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팔> 오인방,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까닭

 

tvN <응답하라1988> 역시 심상찮다. 이미 <응답하라1997>이 서인국과 정은지라는 가능성들을 발굴해냈다면 <응답하라1994>는 정우, 유연석, 김성균, 손호준 등을 스타덤으로 올렸다. 이제 <응답하라1988>의 차례다. 4회가 지났을 뿐이지만 이미 이 드라마의 이른바 쌍문동 5총사에 대한 호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매력 터지게 했을까.

 


'응답하라1988(사진출처:tvN)'

<응답하라1988> 4회의 소주제는 ‘Can’t help ~ing’.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성문종합영어를 통해 영어문법을 배웠던 세대라면 익숙한 이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표현하자면 이제 이들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가 되지 않을까. 연전연승을 하던 바둑천재 택이(박보검)가 신예에게 지는 징크스를 보이고 의기소침할 때 덕선(혜리), 선우(고경표), 정환(류준열), 동룡(이동휘)이 그를 찾아와 한 건 위로가 아니라 공감이었다. 골목집 이웃들이 위로할 때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던 택이는 차라리 욕을 하라는 친구들의 말에 비로소 웃음을 지었다.

 

저런 친구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도 <응답하라1988>을 보면서 느끼는 시청자들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늘 툭탁거리고 어딘지 무심한 듯 해도 늘 마음으로 신경을 써주는 친구들. 아버지에게 유품으로 받은 목걸이를 풀고 다니라며 으름장을 놓는 선배 선도부원에게 보다 못해 선방을 날려버리고 할 말 안할 말 가리면서 해라고 뱉어내는 정환의 모습은 그들의 우정이 어디까지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덕선과 경주 수학여행에서 우연히 스킨십을 하게 되고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을 갖게 된 정환이 속내와 달리 덕선에게 툴툴대는 모습은 귀엽기 그지없다. 흔들릴 때마다 곡소리가 나는 만원버스에서 덕선을 지켜내려(?) 팔뚝에 힘줄이 빡 선 채 그녀를 보호하는 모습은 그 풋풋함에 보는 이들의 마음 한 구석이 푸근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게다.

 

먼저 가신 아빠를 대신해 반듯하게 살아가며 엄마를 챙기는 바른 생활 사나이 선우는 또 어떤가. 운동 잘 하고 공부 잘 하는 엄친아에다 선배의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두 눈 똑바로 뜨는 정의파다. 그가 맛없는 반찬을 매번 싸주는 엄마에게 내색하지 않고 꾹꾹 반찬을 다 챙겨먹는 모습은 소소해보여도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말이 거의 없지만 어딘지 슬픔을 가득 머금고 있는 듯한 택이는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모친상을 치르고 돌아온 성동일이 택이가 따라주는 소주 한 잔을 마시며 넌 언제가 엄마가 가장 보고잡냐고 물었을 때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항상 그렇다고 말하는 택이에게서는 이 어른처럼 의젓해 보이는 그가 사실은 엄마가 그리운 아이라는 걸 보게 된다.

 

친구들 사이에서 늘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고 웃음을 주는 동룡이는 어딘지 겁 많게 생겼지만 귀여운 사고뭉치다. 어떤 또래집단 친구들 사이에 꼭 한 명씩 있을 법한 그런 친구. 늘 주인공은 아니지만 알고 보면 항상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이 그 때문이라는 걸 후에야 알게 해주는 그런 친구가 바로 동룡이다.

 

여자 주인공 덕선은 공부는 잘 못해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깊고 언니와 매일같이 으르렁대고 싸우지만 그 누구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깊은 아이다.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오열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나 또 아빠의 심경이 못내 신경 쓰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 마음씀씀이가 엿보인다. 여자가 아닌 여자사람친구로 있던 그녀가 차츰 여자로서의 마음을 갖게 되는 그 과정은 보는 이들마저 설레게 만든다.

 

혜리, 고경표, 류준열, 박보검, 이동휘. 우리는 <응답하라1988>이 시작될 때까지 이들의 면면들을 잘 몰랐던 게 사실이다. 물론 박보검이야 다른 드라마에서도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였던 친구이고 고경표도 최근 들어 영화 등을 통해서 연기변신까지 보여주고 있지만 류준열이나 이동휘는 잘 눈에 띄지 않았던 연기자들이다. 물론 혜리는 연기력 논란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벌써부터 매력적인 연기자들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 속에 잠재되어 있던 가능성들이 <응답하라1988>의 캐릭터를 만나 그 매력을 풀풀 풍기고 있는 것. 아마도 <응답하라1988> 이전과 이후로 나뉘어질 이들의 매력 터짐의 비결은 역시 찰떡궁합 캐릭터와의 조합에서 나온다. 역시 놀라운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의 안목이자 재주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단 몇 회만에 이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다니.



tvN의 히트상품들 뒤에는 이명한 본부장이 있다

 

“<삼시세끼><꽃보다 할배>도 이명한 본부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들이었죠.” <삼시세끼>의 최재영 작가는 tvN 이명한 본부장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제작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많죠. 또 사업적인 인간관계가 뛰어난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둘을 다 겸비한 사람은 많지 않죠. 이명한 선배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삼시세끼>의 나영석 PD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배를 물어보자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명한 본부장(사진출처:tvN)

흔히들 이명한 사단이라고 부르는 이들, 이를테면 나영석 PD를 위시해 신원호 PD나 이우정 작가 최재영 작가 등등은 하나 같이 지금의 자신의 위치가 가능하게 해준 인물로 이명한 본부장을 꼽는다. KBS 시절, <해피선데이>에서 <12><남자의 자격>으로 주말 예능의 신기원을 세운 그 이면에서부터, tvN으로 이적해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응답하라 1997> 등의 성공은 물론이고 최근 고민구 PD가 성공시킨 <집밥 백선생> 같은 프로그램의 이면에도 이명한 본부장이 있다.

 

최재영 작가에 의하면 <삼시세끼>는 실로 기존 예능의 제작방식으로 보면 망할 수밖에 없는 아이템들의 총집합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나영석 PD와 제작진들이 첫 촬영 후 이건 진짜 망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했다는 데서도 나타난다. “그런 아이템을 누가 선뜻 하라고 지지해주겠어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건 뒤에서 늘 든든하게 일선의 PD와 작가들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이명한 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그가 본부장이 된 후 tvN은 어떤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중심 축은 나영석 PD와 신원호 PD라는 쌍두마차에 의해 견인되고 있다. 나영석 PD는 금요일 밤의 헤게모니를 tvN으로 가져온 일등공신이다. 그는 지난 수개월 동안 지상파를 압도하는 프로그램들을 연달아 내놓으면서 금요일 밤은 tvN이라는 공식을 암묵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이미 나영석과 신원호에 대한 콘텐츠 브랜드 파워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황, 이제 이명한 본부장이 손대고 있는 건 그런 블록버스터가 아닌 중간 규모의 콘텐츠들이다. 그는 방송사의 힘은 결국 허리가 되어주는 콘텐츠들로 인해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 <한식대첩>, <문제적 남자> 같은 프로그램들을 선보였다. <집밥 백선생>은 이미 5% 이상의 시청률을 내는 대박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만일 이 중간 규모의 프로그램들이 든든한 허리가 되어준다면 tvN은 앞에서는 나영석, 신원호가 끌고 뒤에서는 이들 프로그램들이 받쳐주는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명한 본부장은 항상 자신을 낮추고 후배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인물이다. 또 못하는 걸 하게 만들기보다는 잘 하는 걸 더 잘하게 해주는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나영석 PD는 과거 KBS시절부터 자신이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가장 잘하는 제작에만 집중할 수 있게 나머지 것들을 이명한 본부장이 처리해줬기 때문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흔히들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그 주역으로서 PD만을 꼽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나영석 PD가 백상 대상을 받을 때 얘기했던 것처럼 프로그램의 성공 뒤에는 보이지 않는 제작진들과 스텝들의 노력이 있다. 이명한 본부장은 그런 점에서 이 괜찮은 프로그램들이 나올 수 있게 해준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금의 지상파를 위협하는 콘텐츠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tvN의 숨은 심장이다.



<삼시세끼>, 더할 나위 없었던 손호준이라는 대타

 

이런 친구가 잘 돼야 하는데...” <삼시세끼>의 손호준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이다. 나영석 PD는 물론이고 제작진마저 좀 쉬면서 하라고 할 정도로 손호준은 쉴 새 없이 일을 찾았다. 차가워진 날씨에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는 건 기본이고, 아궁이에 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수수밭으로 들어갔다.

 

'삼시세끼(사진출처:tvN)'

다소곳이 앉은 모습은 영락없는 이서진이라는 대선배 앞에서 칭찬받고 싶은 후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게스트로 방문한 최지우에게 지금껏 본 사람 중 제일 예쁘다고 말하는 모습 역시 그저 예의가 아니라 진심이 묻어났다. 신문지를 구겨 건네주는 최지우 때문에 절로 미소가 번지는 손호준은 진심 그녀가 옆에 있다는 게 신기한 눈치였다. 김장을 담그기 위해 고춧가루를 빻으면서도 손호준은 최지우에게 칭찬받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꽃보다 청춘>에서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손호준은 20대를 그리 평탄하게 보내지 못했다. 일이 없어 배고픈 나날들을 보낸 적도 많았고 그럴 때 도움을 준 지인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언 30대에 접어들어 겨우 청춘의 꽃이 핀 인물이다. <응답하라 1994>로 이름을 알린 손호준은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를 은인으로 생각했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에 옥택연의 빈 자리를 채워주기 위해 잠시 출연한 것이지만 손호준은 확실한 자기만의 존재감을 남겼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편이었지만 어딘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표정과 시키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일을 하는 몸에 밴 습관은 보는 이들마저 짠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그 짠함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우리네 청춘들의 고단함이다. 열심히 하려고 해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청춘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그에게서는 역력히 느껴졌다. 이서진이나 최지우 같은 선배들이 자신이 만든 된장국을 먹고 맛있어 하자 얼굴 가득 숨길 수 없이 번지는 미소에서는 웃음과 함께 짠함도 동시에 묻어났다. 도대체 얼마나 절실한 삶을 그는 살아왔던 것일까.

 

옥택연의 대타로 잠깐 들어왔지만 이서진의 말대로 택연이보다 더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은 손호준에게서는 저 <미생>의 장그래가 느껴진다. 자신 앞에 놓여진 현실 앞에서 노력이 부족했다고 오히려 자신을 탓하는 장그래처럼 <삼시세끼>의 손호준은 마치 남다른 노력을 자신이 가장 잘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였다. 자신의 노력은 질이 다르다고.

 

<삼시세끼>의 손호준을 보며 <미생>의 장그래가 떠오른 건 그 남다른 노력이 지금의 청춘들이 겪고 있는 심지어 자학적인 절실함으로까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옥택연의 빈자리를 대신 채워준 손호준은 <미생>의 장그래에게 오차장이 써준 문구처럼 더 할 나위 없는출연자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실로 이런 친구들이 잘 되는 세상이어야 하지 않을까.

 

<꽃청춘>에서 느껴지는 이우정 작가의 진가

 

<꽃보다 청춘>을 보니 <응답하라 1994>의 캐릭터들이 새롭게 보인다. <응답하라 1994>의 해태 손호준의 순수하다 못해 순진할 정도의 촌놈 기질이나, 칠봉이 유연석의 바보스러울 정도의 착한 모습, 그리고 빙그레 바로의 나이는 어려도 의젓한 모습은 <꽃보다 청춘>이 보여주는 그들의 진짜 모습에서도 묻어나왔다.

 

'꽃보다 청춘(사진출처:tvN)'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비행기 기내식조차 신기하게 생각하는 토종 손호준은 이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에서 얼떨떨한 표정이 역력했다. 먹는 것조차 토종 한국식만을 고집해온 탓에 라오스에 도착해서도 입맛에 맞지 않아 아무 것도 챙겨먹지 못하는 손호준은 <응답하라 1994>에서 보여줬던 촌놈 캐릭터 그대로였다.

 

반면 유연석은 손호준과는 정반대로 뭐든 잘 먹고 어떤 상황에서든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무 것도 못 먹는 절친 손호준을 챙기기 위해 과일을 챙겨 먹이는 유연석에게서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속 깊은 자상함이 느껴졌다. 그 모습 역시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가 보여주던 그대로다. 능력자지만 타인을 바보처럼 묵묵히 챙기는 그런 캐릭터.

 

이렇게 드라마 속 캐릭터와 실제의 모습이 같은 건 바로도 마찬가지. 가장 나이 어린 막내지만 툭하면 말다툼을 벌이는 유연석과 손호준에게 싸우지 마세요라며 중재를 하고, 때로는 서먹해지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는 의젓한 막내. <응답하라 1994>에서 남다른 고민을 통해 성숙해져가는 빙그레의 모습이 그 진짜 모습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아마도 <응답하라 1994>의 팬이라면 손호준, 유연석, 바로가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에 출연한다는 소식만으로도 반색했을 것이다. 그것은 <응답하라 1994>에서 그들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면면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캐릭터와 진짜 실제 모습이 늘 같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꽃보다 청춘>3인방의 경우에는 그 드라마 속 캐릭터의 매력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마치 <응답하라 1994>에서 막 밖으로 나온 것 같은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이 가능해진 건 <응답하라 1994> 이우정 작가의 남다른 드라마 캐릭터 작법 덕분이다. 사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 작가들의 가장 큰 장점이 캐릭터라는 옷을 배우들에게 그저 입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가진 실제 모습에서 캐릭터를 찾아낸다는 점이다. 예능작가 출신 드라마작가들의 작품 속 배우들의 연기가 더욱 자연스럽고 또 그 매력이 드러나는 건 바로 이런 작가의 세심함 덕분이다.

 

<꽃보다 청춘> 라오스편이 더욱 흥미로워진 건 그래서 상당부분 <응답하라 1994>를 쓴 이우정 작가의 공이 크다. 이 특별한 여행에서 우리는 손호준과 유연석, 바로의 드라마 속에서 봤던 모습을 실제 리얼에서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캐릭터들이 그저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 담겨진 모습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시간이 가능해진 것이다.

 

드라마와 예능을 넘나들면서 출연자를 살펴 그 실제 모습을 캐릭터화 하는 이우정 작가가 가진 고유의 영역. 그것이 아니었다면 <꽃보다 청춘>의 완결편이 이토록 유쾌하게 그려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벌써부터 막 입고 막 먹어도 막 멋있는 이들의 여행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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