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덩 칠드런 송, 도전 암기송, 불후의 명곡, 그리고 예능의 가수들

KBS의 예능 프로그램이 노래와 바람이 났다. ‘쟁반 노래방’시즌2의 성격을 띈 ‘상상플러스’시즌2(풍덩 칠드런 송)가 시작되면서 KBS의 예능은 거의 일주일 내내 ‘노래에 도전하는 연예인들’을 보여주게 된 셈이다. 주중에 포진된 ‘해피투게더’의 ‘도전 암기송’이 그렇고, 주말 ‘해피선데이’의 ‘불후의 명곡’이 그렇다. 노래방으로 대변되는 우리네 노래문화가 특이하다고 해도 이런 프로그램들의 편향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법하다.

먼저 노래라는 소재가 가진 장점은 KBS의 성격과 잘 어울리는 구석이 있다. KBS라는 방송사의 성격상 전통적인 시청자를 아우르면서 젊은 세대까지 끌어 모으는 방식으로서 노래는 대단히 효과적인 장치다. 이들 예능 프로그램들이 내세우는 노래는 ‘현재’가 아닌 ‘과거’의 노래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옛 노래를 가지고 지금의 연예인들이 도전을 한다는 설정은 일거양득의 힘을 가진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래로 편향된 KBS의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는 어떤 일련의 계보가 중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그 시작은 ‘전국노래자랑’의 ‘땡’에서부터 비롯된 것 같다. 노래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가진 음치, 몸치의 재미는 ‘딩동댕’과 ‘땡’과 만나면서 우리에게 하나의 포맷을 만들어냈다. ‘쟁반 노래방’은 바로 이 ‘땡’을 쟁반이라는 물리적인 장치로 변형시켜 예능 프로그램의 ‘벌칙’의 개념으로 바꿔놓았다. ‘상상플러스’시즌2는 쟁반 대신 다른 장치로 그것을 변형시켰을 뿐이고, ‘도전 암기송’과 ‘불후의 명곡’은 전통적인 ‘땡’을 사용하고 있다.

이것은 포맷뿐만 아니라 MC들의 계보까지도 만들어낸다. ‘해피투게더’의 ‘쟁반노래방’ 코너에서 MC를 맡았던 이효리는 ‘상상플러스’시즌2로 복귀해 ‘쟁반노래방’시즌2 성격의 ‘풍덩 칠드런 송’을 하고 있고, 유재석은 ‘해피투게더’에서 새롭게 포맷을 만든 ‘도전 암기송’에 남아 있다. ‘불후의 명곡’의 탁재훈, 신정환 콤비는 예능 프로그램에 그들을 확고히 안착시켜준 ‘상상플러스’에서 그 계보를 이어받고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프로그램 포맷들이 서로 서로 조금씩 중첩되면서 변형되어왔고 그 안의 MC들 또한 반복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KBS 예능 프로그램들이 가진 가수들에 대한 열렬한 환호다. 이효리, 탁재훈, 신정환 같은 가수들은 ‘노래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자리잡았다. 이것은 최근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1박2일’의 구성원들의 면면을 봐도 드러난다. 그들은 강호동을 빼고는 모두 노래와 관련이 있다. 은지원, 이승기, MC몽, 김C는 가수이며, 이수근은 개그맨이지만 ‘노래와 관련된(예를 들면 고음불가 같은)’ 노래개그로 뜬 개그맨이다.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메인이나 고정 출연자가 된다는 것은 우리네 가요계가 변화된 상황을 에둘러 말해주는 현상이다. ‘노래를 잘한다’는 가수의 이미지는 이들 프로그램에 오면 거꾸로 ‘서투르게 노래하는’ 이미지로 바뀌면서 일종의 권위의 파괴에서 오는 쾌감을 준다. 이것은 ‘노래 잘하는 가수’보다는 ‘재미있는 가수’가 더 주목받는 작금의 음반계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어쨌든 이것은 자기 노래를 한번이라도 불러서 홍보를 해야 하며, 때론 평범한 이미지를 통한 친숙함을 만들어내야 하는 가수들 입장에서도 나쁜 것이 아니다.

KBS가 노래와 바람이 난 이유는 전통적으로 성공해왔던 노래 예능 프로그램들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확실히 노래는 그 자체로 이런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일주일 내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노래방으로 향하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새로운 프로그램에 대한 도전보다는 익숙한 프로그램의 (그것도 너무 드러나는)샘플링이 되어 가는 것으로는 현재의 민감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친 마케팅과 향수의 만남은 고만고만한 프로그램들의 양적 팽창으로 이어지면서 자칫 동시에 가라앉는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투자를 하더라도 분산투자를 해야 위험이 적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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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버린 가요, 라디오로 회귀하나

침체된 가요계에도 봄은 오는가. 최근 라디오를 통해 또 라이브 무대를 통해 그동안 실종되었던 우리네 가요들이 조금씩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봄날 눈 녹듯이 서서히 그러나 확실한 변화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가요계 전반의 움직임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것은 바로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이다.

눈감고 음미하게 만드는 관록의 중견가수들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는 이들은 90년대 가요의 호황을 이끌고는 한동안 긴 동면을 하고 있던 중견가수들. 이승환, 현진영, 이승철, 신해철, 신승훈, 김현철, 김동률, 김건모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최근 십대 중심의 댄스음악시장으로 침체된 분위기에, 일제히 신보를 들고 나왔다. 그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 마디로 압축해 말한다면 “역시 관록! 아직도 쟁쟁하다”는 것이다. 그 노래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눈을 감고 음미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그들이 동시에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숨어있다. 가장 큰 이유는 과거 90년대 가요계의 호황을 만들었던 7080이라는 구매력을 갖춘 가요소비층이 존재한다는 것. 그동안 몇몇 기획사들이 독점하다시피 한 가요시장이 다양성보다는 10대 중심의 획일성을 보여왔고 이로써 그간의 가요소비층들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지점에서 중견가수들의 복귀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간 가창력과 음악성으로 승부해온 가수들의 든든한 뒷심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섹시컨셉을 벗어나려는 가수들
‘10대 중심의 가요’라는 상품기획에는 반드시 댄스뮤직이라는 장르와 TV라는 매체의 결합이 포함되어 있다. 즉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팔짱끼고 앉아 듣는 음악보다는 좀더 ‘참여하고 행동하는 음악’으로서 댄스뮤직은 10대의 전유물이 되었고, 그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TV는 ‘보는 음악’에 폭발적인 엔진을 장착시켰다. 가수들은 점점 더 현란한 댄스와 파격적인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른바 섹시컨셉가수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 몇 번 눈길을 끌면서 눈을 즐겁게 해줬는지 모르겠지만 귀는 그다지 즐겁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이들 섹시컨셉가수들은 발라드라는 장르를 선보이거나(이효리), 섹시컨셉을 벗으려 하거나(서인영), 가창력과 도전적인 여성상으로의 변신을 꾀하고(아이비) 있다.

비트보다 멜로디를 택한 힙합
그나마 힙합이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해줬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과제가 존재한다. 그 하나는 힙합이라는 장르가, 마치 이전 가요계에서 정통 록이 처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 너무 파격적이면 대중성이 따르지 않고 적절한 타협(?)은 자칫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파격적이라는 것은 힙합이나 정통 록 자체가 갖는 특성(이를테면 저항정신 같은)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타협이라 함은 서구장르를 우리 것화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통 힙합의 인기는 대중성보다는 매니아적인 특성이 강하게 되었다. 몇몇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바비 킴이나 윤미래 같은 아티스트는 그저 힙합이라 부르기보다는 ‘바비 킴적인’, ‘윤미래적인’이란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 그들의 성공은 힙합의 성공이라기보다는, 힙합이란 장르 속에서 살아온 그들이 우리 가요문화와 절묘한 결합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들어내 성공한 힙합(?)들의 특징 역시, 퍼포먼스적인 랩보다 멜로디성이 강조된 ‘듣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최근의 가요경향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라디오, 비디오스타 죽일까
이러한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에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그것은 TV와 라디오 사이에서 가요가 점차 라디오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요순위 프로그램들의 TV로부터의 퇴출은 사실상 이 ‘보는 음악’이 자초한 결과가 크다. ‘TV 가요 프로그램 = 10대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면서 요란한 의상에 현란한 몸 동작이 난무하는 가요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점점 떨어진 것. 게다가 자정에나 편성되는 라이브뮤직 프로그램들은 그저 명맥만 유지할 뿐, 과거의 영광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이제 TV와 가요가 동거하던 시대는 끝나고 있는 것 같다. 대신 그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것은 라디오다. 이것은 TV가 가요를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라디오라는 특성이 지금의 ‘듣는 음악’으로의 회귀현상과 잘 맞아떨어지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고,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공개방송이란 장점을 가진 라디오는 기획과 상품화로 치달으면서 가요계가 처한 현실을 본 모습으로 돌리는 기능을 해준다. 여기에 컴퓨터와 라디오가 만나자 그 폭발력이 더해진다. 컴퓨터라는 일상도구에 자연스럽게 음악이 붙게된 것이다.

비디오가 라디오스타를 죽였다(Video killed the Radio star)고 하지만, 이제는 라디오가 비디오스타를 죽이는(Radio killed the Video star) 시대가 아닐까. 역시 노래는 귀로 듣는 것이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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