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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꽃’, 조정석과 윤시윤이 그리는 동학혁명의 진면목

 

“니 안의 도채비 내가 죽여줄텐게, 니 안의 백이현으로 다시 살더라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에서 백이강(조정석)은 백이현을 때려눕히고 그가 총을 쏘던 오른손을 돌로 내려치려 하며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는 망설인다. 그 돌을 들고 있는 자신의 오른손이 전봉준(최무성)의 칼에 찍혀 못쓰게 된 그 상황을 마음속으로는 사랑하는 동생이 겪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백이현은 마치 도와달라는 것처럼 “그냥 망설이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연모하고 혼인을 약속했던 황명심(박규영)의 오라비 황석주(최원영)가 신분이 낮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전장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을 알고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욕망에 휘둘린다. 그는 일본에서 배웠던 총을 들고 동학군들을 저격하는 ‘도채비(도깨비)’가 된다. 그들을 향해 총을 쏘고는 있지만 그는 그것이 엇나간 욕망 때문이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전봉준(최무성)이 폐정개혁안을 전제로 전라도관찰사 김학진(남문철)과 화약을 맺으려하자 그에게 한양행을 약속하며 전봉준을 저격하라는 명을 받은 도채비 백이현이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 자신이 토사구팽 당할 꼭두각시라는 걸 알게 된다. 어떻게든 성공해 황석주가 보란 듯이 황명심을 찾아가겠다는 욕망에 뛰어든 도채비의 삶이지만,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길을 잃었다는 걸.

 

오른손을 내려치려는 형 백이강에게 “그냥 망설이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백이현이 말하는 건, 그래서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이 욕망을 누군가 끊어내 주길 내심 바라는 마음이 있어서다. 하지만 백이강은 결국 백이현의 손을 내려치지 못한다. 대신 그에게 엄포 섞인 충고를 한다. “도채비 말여 니가 싸워서 이겨봐. 다시 도채비로 만나불면 그 때는 죽여분다 잉.”

 

이 짧은 시퀀스는 왜 <녹두꽃>이 전봉준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대신 백이강과 백이현이라는 형제를 주인공으로 세웠는지가 정확히 드러나는 장면이다. 한 때 ‘거시기’로 불리던 백이강은 전봉준이 그 민초들을 핍박하던 손을 칼로 찍으면서 백이강의 삶을 살기 시작한다. 서자로서 포기하듯 살아왔던 그는 동학군의 별동대장이 되어 민초들을 위해 그 손을 쓰게 된다.

 

그렇게 거시기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름을 찾은 백이강은 이제 그 손으로 동생 백이현의 도채비 손을 내리치려 한다. 그것을 통해 그가 도채비가 아닌 백이현으로 되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백이강이 핍박받는 일을 내면화하며 버텨냈던 삶을 벗어나 자신들을 불행한 삶으로 이끄는 세상과 대결하는 혁명을 꿈꾸게 한 것처럼, 노력해도 올라설 수 없는 신분의 벽 앞에서 분노하던 백이현이 그걸 벗어나 개혁의 꿈을 꾸게 되는 그 과정을 <녹두꽃>은 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새로운 시대의 혁명과 개혁에 대한 열망을 동학이 추구하고 있었고, 그것은 과거의 삶을 살아오던 이들이 그 삶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해 이뤄진 것들이었다. 그래서 동학농민혁명은 전봉준처럼 전면에 등장하는 영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소한 민초들이 스스로의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망하는 이야기가 된다. ‘거시기’를 버리고, ‘도채비’를 버린 그들이 비록 당장은 무너질지라도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그런 이야기.

 

그래서 <녹두꽃>은 이제 겨우 꽃망울이 피기 시작한 시대의 혁명과 개혁을 요구했던 동학농민혁명의 진면목을 제대로 그려낸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일개 영웅담이 아닌 민초들의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배다른 형제의 애틋한 정과 서로 부딪치고 성장하는 모습으로 담아내고 있으니 말이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녹두꽃', 동학군의 적을 좀 더 명쾌하게 세우지 않는다면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이런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뭉클한 면이 있다. 대포와 회전포까지 갖고 온 경군들을 상대로 싸운 황룡강 전투 장면은 그 스케일만으로도 압도되고,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오는 데는 솜을 채운 장태를 밀며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동학군의 모습에서 먹먹함마저 느껴진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을 감수하고라도 이렇게 전장에 나서게 했을까. 백이강(조정석)이 그의 이복동생 백이현(윤시윤)에 의해 위기에 빠진 버들(노행하)과 번개(병헌)를 구해 도망칠 때, 그들을 따르던 일련의 거지들이 동학군에 합류해 한 끼 밥을 먹고는 전장의 최전선에서 목숨을 던져 대포를 무력화시키는 장면이 그렇다.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고자 한 건 뭐였을까.

 

<녹두꽃>은 지금껏 우리네 사극이 좀체 다루지 않았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만으로도 박수 받을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드라마라면 갖춰야할 극적 재미에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보다 선명한 악역 혹은 악의 세력이 아직까지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학군의 첫 봉기 원인이 됐던 고부 군수 조병갑(장광)은 <녹두꽃>의 첫 악역이었지만 탐관오리라는 정도로 그려졌을 뿐 드라마의 극성을 끌어올리는 악랄함이 전면에 그려지지는 않았다. 대신 드라마의 시작점에 악역 역할을 한 건 백가(박혁권)다. 이방으로서 조병갑을 등에 업고 민초들을 수탈해온 인물. 그의 서자 백이강이 그 악행을 대신해 도맡아 했지만, 실질적인 악은 바로 그를 그렇게 만든 백가였다고 볼 수 있다.

 

<녹두꽃>이 제대로 동학군이 봉기하게 되는 근거로서 악을 세우려 했다면 백가보다는 조병갑 같은 인물을 좀 더 전면에 내세워야 하지 않았을까. 백가는 악당이긴 하지만 그 역시 중인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런 짓들을 벌였던 인물이다. 그 역시 어찌 보면 결국 동학군이 지목하고 있는 잘못된 나라의 시스템(세상의 주인이 민초가 아닌)의 일부분일 뿐 뿌리는 아닐 수 있다.

 

그 다음 <녹두꽃>이 악역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황석주(최원영)다. 그는 처음 전봉준(최무성)과 함께 봉기했지만 양반이라는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봉건적 틀에서 점점 추락해가는 인물. 자신을 고문해 누이동생인 황명심(박규영)을 며느리 삼으려는 백가 앞에 무릎 꿇는 척하지만 그는 그 혼사를 막기 위해 백가의 아들이자 자신의 제자인 백이현을 향군으로 나가게 한다. 전장에서 그가 죽기를 바라는 것.

 

황석주의 그런 행동은 백이현이 점점 악독해지는 이유로 작용한다.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황명심을 애모하는 마음에 살아 돌아오려 노력하던 그는 자신을 그 전장으로 보낸 게 바로 황석주라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하고 절망한다. 그는 결국 신분의 벽은 넘을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동학군을 적으로 삼으며 백가의 가족으로 돌아가고, 이방이 되어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분노를 터트리려 한다.

 

<녹두꽃>은 이처럼 좀 더 전면에 나와 있는 악역이 백가나 황석주 같은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악역들이 동학군의 봉기의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동학군이 봉기한 건 민초를 핍박하는 조선 봉건사회의 비뚤어진 시스템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스템을 대변하는 보다 확실하고 명쾌한 악역이 세워져야 동학군의 목숨을 건 봉기가 더 절절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동학군의 전투는 장쾌하고 뭉클하게까지 다가오지만, 그것을 더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들고 의미 또한 더할 수 있게 하는 건 이들이 왜 이렇게 싸우는가를 보여주는 명쾌한 적을 보여주는 일이다. 뭉클한 감동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왜 이들이 싸우고 있는지 다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처리되어 저 뒤로 물러나 있는 적들을 보다 전면으로 끌고 와야 시청자들이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동학혁명 다룬 ‘녹두꽃’, 어째서 민초의 역사 외면 받았나

 

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이 날을 동학농민혁명을 기리는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정하게 된 건, 이 날이 125년 전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이긴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소외되어 왔던 동학농민혁명이 법정기념일로 선정된 건 지난해였다. 무려 125년 만에 기념일로 제정된 것. 무엇이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평가를 이토록 늦게 만들었던 걸까.

 

이 날 SBS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바로 그 황토현 전투를 다뤘다. <녹두꽃>이라는 드라마의 탄생에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재조명의 움직임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마침 그 기념일인데다, 황토현 전투 전승일이 5월 11일에 맞춰 그 전투를 재연해낸 건 드라마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녹두꽃>은 백이강(조정석), 백이현(윤시윤) 이복형제가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동학농민군 의병대와 관에 의해 동원된 향병으로 나뉘어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복형제인데다 적자와 서자로 나뉘어 있어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르게 자라났지만,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형제 그 이상이다. 탐관오리에 붙어 악랄한 이방으로 치부해온 백가(박혁권)는 서자인 백이강을 민초들의 고혈을 빠는 ‘거시기’로 키우지만, 적자인 백이현은 유학까지 보낸 도련님으로 키운다. 하지만 백이현은 부친의 악행에 죄책감과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아왔고, 백이강을 형님으로 대해왔다.

 

녹두장군 전봉준(최무성)이 등장하긴 하지만, <녹두꽃>이 그리는 건 그런 드러난 인물이 아니라 동학농민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이름 없이 살다 죽어간 백이강이나 백이현 같은 민초들의 삶이다. 그들은 의병과 향병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투 속에서도 서로를 구해내고 챙기려 한다. 결국 향병들도 관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징발된 무고한 민초들이다. 그래서 녹두장군 전봉준은 향병들은 죽이지 말라고 명을 내린다. 그들은 관군에 의해 총알받이로 내세워지고, 도망치려는 자들은 저들의 칼날 아래 처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녹두꽃>이 재연해낸 황토현 전투 속에서도 의병들과 향병들이 모두 관군에 의해 핍박받는 상황을 그려낸다. 백이현이 이 전투 속에서 처음으로 죽이게 되는 사람이 적이 아니라 같은 향병이라는 사실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대신 이 와중에도 술과 향락을 즐기는 탐관오리들은 동학농민혁명의 정당성을 드러낸다. 그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별동대 대원들이 적의 진지로 숨어들어가고 의병대가 습격을 해 시작된 것이 바로 황토현 전투다.

 

사실 그토록 많은 사극들이 만들어졌지만,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거의 없었다. 그것은 지난해에 비로소 기념일이 제정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에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레드 콤플렉스는 동학농민혁명을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게 된 원인이 됐다. 왕에 대한 이야기들이 사극의 소재로 쏟아져 나왔지만, 민초들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건 이런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다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에 차츰 역사 바깥을 탐색하던 사극들이 민초들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 <대장금>에서부터 <추노> 같은 작품들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상력으로 그려낸 민초들의 역사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녹두꽃>이 비로소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진짜 민초들의 역사를 재현해내고 있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진 건 촛불 혁명 같은 민초들의 역사가 다시금 피어나고 있어서다. 기념일에 즈음해 이낙연 국무총리가 “촛불혁명도 잘못된 권력을 백성이 바로잡는다는 동학정신의 표출”이라고 말한 건 이런 변화된 현재를 잘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 기념일에 <녹두꽃>의 황토현 전투 재현이 더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사진:SBS)

Posted by 더키앙

지상파 월화극, 조정석과 윤균상이 살아나려면

등장하는 주연들만 놓고 보면 이만한 기대작이 없다. MBC <투깝스>의 조정석이 그렇고, SBS <의문의 일승>의 윤균상이 그렇다. 전작이었던 작품들 속에서 이 두 배우가 거둔 성취는 도드라진 면이 있어서다. 조정석은 <질투의 화신>으로 코미디 연기의 대가임을 증명한 바 있고, 윤균상은 <역적>을 통해 감정 선이 남다른 카리스마와 액션 연기가 모두 가능한 배우라는 걸 입증한 바 있다. 그래서 <투깝스>와 <의문의 일승>에 시청자들이 채널을 고정시키게 된 데는 아마도 이 배우들의 지분이 가장 크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잔뜩 기대감을 갖고 들여다본 이들 드라마는 어쩐지 생각만큼 만족스럽지가 못하다. 물론 이들이 보여주는 연기는 여전히 명불허전이다. <투깝스>에서 조정석은 사기꾼인 공수창(김선호)의 영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차동탁이 굉장히 진지한 캐릭터라면 공수창은 어딘지 뺀질이에 바람둥이 캐릭터인지라, 이 둘을 오가는 조정석의 1인2역이 이 드라마가 주는 코미디의 원천이 되는 셈이다. 

게다가 공수창 역할을 맡은 김선호는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 역할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만일 이 드라마가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간다면 아마도 가장 큰 수확은 김선호의 발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딘지 남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영혼 빙의’ 같은 황당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브로맨스 코미디가 만들어내는 웃음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이 드라마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웃음도 좋지만 그 속에 깔린 페이소스나 지향점 같은 것이 없는 코미디는 그저 휘발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 <투깝스>가 그 괜찮은 연기조합에도 불구하고 조금 황당한 느낌을 주는 건 그래서다. 

이런 문제는 <의문의 일승>도 마찬가지다. 윤균상의 역시 믿고 보는 몰입도 높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설정이나 개연성은 너무 허술하다. 감옥을 들락날락한다는 그 설정 자체가 그렇고, 그 사형수 김종삼(윤균상)이 가짜 형사로 신분 세탁이 되어 비자금 천억 원의 행방을 찾는다는 이야기 전개도 어딘지 황당하다. 물론 그 비자금 이야기가 내포하고 있는 적폐에 대한 뉘앙스는 이 드라마의 메시지가 현실적인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는 걸 암시하지만.

이건 이야기나 설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시청자들에게 설득시키는 과정의 문제로 보인다.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어떤 상황을 납득시키기 보다는 빨리 전개하고 그 속에 반전과 위기를 넣어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는’ 쪽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디테일이 부족해지고 그 부족한 디테일은 개연성 부족으로 다가온다. <의문의 일승>이 보완해야 할 건 이야기의 속도보다는 이 인물의 행동 동기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디테일한 개연성이 아닐까. 

그래서 <투깝스>나 <의문의 일승>은 조정석이나 윤균상 같은 배우들이 만들어낸 기대감을 생각해보면 2% 부족한 아쉬움을 갖고 있다. <투깝스>가 그 코미디 속에 드라마가 하려는 메시지를 담아내는 부분이 부족하다면, <의문의 일승>은 빠른 전개만큼 이를 납득시키고 몰입시키는 디테일들이 부족하다. 이 각각의 부분들이 향후 어떻게 채워질 것인가가 월화극 지상파 성패의 향방을 가르지 않을까. 과연 마지막에 웃는 배우는 누가 될까. 조정석일까 윤균상일까.(사진출처:MBC, SBS)

Posted by 더키앙

'투깝스', 조정석의 하드캐리 혜리 연기력 논란 잠재울까

MBC 새 월화드라마 <투깝스>는 차동탁(조정석)이라는 캐릭터가 절대적이다. 웃음기 없이 진지한 강력계 형사. 게다가 형이나 다름없는 파트너 조항준(김민종)이 살해당했다. 그러니 그 범인을 찾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는 인물이 바로 차동탁 형사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 설정만으로는 어딘지 부족하다. 그래서 <투깝스>는 이 인물에 이른바 ‘깝’ 캐릭터를 집어넣는다. 감방에 있을 때도 조항준으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던 사기꾼 공수창(김선호)과 의문의 추격자들을 피해 강물로 뛰어들었을 때 차동탁의 몸에 공수창이 빙의되는 것. 그래서 사건 해결을 위해 진지하기만 한 차동탁이라는 인물과 어딘지 뺀질이의 느낌이 강한 공수창이 동거하는 기묘한 캐릭터가 탄생한다. <투깝스>라는 제목은 바로 이 두 인물이 한 형사의 몸에 공존하는 상황을 통해 사건해결을 위해 공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조정석은 역시 진지함을 통해 웃음을 주는 코미디 연기의 달인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잔뜩 흥분하거나 진지한 얼굴을 보이지만 어딘지 그것이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면면들이 은근한 웃음을 만들어내고, 이제 ‘깝’ 캐릭터까지 겹쳐지면 조정석의 진가인 진지함과 가벼움의 공존을 통한 독보적인 코미디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물론 <투깝스>의 이야기는 그리 새롭다고 보긴 어렵다. 전형적인 형사물이고 그 안에 복수코드가 담겨져 있으며, 벌써부터 이어지기 시작한 송지안(혜리) 기자와의 멜로가 예고되어 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차동탁과 송지안이 서로 툭탁대며 이어지고 그것이 문득 설렘으로 연결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그러니 <투깝스>가 이 드라마만의 차별성으로 내세울 건 결국 캐릭터다. 같은 이야기라도 캐릭터가 독특하다면 새롭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차동탁은 일단 충분한 매력이 있다. 무엇보다 이를 연기하는 조정석에 대한 믿음이 여전하고 실제로 첫 회만으로도 그런 매력은 충분히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여겨진다. 

하지만 문제는 드라마가 한 배우의 힘에 의해 온전히 움직일 수는 없다는 점이다. 차동탁의 상대 역할인 송지안을 연기하는 혜리는 첫 방송부터 연기력 논란이 나오고 있다. 기자 역할을 하는 것이지만 시청자들은 그 캐릭터에서 송지안을 보기보다는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를 더 많이 떠올리고 있어서다. 

워낙 <응답하라 1988>의 덕선 캐릭터가 강한 인상을 남겨서인지 혜리의 새로운 연기는 그 캐릭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강인한 기자와 코믹한 캐릭터 사이를 오가야 하고, 또한 일과 함께 사랑을 연기해내야 하는 결코 쉽지만은 않은 캐릭터가 바로 송지안이다.

이 부분은 <투깝스>가 향후 넘어서야 할 중대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조정석의 하드캐리가 일단 시선을 잡아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혜리가 첫 회에서 갖게 된 연기력 논란은 스스로도 또 이 드라마도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았다. 과연 <투깝스>는 이런 약점들을 극복해낼 수 있을까. 향후가 궁금해진다.(사진:MBC)

Posted by 더키앙

<푸른바다> 주인공 캐릭터의 문제, 카메오가 신선해진 이유

 

역시 조정석은 잠깐 등장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만드는 배우임에 틀림없다.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라는 캐릭터로 그가 나온 분량은 많지 않지만 지금껏 그 캐릭터가 회자되고 있는 건 결국 조정석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매력이 만만찮았기 때문이다. SBS <푸른바다의 전설>에서도 조정석은 역시 빛났다.

 

'푸른바다의 전설(사진출처:SBS)'

남자 인어로 등장해 아직 인간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낯선 청이(전지현)에게 갖가지 조언을 해주는 모습은 저 <건축학개론>에서 납득이가 승민(이제훈)에게 연애하는 법을 가르치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인간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며 광고 문구들이 사실은 물건 팔기 위한 상술이라는 걸 설명해주는 장면이 그렇다.

 

하지만 조정석이 이번 카메오에서 중요한 역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그가 <푸른바다의 전설>이 갖고 있는 비극적 설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에 빠진 인어가 인간에게 사람을 받지 못하면 심장이 서서히 굳어 죽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자신 역시 다른 존재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버린 여인을 그리워하다 죽음을 맞이한다.

 

사실 이런 인어라는 존재가 가진 비극성은 조정석 같은 카메오가 아니라 주인공인 청이가 보여줘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은 이 청이라는 캐릭터에 순수함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 그 비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은 백지 상태의 모습으로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 적응해가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는 것은 좋지만 그 웃음이 존재 자체의 비극과 잘 맞닿아 있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인어 캐릭터가 어딘지 박제된 인형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웃음은 그저 웃음으로 끝나면 조금은 허망하게 휘발되기 마련이다. 그 웃음이 어떤 비극과 연결되어 있을 때 캐릭터가 가진 페이소스 같은 것들이 느껴지게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청이 캐릭터보다는 조정석이 잠깐 등장해 보여준 인어 캐릭터가 훨씬 더 그런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는 유쾌한 웃음을 주지만 어딘지 쓸쓸함 같은 것이 그 이면에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푸른바다의 전설>의 이야기 구조가 <별에서 온 그대>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는 여러모로 합당한 지적이다. 외계인이나 인어 같은 이질적인 존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우리네 삶의 현실들이 우화처럼 드러난다는 이야기 구조는 거의 같다. 하지만 <푸른바다의 전설>이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단지 유사해서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캐릭터다.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남녀주인공인 허준재(이민호)와 심청 캐릭터가 살아있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코미디적 상황들이 자주 등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또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코미디가 그저 코미디로 끝날 때는 자칫 깊이를 상실할 수 있다. 특히 판타지물의 경우, 코미디를 너무 가볍게 사용하면 이야기 자체가 허황된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다. 조정석의 경우, 이미 <질투의 화신> 같은 작품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비극적 상황과 희극적 상황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연기자다. 시청자들은 빵빵 터지지만 동시에 그 인물은 굉장한 비극 속에서 실제로 펑펑 우는 장면이 가능한 그런 연기자.

 

<푸른바다의 전설>이 가진 한 가지 문제는 바로 이 가볍게 상상력의 나래를 펴고 날아가는 판타지를 땅으로 끌어내려 어떤 무게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의 희비극적 요소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연기를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연기자의 공력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현실의 무게감을 더해주는 페이소스를 주는 인물들은 그래서 초반에 강남거지로 등장해 확실한 존재감을 남긴 홍진경이나 인어로 등장해 드라마에 어떤 쓸쓸한 정조를 남기고 가버린 조정석 같은 카메오다. 이 드라마가 살기 위해서는 카메오들이 갖고 있는 이런 희비극적 요소들을 남녀 주인공이 오히려 가져야 되지 않을까

Posted by 더키앙

제작진 개념의 문제, 출연진 사과만으로 해결 안돼

 

tvN 예능 <SNL코리아>는 사과하는 날 또 논란이 터졌다. 마마무가 호스트로 출연해 불후의 명곡을 패러디하는 코너에서 엄앵란 분장을 하고 나온 정이랑이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부르는 대목에서 벌어진 논란이다. 노래 가사 중에 들어있는 가슴이라는 대목을 부르며 나는 잡을 가슴이 없어요라고 말한 것.

 

'SNL코리아(사진출처:tvN)'

여성의 신체를 소재로 비하의 의미를 담아 놓은 코미디적 성격 자체도 문제지만, 엄앵란 씨가 지난해 유방암 2기 판정을 받고 절제 수술을 받았던 사실을 떠올려보면 해도 너무한 무개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특정인을 패러디 대상으로 세워놓고 본인에게는 굉장히 고통스럽고 슬플 수밖에 없는 사실을 웃음의 소재로 쓴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이건 마치 아파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기는커녕 손가락질하며 웃음의 소재로 쓰는 일과 뭐가 다른가.

 

이것은 엄앵란 씨 개인이 치른 고통이 아니라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많은 환우들이 겪은 고통에 대한 무개념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본인이 유방함 판정을 받고 가슴 절제 수술을 받았다면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코미디랍시고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대본에 들어있는 듯 기다렸다는 듯이 거미 분장을 하고 나온 안영미가 가슴이 없다는 거. 개인적으로 공감한다.”고 한 대목도 지극히 부적절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여성의 가슴을 성적 대상화하는 발언이다. 따라서 이 부적절한 말은 일반 여성들에게조차 불쾌함과 불편함을 만들기에 충분하다. 거미의 남자친구를 의식한 듯, 조정석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됐지만, 그가 출연했던 <질투의 화신>이 남성 유방암 환자에 대한 이야기로 유방암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넓혔던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장면이다. 개념과 무개념은 이렇게 큰 차이를 만든다.

 

한 주 동안 불편함과 실망을 느끼셨을 많은 분들에게 <SNL코리아>를 대표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잘못된 행동이었고 잘못된 생각이었다.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잘못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 이 날 마침 <SNL코리아>는 신동엽이 대표해 SNS에 올라와 논란을 일으켰던 부적절한 영상에 대한 사과를 했다. 그의 말대로 그 문제는 이세영 개인의 문제라고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 이 사과 방송이 있는 날 또 다시 터진 논란이다.

 

이번 논란 역시 물론 그걸 시연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이랑이나 안영미 모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하지만 결국 제작진이 대본을 만들고 크루들은 그걸 효과적으로 시연하는 것이 본인들의 역할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문제의 방점은 제작진에게 찍힌다. 특히 어떤 콘텐츠든 개념의 문제는 그걸 애초에 짠 대본의 문제와 또 그걸 관리 감독하는 연출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논란이 터지자 <SNL코리아> 측은 곧바로 사과하고 재방송 분에서 해당 장면을 삭제조치 했다. tvN 관계자는 이번 시즌8 초반부터 정이랑 씨가 김앵란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이번 생방송 코너에서도 엄앵란 씨의 개인사를 모르고, 노래 가사를 정이랑 씨 본인의 이야기에 빗대어 애드리브를 하다가 오해가 생겼다면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점 사과드리며, 재방송 분에서는 해당 장면을 삭제 조치했다. 앞으로 더욱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고정 크루들이 나와서 고개를 조아리고 사과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이것이 결국 제작진의 개념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걸 말해준다. 제작진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코미디를 그저 웃기는 것 그 이상으로 생각하며 누군가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웃음을 배려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사과한다고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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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과 도경수가 <>의 신파를 살려낸 비결

 

한 마디로 말해 영화 <>은 신파다. 경기 도중 충격으로 시력을 잃은 동생과 말기 췌장암 선고로 죽어가는 형. 배다른 형제의 브로맨스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짠하다. 애증으로 시작하던 형제 관계가 차츰 애정으로 변하고 나중에는 먹먹함으로 이어지는 그 감정의 파고를 만든 건 바로 이 신파적 설정이 큰 몫을 차지한다.

 

사진출처:영화<형>

하지만 이 눈물 빼는 영화가 90%를 눈물로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웃음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형 고두식 역할로 나오는 조정석과 동생 고두영 역할의 도경수는 그 신파적 눈물과 비극을 뒤집는 코미디의 밀당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들이다. 여기에 유도 국가대표 코치로 등장하는 수현 역할의 박신혜와 깨알 같은 따뜻한 웃음을 전해주는 대창 역할의 김강현은 시종일관 관객들을 미소 짓게 하고 때로는 뭉클하게 만든다.

 

사실 결론은 이미 나와 있는 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야기의 신선함 같은 건 이 영화에서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다만 그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살려내고 신파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있는 영화를 헤어나올 수 있게 해주는 건 배우들이다. 놀라운 건 이 영화는 온전히 조정석, 도경수, 박신혜 그리고 김강현 네 배우가 거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그 중심점에 조정석이 있다. 이미 SBS <질투의 화신>을 통해, 아니 훨씬 이전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로 등장해 미친 존재감을 드러낼 때부터 조정석은 희비극이 뒤섞인 연기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그는 자신이 비극적 상황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보는 관객들을 웃기는 놀라운 재주를 가졌다. 즉 상황은 비극이지만 보는 이들은 희극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힘. 찰리 채플린이 얘기했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그 얘기가 떠오르는 배우다.

 

<>에서도 조정석은 단연 빛난다. 교도소에서 가출소된 껄렁껄렁하고 욕쟁이인 이 형이 동생을 대하는 모습은 한 마디로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애정 같은 것이 느껴진다. 장님이 된 동생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그 형의 시선은 그래서 영화 초중반을 눈물보다는 웃음을 채워 넣어준 이유다. 브로맨스의 츤데레를 보는 듯 조정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생을 툭툭 건드리며 웃기다가 어느 순간 마치 둑이 터지듯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를 보여준다.

 

도경수는 <괜찮아 사랑이야>나 영화 <카트>를 통해 보여줬던 그 진지함으로 <>이 가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영화적 공기를 채워준다. 조정석이 시종일관 웃음을 줄 수 있게 된 건 바로 이 도경수가 만들어내는 비극적 정조가 어떤 긴장감을 만들어 그걸 살짝 뒤트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터질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은 일종의 정해진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영화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영화를 통해 대단한 상상력이나 혹은 삶에 대한 놀라운 시각 같은 걸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떤 감정적 위로와 위안이 절실해진 요즘 같은 시기에 어떤 따뜻한 웃음과 눈물이 주는 효용가치는 클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조정석과 도경수의 연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영화를 즐겁게 해주는 힘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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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에서 독립된 보도, JTBC <뉴스룸>이 다른 이유

 

종영한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는 이화신(조정석) 앵커가 뉴스 마지막 멘트에 부정을 저지른 기업들에 대해 노골적인 비판을 담는 장면이 나온다. 본래 정해진 멘트를 훌쩍 벗어나 자신의 소신대로 꺼내놓는 날카로운 비판에 국장은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국장은 곧바로 사장의 전화를 받는다. 이화신 앵커의 멘트 몇 개로 광고 수 십 억이 날라 갔다는 것이다. 결국 이화신 앵커는 유치원으로 전근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뉴스룸(사진출처:JTBC)'

드라마의 내용이지만 이런 일들은 방송사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들이다. 뉴스가 기업광고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 기업이 부정을 저질러도 뉴스가 소신대로 그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건 그래서다. 물론 기업에 관한 뉴스가 이럴 정도인데, 정부에 대한 비판적인 뉴스는 오죽할까. 이번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통해서 지상파 뉴스들이 일제히 비난을 받은 건 그 오래도록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묵인했거나 했다는 점에서 언론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것 때문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방송사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경영을 해야 하는 입장과 동시에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국정과 기업의 감시자 역할을 해주는 일이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경영이 최우선이 되면 방송사가 보도 부문에서 국정과 기업의 감시자가 아니라 홍보 역할을 하게 된다는 걸 여러 차례 목도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번 최순실 게이트를 꺼내 보도한 JTBC <뉴스룸>은 무엇이 달랐길래 이런 소신있는 보도가 가능했던 걸까. 누구나 알다시피 이번 게이트는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가 그 대상이다. 그러니 자칫 일개 방송사에게는 사활이 걸린 보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런 소신 보도가 가능해진 건 다름 아닌 손석희 앵커 덕분이다. 그가 없었다면 이번 사태에 대해 그 어떤 언론도 쉽게 꺼내놓고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에는 독특한 JTBC만의 뉴스보도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JTBC의 사장이 누구냐고 물으면 손석희 앵커를 지목한다. 액면대로는 맞는 이야기다. 손석희 앵커는 JTBC의 보도부문 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도부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JTBC에는 전체를 총괄하는 대표이사 김수길 사장이 따로 있다. 굳이 대표이사가 있는데 이렇게 굳이 손석희 앵커를 보도부문 사장으로 세워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손석희 앵커가 JTBC로 오면서 스스로가 원했던 편집권 독립때문이다. 즉 누가 뭐라고 해도 뉴스 보도에 있어서는 모든 재량권을 손석희 앵커가 갖는다는 뜻이다. 물론 책임도 손석희 앵커가 져야 한다. 하지만 이런 편집권 독립은 투명하고 소신 있는 뉴스 보도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번 JTBC<뉴스룸>이 보인 행보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건 언론의 독립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JTBC 보도는 언론의 진정한 역할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알면서도 숨겨지거나 아니면 감시 기능 자체를 아예 가동하지 않는 언론의 문제를 드러낸 셈이다. 경영으로부터 독립된 보도. 또 그런 보도를 소신 있게 하는 것이 인사 상 불이익으로 돌아오지 않는 시스템. 지금의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구축해야할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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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투>, <공항>, <쇼핑왕>이 재발견한 배우들

 

드라마 캐릭터와 연기자의 관계는 한 마디로 말해 인연이다. 좋은 캐릭터는 연기자로부터 그가 가진 매력을 드러나게 해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에 종영하는 수목극의 조정석, 서인국, 김하늘은 각각의 작품에서 캐릭터와의 좋은 인연을 만난 것 같다. 그들의 연기자로서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발견하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질투의 화신(사진출처:SBS)'

SBS <질투의 화신>에서 조정석 없는 이화신을 떠올릴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게다. 자존심 강하고 자신의 일에 있어 확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지만, 사랑이나 우정 같은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아이 같은 인물. 그래서 자신의 유방암 사실을 커밍아웃하며 소수자들도 잘 살 수 있는 나라였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성인의 사고를 갖고 있지만, 사랑 앞에서는 질투하고 삐치고 괜스레 화를 내는 아이 같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그런 인물.

 

조정석은 이 이화신이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바로 그 아이의 얼굴을 대중들 앞에 선보였다. 투덜대지만 어딘지 귀여운 그 캐릭터는 그래서 본인이 느끼기에는 엄청난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면서도 보는 이들을 빵빵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아마도 그 짠내 나는 슬픈 정조를 갖고 이만큼 웃길 수 있는 배우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코미디 연기라고 하지만 조정석은 이걸 타고난 것 같다.

 

조정석이 페이소스가 깔린 코미디에 확고한 자기만의 영역을 보여줬다면, 김하늘은 KBS <공항 가는 길>을 통해 섬세한 멜로 연기가 자신의 영역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물론 <온에어>, <신사의 품격> 같은 작품들을 통해 그녀는 다양한 멜로 연기를 선보인 바 있지만 <공항 가는 길>은 그것보다 훨씬 더 섬세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이 작품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거리두기때문이다.

 

기혼남녀가 인연에 의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담는 <공항 가는 길>이 불륜이라는 소재의 늪에 빠지지 않고 심지어 힐링 드라마로 갈 수 있었던 건 인물들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을 표현해내는 방식 덕분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대방이 있던 어떤 공간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 이걸 가능하게 한 건 김하늘이 보여준 섬세한 감정 연기 때문이다.

 

한편 MBC <쇼핑왕 루이>의 애초 별 기대감이 없던 드라마의 반전을 만들어낸 주역은 역시 서인국이다. 서인국은 이 드라마를 통해 티 없이 맑고 순수한 영혼의 루이라는 인물을 제대로 입체적으로 연기해냈다. 조금은 바보 같고 의심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고 타인을 믿어버리는 그런 캐릭터지만 바로 그런 순수함을 보였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기꺼이 이 인물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왕의 얼굴>에서 강인한 인상을 심어준 바 있고, <너를 기억해><38사기동대>에서 스마트하고 세련된 면면을 드러낸 바 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발견된 순수한 얼굴은 아마도 서인국이 가진 진짜 매력이 아닐까 싶다. 조금은 멍해 보이지만 우직하게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서는 어떤 보호본능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그런 매력이다.

 

<질투의 화신>, <공항 가는 길> 그리고 <쇼핑왕 루이>. 이 세 작품이 저마다의 색깔을 내며 시청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작품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조정석, 김하늘 그리고 서인국이라는 배우들의 숨겨졌던 잠재적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계기는 향후 이들 배우들의 작품 행보에 오랜 잔상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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