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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네 반찬’이 주부들의 시선 사로잡은 비결

도대체 이 묘한 카타르시스는 어디서 오는 걸까. tvN <수미네 반찬>을 보면 속이 다 시원하다는 주부들이 있다. 엄마가 했던 그 추억의 레시피를 떠올리며 거침없이 만들어내는 김수미의 요리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하는 요리의 방식과 더불어, 이 프로그램이 구도로 잡아놓은 셰프들과의 역전된 관계가 그간 일상에서 짓눌려온 주부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것이다. 

<수미네 반찬>은 제목에서 드러나듯 김수미라는 인물의 캐릭터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에게는 일용이 엄마로 더 알려져 있고, 여러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욕 잘하는 센 캐릭터로 각인되어 있는 인물이다. 물론 그 센 캐릭터와 엄마의 이미지가 더해지면 그 어렵던 시절에 쉽지 않은 살림으로도 자식들 건사한 억척 엄마의 면모가 그려진다. 억척스럽고 세지만 자애로움을 동시에 가진 그런 엄마가 김수미에게서 떠오른다는 것.

요리하는 방식도 딱 그런 억척 엄마의 그것이다. 밥 달라 아우성치는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빨리 먹이려는 마음과 그러면서도 맛도 좋고 영양도 좋은 음식을 해주려는 그 마음이 더해져 김수미의 요리법은 독특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손이 너무나 빨라서 셰프들조차 그걸 따라가기가 쉽지 않아 진땀을 흘리게 만들고, 하나하나 계량을 해서 정량의 레시피를 추구하기보다는 손에 익은 감각으로 척척 양을 맞춘다. 보기에는 대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스트로 나온 요리연구가 이혜정이 말한 것처럼 ‘세월의 고수’의 내공이 느껴진다.

김수미가 ‘요만치’ 식의 ‘계량법’을 시전하면서도 딱딱 맞춰내는 간은 그래서 신기하게 보일 정도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렇게 정량을 맞추진 않아도 넣어가며 맛을 봐가며 부족하면 채우고 넘치면 재료를 더 넣어 간을 맞추는 방식이 어쩌면 ‘가족의 입맛’에는 최적화될 수 있어서다. 가족은 저마다 입맛이 다르기 마련이다. 그러니 정량의 레시피는 가족마다 또 누가 먹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최적화된다. <식객>의 ‘세상의 모든 맛있는 음식의 가짓수는 세상의 엄마의 숫자와 동일하다’는 그 명대사가 그저 멋있는 표현이 아니라 실제인 이유다. 

물론 요즘은 가사노동 역시 부부가 분담하고, 요리를 하는 일에 남성들 역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엄마들의 몫이 더 큰 게 현실이다. 그래서일까. 그 엄마들의 입장에서 보면 <수미네 반찬>의 김수미가 하는 시원시원한 요리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만든다. 물론 정성이 담긴 요리지만, 척척 해내면서 “그냥 먹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 입에 넣어주는 그 모습은, 그 힘든 살림도 모르고 밥 투정 반찬 투정하기도 하는 가족들 앞에서 서운함 같은 걸 느꼈을 주부들에게는 기분 좋은 ‘한 방’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게다가 <수미네 반찬>은 일련의 사회적 통념이 만들어내고 있는 권력구도(?)를 김수미라는 엄마를 통해 모두 뒤집어놓았다. 이 프로그램 안에서는 그래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구도가, 남성과 여성의 구도가 역전되어 있다. 김수미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쩔쩔 매는 셰프들의 모습은 그래서 요리 프로그램 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러면서 이혜정과는 같은 엄마로서, 여성으로서의 공감대를 이어가는 대화를 나눈다.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레시피지만 이상하게도 <수미네 반찬>이 주부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김수미라는 엄마가 하는 요리 속에 그 정서적 공감대가 들어 있어서다. 가끔 재료를 넣으며 너무 많이 넣으면 “죽는다”는 식의 얘기 속에 담겨진 두 가지 정서. 가사노동의 힘겨움이 살짝 감정적으로 얹어진 정서와, 그러면서도 가족들 건사하려는 그 따뜻한 정서가 김수미를 통해 드러날 때 주부들은 그것이 제 마음 같아 속이 다 시원해진다.(사진:tvN)

Posted by 더키앙

<집밥 백선생>, 흔한 식재료의 가치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얘기한대로 사실 이맘때면 처치 곤란한 것이 작년쯤 부모가 담가 보내줘 이제는 시어빠진 묵은지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그냥 먹기도 곤란하지만, 아마도 엄마가 해줬던 음식을 기억하는 이들은 묵은지를 이용한 김치찜이나 찌개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이 좋다는 걸 안다. 문제는 그 맛을 알아도 어떻게 요리해야 되는지 잘 모르고 또 엄두도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혼자 사는 이들에게 묵은지는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이 묵은지를 재료로 들고 나온 건 그래서다. 사실 요리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 묵은지 요리가 새로운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풀풀 냄새를 풍겨가며 익어가는 묵은지가 주는 고충을 마치 너무나 잘 이해한다는 듯 들고 나온 그 마음이 어떤 면에서는 시청자들을 잡아끄는 진짜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일단 재료 하나만으로도 나를 생각해주는 백종원의 그 마음을 읽고 나면 거기 만들어지는 요리들에 대한 호감은 더 커진다. 따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건 그래서다.

 

이건 백종원이라는 인물의 진가일 것이다. 그의 요리는 새롭거나 특별한 것이 없다. 오히려 냉장고를 열면 어느 한 구석에 늘 있기 마련인 재료들이 그가 하는 요리의 주인공들이다. 계란을 가지고 만드는 계란 프라이가 과연 요리인가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겠지만 백종원은 그것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요리라는 걸 진지하게 보여준다. 그 흔하디흔한 무 한 덩어리를 갖고 무생채는 물론이고 생선 조림에 가까운 무 조림, 소고기 뭇국에 무밥까지 뚝딱 해낼 수 있다는 걸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굳이 설파하고 있다.

 

사실 재료가 없어서 요리를 못하는 건 아닐 것이다. 냉장고를 열면 누구나 계란 몇 개쯤은 있고 무 한 덩이 정도는 찾을 수 있다. 혼자 산다고 해도 엄마가 김장철이면 바리바리 싸서 보내준 김치 한 덩이쯤은 냉장고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제는 재료를 보는 우리의 눈이다. 늘 화려한 음식과 비싼 재료에만 눈이 가다보니 정작 흔하고 값싼 재료들이 저평가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먹을 게 없다는 불평은 알고 보면 흔한 재료들에 대한 무시에서 비롯될 때가 더 많다.

 

물론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을 통해 알려주는 일상적인 음식에 담겨진 꿀팁이 주는 효용성은 실제 매일 같이 저녁밥을 차려내는 주부들에게는 대단히 유용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백종원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은 단순히 그런 정보적인 유용성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보다는 요리를 통해 전해지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소통이 더 큰 것일 게다.

 

음식은 단지 육체적인 허기를 달래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음식의 힘은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주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이른바 엔도르핀 디시(endorphin dish)’라는 신조어가 나오고, 요리에 셀프 힐링이라는 트렌드가 발견되는 건 그래서다. 고향을 떠나와 혼자 사는 세대들이 점점 늘면서 어쨌든 해먹어야 하는 한 끼의 밥은 그래서 육체적 허기보다는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는 의미가 더 커졌다.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이 엄마가 해주는 밥상의 부재를 상당 부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해내는 모습을 보인다. 어디 엄마들이 무슨 대단한 식재료로 맛을 냈던가. 그저 손에 잡히는 흔한 재료만을 갖고 어떻게 하면 맛있게 음식을 낼 수 있을까를 고심했던 것이 엄마의 밥상이 아니었던가. 흔한 식재료들에 굳이 가치를 부여하는 백종원의 음식에서는 그래서 그 서민적인 느낌과 더불어 소외된 삶들이 가진 허기를 채워주는 훈훈함이 묻어난다.

 

시어서 이제는 그냥 먹기 불편한 묵은지에는 그러나 그걸 바리바리 싸주던 엄마의 정성이 고스란히 곰삭아 있다. 그래서 물에 슬슬 닦아서 어떤 요리에나 척척 넣어줘도 맛이 날 수밖에 없다. 백종원이 <집밥 백선생>을 통해 계속 재발견시키고 가치를 새롭게 부여하는 흔한 재료들도 그걸 키워낸 누군가의 정성이 들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라났다. 비록 지금은 냉장고 속 구석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 부려진 채로 놓여져 있을 지라도 언젠가 안목 있는 이들의 손에 멋진 음식으로 만들어질 재료들처럼. 마치 묵은지가 그러하듯이.



Posted by 더키앙

<진짜사나이> 전미라, 무엇보다 강한 모성애의 힘

 

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진짜사나이> 여군특집3 부사관 후보생 면접에서 전미라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결혼 전에는 테니스 선수 전미라로 살았는데 방송하는 신랑을 만나서 아이를 낳고 살다보니 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어서 한동안 힘든 시기가 있었다는 것. “남편은 도와줄 수 없는 바쁜 상황이었기 때문에 혼자서 이겨내야 했다고 말하며 그녀는 눈물을 삼켰다.

 


'진짜사나이(사진출처:MBC)'

혹자는 전미라의 이런 이야기를 두고 배부른 소리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이야기가 한 줄의 기사로 나갔을 때 비난의 목소리들이 생겨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 존재감의 문제는 잘 살고 못 살고와 상관없이 생겨난다. 제 아무리 잘 살아도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한다면 마치 자신이 유령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이를 여럿 둔 엄마들이 흔히 우울감을 호소하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일까. 전미라가 자청한 <진짜사나이>의 여군 체험은 남다른 진지함이 들어 있었다. 그녀에게서는 마치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라는 지칭으로서가 아니라 전미라라는 자신을 직시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의지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는 타인이 갖지 못한 그녀만의 능력이 있다는 게 조금씩 드러났다. 그것은 그녀가 힘겨워했던 그 엄마로서의 삶이 그녀에게 부여한 능력이었다. 모성애라는 힘.

 

운동화에 신발 끈 묶는 거야 테니스 선수로 하며 늘 했던 그 경험치가 발현된 것이었을 게다. 하지만 그렇게 자기 신발 끈을 다 묶어 놓고 다른 동료들의 신발 끈을 묶어주는 건 마치 모성애가 부여한 타인에 대한 배려심에서 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름표 두 개를 10분 만에 달라는 지시에 모두가 쩔쩔 매고 있을 때, 홀로 척척 바느질을 해내고는 동료들을 도와주는 모습도 그렇다.

 

언어 자체가 소통이 되지 않아 도저히 버티기 힘들 것 같다며 퇴소를 생각하는 제시에게 다가가 용기를 북돋워주고 하나하나 챙겨주는 모습은 그래서 마치 엄마가 힘겨워하는 딸을 다독이는 모습처럼 보였다. 그녀는 지금 포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그 선택을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게 될 거라고 다독였고, 금세라도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제시에게 안 울면 갈 수 있다. 눈물 흘리면 약해지는 것 같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동료들 챙기기에 바쁜 전미라에게 제작진이 마더 미라사라는 별칭을 붙여준 건 그래서 마음 한 구석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에 자신이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지만, 부지불식간에 그 엄마로서 아내로서 살아오며 몸에 밴 타인에 대한 배려를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포기한 화생방 훈련에서 홀로 끝까지 참아내는 끈기와 인내 역시 그녀의 그간의 삶들이 헛된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했다.

 

사실 많은 주부들이 전미라 같은 허탈함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무가치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 의해 자기 자신만의 삶이 없다고 느껴지는 게 허탈한 것이다. 하지만 전미라의 경우처럼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삶이 자기 자신의 삶을 더욱 성숙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떨까. <진짜사나이>가 보여준 전미라의 군대 체험은 그래서 주부들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군대에서조차 발휘되는 모성애라니.



Posted by 더키앙

싼 재료로 그럴싸하게... <집밥 백선생>이 바꿔놓은 것들

 

콩나물 100원 어치 주세요.” 30년 전만 해도 이렇게 어머니가 사온 100원 어치 콩나물로 반은 콩나물국 끓이고 반은 무쳐서 반찬을 내놓으면 그만한 밥상이 없었다.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콩나물은 싸다. 천 원 어치만 사도 한 끼 음식으로 충분한 양이다. 5천 원이면 한 박스를 살 수 있다. 흔하고 싼 식재료라서 그런지 먹을 것 없는 가난한 밥상에 구색정도로 치부되기 일쑤인 게 콩나물이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그런데 그 콩나물이 달리 보인다.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덕분이다. 백종원은 콩나물을 갖고 할 수 있는 남다른 음식들을 선보였다. 어린 시절 별식 중에 별식이었던 콩나물 밥, 술안주로도 좋고 해장으로도 좋은 얼큰 콩나물 찌개, 이게 콩나물로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그럴싸한 닭갈비 소스를 이용한 콩나물 불고기... 값싼 재료라 늘 밥상 위에 올라와도 주연급(?)이 되지는 못했던 콩나물이 주인공으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값 비싼 재료로 고급 요리를 만든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건 그만한 여유가 있어야 하고, 그런 고급 요리를 만들 수 있을만한 환경 또한 필요하다. 그러니 그런 요리를 방송으로 본다고 해서 일반 서민들에게 그만한 감흥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콩나물 같은 흔하디흔한 재료를 그럴싸하게 보이는 고급진(?) 음식으로 내보일 수 있는 꿀팁이라면 다르다. 가뜩이나 장바구니 물가가 들썩이는 요즘, 몇 천 원 어치 콩나물로 일과 술에 지친 남편의 해장국을 끓여주고, 아이 입맛에 딱 맞는 콩나물 불고기를 해줄 수 있다면 주부들로서는 반색할 일이 아닌가.

 

백종원의 음식은 딱 콩나물을 닮았다. 그리 특별하다거나 각별하지 않다. 그래서 굳이 요리라는 표현을 쓰기에도 애매하다. 백종원 스스로도 요리가 아닌 음식이라고 말하고, 자신을 요리사가 아니라 사업가라 얘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는 <집밥 백선생>에서 자신이 내보이는 음식이 전문 셰프들에게는 너무나 소소한 것이라는 걸 자인하곤 했다.

 

심지어 그는 음식을 선보이다가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콩나물밥을 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물을 맞추는 일인데, 미리 콩나물을 끓여 그 물로 밥을 한 후 거기에 끓인 콩나물을 얹는다는 건 발상의 전환이다. 그런데 끓인 물을 식히지 않고 밥을 하다 보니 밥이 질어진 것. 백종원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이 신도 아닌데 실수할 수 있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걸 보며 아마도 백전노장의 주부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천 원어치 콩나물, 콩나물 밥 같은 흔한 음식, 그리고 때로는 예상외의 실수까지. 이것은 아마도 보통의 주부들이 늘 부엌에서 보이는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그러니 백종원을 특별한 요리사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는 그냥 주부들이 매일 같이 하는 그 한 끼 식사를 좀 더 간단하지만 그럴싸하게 만들어내는 법을 그저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백종원 덕분에 이제 콩나물도 달리 보이게 생겼다. 어딘지 밥상 한 구석에서 구색으로 치부되며 억울해했을 콩나물을 밥상 중간으로 떡 하니 세워놓는 일. 늘 주방에서 음식을 해 내놓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 흔적도 별로 안 남는 일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폄하되던 주부들의 식사 준비가 사실 매일 벌어지는 가족사의 중심이라는 걸 되새겨주는 일. 무엇보다 먹을 게 없어 콩나물국만 주야장천 끓여내며 자조해온 가난한 주부들에게 그 콩나물국이 얼마나 좋은 음식이냐고 알려주는 일. 그것만으로도 <집밥 백선생>에게 충분히 고마울 일이 아닐까



Posted by 더키앙

‘엄마가 뿔났다’, 역전된 가족 드라마를 보여주다

가족 드라마의 전형적인 구조 하나. 서로 다른 계층의 두 가족이 자식들 결혼 때문에 얽히고 설킨다. 서로 다른 생활습관과 빈부격차로 맘에 안 들지만 자식들이 사랑한다니 어쩌겠나.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승낙해주고 사돈지간이 되면서 서로 부딪치게 되지만 결과적으로는 양가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엄마가 뿔났다’가 초반부에 보여준 구조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한자(김혜자)의 자식들은 하나 같이 엄마의 바람을 무너뜨리고 어울리지 않는 상대방과 결혼한다. 첫째 딸은 애까지 딸린 이혼남과 결혼하고, 둘째 딸은 격차가 너무 많이 나는 상류층 자제와 결혼하며, 장남은 어느 날 불쑥 임신해 들어온 연상의 여자와 등 떠밀리듯 결혼한다.

이 정도면 제목에 걸맞게 엄마가 뿔이 날만도 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자식들 때문에 뿔이 나는 그 엄마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어쩌면 그 뿔난 엄마의 다음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뒤늦게 차려준 생일상을 받아놓고 김한자는 시아버지에게 폭탄선언을 한다. “아버지 저 집에서 나가고 싶어요.”

사실 이 폭탄선언이 있기 한참 전부터 이 드라마가 가족드라마의 새로운 방향을 보여줄 것이라는 전조가 있기는 했다. 그것은 김한자의 시아버지 나충복(이순재)의 로맨스 그레이가 시작되면서부터다. 팔순의 나이에 사랑에 빠진 나충복은 안 여사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도 심장병에 걸린 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식 때문에 부모가 힘겨워하고 결국에는 희생하고 마는 전형적인 가족드라마의 구조 속에서 이 드라마는 그 상황을 뒤집어놓는다. “나이 들어 주책”이라 스스로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자신의 변화에 놀랍고 행복해하는 나충복과, 좀 과하다 싶은 ‘1년 간의 휴가’를 얻어내고 새로 얻은 원룸으로 가는 길에 “너무 좋아!”하고 소리치는 이 부모들 앞에서 이제는 거꾸로 자식들이 머리가 아파진다.

그렇다고 굳이 집까지 나갈 건 뭐가 있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김한자의 이 선택은 사실 이 땅에 사는 모든 주부들의 로망이 아닐까. 진짜 주부들의 로망은 불륜 같은 탈선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자기 삶을 찾는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혹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정작 자신의 이름, 김한자와 나충복이라는 이름은 점점 잊혀져왔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들은 인생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엄마가 뿔났다’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드라마 속에서라도 한 평생을 이름 없이 살아온 주부들의 자기 이름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 앞에 희생하던 기존의 가족드라마를 뒤집어 이제는 부모의 자기 삶 찾기에 자식들이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 드라마는 강변하고 있는 듯 하다. “나이 들어 주책이라고? 우리에게도 인생은 있어!”라고.


Posted by 더키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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