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도깨비><푸른바다>의 전생 활용법

 

tvN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이하 도깨비)>SBS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는 비슷한 점들이 많다. 아마도 판타지 장르가 갖고 있는 이야기 틀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 여겨진다. 도깨비와 인어라는 초현실적 존재가 등장하고 늙지 않는 이들이 전생과 현생에 걸쳐 운명적인 사랑을 한다는 그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다고 이 두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관이 같은 건 아니다. 두 작품의 현생으로 이어지는 전생의 활용법을 들여다보면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사진출처:tvN)'

<도깨비><푸른바다의 전설>이나 전생의 악연이 현생으로까지 이어진다는 건 흥미로운 유사점이지만, 두 작품은 전생과 현생이 이어지는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도깨비>는 전생에 김신(공유)과 왕 그리고 왕비(김소연)의 악연이 먼저 보여졌다. 즉 전쟁의 신으로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는 김신을 질투한 왕이 왕비는 물론이고 김신까지 죽이는 전생의 악연이다. 하지만 이들이 현생에서 누구로 다시 태어났는지 또 어떤 인연으로 얽히는지에 대한 것들은 모두 의문에 붙여졌다.

 

<도깨비>는 바로 이 의문점, 현생의 저승사자(이동욱)와 써니(유인나) 그리고 도깨비가 각각 전생의 그 악연 속에서 어떤 인물이었던가에 대한 궁금증을 드라마의 동력으로 삼는다. 벌써부터 저승사자는 왕이었고 써니는 왕비였다는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그것이 확실히 밝혀진 건 아니다. 하지만 <도깨비>가 활용하고 있는 이른바 전생의 비밀은 그래서 시청자들이 참여해 다양한 추측들을 내놓을 수 있는 하나의 장치가 되고 있다.

 

반면 <푸른바다의 전설>은 전생에 얽혀진 악연이 현생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즉 전생에 인어(전지현)를 잡아 욕망을 채우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이를 막으려다 그와 악연을 맺게 되는 담령(이민호)의 관계는 현생에서도 인어를 잡으려는 연쇄살인범 마대영과 그것을 막으려는 허준재(이민호)로 이어진다.

 

전생이 현생으로 그래도 반복되고 있지만 <푸른바다의 전설>, <도깨비>가 그 전생의 결말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왕비와 김신의 이야기를 일찌감치 내놓은 것과는 달리, 그들의 악연이 어떤 결말로 전생을 끝맺는지를 숨겨왔다. 결국 밝혀진 건 인어를 잡으려고 마대영이 던진 작살을 막기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든 담령이 대신 죽음을 맞이하고 그 사실을 안 인어가 그와 함께 자결하는 전생의 결말이다.

 

결국 <푸른바다의 전설>은 전생이 현생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보여줌으로써 현재 인어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긴장감을 높이는 효과를 취하고 있다. 마대영이 조금씩 전생의 사실들을 알아차리고 인어를 향해 다가오는 상황들이 긴장감을 만들고 이를 막기 위한 허준재의 고군분투가 전생과 현생을 이어 벌어진다.

 

우리네 드라마에서 강력한 극적 장치로 흔히 사용되던 출생의 비밀은 그 지나친 클리셰로 인해 마치 막장드라마의 공식처럼 되어버린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도깨비><푸른바다의 전설>은 판타지라는 소재에 걸맞는 전생의 비밀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하나는 전생과 현생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드라마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반면, 다른 하나는 그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보여줘 현생의 상황들에 극적 긴장감을 만들고 있다.

 

판타지 소재의 드라마들은 최근 들어서야 비로소 하나의 장르적 틀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 이러한 전생의 비밀이라는 장치는 어쩌면 보다 많은 판타지 소재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면 또 하나의 클리셰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이 장치가 만들어내는 궁금증과 긴장감은 확실히 효과를 내고 있다고 보인다. 출생의 비밀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푸른바다>, 그저 인어판타지로 치부할 수 없는 기억 모티브

 

도대체 이 인어라는 존재의 진짜 능력은 무엇일까.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을 보다 보면 슬쩍 드는 의문이다. 인간보다 오래 산다? 인간을 사랑하게 되고 사랑받지 못하게 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먼저 죽을 수 있는 존재로 인어가 그려지고 있는 마당에 이런 삶의 길이는 그다지 중요한 능력이 아닌 것 같다. 물에서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인어의 관점으로 보면 뭍에서 잘 살 수 없다는 이야기일 수 있다. 역시 능력이라 부르긴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힘이 세다? 이건 능력일 수 있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이 능력을 발휘하는 장면은 스페인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격전 정도다. 그것도 코미디로 처리된.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인어의 진짜 능력은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의 아픈 기억을 지워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은 실로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능력이다. 중간에 살짝 에피소드를 들어간 의료사고로 죽은 딸의 아픈 기억을 가진 예은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웃으며 돌아오겠다던 아이가 싸늘하게 돌아왔을 때 찢어지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그 기억은 너무나 아파 지우고 싶지만 또한 지울 수도 없는 것일 게다.

 

하지만 이 인어가 기억을 지우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드라마가 설정하고 있지만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은 아파도 결코 기억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예은 엄마의 이 한 마디는 그래서 이 드라마가가 내세우고 있는 주제의식이나 마찬가지다. 인어는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하지만,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즉 기억을 지운다는 건 사랑을 지운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 기억 모티브의 이야기는 그래서 다시 허준재(이민호)의 아픈 기억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허준재는 계모 강서희(황신혜)로부터 어린 시절 깊은 상처를 받았다. 엄마가 떠나버리고 남은 자리에 계모가 들어서더니 그녀가 데려온 배다른 형 허치현(이지훈)이 그의 자리마저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그 기억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 최면술로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함으로써 돈을 뜯어내는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 앞에서 그는 본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훨씬 좋았다. 홀가분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포기한 건 미련 갖지 말고 잊어버려라아버지에게서 아무것도 안 받고, 안 엮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거짓이었다. 그는 청이(전지현)에게 진짜 보고팠던 아버지에 대한 속내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린다. 청이는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들을 언제든 자기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허준재는 또한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이었던 담령을 만난다. 담령은 이미 과거에 인어와 인연을 맺었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려는 마대영(성동일)과 악연을 맺었다. 어찌 된 일인지 담령은 시간을 뛰어넘어 이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허준재에게 알리려고 한다. 그래서 남기는 것이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다. 허준재는 담령의 거처에서 발굴된 유물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자화상 속의 자신의 얼굴을 목도하며 놀란다.

 

허준재는 그래서 두 개의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하나는 어린 시절의 상처받은 자신이고 또 하나는 전생의 담령이다. 그 과거의 두 자신들은 모두 상처받은 존재들이다. 그래서 허준재는 그 기억들로부터 도망쳐 왔다. 하지만 그 기억들이 인어의 등장과 함께 다시금 그의 앞에 나타난다. 인어는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기억을 상기시키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픈 사랑이란 망각으로 지워지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기억으로 끊임없이 되살아나기도 하니 말이다.

 

오랜 세월을 묻혀 있던 유물들이 발굴되어 허준재의 지워진 기억을 깨운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결국 아픈 기억들을 지우려 했지만 결코 지워서는 안되는 기억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 기억을 지우지 않고 떠올리는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이 똑같은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허준재는 그렇게 지우려 했던 기억들이 유물로서 자신의 눈앞에 돌아온 것을 마주하게 됐다. 묻는다고 묻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묻어서는 또 다른 아픈 일들이 우리 앞에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처럼.

<푸른바다> 주인공 캐릭터의 문제, 카메오가 신선해진 이유

 

역시 조정석은 잠깐 등장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만드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캐릭터로 그가 나온 분량은 많지 않지만 지금껏 그 캐릭터가 회자되고 있는 건 결국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매력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도 조정석은 역시 빛났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남자 인어로 등장해 아직 인간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낯선 청이(전지현)에게 갖가지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저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승민(이제훈)에게 연애하는 법을 가르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며 광고 문구들이 사실은 물건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걸 설명해주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조정석이 이번 카메오에서 중요한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푸른바다의 전설>이 갖고 있는 비극적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인어가 인간에게 사람을 받지 못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버린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인어라는 존재가 가진 비극성은 조정석 같은 카메오가 아니라 주인공인 청이가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이 청이라는 캐릭터에 순수함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그 비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은 백지 상태의 모습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 웃음이 존재 자체의 비극과 잘 맞닿아 있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인어 캐릭터가 어딘지 박제된 인형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웃음은 그저 웃음으로 끝나면 조금은 허망하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 웃음이 어떤 비극과 연결되어 있을 때 캐릭터가 가진 페이소스 같은 것들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청이 캐릭터보다는 조정석이 잠깐 등장해 보여준 인어 캐릭터가 훨씬 더 그런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는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것이 그 이면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가 <별에서 온 그대>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합당한 지적이다. 외계인이나 인어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우리네 삶의 현실들이 우화처럼 드러난다는 이야기 구조는 거의 같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단지 유사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남녀주인공인 허준재(이민호)와 심청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코미디적 상황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그저 코미디로 끝날 때는 자칫 깊이를 상실할 수 있다. 특히 판타지물의 경우, 코미디를 너무 가볍게 사용하면 이야기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조정석의 경우, 이미 <질투의 화신>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비극적 상황과 희극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다. 시청자들은 빵빵 터지지만 동시에 그 인물은 굉장한 비극 속에서 실제로 펑펑 우는 장면이 가능한 그런 연기자.

 

<푸른바다의 전설>이 가진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이 가볍게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날아가는 판타지를 땅으로 끌어내려 어떤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의 희비극적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연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자의 공력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페이소스를 주는 인물들은 그래서 초반에 강남거지로 등장해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 홍진경이나 인어로 등장해 드라마에 어떤 쓸쓸한 정조를 남기고 가버린 조정석 같은 카메오다. 이 드라마가 살기 위해서는 카메오들이 갖고 있는 이런 희비극적 요소들을 남녀 주인공이 오히려 가져야 되지 않을까

<푸른바다>가 인어를 통해 말하는 기억, 가족, 사랑

 

우리 예은이 너무 착해서 엄마 돕겠다고 수학여행도 안 간 애예요. 정말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다시 못 깨어날 줄 알았으면... 다 해줄걸. 수학여행도 억지로 보내고 예쁜 옷도 많이 사줄 걸.... 엄마가 못해준 것만 생각나니까. 잠을 잘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예은아..”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SBS 수목드라마 <푸른바다의 전설>에서 인어 심청(전지현)은 병원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예은 엄마를 만난다. 그녀는 의료사고의 진실을 요구합니다. 우리 딸이 왜 죽었는지 알려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왜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있냐고 청이 묻자 예은 엄마는 예은이에 대한 아픈 기억과 살았을 적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를 털어놓는다.

 

내 비밀 들어볼래요? 난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가 있어요. 원하면 지워줄게요. 슬프게 하는 기억? 딴 생각 안 나면 안 슬프고 안 아플 수 있잖아요. 내가 해줄게요.” 사람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인어 심청의 제안에 문득 예은 엄마는 예은이와의 추억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문득 눈을 뜨더니 말한다. “아니요. 죽을 때까지 아무리 아파도 가지고 갈 거예요.” 아픈데 왜 가져 가냐는 심청의 물음에 예은 엄마는 말한다.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기억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는 각별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대구가스폭발사고 등등. 멀리 갈 것도 없이 지난 몇 년 간 벌어졌던 사건사고들만 해도,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사건,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까지 너무 많은 이들이 벌어졌다. 그 많은 사건사고들이 터져 나올 때마다 엄청난 아픔과 상처가 마치 트라우마처럼 우리들의 기억 속에 흉터를 남긴다. 너무 아파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tvN에서 방영됐던 <기억>이라는 드라마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기억의 시스템을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한 가장의 비극과 그 안에서 발견하는 희망을 통해 아프게도 담아냈다. 뺑소니로 죽은 아들의 기억을 지워내는 대가로 사실은 자신의 현재의 위치와 지위를 갖게 됐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이 가장의 이야기는 기억을 지우는 것과 권력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날카롭게 보여주었다.

 

드라마 <시그널>에 시청자들이 그토록 열광했던 까닭 역시 지워져가는 기억을 되돌려 그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는 형사들의 따뜻한 인간애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트라우마를 툭툭 건드리며 그 미제사건을 풀어내려는 간절한 열망이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에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무전기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그 판타지는 아무런 이물감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기억을 다루는 드라마들 속에서 모두가 지워가는 그 기억의 언저리를 마치 유령처럼 세월이 지나도 계속 배회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가족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담아낸 기억에 대한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은 엄마가 그렇고, <기억>에서 기억을 지워버린 채 살아가던 가장과는 달리 결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파하며 살아가는 아이 엄마가 그러하며, <시그널>의 그 많은 희생자 가족들이 그렇다.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인간 세계를 전혀 모르는 심청은 가족이 뭐냐고 같은 병실에 있는 한 아주머니에게 묻는다. 그녀는 진짜 몰라서 물어? 여기 간병하는 사람들이 다 가족들이잖아.”라고 말한다. 그러자 심청은 그들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가족은 붕어빵 같은 거네요. 붕어빵들처럼 닮았고 따뜻하고 달달해.’

 

하지만 가족은 그저 달달하기만 한 존재들은 아니다. 드라마 말미 에필로그에 이르러 그 아주머니는 가족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인다. “항상 좋기만 하겠어?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나도 우리 아들 빚 갚아주느냐고 생고생이야. 그래서 여기 디스크 터진 거잖아.” 가족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하기 때문에 남는 상처들이다.

 

허준재(이민호)에게도 그 상처가 있다.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이다. 어머니가 사라지고 아버지가 재혼해 같이 살게 된 형 허치현(이지훈)은 그의 자리를 빼앗는다. 그래서 결국 상처 입은 허준재는 집을 나와 살아가게 되지만 아픔만큼 가족에 대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가짜 아들 노릇하는 허치현이 무감한 것과, “미안해도 미안하다 말 못하고 보고 싶어도 또 보고 싶다는 말 잘 못하며살아가는 아버지와 허준재의 아픈 마음은 그래서 너무나 다르다.

 

허준재. 사람들은 아프고 슬퍼도 기억하고 싶어 해? 밥도 못 먹고 잠을 못 자도 기억하고 싶은 사랑은 뭘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인어라는 인간과는 다른 이질적 존재를 내세워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지나치곤 했던 기억이니 가족이니 사랑의 의미에 대해 새삼 질문한다. 아파도 기억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고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아픈 기억과 가족과 사랑의 이야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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