마무리 지은 재현은 그렇게 먼 길을 돌아 다시 지수 앞에 선다. "찾았다. 윤지수." 재현의 그 말은 아마도 자신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현재의 재현은 지수를 찾아내고, 과거의 지수가 하는 말들을 들었고, 현재의 지수 역시 과거의 재현 앞에서 드디어 활짝 웃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재현이 과거의 재현을, 현재의 지수가 과거의 지수를 꼭 안아준다.

 

화양연화. 꽃처럼 예쁘던 순간들이 있어 우리는 어쩌면 견딜 수 있는 것이고, 그런 과거들을 매 기억 속에서 만남으로써 변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일 게다. 그 때가 화양연화였다고 말하는 이들은 그래서 지금도 화양연화다. 그건 잘 살고 못 살고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있는 화양연화다. 그래서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 아직 오지 않았다고 슬퍼할 것도 이미 지나버렸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 삶은 언제나 흐르고 있고 꽃은 언제든 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먼 거리를 버텨온 이들을 위해 <화양연화>가 건네는 위로다.(사진:tvN)

시대적 비극을 담아 '화양연화'가 하려는 이야기

 

아련했던 청춘시절의 첫 사랑을 추억하고 그 설렘으로 현재를 변화시키는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다. 물론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는 그런 이야기를 건네고 있지만 윤지수(이보영)와 한재현(유지태)이 겪어온 끝없는 비극은 현재까지도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래도록 여동생 지영(채원빈)과 차별받아왔던 지수. 남자친구 재현이 운동권이라는 이유로 아버지 윤형구(장광)가 공권력까지 동원해 그들을 막았고 결국 지수는 재현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백화점 붕괴 사고로 여동생과 엄마를 잃고 나서 재현을 떠났다. 군에 강제로 끌려간 재현을 만나러 갔던 그 날 여동생과 엄마가 케이크를 사러 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 지수는 이 일로 재현을 원망하게 될까봐 이별을 택했다.

 

지수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 엄마와 여동생이 사고로 죽었고, 아빠는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치매로 요양원에 입원중이다. 결혼에 실패해 이혼했고 부양하는 아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다 결국 자퇴를 하게 됐다. 그는 부당해고를 당한 노동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도우면서 살지만,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그러다 학부모로 다시 만나게 된 재현이지만 대기업의 사위가 되어 자신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런데 과연 재현의 삶은 평탄했을까. 대학시절 그토록 약자를 위한 삶을 살기 위해 싸워왔던 그가 어째서 형성그룹 회장 장산(문성근)의 사위이자 사냥개가 되어 갖가지 비리들에 대한 죄를 온전히 뒤집어쓰고 있을까. 뒤늦게 밝혀진 것이지만 군 생활을 하던 도중 아버지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됐고 그 이유는 형성그룹 장 회장이 사주한 노조파괴에 프락치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이용당했기 때문이었다. 재현은 지금 장 회장에게 복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너무 먼 거리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여겼던 지수와 재현은 이로써 어쩌면 공동의 목표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대학시절에 그러했던 것처럼 지수와 재현이 형성그룹과 맞서 약자들의 편에서 싸우는 그런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것.

 

<화양연화>는 지수와 재현의 삶에 드리워진 비극들을 통해 우리네 사회가 겪었던 아픔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1980~90년대 학생운동으로 겪은 아픔들은 물론이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같은 대형 사고들이 만들어낸 시대적 비극이 그러하다. 게다가 그 비극은 지금도 지속된다. 약자들은 여전히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고,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은 가해자를 피해자로 둔갑시키기도 하며 법 위에 군림한다.

 

그래서 <화양연화>의 지수와 재현이 그려나가는 사랑이야기는 적폐세력들과 싸우는 정의의 구현과 겹쳐진다.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이 피워가는 옛 사랑의 기억들은 그래서 당대의 순수했던 약자들을 위한 삶과 정의에 대한 불씨를 다시금 피워낸다. 과거에 이들의 사랑을 막아섰던 이들이 현재도 그들 앞에 서 있다는 건 이 드라마가 가진 목표를 사랑 그 이상으로 확장시킨다.

 

물론 이처럼 시대의 갖가지 비극들을 온전히 다 겪는 인물의 이야기는 다소 작위적인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또 드라마가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기보다는 과거를 회고함으로써 느리게 전개되고, 그 비극이 계속 반복됨으로써 답답하게 느껴지는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대를 살아온 중년의 시청자들은 이들의 사랑이 이제라도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동시에 과거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이들을 막아 세웠던 부정한 현실들이 청산되기를 기원하게 된다. 우리네 시대를 관통하는 비극들을 통해 사랑과 정의의 문제를 연결시켜놓은 이 부분은 <화양연화>가 가진 색다른 지점이 아닐 수 없다.(사진:tvN)

절반 지나온 '화양연화', 편안함과 느슨함 사이

 

tvN 토일드라마 <화양연화>가 절반을 지났다. 시청률은 4%대. 반응도 호불호가 갈리곤 있지만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그 절반을 통해 <화양연화>가 그리려는 이야기는 이제 대부분 드러났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여전히 서로를 잊지 못하고 사랑하는 한재현(유지태)과 윤지수(이보영). 하지만 중년이 된 그들은 서로 다른 삶의 지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학생 운동의 전면에 나섰던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대기업의 사위가 되어 온갖 약자들을 내모는 일들을 떠맡아 하고 있는 한재현. 반면 대학시절에 학생 운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다만 한재현을 사랑해 그 세계에 발을 디뎠지만 지금은 그렇게 밀려난 약자들의 편에 서서 함께 싸우는 윤지수. 그들은 그렇게 대척점 위에 서 있지만 재회하게 되면서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결혼한 한재현과 이혼해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는 윤지수 사이에는 건너갈 수 없는 강이 놓여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다가오면 한재현이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걸 아는 윤지수는 자꾸만 도망치지만 한재현은 현실에 상처 입은 채 살아가는 그를 보호해주고 싶어진다.

 

드라마는 절반을 지나오며 두 사람 사이의 간극을 좀체 좁히지 못했다. 여전히 한재현은 자신이 일하는 그룹의 빌딩 창문에서 건물 앞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윤지수를 바라본다. 그건 드라마의 도입 부분에도 그대로 나왔던 장면이다. 여러 차례 만났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도 했지만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자꾸만 과거로 돌아간다.

 

청년시절의 재현(박진영)이 지수(전소니)와 어떻게 만났고, 둘의 만남을 당시 검사장이었던 지수의 아버지 윤형구(장광)가 갈라놓았던 아픈 과거. 하지만 아픔만 있는 건 아니다. 그 아픔 속에서도 재현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추억처럼 펼쳐진다.

 

<화양연화>는 1980~90년대를 겪었던 중년들에게는 그래서 그 과거 장면들이 그려내는 추억들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 때 들었던 고 김현식의 노래나, MT로 자주 갔던 강촌역의 추억, 신촌 앞에 시대정신처럼 버티고 있던 서점 '오늘의 책', 심지어 최루탄이 날아들던 살풍경한 데모 현장까지도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런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은 사실상 <화양연화>가 꺼내놓으려는 메시지의 중심에 서 있다. 즉 어느새 나이 들어 그 시절로부터 멀리 왔고, 그래서 그 때의 순수했던 모습은 사라져버린 현재에 문득 그 때를 떠올려보게 만드는 것. 그래서 그 과거의 힘이 현재 또한 바꿀 수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신들은 중요하지만, 절반을 지나오면서도 여전히 같은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한재현과 윤지수의 모습은 조금은 지지부진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적어도 이제는 두 사람의 결단이 보고 싶고, 그 결단 속에서 과거 회상으로만 머물러 있는 사랑과 꿈 같은 것들이 현재화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특유의 편안함이 매력적인 드라마지만, 그게 너무 지속되면 느슨해질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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