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의 혹한기 캠프, 그 ‘변함없음’이 갖는 빛과 그림자

KBS 예능 <1박2일>에게 사계 중 최고의 호기는 겨울이고, 최고의 아이템은 ‘혹한기 캠프’가 아닐까. 물론 여러 효자 아이템들이 많았지만, 배고픔과 추위를 ‘혹한기 적응’이라는 명분으로 대놓고 끄집어내, 복불복 게임을 하는 ‘혹한기 캠프’는 웃음과 자극 면에서 따라올 아이템이 별로 없다. 그래서일까. 이번 강원도 인제 연가리에서 펼쳐진 ‘동계 야생 캠프’도 제목만 살짝 다를 뿐, 변함없는 ‘혹한기 캠프’의 재미를 보여줬다. 

아무 것도 없는 산 속에 땅을 파고 나무와 비닐로 얼기설기 하룻밤 지낼 캠프를 짓는 모습은 그 과정 자체가 큰 웃음을 줬다. 그럴 듯한 계획을 내세우고, 그래도 군대에서의 경험이 있다는 윤시윤이 등장해 뭔가 남다른 신뢰를 주다가도 금세 무너져버리는 캠프 앞에서 점점 바보 같아지는 멤버들의 모습은 그 허무함과 황당함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과정은 말 그대로 야생이다. 실제로 짓는 것이고 잠자리 복불복에서 지게 되면 그들이 들어가 하룻밤을 자야 한다. 그래서 웃음을 위한 상황들이 벌어지지만 그건 리얼이다.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캠프를 짓지만 번번이 무너지는 과정들이 반복되면서 ‘동계 야생 캠프’만의 생 리얼 웃음의 묘미가 되살아났다. 

잠시 베이스캠프인 산장으로 내려와 뜨끈뜨끈한 아랫목에서 곯아떨어져버리는 멤버들의 모습 또한 안쓰러움과 동시에 웃음이 묻어난다. 그리고 그것은 웃음만큼 강한 자극을 만들어낸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뜨끈한 아랫목의 대비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그들이 지은 캠프에서 하룻밤과 이 뜨끈한 아랫목에서의 하룻밤을 놓고 벌이는 잠자리 복불복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포대자루를 갖고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다 표시된 지점에 정확히 안착하는 게임은 동계올림픽과 맞물려 스켈레톤과 컬링을 붙여 놓은 듯한 묘미를 선사한다. 멤버들과 스태프들이 벌이는 아이스크림 빨리 먹기 대결과 맨발로 양말을 집고 물에 적셔 빨랫줄에 거는 이른바 ‘플라잉 삭스’ 게임은 웃음과 함께 그 차가운 냉기가 주는 촉각적인 자극을 더해준다. 

그리고 결국 복불복에서 진 멤버들이 다시 산을 올라 그들이 지어놓은 비닐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 추운 곳에서 어떻게 하룻밤을 보낼까 걱정이지만, 의외로 따뜻한 비닐하우스 안에서 코까지 골며 잘 자고 일어난 그들은 마침 내리는 눈으로 절경을 이룬 연가리의 풍광 속에서 마무리를 짓는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1박2일>의 이른바 혹한기 캠프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찾아와 큰 웃음을 줬다. 하지만 이런 광경들이 그리 새로운 건 아니다. 이미 이전에 했던 혹한기 캠프에서 박스를 이용해 집을 짓고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었고, 계곡의 얼음물을 깨고 입수를 한 적도 있었으며, 갖가지 ‘동계올림픽(?)’을 흉내 낸 복불복게임을 한 바 있다. 물론 멤버들과 스텝 간의 대결도 빼놓을 수 없다. 

<1박2일>은 그래서 ‘변함없는’ 웃음을 주었지만, 바로 그 ‘변함없다’는 점이 주는 장수프로그램의 딜레마 또한 분명 존재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변함없는’ 재미가 ‘즐겁다’는 시각과 ‘이제는 달라질 때’라는 시각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변함없는 모습으로 동시에 조금은 다른 면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건 <1박2일>이 앞으로도 계속 풀어내야 할 숙제가 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여행 소재 예능 프로그램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시대에.(사진:KBS)

<안투라지>,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tvN <안투라지>가 드디어 첫 회를 방영했다. 사실 방영 전부터 이 작품에 대한 기대와 관심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즉 미드 원작인 <안투라지>의 리메이크가 그 원작이 가진 높은 수위를 어떻게 우리 정서에 맞출 것인가 하는 점이 우려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은 시선을 잡아끌 기대요소로 지목되었다. 그렇다면 첫 회는 어땠을까. 호불호가 갈리던 지점에서 보다는 불호가 더 많다. 어째서 이런 반응이 나오게 됐을까.

 

'안투라지(사진출처:tvN)'

원작보다 자극을 낮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극적이다. 스타인 차영빈(서강준)을 중심으로 그의 사촌형인 차준(이광수)과 친구면서 매니저인 이호진(박정민) 그리고 거의 백수에 가깝게 영빈과 함께 다니며 노는 데만 혈안인 거북(이동휘)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벌이는 해프닝들 속에는 목욕탕 알몸 노출은 기본이고 함께 영화 작업을 했던 여배우와 차안에서 벌이는 애정행각, 그리고 어딘지 은밀해 보이는 연예계 스타들의 관계들이 가감 없이 보여졌다.

 

게다가 연예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진짜 연예인들의 화려한 카메오가 줄을 이었다. 하정우는 물론이고 박찬욱 감독과 배우 김태리, 마마무, 아이오아이 등등이 카메오 출연해 드라마를 빛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연예계의 이면을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정작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고, 왜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봐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설득은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물론 첫 회에 이야기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영빈을 키워낸 매니지먼트 회사 대표 김은갑(조진웅)과 친구인 영빈 사이에 끼어 애매한 입장이 되어버린 호진의 상황이 그 첫 회의 이야기다. 결국 호진은 영빈에게 정식 계약을 요구했지만 영빈은 친구관계가 더 좋다며 거절했고, 결국 호진은 그만두겠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다시 영빈이 호진에게 와 정식계약을 맺자는 이야기를 건네며 변함없는 우정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 연예계라는 정글에서 이들 4인방의 우정이 향후 어떤 힘을 발휘하며 그들 개개인을 성장시킬까 하는 기대감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연예계의 떡밥들, 이를테면 외부에서 보는 화려함 못지않게 어딘지 찌질하게도 보이는 보통 사람으로서의 스타들을 폭로해내는(?) 장면들이 전면에 깔리게 되면서 이런 <안투라지>가 앞으로 해나갈 진짜 이야기들의 기대감은 상당 부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첫 회가 주는 느낌은 자극적이긴 하지만 왜 봐야겠는지는 모르겠는’, 그런 정도에 머물렀다.

 

연예계 이면의 이야기는 물론 대중들의 흥밋거리다. 그래서 그 많은 가십성 이야기들이 연예계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것일 게다. 하지만 그걸 드라마로 본다는 건 다른 의미다. 연예계 이야기가 제 아무리 자극적이라고 해도, 드라마는 결국 그 드라마만의 본연의 스토리나 메시지가 담기지 않으면 굳이 채널을 고정시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현실의 이야기들이 더 드라마 같아지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연예계의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이 실제로 뉴스를 통해 터져 나오는 세상이다. 그러니 드라마가 그걸 밀착해서 보여준다고 해도 결국 가상의 스토리일 수밖에 없는 그 특성 속에서 현실만큼 자극적일 수는 없다. 마침 터져버린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안들은 그 엄청난 일들이 문화계까지 뻗쳐 있다는 걸 암시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이런 현실에 연예계의 가십성 이슈가 주목받기는 어렵다.

 

<안투라지>는 그 화려한 겉면을 떼어내고 네 사람의 우정이 만들어내는 이 드라마의 진짜 이야기를 빨리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물론 첫 회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고, 갖가지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이슈들이 터져 나오는 시점에 초반 관심과 기대감을 확실히 심지 못한다는 건 그대로 묻혀버릴 위험을 예고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그래서 왜 지금 시청자들이 그걸 봐야하는지를 설득해내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원티드>, 납치극의 모성애보다 강한 다른 미끼들

 

SBS 수목드라마 <원티드>는 본격 장르물이다. 이 드라마를 소개하는 문구를 보면 국내 최고 여배우가 납치된 아들을 찾기 위해 생방송 리얼리티 쇼에서 범인의 요구에 따라 미션을 수행하는 고군분투기를 담은 리얼리티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라고 되어 있다. 이 드라마에는 그 흔한 멜로의 기미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

 

'원티드(사진출처:SBS)'

정혜인(김아중)은 남편 송정호(박해준)와는 거의 남남이나 마찬가지 관계를 보여주고 있고, 함께 방송을 해야 하는 신동욱 PD(엄태웅)와는 그 비정한 성격 때문에 남녀로 얽힐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아들을 찾기 위해 함께 고군분투할 형사 차승인(지현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 어떤 것들에도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범인을 추적하고 납치된 이들을 구하는 것이 우선인 올곧은 형사로서의 모습에만 충실한 인물이다.

 

그러니 이 드라마에서 멜로 같은 요소들은 전혀 시청자들을 유입할 수 있는 미끼가 되지 못한다. 대신 <원티드>가 미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유발하는 궁금증과 반전이다. 도대체 누가 그녀의 아들을 납치한 것이고, 무슨 목적으로 그녀에게 리얼리티쇼를 시키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궁금증. 이 호기심이 하나의 미끼가 되면 드라마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이 같은 그 흔한 멜로 구도조차 잘 보이지 않는 본격 장르물이 시청률에서 불리하다는 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다. 일단 익숙한 구도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가 어느 정도 몰입되기 전까지는 낯설다는 점이다. 또한 영화와 달리 긴 호흡으로 가야하는 드라마에서 한 가지 사건으로 끝까지 궁금증을 만들고 긴장감을 이어간다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본격 장르물에 제기되곤 하는 한계는 최근 들어 많이 깨지고 있다. <시그널>은 대표적인 사례다. 멜로 구도보다 스릴러에 더 집중했지만 <시그널>은 케이블 채널로서는 경이적인 12% 시청률(닐슨 코리아)을 넘겼다. 물론 첫 회는 5.4%로 시작했지만 갈수록 탄력이 붙으면서 시청자들이 계속 유입될 수 있었던 것. 결국 본격 장르물의 성패는 첫 회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갈수록 시청자들을 계속 몰입시킬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원티드>는 납치 스릴러가 갖는 끝없는 궁금증과 반전이라는 미끼 이외에도 두 가지 미끼가 더 제시되고 있다. 그 하나는 정혜인의 아들을 위해 뭐든 한다는 그 절절한 모성애다. 하지만 이 부분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왜냐하면 <원티드>는 아들을 찾기 위한 정혜인의 절절한 마음과 함께 동시에 생방송 리얼리티쇼를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로서의 정혜인은 절절하지만, 방송에 출연하는 여배우로서의 그녀는 때로는 냉철해지기도 해야 한다. 그 서로 다른 입장을 하나로 묶어 보여주는 연기는 쉽지 않다.

 

김아중이 몸을 아끼지 않는 배우라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은 얼굴 표정 등을 통한 감정 연기다. 그녀의 얼굴은 표정이 그렇게 다채롭게 드러나지 않는다. 모성애를 드러낼 때의 절실해지는 얼굴과 그러면서도 방송을 해야만 하는 여배우로서의 조금은 냉철한 얼굴이 대비를 이뤄야 효과적인데 그런 면들이 아직까지는 드라마를 통해 잘 전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극중에서도 여배우지만 실제 여배우의 길을 열어가려고 하는 김아중에게 이 드라마가 요구하는 미션이자 숙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원티드>가 던지고 있는 가장 큰 미끼는 시청률이라면 사람이 죽고 사는 일도 비정하게 카메라를 드리우는 방송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사회극적 요소다. 아이가 유괴된 마당에 밥을 넘길 수 없는 정혜인 앞에서 신동욱 PD와 제작진들은 잘도 밥을 먹는다. 그녀가 밥그릇을 집어던지자 신동욱 PD는 냉혈한처럼 말한다. 잘 먹고 잘 자서 최고의 상태를 만들라고. 그래야 방송도 잘되고 결국은 아이도 구할 수 있다고. 물론 그는 아이를 구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방송의 성공만이 그의 관심이다.

 

이 방송의 비정함과 대척점을 이루는 인물은 올곧은 형사 차승인이다. 그는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여배우의 아들 납치사건을 맡으라는 상사의 요구에 지금 하고 있는 납치 사건을 계속 수사하겠다고 말한다. 그 사건은 모두가 관심을 가지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사건은 자기가 아니면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방송 같은 미디어는 아무런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사건해결과 피해자를 구하는 것이 그의 소명이다. 신동욱 PD와 차승인이 부딪치는 지점이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유괴범을 찾아내는 일보다 더 흥미로워질 수 있다.

 

결국 <원티드>의 관건은 이 많은 미끼들을 시청자들이 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첫 회 시청률이 5.9%로 지상파 3사 꼴찌를 기록했다는 건 물론 좋은 조짐은 아니다. 하지만 첫 회가 저조했어도 2회에 7.8%로 시청률이 오른 사실은 고무적이다. 첫 회의 마지막 장면에 토크쇼를 통해 자신의 아들이 유괴됐다 발표하는 장면이 다음 회를 위한 미끼였다면, 2회의 마지막 장면에 범인이 미션으로 제시한 차 트렁크 안에서 누워있는 누군가가 발견되고 그가 그녀의 아들일 것 같은 뉘앙스를 던진 건 또 하나의 미끼다. 과연 시청자들은 계속 미끼를 물 것인가.

<국수의 신>이 가진 가능성과 약점

 

KBS 새 수목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이하 국수의 신)> 첫 회 시청률은 7.6%(닐슨 코리아)로 동시간대 드라마들 중 2위에 머물렀다. 1위는 8.7%를 기록한 MBC <굿바이 미스터 블랙>. 원작이 워낙 유명했던 작품이라 기대했던 것보다는 적은 수치지만 그렇다고 낙담할 수준은 아니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9.4%에서 8.7%로 추락한 걸 염두에 둔다면 <국수의 신>의 시청률은 아직 드라마가 본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볼 수 있고 반등의 기회도 충분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무엇보다 <국수의 신>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이유는 연출이 탄탄하다는 점이다. 첫 회부터 김길도(바로, 조재현)라는 희대의 악역이 탄생하는 과정은 사실 연출이 허술했다면 자칫 막장드라마처럼 보일 위험성도 있었다. 하지만 <국수의 신>은 그 짧은 한 회 속에 김길도라는 괴물의 탄생을 임팩트 있게 보여주면서도 연출의 완성도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살인강도를 저지르고 국수에 미친 순석(천정명)의 아버지 하정태를 찾아와 칩거하며 국수 비법을 훔치고 결국 하정태를 벼랑에서 떨어뜨려 모든 기억을 지워버리는 정도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세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국수의 신>은 여기서 머물지 않고 국수집을 차려 잘 살고 있는 김길도가 하정태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와 그의 아내를 살해하는 장면까지 담아낸다. 어린 순석이 불길 속에서 부모가 불에 타 죽는 장면을 보는 장면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정도로 강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을 배치해 넣은 이유는 결국 복수극의 힘이 강렬한 악역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김길도는 목적을 위해서는 살인도 아무렇게나 저지르는 괴물이다. 부모를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난 순석이 김길도에게 처절한 복수를 안기는 이야기. 그러니 <국수의 신>의 첫 회는 복수극으로서의 요건들을 상당히 잘 채워 넣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연출의 완성도로만 보면 같은 만화 원작이라도 <굿바이 미스터 블랙><국수의 신>의 편차는 확실하다. <국수의 신>이 심지어 어떤 미장센이 느껴지는 장면 연출까지를 보여준다면, 안타깝게도 <굿바이 미스터 블랙>은 기본기 없는 연출로 인해 이야기의 상황 설정만 있을 뿐 그다지 작품의 심도가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복수극이지만 완성도가 떨어지게 느껴지는 건 바로 이 연출의 차이 때문이다.

 

하지만 <국수의 신>이 갖고 있는 처절한 복수극의 이야기를 과연 지금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굿바이 미스터 블랙>이 좀체 시청률이 오르지 않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너무 주인공이 힘겨운 상황들만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 차지원(이진욱)의 사이다 복수가 조금씩 시작될 기미를 보여주지만 여전히 고구마(?) 전개라는 아쉬움들이 나오고 있다.

 

<태양의 후예>의 시청률이 그토록 고공행진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심지어 전쟁과 지진과 전염병이라는 어마어마한 난관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짧은 고구마 긴 사이다전개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주인공인 강모연(송혜교)이 납치되는 절체절명의 상황도 <태양의 후예>는 그리 오래 끌지 않았고, 금세 구출해 나와 농담을 던지는 유시진(송중기)을 보여줬다.

 

최근 들어 시청자들은 고구마 전개의 드라마들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금토 드라마인 <기억><욱씨남정기>를 보면 그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기억>이 꽤 완성도 높은 드라마지만 <욱씨남정기>에 시청률에서 따라잡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주인공이 너무나 힘겨운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욱씨남정기>는 힘겨운 상황에도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사이다 전개를 곳곳에 배치해 놓고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을 모든 드라마에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수의 신>이 가진 가능성과 약점을 이 관점으로 해석할 수는 있지 않을까. 완성도 높은 연출과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는 <국수의 신>이 가진 가장 큰 가능성이지만, 그것이 복수극이라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갖고 있다는 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것이 굉장히 센 장면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청률은 의외로 약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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