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OST만 틀어놔도 확 달라지는 여행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년 개봉 당시 봤던 분들이라고 해도 그 영화 속 줄거리들을 줄줄이 꿰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절대로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들이 있다.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철길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치고 박던 장면들이 그것이고, 추적추적 내리며 빗 속 계단을 내려오는 안성기를 배경으로 흐르던 OST, 비지스의 ‘Holyday’가 그것이다. 듣기만 해도 시간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노래, 그것도 영화의 한 장면과 연결되는 OST. 그 장면의 촬영지로의 여행. 실로 탁월한 조합이 아닐까.

 


'1박2일(사진출처:KBS)'

<12>이 이른바 ‘OST로드를 따라가는 여행을 제안한 것은 그것이 가을의 감성과 너무나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 이미 <12>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옛 노래와 함께 하는 여행을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건 OST. 노래가 순식간에 우리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준다면, 그 노래가 흘러나왔던 영화의 한 장면은 그 때의 감성들을 새록새록 다시 깨워낸다. 바로 그 장면이 찍혀진 장소로의 여행은 그래서 과거의 한 때로 떠나는 여행이 된다.

 

영화 <봄날은 간다>가 촬영된 대나무숲이 있는 삼척 신흥사는 2001년 개봉 당시 꽤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끈 촬영지였다. 영화 속 남자주인공이었던 유지태가 하던 일이 바로 소리를 채집하는 것이었는데, 대나무들이 서로 바람에 부대끼며 내는 소리를 유지태와 이영애가 함께 앉아 담아내던 그 장면이 촬영된 곳이었다.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대나무들의 아우성이 들릴 그 곳이 주는 아련한 감성이란.

 

물론 <12>은 이 추억 돋는 영화OST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시간여행에서도 본분인 웃음을 잊지 않는다. 영화 속 장면들은 기발한 복불복 게임으로 패러디되어 포복절도의 웃음을 만들어낸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마지막 격투신은 <12>의 물 풍선을 옷 안에 넣고 벌이는 복불복 게임으로 바뀌어 기묘하고 이상야릇한 장면들을 연출해낸다. 격투신이 에로틱한 분위기의 브로맨스(?) 장면처럼 바뀌고, 멋진 액션이 얼굴에 검댕을 묻히는 드잡이로 바뀔 때 <12>만의 웃음이 피어난다.

 

<봄날은 간다>의 그 유명한 명대사 라면 먹고 갈래요?”<12>을 통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게임으로 변모했고 각종 컵라면을 먹으며 술래에게 다가서는 장면들이 <12> 특유의 캐릭터들과 만나면서 큰 웃음을 주었다. 라면 하나하나의 특성까지 파악해 자막으로 끼워 넣고 거기에 난이도를 부여하는 디테일들은 게임의 묘미를 더욱 흥미있게 만들었다.

 

돌아보면 모든 게 아름답다고 했던가. <12> OST로드는 누구나 공유했던 한 시절을 영화 OST라는 장치 하나로 떠올리게 하고는 그 감성을 되살려 놓는 동시에 그걸 뒤집어 복불복 게임의 웃음으로 이어가는 변주를 보여줬다. 추억의 한 자락이 주는 흐뭇한 공감대와 동시에 어딘지 가라앉을 수 있는 가을의 감성을 명랑한 웃음으로 전화시켜 놓았던 것.

 

가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바쁘게 봄과 여름을 달려왔다면 이제 조금은 멈춰 서서 되돌아보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 한 때의 추억을 돋워주는 OST가 함께 한다면 어떨까. 마치 영화 속 주인공이 된 양, 흐뭇하고 유쾌한 추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12>이 음악과 영화와 여행의 기막힌 조합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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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의 작품성과 상품성

이명세 감독의 ‘M’에 대한 반응이 양극단으로 엇갈리고 있다. 한편은 이 기존 내러티브 형식을 파괴한 영화의 시도를 참신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반면 다른 한편은 관객을 지독한 혼란 속에 빠뜨리는 이 영화를 감독 자신의 과잉된 자의식의 산물로 보는 쪽이다. 무엇이 이렇게 엇갈린 반응을 만들었을까.

내러티브 vs 비내러티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내러티브의 세계다. 내러티브는 일정한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관계로 엮어진 실제 혹은 허구적인 사건들의 연결을 의미한다. 즉 현실에 있을 법한 그럴듯한 세계가 우리가 영화를 통해 익숙하게 봐왔던 것들이며, 보기를 기대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M’이 그리는 세계는 내러티브의 세계만이 아니다. ‘M’은 꿈이라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그려내는 작품이기에 논리적인 연결고리가 느슨하게 되어있다. 영화를 보면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소설 속의 내용인지를 헷갈리게 되는 것이다.

관객들은 이 헷갈리는 미로 속에 들어가 갑갑함을 느끼면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이미지와 음향의 세례를 받아낼 수밖에 없다. 영화를 보면서 이 초반부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면 꿈의 세계를 보다 지쳐 잠이 들 수도 있다. 이것은 관객들이 불편해하고 한편으로는 불쾌해하는 이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돈주고 영화관까지 가서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하느냐는 거다. 그런데 감독은 바로 이 관객을 혼동에 빠뜨리는 부분을 의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민우(강동원)가 겪는 바로 그 혼동을 똑같이 느끼게 의도했다는 말이다.

동화(同化) vs 이화(異化)
이명세 감독의 이 말은 마치 관객이 민우에게 동화되기를 기대했다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이 부분은 그다지 성공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관객들이 민우에게 동화되었다면 영화는 민우의 감정선을 따라서 움직여야 할텐데, 그러한 공감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는 영화 속 주인공이나 스토리에 동화되어 몰입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이 되어 영화를 보는 자신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속 민우의 첫사랑, 미미와의 아련한 기억이 예쁜 그림으로 그려지기는 하지만, 민우를 혼동에 빠뜨릴 정도의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 이 부분이 그나마 이 영화 속에서 내러티브를 갖는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물론 이미지는 파격적이지만) 스토리는 관습적이다. 이것이 관객들을 불편하게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초반부의 힘겨운(?) 이미지들을 겨우 버티고 봐왔는데 결국 얘기란 것이 고작 관습적인 첫사랑이라니.

영상 vs 스토리
하지만 영화를 내러티브로 보지 않고 이명세 감독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잔치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영화가 말해주는 것보다는 영화가 보여주는 것에 더 열광한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영상의 언어가 모국어임을 자처한다. 만일 이 말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 영화는 시도 자체가 의미 있는 작품이 된다. 헐리우드 장르에 의해 만들어진 관습적인 내러티브 구조 속에서 영화가 가진 영상미학은 시도 자체가 거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M’의 시도는 내러티브라는 족쇄에 묶여있는 영화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는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런 실험적인 시도를 지금의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이다. 내러티브에, 동화(同化)에 익숙해져 그런 영화에 기꺼이 주머니를 열어왔던 관객들은 아마도 속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대중들의 기호를 도외시하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예술에 대해서 이제 대중들은 용납하려 들지 않는다. 특히나 대중문화라고 불리는 영화라는 장르에 있어서는 더더욱.

작품 vs 상품
이명세라는 감독과 강동원이라는 아이콘이 주는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던 분들은 이러한 불편함 속에서 극장을 나서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이명세 감독과 강동원이라는 배우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예술인이라는 측면과 함께, 대중문화에서 소비되는 상품으로서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다. 영화가 상영되기 전까지 이들은 상품으로서 홍보되고 광고되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며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나쁘다는 의미도 아니다.

‘M’이 영화 홍보에 있어서 그렇게 ‘첫사랑’이라는 단어에 천착하고, 거기에 강동원과 이연희의 아련한 이미지를 포장시킨 것은 상품으로서의 영화를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물론 그것 자체에도 나름대로의 영화적인 재미가 있는 게 사실이다. 첫사랑이란 코드는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련한 아쉬움’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M’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는 작품으로서의 ‘M’과, 상품으로서의 ‘M’ 사이에 벌어진 균열 때문에 생긴 것이다. ‘M’을 예술작품을 보듯 진지하게 바라본다면 그 낯설고 불편한 이미지들 속에서 어쩌면 초현실주의 그림들과 현대음악을 발견하는 재미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데이트를 하다가 강동원이라는 아이콘과 첫사랑이라는 문구에 극장을 들어섰다면 자칫 불편함만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M’은 작품성은 뛰어나지만 상품성은 떨어지는 영화다. 재미의 기준을 작품성에 두고 보면 재미있지만 상품성에 두고 보면 재미없는 영화다. 그리고 그 재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관객의 몫이다. 다만 재미있다, 없다를 떠나서 장르적이고 관습적인 기획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M’이 보여준 시도 자체를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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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의 미로 속에서 찾은 소중한 기억

누구나 무언가 소중한 기억을 잃어버린 적이 있다. 삶은 채워지는 만큼 비워내야 하고 그 비워낸 것은 기억 저편으로 잊혀지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그 잊혀진 기억들은 정말 영원히 사라진 걸까. 아니다. 그것은 저 무의식의 어두운 창고 속에 숨겨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의식이 잠을 자는 순간 작은 틈새를 타고 창고를 빠져나온다. ‘M’은 바로 그 무의식의 창고 속에 숨겨져 있던 첫사랑을 안타깝게 대면하는 영화다.

빛과 어둠으로 포착한 몽환의 세계
영화는 최연소 베스트셀러 소설가 민우(강동원)의 1인칭 시점으로 그의 무의식을 따라간다. 그러니 영화 속에는 세 가지 차원이 겹치게 된다. 그것은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무의식과 의식이 혼재된 소설이다. 이 세 차원이 겹치는 영화 초반부의 비연속적이며 비논리적인 이미지들의 폭풍은 보는 이를 당황케 만들 정도로 파격적이다. 영화의 내러티브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 하지만 기성영화문법이나 이미지에 저항하지 않고 보다보면 그 새로움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선명하게 무의식의 이미지를 잡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명세 감독이 이미 ‘형사, Duelist’에서 실험한 바 있는 어둠으로 포착되는 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둠은 투명한 액체처럼 경계를 나누고 그 밖으로 튀어나온 빛에 어떤 표정을 만든다. 민우가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얼굴을 들이밀 때, 중요한 것은 드러난 얼굴이 아니라 어둠 저편에 숨어있는 수많은 표정들이다. 빛으로 드러난 얼굴이 의식이라면 드러나지 않는 어둠은 무의식이 되는 식이다.

이 빛과 어둠으로 포착되는 비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꿈의 이미지들은 그러나 놀라운 경험을 안겨준다. 내러티브 없이 던져지는 이미지와 알 수 없는 효과음만으로도 영화는 멜로의 잔잔함과, 미스테리의 긴박감, 코미디의 경쾌함 같은 것을 모두 느끼게 해주니까. 이야기 없이도 이미지가 전달하는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이명세 식의 새로운 영화에 빠져들었다는 얘기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들어가는 멜로
그런데 도대체 왜 영화는 민우의 무의식을 이다지도 거창한 긴박감과 경쾌함을 넘나들며 전달하려 하는 것일까. ‘M’이 가진 나름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얘기해보면 허탈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이 영화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잘 나가는 소설가 민우가 은혜(공효진)와 결혼하기 전, 첫사랑이었던 미미(이연희)를 떠올린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 구조는 무의식을 그대로 이미지화 하는 영상과 만나면서 산 자인 은혜와 죽은 자인 미미 사이에 갈등하는 민우라는 기이한 멜로를 형성한다.

즉 (민우의 기억 속에 있는) 미미는 민우가 은혜와 결혼하면서 자신이 잊혀질까봐 전전긍긍한다. 물론 이것은 논리적으로 말하면 미미라는 첫사랑의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은혜라는 사랑을 맞아들이는 민우의 죄책감 같은 것이다. 민우는 소설을 통해 미미에 집착하고, 은혜는 살아있는 자신보다 죽은 미미에 빠져드는 민우를 못마땅해 한다. 그리고 민우는 수많은 거울 앞에서 갈등한다. 거울 저편으로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이쪽에 남을 것인가. 물론 결론은 나와 있다. 미미가 무의식, 꿈의 인물이라면, 은혜는 현실의 인물. 따라서 민우가 현실을 포기하고 꿈을 선택할 리가 만무하다.

‘M’, 잃어버린 기억을 부르는 암구호
그리고 이것은 마지막 민우의 내레이션처럼 우리네 삶의 한 부분을 말해준다. 누구나 지워버린 기억이 있고 그 지워진 자리는 새로운 기억이 차지한다. 그것은 어느 날 카페에서 받았다가 잃어버린 성냥갑처럼 아주 작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작은 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한 때는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소중한 것이었다. 영화는 지워져 가는 기억을 대변하는 미미가 첫 장면에서 하는 말을 되새기게 만든다. “난 나중에 당신이 아주 많이 슬퍼했으면 좋겠어.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도 내 생각이 나서 펑펑 울었으면 좋겠어.” 소중하지만 지워져가는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이 압축된 이 대사는 이명세 감독이 관객들에게 ‘M’을 선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M’은 그러니까 잃어버린 기억을 부르는 암구호이다. 그것은 미미에게 민우일 수도 있고, 민우에게 미미일 수도 있다. 그것은 또한 민우에게 미미가 그렇듯이 예술을 하는 이들에게는 영감(Muse)일 수 있고,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기억(Memory)일 수 있다. “해봐요. 머리 속에서 빙빙 돈다는 얘기. 담배연기를 뿜어내듯 머리 속에 있는 얘기를 시원하게 뿜어내 봐요.” 미미의 이 말은 관객에게 실로 의미심장하게 다가갈 것이다. 깊은 어둠 속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 가녀린 성냥불에 의지해 길을 찾아나가듯, 영화를 보며 각자 자신만의 소중한 ‘M’을 찾아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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