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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사건, 소문의 시대가 보여준 불길한 징후

“노인을 넘어뜨리고 발로 밟았다.” “노인을 차 앞에 매달고 5백 미터를 질주했다.” “노인을 보조석에 태운 채 칼로 위협했다” 최민수 사건의 당시 소문은 흉흉하기만 했다. 언론은 소문의 진상을 알아보기는커녕, 자극적인 내용들로 소문을 확대했다. 피해 당사자인 최민수는 그 과정에서 사건의 진실과는 상관없이 죄민수가 되었다. 그는 이 일파만파의 소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현실
‘MBC 스페셜’에서 보여진 대로, 최민수는 우리나라의 정서를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잘잘못을 떠나 어쨌든 노인과 관련된 일”이라고 한 최민수의 말은 그가 왜 무릎까지 꿇었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었다. 결국 무혐의로 판결나면서 모든 것들이 그저 소문에 불과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소문을 확대했던 언론들마저 무혐의에 대해서는 조그마한 단신으로 처리했다.

소문의 그물 속에 포획된 공인은 세상에 지쳤고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 소문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그의 행보 또한 기행으로만 조명되었고 자신을 벌주는 듯한 행동으로 인식되면서 오히려 소문을 사실처럼 믿게 만들었다. ‘MBC 스페셜’에 오랜만에 얼굴을 드러낸 최민수는 비쩍 말라있었지만 눈만은 산으로 들어가기 전보다 편안해져 있었다. 고독해 보였지만 자신에게 떨어진 이 난데없는 형벌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MBC 스페셜’이 포착하려 한 것은 한 연예인에게 떨어진 루머에서부터 시작해, 그 소문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대되고 전파되며 또 완전한 사실로 굳어지는지 그 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좋은 소문과 나쁜 소문의 전파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치러진 실험을 통해 나쁜 소문의 전파가 더 빠르고 폭넓게 진행된다는 것을 프로그램은 보여주었고, 또 불안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소문도 더 확산된다는 것 역시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최민수 사건, 과연 그만의 일일까
‘MBC 스페셜’이 최민수의 소문을 추적하기 위해 보여준 실험들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좋은 소문보다 나쁜 소문이 더 빨리 확대된다는 실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왜 그다지도 선플보다 악플이 인터넷을 가득 메우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IT강국으로서 속도의 시대에 편승하고 있는 우리들은 또한 그 정보에서 누락되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함으로써 우리도 모르는 사이 소문의 한 쪽을 부풀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굳이 포지셔닝 이론을 꺼내지 않아도, ‘대중들은 사실 그 자체가 아닌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일 것이다. 소문은 바로 이 지점, 즉 최민수의 사실이 아니라, 최민수라는 캐릭터라면 했을 지도 모를 가상의 시나리오에 더 집중함으로써 확대 과장된다. 물론 카리스마의 아이콘을 가진 캐릭터로서의 최민수와 진짜 최민수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소문이란 말 그대로 소문일 뿐이지만, 이미지를 생명으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도 이미 망가진 이미지는 회복하기가 좀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정보의 시대가 말해주는 어두운 면, 즉 소문의 시대를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인지도 모른다. 소문의 시스템이 거의 완벽하게 구축되어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이것이 어찌 최민수만의 일로 멈출 것이라 장담할 수 있을까.

Posted by 더키앙

‘개그야’, 무의미의 실험이냐 의미의 공감이냐

‘개그야’가 생긴 건 분명 ‘개그콘서트’가 열어 놓은 공개무대개그의 영향이 크다. 개그의 무한경쟁 시대를 열어놓은 KBS ‘개그콘서트’가 독주하고, 그 분위기를 감지한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등장한 후에도 MBC는 꽤 오랫동안 ‘웃으면 복이 와요’가 가졌던 콩트 개그류의 전성기가 다시 도래하기를 꿈꾸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대세가 기운 상황에서 MBC가 내민 카드가 ‘개그야’다. ‘개그야’가 여타의 공개개그와 차별점을 두었던 것은 내러티브 속에 잡아넣는 말 개그, 즉 유행어였다. ‘죄민수’의 “아무 이유 없어!”, “MC계의 슈레기"나 ‘사모님’의 “운전해 어서!” 같은 유행어들은 ‘개그야’가 가진 말 개그가 낳은 것들이다.

무대개그의 실험성은 단연 ‘개그콘서트’가 독보적인 상황이었으며, 그 주축을 이룬 개그맨이 정종철, 박준형이었다는 점에서 현재 그들이 이적한 ‘개그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시청률면에서나 관심도면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무얼까. 이들의 실험성과 ‘개그야’가 본래부터 갖고 있던 유행어 제조기를 방불케 하는 내러티브형 말 개그는 과연 시너지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유행어 면으로만 보면 현재의 ‘개그야’는 과거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인지도를 예감케 한다. 벌써부터 ‘천수정 이뻐’나 ‘없어’ 그리고 ‘끊지마’같은 코너는 그 제목 자체가 유행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처럼 누구나 한번 들으면 귀에 쏙쏙 박히는 중독성을 갖고 있다. 특히 ‘천수정 이뻐’는 “힘들어? 오 내 새끼 오 남의 새끼” 이런 식으로 유행어 조짐을 보이는 말들을 연쇄적으로 풀어내는 묘미를 선사한다.

문제는 이런 입에 쩍쩍 달라붙는 말들이 독특한 발성과 높낮이를 통해 강한 중독성을 내포하기는 하지만, 어떤 의미를 도출하지 못하는 점에 있다. 개그가 반드시 모든 사회적 의미를 내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무거운 것이 아닌 간단한 것이라도 의미망을 형성하지 못한다면 자칫 말장난에서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장난 또한 웃음의 한 요소인 것은 분명하지만 의미는 바로 그 말장난을 좀더 강력하게 각인시키는 힘이 있다.

의미 형성을 이루지 못하는 재미있는 말들의 상찬은 즉각적인 웃음은 불러낼 수 있지만 그 이상을 만들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러한 말의 무의미성이 극대화된 것은 바로 ‘나카펠라’다. ‘나카펠라’가 가진 실험성은 아카펠라의 패러디, 노래의 재해석, 그리고 몸 개그의 결합 등등 간단히 겉으로만 봐도 실로 극대화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정종철이 가진 다양한 개인기가 아니면 풀어내기 어려운 개그의 형식이다. 하지만 한바탕 웃고 나서 “도대체 이게 무슨 얘길 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딱히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실험적인 코너가 한두 개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미가 극대화된 풍자나 세태개그가 주류를 이루는 ‘개그콘서트’ 같은 경우에 이런 ‘무의미의 실험개그’가 주는 신선함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이른바 4차원 개그에 대한 주목도는 나머지 코너들이 대비효과를 주어야 비로소 더 빛나는 법이다. 하지만 ‘개그야’가 선보이는 코너들은 거의 대부분이 4차원에 머물고 있다.

IQ가 430이라 자처한 한 황당한 정치인에서 따온 것이지만 그 내용은 풍자와 세태와는 거리가 먼 ‘IQ430’라는 코너에서, 개그우먼이 “기분 많이 좋아?”하고 물어볼 때 유행어를 예감케 하는 재미에 비해 그 무의미함으로 인해 그 이상으로 남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다. ‘개그야’에 대한 떨어진 호응도는 아직까지 섣불리 그 원인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제 정종철과 박준형이 투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무대개그의 속성상(변화의 속도가 빠르다) 앞으로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의미의 실험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웃음의 의미가 만들어내는 공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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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키앙

TV, 웃거나 분노하거나

요즘 시청자들의 욕구는 두 가지인 것 같다. 그것은 ‘웃고싶거나, 분노하고싶다는 것’. 멜로드라마의 퇴조는 바로 그 정조가 지금의 세태와 잘 맞지 않는다는 반증이다. 완성도를 떠나서 그 주인공이 질질 짜는 영상 자체에 시청자들은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실제 현실에서 ‘눈물의 가치’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평가절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쿨(Cool)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눈물은 혼자 숨겨야할 어떤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TV 속에서 ‘눈물 흘리는 자’보다는 ‘힘겨워도 웃고 있는 자’를 더 리얼하게 생각한다.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각박해져만 가는 현실 속에서 매달 은행이자에 생활비에 아이들 학원비에 시달리고, 회사에서 구조조정의 칼날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오로지 입시를 위해 공부기계처럼 살아가고,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서조차 취업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멜로드라마가 보여주는 ‘사랑의 좌절로 인한 눈물’은 그다지 리얼한 공감을 일으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이런 눈물보다는 ‘잠깐 동안의 도피’를 꿈꾼다. 케쎄라 쎄라. 눈물은 내일로 미루고 당장은 웃고 싶은 것이다.

웃고싶다, 생각하지 않고
공개개그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는 바로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공개개그가 지향하는 호흡이 그다지 길지 않은 몇 분, 몇 초라는 것은, ‘잠시 생각은 접어두고 웃고싶은’ 시청자들의 입맛에 잘 맞아떨어진다. 게다가 이 촌천살인의 개그 속에는 현실에서 억압된 감정을 순간적으로 터뜨리는 폭발력이 있다. 마빡이의 단순한 동작 속에는 복잡한 현실을 무화시키는 강력한 웃음폭탄이 내재되어 있고, 죄민수의 막가파식 개그 속에는 사회와 권위의 억압을 해체하는 묘한 힘이 있다.

한편 이 마빡이나 죄민수 같은 소외되고 비천한 인물들은, 웃음을 찾는 시청자들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시키기에 딱 알맞은 캐릭터들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무한도전’의 힘은 바로 그런 캐릭터들에서 나온다. ‘리얼 버라이어티 개그’를 지향하고 있지만 ‘무한도전’이 주는 웃음의 원천은 연출되지 않은 리얼한 상황에 있다기보다는, 그 상황 속에 있는 캐릭터들의 힘에 있다. 소심하고 비굴하면서도 정이 가는 유재석, 호통을 치지만 어딘지 연민이 느껴지는 박명수, 쉴 새없이 떠들어대지만 순수함이 느껴지는 노홍철, 덩치만 큰 곰 같은 우직함의 정준하, 장난기 많은 막내 같은 하하, 방송에 적응 못한 듯해 연민을 일으키는 정형돈. 이 소외된 캐릭터들이 엮어 가는 실제상황이라서 공감이 가는 것이다.

분노하고 싶다, 거침없이
하지만 이 웃음은 그냥 웃음이 아니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란 말이다. 개그의 두 가지 웃음 촉발인자는 이제 ‘굴욕과 풍자’가 되었다. 굴욕이 자신을 한없이 무너뜨리는 데서 웃음을 만든다면, 풍자는 상대방을 조롱하고 깎아 내리는 데서 웃음을 촉발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나타난 양태가 다를 뿐, 그 근본 유발인자는 한 가지에서 나온다. 바로 ‘분노’이다. 굴욕이 타인이 아닌 내 자신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자학)이라면, 풍자는 바로 그 타인에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 분노를 마빡이는 자기 자신에게, 죄민수는 타인에게 터트리는 형태로 웃음을 유발시킨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풍자가 개그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요인이다. ‘형님뉴스’는 “∼가 ∼다워야 ∼지’하는 유행어를 흩뿌리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가 ∼답지 않은” 세태를 꼬집는 말이다. 죄민수의 “아무 이유 없어!”, “이 MC계의 쓰레기!”같은 말 역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권위에 대한 조롱이 아닐 수 없다. 우아한 자태의 사모님이 하는 일련의 ‘무뇌형 발언’은 ‘돈은 많으나 생각은 없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제로’의 졸부들을 비꼬는 말들이다. 웃음 속에는 이다지도 많은 분노의 칼날들이 숨어 있다. 그 칼이 정확히 시청자들의 가슴에 꽂히는 순간, 카타르시스와 함께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TV, 웃거나 분노하거나
이것은 단지 개그 프로그램의 얘기만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멜로드라마가 어려운 것은 바로 눈물이 이 사회에서 리얼한 해결방식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이제 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웃음과 분노’가 하나의 쿨한 해결방식으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멜로드라마가 손잡은 것은 코미디다. 따라서 작년에 코믹한 설정으로 호평을 얻었던 ‘돌아와요 순애씨’의 연장선 위에 ‘달자의 봄’이 있는 것이고, ‘환상의 커플’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여전한 것이다. 일일드라마에 도전장을 내민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의 성공은 바로 이 웃음 코드를 공감 가고 리얼한 캐릭터들을 통해 잘 살린 데 있다. 눈물에 각박해진 시대에 드라마들은 웃어야 성공한다. 늘 웃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질질 짜지는 않아야 된다.

반면, 분노를 부추기는 드라마, 혹은 프로그램들이 TV의 또 한 축을 차지한다. 자극과 선정성을 무기로 들고 나오는 ‘논란드라마들’은 그 가장 강력한 무기로 ‘분노’를 사용한다. 폭력에 가까운 말들과 장면들이 오가는 화면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일종의 전이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것 같다. 또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들을 포착하는 사회고발프로그램들의 영상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해결이 가진 문제점은 중독이다. 자극을 통한 문제의 해결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살기 어려운 시기에 웃음이 그 어려움을 위무해주는 코드로 나타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자칫 분노로 일관되는 감정의 형태를 웃음이라는 긍정적인 형태로 변환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점점 떨어져만 가는 ‘눈물의 가치’이다. 삶에 있어서 웃음만큼 중요한 것이 ‘건강한 눈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단순한 최루성이나 구태의연한 설정으로 유발되는 눈물이 아닌, 이 시대의 감성코드와 공감할 수 있는 눈물이 어느 때보다 기다려지는 이유다.

Posted by 더키앙

최국이 별을 쏘고싶었던 이유

단 두 차례 방영됐을 뿐인데 이토록 관심을 받는 개그 코너가 있을까. 바로 ‘개그야’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는 ‘최국의 별을 쏘다’이다. 이 코너로 이른바 가장 뜬 개그맨은 조원석. 그가 맡은 죄민수라는 역할 때문이다. 2003년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해 ‘웃찾사’를 거쳤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다가 이 코너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다.

왜 뜬 건 죄민수 역할의 조원석인데, 코너 제목은 ‘최국의 별을 쏘다’냐고 이들에게 묻는다면 아마도 “아무 이유 없어!”할 것이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따져보자면 이 코너가 버라이어티 쇼를 패러디하고 있기 때문에 그 쇼의 제목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최국이라는 개그맨의 범상치 않은 이력을 보자면 그 제목이 더 심상찮게 느껴진다.

최국은 2001년 SBS 6기 공채 개그맨으로 시작했으니 벌써 방송에 몸담은 지 햇수로 7년째이지만 개그맨으로도 방송인으로도 스포트라이트를 별로 받아보지 못했다. 그는 ‘MBC 스포츠 매거진’, ‘MBC 찾아라 맛있는 TV’ 등에서 리포터로 활동했고, 개그로 돌아온 것은 2003년도 ‘KBS 개그콘서트’의 ‘미션 임파서블’이란 코너를 통해서다. SBS 공채개그맨으로 시작했지만 ‘KBS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으로 처음 활동했고, 드디어 ‘MBC 개그야’에서 주목받은 셈이니 7년 연예계 세월이 쉽지만은 않았을 터. 왜 별을 쏘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 코너는 최민수라는 과거 카리스마의 아이콘을 죄민수라는 우스운 캐릭터가 패러디하고 있지만 좀 넓게 보면 그 꼬집는 대상은 연예계라고 볼 수 있다. 얼굴로는 마빡이에 버금가는 죄민수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다짜고짜 매력과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인 양 행동한다. 죄민수의 생김새와 행동거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의 없고 거만한 행동들은 물론 실제 연예인과는 다른, 과장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웃음은, 연예인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권력을 꼬집을 때 나오는 유쾌함에서 비롯된다.

죄민수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아무 이유 없어!”, “이거 이거 손짓 하나에 다 넘어가는구만.”, “스타가 되고 싶나? 그럼 나처럼 생기던가!”, “어머니 감사합니다. 남들보다 쉽게 먹고살아요.” 이 대사들은 기존의 연예인에 대한 관념을 모두 뒤집는 것으로 여기에 죄민수의 특출난(?) 외모와 과장된 연기가 곁들여지면 폭소가 유발된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어떤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무 이유가 없고’, 손짓 하나에 다 넘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그들의 생각과 말이 우습게만 보인다. 게다가 실력은 뒷전에 외모 하나로 뜨기도 하는 연예계 세태를 꼬집는 데선 가히 넘어간다. 심지어 가끔씩 최국이 질문을 할 때 죄민수가 답변은 안 하고, “MC계의 쓰레기!”라는 엉뚱한 말을 할 때는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마저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연예계의 스타들에게 권력을 부여한 것은 바로 그들을 추종하는 팬들. 이것이 양희성이라는 과거의 카리스마를 좇는 여성 캐릭터의 존재 이유다. 코너 속에서는 헤어진 연인이지만, 이 팬을 대표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죄민수에게 “역시 여자를 갖고 놀 줄 알아.”, “여자의 마음을 얼렸다 녹였다 하는 이 삼한사온 같은 자식!”하면서 과장되게 추종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거만하게 행동하는 죄민수를 보다 못해 “이 거지같은 놈.” 하고 무언가 결별할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다가, “내가 더러워서 갖는다.”하는 식으로 다시 죄민수로 돌아간다. 이것은 팬과 스타간의 애증적 관계를 패러디한 것은 아닐까.

죄민수, 조원석이 일약 스타덤에 오른 현재도, 최국은 여전히 그 옆자리에서 묵묵히 ‘별을 쏘고’ 있다. 아마도 연예계에서 최국 같은 인물들은 이미 뜬 스타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기꺼이 그림자 역할을 해주는 최국 같은 이들이 있어 스타들을 빛나게 한다. 변방이 있기에 중심도 있는 것이다. 저 영화 ‘라디오 스타’가 말하듯 별은 저 혼자 빛나지 않는다.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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