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강조한 박, ‘서민’ 강조한 문

 

지난 2002년 고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광고에는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리고 던져진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라는 말 한 마디는 정책보다 더 강력한 이미지의 힘을 대선 광고를 통해 보여주었다.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의 그 유명한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광고는 욕 먹으며 밥 먹는 장면을 통해 당시 이명박 후보의 경제대통령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이 말은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위험한 발상을 담고 있었지만 당시 팍팍한 서민들의 귀에는 달콤하디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사진출처:새누리당, 민주통합당

광고는 물론 실상이라기보다는 이미지에 더 가깝다. 그것이 광고가 가진 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밥집 광고에 등장하는 욕쟁이 할머니는 연기자였음이 밝혀지기도 했고 <MB의 추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이 광고의 메이킹 필름을 통해 그 이미지가 얼마나 허상인가를 폭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대선 광고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짧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그래서 더 압축적이고 더 이미지적이다. 따라서 그 이미지의 파괴력을 가진 대선 광고는 그만큼 조심스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첫 선을 보인 광고 안에는 어떤 이미지 전략이 들어있을까.

 

왜 박근혜는 ‘상처’를 끄집어냈을까

박근혜 후보는 첫 광고에서 ‘상처’를 끄집어냈다. 2006년 신촌 피습 사건 장면이 스틸 컷으로 들어가고 뺨 부위에 테이프를 붙인 박 후보의 옆얼굴과 그로 인해 남게 된 상처의 흔적을 클로즈업하면서 그 위에 ‘그날의 상처’의 의미를 되새겼다. 박 후보의 쾌유를 비는 시민들의 촛불집회 장면이 삽입되고 “여러분이 저를 살려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남은 인생 국민들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겠다고 결심했습니다.”하고 자신의 출마 근거를 제시한 후 마지막에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입니다.”라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그 캐치 프레이즈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지만 이 광고가 끄집어내는 건 박근혜 후보가 가진 ‘상처’의 이미지다. 물론 독재 정권이 가진 한계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어찌됐든 그녀의 부모가 모두 총탄을 맞고 사라진 사실에 대한 보수층의 동정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이것은 정치와는 무관해보이지만 박근혜 후보가 가진 이미지적인 힘의 원천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정책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과거 독재정권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반면, 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때 동정적인 이미지는 더 커진다. 이것은 박근혜 후보가 유독 대선 토론을 회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정책적인 약점이 있다기보다는 이미지적으로 유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처를 드러낸 박근혜 후보의 첫 대선광고는 바로 그 정책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동정적인 이미지를 끌어내기 위함이다. 여기에 자연스럽게 부가되는 것은 ‘여성’이라는 위치가 만들어내는 막연한 ‘희생’ 같은 이미지다. “이제 여러분께 저를 바칠 차례”라는 말은 그래서 다양한 뉘앙스로 읽힌다. 그것은 자신을 살려낸 국민들에게 이번에는 자신이 국민들을 살려낼 차례라는 뜻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개발시대의 향수를 가진 보수층들에게는 그녀의 부모를 잇는 희생처럼 들리기도 한다.

 

‘서민’을 끄집어낸 문재인이 주장한 세 가지

‘내가 만일 하늘이라면. 그대 얼굴에 물들고 싶어-’ 문소리가 부르는 가수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 바탕으로 깔리고 문재인 후보의 자택 일상이 광고에 담긴다. 이것은 여러모로 박근혜 후보가 갖고 있는 귀족적인 이미지와의 차별화를 위한 포석이다. 가사가 전하는 ‘하늘’과 ‘그대 얼굴’은 기묘하게도 대통령과 서민의 이미지로 전화된다. 일상적인 장면 속에는 문재인 후보가 소파에 앉아 책을 보거나 잠깐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들어있지만 그 깔리는 목소리기 무수한 연설 속에서 그가 했던 목소리들인 것도 마찬가지다. 즉 일상과 정치가 하나로 엮여진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다.

 

이것은 문재인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수평적인 대통령의 이미지다. 한 편에서는 열심히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일상이 깔려 있고 서민이 스며있다는 것. 문재인 후보는 광고를 통해 국민여러분에게 묻는다. “국가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십니까? 나의 어려움을 함께 걱정해주는 정부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아마도 서민들이 지금의 정부에게 가진 가장 큰 아쉬움일 것이다. 나라는 세계 몇 위의 경제 대국이라고 연일 대서특필되지만 정작 더 팍팍해져만 가는 서민들의 삶. 문재인 후보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그런 서민들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역할을 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던진 세 마디는 대단히 인상적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을 잡아낸다. 평등한 기회와 공정한 과정 그럼으로써 생겨나는 정의로운 결과가 바로 문재인 후보가 국정 운영을 통해 세우려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과제라는 것. 그럼으로써 마지막 슬로건이 제시하듯 ‘사람이 먼저’인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이 이 광고의 주 메시지다.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의 첫 광고 이미지 전략은 이처럼 서로 판이하다. 박근혜 후보의 광고가 정책적인 내용이 쏙 빠져버린 한계를 지니면서도 동정적인 이미지가 가진 힘을 한껏 강조함으로써 박근혜 후보가 가진 장단점을 제대로 활용해내고 있는 한편, 문재인 후보의 광고는 서민적인 이미지와 함께 자신의 핵심적인 정책 기조를 제시하고 있다. 물론 광고의 이미지적인 힘으로만 보자면 문재인 후보의 첫 번째 광고는 이미지와 정책 기조가 결합됨으로써 박근혜 후보의 광고에 비해 집중력이 조금 떨어지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 정책 기조가 현실로 다가오는 서민들에게는 어쩌면 그의 광고가 훨씬 더 실제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첫 포문을 연 두 후보들의 이미지 전쟁. 향후의 전략적 행보가 자못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MB의 추억', 유인촌도 울고 갈 명연기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럴 에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우리는 욕쟁이 할머니가 이렇게 맛깔난 욕을 툭툭 쏟아냈던 이명박 대통령의 당시 선거 광고를 기억한다. 뜨거운 국밥을 연거푸 입에 넣으며 욕을 듣는 이명박 당시 후보. 그런데 욕쟁이 할머니의 욕들은 조금씩 뉘앙스를 바꿔나간다.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더줘? 더 먹어 이놈아.” 이제 욕은 욕쟁이 할머니의 진술과 행동을 통해 밥이라는 격려로 바뀌게 된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이 말은 설사 욕먹을 짓을 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밥이라도 챙겨주자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끌어낸다. 밥은 여기서 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사진출처:영화

기가 막힌 이 이미지 광고는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주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현재, <MB의 추억>은 이 광고를 다시 끄집어낸다. 당시 광고에 자막과 함께 내레이션으로 들어간 “이명박은 아직 배고픕니다”라는 말은 그러나 이제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를 아프게 한다. 그것이 사실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 의지의 배고픔이 아니라,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탐욕의 배고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든 게 거짓 이미지였다. 국밥집 욕쟁이 할머니는 사실 연기자였고, 광고 속 내용에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제작진의 칭찬을 들을 정도로 명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산 코미디’라고 붙였고, 그래서 이명박 당시 후보가 등장하는 첫 장면부터 끝날 때까지 웃음이 빵빵 터지지만 절대 웃을 수만은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MB의 추억>이다. 그 화면 속에는 유인촌 전 장관이 등장해 “지금 우리에겐 영웅이 필요한 시절, 그분은 누구인가”하고 소리친다. 그리고 그 유명한 747공약(7% 성장, 4만 달러 시대, 7대 강국)을 설파한다. 유인촌은 90년에 방영되었던 KBS <야망의 세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역할(이 드라마는 이명박을 모델로 했다)을 했던 연기자. 그런 그가 ‘영웅의 시대’를 말한다. MBC에서 당시 방영되었다 이명박 당시 대선후보를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던 <영웅시대>를 끄집어낸 것. 이미지는 그렇게 당시 힘겨웠던 서민들의 눈을 현혹하게 만들었다.

 

영화는 당시 대선의 풍경을 조목조목 잡아내가며 그것이 일종의 쇼였음으로 상기시킨다. 대선 후보들이 재래시장의 상인들이 주는 음식을 꾸역꾸역 받아먹는 장면은 실로 압권이다. 여기서 이명박 당시 후보는 국수를 두 그릇이나 뚝딱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동영 당시 야권 후보가 연설 도중에 한 유권자가 자꾸만 먹으라는 음료를 “연설 끝나고 먹겠다”고 버티는 장면과 병치된 이 국수 시퀀스는 당시의 야권의 무능까지도 포착해낸다. 당시 야권은 이 정치쇼에서 연기조차 출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이명박 당시 후보는 안 해본 것 없는 백전노장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뭐든 다 해봤다고 말하는 그는 풀빵 장수에게 자신이 어설프게 만들어 잘 익지도 않은 풀빵을 서민들에게 건네면서 불이 약하다고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단한 순발력이다.

 

‘우리가 강제한 것이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대가를 치르는 거야.’ 이 괴벨스의 어록으로 시작해서 이 어록으로 끝나는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은 단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정치를 혐오하고 그래서 무관심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각종 거짓말과 연기로 만들어진 이미지에 호도되어 치렀던 그 대선이 가져온 대가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그 아픈 꾸짖음을 감독의 목소리가 아니라 당시 선거운동을 하며 소리쳤던 이명박 후보의 목소리로 전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지난 5년간 잘했어야지, 어제 못한 사람이 내일 잘할 수 있어요? 정권을 바꿔야 합니다." 이 당시 유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발언은 2012년 <MB의 추억>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시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날아온다.

 

“국민에게 겁을 먹어야 하는데, 국민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마음대로 하는 건 줄 알아요. 기가 막혀요, 정말. 우리 대한민국을 다시 만들어놔야 합니다.” <MB의 추억>을 통해 보여주는 이명박 대통령이 했던 당시의 이 유세 발언은 지금 대선을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또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이 나쁜 X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문제”라고 한 전여옥 전 의원의 발언도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MB의 추억>은 우리에게 거짓말과 명연기로 코미디가 되어버린 당시 대선의 풍경을 아프도록 웃기게 보여준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 명연기.

정치광고 속 후보들의 이미지 전략

존 레논의 ‘이매진(Imagine)’과 함께 흘러내리던 한 방울의 눈물, 그리고 쐐기를 박는 말.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이 TV광고는 이미지가 정책보다 더 대중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정치광고시대를 여는 신호탄이었다. 물론 대중들이 그 광고에서 존 레논의 ‘이매진’이 담고있는 반전, 무신론, 무정부주의 등의 사상을 보진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광고 속에는 아무런 정책이나, 적어도 정책에 관련된 뉘앙스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왜 노무현의 눈물 한 방울이 대한민국을 바꾸는 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미지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이것은 대선을 며칠 앞두고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대선 광고는 이미지 전쟁 중이다.

좋은 대통령 정동영, 네거티브 전략
정동영의 광고전략은 네거티브 전략이다. 메인 타이틀로 ‘좋은 대통령’을 내세우는 것은 반대로 ‘나쁜 대통령’을 비판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인 셈. ‘프리허그’를 차용한 첫 광고는 서로 안아주는 장면들과 정동영이 등장하면서 ‘이제 희망을 안으세요. 여러분의 희망이 되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연결되고 거기에 사람들의 “좋은 대통령 되세요”라는 말에 정동영이 “따뜻하고 행복한 나라 함께 만드시죠.”라고 하며 끝난다. 광고 컨셉은 따뜻하고 행복한 이미지를 프리허그를 통해 보여주면서 여기에 정동영 후보의 모습을 넣어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행복을 꿈꾸는 소년’편 역시 이 범주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이의 행복을 꿈꾸는 정동영과 그간의 정치행적을 ‘죄송하고 미안하고 그럼에도 사랑하고 약속하는’ 말로 집약적으로 풀어내면서 ‘가족이 행복한 나라’를 꿈꾸는 정동영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후에 나온 광고들은 본격적인 네거티브 전략을 끄집어낸다. 다분히 젊은 세대의 표심을 의식한 ‘랩 배틀’편은 랩이 가진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컨셉을 이명박 후보의 ‘나쁜 대통령’ 이미지를 끄집어내는데 활용한다. 또한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락 버전으로 흘러나오면서 ‘나쁜 대통령’의 거짓말을 부각시킨 ‘거짓말’편도 이 맥락을 거의 이어가고 있다.

정동영의 광고는 좋은 대통령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이미지 광고에, 상대편 후보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병치한다. 지나친 네거티브 전략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가운데, 정동영 후보는 이에 대해서 “상대편이 워낙에 문제가 많다”는 쪽으로 공세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정동영 후보의 광고는 ‘자신이 왜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로 ‘상대방이 나쁘니까’ 라는 진술방식은 자칫 국민의 선택을 최선이 아닌 차선으로 몰고 가는 정치적 냉소주의로 흐를 수 있지 않을까.

경제 대통령 이명박, 다 나빠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
정동영 후보의 공세에 대해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그 자체로 답변을 담고 있다. ‘욕쟁이 할머니’편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왜 하필이면 이명박 후보가 찾아간 인물이 욕쟁이 할머니여야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광고는 고도의 심리적 장치들이 숨겨져 있는데 그것은 먼저 욕쟁이 할머니라는 인물에 시청자들을 감정이입시키는 부분에서부터 살아난다. 이명박 후보는 그것이 뭐든 이 광고 속에서 욕을 먹는다. 이것은 현실에서 그 자신이 이런 저런 구설수로 욕을 먹고 있는 상황을 고스란히 광고 영상 속으로 끌어들인다.

하지만 이 욕은 욕쟁이 할머니라는 캐릭터로 들어오면서 부정을 위한 욕이 아닌 긍정을 위한 욕으로 치환된다. “맨날 쓰잘데기 없이 쌈박질이나 하고 지럴 에이 우린 먹고살기도 힘들어 죽겄어.” 이것은 욕쟁이 할머니의 입으로 나오는 국민들의 정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어지는 욕들은 조금씩 색깔을 달리한다. “청계천 열어놓고 이번엔 뭐 해낼껴, 밥 더줘? 더 먹어 이놈아.” 욕을 먹던 이명박은 이 부분에서 밥을 먹는다. 즉 욕은 욕쟁이 할머니의 진술과 행동을 통해 밥이라는 격려로 바뀌게 된다. “밥 쳐먹었으니께 경제는 꼭 살려라잉 알겄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져지는 이 말은 설사 욕먹을 짓을 했더라도, 경제를 살리겠다는데 밥이라도 챙겨주자는 경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끌어낸다. 밥은 여기서 표와 거의 같은 의미를 가진다.

이어지는 이명박 후보의 ‘살려주이소’편도 결국 경제 이야기다. 여기서는 “살려주이소”라는 말의 힘에 기대어, ‘살기 힘들어 죽겠다’는 국민들의 절박한 심정을 부각시키면서‘경제를 살려달라’는 의미를 끄집어낸다. 시장과 서민들의 이미지에 눈물을 보태면서 이명박 후보는 상대적으로 허점이 될 수 있는 구설수들을 ‘경제를 살리라’는 지상과제 아래 불식시킨다. 한편에서는 전라도 사투리, 다른 한편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넣어 지역배분까지 고려하는 이명박 후보의 광고는 치밀한 전략과 한 가지 메시지에 천착하는 힘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만 살리면 다 용서된다’는 컨셉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놓고 보면 위험한 발상은 아닌가 짚어봐야 할 것이다.

반듯한 대통령 이회창, 아직도 반듯한 이미지?
광고 전략으로서 개인의 이미지보다는 정책이 가진 이미지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이회창 후보의 광고는 다른 후보들과 차별화 된다. 광고는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아버지의 마음, 무너진 교육을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의 마음, 어려운 현실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가장의 마음을 안다는 진술 끝에 이회창 후보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는 출마선언과 낙방을 ‘국민의 마음을 알게된 계기’로 전환시키고 있다. 이로써 이 광고는 가정, 교육, 사회, 경제 전반을 모두 담으면서 거기에 ‘반듯하다’는 한 마디로 이회창 후보의 이미지를 세워놓는다.

감정적인 소구를 하기보다 그저 담담하게 내용을 담았다는 점은 인정할 만 하지만, 이미지 정치광고가 한창인 요즘, 광고로서는 너무 약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광고에 힘을 쓰지 못했던 이회창 후보의 광고가 다시금 떠오르는 건, 당시에 보였던 정책적인 뉘앙스들이 여전히 광고 속에 스며있고, 이회창 개인의 이미지가 지난 대선과 거의 다르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똑같은 반듯한 이미지가 이번에는 힘을 발휘할지 두고볼 일이다.

광고의 이미지, TV토론으로 이어지길
문국현 후보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키워드를 내세워 말은 그럴싸하게 하지만 실제로 국민을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깨끗함, 글로벌 경제인, 존중하는 인물로 내세운다. 문국현 후보가 광고로 세우는 이미지는 ‘믿을 수 있는 경제대통령’, 즉 경제도 알고 깨끗한 정치인의 이미지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서 끌어온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점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광고 중간 이후부터 컨셉이 하나로 집중되기보다는 문국현 후보의 다양한 일면을 나열하고 있어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또한 권영길 후보는 그 칼날을 삼성에 직설적으로 겨누면서 정치가 혼탁하고 경제가 어려운 것이 ‘60년 부패 고리’에 있으며 그것을 끊는 자신이 ‘세상을 바꾸는 대통령’이 될 것임을 강조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삼성을 대변하는 TV와 휴대폰을 집어던지고 터뜨리는 장면은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이미지를 구축한다. 하지만 경제적 이슈가 최고의 가치가 된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의 이런 이미지가 효과를 발휘할 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권영길 후보는 광고를 통해 확실한 자기 색깔을 보여준 셈이다.

정치광고시대에 대선 후보들의 광고는 이제 어떤 이미지를 내세우는가가 관건이 되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감성적인 이미지로서 후보를 어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언어가 영상이 된 영상시대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광고 이미지들이 정책으로 고스란히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상시대에 광고가 아닌 정책 대결을 보여줄 수 있는 TV토론은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선 후보들은 자신들이 내세운 광고의 이미지가 TV토론에서의 정책과 잘 맞물리는지, 유권자들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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