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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작가의 <도깨비>, 어떤 정서를 건드리고 있나

 

시간과 공간, 이승과 저승, 현실과 비현실 같은 경계들을 모두 뛰어넘었다. 고려시대 무신 김신(공유)은 자신이 지키던 주군의 칼날에 쓰러지지만 그를 지지하는 민초들의 염원에 의해 되살아나 영원히 살아가는 축복이자 저주를 받게 된다. 완전한 무()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도깨비 신부가 그의 가슴에 박힌 검을 뽑아야 한다는 신탁을 받은 채.

 

'도깨비(사진출처:tvN)'

tvN <쓸쓸하고 찬란하-도깨비(이하 도깨비)>는 우리네 전설과 야담에 등장하는 도깨비라는 특이한 존재를 소재로 담았다. 신성성을 가진 존재로서 민간신앙의 대상이었던 도깨비는 민담 형태로 구전되면서 인간적인 면면들이 깃든 존재로 그려져 왔다. 신앙의 대상인 신에서부터 인간에게 당하기도 하는 모습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그런 존재.

 

<도깨비>는 그래서 그 특이한 존재적 특성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현재까지 시간적 한계를 훌쩍 뛰어넘었고, 죽음을 뛰어넘어 불사하는 존재로서 그려졌으며, 서울의 한 복판에서 문 하나를 열고 캐나다의 거리로 나가는 공간적 한계도 뛰어넘는 존재이다. 드라마가 이런 주인공을 세운다는 건 그간 복작복작대던 드라마 특유의 이야기의 한계 또한 뛰어넘어야 함을 뜻한다.

 

<도깨비>는 그래서 동서를 뛰어넘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끌어안았다. 사극에서부터 전형적인 신데렐라 구성의 가족이야기, 마치 <전설의 고향>을 현대식으로 해석한 듯한 도깨비와 저승사자의 이야기와 북유럽 하이랜더의 죽지 않는 불사의 존재에 대한 판타지 장르까지 이 한 작품에 담겨졌다. 김은숙 작가 같은 베테랑이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 중심구도는 김은숙 작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멜로가 자리했다. 도깨비 김신과 그에 의해 죽지 않고 태어나 자라게 된 지은탁(김고은)의 사랑이야기가 그것이다. 불사의 존재인 김신은 드라마 제목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쓸쓸하고 찬란한인물이다. 그가 바라는 지향점이 결국 무()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쓸쓸하다. 그런 그가 귀신을 보는 것 때문에 왕따 당하는 지은탁이라는 소녀를 만난다. 스스로가 도깨비 신부라는 그녀는 스스럼없이 김신에게 시집가겠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는다.

 

드라마는 인물의 욕망에 의해 굴러가기 마련이란 점에서 보면 도깨비라는 존재가 가진 무()에 대한 욕망은 인간적인 욕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드라마가 현재의 시청자들의 욕망을 이끌어내는 존재는 지은탁이라는 소녀다. 그녀를 처음 보게 된 김신이 특이하게도 그녀에게서 미래가 읽히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농담처럼 던지고, 그녀가 다름 아닌 김신에 의해 되살려져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걸 확인해주는 대목은 그래서 중요하다.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맞게 된 엄마와 그 죽기 직전 간절한 기도를 하라고 얘기해줬던 삼신할매(이엘), 그래서 도깨비에 의해 살 수 있게 되어 얹혀 지내며 구박 받는 신데렐라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 어찌 보면 절망적일 수 있는 청춘이지만 그녀에게도 어느 한 순간의 찬란한 빛처럼 신이 깃든다. 바다 앞에서 절망적인 그녀가 읊조리듯 소원을 비는 그 순간에 신과 조우하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민간 설화의 이야기를 통해 구전되며 만들어진 도깨비라는 존재는 어쩌면 당대의 힘겨웠던 민초들의 절망의 끝에서 기대게 되는 구복의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깨비>가 가진 이야기는 단지 남녀 간의 판타지 멜로라기보다는 우리 시대에 억눌린 어떤 정서 같은 것들이 절망적인 순간 기대게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시간과 공간, 이승과 저승 그리고 현실과 비현실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 결국 그건 실체가 없는 판타지로서 쓸쓸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그 판타지가 누군가를 살아가게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찬란한.

Posted by 더키앙

<복면가왕>에 대한 고마움과 씁쓸함

 

MBC <복면가왕>은 스스로를 미스테리 음악쇼라고 부른다. 복면 뒤에 누가 있는가를 추리한다는 의미에서 미스테리라는 말을 붙였고 복면 쓴 그들이 한바탕 즐거운 쇼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음악쇼라 붙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계속 보다보면 도대체 이렇게 많은 실력자들이 왜 복면이 씌워진 채 대중들에게는 잘 보여지지 않았던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필자에게 <복면가왕>이 주는 미스테리는 바로 그런 의미다. 무엇이 이들을 가리고 있었던 것일까.

 

'복면가왕(사진출처:MBC)'

일반적으로 쉽게 편견이라고 지칭해서 말하지만 거기에는 그간 우리네 음악 산업이 갖고 있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다. 또한 거기에는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늘 해왔던 안전한 선택들 역시 존재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스스로가 스스로의 잠재력을 가려왔던 것 또한 보인다.

 

기획사들도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이돌 그룹에 집착한다. 물론 그만한 파괴력을 가진 유닛 형태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연습생 과정을 거치는 기획사 시스템 때문에 20대를 넘어선 가수 지망생들은 아예 설 기회조차 사라지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이들 소외된 20대들을 끌어 모아 힘을 발휘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아이돌 그룹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자신의 기량을 100% 발휘할 수 있는 아이돌은 드물다. 최근 <복면가왕>의 무대가 주로 아이돌의 재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아이돌 그룹에 합류한다고 해도 여전히 그 틀 안에서 소외되는 아이돌들이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유닛 속에서는 자신의 역할이 규정되기 마련이다. 그 역할을 벗어나면 다른 멤버의 영역이 침해된다. 아이돌이란 틀은 파괴력이 있지만 동시에 어떤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음악 프로그램들은 한 때 순위를 내세우지 않는 등의 변화를 보여줬지만 최근 들어 다시 순위가 부활하고 있다. 그 순위에 들어간 음악들은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아이돌 일색으로 바뀌고 있는 것. 최근 벌어진 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빅뱅과 엑소의 1위를 둔 대결이 팬과 팬 사이의 심각한 갈등으로까지 이어진 건 순위 프로그램이 가진 한계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렇게 트렌디한 음악 프로그램에서 아이돌의 음악만 반복해서 들려주는 건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아이돌의 음악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더 많은 음색과 가창력 그리고 개성과 끼의 소유자들이 배출될 수 있는 무대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복면가왕>이 주목을 넘어 열광적인 반응까지 얻어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이 다양한 가수들의 무대를 이 음악쇼가 가능하게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제 한 물 갔다고 여겨진 십여 년이 넘게 활동을 안 하던 가수가 올라오기도 하고, 여전히 전설이지만 설 무대가 없어 방송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던 권인하나 고유진 같은 가수가 등장하기도 하며, 때로는 가수 뺨치는 아마추어들의 기량에 놀라기도 한다.

 

<복면가왕>이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복면을 씌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이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복면가왕>은 노래와 이미지가 엇박자를 이루는 프로그램이다. 노래는 기가 막힌데 그들이 쓴 복면은 우스꽝스럽기 이를 데 없고 간간히 진행되는 인터뷰에서도 변조된 목소리는 경박하게까지 느껴진다. 결국 복면은 가수가 가진 아우라의 이미지를 상당부분 깨는 역할을 해준다. 결국 가수들은 이미지를 포기함으로써 무대에 서서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복면가왕>은 편견을 지운 무대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 편견은 가수들이나 시청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몇 기획사 중심으로 굴러가는 권력적인 가요계의 흐름과 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음악 프로그램들의 반복적인 노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더 많다. 심지어는 <복면가왕>조차 아이돌의 재발견의 장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복면가왕>은 너무나 고마운 프로그램이지만, 동시에 만만찮은 가요계 기득권층의 힘을 보여주는 씁쓸함이 있다. 이제 전설들도 복면을 쓰고 나와야 무대에 설 수 있다.

 

Posted by 더키앙

주병진, 전설의 귀환을 가로막는 것들

 

주병진씨는 제게 롤 모델이자 우상입니다.” SNL코리아에 호스트로 출연한 주병진에게 신동엽이 이런 말을 던졌다. “정말 모시기 어려웠는데 영광입니다.” “이 자리의 주인공이 원조가 사실 주병진씨입니다.” 피플 업데이트 코너에서 유희열 역시 주병진을 상찬하기 바빴다.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병진이다. 대선배인데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라는 버라이어티쇼로 우리에게는 전설로 남아 있는 인물이 아닌가.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주병진은 몸 개그와 바보 캐릭터가 코미디의 주종이던 시절, 토크 버라이어티쇼라는 새로운 장을 연 장본인이다. ‘코미디계의 신사라는 별칭에 걸맞게 게스트에게 매너 있는 모습과 때로는 그 매너를 살짝 벗어나거나 뒤트는 것으로 웃음을 만드는 게 그의 최대 강점이다. 신사라는 캐릭터의 이면을 슬쩍 보여줌으로써 반전 웃음을 주는 것.

 

몰래카메라를 탄생시키고, 이경규, 노사연, 김흥국 같은 인물들을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해준 인물이기도 하다. 게다가 속옷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연예인 중에서는 보기 드문 성취를 이룬 그가 후배들의 우상으로 받들어지는 건 당연하다. 신동엽의 이야기는 단지 수사가 아니라 진심일 것이다.

 

하지만 전설 주병진이 현역 주병진이 되는 것은 다른 얘기다. 거기에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난관들이 있다. 먼저 그가 떠나 있던 사이 개그의 스타일이 상당히 많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코미디란 대본이 있고 그 대본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 하는 연기력이 중요했다. 주병진이 펄펄 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남다른 표현 능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시대에 연기력은 자칫 너무 인위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 물론 <개그콘서트> 같은 콩트 코미디에서는 연기력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일반적인 버라이어티쇼에서는 연기력보다는 자연스러움이 더 중요하다. 피플 업데이트에서 주병진의 빅 데이터 분석 한 켠에 들어 있던 올드하다라는 말은 새겨볼만한 단어다.

 

꽤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그의 스타일은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물론 그의 캐릭터가 확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점은 지금의 예능판에서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SNL 코리아>는 이 부분을 뒤집어 오히려 웃음 코드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배워봅시다라는 코너에서 힙합을 하는 박재범에게 예의가 없다예의 바른힙합을 강요하는 장면이 그렇다.

 

주병진 매니저편으로 꾸려진 아직도 극한직업코너 역시 8,90대 할머니 할아버지 팬들이 모인 행사장 분위기로 그의 올드하다는 대중들의 생각을 웃음으로 바꿔놓았다. 앙대요-’로 웃기는 매니저에게 어떻게 그렇게 수준 낮은 농담을 거기서 할 수 있냐숭구리당당을 선보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옛날 스타일의 개그가 지금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웃음 코드로 바꾼 것.

 

사실 전설이 현역이 되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예능처럼 웃음을 주어야 하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주병진을 전설로 상찬하는 신동엽과 유희열은 당연하지만 그러한 상찬은 또한 현역이 되려는 주병진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후배들의 전설로 계속 남아서는 현재를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전설은 한 때의 추억처럼 잠시 소비될 수 있을 뿐이다.

 

돌아와서 죄송합니다. 안 오려고 그랬는데 어디 먼 길 떠나거나 여행을 가면 많이 힘들 때 너무 힘들어 집에서 쉬어야겠어. 집에 가고 싶어 이런 말씀들 많이 하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런 느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주병진은 마치 습관처럼 계속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꺼냈다. 또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 말 속에는 주병진의 현실 인식이 들어 있다. 바로 여기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전설이 성공적으로 현역 복귀하려면 일단 전설의 무거운 옷을 벗어놓아야 한다.

Posted by 더키앙

<나가수2> 새롭고 젊어져야 산다

 

<나는 가수다2(이하 나가수2)>에 첫 출연한 국카스텐이 쟁쟁한 선배 가수들과의 경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사실 순위가 가창력이나 음악성을 말해주는 건 아니다. 다만 청중들과 시청자들이 지금 <나가수2>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는 말해준다. 그것은 선배들을 챙겨주는 예우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래 좀 한다고 잔뜩 어깨에 힘이 들어가 "나 나가수 출신 가수야"하는 거들먹거림도 아니다.

 

 

'나가수2'(사진출처:MBC)

물론 <나가수2>의 가수들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가수들을 대하는 과도한 시선이(심지어 신들 운운하는) 그들을 좀체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나가수>의 존재증명은 음악과 관객들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지, 스스로 권위를 세운 프로그램에 의해 생겨나는 건 아니다. 그런 점에서 국카스텐의 등장은 <나가수>가 스스로 세워놓고 버거워한 권위를 상당 부분 깼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미 밴드 음악을 즐겨듣는 애호가들에게 국카스텐의 미친 존재감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현재 <나가수2>에 출연하고 있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 한참 후배다. 게다가 방송 경험도 일천하다(물론 무대경험은 다르지만). 그런데 그들이 무대에 서자 기존 틀에 박힌 모습을 보여주던 <나가수>의 무대가 달라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가수들이 여전히 <나가수>표(?)의 편곡과 음악을 보여주고 있었던 반면, 국카스텐은 확실히 기존 <나가수>와는 다른 창의적이고 신선한 면모가 도드라졌다.

 

청중과 시청자들, 심지어는 함께 출연한 선배가수들까지 모두 국카스텐의 그 도발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며 반가워했던 것은 그것이 <나가수>의 무거운 패턴 반복을 깨주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부쩍 많아진 전설들(?)을 모셔놓고 스스로 상찬하고 감동하는 그런 회고적인 무대가 아닌, 지금 현재 도마 위에서(?) 펄떡 펄떡 뛰고 있는 한 마리 고등어 같은 젊은 밴드(이렇게 실력은 넘치지만 방송의 조명을 못 받고 있는 가수들이 얼마나 많은가!)의 등장.

 

<나가수2>가 <나가수1>과 어떤 차별점을 가질 것인가를 고민했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했던 것은 생방송이나 경연방식 같은 단지 형식만이 아니었다. 결국 <나가수>는 가수들이 만들어가는 무대가 아닌가. <나가수1>과는 다른 <나가수2>만의 얼굴을 드러내려면 거기 세우는 가수들의 면면이 달라졌어야 한다. <나가수1>이 기성가수들 중 비교적 얼굴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숨은 실력자들을 발굴해냈다면, <나가수2>는 국카스텐처럼 실력은 넘치지만 조명 받지 못한 비교적 젊은 가수들로 채웠더라면 어땠을까.

 

<나가수>는 제목에 가수의 존재를 증명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많은 가수들과 가요계 관계자들이 지적했던 점은 <나가수>가 가진 폐쇄적인 느낌이었다. "<나가수> 안 나가면 가수도 아니냐"는 일부의 지적은 그런 점에서 타당하다. 그만큼 가수들에게 <나가수>는 권위로서 작용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가수의 범주까지 만들어내는 <나가수>는 좀 더 다양한 가수들이 설 수 있는 무대여야 하지 않을까. 나이든, 세대든, 장르든, 그 어떤 것이든 간에 상관없이 가수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국카스텐의 <나가수>무대 등장과 그 첫 출연에 떨어진 대중들의 호응은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는 고무적인 일이다. 선배라고, 또 미친 가창력으로 불린다고, 권위를 스스로 세우기보다는 대중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극대화해줄 수 있는 무대를 선보임으로써 없던 권위도 세워지는 그런 무대. 국카스텐은 <나가수2>의 그런 가능성을 열어보였다. 이것은 또한 자꾸만 연령대가 높아지고 있는 <나가수>의 시청층을 낮추는 데도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나가수>는 계속 새로워져야 한다. 그런데 그 새로움은 음악 자체의 새로움이다. 생방송이나 경연 방식도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집착할 일이 아니다. 새로운 가수 발굴, 기성 가수의 지끔까지 몰랐던 새로운 면면의 발견이 없다면 <나가수> 무대는 기존 음악 프로그램과 아무런 차별성을 갖지 못할 지도 모른다. 국카스텐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다른 출연 가수들도 국카스텐이 열어놓은 작은 숨구멍을 통해 저마다의 새로운 무대를 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나가수2>는 이 변화가 보일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Posted by 더키앙


'나가수', 왜 쉽게 돌아오지 못할까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유난히 격정적이고 감정몰입이 뛰어난 탓일까. 우리네 대중들은 '전설'이니, '신들의 무대'니 하는 표현에 그다지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물론 비유일 것이다. 그만큼 놀라울 정도로 노래 잘하는 가수라는 상찬. 그래서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은 우리를 좀 더 쉽게 준비시킨다. 그 무대는 처음부터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신들의 무대'가 시작된다. 그러니 찬양하라! 노래가 주는 감동에 눈물을 흘리는 그 기적의 순간을 경험하라!

물론 이들을 신으로 격상시킨 것은 다름 아닌 대중들이다. 대중들의 음악에 대한 강한 욕구,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열망이 이들을 '신들의 무대'로 만들어 놓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 안에서 우리는 노래 한 구절에 마음껏 눈물 흘리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호응을 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신들의 무대'로 불리는 디오니소스적인 이 '나가수'는 그러나 결정적으로 현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순위 발표 시간이다.

혼신의 무대를 통해 신들로 격상된 가수들은 이 순간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져 우리와 똑같은 한 인간임을 드러낸다. 그 첫 번째 인간임을 증명한 이가 김건모다. 물론 그는 애초부터 신이고 싶어 하지 않은 가수였고(그러니 립스틱을 바르는 광대의 모습을 보이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동료가수들에 의해 '재도전'을 했고, 그것은 대중들의 재가를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패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가 힘겨운 것은 이 엄청난 상승과 그 상승의 폭에 비례해 겪게 될 추락의 충격파 역시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상승과 하강은 전적으로 대중들의 선택과 재가에 의해 이뤄진다(고 믿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들이 허락하지 않는) 가수가 올라오면 수많은 구설수와 음모론이 제기된다. 신들의 무대는 대중들이 선택한 가수만 오를 수 있다. 즉 그 무대 위에 서는 신은 결국 대중들이 만든 것이다. 가수 선정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누가 대중들의 모든 마음을 대변해서 거기에 딱 맞는 예비 신(?)을 섭외할 수 있을 것인가. 또 가수들도 마찬가지다. 그만한 기량을 갖춘 가수라고 해도 지나친 상찬이나 그로인한 엄청난 충격의 추락을 견뎌내는 것 그 어느 것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정도의 레전드급 가수들은 굳이 '나가수'를 나오지 않아도 가수로서의 입지에 큰 영향이 없다. 이미 확고한 인지도를 갖고 있는 데다가 방송 활동은 조금 뜸해도 공연으로 확실한 존재감을 빛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문세, 이승환, 이승철, 이선희, 윤미래, 이적 등등. 수많은 레전드급 가수들이 러브 콜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확답이 없는 이유에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다.

'나가수' 시즌1을 통해 무대의 문턱이 너무 높아져 있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인지도가 조금 떨어지는 가수가 이 무대에 오른 게 되면 이제 '격에 맞지 않는 캐스팅'이 논란이 된다. 하지만 본래부터 '나가수' 무대의 가수들이 모두 레전드급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다. 시즌1의 첫 경연에 올랐던 7인을 보면, 물론 가창력은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처음부터 '레전드급'이라고 이름 붙여지지는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은 이 무대를 통해 '레즌드'가 된 것이지, 이미 레전드인 그들이 '나가수' 무대에 오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가수' 시즌2의 가수들이 모두 '레전드급'일 필요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잘 할 것이라 여겨지는 그들이 잘하는 무대는 대중들에게 그다지 큰 감흥을 주기 어렵다. 오히려 미발굴된 '숨은 고수'를 찾아야 한다. 엄청난 가창력과 음악성을 갖고 있지만 방송에 비춰지지 않아 숨겨져 있는 진주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나가수'의 소명이 아닐까. 그 진심만 전할 수 있다면 '나가수'를 굳이 '신들의 무대'로 세팅된 상태에서 시즌2를 시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차피 그 신들의 무대는 대중들과 함께 만들어온 것이니까.

Posted by 더키앙

인순이, 무엇이 그녀를 '나는 가수다'라고 외치게 했나

'나는 가수다'(사진출처:MBC)

인순이는 누가 봐도 전설이다. 그녀가 지금껏 해온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녀는 희자매라는 당시로서는 흔치않은 걸 그룹으로 데뷔했고, 혼혈의 편견이 여전할 때 솔로로 홀로섰다. 오로지 실력으로 KBS 7대 가수상을 수상했고, 이제 잊혀지는가 싶을 정도로 10여년 간이나 활동을 접고 있다가 조PD와 함께 발표한 곡 '친구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또 '거위의 꿈'은 원더걸스의 '텔미'를 누르고 '뮤직뱅크'에서 1위를 차지했고, 2010년 발표한 '아버지'라는 곡은 당시 라디오 방송횟수에서 이효리나 비 같은 젊은 가수들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 섰다. 그녀가 이 무대에 선다고 했을 때 '나가수 자문위원회'에서는 심지어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전설은 전설로 남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뒤집은 건 인순이의 '가수 선언'이었다. 자신은 늘 현역 가수로 남고 싶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나는 가수다'에 올랐다. 어쩌면 그 제목이 자신의 존재증명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렇게 전설은 다시 가수로 돌아왔다. 여전히 긴장되고 여전히 설레는 무대 위에서 온몸을 던져 노래 부르는 그녀는 진정한 가수였다.

전설. 혹은 레전드. 정말 달콤한 말이다. 하지만 달콤함만큼 씁쓸함도 있는 말이다. 전설이라는 말 속에는 어딘지 과거형의 뉘앙스가 살아있다. 그래서 전설로 추대되면 그 남긴 공적에 존경을 받을 수는 있지만(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형을 희생해야 한다. 전설은 누군가의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존재이지, 지금 현재 자신의 힘으로 현재의 관객과 소통하는 존재는 되기가 어렵다. 인순이가 버린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녀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선택했다.

이것은 그녀가 지금껏 살아온 삶의 행보 그대로다. 그녀는 늘 현재를 선택해왔다. 희자매가 꽤 인기를 끌었을 때도 자신의 가창력은 혼혈이라는 이질적인 외모에 가려 대중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밤이면 밤마다'로 엄청난 인기를 얻고는 갑자기 달라진 가요계 환경 속에서도 밤무대에 서서 노래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다시 복귀한 무대가 '가요무대'나 '열린음악회'만이 아니라 '뮤직뱅크' 같은 현재형 무대였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녀는 또 지금 현재를 선택했다. '나는 가수다'라는 현재형 무대를.

도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토록 현재형 무대에 머물도록 만들었을까. 인순이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을 고집하면서 그녀는 왜 그토록 과거로 매몰되거나 한때 '노래 잘하는 혼혈 가수가 있었다'는 기억 속에 머물기를 거부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자신이라는 존재의 증명을 위한 안간힘이었을 지도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거부되는 존재처럼 치부된 세상을 향해, 그녀는 "나는 인순이다!"라고 외치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가 지금 무대 위에서 부르는 노래는 그 어떤 설명을 들려주지 않아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아버지'라는 심금을 울리는 노래나 심지어 댄스곡인 '난 괜찮아' 같은 노래마저도 특별하게 들리는 것은 그 노래를 다름 아닌 이미 전설이 되도 좋을 만큼 많은 삶의 질곡을 겪어온 현재형 가수 인순이가 부르기 때문이다.

전설이 되긴 쉬워도(물론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모두가 전설이라 부를 때 그것을 거부하고 "나는 가수다!"라고 선언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인순이는 그 어려운 일을 현재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하고 있다. 인순이 같은 거목과,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젊은 가수들이(상대적으로) 같은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한 건, 오로지 박제된 상찬을 버리고 스스로 무대로 내려온 가수 인순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전설'이다. 그녀는 가수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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