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드라마대신 쿡방?

 

주중 10시는 지상파들이 구축해 놓은 드라마 시간대다. 지상파에 이 시간대가 갖는 의미는 크다. 3사가 경쟁을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는 암묵적으로 밤 10시 드라마를 보는 시청패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냉장고를 부탁해(사진출처:JTBC)'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공고하게만 여겨졌던 주중 10시 시간대의 드라마 시청 패턴에 조금씩 변화가 생겨나고 있다. 물론 시청률 추산방식의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중 드라마 시청률은 최근 계속 떨어지고 있는 추세이고, 이제 10% 넘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MBC <화정> 같은 사극의 시청률을 보라. 과거 MBC의 월화 사극 시청률이 20% 이상 심지어는 40%를 넘겼던 걸 생각해보면 이제 10% 남짓에 머물러 있는 이 사극의 시청률은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다.

 

흥미로운 건 이 살짝 열려진 틈새로 비지상파들이 대 공세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비지상파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JTBCtvN이 일제히 저녁 940분대를 예능으로 공략하고 있는 건 주목해볼 일이다. JTBC는 이 시간대에 <냉장고를 부탁해>, <백인백곡 끝까지 간다>, <유자식 상팔자>, <님과 함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배치했고, tvN<촉촉한 오빠들>, <집밥 백선생>, <수요미식회>, <한식대첩>, <삼시세기>를 편성했다.

 

940분대를 비지상파가 예능으로 집중 공략하고 있는 건 다분히 10시 지상파의 드라마 시간대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0시 드라마 시청 패턴을 예능으로 바꾸려 시도하고 있는 것. 실제로 이런 공략은 최근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월요일은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확고한 자기 존재감을 만들어내고 있고, 화요일은 tvN <집밥 백선생>이 단 몇 회만에 시청자들의 열광을 얻어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최근 쿡방 열풍이 이 비지상파의 940분대 예능을 강타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화로 이어지는 쿡방에 이어, 수요일은 <수요미식회>가 있고 목요일은 <한식대첩> 그리고 금요일은 믿고 보는 나영석표 쿡방 <삼시세끼>가 있다.

 

이러한 쿡방 라인업은 그 자체로도 이 시간대의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왠지 그 시간이 되면 쿡방을 하나 정도 봐야할 것 같은 욕망을 부추기는 것. 물론 이 트렌드는 언제든 바뀔 수 있고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트렌드로 채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파괴력이 있다.

 

예능이 점점 방송 콘텐츠에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는 점도 이런 비지상파의 940분대 예능 공략에 힘을 얹는 일이다. 과거에는 드라마가 그 방송국의 위상과 연결되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그 방송국의 이미지가 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이를테면 tvN은 나영석 PD의 예능이 그 방송국 이미지를 한층 끌어올려주고 있다.

 

과연 이러한 비지상파의 선전포고는 실제로 주중 지상파 드라마 시청패턴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아직까지 확연히 두드러진 변화는 보이지 않지만, 지상파 드라마 시청률이 점점 떨어지는 반면, 비지상파 예능은 조금씩 반등하는 그 흐름이 많은 걸 얘기해주고 있다고 보인다. 여러분들은 어떤가. 여전히 드라마인가. 아니면 예능인가.

 

<집밥 백선생>의 고급진 방송 레시피

 

19971인 토크쇼들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던 그 시기에 <이홍렬쇼>에서는 참참참이란 코너로 토크와 요리를 접목한 독특한 콘셉트를 선보였다. 하지만 이 맛좋은 야참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참참참에서 요리는 하나의 양념일 뿐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게스트. 그래서 방송이 끝나고 나면 어떤 요리를 만들었는가보다 그 요리를 누가 만들었느냐가 더 주목되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새로운 요리와 토크가 어우러진 스튜디오 프로그램에 푹 빠져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tvN <집밥 백선생>, <오늘 뭐 먹지> 같은 이른바 쿡방 프로그램들이 그것이다. 이들 프로그램들은 그러나 게스트보다는 그 날의 요리에 대한 집중이 두드러진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면 게스트의 이야기만큼 요리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모두 주방을 그대로 스튜디오화한 이 프로그램들은 음식을 만드는 과정 그 자체가 재밋거리다.

 

이 쿡방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백종원이다. 과거 소유진 남편으로 불리던 그는 이제 그 꼬리표를 떼어내고 셰프이자 천재 방송인으로 자기 자신을 다시 세웠다. 이제 백종원 아내가 소유진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 이 역전된 상황은 작금의 대중문화 트렌드를 정확히 보여준다. 과거의 토크쇼라고 하면 연예인이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백종원 같은 비연예인이 중심이다. 물론 웬만한 연예인보다 훨씬 재미있는 입담과 캐릭터는 기본이다.

 

물론 백종원에게서 연예인들에게 흔히 바라는 신비주의 따위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그런 건 대중들도 원하지 않는 바다. 대신 백종원의 아우라를 만들어주는 건 요리라는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치다. 그는 <집밥 백선생>에서 돼지고기를 통으로 스튜디오에 가져와 부위별로 정형하며 그 맛의 차이를 설명해준다. 그런 지식은 거기 출연하고 있는 연예인들에게는 비전문분야. 여기서도 상황은 역전된다. 프로그램의 포인트가 요리에 맞춰지자 요리사가 주인공이 되고 연예인들은 서브가 되는 것.

 

그런데 이 백종원을 보면 그가 쿡방 시대의 스타가 된 이유가 단지 요리 꿀팁을 알려주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꿀팁이야 인터넷을 열면 어디서든 찾을 수 있고 심지어 과거 요리 프로그램들을 보면 늘 나오던 것들이었다. 그러니 백종원에게는 대중들을 매료시키는 특별한 방송 레시피가 있을 법하다. 그건 다름 아닌 일반인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들어주고 반응하는 모습이다.

 

그는 스튜디오에 들어서면서 공식적인 인사 따위를 하지 않는다. 대신 밥은 드셨나요?”하고 특유의 구성진 목소리로 출연자들에게 묻는다. 이러한 일상적인 어법에 때로는 새침하게 삐치기도 하고 때로는 아이처럼 우쭐해하기도 하며 때로는 상대방의 얼토 당토한 지적에도 반발하기보다는 선선히 사과하고 맞춰주는 모습을 보이니 대중들로서는 이 인물이 전문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친숙해진다.

 

게다가 백종원이 하는 요리 레시피는 너무나 간단하고 쉽다. 사실 요리를 전문분야라 치부했던 건 그것이 무언가 대단한 기술을 요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종원은 대단한 요리보다는 일상적인 요리들 이를 테면 김치전이나 김치찌개를 만들고, 고기를 굽거나 파무침, 양념장을 만드는 것들을 좀 더 잘 할 수 있는 요령을 알려준다. 이것은 그가 서 있는 독특한 위치다. 그는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는 요리의 대중화를 꿈꾸는 사람 같다.

 

물론 <한식대첩>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심사위원으로서의 권위를 보이지만 그건 그의 일면일 뿐이다. <집밥 백선생>에서 그는 고기를 굽기 전에 신문지 깔아야쥬.” 하고 말할 정도로 일상적인 인물이다. 그는 최근 달라진 스튜디오 예능의 트렌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른바 대중의 시대에 전문가(방송인을 모두 포함해)들이 어떤 위치에 서야하는가를 그는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것만 같다.

 

연예인과 일반인,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그래서 지금 달라진 예능 트렌드 속에서 그 중심 축이 바뀌어가고 있다. 전문분야가 권위로 서는 시대는 지나갔다. 이제 그 전문분야는 대중들과 소통하지 않으면 공룡처럼 사멸해버릴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그러니 백종원의 특별함이 만들어지는 건 그 요리의 세계가 밑바탕에 깔려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 대중친화적인 그의 캐릭터가 있기 때문이다.

 

백선생을 보면 지금의 방송 트렌드가 보인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푸근한 인상. 백종원은 셰프라는 지칭보다는 친근한 아저씨의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일까. 별명도 참 많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백주부로 등장한 그는 설탕을 자주 쓰는 모습이 등장하면서 슈가보이라는 별칭이 붙었고, 카메라를 고정시키기 위해 고추를 사용하면서 칠리보이라는 애칭이 생겼으며, 네티즌들의 실시간 댓글과 지적에 대해 일일이 반응하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 애플보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집밥 백선생(사진출처:tvN)'

tvN <집밥 백선생>은 백종원의 이 캐릭터에 백선생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덧붙였다. 물론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도 네티즌들에게 요리 꿀팁을 알려주는 요리 선생의 면모를 과시했지만, <집밥 백선생>은 아예 형식 자체가 요리 수업이다. 그런데 이 요리 수업, 어딘지 우리가 방송에서 많이 봐왔던 요리 프로그램들과는 사뭇 다르다.

 

선생이라 불리니 제자가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제자들은 영 요리하고는 담을 쌓고 살아가는 이들이다. 요리보다는 사먹는 일이 더 많다는 윤상이나 요리를 해본 일이 거의 없는 김구라, 그리고 <삼시세끼>에서 차승원이 요리하는 걸 귀동냥으로 들은 게 거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는 손호준과 어쩐지 요리 좀 할 것 같은 인상이지만 사실은 허당인 박정철이 그들. 이런 그들이니 이들의 요리는 요리가 아니라 하나의 모험이다.

 

하지만 이런 요리 무식자들은 시청자들로서는 더 쉽게 프로그램에 몰입되는 이유가 된다. 아무 것도 모르니 사소한 것들도 하나의 꿀팁이 되는 출연자들의 입장이나 시청자들의 입장이나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종원은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이다. 무언가를 가르쳐주고는 있지만 가르친다는 느낌은 별로 없어 보이는 그런 인물. 김구라가 요즘 방송의 포인트가 바로 이 전문가 같지 않은 전문가라고 얘기한 건 그저 농담이 아니다.

 

<집밥 백선생>은 이처럼 화려하고 특별한 요리를 선보이려 하지도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는 입장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일상적으로 해먹는 요리들, 이를테면 김치전이나 김치찌개 같은 것들을 특별한 요리로 만들어내는 마법을 선보인다. 이상하게도 이 프로그램을 보고나면 우리가 별거 아닌 것처럼 봐왔던 김치찌개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굉장히 맛있는 음식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그 지점에서 이 프로그램의 진짜 힘이 나온다.

 

이렇게 보면 <집밥 백선생>이라는 제목에는 지금 현재의 방송 트렌드가 모두 들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요리를 다루면서 이 프로그램이 하려는 건 특별한 일품요리라기보다는 집밥같은 일상의 요리를 소재로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최근 방송이 점점 더 일상 소재 속으로 들어오는 트렌드를 반영한다.

 

게다가 이런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 가르치는 느낌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요즘 방송의 또 하나의 트렌드다. 시사 문제를 예능의 틀 안에서 풀어내는 <썰전>이나, 글로벌한 문화의 시각을 웃음으로 풀어내는 <비정상회담> 같은 프로그램들이 그렇다. 최근 쿡방과 함께 셰프들이 주목받게 된 건 그들이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즐거움을 주려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이 트렌드에 최적의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다. 자기만의 전문 분야인 요리에 정통한데다, 일상에서 써먹을 수 있는 꿀팁들도 화수분처럼 갖고 있다. 게다가 이를 전해주는 소통 방식도 우리끼리 사기지만..”이란 표현처럼 너무나 은근하고 친근하다. 이러니 백선생 백선생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지금 현재의 방송 트렌드에 최적인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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