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월드

 

1967년 루이 암스트롱이 발표한 ‘왓 어 원더풀 월드(What a wonderful world)’는 작곡가 조지 와이스와 프로듀서 밥 티엘이 흑백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 만든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 팝차트 1위까지 차지하며 큰 인기를 얻은 곡이지만, 우리에게는 로빈 윌리엄스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굿모닝 베트남(1987)’으로 더 기억된다. 살벌한 베트남 전쟁의 처참한 풍경들과 더불어 흐르던 ‘왓 어 원더풀 월드’. 그건 강렬한 풍자를 담은 일종의 반어법처럼 다가왔다. 무엇이 ‘원더풀 월드’란 말인가. 이토록 사람들이 죽어나가는데.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는 바로 이런 뉘앙스를 담은 드라마다. 어느 날 수현(김남주)의 아이가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다. 그런데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분노한 수현은 사죄를 요구했지만 뻔뻔하게 이를 거부하는 가해자를 충동적으로 차로 치어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 죄에 대한 처벌로 감옥에 들어갔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다. 이걸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지만 ‘원더풀 월드’는 이 사적 보복이 불러온 연쇄적인 가해와 피해의 악순환을 그려낸다. 수현에 의해 사망한 가해자의 아들 선율(차은우)은 이제 아버지를 잃은 피해자로서 수현과 그 가족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하려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그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의 고리. 이 상황은 저 ‘굿모닝 베트남’에서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흐르며 보여지던 베트남 전쟁의 살풍경과 다르지 않다. 이들은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서로를 찌르고 찔리며 흘리는 피와 눈물로 살아간다. 과연 이 전혀 ‘원더풀’하지 않은 악순환에 빠진 세상의 고리를 이들은 끊어낼 수 있을까. 

 

수현과 선율이 특히 분노한 건, 각각 아들과 아버지를 잃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목도했기 때문이었을 게다. 아들이 사망했는데 아들을 죽게 만든 자는 버젓이 잘 살아가는 모습이 수현을 분노하게 했고, 아버지가 사망했는데 그렇게 만든 수현은 감옥에서 출소한 후 남편과 방송에 나와 “행복해지려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가해자는 잊을 수 있어도 피해자는 결코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상처와 아픔. 그래서 가해자가 ‘원더풀 월드’에 살아가고 있어도 결코 피해자는 그 세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그 괴리가 끝없이 분노를 야기한다.

 

‘원더풀 월드’는 그래서 선악 구분이 확실하고 선이 악을 응징함으로서 시원시원한 사이다를 안겨주는 그런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수현도 선율도 가족을 잃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이를 보복했거나 하려는 가해자다.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 사적 보복이 이뤄지는 걸 그저 시원하게 볼 수 없는 인물들이다. 대신 그래서 안타까움이 커진다. 수현과 선율이 가진 상처를 너무나 이해하고 그래서 복수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 또한 공감되지만, 그것이 서로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두 사람 모두 피해자라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안타까운 두 사람에 공감하기 시작하면 둘이 서로에게 겨누는 칼날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시청자들은 깨닫게 된다. 이미 사적 보복을 했고 거기에 대한 후회 또한 없다고 단언했지만 수현은 그 선택으로 선율이 겪는 아픔 또한 너무나 잘 이해한다. 선율 또한 복수를 하려 하지만 수현이 아들을 잃었던 그 상처의 깊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피해자로서의 공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원더풀 월드’는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 부조리한 시스템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건 바로 죄를 짓고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게 만드는 부패한 권력과 사법정의다. 김준(박혁권)이라는 정치인은 바로 그 표상처럼 그려진다. 

 

결국 수현과 선율의 분노가 향해할 할 곳은 서로가 아니라 저 부패한 권력과 사법정의라는 시스템일 수 있다. 죄를 지었다면 그만한 처벌을 받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정의가 구현되는 세상만이 피해자에게는 더더욱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저들만의 ‘원더풀 월드’를 만들지 않는 길이다. 특히 끊임없어 터진 사건사고들의 상처 속에서 여전히 아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피해자들 앞에 이렇다할 진상규명이나 사죄, 처벌도 없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잘만 돌아가는 세상이 줄 절망감을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고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 하다. (글:일간스포츠, 사진:MBC)

‘원더풀 월드’, 선의와 악의, 인연과 악연 그리고 복수와 정의 사이

원더풀 월드

“그 여자한테 소중한 걸 전부 뺏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지.”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권선율(차은우)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다. 그는 은수현(김남주)이 차로 치어 살해한 권지웅(오만석)의 아들이었다. 은수현의 아들을 차로 치어 죽게 만드는 죄를 지었음에도 제대로된 처벌을 받지 않은 권지웅에 대한 은수현의 사적 복수는 그렇게 부메랑처럼 악연의 악연으로 이어져 권선율의 복수극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애초 은수현의 수감 시절 동료였던 장형자(강애심)가 병으로 사망하며 자신의 방화로 부모를 잃은 아들에게 전해달라 했던 일기장이 가야할 곳은 권선율이 아니라 권민혁(임지섭)이었다. 권선율은 의도적으로 교도소에서부터 은수현을 살펴보며 복수를 계획했고 권민혁인 척 그에게 접근했다. 그래서 은수현은 자꾸만 다치는 권선율을 챙기며 보호자를 자처하게 됐다. “네 인생이 아깝지도 않아? 좀 제대로 살 수 없어? 네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너 망가지는 꼴 더는 못보겠어.”

 

하지만 은수현이 그렇게 말했을 때 권선율은 돌연 속내를 드러냈다. “어따 대고 조언이세요. 당신 살인자잖아.” 보다 철저한 복수를 꿈꿨다면 그런 속내 또한 감췄어야 했지만 어째서 권선율은 그렇게 감정을 드러냈을까. 그건 복수를 하는 그 역시 어딘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건 아닐까. 은수현에게 복수를 하려 접근하곤 있지만 동시에 부모를 모두 잃은 자신의 아픔을 토로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치 소중한 걸 잃은 아이가 응석을 부리듯. 

 

하지만 은수현은 권선율의 정체를 알게 됐다. 등에 화상 자국이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고 묘소가 다르다는 것도 파악했으며 권선율의 목걸이에 들어 있는 아이가 권지웅과 함께 찍은 사진도 확인했다. 그렇게 은수현과 권선율은 다시 마주 서게 됐다. 비오는 날 묘소에서 우산을 내주던 권선율의 선의는 사실은 악의였고, 인연처럼 보였던 그들의 만남은 악연이었다.

 

“나 같아서.” 도박빚에 쫓기는 권민혁을 도와주고 그 빚까지 갚아준 권선율은 그렇게까지 한 이유에 대해 그가 자기 같아서라고 했다. 누군가의 사적 복수에 의해 만들어진 피해자. 그런 의미였을 게다. 그런데 은수현과 권선율의 관계가 그렇다. 은수현은 아들을 잃은 후 사적 복수를 했고, 그 사적 복수로 권선율은 부모를 잃고는 이제 다시 은수현에게 사적 복를 하려 한다. 과연 이 복수가 복수를 낳는 악연의 고리는 어떻게 끝을 맺게 될까. 

 

이들이 했거나 하려는 사적 정의는 사실은 복수에 불과하다. 그들은 서로를 찌르지만 그렇게 낸 상처들은 치유되지 않고 이들을 구원해주지도 않는다. 이들이 이렇게 사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복수를 하게 만든 사회 시스템이 이러한 비극을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원더풀 월드’의 최강 빌런은 이러한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을 대변하는 김준 의원(박혁권) 같은 인물이다. 권지웅과 결탁해 가까운 사이였던 김준은 아버지를 잃은 권선율에게 자신이 아버지처럼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가 진짜 사회의 어른으로서 했어야할 일은 권지웅을 제대로 처벌받게 해 더 이상의 사적 복수 같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아버지 행세를 하려 하지만 썩은 내가 풀풀 나는 가짜 보호자 김준과 달리, 복수를 했지만 그 자식이 또 다른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고는 사죄하려는 은수현은 진짜 보호자 역할을 하려 한다. 그 사이에서 권선율은 과연 어느 쪽의 손을 끝내 잡게 될까. 전혀 ‘원더풀’하지 않은 부조리한 세상의 끝에서 이들은 과연 스스로 원더풀한 선택을 하게 될까. 

 

“그 아들 한 번 만나볼래요?” 권선율은 은수현에게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넨다. 그건 사실상 자신을 만나보겠냐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은수현의 사적 복수에 의해 자신이 갖게 된 상처를 제대로 마주해보겠냐는 듯한 말이기도 하다. 은수현과 권선율은 그렇게 엇나간 복수심으로 얽혀져 마주하게 된 사이지만, 그들은 같은 피해자로서 서로를 공감함으로써 복수를 정의로 그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을까. (사진:MBC)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 김남주는 끝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원더풀 월드

“저는 제 목숨보다 더 소중한 한 아이의 엄마였습니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그 아이를 잃었어요. 별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 아이는 이제 저에게 별이 됐습니다. 매일 같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애쓰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아픕니다.” 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에서 은수현(김남주)은 남편 강수호(김강우)와 함께 방송에 나와 아픈 심경을 어렵게 꺼내놓는다. 

 

집밖으로 나간 아이가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했지만, 구할 수 있었던 아이를 방치한 채 도주했던 가해자가 법의 처벌을 받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자 결국 사적 복수를 하고 감옥에까지 갔다 오게된 은수현이다. 하지만 차로 치어 가해자인 권지웅(오만석)을 살해했지만 그것으로 은수현의 가슴 깊숙이 남은 상처는 치유되었을까. 아니다. 아이는 이미 사망했고 돌아올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늘 은수현의 눈에 어른거린다. 그의 말대로 그의 시간은 여전히 자식을 잃은 그 시간에 머물러 있다. 

 

루이 암스토롱이 불렀던 ‘What a wonderful world’에서 따온 제목 <원더풀 월드>는 반어적인 의미다. 은수현이 마주한 세상은 결코 원더풀 하지 않다. 아이가 뺑소니를 당했지만 권지웅과 관계된 김준(박혁권) 같은 정치인의 사주로 법정은 가해자 편을 들어준다. 오히려 아이가 사망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은수현의 책임이 있다는 걸 부각시킨다. 현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가해자측 변호사의 주장은 비수처럼 은수현의 가슴에 박힌다. 자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까지 심어버린 것이다. 

 

6년이 지나 출소한 은수현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그 일상은 과거 아이와 행복했던 기억들이 오히려 아픈 상처로 남은 공간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남편마저 힘겹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그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강수호는 끝내 은수현의 손을 놓지 않는다. 함께 부부로서 어려운 시간들을 버텨내기로 한 것.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어둠의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누군가 이들 부부에 대한 복수를 꿈꾸고 있는데 그건 아마도 은수현에 의해 보복 살해된 권지웅의 아들 권민혁(임지섭)일 것으로 보인다. 

 

은수현의 사적 복수는 피해자였던 그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그러니 그에 의해 가족이 파탄나버린 권민혁은 또다른 피해자가 된다. 이같은 가해와 피해의 반복은 이 정의의 문제가 결코 사적 복수로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걸 말해준다. 이 문제는 어쩌면 김준에 대한 복수심을 갖고 있는 강수호에게도 딜레마를 불러일으킬 지도 모른다. 은수현이 권지웅에게 복수를 했던 것처럼, 강수호 역시 김준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에는 또한 은수현이 감옥에서 만나 마음을 나눴던 장형자(강애심)가 겪었던 딜레마와도 연결되어 있다.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분노한 나머지 불을 질렀지만 그 불이 엉뚱하게도 다른 일가족을 죽게 만들었다. 거기서 유일하게 생존해 살아남은 권선율(차은우)에게 사죄하고 싶었지만 장형자는 병으로 교도소에서 사망하고 자신이 쓴 참회를 담은 일기장을 그에게 전해달라고 은수현에게 부탁한다. 장형자의 복수 역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을 뿐, 그를 구원해주지는 못했다. 

 

<원더풀 월드>가 그리고 있는 건 그래서 이런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고 그래서 피해자들이 생겨났을 때 그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이미 은수현이 권선율을 찾아가 했던 말을 통해 전해진 바 있다. “저도 비슷한 아픔이 있어요. 자식을 잃었어요. 내 아이를 그렇게 만든 사람한테 나는 사과받고 싶었어요. 그랬다면 적어도 용서까지는 아니어도 잊어는 보려고 했는데 난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고통 속에서 매일매일 부서져 가요. 그래서 그쪽을 찾았어요. 나처럼 고통 속에 갇혀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그쪽은 꼭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은수현의 목소리를 통해 <원더풀 월드>가 대신 전하는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은 ‘진심어린 사과’가 아닐까. 그걸로 고통이 치유될 수는 없지만 그래서 매일매일 부서져 가는 아픔을 견뎌내야 하지만 그래도 그걸로 잊어는 보려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많이 벌어졌던 사건, 사고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처벌은 물론이고 진심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결코 ‘원더풀’하지 않은 세상 앞에 피해자들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원더풀 월드>는 이러한 정의의 문제와 더불어, 가족을 잃은 고통스런 상처에 대한 치유에 대한 희망으로서 은수현과 권선율이 나누는 공감과 연대를 이야기한다.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권선율에게 은수현이 다가설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아픔을 겪은 피해자로서의 공감대였다. 은수현과 권선율이 엮어가는 이야기로 극화되어 있지만 드라마는 바로 그 아픔을 공감하고 나누는 것이야말로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진:MBC)

‘더 글로리’ 파트2, 송혜교를 괴롭히는 새 고데기에 담긴 참혹한 현실

더 글로리 파트2

“성공했네. 박연진. 나를 상대할 새 고데기를 두 개나 찾았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에서 문동은(송혜교)이 던지는 그 대사는 이 드라마의 후반전의 뜨겁게 타오를 화력을 예감케 한다. 고데기와 문동은의 온 몸에 남아있는 지워지지 않는 화상자국은 이 드라마가 그리고 있는 폭력의 시스템의 중요한 상징들이다. 머리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쓰는 고데기를 저들은 약자들의 온 몸에 상처를 내는데 쓰면서도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왜 없는 것들은 세상에 권선징악, 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 박연진의 대사로 등장하는 이 말이 바로 저 가해자들의 뻔뻔한 입장이다. 하지만 문동은의 온 몸에 남은 화상자국이 그러하듯이, 피해자들은 그 상처를 평생 지고 살아간다. 심지어 죽고 싶을 만큼. 문동은은 그래서 저들을 향한 복수의 길을 마치 바둑을 두듯 차근차근 상대의 집을 무너뜨려가며 걸어가지만, 박연진도 만만하지 않다. “네 X을 상대할 고데기를 찾을 것”이라고 했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박연진이 찾아낸 두 개의 새 고데기는 문동은의 엄마와 그의 든든한 조력자 현남(염혜란)이다. 이미 어린 문동은을 박연진의 엄마가 준 돈 몇 푼에 합의서를 써준 후 버렸던 문동은의 엄마다. 그런 그를 이제 박연진이 찾아와 돈을 주며 문동은을 학교에서 떠나게 만들라고 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엄마가 다시 찾아오자 문동은은 분노한다. 과거의 상처와 악몽이 또 다시 현재에 되살아난다. 

 

또한 박연진은 현남을 찾아와 그의 딸을 빌미로 협박한다. 딸의 인생을 망가뜨리겠다는 것. 그러면서 현남을 회유해 문동은을 배신하라고 획책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문동은은 괴롭다. 자신이 믿고 함께 하는 조력자가 자신의 복수 때문에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됐기 때문이다. 두 개의 새 고데기는 그렇게 다시 박연진의 손에 들려 문동은을 향해 드리워진다. 

 

온라인 시사회를 통해 미리 공개된 파트2의 2회분 내용을 보면 <더 글로리>의 후반전이 문동은과 박연진의 치고받는 대결로 치열해질 것인가를 예감케 한다. 여기서 가장 소름 돋는 설정은 가해자의 ‘새 고데기’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학교폭력 같은 과거의 폭력 전과가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 다시 새로운 고데기가 되어 피해자를 괴롭히는가에 대한 서사가 들어 있어서다. 

 

물론 <더 글로리>에서 새 고데기는 박연진이라는 최강 빌런이 끝내 찾아내는 ‘악의 성실함(?)’에서 등장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해자들의 새 고데기는 그들이 처벌받지 않고 심지어 버젓이 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들을 괴롭힌다. 최근 자녀의 학교 폭력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가수사본부장에서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은 단적인 사례다. 

 

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사실이 기재되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면서도 서울대에 입학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얼마나 부조리한가를 드러낸다. 서울대생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그래서다. 당시 피해자가 자살 시도에 이르게 할 만큼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데, 학교폭력에 대해 경각심이 없는 입시, 인사 시스템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고데기가 아닐까.

 

최근 MBN <불타는 트롯맨>에서 과거 폭력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하차하지 않고 활동을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였다가 쏟아지는 비판 속에 결국 하차를 결정한 황영웅과 제작진에 쏟아졌던 공분도 같은 것일 게다. 피해자는 여전히 상처를 잊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처사는 새로운 고데기를 드리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가져왔지만, 그 폭력의 이면에 존재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시스템과 그래서 돈과 권력을 가진 가해자가 더 잘 살고, 약자인 피해자는 더 힘겹게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저격하는 드라마다. 성실한 악은 아니라고 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정의는 그 자체로 피해자들에게는 새 고데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더 글로리>는 에둘러 말해준다. 

 

만일 죄지은 자들이 처벌받는 정의가 작동했다면, 문동은 같은 피해자가 왜 스스로 나서서 사적 복수를 하려하겠는가. 그건 복수가 아니라 새 고데기가 여전히 드리워진 삶으로부터의 생존의 몸부림이 아닐까. 오는 10일 후반부 전편이 공개되는 <더 글로리> 파트2는 이 첨예한 새 고데기와 맞서 싸우는 피해자들의 연대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박연진의 말과 달리 이 세상에는 권선징악과 인과응보가 있다는 걸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보여주길.(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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