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토록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걸까

 

진실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걸까. SBS <비밀의 문>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역사를 가져와 다루는 것이 하필이면 진실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역사라는 것이 본래 그렇지만, 사극은 그 가져온 과거가 그저 옛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에 어떤 의미를 가질 때에만 그 힘을 발휘한다. 즉 지금의 어떤 갈증이 역사적 사건을 끌어와 되새겨지는 것이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비밀의 문>맹의라는 영조(한석규)와 노론의 결탁을 증거 하는 비밀을 다룬다. 사도세자(이제훈)와 소론은 그 비밀의 문을 열려고 하고 영조와 노론은 그 문을 애써 닫으려한다.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사도세자는 그 애꿎은 백성의 죽음과 누명을 그저 지나치지 않으려 한다. 한 백성의 목숨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이 한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마땅한 일이라는 것.

 

이 말은 최근의 세월호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한쪽에서는 그렇게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덮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비밀의 문>이 이러한 정국을 의도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별한 울림을 만드는 건 지금의 정국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제보자> 역시 진실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황우석 사건을 그대로 영화화한 이 작품은 모든 국민이 믿고 싶었던 이야기가 사실은 거짓이라는 걸 밝혀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집단적인 광기의 양상마저 보이는 맹신의 늪에서 진실 하나만을 쥐고 버텨내는 이들의 모습은 너무나 가녀리게 느껴진다. 자신이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경력을 걸거나, 아니면 가진 걸 모두 버려서야 겨우 그 진실 하나를 지켜낼 수 있다는 이야기는 뭉클하면서도 씁쓸함을 남긴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진실의 무게를 다루는 작품들이 나왔고, 또 그 작품들이 모두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혹은 재해석되었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의 대중정서는 어쩌면 진실에 목말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숨겨진 비밀의 문을 열고자 하는 열망 혹은 진실을 밝히는 제보자를 지켜내고픈 마음에 시선이 가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게다.

 

게다가 작품을 통한 재구성재해석에는 현실이 이뤄내지 못하는 것을 허구 속에서나마 실현해내려는 욕망 또한 들어가 있다. <비밀의 문>은 도발적이기는 하지만 지금껏 역사와 사극이 다루던 방식을 벗어나 사도세자의 입장에서 새롭게 진실의 문제로 재해석을 시도했다. 역사에 나온 뒤주에 가둬져 죽음을 맞이하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 진실의 문제로 접근하면, 마치 진실을 알게 된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 봉인하는 듯한 뉘앙스로 다가온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끌어와 재해석했다는 점은 그만큼 이 사극이 가진 진실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보자>는 훨씬 더 사실적이다. 거의 이름만 달라졌을 뿐, 황우석 사건을 마치 기록하듯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워낙 이 사건이 언론 등을 통해 가려지고 믿고 싶은 대중들의 열망에 의해 뒤틀려진 사실들이 많은 터라,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 별다른 해석 없이 보여주는 이야기는 그래서 그 자체로 더 큰 진실의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세상이 얼마나 많은 의문들과 의혹들을 있어 이처럼 진실을 갈구하게 된 것일까. 신문을 펴면 하루에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사건 사고들이 제대로 대중들에게 의혹 없는 진실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그런 갈증들은 <비밀의 문>이나 <제보자> 같은 허구 속에서 꿈틀댄다. 진실을 밝히려 애쓰는 자들의 그 간절한 마음. 그것이 지금 대중들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갖는 마음일 것이다.

 

<제보자>, 왜 모두가 아는 얘기를 영화로 만들었나

 

사실 <제보자>의 이야기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다. 줄기세포 연구로 난치병 질환을 가진 이들의 희망이 되어버린 이장환 박사(이경영),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조작되었음을 제보하는 그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온 심민호 팀장(유연석), 그리고 그 제보를 받아 진실을 파헤치는 <PD추적>의 윤민철 PD(박해일).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이름만 바꿔 놓았을 뿐,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황우석 사건을 다루고 있다.

 

사진출처: 영화 <제보자>

영화는 일찌감치 윤민철 PD의 입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진실이 우선이냐 국익이 우선이냐. 그러자 돌아오는 답변이 기막히다. “진실이 국익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 말 한 마디로 윤민철 PD는 온 나라가 열광하는 이장환 박사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정계는 물론이고 언론까지 쥐락펴락하고 무엇보다 마치 세상을 구원하는 구세주처럼 혹세무민하는 이장환 박사에 의해 오히려 진실을 파헤치려는 이들은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로 치부된다.

 

이 영화는 너무나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미리 이야기를 설명해도 전혀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극화된 부분들이 있지만 결국 이장환 박사의 실체가 드러나고 진실이 승리하는 그 결과는 다르지 않다. 그러니 궁금해지는 대목이 있다. 이렇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왜 굳이 다시 영화로 만들었을까.

 

<제보자>가 보여주려는 건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진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적하는 이들의 심지어 숭고하기까지 한 그 모습이다. 마지막에 결국 방송이 나가지 못할 위기에 처하자 윤민철 PD의 상사인 이성호 팀장(박원상)우리 구속되자고까지 말한다. 인터넷에 방송을 내버리고 구속됨으로써 세상에 진실이라도 알리자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숭고한 행위로 그려지지만 거꾸로 보면 진실 하나를 밝히는 것도 구속까지 감수해야 하는 이 나라에 대한 개탄이기도 하다.

 

영화는 애국주의와 경제지상주의가 만났을 때 과학마저 사이비 종교처럼 광신의 늪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거짓 희망이 불꽃처럼 일어나고 그것이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 앞에서 광기로 돌변하는 모습을 보는 건 답답하고 씁쓸한 일이다. 관객들은 그 광기의 과정들을 보며 답답해한다. 그러면서 사리사욕을 위해 인간의 생명을 갖고 장난질을 한 이장환 박사의 실체가 드러나길 간절히 기대한다.

 

이 개탄스런 현실과 간절한 기대. 이것을 <제보자>는 진실을 밝히는 이들의 편에서 서서 그려내며 관객들에게도 똑같은 감정이입의 경험을 제공한다. 제보자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 그래서 세상이 얼마나 무섭고 그 무서운 세상에서 진실 하나만을 밝혀내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라는 것을 똑같이 경험해보는 것. 아마로 이러한 간접경험은 누군가에게 엄청난 폭력으로 다가올 섣부른 집단적 광기를 최소한 의심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제보자>는 그래도 진실의 손을 들어준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진실보다는 국익운운하는 논리 앞에 쉽게 호도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이것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에 대단히 씁쓸한 마음을 갖게 만든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이 헛된 망상에도 쉽게 흔들릴 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렇게 용기를 내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것이다. <제보자>는 그래서 지금도 어느 구석엔가 현실 때문에 진실을 포기한 채 근근이 버티며 살아가는 이 땅의 무수한 잠재적 제보자들에 대한 위로 같다. 어떤 상황에도 진실은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이 험악한 세상의 가녀린 희망이 있다는 것.

 

<비밀의 문>의 도발, 성역 없는 수사는 불가한가

 

진실이나 정의 따윈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이 문제지.” SBS 드라마 <비밀의 문>에서 서균(권해효)은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다. 딸 서지담(김유정)이 정치적인 희생양이 된 신흥복(서준영)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것에 대한 은근한 지지발언이다.

 

'비밀의 문(사진출처:SBS)'

서균은 당대에는 법으로 금했던 사설 출판으로 춘향전이나 사씨남정기같은 소설을 필사해 파는 이른바 책쾌(오늘날의 서적상)’. 소설을 필사해 판다니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당대의 이 일은 마치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조가 정권을 잡기 위해 노론과 결탁했다는 증거인 맹의를 둘러싸고 벌어진 살인사건. 영조와 노론은 이 진실을 덮기 위해 살인도 불사한다. 반면 사도세자 이선(이제훈)은 억울한 한 백성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서지담은 고민에 빠진다. 진실을 드러내려면 자신들이 하고 있는 세책방의 존재를 드러내는 대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려는 자와 그걸 덮으려는 자.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특검이 세워지지만, 그 이면에는 이를 덮으려는 자들의 갖은 협박과 거짓이 난무한다. 과연 성역 없는 수사는 불가한 것인가.

 

<비밀의 문>이라는 드라마를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로 접근하면 도대체 왜 저렇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지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비밀의 문>은 역사가 기록한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뒤집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영조는 성군이고 사도세자는 광인이었다는 역사의 기록은 드라마에서는 거꾸로 영조가 광기를 보이고 사도세자는 멀쩡하다 못해 정의롭기까지 한 인물로 그려진다. 왜 이런 재해석을 시도했던 것일까.

 

우리는 특검이니 성역 없는 수사진실과 정의니 하는 단어에서 수백 년을 뛰어넘어 지금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을 떠올릴 수 있다. 드라마 속 영조는 정통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왕이다. 노론과의 결탁을 뜻하는 맹의. 그 정통성의 부재는 영조를 불안하게 만들고 심지어 광기까지 드러내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저 드라마 속 하나의 이야기, 그것도 수백 년 전의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맹의는 지금 우리네 정치사에서도 무수히 발견됐던 것들이다.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야합과 거짓이 횡행했고, 그 진실을 파헤치려 했던 이들은 심지어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다. 그러니 이 맹의의 이야기를 그저 수백 년 전의 허구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은 지금 현재도 진행형인 일들이다. 너무나 많은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럴 때마다 그것이 풀리기보다는 무언가에 의해 덮여지고 지워지는 일들이 반복된다. <비밀의 문>이 영조와 사도세자의 역사마저 뒤집는 파격적인 도발을 통해서 하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진실이나 정의 따윈 관심조차 없는 이 험한 세상’.

 

이것은 <비밀의 문>이 건드리는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을 단지 역사왜곡이라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 사극은 그 목적이 과거의 재현에 있지 않고 현재의 환기에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소재로 끌어와 지금 현재 어떤 이야기를 건네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우리 앞에 지금 놓여있는 수많은 비밀의 문. 그것이 가진 진실의 무게를 우리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인가. 또 그 진실은 어떤 희생을 요구하게 될까.

 

심지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을 <비밀의 문>진실이 가진 무게로 해석하고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도발인가. 이를 두고 역사적 사실에만 몰두한다면 달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보는 우를 범하는 일일 것이다. 죽은 자들의 역사보다 중요한 건 산 자들이 만들어갈 역사가 아닌가.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엔젤아이즈>, 세월호 참사를 환기시키는 이유

 

SBS 주말드라마 <엔젤아이즈>의 첫 회 시청률은 6.3%(닐슨)로 미미했다. 하지만 일주일마다 <엔젤아이즈>2%씩 시청률이 급상승했다. 다음주 8.8%를 기록한데 이어 그 다음 주에는 무려 11%를 넘어섰다. 3주만에 두 배 가까이 시청률이 급상승한 것. 도대체 <엔젤아이즈>의 그 무엇이 이런 급부상을 만들어냈을까.

 

'엔젤아이즈(사진출처:SBS)'

처음 시청률이 미미했던 건 이 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SBS 주말드라마 자체에 대한 낮은 기대감이기도 했다. 주중드라마는 SBS가 단연 선두를 이끌고 있지만 주말드라마는 KBSMBC에 밀려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결국 SBS 주말드라마는 대대적인 변화를 모색했다. ‘막장 없는 착한 드라마를 선보이겠다는 것. 그리고 천편일률적인 가족드라마 틀을 과감히 벗어나겠다는 것.

 

<엔젤아이즈>는 주말드라마 답지 않게 본격 멜로에 119 구급대원, 의사가 등장하는 장르물적 성격을 접목했다. 시작부터 보여준 터널 사고 장면은 블록버스터의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의 핵심이 주말드라마로서 시청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멜로에 초점에 맞춰졌다는 점이다. <엔젤아이즈>는 장르물적 성격을 떼어놓고 보면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를 거의 그대로 갖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첫 사랑이 있고, 엇갈린 운명에 의해 헤어지고 12년 후 다시 만나 과거 추억의 장소를 더듬으며 그 때의 사랑을 되새기는 시퀀스들이 그렇다. 결국 남녀는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12년이라는 공백이 만들어낸 두 사람의 다른 상황은 이들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게다가 어린 시절 겪은 사건들 배후에는 이들 부모들의 숨겨진 비밀이 놓여져 있어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겨울연가>의 이야기구조에도 불구하고 <엔젤아이즈>는 여기에 현재의 트렌디한 드라마적 설정들과 새로운 주제의식 등을 덧붙임으로써 훨씬 풍부한 드라마로 만들었다. 거기에는 119 구급대원과 의사라는 직업의 디테일들이 에피소드로 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전문직 장르 드라마적인 세련됨이 있고, 이들 직업들이 그려내는 휴머니즘이 이 드라마를 그저 사적인 멜로에 머물지 않게 한다는 점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동주(이상윤)의 어머니 유정화(김여진)는 이 드라마가 그려내는 가족애 그 이상의 휴머니즘을 대표하는 캐릭터다. 그녀는 사고로 눈이 먼 어린 수완(남지현)을 가족처럼 끌어안고 결국 그녀에게 눈을 주고 저 세상으로 떠난 인물이다. 가족과 멜로를 뛰어넘는 이러한 휴머니즘은 드라마를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회적인 공감으로 이끌어낸다. 한편 수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유정화를 죽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에 동주를 자식처럼 키워내는 수완의 아버지 윤재범(정진영)도 복합적인 인물이다. 사적인 선택과 공적인 죄책감이 뒤섞인.

 

이처럼 <엔젤아이즈>는 평범할 수 있는 사적인 멜로의 틀을 소방관과 의사라는 직업적인 영역을 투영시켜 사회적 멜로로 확장시킨다. 아마도 소방관과 응급실 의사라는 위급상황이 주는 인물들의 절절함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희구하게 된 생명에 대한 포기 없는 노력을 새삼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먼저 간 유정화의 묘소 앞에서 그녀가 주고 간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처음 대면하며 한없이 눈물을 쏟아내는 수완의 모습은 타인이라도 가족처럼 눈물 흘리게 되는 이번 참사의 아픔을 환기시킨다.

 

<엔젤아이즈>라는 드라마 한 편이 이 거대한 비극을 온전히 위로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가 전해주는 타인에 대한 휴머니즘과 확장된 가족애는 이번 비극을 남 일이 아닌 내 일로 여기게 해주기도 한다. 누군가의 고귀한 죽음은 그래서 살아남은 자들의 눈을 뜨게 만들어준다. 그 눈은 이제 죽음의 진실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헛되지 않게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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