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캠프', 이 토크쇼 특별하다

 

너무 많은 토크쇼들이 쏟아지다 보니 이제 토크쇼는 어딘지 시시해졌다. 한때 세시봉 신드롬을 만들 정도로 잘 나갔던 '놀러와'가 이제 3% 시청률을 기록하는 게 토크쇼의 현실이다. 이렇게 된 것은 토크쇼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에는 연예인 홍보쇼도 그 자체로 신기했지만, 차츰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대중들에 의해 리얼 토크쇼가 대세를 이루기도 했다. 문제는 리얼리티를 끄집어내기 위해 과도한 양념들이 장치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힐링캠프'(사진출처:SBS)

'무릎팍도사'는 게스트의 진짜 이야기를 뽑아내기 위해 점방 분위기와 무엇보다 조금은 무식해보이면서도 반드시 속내를 캐내려고 혈안이 된 무릎팍도사라는 캐릭터가 필요했다. '라디오스타'는 김구라라는 직설어법의 아이콘과 때로는 게스트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저들끼리의 삼천포 토크가 필요했다. 또 '강심장'은 토크 배틀이라는 형식이 필요하기도 했다. 모든 이런 시도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장치들에 때로는 토크쇼가 갖는 본질, 즉 진솔한 대화가 흐려지기도 한다는 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힐링캠프'는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초창기 '힐링캠프'는 '힐링'이라는 개념의 외적인 조건에 더 집착했다. 그래서 힐링을 떠올릴 수 있는 자연 공간이 게스트만큼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차츰 진화하면서 '힐링캠프'는 토크쇼의 본질에 더 가깝게 다가갔다. 게스트와 진솔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면 제작진이 꾸며놓은 장소가 아니라 게스트가 가장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직접 찾아가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 게스트들은 이 유리한(?) 공간에서 마음껏 속내를 터놓을 수 있게 되었다.

 

차인표는 '힐링캠프'라는 토크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저 담담하고 소신 있게 제 할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으며 심지어 그것이 누군가를 '힐링'해줄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알게 해주었다. 김정운 교수도 가감 없는 직설어법으로 심지어 남성들이 갖는 성적 판타지까지 모든 걸 드러내주었다. 신은경은 그간 숨겨졌던 아픔과 고통을 남김없이 쏟아내고 그녀 스스로도 표현했듯이, 얼굴의 화장을 모두 지운 듯한 개운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효리는 이 진솔한 대화의 정점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드리워진 모든 빗장들을 풀어내고 말 그대로 무장 해제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힐링캠프'가 가진 특별함은 바로 어떻게 이토록 게스트들이 꾸밈없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가 하는 점에서 나온다. 사귀면 결혼해야 한다며 헤어진 연예인을 비난하는 대중들에게 이효리가 "지들은 안 사귀었나? 지들은 첫사랑이랑 결혼했나?"하고 되묻는 장면은 이 토크쇼가 왜 이렇게 솔직한가의 단서를 제공한다. 이런 멘트는 이효리가 MC와의 대화에 완전 몰입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이상한 일이지만 '힐링캠프'에 나온 게스트들은 카메라를 향해 얘기하지 않고 심지어 대중을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평상시 친구나 동료를 만나면 그러하듯이 그저 거기 앉아 있는 MC들과의 대화에 몰입한다는 얘기다.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건 거기 앉아있는 세 명의 MC들이다. 이경규는 전체를 이끌어가는 역할로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특유의 캐릭터를 활용해 질문하고, 김제동은 특별히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게스트를 편안하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한혜진은 진정으로 몰입해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진심으로 궁금한 점을 묻는다. 이들이 굳이 웃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토크쇼의 중요한 포인트다. 이경규가 때로는 직업병처럼 웃기지 않는 농담을 던졌다가 '대국민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 토크쇼가 얼마나 진지한가를 잘 보여준다.

 

토크쇼의 본질은 웃음일까, 아니면 대화일까. 그 어느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토크쇼도 토크쇼마다의 특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아무래도 대화가 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제 아무리 웃긴 토크쇼라고 해도 허무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의 대화에서 늘 느끼던 것처럼 말이다. '힐링캠프'가 특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웃음을 포기하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대화에 더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마치 이효리처럼 게스트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대화 그 자체에 몰입하게 만드는데서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아마도 현 침체기에 빠져버린 토크쇼들에 시사하는 바도 클 것이다.

표절, 폭행, 거짓말... 연예계 끝없는 사건사고, 왜?

이건 우연히 겹쳐서 일어나는 악재일 뿐일까. 연예계가 휘청하고 있다. 거의 한 주가 멀다하고 사건사고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연예계.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혹자들은 이것이 인터넷 같은 매체가 양산해내는 소문 탓으로 돌린다. 과거라면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을 일들이 이제 낱낱이 드러나 문제가 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환경이 그렇게 바뀌었다고 해서 문제가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가요계의 고질병인 표절에 대한 무신경함은 현 대중문화에서의 키워드가 된 이효리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한 앨범에 무려 여섯 곡이 표절. 물론 이효리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밝혔지만 과거라면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티스트의 도의적 책임으로 한 동안은 자숙의 기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거의 쏟아져 나온 표절 논란으로 표절에 대한 예방주사를 잔뜩 맞아온 탓인지, 여기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차질 없는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그 자체보다 이런 불감증이 더 심각해 보인다.

한창 잘 나가던 배우를 단 한 순간에 추락시켜버린 최철호의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음주 후 자제력을 잃고 벌어진 사건이라지만, 그 사건 자체보다 더 상황을 어렵게 만든 것은 그것을 은폐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다.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 실수를 덮기 위한 고의적인 거짓말은 당사자에 대한 신뢰 자체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뭐든 유리병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세상 속에서 언젠가는 드러날 거짓말을 그는 왜 했을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MC몽의 병역기피 의혹이나 타블로의 학력 의혹 역시 그저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구설수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만일 그것이 그저 구설수라면 왜 당사자들은 속 시원히 의혹을 걷어내려 하지 않을까. 병역문제나 국적문제가 특히 뜨겁게 되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함의가 대중들의 마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이들로서 그 마음을 헤아리고 확실한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드라마를 찍는 중간에 갑자기 군 입대를 발표하는 상황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지난 5월 갑작스럽게 군 입대 발표를 한 이준기는 당시 영화 '그랑프리'와 SBS 드라마 '신의'에 캐스팅된 상태였다. 최근 '나쁜 남자'에 출연하고 있는 김남길은 입대 3일 전인 12일 군입대를 발표했다. 이로써 드라마는 애초 20부작에서 17회로 조기종영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물론 소속사측은 본래 16부작이었으며 오히려 1회 연장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과정이 석연찮은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연예인의 개인적인 과욕이 드라마나 영화 자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잘 말해주는 사례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전가된다.

물론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라는 영역을 넘어서 사회에까지 귀감이 되는 행동을 보여주는 연예인들도 많다. 그렇다고 대중들이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기본적인 것을 지켜달라는 것뿐이다. 아티스트로서 표절하지 말라는 것이고, 표절을 했다면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며, 사건을 저질렀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못을 빌라는 것이고, 군대에 가는 시점이 되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군대를 가라는 얘기다. 하지만 작금의 연예계는 이런 기본적인 것이 기본이 아닌 것이 된 느낌이다.

소녀시대의 예능 출연, 실효를 거두려면

이효리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몸빼 바지의 굴욕도 마다 않고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가수라는 본업으로 돌아오면 섹시 디바로서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유재석이 농담 삼아 “그 이효리가 이 이효리냐?”고 물을 정도. 리얼리티 시대에 탈신비주의 컨셉트가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현재, 모두가 이효리의 이런 섹시와 털털을 넘나드는 이미지를 갖기를 원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효리는 게스트로서의 단발성 출연보다는 고정 MC로서 예능에 입지를 다져왔다. 핑클 해체 이후 이효리는 ‘해피투게더’에서 조금씩 자신의 끼를 보였고, 핑클 속에서 고형화되었던 요정 이미지를 예능에 고정 출연함으로써 조금씩 깨뜨렸다. 이렇게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자신만의 솔직한 개성을 대중들에게 어필하게 되자, 섹시 컨셉트로 나온 ‘10 Minutes’는 그녀의 엔터테이너적인 끼(정확히 말하면 퍼포먼스, 연기)로서 받아들여졌다. 꽤 오랜 시간의 준비기간이 있었기에 섹시와 털털은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효리의 예능, 게스트가 아닌 고정으로
여기서 이효리의 행보 중 가장 중요한 점은 ‘게스트가 아닌 고정’이라는 점이다. 예능에 잘 출연하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음반을 내고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했다면, 제 아무리 발군의 순발력과 예능감으로 무장한다고 해도 대중들에게 크게 어필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정MC는 이러한 홍보성 논란에서 자유롭다. ‘그 이효리가 이 이효리가 된’ 상황은 오히려 더 큰 화제를 일으킨다.

이러한 이효리의 성공 방정식을 거의 유사하게 그려낸 인물은 박예진이다. 그녀는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서 이효리가 했던 방식, 즉 그녀의 고정된 이미지(이 이미지는 너무 흐릿해 오히려 상투적이었다)를 ‘달콤 살벌한 이미지’로 깼다. 고정 출연자이기 때문에 홍보성 출연이 갖는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미워도 다시 한번’에서 섬뜩할 정도로 살벌한 연기를 보여주자 그것은 그녀의 연기력으로 부각되었다. 박예진은 이로써 예능에서는 솔직한 면모를, 또 드라마에서는 대단한 연기력을 보여주는 엔터테이너로서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과정은 같은 프로그램의 대성에게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이다.

하지만 고정MC로서의 예능이 아닌, 게스트로서의 예능으로 출연했던 비와 김종국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들이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장악했을 때, 물론 귀환을 알리는 효과는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이 지속적인 이미지 제고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잦은 예능 출연은 지나친 홍보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들의 출연이 자신들의 홍보를 위한 것이라는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빅뱅의 예능, 함께보다는 따로
최근 들어 소녀시대의 지나친 예능 출연이 갖고 있는 문제도 여기에 있다. 너무나 많은 구설수에 휘말리고, 항간에서는 오히려 떨어진 시청률을 근거로 ‘소녀시대 효과라는 것은 없다’고까지 주장하게 된 것은 그 출연의 목적이 소녀시대의 홍보에만 치우쳐진, 게스트라는 입장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집단으로 출연한 ‘무한도전’과 ‘박중훈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어필하지 못했다. ‘무한도전’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소녀시대 멤버들이 너무 부딪치는 바람에 그랬고, ‘박중훈쇼’에서는 박중훈이 너무 소녀시대를 띄워주기에 급급해서 그랬다. 모두 게스트 출연이 갖는 한계들이다. 게스트가 게스트의 위치에서 자신을 어필하지 않고 메인이 되려는 것이나, 혹은 너무 지나치게 게스트 중심으로만 끌려가는 것은 둘 다 문제가 있다.

게다가 소녀시대의 멤버가 아홉 명이라는 사실은 게스트 출연에 있어서도 장애로 작용한다. 집단 게스트 출연은 예능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출연자의 개성을 시청자들에게 어필하기가 어렵다. 차라리 소녀시대가 가장 자신들의 이미지를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가능성은 윤아가 ‘너는 내 운명’에 출연했던 것과 태연이 라디오를 진행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태연의 ‘우리 결혼했어요’출연은 언제부턴가 소녀시대의 ‘우리 결혼했어요’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단독 고정출연자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확실히 알려주었고, 그것은 동시에 소녀시대 전체의 이미지를 형성해주었다. 이것은 ‘빅뱅’이 전원 출연보다는 대성의 단독 출연으로 예능으로부터 큰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이제 배우와 가수들의 예능 출연은 대세가 되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나름의 성공방정식은 존재한다. 예능 출연의 효과는 이제 단발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그 안에서 어떤 기여도를 보여주어야 얻어질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었다. 소녀시대는 지금껏 예능 바람몰이를 해가며 대중들에게 확실하게 ‘지금은 소녀시대’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이 예능 바람이 실질적인 어떤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함께’가 아니라 ‘따로’ 출연하는 방식을 택해야 하며, 그것도 단발성의 게스트가 아닌 고정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제 소녀시대에게 필요한 것은 통상적인 음반 홍보를 위해 일시적으로 게스트 출연을 하는 가수들의 전략이 아니라, 아예 예능인으로서도 충분한 이효리와 대성의 전략이다.

대중들은 신상 캐릭터에 목마르다

윤상현이 ‘겨울새’에 출연했을 때, 그 마마보이 찌질남 역할에 시청자들이 주목할 줄 누가 알았을까. 잘 생기고 분위기 있어 보이는 외모의 윤상현은 오히려 한없이 망가지는 찌질한 역할을 통해 스타덤에 올랐고 그 여세를 몰아 MBC 일일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 그 캐릭터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편 ‘엄마가 뿔났다’에서 가장 주목받는 캐릭터는 누굴까. 그건 주인공인 김한자(김혜자)도 아니고, 나일석(백일섭)이나 나이석(강부자)도 아닌 고은아(장미희)다. 이는 현재 광고계에서 타 캐릭터와 비교해 고은아 캐릭터가 더 많이 활용하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김수현 작가도 스스로 밝혔듯이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장미희의 연기력이 한몫을 차지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도도하면서도 때론 귀엽기까지 한 악역이란 독특한 캐릭터가 가진 힘은 부정하기 힘들다.

드라마의 신상 캐릭터, 윤상현과 장미희
확실히 ‘크크섬의 비밀’의 윤대리와 ‘엄마가 뿔났다’의 고은아는 지금껏 우리네 드라마에서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이들은 악역은 아니면서 악역과 유사한 역할을 맡는다. 섬에 표류된 상황 속에서도 일 안하고 줄이나 서려 하며 아첨하고 험담하는 윤대리 역할은 함께 있는 타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캐릭터이지만, 그렇다고 그 캐릭터가 그저 밉상은 아니다. 이것은 자신과 격이 맞지 않는다며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 고은아도 마찬가지다. 악역이면서도 왠지 밉지 않고 때로는 공감까지 가는 캐릭터. 드라마에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이들은 캐릭터계에 등장한 신상이다.

드라마의 신상 캐릭터에 대한 요구는 틀에 박힌 캐릭터들에 대한 비호감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한 때 한류바람을 타고 인기몰이를 했던 최지우, 이정재, 김희선 그리고 최근에는 김선아 같은 연기자들이 드라마에 복귀하면서 새로운 모습보다는 과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외면 받았던 것은 바로 이 같은 대중들의 신상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복귀와 함께 신비주의를 벗고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했던 고현정이 그나마 대중들에게 어필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착하고, 영웅적이며, 카리스마 넘치지만 여전히 구태의연함을 못 벗은 캐릭터보다는, 차라리 악하고, 반영웅적이며, 찌질하지만 새로운 캐릭터가 더 환영받는 시대다.

예능의 신상 캐릭터, 서인영, 이효리, 이승기, 대성, 이천희
이러한 신상 캐릭터(?)에 대한 주목은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미 캐릭터라이즈드 쇼(Characterized Show)가 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신상 캐릭터들은 확실한 지지도를 얻고 있는 상황이다. 서인영은 ‘싸가지’와 ‘당당함’을, 이효리는 ‘섹시함’과 ‘털털함’을 하나로 묶는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였다. 언뜻 연결될 수 없을 것 같은 이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로 묶는 순간, 캐릭터는 양극단을 오가는 아슬아슬한 묘미를 제공하면서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

한편으로는 신비화 전략을 구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탈 신비화하려는 복합 캐릭터 전략은 지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대부분의 가수, 배우들이 취하고 있는 것. 이승기는 무대에 오르면 누나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목소리의 가수지만, ‘1박2일’에서는 엉뚱한 언동을 일삼는 허당이다. 빅뱅의 대성은 노래를 할 때는 아이돌 스타지만, ‘패밀리가 떴다’에서는 여지없이 망가지는 덤앤더머 캐릭터로 변신한다. ‘대왕 세종’에서 장영실로 진중한 연기를 보이는 이천희는 역시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엉성하고 구박받는 천데렐라로 변신한다. 이 드라마에서의 모습과 예능에서의 모습이 다른 이중적인 캐릭터는 하나로 합쳐지면서 독특한 신상 캐릭터를 구축한다.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영역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신상 캐릭터에 대한 갈증, 캐릭터 소비 빨라진다
대중들의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커질 대로 커진 요즘 그만큼 캐릭터의 소비는 더 빨라졌다. 연기자들이 매번 드라마를 통해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높아졌다. 어디서 본 듯한 캐릭터들이 포진한 드라마들은 그만큼 대중들에게 외면 받기 쉬워졌다. 반면 잘 창조된 캐릭터들은 주연이 아니라 하더라도 조명을 받으며,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주요 동력이 된다. 종영한 ‘일지매’에서의 쇠돌(이문식)이나 공갈아제(안길상) 같은 캐릭터는 주연 못지 않은 캐릭터의 힘을 과시했다.

한편 예능에서의 캐릭터들은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무한도전’의 캐릭터들이 최근 들어 조금씩 시들해지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같은 캐릭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신상 캐릭터 인구 때문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물론 각종 이벤트에 투입되고, 케이블을 통해 무한 재방영되며 심지어 타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도 같은 캐릭터로 무한소비되는 상황에 피곤해진 캐릭터들이, 자고 일어나면 새롭게 생겨나는 캐릭터들의 홍수 속에서 더 이상 버티기는 쉽지 않게 되었다. 이것은 ‘1박2일’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이야기다.

어디든 눈만 돌리면 넘쳐나는 욕망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는 소비의 시대, 대중들의 TV 속 캐릭터 소비가 빨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점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TV 속 캐릭터의 변화 속도가 대중들의 소비 속도를 잘 따라잡고 있느냐는 점이다. 새로운 상품이 그 시대의 기호와 트렌드를 잘 반영하고 있듯이, 새로운 캐릭터 역시 그 시대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따라서 급속한 소비로 피곤해진 캐릭터들을 어떻게 재빠르게 보완하고 변신시키고 창출하는가는 드라마나 예능의 당면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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