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승원이 친부를 명예훼손? 연민정이 웃을 일

 

차승원의 아들 차노아의 친부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낸 소송은 마치 한편의 막장드라마 같다. 친부가 22년 동안 얼굴 한 번 내밀지 않다가 갑자기 나타나 11백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를 한다는 상황 자체가 그렇다. 그것은 마치 MBC <왔다 장보리>에서 연민정(이유리)이 자신의 딸의 출생의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상대방을 협박하는 모습을 빼닮았다.

 

'사진출처:MBN"

그런데 친부가 손해배상 청구를 한 이유가 상식적이지 않다. “차승원이 차노아의 친부가 아님에도 방송 등에 출연해 마치 친부인 것처럼 말해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 “이씨가 저술한 책에서도 연애, 혼인, 자녀 출산 등에 대해 허위사실을 적시, 유포해 심대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고 그는 밝혔다.

 

하지만 이런 논리라면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친자가 아니라고 해서 넌 내 진짜 아들이 아니다라고 공표하고 다녀야 한다는 얘긴가. “친부가 아님에도 방송 등에 출연해 마치 친부인 것처럼 말한일은 자식을 생각하는 실제 친부의 입장이라면 소송을 할 일이 아니라,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도대체 무엇이 명예를 훼손하고 정신적 고통을 준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여기에 11백만 원이라고 구체적인 손해배상 청구금액을 적시한 것은 상식 이하의 일이다. 결국 출생의 비밀을 돈으로 환산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손해배상만 중요하고 그 폭로가 자식에게 남길 상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사실 친부가 자신의 아들을 찾겠다고 나선 것이라면 이렇게 언론에 공표되는 방식을 선택했다는 게 납득되기가 어렵다. 즉 이런 경우라면 무엇보다 자식의 입장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런 사안은 좀 더 조용조용히 처리되어야 하는 것이 부모 된 사람이 취해야할 일이다. 즉 여기에는 차승원이라는 유명인의 이미지를 훼손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차승원의 이미지를 훼손시켰는지는 의문이다. 차승원은 이 기사에 관련해 노아를 마음으로 낳은 자신의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한 이번 기사로 인해 가족들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 매우 마음 아파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끝까지 가족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보다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생물학적인 아버지. 그것이 진짜 아버지로서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출생의 비밀이 난무하는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미 한참 지난 과거의 시대착오적 사고방식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엄마를 찾아내는 솔로몬의 선택은 이 시대에는 새로운 의미로 읽힌다. 그저 생물학적인 아버지라고 해서 아버지가 아니라, 진정으로 자식을 아끼는 아버지여야 아버지라는 것. 그런 의미에서 차승원은 차노아의 아버지가 맞다. 친부든 아니든.

 

신데렐라 없어도 더 쫄깃한 '응답1994'의 멜로

 

멜로는 신데렐라가 있어야 된다? 적어도 <응답하라 1994>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상속자들> 같은 드라마가 초거대 재벌가들 사이에 들어간 신데렐라 이야기로 너무 뻔하다는 비판을 받는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신데렐라 없고 심지어 촌스럽게까지 보이는 멜로만으로도 오히려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응답하라1994(사진출처:tvN)'

과거 <시크릿 가든>의 현빈과 하지원이 그랬고, <최고의 사랑>의 차승원과 공효진이 그랬듯이 잘된 멜로의 연기자들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 <응답하라 1994>의 멜로는 정우라는 배우에 대한 신드롬을 만들고 있고 또한 늘 연기력 논란에 시달리던 고아라까지 매력적인 연기자로 재탄생시켰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이처럼 촌스런 멜로의 주인공들이 이토록 주목받게 된 것은.

 

<응답하라 1994>는 <응답하라 1997>이 그랬듯이 현재의 여주인공이 과거 1994년의 어떤 인물과 결혼을 했는가를 찾는 다소 단순한 멜로를 그린다. 그런데 이 단순해 보이는 멜로가 의외로 힘을 발휘한다. 누가 누구와 만났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로 인해 어떻게 관계가 발전됐는가 하는 점은 마치 첫사랑의 추억담처럼 우리를 아련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친오빠처럼 다가와 점점 가슴 뛰게 만드는 오빠로 느껴지게 되는 쓰레기 정우나, 그저 하숙집을 들락거리다 점점 가까워지게 되는 칠봉이 유연석은 그 설정 자체가 신데렐라 멜로와는 다른 <응답하라 1994>의 특별한 멜로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들은 연세대라는 괜찮은 학벌의 소유자에다 직업적으로도 향후 의사가 될 의대생이거나 프로야구의 에이스가 될 야구선수다.

 

이것은 나정이(고아라)네 하숙집에 들어와 그녀와 장차 결혼할 지도 모를 다른 후보군들도 마찬가지다. 해태(손호준)는 순천시 버스회사의 막내아들이고, 빙그래(바로)의 부모는 충북 최대 규모의 양계장을 운영하며, 삼천포(김성균)는 한번 나가면 기름 값 1500은 드는 배를 가진 집의 아들이다. 물론 이들은 초재벌도 아니고, 드라마는 오히려 이 ‘잘사는 촌놈들’이라는 설정을 신데렐라 이야기로 활용하려 들지도 않는다. 유머 코드라면 모를까.

 

이들 촌놈들이 상경해 벌이는 멜로는 특별할 것 없는 당대 대학생들의 그것이다. MT를 가고 미팅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팬클럽 활동을 하며 하숙방에서 술내기 게임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그들이 보여주는 멜로란 오지 않는 삐삐를 밤새워 기다리거나 게임을 빙자해 뽀뽀를 하거나 혹은 아플 때 꼭 껴안아주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에 등장하는 그 흔한 결혼 반대하는 부모들도 보이지 않고 백화점을 통째로 쇼핑하듯 과시하는 남자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답하라 1994>의 멜로가 그 어떤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쫄깃하게 다가오는 것은 그 멜로 속에 존재하는 평등한 시선과 특유의 공감대 덕분이다. 이 드라마에는 1994년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어딘지 촌스럽고 능숙하지 못한 인물들의 행동들이 오히려 멜로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나정이를 좋아하면서도 표현은 친오빠처럼 무뚝뚝하게 던지는 쓰레기가 그렇고, 또 약간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애써 속내를 감추려는 칠봉이가 그렇다. 해태와 조윤진(도희)의 관계를 보라. 그들은 대부분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 가까워진다.

 

<응답하라 1994>가 신데렐라 이야기 없이도 더 아련한 멜로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은 1994년이라는 과거의 한 지점이 가진 힘 때문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 그것도 첫 사랑의 추억이 있는 그 청순의 한 기억이란 현실적인 것과 일정부분 거리가 만들어지게 마련이다. 첫 사랑의 설렘에 집안 형편이나 학벌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것은 또한 어쩌면 1994년만 해도 지금처럼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이기도 할 것이다. 초재벌이 남자 주인공으로 나와 거의 하녀처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을 보호해주는 이야기는 그것이 판타지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치졸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돈이 많으면 많았지 그것이 사랑도 넘을 수 없는 계급이 되는 현실, 얼마나 치졸하고 치사한가.

 

그래서 이러한 양극화로 인한 수직적인 계급구조가 잘 보이지 않는 나정이네 하숙집에서 벌어지는 수평적이고 평등한 멜로는 이 시대에는 오히려 더 큰 판타지로 다가온다. 돈이나 현실이나 집안이나 학벌과 상관없이 누군가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설레며 하는 사랑.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사랑은 그러나 심지어 치사한 신데렐라 스토리에마저 빠져들게 만드는 요즘 같은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랑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요즘 청춘들은 학비 마련하랴 취업 준비하랴 누군가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응답하라 1994>가 보여주는 이 너무나 편안하고 때로는 낭만적으로 여겨지는 청춘과 사랑이 왜 판타지가 되지 않을까. 이것은 양극화를 더 첨예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멜로의 극성을 만들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보다 <응답하라 1994>의 평범한 멜로가 더 강력한 이유다. 양극화 자체를 지워버린 완전한 평등의 멜로라니. 대단히 매력적이지 않은가.


 '최고의 사랑', 무엇이 독고진에 빠져들게 하나

'최고의 사랑'(사진출처:MBC)

'외과의사 봉달희'의 안중근(이범수),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김명민),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이민호), '파스타'의 최현욱(이선균),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현빈), 그리고 '최고의 사랑'의 독고진(차승원). 이 또 한 명의 까칠한 남자가 여성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 겉보기에는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전형적인 대스타지만, 실제로는 소심하고 심지어 찌질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남자. 도대체 이 남자의 어떤 매력이 대중들을 앓게 만드는 걸까.

먼저 그가 대중스타라는 점이다. '최고의 사랑'은 제목에 과감하게 '최고의'라는 표현을 넣었듯이 이 시대 로맨틱 코미디에서 최고의 판타지를 제공하는 캐릭터를 세워둔다. 즉 이제 대중들을 열광시키는 최고의 로맨틱 캐릭터는 경제적 부를 거머쥔 사장님이나 사회적 지위를 가진 특정 직업군이 아니라, 대중문화 시대의 영웅인 대중스타라는 얘기다. 독고진은 그 정점에 서있는 인물이다. 따라서 한물 간 스타로 등장하는 구애정(공효진)과의 로맨스는 연예계판 신데렐라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독특한 것은 이 독고진이라는 캐릭터의 이상행동(?)이다. 그는 구애정 앞에 서면 두근거리는 가슴 때문에 '수치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 수치스러움을 마구 구애정에게 쏟아붓는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나면 이 사내는 또 너무 했다 싶은 마음에 구애정의 반응을 눈치본다. 또 자신은 구애정 따위에는 눈도 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훈남 윤필주(윤계상)의 등장에 긴장하고 심지어는 질투까지 하게 된다. 도대체 독고진이라는 남자는 구애정을 진짜 좋아하는 것일까.

이것은 구애정도 마찬가지다. 독고진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신발경매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을 때 자신을 구원해주기도 하지만 그녀는 그의 사랑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비호감 이미지가 자칫 독고진에게도 전염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독고진과 거리를 두려 한다. 도대체 이 두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그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사랑에 익숙하지 않다. 독고진은 자신의 사랑을 자기가 차고 있는 시계가 알려주는 심박수치로 확인하려 드는 인물이다. 그가 구애정을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녀를 만나고 60/90의 안정된 수치를 넘겨버린 심박수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심장수술을 할 때 국보자매의 '두근두근'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 가슴떨림이 거기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간단하게 부정하게 되는 것이다.

즉 독고진이라는 캐릭터는 그 연예인이라는 직업적인 위치 때문에 자신의 실체와 만나지 못하는 불운한 인물이다. 그는 늘 폼을 잡고 다니면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큰 소리를 뻥뻥 쳐대지만 사실은 지극히 소심한 실체를 갖고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사실조차도 자신의 실체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인물. 따라서 까칠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겉모습과 때때로 보이는 약한 모습이 교차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들의 열광이 생겨난다.

그것은 멋진 모습 이면에 드러나는 인간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들 앞에서 구애정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행동을 보여주지만 둘 사이로 들어가면 거의 비굴하다 싶을 정도로 구애정의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가 된다. 최고의 능력과 카리스마를 가진 그가 그녀 앞에서는 코믹할 정도로 소심한 인간이 되는 모습은 이 캐릭터에 최고의 판타지를 부여한다.

'마이웨이'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며 독고진이 구애정을 잡기 위해 어린 시절 아팠던 심장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그가 최고의 스타인지는 몰라도 사랑에 있어서는 거의 어린이에 가까운 초보자라는 걸 보여준다. 심장 수술한 자국을 보여주며 "내 가슴은 찢어져 있어. 하트 브레이크. 내 심장이 네 앞에 뿌려주는 진달래꽃이야. 너무 아파."하고 엄살을 부리는 장면은 독고진의 이중적인 모습이 잘 드러난다. 폼을 한껏 잡지만 아이처럼 사랑을 갈구하는.

구애정의 이어지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청순가련하기에는 바디가 너무 짐승"인 그는 그래서 스타이면서도 사랑이라는 새로운 실체 앞에 어찌할 줄 모르는 인간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 지금 불고 있는 '독고진 앓이'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스타들을 바라보고 또 보고 싶어하는 그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최고의 사랑'을 꿈꾸게 하는 최고의 캐릭터는 우리가 스타를 통해 바라듯이, 최고의 멋진 모습이면서 또한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아닐까. 사랑을 모른다면 그 사랑을 가르쳐주고픈.

'아테나', 수애와 정우성의 액션 멜로 역학관계

'아테나'는 정우성이 아니라 수애와 차승원에서부터 시작됐다. 하와이에서 윤혜인(수애)이 정보 요원의 뒤를 쫓다가 어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서 플라잉 니킥을 선보이는 액션은 그녀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인지시켰다. 또 화장실 변기와 유리 등이 마구 부서져버리는 추성훈과 차승원이 화장실에서 벌이는 사투 장면을 통해 손혁(차승원)이라는 캐릭터는 확실히 부각됐다. 하지만 정우성은 달랐다. 그가 연기하는 이정우는 상대적으로 유약해 보일 정도였다. 왜 그랬을까.

상대적으로 이정우(정우성)가 1회에 약하게 그려진 것은 어느 정도는 계산된 것들이다. 어딘지 빈 구석을 만들어놓아야 혜인과의 멜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테나'가 가진 재미의 핵심이 이정우와 혜인이 벌이는 팽팽한 액션과 멜로의 뒤섞임이라고 볼 때, 이정우라는 캐릭터에 대한 힘 조절(?)은 필수적이다. 천진난만하게까지 보이는 이정우의 초반 캐릭터는 '아이리스'에서 김현준(이병헌)이 그랬던 것처럼 혜인과의 어떤 계기를 통해 급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테나'는 그저 액션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장면의 흐름 속에 심리적인 고려를 한 흔적이 역력하다. 폭풍처럼 흘러가는 액션의 연속은 시청자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때론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장면들을 효과적으로 배치해 자연스럽게 상황을 이해하게 만들려는 연출의 의도가 엿보인다. 망명한 북한의 핵물리학자를 구출하려는 권용관(유동근) 국장이 요원들을 끌어 모아 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손혁과 혜인이 요원들을 하나하나 죽이는 장면에는 어떤 설명도 들어있지 않다. 하지만 교차 편집된 장면 연출을 통해 우리는 이들이 서로 다른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대결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만큼 연출에 있어서도 단지 그림을 찾기보다 심리적인 고려를 한다는 얘기다.

폭풍 액션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이정우가 용의자(박철민)를 취조하는 우스꽝스런 장면을 배치한 것도 이런 심리적인 고려 때문이다. 한바탕 웃음으로 숨을 돌린 후에 드라마는 멜로 설정으로 들어간다. 놀이공원에서 우연히 이정우가 혜인을 만난 후, 다시 국정원에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를 넣으면서, 동시에 손혁과 혜인과의 관계도 노출시킨다. 이들의 멜로적인 관계 속에 대결구도 역시 고려하는 것이다. 여기에 속을 알 수 없는 혜인이라는 미스테리한 인물을 세워둠으로써 정우와 손혁 양쪽에 걸쳐진 멜로는 이중스파이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이리스'가 흔들리는 카메라를 통해 '본 아이덴티티'의 영상을 끌어냈다면, 2회의 첫 도입부 20분 간을 장식한 이탈리아에서의 액션신은 007 시리즈를 오마주한 듯한 영상을 선보인다. 클래식과 록이 배경음악으로 교차되면서 우아함과 강렬함이 뒤섞이고, 긴박한 순간에도 여유를 잃지 않고 유머까지 구사하며 총을 쏠 때는 사정을 두지 않는 냉혹함을 보여주는 이정우는 숀 코네리 시절의 007을 떠올리게 한다. 전체적으로 액션이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카메라의 과도한 흔들림을 피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감성이 덧붙여진 액션 덕분이기도 하다. 물론 이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이탈리아 액션 장면들이 이정우의 꿈이라는 설정 역시 의도적이다. 확실한 이정우의 액션 질감을 보여준 후, 다시 본래 목적이었던 혜인과의 멜로구도로 회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테나'는 전반적으로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굴러가지만 전반의 폭풍 액션과 후반부의 멜로 구도를 병치하면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액션과 멜로의 교집합. 이것은 '아테나'라는 작품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액션이 앞에서 강렬하게 끌고 나간다면 멜로는 그 강렬함에 어떤 브레이크를 걸면서 부드러움을 집어넣는다. 정우성이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에서 수애와 차승원이 확고히 자리를 잡고, 그 후에 정우성이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과정은, 바로 이 멜로와 액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연결시킬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멜로와 액션의 병치는 다분히 우리네 드라마 시청 환경을 고려한 것이다. 너무 지나친 마니아적 액션들은 고른 시청층을 확보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아테나'의 성패는 바로 이 액션과 멜로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보여진다. 그 열쇠는 그래서 이 둘 사이에서 변화할 정우성에게 다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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