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경쟁에 빠진 걸그룹들을 위한 조언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그렇기도 할 것이다. 너도나도 어떻게 하면 시선을 끌 것인가를 고민하며 허벅지를 드러내고 엉덩이를 쓸어내리는 통에 그냥 밋밋하게 했다간 묻혀버릴 판이다. 독특한 자신들만의 음악 콘셉트를 갖고 있지 않은 걸그룹이라면 그래서 더 강한 자극을 선보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스텔라(사진출처:톱클래스엔터테인먼트)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노출도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이건 이미 도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인터넷의 연예뉴스를 보면 과감한 노출과 선정적인 동작을 선보이고 있는 걸그룹들의 캡처된 뮤직비디오나 무대 장면들을 도처에서 접할 수 있다.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한 걸그룹의 노출이 등장해 논란과 화제에 불을 지피고 그것이 조금 잠잠해지는가 싶어지면 다른 걸그룹이 나와 다시 불씨를 헤집는 형국이다.

 

기사들은 온통 노출경쟁 선을 넘었다는 식의 비판조로 쓰여져 있지만 사실은 홍보의 장이나 마찬가지다. 별 다를 것 없는 기사 내용을 반복해서 읽기보다는 그저 거기 같이 붙어있는 새로운 걸그룹의 캡처장면만이 회자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은 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그 강도는 더 세지기만 하고 있다.

 

사실 19금이다, 섹시 콘셉트다, 노출이다 말하며 비판을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건 아닐 것이다. 결국 음악이란 우리네 감정이나 생각을 노래에 담아 표현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것이 19금이든 섹시든 노출이든 필요하다면 안 될 것은 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마돈나나 레이디가가의 파격적인 노출과 무대 연출에 대해서 우리는 그저 선정적이라는 비파을 하지는 않는다. 즉 문제는 19금이나 섹시, 노출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가인은 걸그룹의 노출에 대해서 그저 야하다는 측면만 강조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피어나같은 노래를 실제로 야하다기보다는 솔직한 속내와 감정의 표현에 더 가까웠다. 노출과 과감한 동작이 들어 있는 노래와 퍼포먼스가 공감가는 측면이 있었다는 점이다. 또 이효리가 스윔수트를 입고 나와 부른 미스코리아같은 경우에도 야하다는 느낌보다는 어딘지 처연함 같은 것들이 더 많이 표현되었다. 상품화되는 몸에 대한 위로 같은 느낌이랄까.

 

즉 걸그룹의 노출이 문제시되는 것은 그 노래와 춤이 공감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자극적인 방편으로 활용되는 것인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상품화된 성을 수동적으로 전시하는 노출을 위한 노출에 대해 대중들이 공감하기는 어렵다. 즉 이 과도한 시각적인 자극에만 치중되는 노출은 결국 음악의 청각적인 부분들을 빼앗아가 버린다. 노래를 듣긴 들었는데 노래는 기억에 안 남고 몸동작들만 어른거리는 것.

 

음악에서 비주얼이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지만 그래도 음악의 본질은 노래와 가사에 있다. 그것이 귀에 쏙쏙 박혀 마음을 울리지 않는다면 눈에 들어오는 동작들은 그저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움직임일 뿐 아무런 감흥을 주기가 어렵게 된다. 결국 성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19금 콘셉트의 노래라고 하더라도 일단 그 가사와 음악이 전해져야 하고, 거기에 안무가 덧붙여져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시각이 아니고 청각을 되살려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노출 경쟁의 덫에 빠진 걸그룹들이 진정한 살길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만한 지점이다.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했을 때 무대 위에 선 가수들의 섹시나 노출은 좀 더 당당해질 수 있다. 공감 가는 감정표현으로서의 노출. 그것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게다. 수동적으로 전시되는 섹시와 표현으로서의 자신감의 차이는 이처럼 크기 마련이다.

자극보다는 상상력, 결과보다는 과정

 

<1박2일>은 언제부터 복불복만 남게 되었을까. 본래 <1박2일>은 게임 버라이어티가 아니다. <무한도전>이 시도했던 여행 특집의 한 지류로서 ‘여행’이라는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뤄왔던 여행 버라이어티가 <1박2일> 아니던가. 그런데 최근 <1박2일>을 보면 여행지에 대한 기억보다는 거기서 벌인 복불복 게임만 떠오른다. 어떤 벌칙을 받았고 누가 밥을 굶었으며 누가 야외취침을 했는가만이 반복되는 느낌이다.

 

'1박2일(사진출처:KBS)'

물론 복불복 게임이 자극적인 재미를 주는 건 사실이다. 이 재미의 핵심은 단순한 게임과 그로 인한 엄청난 결과에서 생긴다. 즉 가위바위보나 돌림판 같은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게임을 하지만 그 결과로 누구는 따뜻한 방안에서 자고 누구는 혹한에 야외취침을 하는 데서 나오는 자극이 핵심이라는 점이다. 간단하게 상황을 긴장으로 만들고 그 결과로 인해 생고생을 하는 모습이 우습기 때문에 복불복 같은 게임은 <1박2일>만이 아니라 <무한도전> 같은 여타의 예능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복불복에는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 그것을 적절히 사용했을 때는 프로그램을 보는 맛을 높여주지만 너무 과도하게 사용하면 프로그램의 색깔을 지워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미료와 같다. 라면스프는 어떤 음식도 되살려내는 ‘마법의 가루’ 역할을 해주지만 너무 많이 쓰면 음식은 기억나지 않고 라면 스프 맛만 기억나게 하는 법이다. 결국 복불복의 과잉 사용은 <1박2일> 본연의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1박2일> 복불복 대축제 특집은 바로 그 복불복 게임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돌림판을 돌려 거기 나와 있는 대로 복불복을 행하는 이 단순한 놀이는 그 자체로는 웃음을 주었을 지 몰라도 <1박2일> 본연의 유쾌함이나 즐거움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돌림판이 지정하는 대로 여름에 파카를 입기도 하고, 우스꽝스런 분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며, 낙오자가 된 이는 미스코리아 분장을 하고 연예인에게 등목을 받는 미션을 수행하지만 이것이 여행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것은 연예인들이 하는 이벤트나 행사처럼 보일 뿐이다.

 

서울이 공간으로 지정되었지만 이 특집을 통해 서울만의 여행지로서의 맛이 얼마나 느껴졌는지를 떠올려보면 그 한계를 실감할 수 있다. 과거 <1박2일>에서 경복궁을 재발견하고, 북촌의 한옥마을과 개구리가 뛰어노는 개울을 찾아 나섰던 여행들과 비교해보라. 우리는 지금 그 때 <1박2일> 멤버들이 어떤 복불복을 했던가는 기억하지 못해도 어떤 곳을 찾아가고 거기서 무엇을 발견했는지는 기억하고 있다.

 

물론 무계획 여행이라는 것이 하나의 아이템일 수는 있다. 그렇다면 장소와 상관없이 여행 그 자체가 주는 설렘이나 낯선 곳에서 느끼는 한가로움, 또 새로운 사람과의 우연한 만남이 주는 왁자지껄함 같은 여행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파고들었어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그저 복불복의 연속은 당장의 맛을 내기 위해 조미료만 가득 친 결과만을 만들 뿐이다. 처음 이 형식을 만들었던 이명한 PD는 복불복은 재미와 자극을 위한 부수적인 것일 뿐 핵심은 아니라고 밝힌 적이 있다. 결국 <1박2일>의 핵심은 여행에 있다는 얘기다.

 

또한 복불복 게임의 남용이 씁쓸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이런 형식의 놀이가 지나친 결과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외침은 물론 예능적인 재미를 위한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거기에는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으로도 읽힌다. 놀이가 과정의 즐거움이 되지 못하고 결과만 탐닉할 때, 그것은 자칫 문화의 퇴행을 만들어낸다. 한 때 어떻게 놀아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남자들이 폭탄주 문화에 빠져 들었듯이 취하면 다 똑같지 어떻게 취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식의 결과주의에 복불복 게임이 지나치게 경도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으로 보면 끊임없이 새로운 게임을 고민하고 그 게임에 새로운 스토리를 입혀 그 과정을 즐기는 <런닝맨> 같은 게임 버라이어티가 가진 가치가 새삼스러워진다. 108개의 CCTV를 활용해 데스노트에 적힌 순서대로 런닝맨들의 이름표를 떼려는 사신 정우성과, 그 108개의 CCTV를 다 꺼버리고 그와 맞서려는 런닝맨의 대결은 그 결과만 보면 허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는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다. 게다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진지하게 몰입하는 정우성의 모습은 놀이에 빠져드는 것 자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를 환기시킨다.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놀이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다. 어린 시절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논다’는 것을 ‘게으르다’거나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거나 심지어는 ‘불량’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과 동의어로 인식할 정도니 말이다. 그래서 막상 놀라고 하면 어떻게 놀아야할 지 갈피를 못잡는 것일 게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 삶은 놀이의 과정일 수 있다. 그 놀이가 결과만을 추구할 때 우리네 삶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삶에 복불복식의 놀이가 주는 잠깐의 즐거움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자극이 본질을 뒤집을 때 삶은 무미건조해져 버린다. 결국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에만 집착하는 복불복은 그 적절한 선을 유지하지 못할 때 독이 되기 십상이다. <1박2일>의 그 재미있던 복불복이 지금은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반면 <런닝맨>의 놀이는 낯설고 때론 유아적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것은 우리가 가진 놀이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게 여겨진다. <1박2일>의 복불복과 <런닝맨>의 게임 속에는 이처럼 우리가 놀이를 바라보는 너무나 다른 시선의 차이가 들어가 있다.

<출생의 비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경두, 다만 기억 못할 뿐

 

“경두씨가 얼마나 바보 같은 남자냐면요. 자기를 버린 아버지의 여자를 돌봐요. 몸도 성치 않은 노인네를 어떻게 혼자 두냐며, 그쪽의 아버지를 돌본다구요!” 경두(유준상)를 짝사랑하는 연정(조미령)은 이현(성유리)에게 이렇게 외친다. 이현에게 이제는 경두의 정을 떼어 달라고 부탁하러 온 연정이지만 그녀가 전하는 말 속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경두 같은 남자에 대한 절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출생의 비밀(사진출처:SBS)'

“나는 어디선가 마음이 베었을 때 경두씨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중략) 뭔가에 마음이 다쳐 가라앉아 있으면 경두씨 안절부절 못하죠.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왜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내가 저 사람한테 어떻게 해줘야 하나 어떻게 해주면 저 사람이 다시 웃을까 그 바보처럼 쩔쩔매는 모습만 봐도 벌써 위로가 되죠. 어떻게 세상에 그런 남자가 있을 수 있는지. 전 남편한테 맞고 살았던 나는 경두씨 같은 남자가 세상에 있을 거라고 생각 못했어요.”

 

경두는 그런 남자다. 아내였던 이현이 딸과 자신을 버린 채 사라져버려도, 또 기억에서조차 지워버려도 그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좋아했던 만두를 챙기는 바보 같은 위인이다. 금쪽같은 딸 해듬이(갈소원)를 그녀가 데려간다고 했을 때도 그녀와 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자리를 비워주고는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바보 중의 바보다. 그러면서도 수박 한 조각을 봐도 먼저 그녀를 떠올리고 혹 아프다는 얘기를 들으면 단박에 달려와 그녀를 위해 죽과 콩나물국을 끓여내는 남자다. 자신을 버리고 딸마저 데리고 떠난 여자의 아버지를 돌보는 남자. 연정이 말하듯 경두는 주변사람들을 웃게 해주기 위해 늘 쩔쩔맨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있을까.

 

<출생의 비밀>은 왜 이렇게 바보 같은 경두라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을까. 그리고 이런 착하기 그지없는 인물을 내세우면서 왜 제목을 흔히 막장드라마들이 줄곧 사용하는 클리쉐에서 차용한 것일까. 즉 <출생의 비밀>은 제목과는 달리 막장드라마들이 사용하곤 하는 클리쉐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아니 정반대의 길이다. 경두라는 캐릭터가 말하는 ‘출생의 비밀’이란 현재 막장드라마들이 즐겨(?) 사용하는 가족을 파탄내는 그런 코드가 아니다. 오히려 파탄 난 가족을 다시 묶어내는 방식으로서의 ‘출생의 비밀’이다.

 

사실 친 부모는 누구였고 그 친 부모가 재벌가의 회장님이었다는 식의 천박한 천민 자본주의식의 신분상승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출생의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출생의 비밀’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출생의 비밀’을 말한다. 누구나 ‘내가 어떻게 태어났지’하고 물을 때 갖게 되는 그 ‘출생의 비밀’, 바로 누군가의 절절한 사랑 말이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사랑이 있었기에, 그들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희생이 있었기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떻게든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려 발을 동동대는 경두만 봐도 마음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그 캐릭터가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어떤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출생의 비밀 속에 어른대는 경두 같은 인물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점점 기억에서 지워버린 그 출생의 비밀을 이 드라마는 그래서 경두라는 인물을 통해, 또 해듬이라는 아이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과거의 행복했던 기억을 잃어버린 존재, 이현은 바로 우리들 자신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녀가 차츰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도 어쩌면 각자 갖고 있었지만 기억 저편으로 잊혀져갔던 경두 같은 인물의 끝없는 사랑으로 존재하는 자신, 즉 각자의 ‘출생의 비밀’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경두가 해듬이에게 너는 이담에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자 해듬이는 엉뚱하게도 ‘가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왜 가지는 가지고, 오이는 오이고...(중략) 왜 가지는 보라색이고 오이는 연두색이고...(중략) 유전이를 공부하면 다 안댜.” 할아버지가 그랬듯 유전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다. 경두가 해듬에게 ‘유전’이가 누구냐고 묻자 해듬이 말한다. “누구가 아니구요. 홍경두가 홍해듬을 낳고 포목점 할머니가 연정 아줌마를 낳고 태만이 아저씨네 개가 애기 개를 낳으면 애기 개가 엄마 개를 닮는 게 유전이여.”

 

실로 복잡하게 뒤엉킨 ‘출생의 비밀’을 자극적인 코드로 다루는 드라마들이 많지만 정작 진정한 의미의 ‘출생의 비밀’을 다루는 드라마는 전무하다. 이것은 어쩌면 자극적인 것들만 기억에 남게 되어버린 작금의 세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태어나 닮아간다는 이 단순하지만 신비롭고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출생의 비밀’은 그래서 더욱 귀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드라마 <출생의 비밀>은 이렇게 현 세태가 오독시키고 있는 ‘출생의 비밀’이라는 코드를 기분 좋게 뒤집고 있다. 실로 ‘출생의 비밀’을 다루겠다면 이 정도는 되야 하지 않을까.

<진짜 사나이>, 샘과 손진영에 빵 터진 이유

 

군인은 샘 해밍턴의 꿈이라고 했다. 그는 방에서 <람보>의 DVD를 보여주며 어린 아이처럼 람보 놀이를 했다. 아마도 이 장면을 본 수많은 군필자들은 군대의 실상을 모르는 샘 해밍턴의 말과 행동에 웃음이 터졌을 것이다. 그가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겪을 리얼 군대에 람보 같은 낭만은 더 이상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웃지 않을 것만 같은 독사 조교가 그를 부를 때마다 그는 관등성명을 대느라 버벅거렸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류수영은 훈련소로 가는 길에 향수를 챙겨왔다고 했다. 힘들 때 기분 전환용으로 그걸 뿌리려 준비했다는 것. 아마도 진짜 군대라면 이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것이었을 게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향기 테라피’를 준비한 류수영은 이 촬영이 조금 힘들긴 해도 진짜 군대 체험은 아닐 거라 여겼던 모양이다. 그는 독사 조교가 사제에서 가져온 물품들을 모두 박스에 담으라는 명령에 향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염을 자르지 않고 들어온 손진영에게 독사 조교가 “군대에서 수염 기르면 안 되는 거 모르십니까?”하고 묻자 “자존심입니다”라고 하던 그도 결국에는 수염을 깎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 장면은 <진짜 사나이>가 그저 무늬만 군대 체험이 아니라는 걸 명확히 해주었다. 최근 <푸른 거탑>이나 <레밀리터리블> 같은 군대 소재 콘텐츠들이 트렌드를 이루고 있지만 <진짜 사나이>는 그 프로그램들과는 차별화된 리얼리티를 추구한다는 걸 보여준 것.

 

MBC <일밤>이 <아빠 어디가>의 새 파트너로 군대 소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를 포진시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빠 어디가>는 아이들의 순수성을 내세우는 만큼 시청률이 목적이 되기는 어렵다. 그러니 <일밤>의 다른 한 쪽으로 좀 더 강한 예능 프로그램을 세우려 한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이제는 리얼리티를 요구하는 대중들에게 <진짜 사나이>의 군대 이야기는 그 야전의 생생함을 무기로 삼고 있다. MBC 관계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김수로가 첫 촬영 이후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할 정도로 강도가 셌다고 하고, <정글의 법칙>에서 정글에도 다녀온 미르는 심지어 “정글보다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추구하기 때문에 강한 자극적인 설정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 판단하면 오산이다. 또 군대를 경험하거나 경험할 남자들에게만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도 편견에 불과하다. 이 프로그램은 그 시작점을 이제 훈련소에 들어가기 위해 이별을 고하는 일반 훈련병들과 그 가족들의 장면으로 삼았다. 까까머리들 속에서도 제 아들, 연인을 척척 찾아내는 가족들의 “잘 다녀오라”는 외침은 아마도 그 누구에게나 울림을 주었을 것이다.

 

<진짜 사나이>는 물론 군대 체험이 갖는 강한 이야기들이 그 소재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자극보다는 공감이 우선이다. 독사 조교가 들어와 단 몇 분만에 좌중을 싸늘하게 만드는 장면은 대표적이다. “목소리 이것밖에 안 나옵니까? 재밌습니까? 앉아! 일어서! 원위치! 이것밖에 못합니까?” 이 몇 마디는 아마도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독사조교의 그 몇 마디에 군기가 팍팍 세워지는 장면을 보면서 대부분의 남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을 게다.

 

그렇다면 이 조금은 딱딱한 군대 리얼리티 이야기에서 어떻게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그 긴장된 상황 자체가 부여하기 때문에 굳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웃음이란 긴장된 상황에서의 갑작스런 이완의 틈입이 주는 것이 아닌가. “205번 훈련병 손진영... 입니다!” 같은 어색한 관등성명에 옆자리에 앉은 동료들이 쿡쿡 웃음을 터트리는 건, 군대라는 낯선 곳에서의 긴장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웃지 마십시오!”라는 독사 조교의 명령은 그래서 웃음을 참게 만들고 그것은 더 웃긴 상황을 연출해준다.

 

군대 경험을 했던 이들이라면 군기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많은 행위들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졌다가 눈물 나는 기합으로 이어졌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을 군대라는 조직에 끼워 넣는 그 과정은 그 자체로 웃음이 터져 나올 수 있을 만큼 부자연스럽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부자연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순간, 군인만이 가진 군기와 체계가 생겨난다. 즉 군대라는 공간에서의 행동이란 일반인들에게는 웃음을 줄만큼 어색하게 보이면서도 당사자들에게는 긴장감과 두려움을 주는 것이기 마련이다.

 

실제 조교로 등장한 휘성은 같은 연예인 선후배들이 있는 가운데도 알은 체를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군대는 너희들이 사회에서 얼마나 잘 나갔든지 똑똑했든지 다 똑같이 대우 받는다 알겠냐?” 바로 이 딱딱한 체계 위에 관등성명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샘 해밍턴이 있고 잠자리에 들기 전 독사 조교에게 “화장실은 못 가는 거 아... 아니지 말입니다?”하고 버벅대며 묻는 손진영이 주는 포복절도의 웃음이 바로 <진짜 사나이>의 진면목이다. 리얼과 웃음은 그렇게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