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존재가치, 의혹에 대한 정당한 질문

 

사실 뉴스는 요즘 같은 미디어 환경에서는 더 이상 과거 같은 위치를 갖기는 힘들다. 인터넷과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뉴스의 속보성을 거의 가져가는 상황이고, 방송 기자들조차 시민들이 현장에서 모바일로 즉시 찍어 올리는 그 자료들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TV에서 뉴스의 무게감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게 사실이다.

 

'JTBC뉴스룸(사진출처:JTBC)'

하지만 그것은 뉴스 자체가 가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달라지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뉴스 역시 어떤 변화를 추구하지 못했다는 반증에 불과하다. 최근 최순실씨 관련 단독 보도를 연일 쏟아내며 그 어떤 방송 콘텐츠보다 화제의 중심에 오른 JTBC뉴스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시대에 뉴스의 새로운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의 연설문 등이 사전에 유출되어 최순실씨에 의해 수정 보완되었다는 증거가 JTBC가 입수한 최씨의 PC를 통해 확인되면서 그간 여러 매체에서 의혹으로만 불거져왔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결국 보도가 나간 지 하루 만에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어 그 관계를 인정하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 사과문의 내용이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인정하는 수준이고, 그 문건 유출이 연설문 같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자료들인 것처럼 발표된 것에 대해 많은 매체들이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사과문이 발표되고 몇 시간 후 JTBC뉴스는 이 내용들을 뒤집는 또 다른 자료들을 단독 보도했다. 그것은 PC자료를 분석한 결과 유출된 문건의 수준이 남북 간 접촉 기밀은 물론이고 외교, 경제 같은 중대한 사안들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증거들이었다. 사과문은 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JTBC뉴스는 이밖에도 이 PC자료들 속에 최순실씨가 정부 요직 인선에 관여했을 정황들은 물론이고, 보안으로 기자들에게까지 함구했다 나중에 SNS에 사진을 올려 알려진 박 대통령의 저도 휴가 사진의 미공개분까지 들어있어, 국정 운영의 중대사부터 시시콜콜한 사안들까지 최순실씨가 간여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사실 요즘 뉴스는 물론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이른바 땡전뉴스같은 속 보이는 구성을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정반대의 의미로서 국민들이 당연히 의문시하고 그래서 질문을 던질만한 국정운영에 있어서의 사안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 선택적 눈치 보기를 하는 경우는 많아졌다. 결국 뉴스가 세상의 모든 소식들을 전할 수 없는 매체적 위치이기 때문에 결국은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선택과 집중이 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는 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깎아먹는 일이다.

 

최근 JTBC 뉴스는 최순실씨 보도로 말 그대로 시청률 대박을 내고 있다. 244%(닐슨 코리아) 훌쩍 넘긴 시청률은 25일에는 그 두 배인 8%를 넘어섰다. 어떤 이들은 JTBC에서 뉴스가 다른 어떤 프로그램도 달성하기 힘들었던 최고 시청률을 낼 수 있을 거라 예견하곤 한다. 뉴스가 저평가되는 시대에 JTBC 뉴스는 어떻게 한 방송사의 가장 뜨거운 킬러 콘텐츠가 된 것일까.

 

선택과 집중은 어쩔 수 없는 뉴스의 현실이다. 이것저것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담아내겠다는 듯한 태도는 이미 속보성에서 밀리고 있는 뉴스가 취하기에는 너무 무모한 일이고 그건 나아가서 너무 많이 쏟아지는 뉴스들 속에서 중요성에 따라 취사선택해야 하는, 어쩌면 작금의 뉴스가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뉴스가 모든 걸 보도하던 시대는 끝났고 그건 가능한 일도 아니다. 대신 뉴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그 뉴스의 입장과 시점을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시청자들이 저마다의 입장에 걸맞는 뉴스를 선택해 볼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어떤 것을 선택하고 집중할까 하는 건 이제 뉴스의 본질이 되었다. JTBC 뉴스의 선택과 집중에 대해 이처럼 대중적인 지지가 생겨나고 있는 건 그래서 뉴스의 시대는 저문 것이 아니라 변화한 것이란 걸 생각하게 만든다. JTBC 뉴스는 뉴스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만들었다.

<배우학교>, 다큐 찍은 박신양, 예능 하려던 유병재

 

그저 그런 연기 오디션이나 연기를 소재로 한 예능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가졌던 시청자들이라면 tvN <배우학교>의 첫 방송이 사뭇 낯설게 다가왔을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여기 출연한 출연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물론 스스로의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서 프로그램에 합류했다는 건 그만한 용기를 냈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들이 출연하는 이 프로그램이 예능이라는 점은 이만큼의 진지함과 압박감을 요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배우학교(사진출처:tvN)'

첫 회만 두고 얘기하자면 <배우학교>는 예능이라기보다는 다큐에 가까웠다. 박신양은 진심으로 그 학교를 찾아온 출연자들에게 연기를 가르쳐주려 했고 그래서 그 첫 번째 관문으로서 자기소개 시간에 왜 연기를 하려는가에 대한 압박질문을 던졌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러 나온 남태현에게 집요하게 왜 연기를 하려는가를 물었고, 자꾸만 머뭇거리며 회피하려 하는 속 얘기를 결국은 꺼내게 만들었다. 자신의 연기력 논란에 드라마 제작진들부터 연기자들까지 모두가 피해를 입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고 최소한 그런 피해를 입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연기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고 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이토록 압박감과 긴장감을 유발하고 첫 모습을 선보이는 자리에서 눈물까지 흘리는 이 장면은 <배우학교>가 향후 어떤 모습의 프로그램이 될 것인가를 가늠하게 해주었다. 박신양의 어찌 보면 가혹하다싶을 정도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독한 질문들은 일종의 화두였다. 지금껏 어찌어찌해 캐스팅된 연기를 하기는 했었지만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질문들. 연기란 무엇이고 나는 왜 연기를 하려하는가에 대한 연기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던 것이다.

 

유병재는 아마도 자신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해왔던 대로 이 프로그램 역시 배우수업이라는 상황에서의 재미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병재의 이 생각이 깨지는 건 단 몇 분 간의 질문세례면 충분했다. 박신양에게 심지어 자신이 선생님으로서 합격시켰다는 식의 무례한 얘기까지 꺼낸 건 분명 웃음을 주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 말은 웃음이 아닌 무거운 분위기로 돌아왔다. 결국 거듭된 박신양의 질문 속에 압박감을 느낀 유병재는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유병재를 데리고 침대가 놓여져 있는 숙소로 간 박신양은 그를 다독이며 마음을 가라앉히게 해주었고, 그날 밤 그에게 두 번째 주어진 자기소개 시간에는 훨씬 더 차분한 목소리로 왜 연기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할 수 있게 했다. 발표하는 것 자체가 훨씬 편해진 그에게 박신양은 연기 또한 그렇게 몸과 마음이 편안해야 잘 나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결국 박신양이 압박질문을 통해 하게 했던 자기소개 시간은 사실은 여기 참가한 출연자들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했고 또 단단한 껍질을 깨고 그 속살을 드러내는 시간이기도 했다. 연기가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속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이라면 먼저 자신을 제대로 보고 인정할 수 있는 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박신양의 첫 수업은 그래서 연기자라면 가져야 될 가장 기본적인 자세를 끄집어낸 시간들이 될 수 있었다.

 

<배우학교>는 결코 웃기려는 예능이 아니라는 것을 첫 방송은 보여줬다. 예능을 하려던 유병재를 진지한 연기의 세계로 이끄는 박신양의 진심이 느껴졌다. 물론 상황 자체가 웃음을 유발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것이 목적이 되지는 않는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는 웃음보다는 눈물과 땀이 더 느껴질 예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가장 큰 이유다

'육룡'의 질문, 백성이냐 가족이냐

 

백성인가 아니면 가족인가. SBS <육룡이 나르샤>가 이성계(천호진)의 위화도 회군을 통해 던진 질문이다. 회군을 결정하자 최영(전국환) 장군은 이성계의 식솔들을 인질로 잡고 만일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들어올 시 만월대 위에 그들의 목을 내걸 것이라고 위협한다. 5만의 군사들을 구하자니 가족의 생명이 위태롭고, 그렇다고 가족을 구하자니 5만의 군사들이 눈에 밟힌다. 이성계의 선택은 결국 군사들, 아니 영문도 모르고 죽을 전쟁에 차출된 백성들이었다.

 


'육룡이 나르샤(사진출처:SBS)'

백성이냐 가족이냐는 질문은 고스란히 지금 현재로 되돌려진다.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국민들을 위한 선택을 하고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가족적인 당파와 세력을 위한 선택만을 하고 있을까. 물론 정당정치가 그러한 당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는 만들어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래도 정치인들은 당 이전에 국민이 우선이 아닌가. 국민의 어려움과 고통이 어느 정도인가를 생각한다면 과연 지금처럼 그들끼리의 정쟁에만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도 되는 것일까.

 

<육룡이 나르샤>는 지난 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요동정벌이라는 무모한 결정에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며,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위정자에게 과연 그 자격이 있는가를 질문한다. 국가의 명령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백성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라면 과연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홍인방(전노민)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처했을 때 그는 정도전(김명민)에게 인간의 욕망은 결국 권력욕으로 향하게 되어 있어 개혁이 성공할 수 없음을 피력한다. 그는 누구나 가슴 속에 벌레 한 마리씩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인물. 즉 개혁을 부르짖던 인물도 권좌에 오르게 되면 권력욕에 휘둘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시스템에 대한 질문이다. 개혁에 있어서 사람은 바뀌어도 권력 시스템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정도전은 홍인방에게 자신이 하려는 것이 개혁이 아니라 나라를 바꾸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논리를 무너뜨린다. 즉 고려를 되살리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이야기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그는 왕이 바뀌어도 신하들이 서로 견제하여 권력이 쏠리는 것을 막는 시스템을 고안해낸다.

 

<육룡이 나르샤>를 보다 보면 마치 <100분토론>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것은 이 사극이 선과 악의 대결로서 단순히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입장과 생각의 차이에 의해 대결하는 인물들을 그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다. 적이라고 해도 길태미(박혁권)나 홍인방 그리고 이인겸(최종원)이 저마다의 논리를 갖고 있는 건 그래서다. 그래서 그들이 서로 대결할 때 그 모습은 마치 토론을 벌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가능한 건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독특한 대본 작업 방식 때문이다. 이들은 대본 작업에서 각자 캐릭터들이 가진 입장을 정해놓고 실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한석규)과 정기준(윤제문)이 한글 유포를 갖고 나누는 대결이 토론 방식으로 전개됐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육룡이 나르샤>는 그래서 매회 시청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여말 선초에 벌어진 위화도 회군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이지만 그 안에 현재적 질문을 집어넣음으로써 그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물론 그 질문에 답은 어느 정도 나와 있다. 하지만 그 답을 실행하느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일 것이다. 백성인가 가족인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역사든 사극이든 그래서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다면 이렇게 실행하기 어려운 갈등 상황에서 어떤 결정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육룡이 나르샤>의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들이 의미 있는 건 그것이 현재에도 같은 울림의 질문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유혹>,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거래관계일까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거래관계일까. <유혹>에서 3일에 10억을 제안한 세영(최지우)과 그것을 돈 때문에 수락한 석훈(권상우)의 관계는 그저 거래관계였을 뿐일까. 거래관계라면 일한만큼 대가로 돈을 받으면 그걸로 끝일 게다.

 

'유혹(사진출처:SBS)'

하지만 이 파격적인 제안 속에는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이 뒤섞여 있다. 어린 시절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을 보면 곧 무너질 걸 왜 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세영. 그녀는 모래성 같은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 앞에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걸 석훈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런 세영에게 석훈은 되묻는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래성을 쌓고 있을 때 세영은 무얼 하고 있었냐고. 무너질 모래성이 두려워 그저 옆에서 쳐다보고 있지 않았냐고. 무너지더라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석훈에게 세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모래성의 비유는 석훈과 세영의 관계가 단지 거래관계가 아니라는 걸 감지하게 만든다. 거래관계라면 이런 식의 대화는 왜 하는 걸까. 홍콩에서의 거래가 끝나고 국내로 돌아온 세영은 그래서 석훈이 3달러를 주고 산 시간동안 함께 지냈던 잠깐 동안의 추억을 떠올린다. 그 모래성 같은 시간은 지나버렸지만 그 추억은 잔상은 강렬하게 남았다.

 

<유혹>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드라마다. 만일 이 드라마를 전형적인 4각 구도의 불륜 드라마로 본다면 그저 그런 치정 멜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 등장하는 이들이 보여주는 일련의 관계들을 세심하게 바라본다면 자본이 지배한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물질과 얽혀 있는가를 발견하게 된다.

 

아이를 키워달라고 하며 보모 일에 대해 돈을 지불하겠다고 하는 민우(이정진)와 돈이면 다 되느냐는 식의 불편함을 토로하면서도 로이에 대한 동정심에 보모 일을 맡는 홍주(박하선)의 관계는 단순한 보모와 아이 아빠의 관계일까. 사실 보모라는 직업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냉철하게 뜯어보면 모성애와 돈관계가 뒤얽혀있는 직업일 수밖에 없다.

 

홍주와 로이 그리고 민우의 관계는 그래서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고, 또 민우를 쫓아다니며 그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는 흥신소 업자들의 시선으로는 딴 살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가족관계가 아니라 돈 관계가 바탕이 된 보모와 아이, 아이 아빠의 모래성 같은 관계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석훈을 빚더미에 앉게 만들고 자살해 버린 도식은 그에게 선배인가 아니면 사업적인 동업자에 불과한가. 사업을 꿈꿀 때만 해도 그들은 친한 선후배 관계였을 게다. 하지만 사업이 망가지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사업관계가 되어버린다.

 

쇼윈도 부부인 민우와 그의 아내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부부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에 대한 신뢰가 거의 없는 아내는 그러나 민우가 건네는 목걸이에 금세 마음이 풀어진다. 그녀는 솔직하게 말한다. “그쪽(불륜을 저지르고 다니는)으로는 최악이지만 이쪽으로는(목걸이 같은 걸 사주는) 최고의 남편이라고. 그래서 그를 사랑한다고. 그러자 민우가 말한다. “널 놓치지 않으려면 회사부터 더 키워야겠다.

 

사람과 만날 때는 속내를 보이지 말라며 포커페이스를 얘기하는 세영에게 석훈은 아픈 이야기를 꺼낸다. 세영이 포커페이스를 얘기하는 건 지금껏 행복한 적도 불행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아프면 아프다 드러내놔야 인간적인 관계도 가능해지는 법이다. 조기폐경이지만 늘 콧대높고 당당해 보이는 세영의 포커페이스는 그래서 안쓰럽게 여겨진다.

 

이 네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의 실타리를 풀다 보면 거기에 살짝 겹쳐져 있는 인간관계와 돈 관계의 혼재가 드러난다. 그것은 인간관계일까 아니면 거래관계일까. 이것은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다. 불륜이라는 극적 설정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유혹>의 질문은 꽤 진지하다. 모래성 같이 얄팍해진 우리들의 관계. 그것은 과연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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