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의 신><뷰티풀 마인드>, KBS드라마가 고민해야할 것

 

<태양의 후예>의 저주인가? 심지어 KBS 드라마의 부활이라고까지 얘기됐던 그 분위기는 <태양의 후예>가 끝나고 삽시간에 잦아들었다. 후속작으로 기대했던 <국수의 신>10%를 넘기지 못하고 7%대에 머물러 있다. 월화의 시간대도 마찬가지 흐름이다.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최고 시청률 17.3%(닐슨 코리아)까지 내며 종영했지만 후속작으로 야심차게 시작한 <뷰티풀 마인드>는 고작 4%대 시청률에 머물러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을까.

 

'국수의 신(사진출처:KBS)'

물론 드라마라는 것이 다 예상한 대로 잘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수의 신><뷰티풀 마인드>의 경우는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은 의외의 결과를 보인 작품들이다. 잘 만들었지만 시청자들이 그만한 호응을 보내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것은 드라마가 보여주려는 것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크다는 걸 말해준다.

 

<국수의 신>은 복수극이다. 복수극에서 역시 중요한 건 악역이지만, 또한 그만큼 중요해지는 게 그 악역을 뛰어넘고 고구마 전개를 사이다로 풀어내주는 주인공의 역할이다. 이 드라마에서 악역 김길도(조재현)를 맡은 조재현의 연기는 명불허전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눈 하나 까닥 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는 희대의 악역 캐릭터는 조재현의 묵직한 연기가 얹어져 드라마 전체의 힘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무명이(천정명)는 그만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 통쾌함을 선사하는 복수극의 진면목이 느껴져야 하는데, 어째 김길도에게 이리 저리 휘둘리는 인상이 짙다. 천정명의 연기도 조재현만큼의 존재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국수의 신>은 악역의 힘으로 흘러가는 드라마가 되었다. 너무 어두운 이야기들은 결코 요즘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다. 통쾌함을 기대했건만 잦은 패배와 복수에 대한 다짐만 반복되는 드라마에 시청자들이 지치는 건 당연지사다.

 

<뷰티풀 마인드> 역시 완성도는 떨어지지 않는 작품이다. 공감 제로의 천재외과의라는 설정은 의학드라마라는 장르적 설정 속에서도 공감과 소통이 인간의 증명이라는 결코 작지 않은 메시지를 담아낸다. 하지만 <뷰티풀 마인드>는 의학드라마에 스릴러라는 장치를 넣었다. 병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섬뜩함마저 느껴지게 만드는 반전 스토리는 물론 흥미진진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지금의 시청자들이 의학드라마라는 틀을 통해 보고 싶어 하는 건지는 미지수다. 최근 시청자들은 소름끼치는 이야기보다는 좀 더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에 시선이 가기 때문이다.

 

<뷰티풀 마인드>에서도 연기의 문제는 여전히 시청자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주인공인 이영오 역할의 장혁은 늘 연기가 비슷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이 드라마에서도 듣고 있다. 상대역할인 계진성(박소담)은 캐릭터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박소담은 영화에서는 대단한 연기를 보였지만, 드라마에서의 연기는 어딘지 어색한 면이 묻어난다.

 

결국 <국수의 신><뷰티풀 마인드>도 괜찮은 완성도의 이야기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외면 받는 상황이다. 게다가 KBS라는 플랫폼의 충성도 높은 시청층들이 이러한 스릴러 장르물들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감안해보면 이들 드라마들이 왜 힘을 내지 못하는가 하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드라마들은 작품의 내적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이 대중들의 정서다. 즉 대중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인가 아닌가에 따라 완성도와는 별도로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간만에 <태양의 후예><동네변호사 조들호>로 부활의 단초를 잡은 KBS드라마가 좀 더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은 KBS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지만.

<탐정 홍길동>, 한국형 판타지 히어로물의 탄생

 

사실 <탐정 홍길동>이라는 영화의 제목은 낮설다. 홍길동이라는 고전적 영웅 서사의 인물에 탐정이라는 현대적인 직업(?)을 덧붙였으니 그런 낯선 느낌은 어쩔 수 없을 게다. 게다가 <탐정 홍길동>은 사극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극이라고 할 만큼 현실적인 바탕을 내세우고 있지도 않다. 마치 <배트맨>의 고담 시티 같은 가상의 공간이 <탐정 홍길동>에도 주요 배경이 된다.

 

사진출처:영화<탐정 홍길동>

마치 프랭크 밀러와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만들었던 <씬시티>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 장르의 혼용과 만화와 실사의 결합이 놀랍게도 <탐정 홍길동>에는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게 시도되어 있다. 이야기는 그래서 배경보다는 홍길동(이제훈)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에 맞춰지고 그가 속한 활빈당이라는 비밀조직과 그들이 대항하는 광은회의 대결구도가 영화의 주요골격이 된다.

 

어린 시절의 충격적인 사건 때문에 기억과 두려움을 모두 잃어버린 홍길동이 한 마을로 들어가 자신의 과거를 캐고 복수를 하는 일련의 단순한 과정들이 영화의 내용이지만, 영화는 의외로 흥미진진하다. 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들이 무지막지한 액션들을 선보일 때 관객들은 그 비현실성도 잊은 채 카타르시스에 빠져든다.

 

이미 영화의 장르적 문법들에 익숙한 관객들은 <탐정 홍길동>이 아무 것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현실적 소재나 공간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게임을 하듯 인물들이 부딪치고 추리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또 어떤 반전을 이루는 그 과정들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때는 그 캐릭터가 갖는 함의는 분명 존재했을 터다. 왜 이 현대적인 판타지 히어로물에 굳이 홍길동이라는 고전적 영웅 서사를 붙였는가 하는 건 활빈당이라는 그가 속한 조직의 성격과 맞닿아 있다. 가난한 서민들을 위해 싸우는 정의 조직.

 

바로 이 지점에서 <탐정 홍길동>은 하나도 직설적으로 현실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우리네 현대사의 현실성을 상징적으로 유추하게 만든다. TV를 통해 나오는 정치인의 모습이나 군인의 모습은 80년대의 어느 한 시점을 떠올리게 하고, 광은회가 한 마을에 퍼붓는 엄청난 폭력 역시 우리네 현대사의 아픈 지점을 건드린다.

 

결국 <탐정 홍길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사건들은 우리네 뒤틀어진 현대사의 상징처럼 보인다. 무고한 마을 주민들이 있고 그들에 대한 엄청난 폭력과 착취가 행해지며 그렇게 얻어진 부는 정치권과 군부에 맞닿아 있다. <탐정 홍길동>은 어쩌면 현대사를 겪어온 우리네 심연 속 어느 마을로 찾아가 그 아픈 기억들을 헤집고 판타지를 통해서나마 이를 극복하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 영화는 전형적인 판타지 히어로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어찌 보면 서구의 장르적 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갱스터 무비의 성격을 우리 식으로 해석한 점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지만 <탐정 홍길동>은 이런 장르적 재미를 충실히 이행하면서도 그 안에 우리네 정서와 메시지들을 놓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 할만하다. <늑대소년>에서 어떤 장르적 경계를 허무는 실험을 보였던 조성희 감독은 <탐정 홍길동>을 통해 한층 더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구축해 보여주고 있다.

중국에 최적화된 <몽상합화인>, 장태유 감독의 차이나드림

 

북경에서 열린 장태유 감독의 <몽상합화인> 시사회에 쏠린 중국인들의 관심은 컸다. <별에서 온 그대>PD로서 많은 제작자들이 러브콜을 보냈던 장태유 감독이다. 그러니 그가 만든 영화에 대한 기대감 역시 클 수밖에 없다.

 


장태유 감독(사진출처:위에화 엔터테인먼트)

현장에 온 중국기자는 영화가 상영되기 전 <몽상합화인>에 대해 “<별에서 온 그대>처럼 초월적인 존재가 등장하느냐고 물었다. 장태유 감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몽상합화인>은 지극히 평범한 중국인들이 등장한다고 했다.

 

영화의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였지만 장태유 감독은 이런 장르가 중국에서는 낯선 장르라고 말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이야 늘 있었겠지만 아마도 평범한 여성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로맨틱 코미디가 낯선 장르라는 얘기였을 게다.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만 두고 보면 소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작품이 얼마나 중국에 최적화된 영화인가 하는 게 단박에 느껴졌다. 중국의 한 시골에서 자라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뉴욕까지 가게 되지만 결국 실패하고 돌아와 중국에서 MBA 과정을 밟으며 차이나 드림을 이뤄간다는 이야기다.

 

아메리칸 드림에 대응하는 차이나 드림을 넣었다는 건 현재 변화하고 있는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서 중국을 그대로 영화 속에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평범한 여성이 한 교수의 지도아래 하나하나 사업을 일으키고 키워나가는 과정은 일종의 스타트업에 대한 가이드라인 역할도 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적인 효과를 갖고 있다고 해도 이 영화는 상업영화로서의 코미디, 감동 같은 많은 정서적 감흥을 주는 요소들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

 

즉 한 평범한 여성의 좌충우돌 성공기를 웃고 울며 따라가다 보면 차이나 드림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메시지를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영화는 영어 자막으로 봐도 이해될 만큼 대단히 쉽고 빠른 전개로 흘러가지만 요소요소의 감정들을 놓치지 않고 살려나가는 점은 역시 장태유 감독의 저력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느껴졌던 이야기들이 점점 인물에 몰입하게 되고 그들의 성장을 보면서 빠져드는 과정들은 사실 할리우드의 그 어떤 시각적 스펙터클보다 강하게 다가온다. 장태유 감독은 보여주기보다는 캐릭터에 빠져들기를 선택했다고 보인다.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인들을 저격했던 그 취향들, 이를테면 여성들의 관점에 최적화되어 있는 유쾌함과 성공에 대한 욕망 같은 것들이 <몽상합화인>에는 잘 녹아들어 있었다.

 

사실 중국과 우리의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몽상합화인>의 중국에서의 성공을 미리 예단하기는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다가오는 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는 확실히 <몽상합화인>이 정서적 공감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중국 현지의 시사회장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중국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한참 웃다가 뒷부분에 가서는 눈물을 짓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몽상합화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많은 노하우들을 그냥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중국인의 감성에 맞게 재구성해낸 작품이다. 이미 웨이보 등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지대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만일 이 영화가 중국에서 성공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장태유 감독의 철저한 현지화 전략 덕분일 것이다. 장태유 감독의 차이나드림. 그것은 과연 많은 중국 진출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괜찮은 성공사례로 남을 수 있을까

사극의 또 다른 진화 보여준 <육룡>의 서사

 

SBS 월화 사극 <육룡이 나르샤>는 이제 종반을 향해 가고 있다. 이 사극은 여러모로 놀랍다. 무려 50부에 해당하는 대작이지만 한 회 한 회 느슨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 그렇고, 여말선초라는 이미 닳고 닳은 사극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그렇다. 물론 이 많은 영웅들(제목부터가 육룡이다!)이 누구하나 묻히는 이 없이 저마다 선명하게 자신들만의 캐릭터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놀라움이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하지만 무엇보다 더 이 작품이 대단하고 여겨지는 건 이건 그저 사극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사극이라 부르지만 기성의 사극에서 다뤄지던 내용을 완전히 뒤집거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가상의 설정들이 눈에 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역사를 배후에서 조종하는 무명이라는 조직이 그렇고, 왕의 독주를 막기 위한 장치로서 정도전(김명민)이 만들어낸 가상의 사대부 조직 밀본이 그렇다.

 

무명밀본<육룡이 나르샤>를 독특하게 만들어내는 이 작품만의 새로운 설정이다. 말미에 들어서 이방원(유아인)과 정도전(김명민)의 대결은 사실상 무명밀본의 대결양상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물론 이들은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고 그 안에 인물들에 의해 그 조직의 성격이 변질될 수도 있다. 그래서 흥미롭다. 이 이야기의 변수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역사라는 스포일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준다.

 

또한 <육룡이 나르샤>가 기존 사극과 다른 지점은 사극의 역사적 이야기와 동시에 무협에서나 등장할 법한 무술의 세계가 엮어져 있다는 것이다. 무휼(윤균상)이나 이방지(변요한)는 물론이고 길태미(박혁권)와 길선미 나아가 홍대홍(이준혁)이나 척사광(한예리) 같은 인물군들은 무협의 세계에 나올 법한 인물들로 <육룡이 나르샤>의 또 다른 재미요소를 만들어낸다. 이들이 서로 대결하고 무술을 배우는 그 과정 또한 이 사극의 또 다른 축이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정보조직인 화사단과 비국사라는 집단도 흥미롭다. 이 두 조직은 이른바 지재(정보)를 사고파는 집단이다. 이 집단이 사극 속에 들어가게 된 건 여러 모로 <육룡이 나르샤>에서 벌어질 여러 사건과 대결구도들이 현재적인 뉘앙스를 갖게 하기 위함이다. 지금은 정보전의 시대다. 그러니 과거의 역사를 소재로 다루면서 정보를 사고파는 가상조직을 집어넣어줌으로써 현재적인 느낌을 주는 더 흥미진진한 대결이 가능해지는 것.

 

사극의 정해진 역사라는 소재가 있고, 그 역사를 배후에서 움직이는 가상의 조직들이 있으며 또한 이들이 서로 대결하는 것이 그저 정치적인 대결이 아니라 무술의 대결로서 시각화하는 무협적인 가상인물들이 등장하며 또한 정보의 흐름을 장악한 자가 승리한다는 현대전의 양상을 담아내는 비밀정보조직까지 있으니 이건 우리가 봐왔던 사극에서는 한참 더 진화된 어떤 형태라고 해도 될 법 하다.

 

흥미로운 건 <육룡이 나르샤>가 이미 <뿌리 깊은 나무>의 프리퀄로서 그 소재들을 상당부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비담 같은 인물이라고 칭하는 얘기를 통해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과거에 썼던 <선덕여왕>과의 연결고리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이제 훗날 어떤 사극이 <육룡이 나르샤>가 그려냈던 이런 조직들과 설정들(이를 테면 무명이나 밀본 혹은 화사단이나 비국사 같은)을 활용해도 그리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장치들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장르라는 것은 이처럼 매력적인 하나의 작품을 통해 구조화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판타지 장르가 톨킨이 그려낸 반지의 제왕호빗에 상당부분 기대고 있는 것처럼, 하나의 잘된 작품은 그 기반 위에 새로운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육룡이 나르샤>가 대단하다 여겨지는 건 그 세계가 지금껏 사극들이 다뤄온 세계와는 확연히 다른 또 다른 세계를 구축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화를 거듭한 끝에 생겨난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무방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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