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가 한 해의 마무리에 들려준 해고, 은퇴, 사별의 이야기

 

"기장님들이나 나이가 좀 있으신 사무장님들은 가정을 책임지셔야 하고 자격증이 되게 전문적이잖아요. 항공쪽 아니면 이걸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간담회 같은 데 가보면 택배 알바를 가셔서 다리를 다치셔서 목발을 짚고 오신 분도 계시고... 거의 눈물바다였던 것 같아요."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한 해의 마무리 방송에 '시작과 끝'이라는 주제로 초대한 한 항공사 승무원이었다 정리해고된 류승연씨는 의외로 너무나 활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어려움보다 간담회 같은 데서 봤던 나이가 있으신 선배들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했다. 선배들은 늘 밝고 긍정적인 류승연씨를 보며 힘이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너무나 잘 구해서 '알바몬(알바괴물)'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는 류승연씨는 무급휴직 7개월 동안 전시회 안내, 텔레마케터 꽃집 판매원, 피부 테라피샵 접수원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꽤 밝은 얼굴로 웃으며 전해줬다. 지난 2월에 입사해 비행을 1년 정도 하다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류승연씨. 취업 시험에만 30번 정도 떨어져 5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된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 자신에게 "넌 잘하고 있어"라고 스스로 자꾸 이야기한다며 밝게 얘기하던 류승연씨는 그러나 다른 동료들에게 한 마디를 해달라는 제작진의 질문에 먹먹해했다. 그는 자신을 보며 힘이 난다 말해주는 선배, 동료들의 이야기 때문에 애써 밝게 웃고 있었다. 힘겨워도 애써 웃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잘 될 거라 말하는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런 분들이 있어 이 어려운 시국에도 우리는 또 다른 시작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올해의 마지막 초대손님으로 소개한 허필용씨의 이야기 역시 이 날의 주제였던 '시작과 끝'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36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다는 허필용씨. 하나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마주하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평범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위대함이 느껴지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한 직장에서 아내도 만나 결혼하고 한 평생을 보냈던 허필용씨는 직장이 그저 일터가 아닌 '가족'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그러니 그 곳을 떠나는 소회와 상실감이 어찌 없을까. 은퇴자가 갖게 되는 막막함이 있지만 함께 온 아들과 딸은 그가 그래도 든든해하는 의지처이기도 했다. 12월 31일자로 정년퇴직하지만 3개월 휴가를 줘서 마지막 출근을 하게 됐던 날 딸이 차려줬다는 아침상의 이야기에서 그가 느꼈을 고마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왜 아침상을 차려주셨냐는 유재석의 질문에 딸은 "일부러 기억을 했다"고 했다. "아빠가 마지막 출근인데 어떤 심정이실까 저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해드릴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딸의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 또한 따뜻하게 느껴졌다. 허필용씨는 조심스럽게 올해 먼저 떠나간 아내의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은 직장을 떠나게 됐는데 아내는 세상을 떠났다고. 딸이 아버지에게 마지막 날 아침상을 차려드린 데는 바로 그 마지막 길을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있었던 거였다. 

 

올 7월 암으로 사별했다는 아내를 매일 생각한다는 허필용씨는 "퇴직의 의미"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다는 상실감"이 더 많고 늘 함께 했던 사람을 먼저 보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저리다고 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보다는 남편과 아이들 걱정 때문에 눈물을 많이 흘렸다는 아내에게 전한 허필용씨의 영상편지는 짧아도 우리네 삶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박순애. 나란 사람 만나서 6년 연애하고 29년 동안 우리가 부부로 살았어. 인생 살다보니 이런 일 저런 일도 많이 겪었고, 같이 살면서 나는 그대와 같이 살았던 시간들이 내 몸 속에 다 녹아있어. 행복했어.. 자기가 걱정하지 않게 아이들 잘 뒷바라지하고 하늘에서 만났을 때 나 이렇게 살았다고 자랑할게. 그 때 다시 만나면 말 많다고 흉봐도 좋아. 할 얘기 많이 있어." 

 

유재석은 엽서로 보내 준 자기님들의 사연 중, 올 해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누구냐는 질문에 어느 한 사람을 꼽을 수 없다며 이렇게 답했다. "한 분 한 분 인생을 어떻게 보면 다 드라마이고 영화입니다." 실로 이 말은 사실이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지금껏 만난 분들의 이야기는 뭐 대단할 것 없는 소박한 삶들이었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편의 드라마, 영화 아닌 게 없었다. 누구나 그렇게 한 세상 살다 떠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의 삶이 이토록 반짝반짝 빛날 수 있다는 걸 이 프로그램은 비춰주고 있었으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지만 또 다른 한 해의 시작점에 있는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모두 한 편의 드라마고 영화라는 걸 말해주며.(사진:tvN)

을의 반란, 더 이상 <직장의 신> 같은 판타지 아닌 이유

 

“혼자서는 못가. 시계가 어떻게 혼자서 가. 다 같이 가야 나 같은 고물도 돌아가는 거야. 그런데 김양은 맨날 혼자서 큰 바늘, 작은 바늘 다 돌리면 너무 외롭잖아. 내 시계는 멈출 날이 많아도 김양 시계는 가야 될 날이 더 많은데...” <직장의 신>의 만년 과장 고정도(김기천)의 이 대사는 늘 로봇 얼굴의 무표정했던 미스 김(김혜수)은 물론이고, 무수한 직장인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거기에 권고사직, 정리해고로 점철된 우리네 파리 목숨 직장인들의 자화상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직장의 신'(사진출처:KBS)

오죽하면 직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오로지 업무로만 무장하려는 미스 김 같은 캐릭터가 각광을 받겠는가. 스스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그녀의 말대로 작금의 직장인들은 심지어 “회사의 노예”로 취급되는 을 중의 을이 아니던가. 그러니 <직장의 신> 같은 드라마에 대한 열광과 미스 김 신드롬에는 우리네 아픈 현실이 묻어난다.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백만 시대에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된” 아픈 현실.

 

하지만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을의 반란’을 보면 이제 이런 현실을 그저 한탄하거나 감내하면서 잠시나마 드라마 같은 판타지로 아픈 속을 달래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른바 라면 상무와 빵 회장에 이어 이른바 조폭 우유(?) 사태까지. 그간 이른바 갑에게 짓눌려 왔던 을의 정서는 최근 인터넷과 SNS를 통해 폭발하는 인상이다. 이러한 정서의 폭발이 드라마 같은 대리충족 콘텐츠 안에서 소극적으로 벌어졌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실제 현실을 바꾸고 있다는 점은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한 때 인터넷을 달궜던 ‘대나무 숲’ 열풍은 그래서 어쩌면 지금 같은 ‘을의 반란’의 전초전 같은 징후였을 지도 모른다. 이 누군지 이름을 숨긴 채 ‘대나무 숲’에 들어와 회사의 비리나 고충을 한껏 소리 지르고, 그 소리가 인터넷을 타고 일파만파 전파되는 그 소극적인 쾌감을 만끽했던 이 땅의 수많은 을들은 이제 현실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중이다. 인터넷과 SNS라는 뉴미디어를 통해 집결된 여론들은 이제 말에 머물지 않고 어떤 실행력을 갖추기 시작한 셈이다. 이제 공감하거나 공분할 수 있는 대중정서가 밑바탕 된다면 인터넷 여론은 그간 갑으로 군림하던 이들까지 뒤집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항공기 승무원에게 폭언에 폭행을 한 상무는 결국 회사에 사표를 쓰게 되었고 호텔 종업원에게 장지갑으로 뺨을 때린 한 중소기업 회장은 결국 자신이 납품하던 코레일에 빵 납품을 못하게 되었다. 이 회장은 심지어 회사를 폐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터진 이른바 조폭 우유 사건은 회사 대표의 공식사과문이 발표됐고 현재 제품 강매가 있었는지에 대해 검찰이 조사 중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어서 사회생활에서의 갑을관계는 이미 일상화된 지 오래다. 그래서 갑을관계를 다루는 풍자는 코미디의 단골소재가 되어오기도 했다. 일찍이 80년대 정치풍자 코미디의 대가였던 고 김형곤 개그맨은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이라는 코너를 통해 회장님 말이 곧 법인 회사의 갑을관계를 풍자한 바 있다. “딸랑 딸랑”으로 대변되는 김학래의 “저는 회장님의 영원한 종입니다”라는 유행어는 그러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모양이다. 최근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였던 ‘갑을컴퍼니’의 직장 내 풍경 역시 그다지 달라진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겉보기는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으로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이른바 ‘대중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갑을 관계를 깨는 진짜 힘은 ‘을’로 대변되는 대중들이 소비자의 위치를 넘어서 같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목소리를 점점 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자들은 상품만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상품이 갖고 있는 기업이미지는 구매의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스스로 갑이라 생각하며 군림해왔던 이들은 이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진정한 갑이 누군가를 다시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직장의 신>에서 미스 김이나 고 과장 혹은 <무한도전> 무한상사의 정 과장 같은 존재를 만들어낸 시스템이 상정하고 있는 갑을관계는 이제 조금씩 역전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대중의 시대에 슈퍼 갑은 대중일 수밖에 없다.

<무도> 힘겨웠던 8년, 무한상사의 도전기

 

왜 하필 무한상사였을까. 8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이 소재로 삼은 무한상사에는 그간의 8년 세월이 녹아 있었다. 거기에는 <무한도전> 특유의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리얼 콩트가 있었고, 그 위에 깨알같이 터지는 애드립이 있었다. 뮤지컬이라는 최근 트렌디한 형식도전이 녹아 있었고, 무한상사를 먹여 살릴 미래형 수트 제작이 가진 아이디어에 그 수트가 견고한가를 실험하는 몸 개그가 있었다. 무엇보다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 순간 먹먹해지는 <무한도전>만의 ‘웃픈’ 정서가 있었다. 무한상사라는 콩트로 그간 8주년 간의 도전들을 압축해놓은 듯한 느낌이랄까.

 

'무한도전'(사진출처:MBC)

무한상사와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만남은 최근 <레밀리터리블>과 <레스쿨제라블>로 이어진 패러디 트렌드를 가져와 회사 버전으로 녹여냈다. 무한상사가 굳이 <레미제라블>의 패러디를 차용한 것은 우리네 회사 생활이 군대나 학교만큼 비참한(miserable)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일 게다. 그래서 경영 실적 저하로 누군가 한 명을 정리해고 해야 하는 그 상황을 무한상사식으로 패러디해 노래한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공감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지금껏 8년을 쉬지 않고 달려온 <무한도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한상사를 통해, 몸을 아끼지 않는 개그와 트렌디한 형식도전, 깨알 같은 콩트 코미디 등을 보여준 것처럼, <무한도전>은 지금껏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도전으로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려왔다. 콩트 속에도 리얼을 살리고, 예능 속에서도 봅슬레이나 댄스 스포츠, 프로레슬링, 조정 같은 진짜 도전을 시도하며, 무엇보다 예능이 예능에만 머물지 않고 현실을 은유하는 그 무한한 형식실험들은 그 멤버와 제작진들의 피와 땀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작년 MBC의 파업으로 장기간 도전을 멈췄던 것은 <무한도전>으로서는 실로 힘겨운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무한도전>처럼 트렌디한 새로움을 끊임없이 시도해온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 리듬이 끊긴다는 건 제작진들이나 MC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 또한 늘 해왔던 심지어 1년에 걸쳐 기획되던 장기 프로젝트들이 시도될 수 없는 건 그 자체로 큰 고통이었을 게다.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산적해 있는데 할 수 없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래서 무한상사가 그려낸 정리해고의 이야기는 그것이 지금 우리네 샐러리맨들의 현실을 얘기해주면서도 또한 <무한도전>이 겪은 힘겨움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더욱 찡하게 다가온다. 얼기설기 허접하게 만들어진 수트를 우스꽝스럽게 차려 입고 배구 선수가 날리는 서비스를 온 몸으로 맞으며 강풍기 앞에 자신을 세우고, 또 물세례를 맞는 그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네 샐러리맨들의 자화상을 그려낸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콩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금껏 <무한도전>을 통해 해온 노력과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도전을 8년 동안이나 해왔다는 것은 거의 기적 같은 일로 여겨진다. 그들이 성장하고 나이 들어온 것처럼 이제 팬이 된 시청자들도 똑같은 세월을 공유했다. 물론 과거만큼 체력이 탄탄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절정기의 예능감이 조금은 희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껏 얼마나 노력해왔고 도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무한상사의 그 멤버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길이 표징하고 있는 우리네 가장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직장의 신>, 능동적 비정규직과 파리 목숨 정규직... 눈물 난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그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저는 회사에 속박된 노예가 될 생각이 없습니다.” <직장의 신> 미스 김(김혜수)의 도발적인 말에 장규직(오지호)는 “예의가 없다”며 발끈한다. 그러자 미스 김이 한 마디 덧붙인다. “그런 예의는 정규직들끼리 지키십시오. 저에게 회사는 일을 하고 돈 받는 곳이지 예의를 지키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게 있을까 싶지만 그녀는 이른바 능동적 비정규직이다.

 

'직장의 신'(사진출처:KBS)

“IMF 이후 16년 비정규직 노동자 8백만 시대에 이제 한국인의 소원은 통일이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된” 시대에 그녀는 왜 능동적으로 비정규직을 고집하게 됐을까. 그것은 이른바 ‘미스 김 어록’이 되어버린 명대사들을 통해 미루어 알 수 있다. ‘업무의 연장’으로 끌려가 ‘몸 버리고 간 버리고 시간 버리는 자살테러’인 회식에 억지로 참석해야 하고, 우정이다 예의다 하는 사적인 말로 은근슬쩍 업무를 하게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미스 김은 대신 모든 걸 ‘미스 김 사용설명서’의 계약조건 속에 기재했다. 회식에 나가 고기를 자르는 것도, 노래방에 가서 탬버린을 치는 것도 그녀에게는 그래서 ‘시간 외 수당’이 추가되는 일이다. 합리적이다. 하지만 회사 관계를 지나치게 업무 관계로만 만드는 차가움이 존재한다. 회사에서 절대로 사사로이 웃지 않는 미스 김은 그래서 ‘일하는 로봇’ 같다. 퇴근 하면 마추피추 같은 살사 바에서 사교를 나누며 웃음을 되찾지만 미스 김은 업무 속에서 늘 데드마스크를 쓴다.

 

미스 김의 이 극단적인 행동에는 좀 더 사적인 이유가 있다. 아직 정확히 그 이유가 나오진 않았지만 여러 차례 복선을 통해 그녀가 과거 은행원이었고 그 은행에 화재가 났었으며 그 화재로 인해 자신을 친동생처럼 챙겨주던 직장 언니가 사망했으며 무슨 일인지 그 은행에서 정리해고 당했다는 것이다. 그 트라우마가 그녀를 직장 내 로봇으로 만들었다는 것.

 

하지만 이것뿐일까. <직장의 신>이 미스 김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한때 그토록 ‘가족’을 외쳤던 회사들이 어느 날 그들을 길바닥에 나앉게 만들었던 IMF 시절 이후 생겨난 직장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다. 평생직장 개념이 끝장나버린 시대에 회사와 사원 사이에 그 어떤 가족 개념이 남아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차라리 모든 걸 계약관계로 환원하는 미스 김의 직장생활이 훨씬 합리적이란 풍자가 거기에는 녹아있다.

 

그렇다면 심지어 정규직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듯한 장마초 장규직은 어떨까. 미스 김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장규직은 과연 정규직으로서 행복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까. 벚꽃잎이 떨어지는 어느 날 밤 장규직이 자신도 모르게 미스 김에게 입맞춤을 한 것에 대한 그녀의 표현이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그걸 “파리”라고 표현했다. 그저 자신의 입에 닿았다가 날아간 파리. 그런데 왜 하필 파리일까. 그것은 혹시 파리 목숨 정규직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장규직이 보이는 정규직 우월주의란 따라서 비정규직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는 것은 아닐까.

 

<직장의 신>은 미스 김과 장규직이라는 캐릭터들의 대결이 코미디로 그려져 있지만 이 두 사람(부류) 어느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 모든 능력을 다 갖춘 미스 김은 과연 행복한가. 그녀의 절대로 웃지 않는 데드마스크는 그녀의 불행한 삶을 에둘러 말해준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해 늘 발을 동동 대는 장규직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상한 일이지만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미스 김과 장규직이 어느 날 갑자기 입맞춤을 하는 장면이 하나도 어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 두 인물 모두 회사라는 조직에 의한 희생자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스 김과 장규직이 같은 기일에 같은 납골당을 찾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그건 화재로 인해 상처를 입은 건 미스 김만이 아니라 장규직도 마찬가지였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사실 미스 김과 장규직이 마치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대표선수가 되어 싸우고 있지만 그들은 모두 회사의 피해자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한 사람이 절대 회사와의 사적 관계나 감정을 맺으려 하지 않는 데드마스크의 삶을 선택한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든 그 시스템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그렇게 비인간적인 삶(로봇 같은 미스 김, 혹은 배려 없는 장규직)을 살게 만든 것일까. 그것은 그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눠 끝없이 경쟁하게 만든 회사라는 시스템이다. 장규직이 회사의 논리를 들어 미스 김에게 “예의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예의가 없는 건 회사라는 시스템이다. 그렇게 우리를 비인간화하는 회사에 우리가 왜 예의를 차려야 하는가. 그건 예의가 아니라 굴복이 아닌가. 이것이 미스 김이 던지는 메시지다. 또 이것은 대립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장규직이 미스 김에게 끌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은 어쩌면 똑같은 피해자라는 동류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으니까.

 

<직장의 신>의 능동적 비정규직과 파리 목숨 정규직이 그려내는 코미디는 그래서 아프고 슬프다. 그것은 회사의 시스템에 의해 상처 받은 두 인물이 꼭꼭 숨겨놓은 서로의 상처를 발견해가는 과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장의 신>의 코미디가 이 땅을 살아가는 수많은 미스 김들과 정규직들에게 고하는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고용불안이 일상이 된 삶 속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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